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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論語

子罕。第 1章. 罕言利與命與仁. ~ 第5章. 文王旣沒,

by 柳川 2020. 1. 7.

 

第 1章

 

子罕言利與命與仁。

 

 

공자께서는 이익과 운명(運命)과 인(仁)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일이 드물었다.

 

 

○罕 少也. 程子曰, 計利則害義, 命之理微, 仁之道大, 皆夫子所罕言也.

 

○한은 적음이라. 정자 가라사대 이를 계산하면 의리에 해롭고, 명의 이치가 은미하고, 인의 도가 크니 다 부자가 드물게 말씀한 것이니라.

 

 

 

 

第 2章

 

達巷黨人曰, 「大哉! 孔子。 博學而無所成名。」  子聞之謂門弟子曰, 「吾何執?  執御乎?  執射乎?  吾執御矣。」

 

 

달항 마을 사람들이 말했다.

“위대하도다! 공자여. 박학(博學)하지만 명성을 이룬 것이 없구나."

공자께서 이 말을 듣고 門下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럼 내 무엇을 전문으로 해볼까? 수레 모는 일을 해볼까? 활쏘는 일을 해볼까? 내가 수레 모는 일을 전문으로 해 봐야겠다.”

 

 

 

○達巷黨名, 其人姓名不傳. 博學而無所成名, 蓋美其學之博, 而惜其不成一藝之名也.

 

○달항은 마을 이름이니 그 사람의 이름은 전하지 아니하니라. 널리 배웠으되 이름을 이룬 바가 없다는 것은 대개 그 학문의 넓음을 아름다이 여기고, 그 한 재주라도 이뤄 이름을 내지 못함을 애석히 여김이라.

 

 

子聞之謂門弟子曰, 「吾何執?  執御乎?  執射乎?  吾執御矣。」

 

공자께서 이 말을 듣고 門下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럼 내 무엇을 전문으로 해볼까? 수레 모는 일을 해볼까? 활쏘는 일을 해볼까? 내가 수레 모는 일을 전문으로 해 봐야겠다.”

 

 

○執 專執也. 射御 皆一藝, 而御爲人僕, 所執尤卑. 言欲使我 何所執以成名乎, 然則吾將執御矣. 聞人譽己, 承之以謙也. 

○尹氏曰, 聖人道全而德備, 不可以偏長目之也. 達巷黨人 見孔子之大, 意其所學者博而惜其不以一善, 得名於世, 蓋慕聖人而不知者也. 故 孔子曰欲使我 何所執而得爲名乎. 然則吾將執御矣.

 

○집은 오로지 잡음이라. 활 쏘고 말 모는 것은 다 한 가지 재주이나 말 모는 것은 남의 종이 되는 것이니 잡는 것이 더욱 낮음이라. 나로 하여금 무엇을 잡아서 써 이름을 이루랴, 그러면 내 장차 말 모는 것을 잡으리라 하시니, 남이 자기를 칭찬해주는 것을 듣고 겸손함으로써 이으심이니라. 

○윤씨 가로대 성인은 도가 온전하고 덕이 갖추어져 가히 한쪽의 장점으로써 지목하지 못하니라. 달항당인이 공자의 큼을 보고 뜻이 그 배운 것은 넓어도 그 한 선함으로써 세상에 이름을 얻지 못한 것을 애석히 여겼으니, 대개 성인을 흠모하면서도 아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공자가, 나로 하여금 무엇을 잡아서 이름을 이루랴 한다면, 그러면 내 장차 말 모는 것을 잡으리로라 하시니라.

 

 

 

 

 

第 3章

 

子曰, 「麻冕禮也, 今也純儉。吾從衆。拜下禮也, 今拜乎上泰也。 雖違衆吾從下。」

 

 

공자가 말씀하셨다.

“삼베로 짠 치포관(緇布冠)이 예에 맞지만, 지금은 명주실로 짰으니 검소한 것이다. 나는 대중의 방식을 따르겠다.

당(堂) 아래에서 임금께 절하는 것이 예인데, 지금은 당 위에서 절을 하니 교만한 것이다. 비록 대중들과는 어긋나지만 나는 당 아래서 절하는 예를 따르리라.”

 

 

○麻冕 緇布冠也. 純 絲也. 儉 謂省約. 緇布冠 以三十升布 爲之, 升 八十縷 則其經 二千四百縷矣. 細密難成, 不如用絲之省約.

 

升 되 승, 여기서는 피륙의 날을 세는 단위로 '새 승'

 

○마면은 검은 베로 짠 갓이라. 순은 실이라. 검은 덜고 간략히 함을 이름이라. 치포관은 삼십 새의 베로써 만드니 새는 80올이니 그 날실이 2천4백올이라. 가늘고 빽빽하여 만들기가 어려워 실로 생략하여 쓰는 것만 같지 못함이라.

