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歷史와文學/史記列傳

史記 卷八二. 田單列傳

柳川 2019. 6. 2. 21:27

                                       田 



田單者,齊諸田疏屬也。湣王時,單為臨菑市掾,不見知。及燕使樂毅伐破齊,齊湣王出奔,已而保莒城。燕師長驅平齊,而田單走安平,令其宗人盡斷其車軸末而傅鐵籠。已而燕軍攻安平,城壞,齊人走,爭涂,以折車敗,為燕所虜,唯田單宗人以鐵籠故得脫,東保即墨。燕既盡降齊城,唯獨莒、即墨不下。燕軍聞齊王在莒,并兵攻之。淖齒既殺湣王於莒,因堅守,距燕軍,數年不下。燕引兵東圍即墨,即墨大夫出與戰,敗死。城中相與推田單,曰:「安平之戰,田單宗人以鐵籠得全,習兵。」立以為將軍,以即墨距燕。

頃之,燕昭王卒,惠王立,與樂毅有隙。田單聞之,乃縱反閒於燕,宣言曰:「齊王已死,城之不拔者二耳。樂毅畏誅而不敢歸,以伐齊為名,實欲連兵南面而王齊。齊人未附,故且緩攻即墨以待其事。齊人所懼,唯恐他將之來,即墨殘矣。」燕王以為然,使騎劫代樂毅。

樂毅因歸趙,燕人士卒忿。而田單乃令城中人食必祭其先祖於庭,飛鳥悉翔舞城中下食。燕人怪之。田單因宣言曰:「神來下教我。」乃令城中人曰:「當有神人為我師。」有一卒曰:「臣可以為師乎?」因反走。田單乃起,引還,東鄉坐,師事之。卒曰:「臣欺君,誠無能也。」田單曰:「子勿言也!」因師之。每出約束,必稱神師。乃宣言曰:「吾唯懼燕軍之劓所得齊卒,置之前行,與我戰,即墨敗矣。」燕人聞之,如其言。城中人見齊諸降者盡劓,皆怒,堅守,唯恐見得。單又縱反閒曰:「吾懼燕人掘吾城外冢墓,僇先人,可為寒心。」燕軍盡掘壟墓,燒死人。即墨人從城上望見,皆涕泣,俱欲出戰,怒自十倍。

田單知士卒之可用,乃身操版插,與士卒分功,妻妾編於行伍之閒,盡散飲食饗士。令甲卒皆伏,使老弱女子乘城,遣使約降於燕,燕軍皆呼萬歲。田單又收民金,得千溢,令即墨富豪遺燕將,曰:「即墨即降,願無虜掠吾族家妻妾,令安堵。」燕將大喜,許之。燕軍由此益懈。

田單乃收城中得千餘牛,為絳繒衣,畫以五彩龍文,束兵刃於其角,而灌脂束葦於尾,燒其端。鑿城數十穴,夜縱牛,壯士五千人隨其後。牛尾熱,怒而奔燕軍,燕軍夜大驚。牛尾炬火光明炫燿,燕軍視之皆龍文,所觸盡死傷。五千人因銜枚擊之,而城中鼓譟從之,老弱皆擊銅器為聲,聲動天地。燕軍大駭,敗走。齊人遂夷殺其將騎劫。燕軍擾亂奔走,齊人追亡逐北,所過城邑皆畔燕而歸田單,兵日益多,乘勝,燕日敗亡,卒至河上,而齊七十餘城皆復為齊。乃迎襄王於莒,入臨菑而聽政。

襄王封田單,號曰安平君。

太史公曰:兵以正合,以奇勝。善之者,出奇無窮。奇正還相生,如環之無端。夫始如處女,適人開戶;後如脫兔,適不及距:其由單之謂邪!

