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中 2. 樞府金富儀
樞府金富儀, 侍中文烈公弟也, 竝以文章功業顯。嘗杖節中朝, 眞宗愛其才, 殊以禮遇之。忽有二客到館, 小飮, 令曰,
『天上有三百六十度, 星有牽牛。』
次曰,
『碁中有三百六十舍, 有馬無牛。』
公卽曰,
『年中有三百六十日, 立春日用土牛。』
合座皆服其敏。
嘗侍宴方醉, 皇帝以長句六韻示之, 遣中人敦促令和進。公略不構思, 援筆立就, 其略云,
沈香亭畔聞新曲,
立禮門前賀大平。
無路小酬天地德,
唯將醉筆謝生成。
帝嗟賞不已, 賜與尤厚。及徽宗末年, 金人陷汴京, 虜二帝北旋。康王襲寶位, 遣使人楊應誠來聘, 請假途往問二帝行在所。而朝議牢執不許。命公作表以答之, 『天地之仁, 各令萬物以咸遂, 帝王之德, 不責衆人之所難。』
又云, 『彼衆我寡, 旣難可以與爭, 脣亡齒寒, 又焉知其非福。』 又云, 『率諸侯而尊周王, 非敢期齊晉之古事, 任厥土而作禹貢, 庶勿失靑徐之舊儀。』
文烈公先入中書, 以故在樞府十餘年。性嗜讀書, 開別室, 常與士大夫討論文章, 雖妻妾稀見其面。及寢疾, 有朝士夢馬糞自雲間而下, 問云, “今日金樞密賓天衣.” 世以謂天星之精。富貴家兒, 非生得而性好, 則罕有工文章者。金樞密闡有蕭氏之八葉之貴, 棄紈綺舊習, 竟日危坐看書。不好爲詞章, 及其有所作, 則必滌筆於氷甌中, 然後爲之。故篇什未得多傳於世, 而所傳者, 必警策也。如乘軺歷鹽州客舍題一絶云,
鴦衾無夢夜厭厭,
凉月多情照畵簷,
喚作鹽州眞大誤,
一州風物摠無鹽。
(酒)令 :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실 때 서로 술을 마시는 방식을 정하는 약속. 글 놀이에서는 한 사람이 한 마디 하면, 다음 사람은 對句로 화답해야 함.
土牛 : 강릉 지역에서는 관아에서 토우(土牛)를 만들어 가농작(假農作)을 하는 입춘제를 지냈다. 강릉 향토지인 『증수임영지(增修 臨瀛誌)』에 의하면
“고을 풍속으로 매년 동지에 오곡 씨앗을 항아리에 담아 흙집에 두고 부풀게 한다. 다음 해 입춘날에 헌관을 뽑아 봄을 맞이하는 예를 올리고 흙으
로 만든 소를 몰고 밭을 가는 시범을 한다.
闡 : 열 천. 열다. 널리 퍼지게 하다. 넓히다. 분명하다. 드러남. 밝히다. 크게하다. 느슨하게 하다. 늦춤. 관여하다. 땅이름.
紈 : 흰깁 환. 흰 깁. 겹치다. 맺다. 綺 : 비단 기. 비단. 무늬가 놓인 비단. 무늬, 광택. 아름답다. 甌 : 사발 구. 사발, 중발, 주발,
警策 : 승려들이 좌선할 때 졸음을 물리치고 산만한 주의력을 깨우치는 데 사용하는 막대기. 軺 : 수레 초. 수레. 운구하는 수레. 영구차.
無鹽 : 地名. 鍾離春은 人名. 전국시대 제(齊)나라 무염(無鹽) 지방의 여자로 너무나 못생겨 40세가 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녀를 추녀
(醜女)의 대명사로 일컫는다. <劉向 列女傳/辨通傳/齊鍾離春> 鹽州 : 황해도 연안군의 고려시대 이름.
摠 : 모두 총.
추부 김부의는 시중 문열공 김부식의 아우로 두 사람이 나란히 문장으로 업적이 두드러졌다. 일찍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진종이 그 재주를 사랑하여 특별히 예로써 대하였다. 갑자기 객 두 사람이 객관에 찾아와 조촐하게 술상을 마련하고는 주령(酒令)을 걸었다.
하늘에는 삼백육십도가 있고, 별은 견우성이 있네.
다음에는,
바둑에는 삼백육십집이 있고, 말은 있는데 소가 없네.
공이 바로 이어 받았다.
1년은 삼백육십일인데 입춘일에는 토우를 사용하네.
자리를 함께 했던 사람 모두가 그 기민함에 탄복하였다.
일찍이 황제를 모신 연회에서 막 취기가 오르자 황제께서 장구 육운시를 보여주시며 중인을 보내 화답시를 지어 올리라고 독촉하셨다. 공이 대략 생각을 다듬지도 않고 붓을 잡아 썼는데 그 대강은 이렇다.
침향정 가에서 새로운 곡을 듣고
입례문 앞에서 태평성대를 경하드리네.
천지의 덕을 조금이라도 갚을 길이 없어
오직 취중에 붓을 놀려 생성에 감사드릴뿐이네.
황제께서 탄식하시며 칭찬을 그치지 않으시고 매우 후히 상을 내리셨다.
송나라 휘종 말년에 이르러 금나라 사람들이 변경을 함락하고 두 황제를 포로로 잡아 북으로 돌아갔다. 강왕이 보위를 물려받았는데 양응성을 사신으로 예물을 갖추어 보내 두 황제가 머무는 곳에 가서 문안을 드릴 수 있도록 가는 길을 빌려달라고 청해 왔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논의 끝에 불허할 것을 강하게 고집하였다.
황제께서 공에게 표문을 지어 답하라 명하시니,
'천지의 인(仁)은 각 만물이 모두 이루게 하는 것이고 제왕의 덕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바를 책하지 않는 것이다.'라 하고, 또,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이미 서로 다투기 어려우며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고 또 그것이 복이 아님을 어찌 알겠습니까.'하고, 또,
'제후들을 인솔하여 주왕을 받드는 것은, 감히 제나라와 진나라의 고사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며, 그 땅을 맡겨 조공을 바치는 것은 청주와 서주의 옛 정의(情儀)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라 하였다.
문열공이 먼저 중서성에 들어갔기 때문에 김부의는 추부에서 10여년을 보냈다. 성품이 독서를 좋아하고 별실을 열어 항상 사대부들과 문장을 토론하여 아내와 첩이라 할지라도 그의 얼굴 보기가 드물었다. 병이 들었을 때 한 관리가 꿈을 꾸었는데 말똥이 구름사이에서 떨어져, 이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오늘 김 추밀이 천의를 입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세간에서는 하늘에 있는 별의 정령이라 하였다.
부유하고 귀한 집의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품성이 좋은 것이 아니면 문장에 재주가 있는 것도 드문법이다. 김추밀은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집안의 출신이지만 좋은 환경과 구습을 버리고 하루종일 정좌하여 책을 읽었다. 문장을 짓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문장을 지을 때에는 반드시 얼음담는 사발에 붓을 씻은 후에야 붓을 사용해 글을 지었다.
그러므로 그가 지은 글이 세상에 많이 전해질 수는 없었지만 전해지는 것은 반드시 깨우침을 주는 것이었다.
수레를 타고 염주의 객사를 두루 돌아본 것처럼 한 절구를 지었다.
원앙금침에 꿈도 없이 밤은 편안하고 고요한데,
싸늘한 달빛 다정히도 아름다운 처마 비추네.
염주라 이름지어 부른 것은 큰 잘못이지만,
한 고을의 풍물이 모두 무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