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期 卷七O. 張儀列傳 [陳軫 · 犀首]
張儀列傳[陳軫]
陳軫者, 遊説之士. 與張儀倶事秦恵王, 皆貴重, 爭寵. 張儀悪陳軫於秦王曰:「軫重幣軽使秦楚之閒, 將為國交也. 今楚不加善於秦而善軫者, 軫自為厚而為王薄也. 且軫欲去秦而之楚, 王胡不聴乎?」王謂陳軫曰:「吾聞子欲去秦之楚, 有之乎?」軫曰:「然.」王曰:「儀之言果信矣.」軫曰:「非獨儀知之也, 行道之士盡知之矣. 昔子胥忠於其君而天下爭以為臣, 曾參孝於其親而天下願以為子. 故売僕妾不出閭巷而售者, 良僕妾也;出婦嫁於郷曲者, 良婦也. 今軫不忠其君, 楚亦何以軫為忠乎? 忠且見棄, 軫不之楚何帰乎?」王以其言為然, 遂善待之.
居秦期年, 秦恵王終相張儀, 而陳軫奔楚. 楚未之重也, 而使陳軫使於秦. 過梁, 欲見犀首. 犀首謝弗見. 軫曰:「吾為事來, 公不見軫, 軫將行, 不得待異日.」犀首見之. 陳軫曰:「公何好飲也?」犀首曰:「無事也.」曰:「吾請令公厭事可乎?」曰:「柰何?」曰:「田需約諸侯従親, 楚王疑之, 未信也. 公謂於王曰:『臣與燕、趙之王有故, 數使人來, 曰:「無事何不相見」, 願謁行於王.』王雖許公, 公請毋多車, 以車三十乗, 可陳之於庭, 明言之燕、趙.」燕、趙客聞之, 馳車告其王, 使人迎犀首. 楚王聞之大怒, 曰:「田需與寡人約, 而犀首之燕、趙, 是欺我也.」怒而不聴其事. 斉聞犀首之北, 使人以事委焉. 犀首遂行, 三國相事皆斷於犀首. 軫遂至秦.
韓魏相攻, 期年不解. 秦恵王欲救之, 問於左右. 左右或曰救之便, 或曰勿救便, 恵王未能為之決. 陳軫適至秦, 恵王曰:「子去寡人之楚, 亦思寡人不?」陳軫対曰:「王聞夫越人荘舃乎?」王曰:「不聞.」曰:「越人荘舃仕楚執珪, 有頃而病. 楚王曰:『舃故越之鄙細人也, 今仕楚執珪, 貴富矣, 亦思越不?』中謝対曰:『凡人之思故, 在其病也. 彼思越則越聲, 不思越則楚聲.』使人往聴之, 猶尚越聲也. 今臣雖棄逐之楚, 豈能無秦聲哉!」恵王曰:「善. 今韓魏相攻, 期年不解, 或謂寡人救之便, 或曰勿救便, 寡人不能決, 願子為子主計之餘, 為寡人計之.」陳軫対曰:「亦嘗有以夫卞荘子刺虎聞於王者乎? 荘子欲刺虎, 館豎子止之, 曰:『両虎方且食牛, 食甘必爭, 爭則必鬥, 鬥則大者傷, 小者死, 従傷而刺之, 一挙必有雙虎之名.』卞荘子以為然, 立須之. 有頃, 両虎果鬥, 大者傷, 小者死. 荘子従傷者而刺之, 一挙果有雙虎之功. 今韓魏相攻, 期年不解, 是必大國傷, 小國亡, 従傷而伐之, 一挙必有両実. 此猶荘子刺虎之類也. 臣主與王何異也.」恵王曰:「善.」卒弗救. 大國果傷, 小國亡, 秦興兵而伐, 大剋之. 此陳軫之計也.
犀首者, 魏之陰晉人也, 名衍, 姓公孫氏. 與張儀不善.
張儀為秦之魏, 魏王相張儀. 犀首弗利, 故令人謂韓公叔曰:「張儀已合秦魏矣, 其言曰『魏攻南陽, 秦攻三川』. 魏王所以貴張子者, 欲得韓地也. 且韓之南陽已挙矣, 子何不少委焉以為衍功, 則秦魏之交可錯矣. 然則魏必図秦而棄儀, 収韓而相衍.」公叔以為便, 因委之犀首以為功. 果相魏. 張儀去.
義渠君朝於魏. 犀首聞張儀複相秦, 害之. 犀首乃謂義渠君曰:「道遠不得複過, 請謁事情.」曰:「中國無事, 秦得焼掇焚杅君之國;有事,秦將軽使重幣事君之國.」其後五國伐秦. 會陳軫謂秦王曰:「義渠君者, 蠻夷之賢君也, 不如賂之以撫其志.」秦王曰:「善.」乃以文繍千純,婦女百人遺義渠君. 義渠君致群臣而謀曰:「此公孫衍所謂邪?」乃起兵襲秦, 大敗秦人李伯之下.
