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槪要

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柳川 2019. 4. 28. 10:17

                    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구본현*1)


1. 서론
2. 詩語의 선택과 意境의 조직을 통한 情景의 표출
3. 상징과 용사를 이용한 景의 설정
4. 창작 상황을 고려한 景의 해석
5. 결론


<국문초록>
지금까지의 한시 연구 경향을 살펴보면, 당대나 후대의 평가 및 전통적인 詩論을 참조하여 한시를 해석하는 경우

가 많다. 그런데 과거의 비평이나 시론에 사용된 용어들은 대부분 개념이 명확하지 않거나 논리가 체계적이지 못

하여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본고의 목적은 과거의 전통적인 시론에서 중요한 용어로 사용되었던 ‘情’과 ‘景’의 형상화 방식을 고찰하는 것이

다. 景은 감각으로 수용된 대상에 대한 객관적 서술로 이루어진 구절을 가리키며, 情은 시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담은 구절을 가리킨다.  景은 情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情에 따라 시인이 주체적으로 선택

한 결과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한시 속에 나타난 景은 情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情과 景이 결합된 형태의 한시일 경우, 情이 지니고 있는 성격을 기준으로 삼아 景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해석

해야 한다.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상과 측면이 매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특정한 대상과 측면만을 

선택하여 詩化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 동덕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146 국문학연구 제28호


시인은 情을 함축할 수 있도록 景을 구성해야 하므로, 어떤 시어를 선택하였고 어떻게 意境을 조직하였는지 살펴

본다면 景이 함축한 의미를 해석해낼 수 있다.

한편, 시인은 대상이 지닌 상징성과 典故로서의 성격을 이용하기도 한다.정신과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는 하나

의 대상에 고유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내부적 동질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시는 이러한 특징이 잘드러

나는 갈래이므로, 景을 이루고 있는 사물이나 사건이 상징적 의미나 典故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아

야 한다. 상징을 이용하거나 用事가 활용된 景은 반드시 그 이면에 情을 함축할 수밖에 없다.
상징과 용사는 작품의 의미, 즉 주제를 보다 함축적으로 만들기 위한 수사법이므로 창작의 동기 및 배경을 파악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시의 제목 및 연관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함으로써 창작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고, 

이를 기준으로 삼아 景의 특징을 분석해야만 그 속에 감추어진 情의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핵심어: 漢詩, 情, 景, 詩語, 意境, 象徵, 用事, 창작 상황


1. 서론


한시를 창작하게 되는 동기와 과정에 대한 논의는 매우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개

진되었으나, 가장 많이 인용되고수용되었던 주장은 朱熹가 말한 다음의 것일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원래) 고요한데 (이는) 하늘이 내린 성품이다. 사물을 느끼게 되면 움직이게 되는데 (이는) 성

품이 지닌 욕심이다. 욕심이 생기면 생각이 없을 수 없고, 생각이 생기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을 하게 되면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 있게 된다. 그리하여 탄식하고 읊조리는 것 너머에서 (말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반

드시 자연스러운 소리와 가락을 갖추게 되어 멈출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가 나타나게 된 과정과 까닭이다.


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47


人生而靜, 天之性也. 感於物而動, 性之欲也. 夫既有欲矣, 則不能無思; 既有思矣, 則不能無言; 既有言矣, 則言之所

不能盡. 而發於咨嗟詠歎之餘者, 必有自然之音響節族而不能已焉. 此詩之所以作也.1)


동아시아에서의 한시 창작과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주희의 견해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毛亨의 견해에서 

유래한 것이다. 

毛亨은 “시는 뜻이 나아간 것이다. 마음에 있으면 뜻이 되고, 말이 되어 밖으로 나오면 시가된다.”라 하여 시의 

내용을 ‘志’라고 표현하였는데,2) 주희는 이를 ‘性’, ‘欲’,‘思’로 나누어 보다 자세하게 풀이하였다.


주희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신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현상‧사건, 즉 外物과 마주치게 되면 시인은 

이를 감각으로 수용한다. 외물에 의해 촉발된 감각은 시인의 내면에 모종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시인은 이러한
감정의 실체, 이러한 감정이 생긴 이유 등을 따져보게 된다. 즉 생각에 빠지게 된다. 생각을 정리한 시인은 자신

의 감정과 생각을 자신 이외의 누군가에게 표출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되고, 그 수단으로 언어를 선택함으로
써 시를 창작하게 된다.


그러나 주희가 말한 것처럼 언어는 시인의 내면을 온전히 표현하기에 불충분한 도구이다.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

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것이 언어이기는 하지만, 언어라고 해서 자아의 감정과 생
각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언어가 가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인은 다양한 방법을 사용

하게 된다. 한시의 경우, 그러한 방법의 하나로 주목되었던 것이 형상을 세워 뜻을 다한다는 ‘立象盡意’이다.3) 

시인이 지닌 감정과 생각을 자세하게 서술하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고, 그것이 깃든 감각적 대상만을 보여줌으로

써 오히려 시인의 내면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감각으로 수용된 대상을 형상화하는 데 그칠 뿐, 

이로 인해 만들어진 감정이나 생각에 대한 서술을 의도적으로 자제하거나 생략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1) 朱熹, <詩經集傳序>, ?詩經集傳? 上(成百曉 譯註), 傳統文化硏究會, 1993, 21면. 번역은 필자가 수정하였다.
2) 毛亨, <毛詩序>: “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 情動於中而形於言, 言之不足, 故嗟歎之. 嗟歎之不足, 故詠歌之. 詠歌之不足, 

   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也.”
3) ?周易‧繫辭上?의 “聖人有以見天下之賾, 而擬諸其形容, 象其物宜, 是故謂之象.”이나 “子曰:‘書不盡言, 言不盡意.’ 然則聖人之意, 其不

   可見乎? 子曰: ‘聖人, 立像以盡意. 設卦以盡情僞, 繫辭焉以盡其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언어의 불완전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형상

   을 앞세운다는 논리는 ?주역?의 사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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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의 경우, 감각으로 수용된 대상에 대한 서술만으로 이루어진 구절을 전통적으로 ‘景’이라 하고 시인의 감정

이나 생각을 담은 구절을 ‘情’이라 하였다.4) 한시는 응당 情景을 모두 갖추어야 하며, 두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이에 따라 오래 전부터 景과 情을 어떻게 구분하고 배치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였다. 즉 ‘情景論’이 동아시아 고전 시론의 중요한 범주로 인정되었던 것이다.
情景에 대한 논의들은 번다할 정도로 많지만,5) 대부분의 의견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情과 景이 불가분

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둘이 交融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6) 이에 따라 ‘情隨景生’, ‘移情入景’, ‘情景交融’등
의 용어를 사용하여 情과 景이 배치되는 방식을 예증한 논의가 이루어졌고,7) 작법이나 작가를 다룬 논문들에서 

情景의 개념을 원용하여 작품을 해석하는 경우 또한 매우 많았지만, 景이 포함하고 있는 情을 어떻게 해석해내어

야 하는지에 주목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작품의 해석 또한 자세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여 情景이 맺고 

있는 연관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에 본고에서는 景을 중심으로 창작된 한시들이 어떻게 情을 함축하고 있는지 그 방식을 분석하고자 한다. 景이

라는 것은 결국 情을 포함한 것이라는 사실, 즉 시인이 자신의 情을 표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선택한 결과가 景

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4) 이때의 ‘情’은 시인의 내면에 일어나는 감정과 생각을 아울러 가리키는 용어가 된다. 즉 시인의 이해‧기억‧판단‧의지 등에 해당하는 것

   들도 모두 ‘情’에 포함된다.
5) 情景에 대한 중국 고전 시학의 견해들에 대해서는 이병한 편저, ?중국 고전 시학의 이해?, 文學과知性社, 1992, 99~111면 참조.
6) 景에서 情이 생기고 情에서 景이 생기며, 이 둘은 이름만 다를 뿐 실제로는 떨어질 수 없다고 한 王夫之의 견해가 대표적인 예이다. 

