兵書/六韜

육도삼략의 저자 강태공

柳川 2008. 9. 6. 11:16
 
 

위수(渭水)라는  강가에서  매일  매일  낚시질로  소일하는  허름한  늙은이가  있었다.   인근의  주민들이나 뱃사공들은  여생을  한가로이  보내는  그저  그런  노인인  줄로만  알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  80이나  되는  노인이  한나라의  임금님의  스승이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  노인은  동쪽  해안지방의  사람이라  하였으므로  지금의  산동성  제주출신일  것이며,  또  당나라의  사마정이  사기를 주하여  낸  색은(索隱)이라는  책에는  태공이  염제의  자손이라  하였다.  염제는  중국  본래의  토착민이었으나  그  자손은  밖으로부터  침입해  온  한족(漢族)인  황제에  의해서  멸망당했다  한다.  그 후  태공의 조상은  중국에서  유명한  황하의  대범람을  다스린  공이 있어 여(呂)땅에  봉함을  받았다.  태공의  이름이  상(尙)이므로  그를  여상이라  불렀다.  황제에서  제후로,  제후에서  관리로,  관리에서  무직자로  전락한  기복중첩한  가계의  밑바닥에서  태어난  사람이  태공이었다.  그는  70이  넘도록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데  강에서  고기를  낚으며  주나라까지  유랑해왔다.  너무도  가난해서  아내까지  도망쳐  버린  상태였다.

 

어느날  주문왕(서백  창)이  사냥을  나가려고  그날  운세점을  쳐보니  이상한  점괘가  나왔다.
"위수의  양지에서  사냥을 하시면  큰  수확이  있겠습니다.  그것은  용도  아니고  이무기도  아니며,  범도  아니고  곰도  아닙니다. 장차  공후(公侯)가  될만한  큰  인물을  얻을  징조입니다.  하늘이  왕께  스승을  보내어  보필토록  하고  이어  삼대를  돕게  될  것입니다."

 

田於渭陽,  將大得焉.  非龍, 非리,  非虎,  非熊,  兆得公侯. 天遣汝師,  以之佐昌,  施及三王.  [육도삼략  문도  문사  1.  하늘의  계시]
 
이에  문왕은  3일간  목욕재계한  후  위수의  남쪽으로  사냥을  나가  낚시에  여념이  없는  여상을 만났다.  그와  몇마디  이야기를  나눈  문왕은  그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
"선왕이신  태공께서는  항상  '후세에  반드시  주나라에  성인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의  힘으로  주나라는  번성하리라'  하셨는데,  당신이  바로  그  성인임에  틀림  없습니다."
문왕은  여상을  수레에  태워  궁궐에  모신  후  그를  태공망(太公望 : 태공이  바라던 성인)이라  불렀다.  그리고  스승으로  모시면서  언제나  그의  말을  경청하며  따랐다.
 
이  강태공에는  많은  일화가  뒤따른다.
태공이  문왕에  등용되어  행차를  하는  도중에  앞이  시끄러웠다.  태공이  측근을  불러  그  이유를  물으니  어떤  노파가  태공을  뵙고자  한다고  하였다.  이에  태공이  그  여인을  앞으로  오게하여  보니 옛날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내였다. 태공이  출세하자  그  여인은  태공을  찾은  것이었다. 
이에  태공이  그  여인에게  말했다. "물을  한  동이만  떠오시오."
물울  떠온  여인에게  다시  말했다. "물을  엎지르시오."
여인이  그렇게  하자  다시  말했다. "이제  그  물을  다시  담으시오."
여인이  어처구니가  없어  물었다. "아니  엎지른  물을  어떻게  다시  담으란  말입니까?"
"그렇소.  우리의  사이가  바로  그것이오."하는  강태공의  말에  그  여인은  눈물지으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복수불반분 (覆水不返盆)의  고사 :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주문왕이  죽고  그  뒤를  이어  무왕이  즉위하였다. 무왕  9년  무왕이  동원령을  내렸을  때  마침  귀복(龜卜)이  불길한  점괘를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때마침  폭풍우가  휘몰아쳐서  모든  신하들은  주저하며  출정을  꺼려하였다. 그러나  오직  한사람  연로한  태공이  선뜻  나서서  단호히  출동명령을  발하였다. 귀복에  의해서  등용된  그가  서슴없이  그  따위  점같은  것을  비웃고  이를  물리친  데엔  어쩌면  아이러니컬한  그  무엇을  느끼게  하지만  당시와  같은  신정  정치시대에  있어서  단호히  그  신탁을  배격한  태공의  그  용기와  혜안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  초인과  같은  늙은  재상의  용기에  힘입은  무왕은  결연히  거사의  칼을  내뽑고  일어서  주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무왕은  천하를  평정하자  태공을  제후(齊候)에  봉하였다.
태공은  동방의  영지로  가는  길에  조금  가다가는  여관에  숙박하는 등  먼길을  편안하게  가지  못했다.  
그 것을 보자  한  여관주인이  강태공에  말하였다.
"때란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쉽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늑장만  부리시다니  큰  일을  하러  나선사람답지  않군요."
이말을  듣자  태공은  한밤중인데도  금방  부하들에게  출발명령을  내려  길을  빨리  달려가도록  했다.  날이  샐  무렵,  태공이  영지에  닿을까  말까  하는데  갑자기  내후(임지인  영구땅  주변에  살던  만족)가  쳐들어와  이를  격퇴시킬  수  있었다.
태공은  자리를  잡자  그  고장의  풍습을  귀이  여겼고  예절을  간소화  하는  한편  상공업을  장려하여  그  고장  특산물인  소금과  생선으로  상업을  크게  일으켰다.
 
그  후  무왕이  사망하고  성왕대에  이르러  성왕의  숙부(무왕의  동생)인  주공을  노(魯)에  봉하자  이에  주공은  아들  백금을  노에  보내어  통치토록  하였는데  3년이  지나서야  주공에게  정사를  보고했다.
주공은, "매우  늦었구나."
백금이  답하였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그  고장  풍속을  바로  고쳐  규범을  정비하고  3년상을  지키도록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늦게  되었습니다."
 
한편  강태공은  제나라에  부임한지  5개월만에  주공에게  시정보고를  하였었다.
"매우  빠르구먼.' 하고  주공이  말하자  태공이  답하였다.
"저는  군신의  예를  간소화 시키고  백성들의  풍습을  존중하여  정사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공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탄식하였다.
"대체로  나라의  명령이  번잡하면  백성은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속박을  느끼게  하지않고   백성  스스로가  따라  오도록  하는  것이  모름지기  정치의  제일  중요한  진리라  말할  수  있는데....  슬프도다 !  우리  노나라는  언젠가  제나라의  속국이  되고  말  것이다."
태공이  죽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100  세가  넘어  있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