張儀已卒之後, 犀首入相秦. 嘗佩五國之相印, 為約長.
太史公曰:三晉多権変之士, 夫言従衡彊秦者大抵皆三晉之人也. 夫張儀之行事甚於蘇秦, 然世悪蘇秦者, 以其先死, 而儀振暴其短以扶其説, 成其衡道. 要之, 此両人真傾危之士哉!
진진(陳軫)은 유세가이다. 장의와 함께 진(秦) 혜왕(惠王)을 섬겼는데, 모두 중용되어 총애를 다투었다. 장의는 진왕에게 진진을 “진진이 많은 예물을 가지고 늘 진나라와 초나라를 오가는 것은 나라의 외교를 위한 것입니다. 지금 초나라가 진나라에게는 잘 하지 않으면서 진진에게 잘 하는 것은 진진이 자신을 많이 위하는 반면 왕께서는 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진은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려고 하는데 왕께서는 어째서 들어주시지 않는 것입니까”라는 말로 헐뜯었다.
진왕이 진진에게 “내가 듣자하니 그대가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가고자 한다는데 그렇소?”라고 물었다. 진진이 “그렇습니다.”라고 했다. 왕이 “장의의 말이 정말 사실이었구나!”라고 하자 진진은 “장의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길 가는 사람들도 다 아는 일입니다. 옛날 오자서(伍子胥)가 그 군주에게 충성을 다했더니 천하가 다투어 그를 신하로 삼으려 했으며, 증삼(曾參)이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자 천하가 그를 아들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따라서 노복이 팔릴 때 그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팔리는 자가 좋은 노복입니다. 또 버림받은 부녀로서 자기 고향에서 재가할 수 있는 부녀가 좋은 부녀입니다. 지금 진진이 자기 군주에게 충성스럽지 않은데 초나라가 어찌 하여 진진을 충성스럽다고 여기겠습니까? 충성스러운데 끝내 버림받는다면 이 진진이 초나라로 가지 않고 어디고 가겠습니까?”라고 했다. 왕이 그 말이 맞는다고 여겨 그를 잘 대해주었다.
진나라에 머문 지 1년 만에 진 혜왕은 끝내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고, 진진은 초나라로 달아났다. 초나라는 그를 중용하지 않으면서도 진진을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양나라(위)를 들러 서수(犀首)를 만나고자 했으나 서수가 사양하여 보지 못했다. 진진은 “내가 일이 있어 왔는데 공이 진진을 보려하지 않으니 이 진진은 떠나겠습니다. 다른 날을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서수가 진진을 만났다. 진진은 “공께서는 왜 술을 좋아 하십니까?”라고 했다. 서수가 “일이 없어서요.”라고 했다.
“제가 공으로 하여금 일에 싫증이 나도록 해드리도록 할까요?”
“어떻게요?”
“전수(田需)가 제후들과 합종을 약속했으나 초왕이 그를 의심하여 믿지 않고 있습니다. 공은 왕(위왕)에게 ‘신이 연나라, 조나라의 왕들과 오랜 친분이 있어 여러 사람을 보내와 일도 없는데 왜 보러 오지 않느냐고 합니다. 원하옵건대 그 왕들에게 다녀올까 합니다.’라고 하십시오, 왕이 공의 말을 받아들더라도 공은 수레를 많이 청하지 말고 30대의 수레를 뜰에 늘어놓고 연나라와 조나라에 간다고 공개적으로 말하십시오.”
(위나라에 있던) 연나라, 조나라의 유세객들은 이 소식을 듣고는 수레를 몰아 그들의 왕에게 보고하여 사람을 시켜 서수를 맞아들이게 했다. 초왕이 이를 듣고는 크게 성을 내며 “전수는 과인과 약속했다. 서수가 연나라, 조나라에 간다면 나를 속이는 것이다”라고 했다. 성이 나서 그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나라는 서수가 북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 일을 전수에게 맡겼다. 서수는 마침내 길을 떠났고 세 나라의 재상 일이 모두 서수에게서 결정되었다. 진진이 마침내 진나라에 이르렀다.
한나라, 위나라가 서로를 공격한 지 1년이 지나도록 끝이 나지 않고 있었다. 진 혜왕이 이에 간여하고 싶어 신하들에게 물었다. 신하들 중 어떤 이는 간여하는 것이 좋다 했고, 어떤 이는 간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해서 혜왕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진진이 마침 진나라에 오자 혜왕은 “그대가 과인을 떠나 초나라에 가서도 과인을 생각했소?”라고 물었다. 진진 “왕께서는 저 월나라 사람 장석(莊舃)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라고 대꾸했다. 왕이 “들어보지 못했소.”라고 하자 진진은 이렇게 말했다.
