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頌 · 閔予小子之什 · 閔予小子
周頌 · 閔予小子之什
閔予小子
閔予小子,遭家不造, 가련한 나 소자가 집을 짓지 못했으니,
嬛嬛在疚。 너무 외로워 병이 되었도다.
於乎皇考!永世克孝。 오호라, 황고(武王)시여 ! 영세토록 능히 효도하셨도다.
嬛 : 날렵할 현/홀로 경. 날렵하다. 우아하다. 단단하다. 치밀함. [경]홀로. 고독함.
念茲皇祖,陟降庭止。 황조(文왕)를 생각하나니, 뜰을 오르내리셨도다.
維予小子,夙夜敬止。 나 소자가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공경하노라.
於乎皇王!繼序思不忘。 오호라, 황왕(文王, 武王)이시여 ! 대를 이어 잊지 못하리로다.
[註]
閔予小子,遭家不造,嬛嬛在疚。於乎皇考!永世克孝。
민여소자, 조가부조, 경경재구。 오호황고 ! 영세극효。
가련한 나 소자가 집을 이루지 못함을 만나 외롭고 외로워 병들었으니, 아, 황고여. 영세토록 능히 효도하셨다.
○賦也. 成王免喪, 始朝于先王之廟而作此詩也. 閔 病也. 予小子 成王自稱也. 造 成也. 嬛 與煢 同, 無所依怙之意. 疚 哀病也. 匡衡曰
煢煢在疚, 言成王 喪畢思慕, 意氣未能平也, 蓋所以就文武之業, 崇大化之本也. 皇考 武王也, 歎武王之終身能孝也.
○부라. 성왕이 상을 벗고, 처음으로 선왕의 사당에서 조회하면서 이 시를 지음이라. 민은 병듦이라. 나 소자는 성왕이 스스로를 일컬음이라. 조는
이룸이라. 경은 ‘외로울 경’과 더불어 같으니 의지하고 믿을 바가 없다는 뜻이라.구는 슬퍼서 병듦이라. 광형(『漢書』 匡張孔馬傳)이 “외롭고 외
로워 병들었다는 것은 성왕이 상을 다하고 그리워하는 생각에 의기가 능히 평안하지 못함을 말함이니, 대개 문무의 업에 나아가서 大化의 근본
을 높이려는 까닭이라.”고 하니라. 황고는 무왕이니, 무왕이 종신토록 능히 효도하였음을 감탄함이라.
念茲皇祖,陟降庭止。維予小子,夙夜敬止。
염자황조, 척강정지。 유여소자, 숙야경지。
생각함에 이 황조께서 뜰을 오르내리셨으니 나 소자가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경하였다.
○皇祖 文王也. 承上文, 言武王之孝. 思念文王, 常若見其陟降於庭, 猶所謂見堯於牆, 見堯於羹也. 楚詞 云三公, 揖讓登降堂只, 與此文勢,
正相似, 而匡衡, 引此句, 顔註 亦云若神明臨其朝廷. 是也.
○황조는 문왕이라. 위 문장을 이어서 무왕의 효도를 말함이라. 문왕을 생각함에 항상 그 뜰에서 오르내림을 보는 듯하니 이른바 요임금을 담장
에서 보고 국에서 보았다는 것(『後漢書』 李杜列傳에서 李固가 말하기를 “昔堯殂之後, 舜仰慕三年, 坐則見堯於墻, 食則見堯於羹. : 옛날에 요
임금이 돌아가신 후에 순임금이 우러러 삼 년을 그리워하시더니 앉으면 요임금이 담에서 나타나시고 밥을 먹으면 요임금이 국에서도 나타나셨다
하니라.)과 같음이라. 『초사(楚辭)』(大招편)에 삼공이 읍양하고 당에 오르내린다 하였으니 이 문세와 더불어 바로 서로 같고, 광형이 이 구절을 인
용하였거늘 안사고(顔師古, 581~645, 唐나라 때 학자. 師古는 字. 이름은 籒(주). 陝西省 萬年縣 출생. 『漢書』에 주석을 달았는데 가장 탁월한 해
석으로 꼽힘)의 주에 또한 신명이 그 조정에 임한 것과 같다 하니, 이것이라.
於乎皇王!繼序思不忘。
오호황왕 ! 계서사불망이。
아, 황왕이여. 차례를 이을 것을 생각하여 잊지 못하리로다.
○皇王 兼指文武也. 承上文, 言我之所以夙夜敬止者, 思繼此序而不忘耳.
○황왕은 문왕과 무왕을 아울러 가리킴이라. 위의 문장을 이어서 내가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공경하는 것은 이 순서를 이을 것을 생각하여
잊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함이라.
閔予小子一章 十一句
此 成王 除喪, 朝廟所作, 疑後世, 遂以爲嗣王朝廟之樂. 後三篇 放此.
이는 성왕이 상을 벗고 사당에 조회하면서 지은 것이니, 아마도 후세에 마침내 뒤를 이은 왕이 사당에 조회하는 음악으로 삼은 듯하니라.
뒤의 세 편도 이와 같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