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古文學/歷史 史實及說話

忠武公 李舜臣의 마지막 戰鬪

柳川 2016. 9. 6. 11:22

                                   忠武公 李舜臣의 마지막 戰鬪

 

 

(이때) 이순신은 당나라의 장수 진린과 함께  해구를 막고 적을 핍박하고 있었다. 이에 적장 소서행장(고니시 유끼나가)는 사천에 주둔하고 있던 심안돈오(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구원을 청하여 시마즈 요시히로가 수로를 따라 구원을 나왔다. 이에 이순신은 나아가 싸워 크게 이겼는데 적선 200여척을 불태우니 죽거나 사로잡힌자가 셀수가 없을 정도였다. 적을 추격하여 남해와의 경계에 이르러 이순신은 친히 시석을 무릅쓰고 싸움을 독려하였는데 적의 탄환이 날아와 가슴을 뚫고 등뒤로 나갔다.

좌우에서 부축하여 장막안으로 옮기는 중, 이순신이 말하기를, "싸움이 급하니 부디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 말라." 이르고는 마침내 절명하였다.

이순신의 조카 이완은 본래 담력이 있고 상황을 헤아릴줄 알아 이순신의 죽음을 감추고 이순신의 명령으로 더욱 급하게 싸움을 독려하였는데 군중에서는 죽음을 몰랐다. 

이완은 진린이 타고 있던 배가 적에게 포위당한 것을 보고 군대를 지휘하여 그를 구하였다.(징비록 2권)

 

[다음은 인조대왕시 왕과  오리 이원익의 대화내용이다.]

 

이원익이 아뢰었다.

"소신이 보건대, 옛 통제사 이순신같은 장수를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요즘 이순신같은 인재가 있다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에 왕이 말했다. 

"왜란 당시에는 오로지 이순신 한사람뿐이었소."

이원익이 말하기를,

"이순신의 아들 열은 지금 충훈도사로 있는데 이런 장수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란시에 이순신이 죽으려 할때 열이 부축하면서 껴안고 울었습니다. 그때 이순신이 '적과 진을 마주하고 싸우고 있으니 부디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등의 말을 했는데, 열이 이순신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평상시와 같이 싸움을 독려하였습니다."하였다.

 

이에 왕은,

"옛날 대신은 반드시 사람들이 추천하였는데  경 또한 필요한 인재를 천거하지 않았소?"하고 물었다.

이원익이 답하기를,

"이순신과 같은 인재가 있었다면 천거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신은 병으로 수년간이나 누워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드물었습니다. 어찌 유능한 인재가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추천하지 않겠습니까? 선조시에 신은 이순신이 인재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추천하여 통제사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비변사에서는 원균을 통제사로 바꾸도록 추천하였습니다. 신이 이를 반대하였지만 이순신을 교체하여 원균으로 바꾸었는데  전쟁은 반드시 패할 것이라 하면서 신은 재삼 계를 올렸음에도 비변사에서는 끝내 이순신을 교체하였습니다. 그 결과 원균이 패하자 그 후에 이순신으로 다시 바꿨지만 대사는 이미 끝나고 끝내 패배가 누적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생각하니 이기지 못한 것이 분하고  원통합니다."라고 했다. <승정원일기 인조9년. 4월 5일>

 

[사관의 논평]

이 마침내 대패하니 사람들은 모두 '죽은 순신이 산 왜적을 물리쳤다'고 하였다. 부음(訃音)이 전파되자 호남(湖南) 일도(一道)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여 노파와 아이들까지도 슬피 울지 않는 자가 없었다.  국가를 위하는 충성과 몸을 잊고 전사한 의리는 비록 옛날의 훌륭한 장수라 하더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다. 참으로 애석하다!  조정에서 사람을 잘못 써서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능을 다 펴지 못하게 하였다.

  (『선조실록』 선조 31년(1598) 11월 27일 사관의 논평)

 

李舜臣與唐將陳璘, 扼海口以逼之. 行長求援於泗川賊甚安頓吾, 頓吾從水路來援. 舜臣進擊大破之, 焚賊船二百餘艘, 殺獲無算. 追至南海界, 舜臣親犯矢石力戰, 有飛丸中其胸, 出背後. 左右扶入帳中. 舜臣曰 "戰方急. 愼勿言我死" 語訖而絶. 舜臣兄子李莞, 素有膽量, 秘其死, 以舜臣令, 督戰益急, 軍中不知也. 陳璘所乘舟, 爲賊所圍, 莞望見, 揮其兵救之.

<징비록 권2>  

                    

李元翼曰 "以小臣見之, 如故統制使李舜臣, 不易得也. 今則如舜臣者, 未知聞也." 上曰 "當時倭亂, 惟舜臣一人而已." 李元翼曰 "舜臣之子䓲, 方爲忠勳都事, 而此不易者也. 倭亂時, 舜臣將死, 䓲扶抱而泣. 舜臣曰 '與賊對陣, 愼勿發喪'云云. 

則䓲, 故不發喪, 擊督戰如常矣." 上曰 "古之大臣, 必得人而薦. 卿亦薦擧其可用之人才耶?"李曰 "若有如舜臣者, 則可以薦擧, 而臣病伏累年, 罕與人接, 何以知其可用而薦之乎? 宣廟朝, 臣知舜臣之善, 故薦而用之爲統制使矣. 備局, 更以元均, 薦望爲統制使. 臣馳啓, 以爲遞舜臣而代以元均, 則事必敗矣. 再三啓達, 而備局, 終遞舜臣. 及其元均致敗之後, 更以舜臣代將, 大事已去, 終至敗績. 到今思之, 不勝憤惋."<승정원일기 인조9년. 4월 5일>

                    
賊遂大敗, 人皆謂  '死舜臣破生倭'. 及訃音傳播, 湖南一道之人, 莫不痛哭, 雖老嫗·兒童, 無不悲泣. 其丹忠許國, 忘身死義, 雖古之良將, 無以加也. 惜乎! 朝家用人失當, 使舜臣, 不得盡展其才.
 
                                                                       <선조실록 선조38년. 사관의 논평>
 
                    

扼 : 잡을 액. 잡다. 누르다. 움켜쥐다. 가지다. 멍에.      沈安頓吾 :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艘 : 배 소. 배, 선박, 척.   

犯 : 무릅쓰다. 무시하다.         訖 : 이를 흘/이를 글. 이르다. 마치다. 다하다. 마침내, 모두. 까지. 

䓲 : 풀난 모양 예.(이순신장군은 열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