“월나라 사람 장석은 초나라에서 집규(執珪) 벼슬을 했는데 오래지 않아 병이 났습니다. 초왕이 ‘장석이 본디 월나라의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지금 초나라에서 벼슬해서 부귀해졌지만 그래도 월나라를 생각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더랍니다. 중사(中謝)가 대답하길 ‘무릇 사람이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병이 났을 때입니다. 그가 월나라를 생각한다면 월나라의 말을 할 것이고, 월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초나라의 말을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사람을 보내 그 말을 듣게 했더니, 월나라의 말을 했답니다. 지금 신이 버림받아 초나라로 쫓겨 갔지만 어찌 진나라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혜왕이 “좋소이다. 지금 한나라, 위나라가 서로를 공격한 지 1년이 지나도록 끝이 나지 않고 있는데 혹자는 과인이 간여하는 것이 좋다 하고, 혹자는 간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여 과인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소. 그대는 그대의 군주를 위한 계책 외에 과인을 위해서도 계책을 내주시오”라고 했다. 진진이 이렇게 대답했다.
“저 변장자(卞莊子)가 호랑이를 찌른 이야기는 들어보셨겠지요?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르려 하자, 객관의 심부름하는 더벅머리 아이가 이를 말리면서 ‘호랑이 두 마리가 지금 막 소를 잡아먹으려 합니다. 먹어서 맛이 좋으면 분명히 서로 다툴 것이고, 다투면 싸울 것이 뻔합니다. 싸우면 큰 놈은 상처를 입고, 작은 놈은 죽습니다. 상처 입은 놈을 찌르면 한 번에 두 마리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리를 듣게 되지요’라고 했답니다. 변장자가 옳다고 생각하여 서서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호랑이 두 마리가 정말 싸우더니 큰 놈은 부상을 입고 작은 놈은 죽었습니다. 변장자가 부상당한 놈을 찔러서 한 번에 두 마리 호랑이를 얻는 공을 세웠습니다.
지금 한나라, 위나라가 서로를 공격한 지 1년이 지나도록 결판이 나지 않으니, 틀림없이 큰 나라는 상하고 작은 나라는 망합니다. 상한 쪽을 치면 단번에 두 개의 열매를 딸 수 있습니다. 이는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른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신의 주군과 왕을 위한 계책이 뭐가 다르겠습니까?”
혜왕은 “좋소.”라 하고는 결국 간여하지 않았다. 대국은 과연 상했고 소국은 망하니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진진의 계책이었다.
<서수>
서수(犀首)는 위(魏)나라의 음진(陰晉) 사람이다. 이름은 연(衍)이고, 성은 공손씨(公孫氏)이다. 장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장의가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로 가자 위왕은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다. 서수가 자신에게 불리하자 사람을 시켜 한나라의 공숙(公叔)에게 이렇게 말하게 했다.
“장의가 이미 진나라와 위나라를 연합시키면서 ‘위나라는 남양(南陽)을, 진나라는 삼천(三川)을 공격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위왕이 장의를 중시하는 까닭은 한나라의 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나라의 남양은 이미 빼앗길 판인데 그대는 어째서 이 공손연에게 일을 맡겨 전공을 세우려 하지 않으십니까? 한나라, 위나라의 관계를 끊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위나라는 틀림없이 진나라를 도모하려고 장의를 버릴 것이고 한나라를 끌어들여 이 공손연을 재상으로 삼을 것입니다.”
공숙은 그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서수(공손연)에게 일을 맡겨 공을 세우니, 과연 서수는 위나라의 재상이 되었고 장의는 떠났다.
의거(義渠)의 군주가 위나라에 입조했다. 서수는 장의가 다시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의를 질투했다. 이에 서수는 의거의 군주에게 “길이 멀어서 다시 들릴 수 없을 테니 사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라 하고는 “중국에 아무런 일이 없으면 진나라는 군의 나라를 불태우고 짓밟을 것입니다. 그런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진나라는 미리 사실들에게 후한 예물을 가지고 군의 나라를 받들게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 후 다섯 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했다. 마침 진진이 진왕에게 “의거의 군주는 오랑캐 나라들 중 현명한 군주입니다. 뇌물로 그 마음을 다독거리느니만 못합니다.”라고 했다. 진왕이 “좋소.”라 하고는 바로 색이 있는 비단 1천 필과 여자 100명을 의거의 군주에게 보냈다. 의건의 군주는 신하들을 모아 놓고 “이것이 공손연이 말했던 것인가”라 하고는 바로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니 이백(李伯)에서 진나라를 대패시켰다.
장의가 죽은 다음 서수가 들어가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그는 일찍이 다섯 나라의 재상 도장을 차고 5국 맹약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사마천의 논평>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삼진(三晉)에는 권변(權變)에 능한 사람들이 많았다. 저 합종과 연횡을 주장하여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것은 대체로 삼진 사람들이었다. 장의가 한 일은 소진보다 더 심했으나, 세상이 소진을 나쁘다고 하는 것은 그가 먼저 죽어서 장의가 그의 잘못을 폭로하여 자신의 설을 보완하고 연횡설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정말 위험한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