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川 2019. 5. 21. 20:41

                                       枕中記

 

                                                                                                       沈旣濟(唐 ; 750? ~ 800?)

 

開元七年,道士有呂翁者,得神仙術,行邯鄲道中,息邸舍,攝帽弛帶,隱囊而坐。俄見旅中少年,乃盧生也。衣短褐,乘靑駒,將適於田,亦止於邸中,與翁共席而坐,言笑殊暢。久之,盧生顧其衣裝敝褻,乃長歎息曰:「大丈夫生世不諧、困如是也!」

翁曰:「觀子形體,無苦無恙,談諧方適,而歎其困者,何也?」

生曰:「吾此苟生耳,何適之謂?」

翁曰:「此不謂適,而何謂適。」

答曰:「士之生世,當建功樹名,出將入相,列鼎而食,選聲而聽。使族益昌而家益肥,然後可以言適乎。吾嘗志于學,富於游藝,自惟當年,靑紫可拾。今已適壯,猶勤畎畝,非困而何。」

言訖而目昏思寐。

 

邸 : 집 저. 집. 저택. 여관. 곳집. 창고. 묵다. 유숙함. 이르다. 닿다. 돌아가다. 근본. 밑둥. 왕족. 홀에 다는 구슬. 병풍. 

隱囊 : 靠枕. 자루모양으로 된 몸을 기대는 도구.    隱 : 기대다.  褻 : 더러울 설. 

靑紫 : 공경과 같은 높은 벼슬. 漢代에 공후의 印綬가 자색, 九卿의 인수가 청색인데서 나옴.

畎 : 밭도랑 견. 이랑의 도랑은 畎, 이랑의 두둑은 畝.

 

 

 

당나라 현종 개원 7년도사 여옹()은 신선술을 얻어, 한단으로 가는 도중에 주막에서 쉬었다모자를 벗고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고  안석에 기대어 앉았다잠시 후 여행 중인 소년을 만났는데 곧 노생이었다짧은 갈옷을 입고 푸른 망아지를 타고 들에 가려다가 그 집에 들러 여옹과 함게 앉았다노생은 웃으면서 말하는데 말이 매우 유창했다한참 후 노생은 자신의 허름한 옷차림을 보고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서 뜻을 이루지 못하니 이처럼 힘드는군요 !"

여옹이 말했다.

"자네 모습을 보니 괴로움이나 근심이 없어 보이는데 즐겁게 얘기하다가갑자기 가난을 탓하다니 어찌된 일인가?"

노생이 물었다. "저는 이렇게 구차하게 살고 있을 뿐인데  어찌 즐겁다 하십니까?"

여옹이 말했다. "이것을 즐겁지 않다고 한다면 무엇이 즐겁다 하겠는가?"

노생이 다시 물었다.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마땅히 공명을 세워 장수로 출전하고 재상에 올라 풍부한 음식을 누리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종족이 더욱 번창하고 집안이 더욱 부유해진 연후에 즐거움을 말할 수 있겠지요저는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고 학식이 풍부해져 자기 당년에 고관대작을 얻으려 했습니다지금 이미 장년인데 아직도 들에 가서 농사를 지어야 하니 곤궁한 게 아니면 무엇입니까?"

말을 마치자 눈이 어두워지며 잠들려 했다.

 

 

 

時主人方蒸黍,翁乃探囊中枕以授之曰:「子枕吾枕,當令子榮適如志。」

其枕靑瓷,而竅其兩端,生俛首就之,見其竅漸大,明朗。乃舉身而入,遂至其家。數月,娶淸河崔氏女。女容甚麗,生資愈厚。生大悅,由是衣裝服馭,日益鮮盛。

 

竅 : 구멍 규. 구멍. 구멍을 뚫다. 통하다.  俛 : 힘쓸 면/숙일 부. 힘쓰다. 애씀. 숙이다. [부]숙이다. 고개를 숙임.

 

 

 

그때 주막 주인은 막 조밥을 짓고 있었는데 여옹이 자루 속에서 베개를 찾아 노생에게 주면서 말했다.

"자네 이 베개를 베게자네 뜻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게 할 테니."

그 베개는 청자였는데 양 끝에 구멍이 있었다노생은 머리를 뉘여 취침했는데 그 구멍이 점점 커지더니 환해졌다.

이에 몸을 일으켜 그 구멍 속으로 들어가 드디어 한 집에 이르렀다몇 달 뒤에 그는 청하 최씨의 딸에게 장가들었다.여인은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고 재산도 풍요로웠다.

노생은 크게 기뻐하였다이로 말미암아 의복장속(衣服裝束)과 거마(車馬)도 날이 갈수록 더욱 신선하고 융성했다.