   王夫之, ?薑齋詩話?: “情景, 雖有在心在物之分, 而景生情, 情生景 (…) 情景, 名爲二而實不可離. 神於詩者, 妙合無垠.”
7) 정민, ?한시미학산책?(개정판), 휴머니스트, 2010, 175~202면 참조.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49


이러한 연구는 한시가 지니는 독특한 특징의 하나, 즉 감정과 생각의 직접적인 표출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경향의 

정체를 해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시 작품은 결국 情을 밖으로 드러내려는 노력의 결과이므로, 어떠한 情

을 함축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작품 이해의 핵심이 될 것이다. 아울러 情을 함축하기 위해 어떠한 景을 선

택하였고 그것을 어떻게 배치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시어의 선택이나 수사법 등 어떠한 언어적 조작이 이루

어졌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한시를 이해하는 보다 정교하고 깊이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2. 詩語의 선택과 意境의 조직을 통한 情景의 표출


한시 창작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점은 情을 바로 드러내지 않고 이를 반드시 景 속에 감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景에 해당하는 구절은 대부분 묘사와 서사로 만들어지는데, 시인은 五感을 통해 수용된 사물‧사건‧현상 등을 객

관적으로 언어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 때문에 景에 해당하는 구절에서 시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곧바로 

알아내기 어려운 것이다.
외물과 접촉하여 형성된 情이 없어도 한시 작품을 창작할 수는 있다. 감각을 통해 수용된 景을 단순히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한시의 외형을 갖출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억지스러운 감정이나 생각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어 이

를 경물에 기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작품은 ‘眞情’이 없기에 제대로 된 한시라 할 수 없다. 한시의 原型이자 典範인 ?詩?가 출현한 이래

로 동아시아 시가의 핵심적 가치로 인정된 것이 곧 ‘眞情’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시 작품은 반드시 情을 지니
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景은 情을 함축하기 위한 도구이자 매개일 뿐이므로, 

情을 매개하지 않는 景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情景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지만, 情이 主가 

되고 景이 客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8)


8) 이에 대해서는 楊鑄, 「中國古代詩歌的情景交融問題」, ?한국전통문화연구? 10, 대구가톨릭대 150 국문학연구 제28호


情景이 交融하는 방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시인이 景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시어를 선택하고, 어떻게 意

境9)을 조직했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인이 궁극적으로 표출하고자 하는 것은 내면의 감정이나 생각
이다. 시어의 선택과 의경의 조직은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선택된 결과이다. 예컨대, 똑

같은 나무를 두고도 시인의 감정과 생각에 따라 ‘잎이 무성한 나무’와 ‘그늘이 짙은 나무’ 따위로 시어와 의경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鄭知常(?~1135)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落句를 예로 들어 이상의 논의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은 金富軾이 좋아하여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정지상이 끝내 허락하지 않아 결국에는 김부식에 의해
정지상 자신이 죽음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名句이다.10)


琳宮梵語罷,          
사찰에 범어 소리 끝나니

天色凈琉璃.          하늘빛이 유리처럼 맑구나.


‘梵語’는 인도의 文語, 즉 산스크리트어를 가리킨다. 따라서 出句는 불공을 드리면서 불경을 읽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 틀림없다. 對句는 유리처럼 맑은 하늘의 모습을 묘사한 구절이다.
감각을 통해 수용된 景을 묘사하였을 뿐,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곱고 아름다운 시어로 對偶

를 맞추었으나, 이것만으로 문학성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하늘빛을 유리에 견준 것도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표현이다.


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5, 119~127면 참조.
9) 하나의 완결된 의미와 고유한 語感 및 情調를 지니는 문장을 ‘意境’이라 한다.
10) 李奎報, ?白雲小說?(洪萬宗 編, 許卷洙·尹浩鎭 교정, ?原文 詩話叢林?, 까치, 1993), 10~11면: 

   “侍中金富軾、學士鄭知常, 文章齊名一世, 兩人爭軋不相能. 世傳: 知常有‘琳宮梵語罷, 天色凈琉璃’之句, 富軾喜而索之, 欲作己詩, 終不

   許. 後知常爲富軾所誅, 作陰鬼. 富軾一日詠春詩曰: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忽於空中, 鄭鬼批富軾頰曰: ‘千絲萬點, 有孰數之也? 何

   不曰“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 富軾心頗惡之. 後往一寺, 偶登廁, 鄭鬼從後握陰囊, 問曰: ‘不飮酒, 何面紅?’ 富軾徐曰: ‘隔岸丹楓照顔

   紅.’ 鄭鬼緊握陰囊曰: ‘何物皮囊子?’ 富軾曰: ‘汝父囊, 鐵乎?’ 色不變. 鄭鬼握囊又力, 富軾竟死於廁中.”
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51


그런데 ‘절’을 가리키기 위해 선택한 ‘琳宮’이라는 시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푸른빛의 옥으로 만든 집’이라는 

뜻을 지닌 ‘琳宮’은 道家에서 仙館이나 道觀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11) 그러므로 佛家에서 쓰는 말인 ‘梵語’와

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寶刹’, ‘叢林’, ‘雲房’, ‘伽藍’, ‘僧院’, ‘精舍’ 등 절을 가리키는 말은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런데도 왜 정지상은 하필 ‘琳宮’이라는 시어를 선택하였을까? ‘梵語’와 어울리지 않는 시어를 선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김부식은 왜 이 구절을 훌륭하다고 여겼을까?
이에 대한 첫 번째 해답은 對句에 쓰인 ‘琉璃’라는 시어에서 찾을 수 있다. ‘琉璃’ 또한 보석을 가리키므로 옥의 

하나인 ‘琳’과 좋은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옥은 그 모양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울리는 소리가 맑기도 하다.
즉 스님들이 讀經하는 소리가 옥으로 만든 사찰을 울리고, 그 反響이 하늘에까지 이르러 하늘 또한 유리처럼 맑

아졌다는 뜻이 된다. ‘琳’이 푸른 빛의 옥이므로 하늘의 푸른빛과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월명사의 <도솔가>나 <제망매가>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독경은 하늘에 있는 부처, 예컨대 도솔천의 미륵과 

같은 존재에게 무엇인가를 기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구절은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하늘에 있는 부처

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정성스러운 것임을 가리키기도 한다. 琉璃는 부처의 일곱 가지 덕을 비유하는 七寶에 속하

는 보석이다.12) 하늘빛이 유리처럼 맑아졌다는 것은, 스님들의 정성스러운 독경소리가 하늘에 있는 부처에게 

전달되어 부처의 은덕이 머지않아 지상에 이를 것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이 구절은 독경의 모습과 하늘의 모

