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古文學/破閑集

卷中 9. 郭處士璵

柳川 2019. 5. 9. 17:38

郭處士璵, 睿王在春宮時寮佐也。及上踐阼, 掛冠長往, 詔賜城東若頭山一峯, 開別墅名曰東山齋。常以烏巾鶴氅出入宮掖間, 時人謂之金門羽客。嘗於內宴, 上賜戴花一枝, 卽令進詩云, 

 

誰剪紅羅作牧丹, 

芳心未展怯春寒。 

六宮粉黛皆相道, 

何事宮花上道冠。 

 

又隨駕 長源亭, 上登樓晩眺。有野叟騎牛傍溪而歸者, 卽令口占, 

 

太平容貌恣騎牛, 

半濕殘霏過壟頭。 

知有水邊家近在, 

從他落日傍溪流。 

 

豈惟仙風道韻, 足以傾動人主意。至於文章亦勁敏絶倫, 上眷顧尤異, 非朝臣所及。上嘗從北門出, 率黃門數十人, 自稱宗室列侯, 訪東山齋, 處士適留城中不返。上徘徊數四, 製「何處難忘酒」一篇, 以宸翰題壁而還。

時皆以謂, 「漢帝白雲之詞, 唐皇舞鳳之筆, 實兼而有之, 古今所無也。」 

詞曰,

 

何處難忘酒, 尋眞不遇廻。 

書窓明返照, 玉氈掩殘灰。 

方丈無人守, 仙扉盡日開 

園鶯啼老樹, 庭鸛睡蒼笞 

道味誰同話, 先生去不來 

深思生感慨, 回首重徘徊 

把筆留題壁, 攀欄懶下臺 

助吟多態度, 觸處絶塵埃 

暑氣蠲林下, 薰風入殿隈 

此時無一盞, 煩慮滌何哉。 

 

公應製, 

 

何處難忘酒, 虛經寶輦廻。 

朱門追小宴, 丹竈落寒灰 

鄕飮通宵罷, 天門待曉開 

仗還蓬鳥徑, 屐惹洛城笞 

樹下靑童語, 雲間玉帝來 

鼈宮多寂寞, 龍馭久徘徊 

有意仍抽筆, 無人獨上臺 

未能瞻日月, 却恨向塵埃 

搔首立階下, 含愁倚石隈 

此時無一盞, 豈慰寸心哉?

 

 

春宮 : 예전에, ‘황태자’, ‘왕세자’을 달리 이르던 말.    墅 : 농막 서. 농막. 별장. 별관.  들, 교외.   

氅 : 새털 창. 새털. 깃털을 봉제한 옷. 旗에 장식으로 단 털, 또는 그것을 단 기.   

眺 : 바라볼 조. 바라보다. 살피다. 두리번거리다. 빠르다. 피하다.    口占 : 바로 그 자리에서 시를 지어 읊음. 즉석에서 지어 읊다.

壟 : 언덕 롱. 언덕, 받두둑. 무덤. 

何處難忘酒 : 백거이의 7수로 된 시. 우리나라에서는 백거이의 시를 본따 고려시대부터 「何處難忘酒」란 시가 많이 지어졌다. 

☞玉氈掩殘灰 : 전후를 살피건데 玉은 남의 것에 대한 美稱이며, 氈은 단약을 다릴 때 앉는 깔개인 듯 하다. 그러면 남은 재에 대한 의문

                   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鸛 : 황새 관.  황새. 구관조. 떼까마귀.       丹竈 : 도사가 단약을 만드는 부엌

蠲 : 밝을 견. 밝다. 밝히다. 명백하다. 깨끗하다. 맑음. 덜어내다. 제거함. 면제하다. 빠르다. 병이 낫다. 노래기.

朱門 :  왕공(王公) 귀족의 대문으로, 고관대작의 집을 말한다. 옛날 왕공 귀족은 그 존귀함을 드러내기 위해 대문을 붉게 칠했다 함.

屐 : 나막신 극. 나막신.     靑童 : 仙童. 신선의 시중드는 동자.