 

 

 

明年,舉進士,登第;釋褐祕校;應制,轉渭南尉。俄遷監察御史;轉起居舍人,制誥。三載,出典同州,遷陜牧。生性好土功,自陜西鑿河八十里,以濟不通。邦人利之,刻石紀德。移節汴州,領河南道

採訪使,徴爲京兆尹。是歳,神武皇帝方事戎狄,恢宏土宇。

 

祕 : 숨길 비/심오할 필. . 숨기다. 알리지 아니함. 神. 헤아리기 어렵다. [필]심오하다. 헤아리기 어렵다.

起居舍人 : 사관[史官]으로, 천자의 언행과 법도를 기록하는 직책을 맡은 관리.

誥 : 알릴 고, 알리다. 가르치다. 훈계하다. 다스리다. 직첩. 사령. 採訪使 : 지방의 여러 가지 실정을 조사하는 일을 맡은 임시 벼슬.

恢 : 넓을 회. 넓다. 넓히다. 갖추다. 갖추어짐. 돌이키다. 

宏 : 클 굉. 크다. 넓다. 머금다. 

 

 

 

이듬해 진사시에 응시하여 급제했다그는 갈옷(평민복장)을 벗고 비서성 교서랑이 되고, 황제의 뜻을 받들어 위남에 이르러 현위가 되었다얼마 후에 감찰어사에 승진하고 기거사인(起居舍人), 지제(知制)의 함위(銜位)에 전보되었다.

3년이 지난 뒤에 전주에 이르러 지방장관이 되었고, 협으로 자리를 옮겨 목을 맡았다.

그는 성품이 수리(水利건축을 좋아하여 협서로부터 하천 80리를 뚫어 교통문제를 해결했다협서 백성들이 편리함에 감사하여 돌에다 그의 공덕을 새겼다.

변주의 지방장관으로 벼슬을 옮겨 하남도에 이르러 채방사(採訪使)를 맡았고 황제의 명으로 경조윤이 되었다이 해에 당 현종이 융적을 다스려 영토를 확장했다.

 

 

 

會吐蕃悉抹邏及燭龍莽布支攻陷瓜沙,而節度使 王君毚新被殺,河湟震動。帝思將帥之才,遂除生御史中丞,河西道節度。大破戎虜,斬首七千級,開地九百里,築三大城,以遮要害。邊人立石於居延山以頌之。歸朝册勳,恩禮極盛。轉吏部侍郎,遷戸部尚書兼御史大夫。

時望清重,羣情翕習,大爲時宰所忌。以飛語中之,貶爲端州刺史。三年,徴爲常侍。未幾,同中書門下平章事。

 

毚 : 토끼 참. 토끼좁은 새로 비집고 들어가는 토끼또는약은 토끼. 탐욕하다기회를   탐욕을 부림. 조금.

 

 

 

마침 토번의 실말라와 촉룡망포지가 과사를 공격하여 함락하자 절도사군참이 피살되고 황하와 황수의 형세가 불안했다황제는 장수의 재능을 생각해서 드디어 노생에게 어사중승(御史中丞)을 주어 하서절도사를 제수했다그는 오랑캐를 대파하고 7000급을 참수하고 영토 9백리를 개척하였으며 세 큰 성을 축조하고 요해지를 차단했다변경의 백성들이 거연산에 비를 세워 공덕을 칭송했다.

조정에 돌아오니 공훈에 걸맞는 작위를 책봉하여 은혜와 의례가 지극히 성대했다관직은 이부시랑에 전보되었다가 호부상서겸어사대부로 승진했다.

한 때는 명망이 청고(清高)하고 존중 받았으나 대가들에게 꺼림을 받는 바 되었다유언비어로 중상을 입어 단주자사로 좌천되었다. 

3년 뒤 왕명으로 상시가 되었다가 얼마 후에는 다시 재상이 되었다.

 

 

 

與蕭中令嵩、裴侍中光庭,同執大政十餘年,嘉謨密命,一日三接,獻替啓沃、號爲賢相。 同列害之,復誣與邊將交結,所圖不軌。下制獄。府吏引從至其門而急收之。

 

獻替 : 임금을 보좌하여 착한 일을 하도록 권하고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간함.  啓沃 : 충성스러운 말을 임금께 아룀. 

 

 

 

재상 숙숭시중 배광정 등과 조정의 대권을 장악하여 10여 년 동안 좋은 계책을 논의하고 밀명을 수행했는데 하루에 세 번 만나기도 하고 황제의 아름다운 뜻 다음으로 양책을 올려 노생을 사람들이 현상이라 일컬었다동령의 관료들이 그를 시기하여 또 변방의 장수들과 교분을 맺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을 도모한다고 무고했다황제는 하옥을 명했다경조부의 관리들이 시종들을 이끌고 노생 집에 와서 그를 급히 체포하여 수감했다.