습을 아름다운 시어로 묘사하였다는 표면적인 특징 속에 ‘독경하는 스님들의 정성스러움’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숨겨 놓은 셈이 된다. 이러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였기에 시어들끼리의 부조화를 감수하고

서라도 ‘琳宮’이라는 시어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11) 唐 吳筠의 <遊仙>에서 “上元降玉闥,王母開琳宮.”이라 하였듯이 ‘琳宮’은 대부분 道觀을 가리킨다. 도관과 사찰을 아울러 가리킬 때

    에는 ‘琳宮梵宇’라고 표현하였다.
12) 佛經에 따라 七寶의 내용이 다르지만, ?法華經?, ?無量壽經?, ?大阿彌陀經? 등에 모두 琉璃가 七寶의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
152 국문학연구 제28호


이처럼 한시 창작에서는 단순해 보이는 묘사 속에 시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함축하는 방식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다. 함축이야말로 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情에 해당하는 구절이 없는 경우에는 景을 구성하는 시어의 

특징과 의경의 성격을 파악하여 情의 실상을 추측해야 한다. 만약 시인의 감정과 생각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구

절이 있다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보다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작품에 나타난 情의 성격을 감안하여 景에 숨겨

진 의미를 논리적으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鄭誧(1309~1345)의 시를 예로 들어 보자.


양주 여관의 벽에 쓰다.


五更燈影照殘粧,         새벽 등불이 스러진 화장 비추는데

欲語別離先斷腸.         이별을 말하려니 애가 먼저 끊어지네.

落月半庭推戶出,         지는 달 반쯤 비추는 마당으로 문 열고 나오니

杏花踈影滿衣裳.         살구꽃 맑은 그림자가 옷에 가득하네.13)


承句에 ‘斷腸’이라 하였으니 슬픔이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구절은 情을 표현한 구절에 해

당한다. 시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알려주는 표현이 보이지 않으므로 나머지 구절들은 景에 해당한다. 승구에 

미 ‘이별로 인한 슬픔’이라는 情이 나타나므로 이것이 곧 작품의 주제가 되며, 나머지 景들 또한 이에 준하여 그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起句에 보이는 ‘殘粧’은 화장을 지우지 않아 그 자국이 남아 있는 얼굴을 가리킨다. 화장을 한 것으로 보아 그 주

인공은 젊은 여인임에 틀림없다. ‘殘粧’에 대하여 이별을 앞두고 흘린 눈물 때문에 화장이 지워진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14) 이러한 해석은 뒷부분의 의경을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
한다.


13) 鄭誧, <題梁州客舍壁>, ?東文選? 권21.
14) 魚江石, 「鄭誧 漢詩에 나타난 挫折과 對應樣相」, ?개신어문연구? 15, 개신어문학회, 1998, 239~240면; 이종묵, 「꽃그늘에 어린 미

    련-정포의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면서(題梁州客館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53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게 되면 대문 밖이나 동구 밖까지 따라가 전송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 그런데 轉句

와 結句를 보면 남성 화자만이 방밖으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인은 임과의 이별을 모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즉, 밤 깊도록 사랑하는 이와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피곤에 지쳐 화장도 지우지 못한 채 잠이 든 것이

다. 시인은 자신의 情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대상, 즉 감각에 가장 첨예하게 수용되는 대상만을 선택하여 景

을 구성한다. 시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景은 그 이면에 情을 함축하게 된다.
등불은 방안의 모든 사물을 비추지만 시인은 오로지 여인의 얼굴, 그 중에서도 눈‧코‧입‧이마 등이 아닌 ‘스러진 

화장’만을 주시한다. 화장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殘粧’은 추한 모습이다. 여인이 함부로 남에게 

‘殘粧’을 보여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여인과 함께 있는 사람은 여인과 매우 친밀한 사람, 즉 사랑하

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여인이 가장 보여주기 싫어하는 ‘스러진 화장’을 가장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는 사실에서, 시인이 진정으로 여인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토록 사랑하는 이를 두고 떠나야 하는 상황

이기에 과장에 빠지기 쉬운 ‘斷腸’이라는 표현이 전혀 억지스럽지 않게 된다.
모든 연인들이 그러하겠지만, 가장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마음에 상처를 입어 슬퍼하는 연인의 얼굴일 

것이다. ‘스러진 화장’으로 얼룩진 얼굴조차 사랑스럽지만, 자신의 고별로 인해 상처받을 여인의 표정을 시인은
결코 마주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이 든 여인에게 이별을 말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등하던 

시인은 결국 잠든 여인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밖으로 나오고 만다.
전구와 결구는 시인의 내면에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 구절, 즉 情을 포함한 景에 해당한

다. 문을 열고 나온 시인의 눈에 비친 풍경은 곧 시인 자신의 내면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15)


別情人)>」, ?시안? 6, 시안사, 2003, 164~197면.
15) 시인과 이별한 뒤, 방문에 어른거리는 살구꽃 그림자를 본 여인이 임이 다시 돌아왔는가 싶어서 문을 열고 나오는 상황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준규, 「梁州客舍 題詠」, 디지털양산문화154 국문학연구 제28호


이별을 말하지 않고 나온 행동이 옳은 것이었을까? 여인의 슬픈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말없이 나오기는 했으나, 

이는 아주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까?  말없이 떠난 나를 여인은 그 얼마나 원망할 것인가? 이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할, 어쩌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마지막이라도 한 번 더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문을 나선 뒤에도 시인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내쳐 길을 떠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돌아가 이별을 고할 것인가? 

이러한 내면을 상징하는 것이 반은 밝고 반은 어두운 ‘落月半庭’이다.
고민하던 시인의 내면은 결구의 景으로 수렴된다. ‘踈影’은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꽃이나 잎이 다 지고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의 그림자’를 가리키기도 하고,16) ‘깨끗하고 맑은 그림자’, 즉 또렷한 그림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17) 대부분의 경우 ‘성근 그림자’로 해석하는데, 뒤이어 ‘滿衣裳’이라는 의경이 나타나므로 이는 사리에 맞지 않

는다. ‘성근 그림자’가 옷에 ‘가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18) 따라서 정포 시에 보이는 ‘踈影’은 환한 달빛에 의
해 활짝 핀 살구꽃이 또렷하게 비치는 그림자로 보아야 한다. 살구꽃은 봄을 상징하므로 두 연인의 젊음과 사랑

을 의미한다. 살구꽃이 그들의 사랑이었다면, 살구꽃 그림자는 사랑의 추억이 된다. 이별로 인해 사랑은 지속될 

수 없으나, 그 동안의 추억은 두 사람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때로 사랑은 추억만으로도 충분한 법이다. 