 

 

처사 곽여는 예종께서 동궁에 계실 때 요좌(동궁에 속한 관리)였다. 예종께서 왕위에 오르시자 관직을 사직하고 멀리 떠났었는데, 조서를 내리시어 도성 동쪽에 있는 약두산 봉우리 하나를 하사하셨는데 그곳에 따로 별장을 짓고 동산재라 하였다.  항상 검은 두건에 학창의를 입고 궁궐을 출입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금문우객이라 하였다.  

일찍이 대궐 연회에서 왕께서 머리에 꽂는 꽃 한가지를 그에게 내리시고는 바로 시를 지어올리라는 명을 내리시어 시를 지어 올렸다. 

 

누가 붉은 비단을 잘라 모란꽃을 만들었나,

애틋한 마음 펼치지 못하니 봄추위에 겁먹은 것인가.

육궁의 미녀들 모두 말하네,

무슨 일로 대궐의 꽃이 도사의 머리위에 올랐는가. 

 

또 어가를 따라 장원정에 가서 누각에 올라 저녁놀을 바라보는데 촌로가 냇가에서 소를 타고 집에 돌아간다, 왕이 바로 시를 지으라 하시니 그 자리에서 읊었다.

 

태평한 모습으로 분방하게 소를 타고,

촉촉한 가랑비 속 언덕을 넘어가네.

물가 가까이에 집이 있는 줄 알고도,

지는 해 좇아 냇가를 떠도네.

 

어찌 신선의 풍도와 도인의 운치만으로 군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문장에 이르러서도 예리하고 기민함이 뛰어나 주상의 돌보심이 매우 특이하여 조정대신이 미칠바가 아니었다. 

주상께서 일찍이 북문에서 나와 환관 수십명을 데리고 스스로 종실 열후라 칭하고 동산재를 방문하셨으나 처사가 도성안에 나가 머물며 돌아오지 않았다. 주상께서 서너번 배회하시다가 "하처난망주"제하의 시 한편을 지으셔서 친필로 벽에 써놓고 돌아오셨다.

당시에 모두 말하였다.

"한나라 황제의 백운지사와 당나라 황제의 무봉지필을 실제로 겸비하시니 고금에 없는 일이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어디에 있어도 술을 잊기가 어렵구나.

진인을 찾아왔다가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

서재의 창에 햇빛 비치고,

모전(玉氈)이 남은 재를 가리는구나. 

방장에는 지키는 사람 없고,

신선의 사립문은 온 종일 열려있다.

동산의 꾀꼬리 고목에서 울고,

뜰의 황새는 푸른 이끼위에서 졸고 있네.

도의 의미를 누구와 함께 이야기할거나.

선생은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구나.

깊이 생각하니 감개가 일어,

머리를 돌려 거듭 서성거리네.

붓 잡아 벽에 글 남겼으나,

난간에 기대어 대를 내려오지 못하네.

읊조리며 이리저리 다녀보니,

이르는 곳마다 속세를 벗어났네.

더운 기운 숲에서는 덜하고,

훈풍은 전각 모퉁이로 들어오네. 

이 때 한 잔 하지 않으면,

번거로운 생각 어떻게 씻어버리나. 

 

공이 위 시에 응하여 시를 지었다.

 

어디에 있어도 술을 잊기가 어렵구나.

어가가 이르렀다가 헛되이 돌아갔네.

주문의 작은 연회에 따라 갔다가,

단약 짓는 부엌은 재가 차갑게 식었네.

마을에서 밤새 술을 마시다가,

새벽 성문 열리기를 기다렸도다.

지팡이 짚고 산길로 돌아왔는데,

나막신에 낙성의 이끼가 묻어왔네. 

나무아래에서 동자가 말하기를,

구름사이로 옥황상제께서 오셨다네.

별궁은 때마침 조용하고 쓸쓸해, 

어가가 오랫동안 서성였다네.

뜻이 있어 붓 뽑아 시 한수 쓰시고,

아무도 없는 누대에 홀로 오르셨다네.

일월을 보지 못했으니,

전날 속세에 있었던 일이 한스럽도다.

머리 긁적이며 계단아래 서 있다가,

수심에 차 돌 모서리에 기댄다.

이 때 술 한 잔 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달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