 

 

 

生惶駭不測,謂妻子曰:「吾家山東,有良田五頃,足以禦寒餒。何苦求祿?而今及此,思衣短褐,乘靑駒,行邯鄲道中,不可得也。」引刃自刎。其妻救之,獲免。其罹者皆死,獨生爲中官保之,減罪死,投驩州。數年,帝知冤,復追爲中書令,封燕國公,恩旨殊異。

 

餒 : 주릴 뇌.주리다. 굶주림. 굶기다. 썩다.

 

 

노생은 놀라고 두려워자신의 목숨을 예측할 수 없어 아내에게 말했다.

「내 집은 본래 산동 땅이요좋은 밭 몇 마지기가 있어 추위와 굶주림은 면할 수 있었소어째서 벼슬을 하려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구료차라리 다시 짧은 갈옷을 입고 푸른 망아지를 타고 한단의 길을 가고 싶지만이제는 그럴 수도 없게 되었구려.

칼을 빼어 자기 목을 찌르려 했으나 그의 아내가 그를 구하여 죽음을 면했다그와 연관된 사람들은 모두 죽었지만 홀로 노생만이 환관들의 구정(舊情)을 입어 성명을 보전하고 죽을죄에서 감형되어 환주에 유배되었다.

몇 년 뒤에 황제가 그의 억울함을 알고 다시 중서령 벼슬을 회복해 주고연국공에 책봉하니 황제의 은총의 뜻이 특별했다.

 

 

 

生五子,曰儉,曰傳,曰位,曰倜,曰倚,皆有才器。儉進士登第,爲考功員外;傳爲侍御史,位爲太常丞;倜爲萬年尉;倚最賢,年二十八,爲左襄。其姻媾皆天下望族。有孫十餘人。

 

媾 : 화친할 구. 겹혼인. 친척끼리의 혼인. 인척. 교접하다. 성교. 사랑하다.

 

 

다섯 아들을 낳았는데이름을 검()、전()、위()、척()、의()라 불렀는데 모두 재능이 많았다.

()은 진사로 급제하여 고공원외(考功員外)가 되었고()은 시어랑(侍禦郎)이 되었고()는 태상승(太常丞)이 되었고()는 만년지명(萬年地名)의 위()가 되었고, 의()는 가장 현명하여 나이 28세에 좌양(左襄)에 올랐다。

그가 혼인한 척들은 모두 명문거족(名門擧族)들이었다。손자들은 10여명이었다。

 

 

 

兩竄荒徼,再登台鉉,出入中外,徊翔臺閣,五十餘年,崇盛赫奕。性頗奢盪,甚好佚樂。後庭聲色,皆第一綺麗。前後賜良田、甲第、佳人、名馬,不可勝數。後年漸衰邁,屢乞骸骨,不許。病,中人候問,相踵於道,名醫上藥,無不至焉。

 

徼 : 구할 요. 구하다. 훔치다. 빼앗음. 순찰하다. 순라꾼. 변방의 경계. 막다. 차단함. 샛길. 교외의 길. 미묘, 심원한 경지.

鉉 : 솥귀 현. 솥귀. 삼공의 지위. 활시위. 

乞骸骨 : 옛날 신하가 임금에게 사직을 청하는 것. 

 

 

 

노생은 두 차례 유배되고 두 차례 재상의 고위직에 올랐다중앙과 지방을 출입하며 누대와 전각을 전전하며 50여 년 간 벼슬의 지위가 높고 명성이 크게 빛났다노생은 성품이 사치 방탕하고  음란한 즐거움을 매우 좋아하였고 후원의 처첩들은 모두 천하제일의 미색이었다전후로 하사받은 양전과 가옥미녀명마 등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말년에는 몸이 점점 쇠약하고 노쇠해져 여러 차례 사직하기를 요청했으나 황제는 허락하지 않았다병이 나서 환관들이 문병 오느라 길에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명의와 상품의 약재도 이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將歿,上疏曰:

「臣本山東諸生,以田圃爲娛 偶逢聖運,得列官敘。過蒙殊獎,特秩鴻私。出擁節旌,入昇台輔。周旋中外,綿歴歳時。有忝天恩,無裨聖化。負乘貽寇,履薄增憂。日懼一日,不知老至。今年逾八十,位極三事,鐘漏並歇,筋骸倶耄。彌留沈頓,待時益盡。顧無成效,上答休明。空負深恩,永辭聖代。無任感戀之至,謹奉表陳謝。」

 

負承貽寇 : 負承致寇. 깜냥이 못되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재앙을 자초하는 일의 비유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재물을 챙기는 천                한 사람의 행실을 하는 자는 반드시 재앙에 이른다"는 경구.  주역 解卦에 나옴.