시인이 이별을 고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며, 이러한 심정을 표현한 것이 바로 ‘滿衣裳’이다.19)

정포의 시는 사랑을 소재로 한 시 가운데 名作이라는 칭송을 얻었다. “한 대전, 양산시. 그러나 승구의 주체가 

남성화자인 시인이니만큼 전구의 주체 또한 시인 자신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앞서 나온 주어가 생략된 것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16) 唐 杜牧, <長安夜月>: “古槐疏影薄, 仙桂動秋聲.”
17) 宋 林逋, <山园小梅>: “疏影横斜水清浅, 暗香浮动月黄昏.”; 明 陆采, ?明珠记·酬节?: “碧梧苍竹, 疎影离离.”
18) 결구의 의경에 보이는 모순을 시적 표현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현대시와 달리 한시에서는 이처럼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19) 살구꽃을 여인의 상징으로 보고, 그 그림자를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李京雨, <鄭誧論>, ?인문과학연구? 6, 서원

    대학교 미래창조연구원, 1997, 76면. 한편, 흔들리는 살구꽃 그림자를, 떠나지 말라고 붙잡는 여인의 손길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종

    묵, 앞의 글.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55


순간의 情境을 잘 표현해내었다.”20)는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景 속에 情을 담아낸 수법이 매우 교묘하다. ‘殘’, 

‘斷’, ‘落’ 등 소멸과 쇠락의 글자로 詩想을 이어가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반대의 의미를 지니는 ‘踈’와 ‘滿’으로
의경을 조직한 솜씨 또한 뛰어나다.
이상의 논의에서 알 수 있듯이, 한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情이 나타난 구절을 파악하고 이를 기준으

로 삼아 景의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情을 고려하지 않은 채 景을 해석하게 되면, 작품 전체의 주제나 미감을 전

혀 엉뚱하게 이해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이에 해당하는 예를 살펴보기로 한다. 徐居正(1420~1488)이 지은 것으로, 어느 여름날 오후에 마주친 경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잠에서 깨어


簾影深深轉,             
발그림자 점점 짙게 바뀌는데

荷香續續來.             연꽃 향기 끊임없이 풍겨오네.
夢回孤枕上,             
외로운 베개 맡, 꿈에서 돌아오니

桐葉雨聲催.21)         오동잎에 빗소리가 요란하네.


여름날의 고요한 풍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한낮을 지나 발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연꽃 향기가 풍겨오는 상황을 

묘사하였다. 깜빡 낮잠에 빠진 시인이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깨어난다는 것이 뒷부분의 의경이다. 이러한
경물만 놓고 본다면 이 시는 여름날 오후의 한가함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처럼 보인다. 館閣의 大家다운 여유와 

멋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 평가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전구에 보이는 ‘孤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인의 감정을 직접
적으로 표출한 시어이기 때문이다.


20) 徐居正, ?東人詩話? 卷下: “鄭雪谷誧<梁州客館別情人>詩 (…) 能寫出一時情境.”
21) 徐居正, <睡起>, ?國朝詩刪? 권1. ?箕雅?와 ?大東詩選?에는 ‘深深’이 ‘依依’로 되어 있다.156 국문학연구 제28호


情은 主이고 景은 客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감정인 ‘외로움’이 곧 이 작품을 이해하는 관
건이 된다. 따라서 나머지 구절에 보이는 경물들도 모두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따라 해석을 해야 한다.
집은 대개 남향이므로 정오에 발그림자가 가장 짧다. 따라서 발그림자가 짙어지는 것, 즉 길어진다는 것은 시간

이 정오를 지났다는 뜻이 된다. 방안에 있는 사물들 가운데 시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점점 짙어지는 발그림자뿐
이다. 시인은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한 채 그림자가 길어지는 모습만을 바라본다.
그 순간 연꽃 향기가 난다. 바람이 불어 연꽃 향기를 실어 보낸 것이다. 향기가 난다는 것을 보아 연꽃이 활짝 피

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시인은 아름다운 연꽃을 보기 위해 발을 걷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발을 쳐놓은 것은 햇빛을 가리기 위한 것이지만, 찾아올 이가 없다는 것, 또는 외출할 마음

이 없다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연꽃이 좋아도 같이 즐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전구의 ‘孤枕’과 

연결된다.
어두워지는 방안에서 깜빡 잠이 든 시인은 꿈을 꾼다. 무슨 꿈일까? 知己와 즐겁게 노니는 꿈이 아니었을까? 시

인은 오동잎에 떨어지는 갑작스런 빗소리에 잠을 깨고 만다. 승구에서 이미 바람이 분다는 의경을 설정하였으므
로 비가 내린다는 결구의 의경이 매우 자연스러워진다.
해가 저만치 기울고 이제는 비까지 내리니, 오늘은 더 이상 자신을 찾아올 손님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낮잠을 자고 난데다 오동잎의 빗소리가 계속 요란할 테니 시인은 밤늦도록 잠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결구의
의경은 전구에 보이는 ‘孤’의 상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 시는 홀로 여유를 즐기는 한적함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로움과 쓸쓸함이라는 정서가 그 

이면에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서거정의 시는 단순히 여름날의 한가로운 풍경을 소묘한 것이 아니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풍경 묘사에만 주목한다면 기구와 전구에 보이는 화자의 관점, 즉 무의미한 발그림자와 연꽃 

향기에 집중하는 시인의 속마음을 해명할 수 없다.


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57


정포와 서거정의 시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景을 읊은 것처럼 보이는 구절이라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

나 반드시 情을 함축하게 된다. 全篇에 걸쳐 情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떠한 景을 선택하였으며 그것을 

어떠한 시어와 의경으로 표현하였는지 살펴보면 시인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내면의 진실을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3. 상징과 용사를 이용한 景의 설정


시인은 시어를 선택하고 의경을 조직함으로써 景 속에 情이 함축되도록한다. 시인이 情을 표출하고자 하는 까닭

은 독자나 청자로부터 공감을 얻기위해서이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알려, 자기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징을 지닌 시어를 선택하거나 과거의 일을 

끌어들여 景의 의경을 설정하기도 한다.
인간은 특정한 대상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시간적‧공간적 유대감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것이 바로 상징이다. 한편으로는  교훈을 지닌 기왕의 사물‧현상‧사건 등이 후세에까지 전해짐으로써 한시의
의경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활용되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用事이다.
특정한 대상과 마주한 시인은 그와 유사한 과거의 어떤 대상을 연상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 상징과 용사를 이

용하여 景을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작품 속에 표현된 景은 시인이 마주한 당시의 사물‧현상‧사건이지만, 그것

이 상징이나 용사 등과 결부되면 시인이 속한 공동체 전체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과 생각을 함축하게 된다.
상징과 용사를 통해 景을 표현하려는 경향은 한시에 흔히 나타나는 특징인데, 두 가지 측면에서 그 활용의 성패

를 가늠할 수 있다. 첫째는 상징과 용사가 쓰였음을 최대한 감추는 것이며, 둘째는 시인이 마주한 대상을 현실적

이고 구체적이게끔 거짓 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158 국문학연구 제28호


매미의 허물


寒蟬曉脫去,                
쓰르라미가 새벽에 허물을 벗어

殼在靑山中.                껍질만이 청산에 남았다네.
樵童摘歸時,                
나무하는 아이가 주워서 집에 돌아와 보니

天下生秋風.22)            천하에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네.


조선 후기의 위항시인인 黃五(1816~?)가 허물을 벗은 매미를 소재로 하여 지은 시이다. 情에 해당하는 구절 없

이, 전편을 景으로 제작하였다. 기구에 보이는 ‘寒蟬’은 쓰르라미, 즉 저녁매미를 가리킨다. 寒蟬은 초가을이 되
어 바람이 서늘해지고 흰 이슬이 내릴 때 울기 시작하며,23) 가을이 깊어져 날씨가 추워지면 더 이상 울지 않는

다.24)  기구에 보이는 ‘脫去’는 유충이었던 매미가 이제 막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었음을 가리킨다. 지금까지의 

모습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났다는 뜻이다. 허물을 벗은 매미는 고결하여 더러운 것과 어울리

지 않는다는 상징을 지니기도 하고,25)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換骨奪胎의 상징으로도 쓰인다.26)
새롭게 태어난 매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새로 태어났다는 증거인 허물만이 남아 있다. 나무하는 아이가 매미의 

허물을 주워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난다. 바람은 소리를 전달하는 법이니, 이는 가을이 시작되었

음을 알리는 쓰르라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뜻이다. 매미의 소리는 새로운 계절, 즉 새로운 세상을 상징한다. 