 

 

 

拜下禮也, 今拜乎上泰也。 雖違衆吾從下。

 

당(堂) 아래에서 임금께 절하는 것이 예인데, 지금은 당 위에서 절을 하니 교만한 것이다. 비록 대중들과는 어긋나지만 나는 당 아래서 절하는 예를 따르리라.”

 

 

○臣與君 行禮當拜於堂下, 君辭之 乃升成拜. 泰 驕慢也 

○程子曰, 君子處世 事之無害於義者, 從俗可也, 害於義則不可從也.

 

○신하와 인군이 예를 행함에 당연히 당 아래에서 절을 해야 하니, 인군이 사양하거든 이에 올라가 절을 함이라. 태는 교만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군자가 세상에 처함에 일이 의리에 해롭지 아니하면 풍속을 따름이 가하거니와 의리에 해로우면 가히 따르지 못함이라.

 

 

 

 

 

第 4章

 

子絶四, 毋意毋必毋固毋我。

 

 

공자께서는 네 가지가 전혀 없으셨으니, 사사로운 생각이 없었고, 기필(期必)하는 것이 없었고, 집착이 없었고, 사사로운 내가 없으셨다.

 

 

○絶 無之盡者. 毋 史記作無是也. 意 私意也, 必 期必也, 固 執滯也, 我私己也, 四者相爲終始, 起於意, 遂於必, 留於固, 而成於我也. 蓋意必 常在事前, 固我常在事後, 至於我又生意, 則物欲牽引 循環不窮矣. 

○程子曰, 此毋字 非禁止之辭, 聖人 絶此四者, 何用禁止. 張子曰, 四者 有一焉 則與天地不相似. 楊氏曰, 非知足以知聖人, 詳視而黙識之 不足以記此.

 

 

○절은 없는 것이 다함이라. 毋는 『사기』에 無자로 지었으니 이것이라. 의는 사사로운 뜻이오, 필은 기필이오, 고는 잡아 막히는 것이오, 아는 사사로운 몸이니, 네 가지는 서로 종과 시가 되니 뜻에서 일어나서 기필하는 데에 이르고, 고집부리는데 머물러 나에게서 이룸이라. 대개 意와 必은 항상 일의 앞에 있고, 固와 我는 항상 일의 뒤에 있으니, 나라고 하는데에 이르러 또한 뜻을 내면 물욕이 끌어 이끌어서 순환반복하면서 끝이 없느니라. 

○정자 가라사대 이 毋자는 금지하는 말이 아니니 성인이 이 네 가지를 완전히 끊으셨거늘 어찌 금지로 쓰리오. 장자 가로대 네 가지에 한 가지라도 있으면 천지와 더불어 서로 같지 않느니라. 양씨 가로대 지혜가 족히 써 성인을 알아서 자세히 보고 묵묵히 아는 이가 아니면 족히 써 이를 기록하지 못하니라.

 

 

 

 

 

第 5章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공자가 광(匡)이란 곳에서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하셨다.

“문왕(文王)이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 문화(禮樂 · 제도)가 나에게 있지 않은가! 하늘이 이 예악을 없앨 작정이었다면 문왕의 뒤에 죽을 나같은 사람이 이 예악에 관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늘이 이 예악을 없애지 않으셨으니, 광지방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참고]

 

'그 문화가 나에게 있지 않은가.〔文不在我〕’라고 말하지 않고 ‘여기에 있다.〔在玆〕’라고 했고, ‘내가 이 문화에 참여하지 못했다.〔我不得與斯文〕’라고 말하지 않고, ‘뒤에 죽을 사람〔後死者〕’이라고 했으니, 그 의미가 매우 좋다. 만일 ‘나에게 있다.〔在我〕’고 했으면 이는 ‘내’가 중요한 것이고, ‘여기에 있다.’라고 했으면 ‘문화〔文〕’가 중요한 것이다. 바로 문왕이 여기에 있는데, 중니가 어찌 감히 스스로 ‘나’라고 하겠는가.

