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中 8. 眞樂公資玄
眞樂公資玄, 起自相門, 雖寓跡簪組, 常有紫霞逸想。少遊金閨, 從術士殷元忠, 密訪溪山勝地可以卜隱。
殷公云,「楊子江上有靑山一曲, 眞避世之境。」
聞之常掛於心。年二十七仕至大樂暑令, 忽致叩盆之患, 拂衣長往, 入淸平山葺文殊院以居之。尤嗜禪說, 學者至則輒與之入幽室, 竟日危坐忘言, 時時擧古德宗旨商論。由是心法流布於海東, 惠照大鑑兩國師, 皆遊其門。乃於洞中幽絶處作息庵, 團圓如鵠卵, 只得盤兩膝, 而黙坐其中數日猶不出。
其同年友郭璵, 持節出關東見訪, 贈詩云,
淸平山水似湘濱,
邂逅相逢見故人。
三十年前同得第,
一千里外各捷身。
浮雲入洞曾無事,
明月當溪不染塵。
目擊無言良久處,
淡然相照舊精神。
公次韶云,
暖逼溪山暗換春,
忽紆仙杖訪幽人。
夷齊遁世惟全性,
稷契勤邦不爲身。
奉詔此時鏘玉佩,
掛冠何日拂衣塵。
何當此地同棲隱,
養得從來不死神。
睿王渴仰眞風, 累詔徵之, 對使者曰, 「臣始出都門, 有不復踐京華之誓, 不敢奉詔。」
遂附表云,
「唐虞之代, 堯舜之臣, 虁龍陳廓廟之謨, 巢許抗山林之志。以鳥養鳥, 庶無鍾鼔之憂, 觀魚知魚, 俾遂江湖之性。」
上知其不可屈致, 特幸南都召見, 問以修身養性之要。
對曰, 「古人云, 『養性莫善於寡欲。』 惟陛下留意焉。」
上嗟賞不已曰, 「言可聞, 而道不可傳, 身可見, 而志不可屈, 眞潁陽之亞流也。」 賜茶藥還山。
及卒諡眞樂公。其餘事迹, 見金相國重刱記。
☞ 叩盆之患
莊子妻死,惠子弔之,莊子則方箕踞鼓盆而歌。惠子曰:「與人居長子,老身死,不哭亦足矣,又鼓盆而歌,不亦甚乎!」莊子曰:「不然。是其始死也,我獨何能無概然!察其始而本無生,非徒無生也,而本無形,非徒無形也,而本無氣。雜乎芒芴之間,變而有氣,氣變而有形,形變而有生,今又變而之死,是相與為春秋冬夏四時行也。人且偃然寢於巨室,而我噭噭然隨而哭之,自以為不通乎命,故止也。」<莊子 外篇:第18. 至樂>
簪組 : 비녀와 끈. 비녀는 관이 벗겨지지 않도록 관의 끈을 꿰어 머리에 꽂는 것이고, 끈은 인장에 매는 끈을 말한다. 즉 관직생활을 의미.
紫霞 : 전설에서, 신선이 사는 곳에 서리는 노을이라는 뜻으로, 신선이 사는 궁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金閨 : 金馬門의 別稱. 학사들이 저서의 하달을 기다리던 곳. 한림원을 말하기도 한다.
古德 : 예전에 살았던, 덕이 높은 승려. 絶處 : 막다른 곳. 絶處逢生 : 막다른 곳에서 살 길이 생긴다.
持節 : 출사[出師] 또는 지방관리로 나갈 때 지위가 가장 높은 자는 사지절(師持節)이라 하여 여러 주의 군사를 감독할 수 있었고, 그 다음을
지절(持節) 혹은 가절(假節)이라 불렀음. 절(節)은 황제가 내리는 권력의 징표임.
湘濱 : 楚나라 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난 뒤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湘江의 물가를 말한다. 雷雨到湘濱 : 雷雨는 周易 해괘(解卦)의 “하늘과 땅
의 기운이 화통하면서 뇌우 현상이 일어난다[天地解而雷雨作]”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임금의 사면(赦免)을 받는 것을 뜻한다.
夷霽 : 伯夷와 叔齊. 稷契 : 요순시대의 名臣인 后稷과 설(契).
掛冠 : 掛冠而去. 관직에 있는 사람이 관을 벗어 걸어 놓다. 벼슬을 그만두는 것을 비유하는 말. 後漢의 봉맹(逢萌)은 집안이 빈한하여 호구
지책으로 정장(亭長)을 했다. 그러다가 뜻한 바가 있어 그만두고 장안으로 가 학문을 연마한 결과 춘추에 정통한 학자가 되었다.
虁龍 : 以蘷爲典樂, 敎稚子, ....... 龍, 朕畏忌讒說殄僞, 振驚朕衆, 命汝爲納言, 夙夜出入朕命, 惟信.<史記 五帝本記 第一.>
巢許 : 巢父와 許由. 모두 중국 古代의 高士. <莊子 逍遙遊>
許由字武中陽城槐裏人也. 爲人據義履方, 邪席不坐, 邪膳不食, 後隱於沛澤之中. 堯讓天下於許由曰, ............. 不受而逃去. 齧缺遇許
由曰, 「子將奚之?」 曰, 「將逃堯。」 曰, 「奚謂邪?」 曰, 「夫堯知賢人之利天下也, 而不知其賊天下也. 夫唯外乎賢者知之矣!」
由於是遁耕於中嶽潁水之陽, 箕山之下, 終身無經天下色。堯又召爲九州長, 由不欲聞之, 洗耳於潁水濱, 時其友巢父牽犢欲飮之, 見許
由洗耳, 問其故, 對曰, 「堯欲召我爲九州長, 惡聞其聲, 是故洗耳。」 巢父曰, 「子若處高岸深谷, 人道不通, 誰能見子, 子故浮遊欲聞
求其名譽, 汚吾犢口。」 牽犢上流飮之。 <皇甫謐(後漢, 215~382)/ 高士傳. 許由傳>
以鳥養鳥 : 昔者有鳥止於魯郊, 魯君說之, 爲具太牢以饗之, 奏九韶以樂之. 鳥乃始憂悲眩視, 不敢飮食. 此之謂以己養養鳥也. 若夫以鳥養養
鳥者, 宜棲之深林, 浮之江湖, 食之以委蛇, 則安平陸而已矣. <莊子 外篇 達生 13>
鍾鼔之憂 : 海鳥가 魯城門에 앉아, 魯君이 太牢의 음식을 해조 앞에 늘어놓고, 鐘鼓를 울리니 새가 근심이 되어 먹지 못했다 함.