매미의 허물은 말을 잘 하지 못하는 병을 치료하는 藥材로 쓰이는데,27) 樵童이 이를 줍자 우렁찬 매미의 울음소

리가 들린다는 의경의 설정이 매우 교묘하다.

22) 黃五, <蟬殼>, ?黃綠此集? 권1, 국립중앙도서관장본, 19면.
23) ?禮記·月令?: “(孟秋之月)凉風至, 白露降, 寒蟬鳴.”
24) 宋玉, ?楚詞‧九辯?: “悲哉! 秋之爲氣也 (…) 蟬寂漠而無聲.”
25) 司馬遷, ?史記·屈原列傳?: “自疏濯淖汙泥之中,蟬蛻於濁穢,以浮遊塵埃之外.”
26) 韓愈, <忽忽>, ?韓昌黎詩繫年集釋?(錢仲聯 集釋) 上, 上海古籍出版社, 1994, 107~108면: “忽忽乎余未知生之爲樂也. 願脫去而無

    因. 安得長翮大翼如雲生我身, 乘風振奮出六合絶浮塵? 死生哀樂兩相棄, 是非得失付閒人.”

27) 明 李時珍, ?本草綱目·蟲三·蚱蟬?: “大抵治臟腑經絡, 當用蟬身; 治皮膚瘡瘍風熱, 當用蟬蛻, 各從其類也. 又主啞病、夜啼者, 取其晝

    鳴而夜息也.”
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59


말더듬이였던 존재가 세상의 변화를 알리는 소리를 내게 되었다는 이 구절은 위항시인이었던 황오가 스스로의 

처지와 의지를 寄託한 것이라 할 수있다. 위항인이라는 신분은 세상이 일방적으로 덧씌운 허물일 뿐이다. 황오
는 허물을 벗는 매미처럼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러한 질곡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한 마리의 매미가 처음으로 들려주는 울음소리는 매우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그 소리로부터 가을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보면 그것은 세상의 변화를 알리는 매우 의미 있는 소리가 된다. 개인의 自覺과 脫殼을 통하여 세상의 변
화를 널리 알리는 것, 황오가 추구하는 이러한 정신이 바로 허물을 벗은 매미로 상징화된 것이다.


황오의 호 ‘綠一’은 압록강 아래 제일이라는 뜻이고 다른 호인 ‘綠此’는 압록강 아래 이 사람뿐이라는 뜻이다. 이

를 통해 황오가 스스로를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자부하였음을 알 수 있거니와,28) 위 시는 바로 위항인이라는 허

물을 벗고 시인이라는 새로운 주체로 태어나려는 황오의 굳건한 의지를 담아낸 것이다. 이 시를 가리켜 “氣勢로 

사소한 不平音을 초극”29)하였다고 평가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30)



28) 황오의 생애와 교유에 대해서는 李聖惠, 「黃五 문학에 나타난 유랑지식인적 자화상」, ?동방한문학? 29, 동방한문학회, 2005, 323~

    367면 참조.
29) 閔丙秀, ?韓國漢詩史?, 太學社, 1996, 461~462면.
30) 결구에 보이는 ‘秋風’은 귀뚜라미의 별칭이기도 하니, 가을을 알리는 매미소리를 시작으로 뒤이어 귀뚜라미가 울어댈 것임을 암시하

    는 것으로도 읽힌다.
160 국문학연구 제28호



군자사


煙樹平沈雨意遲,               나무 감싼 안개 평평히 가라앉고 비올 뜻이 더딘데

晩來看竹坐移時.               저녁이 되도록 대나무를 보다가 자리를 옮겼네.
老禪碧眼渾如舊,               
늙은 스님의 푸른 눈은 옛날과 똑같은데

更撿前年此日詩.31)           지난 해 오늘 지은 시를 다시 찾아보네.


兪好仁(1445∼1494)의 대표작으로 평가된 작품이다. 경남 함양에 있는 군자사는 유호인의 고향 근처에 있던 절

이다. 지난해에 이어 이듬해에 다시 군자사를 찾았을 때 지은 것이다.
평평하게 가라앉는 안개가 절을 둘러싼 나무들을 뒤덮었다고 하였으니 바람이 불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람이 불

지 않으니 비가 오려는 기색 또한 없다는 의경이 매우 자연스러워진다.
군자사를 찾은 시인이 제일 먼저 찾아간 것은 울창한 대나무 숲이었다. 그리고는 해가 저물어 대나무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자리를 옮긴다. 절에 왔으면 먼저 주지 스님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인데도 대나무에 정신

이 팔려 저녁이 되어서야 스님을 뵙는다는 뜻이다. 이는 주인에게 인사는커녕 양해도 없이 대나무만 구경하다 

떠나려 했던 王徽之의 故事32)를 가져다 쓴 것이다.
그렇게 무례한 손님인데도 푸른 눈의 노승은 시인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지난해에 어떤 시를 지었는지 다시 

뒤져본다. 군자사를 방문한 시인을 알아본 노승이 1년 전 만남에서 느꼈던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 그때의시를 꺼

내보는 것이다. ‘碧眼’은 도가 높은 승려를 가리키는 말이니, 시인은 이와 짝이 되는 君子가 된다. 그러므로 이 시

의 제목이자 배경인 ‘君子寺’와 긴밀하게 연관된다. 승구에 쓰인 用事의 주인공인 왕휘지가 “어찌 하루라도 이 친

구 없이 살 수 있겠는가!(何可一日無此君耶)”라 했던 것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게끔 ‘一日’과 ‘此君’을 결합하여 

‘此日’이라는 시어를 만들어낸 것 또한 공교롭다.


31) 兪好仁, <君子寺>(3수 중 1수), ?㵢谿集?(?한국문집총간? 15) 권2, 104b‧c면. ‘?한국문집총
간?’은 이하 ‘총간’으로 약칭한다.
32) 劉義慶, ?世說新語‧簡傲?: “王子猷嘗行過吳中, 見一士大夫家, 極有好竹. 主已知子猷當往, 乃
灑掃施設, 在聽事坐相待. 王肩輿徑造竹下, 諷嘯良久, 主已失望, 猶冀還當通, 遂直欲出門. 主人
大不堪, 便令左右閉門不聽出. 王更以此賞主人, 乃留坐, 盡歡而去. 嘗寄居空宅中, 便令種竹. 或
問其故, 徽之但嘯詠, 指竹曰: ‘何可一日無此君耶!’”
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61


대나무를 통해 군자의 정신을 깨우치려 한 시인은 1년 전에 만났던 도승을 다시 만나 지난날의 즐거움을 추억하

는 동시에 진정한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깨달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儒家와 佛家는 크게 다

르지 않기 때문이다.
유호인의 시는 대나무가 지닌 상징과 이와 결부된 전고를 자연스럽게 얽어 詩想을 전개했다는 장점을 지닌다. 