만일 ‘내가 이 문화에 참여했다.〔我與斯文〕’라고 했다면, 이는 내가 충분히 성인으로서 이 문화에 참여했다는 말이니, 중니 또한 어찌 스스로 성인이라고 여기겠는가. ‘뒤에 죽는 사람’이라고 말했으니, 이는 하늘이 이 문화를 없애려고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왕이 죽은 뒤에 또 중니를 낳아서 문왕의 문화가 사멸하지 않게 했으니, 어찌 중니가 스스로 ‘나’라고 할 수 있었겠는가. 단지 ‘문왕 뒤에 죽을 사람’이라고만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나를 어찌하겠는가.〔其如予〕’라고 말할 때의 ‘여(予)’ 자는 바로 하늘로서 이마가 튀어나오고 입이 큰 공자라는 것이니, ‘광 지역 사람들이 하늘을 어찌하겠는가.’라는 의미이다.   <讀書箚義>

 

 

[참고]

 

將適陳, 過匡, 顔刻爲僕, 以其策指之曰:「昔吾入此, 由彼欠也.」 匡人聞之, 以爲魯之陽虎. 陽虎嘗暴匡人, 匡人於是遂止孔子.  孔子狀類陽虎, 拘焉五日, 顔淵後, 子曰:「吾以汝爲死矣.」 顔淵曰:「子在, 回何敢死!」 匡人拘孔子益急, 弟子懼. 孔子曰:「文王旣没, 文不在茲乎?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于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孔子使從者爲甯武子臣於衛, 然後得去. <史記 孔子世家>

 

공자가 장차 진(陳)나라로 가려고 광(匡)을 지나갔다. 이때 안각(顔刻)이 말을 몰았는데 말채찍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에 제가 이곳에 왔을 때는 저 파손된 성곽의 틈 사이로 들어왔었습니다.”

광(匡) 지역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노나라의 양호(陽虎)가 또 온 것이라고 여겼다. 양호는 일찍이 광 지역 사람들에게 포악하게 대했었다. 광 지역 사람들은 이에 드디어 공자의 앞길을 막았다. 공자의 모습이 양호와 비슷했기 때문에 공자는 5일간이나 포위당해 있었다.

안연(顔淵)이 뒤따라 도착하자 공자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난중에 이미 죽은 줄로 알았어.”

안연이 말했다. “선생님이 계시는데 제가 어찌 감히 무모하게 죽겠습니까?” 광 지역 사람들이 공자를 향해 더욱 급박하게 포위망을 좁혀오자 제자들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공자가 말했다. “문왕(文王)은 이미 돌아가셨으나 문(文)은 여기에 있지 않은가?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려고 하셨다면 우리들로 하여금 이 문(文)을 전승할 수 없게 했을 것이다.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려고 하지 않으시는데 광 지역 사람들이 나를 어찌하겠는가!” 공자는 사자를 영무자(寧武子)에게 보내어 위(衛)나라의 신하가 되게 한 후에야 비로소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畏者 有戒心之謂. 匡 地名. 史記云陽虎曾暴於匡, 夫子貌似陽虎. 故 匡人 圍之. 

○道之顯者 謂之文, 蓋禮樂制度之謂. 不曰道而曰文, 亦謙辭也. 玆 此也, 孔子自謂.

 

○외라는 것은 경계하는 마음을 둔 것을 이름이라. 광은 땅이름이라. 사기에 이르기를 양호가 일찍이 광땅에서 포악하더니 부자가 모습이 양호와 비슷함이라. 그러므로 광인이 에워싸니라.

○도가 나타나는 것을 문이라 이르니 대개 예, 악, 제도를 이름이라. 도라고 아니하고 문이라 이른 것은 또한 겸손하는 말이라. 자는 이것과 같으니 공자가 스스로 이르심이라.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하늘이 이 예악을 없앨 작정이었다면 문왕의 뒤에 죽을 나같은 사람이 이 예악에 관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늘이 이 예악을 없애지 않으셨으니, 광지방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참고]

 

바로 여기에서 공자의 도를 斯文이라 하고, 선비를 일컬어 斯文이라 하며, 李斯文, 朴斯文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馬氏曰, 文王旣沒故, 孔子自謂後死者. 言天 若欲喪此文, 則必不使我 得與於此文, 今我 旣得與於此文, 則是 天未欲喪此文也. 天旣未欲喪此文, 則匡人 其奈我何. 言必不能違天害己也.

 

○마씨 가로대 문왕이 이미 몰하신 고로 공자가 스스로 뒤에 죽는 자라고 이르시니라. 말하건대 하늘이 만약에 이 문을 상하고자 할진댄 곧 반드시 나로 하여금 얻어 이 문에 참여를 못하게 하거니와 지금 내가 이미 얻어 이 문에 참여하니, 그렇다면 이는 하늘이 이 문을 상하게 하고자 아니하심이라. 하늘이 이미 이 문을 상하게 하고자 아니하실진댄 그렇다면 광인이 그 나에게 어찌 하리오. 반드시 능히 하늘을 어기고 나를 해칠 수 없음을 말씀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