沈頓 : 기운이 빠짐. 

 

 

노생은 죽음에 임하여 상소했다.

신은 본디 상동의 일반 유생으로 들에서 경작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다가 우연히 성은을 입어 이름을 관리의 위치에 올렸습니다. 황제의 과분한 보살핌을 입어 특별한 직위와 지나치게 집안을 일구었습니다. 나가서는 장수가 되어 기를 지켰으며 조정에 들어와서는 재상직에 올랐습니다. 조정의 안팎을 오가며 오랜 세월을 보냈습니다.

황제의 은총을 입으면서도 황제의 교화에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릇이 되지도 못하면서 자리를 차지하여 재앙을 이르게 하지 않을가 살얼음을 밟듯 더욱 근심하였습니다. 날마다 하루의 책무를 두려워하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늙어버렸습니다금년에 여든을 넘어 관직을 삼공의 자리를 다 거쳤습니다. 목숨도 막바지에 이르렀고 근골(筋骨)도 모두 노쇠했습니다머무는 사이에도 기력이 다하여 기다리는 시간도 점차 다해갑니다돌아보니 이룬 공적도 없이 황제의 무한한 성명(聖明)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헛되이 깊은 성은만 입어 영원히 황제의 태평성대를 송축합니다.

감격과 그리움의 지극함을 감당치 못하고 삼가 이 표를 올리며 감사를 표합니다.

 

 

 

詔曰:

「卿以俊德,作朕元輔。出擁藩翰,入贊雍熙,昇平二紀,實卿所賴。 比嬰疾疹,日謂痊平。豈斯沈痼,良用憫惻。今令驃騎大將軍高力士,就第候省。其勉加鍼石,爲予自愛。猶冀無妄,期於有瘳。」

是夕,薨。

 

 

황제가 조서를 내렸다.

경은 뛰어난 덕행으로 짐의 수석 보좌가 되었다. 조정을 나가서는 변방을 지켰고, 들어와서는 나를 도와 조정을 빛나게 하였다20년간 태평을 누린 건 실로 경의 덕택이었다.

그대의 질병은 일간 나으리라 여겼도다. 이처럼 심한 고질병라 하니 참으로 민망하고 측은하다지금 표기대장군 고력사를 그대의 집에 보내 살펴보고 치료에 힘쓰게 할 터이니 나를 위하여  자애하라. 부디 바라건대 망녕된 생각을 하지 말고 치유되기를 기대하노라.

그날 저녁 노생은 죽었다.

 

 

 

盧生欠伸而悟,見其身方偃於邸舍,呂翁坐其傍,主人蒸黍未熟,觸類如故。 生蹶然而興,曰:「豈其夢寐也。」

翁謂生曰:「人生之適,亦如是矣。」   生憮然良久,謝曰:「夫寵辱之道,窮達之運,得喪之理,死生之情,盡知之矣。此先生所以窒吾欲也。敢不受教!」 稽首再拜而去。

 

 

노생이 기지개를 켜면서 깨어보니  자신은 주막에 누워 있고, 옆에는 여옹이 앉아 있고주인은 여전히 조밥을 짓고 있었다모든 게 전과 다름없었다그는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이 모든 게 꿈이었던가?

여옹이 웃으며 말했다.

「인생 만사가 다 그런 거라네.

노생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이윽고 감사를 드리면서 말했다.

「영화와 치욕의 도부귀와 빈곤의 운, 얻고 잃는 것의 이치, 삶과 죽음의 정을 모두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선생께서 제 욕망을 막아주신 것입니다. 감히 가르침을 받지 않겠습니까.

노생은 여옹에게 두 번 절하고 떠나갔다.

 

 

 

沈旣濟(750? ~ 800?)

 

당나라 소주(蘇州) 오현(吳縣) 사람. 덕종(德宗) 건중(建中) 초에 양염(楊炎)이 재상이 되었는데 그의 추천으로 사관(史官)이 되었다.

덕종 2년(781년) 양염이 죄를 져 실각하자 처주(處州) 사호참군(司戶參軍)으로 좌천되었다. 나중에 입조하여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으로 있다가 죽었다.

임씨전(任氏傳)』과 『침중기(枕中記)』의 저자로 알려졌다. 그밖에 건중 연간의 역사를 기록한 『건중실록(建中實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