경물 속에 情을 담아내는 방식의 하나로서 상징과 용사를 동시에 활용한 것이다. 이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가
景으로 구성되어 있는 한시의 경우에는 어떠한 상징과 용사가 사용되었는지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작품 이면에 

함축된 정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선사사


偶到仙槎寺,                  
우연히 선사사에 이르니

巖空松桂秋.                  고요한 바위, 가을 깃든 소나무와 계수나무.
鶴飜羅代蓋,                  
학은 신라 시대의 지붕을 펴고

龍蹴佛天毬.                  용은 부처 하늘의 구슬을 차네.


細雨僧縫衲,                  
가느다란 비에 중은 옷을 깁고

寒江客棹舟.                  차가운 강물에 나그네는 노를 젓네.
孤雲書帶草,                  
고운이 책을 묶었던 풀이

獵獵滿池頭.33)               바람에 흔들리며 연못가에 가득하네.


金宗直(1431~1492)이 達城에 있었던 仙槎寺34)에 들러 지은 題詠이다.


33) 金宗直, <仙槎寺>, ?續東文選? 권6.
34) 徐思遠(1550∼1615)이 達城에 있었던 仙査菴의 옛터에 仙査書齋를 짓고 은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가 선사사였던 것으로 보

    인다. 朴光錫, <樂齋先生文集重刊序>, ?樂齋集?(총간 속집 7), 6b면: “伊川上有仙査菴古基, 亦絶勝地也. 誅茅卜築, 以爲講學之所, 

    自號曰彌樂齋.
162 국문학연구 제28호


수련은 등람 제영에 흔히 보이는 방식인 破題에 해당한다. 선사사에 도착하였다는 사실과 그곳에서 처음으로 마

주친 풍경을 묘사하였다.
하늘을 나는 뗏목인 ‘仙槎’는 신선이 타고 다니는 것이다.35) 따라서 ‘仙槎’를 만들 수 있는 材木인 ‘松桂’로 詩想

을 이었다. 신선이 타고 다니는 학이 깃드는 나무가 소나무이고, 月宮과 天上에서 자라는 나무가 곧 桂樹이다. 이 

둘이 합쳐진 ‘松桂’는 隱者들의 거처를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선사사가 속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

임을 암시한 것이 된다.
頷聯은 하늘을 난다는 首聯의 의미를 이어받아 학과 용으로 절의 모습을 묘사한 구절이다. 절의 이름이 선사사이

므로, 제목에서 연상되는 심상을 실제의 경물과 결부시켜 의경을 만든 것이다. 出句는 신선이 타고 다니는 학의 

날개처럼 날렵하게 처마가 올라간 지붕의 모습을 묘사한 것인데, 이를 통해 선사사가 신라 때 지어졌음을 암시하

였다. 對句는 여의주를 쥐고 힘차게 비약하는 용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구슬을 찬다’고 하였으니 선사사에는 

御間이나 대들보 사이에 여의보주를 움켜쥐고 있는 용의 장식이 있었던 듯하다.36) 지붕을 중심으로 법당의 바깥
을 묘사한 후에 그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또는 그 내부)의 모습을 언급한 것이니, 시인이 마주친 대상을 순차적으

로 묘사한 셈이 된다.37)
頸聯은 법당 내부에서 마주친 경물이다. 밖에는 가랑비가 내리는데 안에서는 스님이 말없이 옷을 깁고 있다. 바

늘이나 실처럼 가늘게 떨어지는 細雨 속에서 옷을 기운다는 표현도 절묘하지만, 한편으로 이 구절의 경물은 

迦世尊과 須菩提尊者의 일화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수보리존자는 옷을 꿰매고 있다가 석가세존이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석가세존을 마중하러 나가기 위해 일어선 

수보리존자는 순간 자신과 석가를 포함한 모든 것이 ‘空’임을 깨닫고 다시 자리에 앉아 옷을 꿰맨다.38) 이 일로 

인해 수보리존자는 ‘解空第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즉, 김종직의 시는 손님이 찾아왔는데도 스님이 마중도 않고 아는 체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밖에 가랑비가 내

리니 손님을 마중하기도 어렵거니와, 조용히 찾아온 손님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옷을 깁던 손길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盖取朱夫子歸自同安, 彌樂其道之義也.”
35) 晉 張華 ?博物志? 권3: “舊説云天河與海通, 近世有人居海渚者, 年年八月有浮槎去來不失期. 人有奇志, 立飛閣於查上, 多齎糧, 乘槎

    而去. 十餘日中, 猶觀星月日辰, 自後芒芒忽忽, 亦不覺晝夜. 去十餘日, 奄至一處, 有城郭狀, 屋舍甚嚴, 遙望宮中多織婦, 見一丈夫牽牛

    渚次飲之. 牽牛人乃驚問曰: ‘何由至此?’ 此人見説來意, 並問此是何處. 答曰: ‘君還至蜀郡訪嚴君平則知之.’ 竟不上岸, 因還如期. 後至

    蜀問君平, 曰: ‘某年月日有客星犯牽牛宿.’ 計年月, 正是此人到天河時也.”
36) 나무를 깎은 용으로 사찰을 장식할 때에는 頭上만 만들기도 하고 全身을 만들기도 한다. 栱包의 柱頭에 龍의 머리 부분만을 깎아 붙

    이기도 하고 법당 전면의 중앙에 해당하는 御間에 바깥으로는 용의 머리가 나오고 안으로 꼬리 부분이 나오게 장식하기도 한다. 법당 

    내부의 서까래 사이에 용의 전신을 깎아서 걸어 놓기도 한다.
37) 함련의 표현이 ‘거침없는 상상력’에서 비롯하였다는 해석도 있다. 李東順, 「金宗直 漢詩에서의 豪壯의 의미」, ?성심어문논집? 25, 

    성심어문학회, 2003, 38면 참조. 그러나 이 구절은 실제의 경물을 묘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63



한순간 마주친 무의미한 풍경을 시인은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용사의 수법을 이용하여, 선사사에 

이르러 얻은 깨달음, 즉 자신도 스님도 모두 ‘空’임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하였음을 담아낸 것이다. 그러니 지금
저 바깥에 차가운 강물을 가로질러 배를 저어 오는 나그네도 마찬가지로 환영받을 일은 없다. 모든 것은 ‘空’이

기 때문이다.
경물로 인하여 만들어진 이러한 情은 다시 결구의 의경으로 이어진다. 미련에 보이는 ‘孤雲’은 최치원을 가리킨

다. 최치원이 달성의 선사암에서 노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39) ‘仙槎’라는 절 이름 또한 최치원과의
인연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書帶草는 잎이 길고 매우 질긴 풀인데, 鄭玄의 제자들이 이것으로 책을 묶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황건적의 난으

로 이별하게 된 정현과 그 제자들의 사연 또한 결부되어 있다.40)
따라서 서대초가 무성하다는 것은 더 이상 책을 묶지 않는다는 뜻, 즉 학
문의 계승이 단절되었다는 뜻이다. 신라

의 끝자락에서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평생을 보낸 최치원의 아름다운 정신이 온전히 계승되지 못하고 다만 서대

초에 자취만을 남기고 있다는 뜻이다. 미련에 보이는 쓸쓸한 경물이 함축하고 있는 슬픔과 외로움의 정서는 앞서 

함축한 ‘空’과도 깊이 연관되는 바, 佛家와 仙家의 전고를 섞어 경물 속에 감정과 생각을 갈무리한 솜씨가 돋보

인다.