진락공 이자현은 재상의 가문에서 태어나, 비록 관직에 머물러 있다 할지라도 항상 신선의 세계에서 은사로 살아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젊었을 때 한림원에서 근무하였는데 술사 은원충을 따라 은밀하게 계곡과 산을 다니며 은거할만한 경치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은공이 말했다. "양자강 상류의 청산에 한 마을이 있는데 참으로 세상을 피해 살만한 곳입니다."
그 말을 듣고 항상 마음에 간직하였다.
27세에 벼슬이 대악서령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부인상을 당하자 옷을 떨치고 멀리 떠나 청평산에 들어가 문수원을 수리하고 그 곳에서 살았다. 선가의 가르침에 더욱 탐닉하여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오면 그때마다 그 사람과 함께 그윽한 방에 들어가 정좌하고 말을 하지 않았으며, 때때로 덕이 높은 옛 스님에게 교리를 묻고 토론도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해동에 심법이 널리 퍼졌으며, 혜조, 대감 두 국사가 모두 그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골짜기 속 으슥하고 막다른 곳에 식암을 지었는데 고니 알처럼 둥글고 겨우 두 무릎을 지탱할 뿐이었으나 그 안에 앉아 묵상하며 며칠동안 나오지 않았다.
과거에 함께 급제한 벗 곽여가 왕명을 받아 관동으로 부임해 나가다가 그를 방문하고는 시를 지어 주었다.
청평산의 물은 상수의 물가같아
오랫동안 헤어졌던 옛 친구를 만났도다.
삼십년전 함께 등과하였으나
천리 밖에서 따로 지냈네.
뜬구름 골짜기에 들어와도 무사했고
밝은 달이 시내에 비쳐도 속세에 물들지 않았도다.
만나서 말이 없어도 오래 머물면서,
담담히 옛 정신을 서로 비춰 주네.
공이 차운하여 이었다.
따스함이 산계곡에 밀려와 슬며시 봄으로 바뀌는데
홀연히 지팡이 드리우고 은자를 찾아왔도다.
백이숙제가 속세를 떠난 것은 오로지 천성을 보전하려 함이고,
후직과 설이 나라일에 힘쓴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조칙을 받든 이 때 옥패소리 쟁쟁하지만,
언제 벼슬을 떠나 속세를 떠나려는가.
어찌하면 이곳에서 함께 숨어 살면서,
종래의 죽지 않는 정신을 기를 수 있을까.
예종께서 공의 참된 풍모를 존경하여 누차 조서를 내려 불렀으나 사신에게 말했다.
"신이 애초에 도성문을 나서면서 다시는 도성에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맹세하였던 바, 감히 조서를 받들지 못합니다."
나아가 표문에 첨부하여 말했다.
"당우(요순)시대 요순의 신하 기와 용은 나라의 계책을 말했으며, 소보와 허유는 산림에 은거하여 그들의 뜻을 지켰습니다. 새를 기르려면 새답게 길러야 하니 부디 새에게 종과 북소리를 듣게 하지 마시고, 물고기를 보고 물고기를 알듯 강호를 좋아하는 천성을 따르게 하소서."
주상께서 그의 뜻을 굽힐 수 없음을 아시고 특별히 남도로 행차하시어 그를 불러 만나시고는 수신과 양성의 요체를 물으셨다.
이자현이 대답하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성을 기르는 데에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오로지 폐하께서 유념하십시오."
주상께서는 감탄하시며 칭찬을 금치 못하시며 말씀하셨다.
"말은 들을 수 있으나 도는 전할 수 없고, 몸은 볼 수 있으나 뜻은 굽힐게 할 수 없으니 진실로 영수 북쪽의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隱者)이로다."
그리고 차와 약을 하사하시니 산으로 돌아갔다.
그가 세상을 떠나니 진락공이라 시호를 내리셨다. 그 나머지 발자취는 상국 김부의의 중창기에서 보인다.
溪居 - 柳宗元
久爲簪組累, [구위잠조루] 오랜 세월을 관직에 묶였다가
幸此南夷謫。[행차남이적] 다행히도 남방으로 좌천되었도다.
閑依農圃鄰, [한의농포린] 한적하여 농사꾼과 이웃하고,
偶似山林客。[우사산림객] 뜻밖에도 산림의 처사 되었네.
曉耕翻露草, [효경번로초] 새벽에는 밭갈아 이슬맞은 풀 뽑고
夜榜響溪石。[야방향계석] 밤엔 노젓는 소리 시냇가 바위위에 퍼진다.
來往不逢人, [내왕불봉인] 오가는 사람 만나지 않고
長歌楚天碧。[장가초천벽] 크게 노래부르니 초나라 하늘은 푸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