38) ?增一阿含經‧聽法品?: “爾時, 尊者須菩提在羅閱城耆闍崛山中, 在一山側縫衣裳. 是時, 須菩提聞世尊今日當來至閻浮裏地, 四部之眾

    靡不見者: ‘我今者宜可時, 往問訊禮拜如來.’ 爾時, 尊者須菩提便舍縫衣之業, 從坐起, 右腳著地. 是時, 彼復作是念: ‘此如來形, 何者是

    世尊, 爲是眼、耳、鼻、口、身、意乎? 往見者復是地、水、火、風種乎? 一切諸法皆悉空寂, 無造、無作 (…) 諸法皆悉空寂, 何者是我? 我者無

    主. 我今歸命真法之聚.’ 爾時, 尊者須菩提還坐縫衣.”
39) ?樂齋集年譜?(총간 속집 7) 권1, 119a면: “伊川之南, 有仙査古菴, 世傳崔學士孤雲遊賞之地. 而鄭林下營立書齋, 經亂丘墟. 先生誅茅

    更築, 以爲講學之所.”
40) ?後漢書‧郡國志四?: “鄭玄教授不其山, 山下生草大如䪥, 葉長一尺餘, 堅韌異常, 土人名曰康成書帶.”; 晉 伏琛, ?三齊記?: “鄭司農, 

    常居不其城南山中教授. 黃巾亂, 乃避. 遣生徒崔琰、王經諸賢於此, 揮涕而散. 所居山下草如薤, 葉長尺餘許, 堅韌異常. 時人名作康成書

    帶.”
164 국문학연구 제28호


이 시는 창작의 상황을 둘러싼 정보가 부족하여 전체적으로 시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석하기가 어렵다. 최치원과 

선사사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얽혀 있는지 알아야만 미련의 의미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김종직이 언제, 어떤 이유로, 누구와 함께 선사사를 방문하였는지 알 수 있다면 경물 속에 함축된 감정과 생

각, 즉 작품의 주제를 보다 자세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시 작품에 표현된 경물의 숨은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때때로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동기와 경위 등

을 알아야 할 때도 있는데, 다음 장에서 이러한 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4. 창작 상황을 고려한 景의 해석


한시는 酬唱이나 應待의 수단으로도 널리 이용되었다. 따라서 많은 수의 작품들이 특정한 상황과  목적 아래 창

작되었다. 이는 작품의 제재나 주제가 한정되는 결과를 낳게 되므로, 창작의 동기나 배경 등을 이해해야만 작품

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景을 중심으로 창작된 한시의 경우, 景이 함축하고 있는 情의 성격과 의

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창작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65


구례에서 이산 류제양과 함께 운을 한정하여 짓다


籬竹靑靑過雨痕,           대 울타리 푸른 것은 비가 지나간 흔적인데

古堂依約枕山根.           오래된 집이 예와 같이 산 뿌리를 베고 있네.
頭流秀色三千疊,           
지리산 빼어난 빛 삼천 겹이나 되는데

妙選雙峯作一村.41)       두 봉우리 가려 뽑아 마을 하나 이루었네.


이 시는 1878년(고종 15), 삼남 지방을 두루 여행하다가 구례에 들른 金澤榮(1850∼1927)이 柳濟陽과 어울린 

자리에서 限韵으로 지은 것이다. 限韵은 하나의 운에 속한 글자들 중 몇 개만을 한정하여 시를 짓는 것으로, 酬
唱의 자리에서 詩才를 겨룰 때 자주 이용되었던 형식이다. 김택영은 平聲 元韻에 속하는 ‘痕’, ‘根’, ‘村’으로 운

을 맞추어 세 수의 시를 지었는데, 구례에서 시를 잘 짓기로 이름난 류제양42)을 만나 서로 재주를 겨루었던 것
으로 보인다.
이 시는 손님인 김택영이 주인인 류제양의 초대를 받은 상황에서 지은 것이므로, 주인에게 감사와 존경의 뜻을 

담아야 한다는 상황 아래 창작된 것이다. 따라서 이를 고려하여 작품을 해석해야 한다. 앞부분에서 류제양이
살고 있는 거처의 소박한 모습을 묘사하고, 뒷부분에서 류제양의 집과 마을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칭송하였다. 주인의 거처를 칭송함으로써 초대를 받은 손님으로서의 예의를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를 이렇게만 읽는다면, 김택영의 시는 참으로 싱거운 작품이 되고 만다. 사실 이 시는 류제양의 학

문과 인품을 칭송한 것으로 읽어야 한다. 기구에 보이는 ‘籬竹’은 대나무 숲 자체를 울타리로 삼았다는 뜻이다.


41) 金澤榮, <求禮同柳二山_濟陽_限韵>(3수 중 1수), ?韶濩堂詩集?(총간 347) 권2, 164a면.
42) 류제양은 당시 구례 지역의 名士였던 王錫輔와 그의 세 아들 및 黃玹 등과 교유하였다. 1870년에 구례 지역의 시인들과 함께 一器會

    라는 詩會를 열었고, 1900년에는 황현·왕사찬 등과 南湖雅集이라는 시회를 결성하였다. 평생 1만여 수의 시를 지었다고 하며 ?雙峰

    詩集?, ?二山詩稿? 등이 전한다. 류제양의 생애와 한시에 대해서는 김정환, 「二山 柳濟陽의 한시 고찰」, ?영남학? 9,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2006, 363~390면 참조.
166 국문학연구 제28호


그러므로 류제양이 대나무를 본받고자 하는 마음을 지녀 평소 검소하게 생활하였음을 칭송한 것이다.
승구에 보이는 ‘古屋’은 류제양의 거처인 雲鳥樓를 가리킨다. 운조루는 류제양의 高祖인 柳爾胄가 낙안군수로 

있던 1776년(영조 52)에 지은 것이다.43) 따라서 ‘古屋’은 류제양 집안의 家學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依約’은 의거하여 그대로 따른다는 뜻이므로, 승구의 의미는 류제양이 조상들의 생활, 학문, 정신 등을 예전과 

다름없이 지키고 있다는 칭송이 된다. 류제양의 집이 산을 베고 누웠다는 것은 산자락에 집이 있음을 묘사한 것

이지만, 그 이면에는 산이 지닌 不動의 정신과 기상을 류제양이 체득하였다는 뜻 또한 숨어 있다. 따라서 이 의경 

또한 류제양이 가학의 전통을 온전하게 계승하고 있다는 칭송이 된다.


결구에 보이는 ‘妙選’은 가리고 또 가려서 절묘하게 뽑았다는 뜻이다.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 가운데 가장 빼어

난 두 개의 봉우리를 골라 그 아래에 집터를 마련하였다는 뜻이다. 류제양의 호가 二山인데, 이는 운조루의 뒷산, 

즉 主山에 해당하는 兄弟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리산 일대에 수많은 시인, 문장가, 학자, 선비가 

있으나 이곳 운조루의 주인인 류제양이 그 중 제일이라는 뜻이 된다.44)
김택영의 시는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지어진 것이니만큼 주인의 인품, 학식, 가문 등을 칭송해야 한다는 목적 아

래 지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주인에 대한 칭송을 노골적으로 늘어놓을 수는 없는 법이다. 애초에 한시라는 

형식 자체가 이와 어울리지 않거니와 詩才를 겨루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택영은, 실제로 마주한 시적 대상을 가감 없이 묘사하면서도 ‘주인에 대한 칭송’이라는 창작 동기에 적합한 시

어와 의경을 선택하고 조직하였다.
그 결과 景을 통해 情을 함축해야 한다는 한시 갈래의 본래적 특징을 자연스럽게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43) 

조선 후기 호남 지역의 양반가 누정을 대표하는 운조루는 현재 중요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44) 


김택영이 같은 제목으로 지은 두 번째 작품도 류제양의 덕행과 문장을 칭송한 것이다. 


床頭丹墨幾編痕, 

日日吟哦坐竹根. 

京、洛紅塵何涴得? 

堅盟十載守窮村.


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67


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는 또 다른 예로 金正喜(1786∼1856)의 <芋社燃燈>을 보기로 한다. 芋社는 김정희의 

벗이었던 草衣(1786~1866)가 중년에 건립하여 만년까지 머물렀던 一枝菴의 다른 이름이며 초의의 호이기도 하
다. 초의가 직접 만들어 일지암에 내건 연등을 소재로 삼았으므로,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의가 修行이 깊

은 禪僧이었다는 사실, 동갑내기인 김정희가 초의와 知己로서 교유하였다는 사실 등을 감안해야 한다.


우사의 연등


草衣老衲墨參禪,                  
늙은 스님 초의는 먹으로 참선을 하는데

燈影心心墨影圓.                  등불 그림자 가물가물, 먹 그림자 둥글둥글.
不剪燈花留一轉,                  
등잔 불꽃 자르지 않고 한 번 더 타게 두었더니

天然擎出火中蓮.45)              천연스럽게 불 속에서 연꽃이 솟아나네.


먹으로 참선을 하였다는 것은 書畵를 잘 한다는 칭찬이다. 餘技에 불과한 書畵로 참선을 한다는 것은 사실 不敬

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김정희와 초의가 서로를 알아주는 친구 사이였으므로 농담 반 진담 반의 칭찬을 건넨 것

이다.
이후의 구절은 초의가 그린 연꽃에 대한 김정희의 생각이 담겨 있는데, 초의가 먹을 통하여 진짜로 참선에 이르

렀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따라서 농담처럼 보이는 기구가 사실은 起端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승구는 등잔의 불꽃, 또는 등불이 만드는 그림자가 가물대는 모습과 먹으로 그려놓은 연꽃의 모습을 묘사한 구절

이다. 연등은 대나무로 골대를 짜고 바깥에 연꽃을 그린 한지를 붙여 바람을 막는 형태로 만드는데, 그림을 잘 그

리는 초의 선사가 한지에 연꽃을 그려 연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구와 결구는 등잔불이 사위어들다가 다시 불

꽃이 일어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45) 金正喜, <芋社燃燈>, ?阮堂集?(총간 301) 권10, 182d면.
168 국문학연구 제28호


이상의 내용만을 놓고 보면, 이 시는 별다른 내용이라 할 것이 없다. 친구인 초의 선사가 연등을 만들었다는 사실

을 서술하고 그 연등이 타오르는 모습만을 간단하게 묘사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구에 보이는 ‘參禪’이라는 말이 암시하는 것처럼, 사실 이 시는 각각의 구절 모두가 佛家의 사유를 함축

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즉 간략하게 서술한 景의 이면에 김정희의 생각, 즉 情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예컨대 승구에 보이는 ‘心心’은 불꽃이 가물가물하는 모양을 가리키는 의태어로 쓰였지만, 불가에서는 생각이 끊

이지 않고 계속되는 모습, 즉 백팔번뇌를 가리키기도 한다. 꺼질 듯 말 듯 계속 타들어가는 등불의 모습을 통해 

번뇌로 인생을 허비하다 끝을 맞이하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반면에 초의 선사의 그림은 ‘圓’, 즉 둥글둥글하다. 이는 실제 초의의 그림이 지닌 특징을 사실적으로 서술한 것

으로 보인다. 서화의 運筆法인 方筆과 圓筆46) 가운데 원필의 수법으로 연꽃을 그렸다는 뜻이다. 즉, 붓을 댄 곳

과 뗀 곳, 그리고 돌린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여 활짝 핀 연꽃의 아름다움을 근사하게 표현하였다는 칭송이 된다.
그런데 ‘圓’은 불가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어이다. 圓滿, 圓通, 圓覺, 圓融 등에서 알 수 있듯이 ‘圓’

은 같고 다름, 이것과 저것 등 상대되는 모든 차별을 넘어 모든 것이 空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 경지를 의미한다. 

등불은 속세사람들처럼 가물거리는데, 그것을 둘러싼 바깥의 연꽃,즉 그림을 그린 초의 선사의 정신은 圓覺의 경

지에 올랐다는 뜻이다.
한편 ‘燈火’는 심지 끝이 타서 맺힌 불똥을 가리킨다. 등잔불을 계속 켜두면 심지가 시커멓게 타버려 그을음이 나

고 불꽃이 약해진다. 그러므로 심지의 탄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어 불꽃이 다시 밝아지게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더 타도록 그냥 두었더니, 시커멓게 된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심지 아래쪽으로 불이 이

어 붙어서 등잔불이 다시 밝아졌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하늘이 만든 듯 진짜 연꽃 같은 연꽃 그림이 다시 환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46) 이완우, ?서예감상법?, 대원사, 1999, 38~39면.


景을 통한 情의 표출 방식에 따른 漢詩 해석 169


연등의 모습을 묘사한 ‘火中蓮’은 비록 번뇌에 시달리고 있어도 스스로 꾸준히 노력만 한다면 마침내 해탈하여 

清涼한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47)  가위로 심지를 자르는 것은 人爲이니, 타인의 가르침과 도

움만으로는 결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깨달음은 결국 스스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 모두가 태어날 때

부터 佛性을 지니고 있으니, 그 본래의 마음을 찾아가다 보면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가의 믿음과도 상통

한다. 즉, 초의 선사는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 억지로 가르친다든가 이끈다든가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저 스

스로 佛性을 찾아 자신만의 불꽃을 피우게끔 한다는 뜻이니, 초의야말로 진정한 스님이라는 칭찬의 말을 건넨 것

이다.


5. 결론


본고는 과거 전통적인 시론에서 중요한 개념 용어로 사용되었던 情과 景을 이용하여 한시 작품의 의미와 미감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목적아래 작성되었다. 본문에서 진행된 해석이 유일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

지만, 이제는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한시 작품의 현재적 의의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바, 본고에서의 작업이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시도로서 작은 의의나마 있기를 바란다.


한시를 해석할 때 과거의 시론에서 해석의 방법을 찾는 경우가 많다. 先人의 의견에 기대어 우수한 작품을 고르

거나 평가의 기준을 삼기도 한다.
당대나 후대의 평가를 참고하여 작가의 개성과 작품의 특징을 검증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통용되어 왔던 한시 연

구의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시학과 시론이 오늘날의 학문 체계나 방법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과거의 시론은 대부분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개념 간의상호관계를 논리적으로 해명하기 힘들다.

이들 고전 시론의 장점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보다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47) ?維摩經·佛道品?: “火中生蓮花, 是可謂希有. 在欲而行禪, 稀有亦如是.”
170 국문학연구 제28호




[출처 :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