初,淖齒之殺湣王也,莒人求湣王子法章,得之太史嬓之家,為人灌園。嬓女憐而善遇之。後法章私以情告女,女遂與通。及莒人共立法章為齊王,以莒距燕,而太史氏女遂為后,所謂「君王后」也。

燕之初入齊,聞畫邑人王蠋賢,令軍中曰「環畫邑三十里無入」,以王蠋之故。已而使人謂蠋曰:「齊人多高子之義,吾以子為將,封子萬家。」蠋固謝。燕人曰:「子不聽,吾引三軍而屠畫邑。」王蠋曰:「忠臣不事二君,貞女不更二夫。齊王不聽吾諫,故退而耕於野。國既破亡,吾不能存;今又劫之以兵為君將,是助桀為暴也。與其生而無義,固不如烹!」遂經其頸於樹枝,自奮絕脰而死。齊亡大夫聞之,曰:「王蠋,布衣也,義不北面於燕,況在位食祿者乎!」乃相聚如莒,求諸子,立為襄王。



전단()은 제()나라 전씨()의 먼 친족이었다. 제 민왕() 때 전단은 임치()의 시연()이 되었지만 알려지지 않았다.

연()나라가 악의()를 시켜 제나라를 정벌하여 격파하자, 제 민왕은 달아났다가 거성()을 지켰다. 연나라의 군사들이 깊이 쳐들어와 제나라를 평정하자 전단은 안평()으로 달아났는데, 집안사람들에게 수레바퀴 축의 양 끝을 모조리 자르고 그 위에 쇠를 씌우게 했다. 이윽고 연나라의 군대가 안평을 공격하여 성이 무너지자 제나라 사람들이 길을 다투어 달아났는데 바퀴축이 부러져 수레가 넘어지는 바람에 연나라의 포로가 되었다. 오로지 전단 집안사람들만 쇠를 씌운 수레바퀴 축 덕분에 탈출하여 동쪽 즉묵()을 지키게 되었다. 연나라가 제나라의 거의 모든 성을 항복시켰지만 거()나라와 즉묵만 함락시키지 못했다.

연나라의 군대는 제왕이 거나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병사들을 모아 거나라를 공격했다. (초나라의 장수) 요치()가 민왕을 거나라에서 살해하고 굳게 지키며 연나라의 군대에 맞서자, 몇 년 동안 함락되지 않았다. 연나라는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와서 즉묵을 포위했고, 즉묵의 대부가 나가 싸우다 패하여 죽었다. 성 안에서는 서로 “안평 전투에서 전단 집안사람들은 쇠로 바퀴 축을 싸서 안전할 수 있는데 이는 병법에 익숙하다는 것이다”라며 전단을 추대하자 장군으로 옹립하여 즉묵을 지키며 연나라에 저항했다.



얼마 뒤 연 소왕()이 죽고, 혜왕()이 즉위했지만 악의와 틈이 벌어졌다. 전단이 이 소식을 듣고는 연나라에 첩자를 풀어 이렇게 선전했다.

“제왕은 이미 죽었고, 성들 중 함락되지 않은 것은 둘 뿐이다. 악의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감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제나라를 토벌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실은 (제나라의) 군대와 연합하여 남면하여 제나라의 왕이 되고 싶은 것이다. 제나라 사람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에 즉묵에 대한 공격을 늦춘 채 때를 기다리고 있다. 제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장수가 와서 즉묵을 무너뜨리면 어쩌나 하는 것뿐이다.”

연왕은 그렇다고 여겨 기겁()으로 악의를 대체했다. 악의는 이에 조나라로 돌아갔고, 연나라의 병사들은 분개했다. 이 때 전단은 성 안의 사람들에게 식사 때마다 뜰에서 꼭 선조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새들이 날아다니다가 성 안으로 내려와 음식을 먹었다. 연나라 사람들은 이를 기이하게 여겼다. 그러자 전단은 “신께서 내려와서 나에게 가르침을 주실 것이다.”라고 선전하고는 바로 성 안의 사람들에게 “신인이 오시면 내가 스승을 삼을 것이다.”라 했다. 병졸 하나가 “신께서 오시면 사람도 스승이 될 수 있습니까?”라 하고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전단이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그를 돌아오게 하고는 동쪽을 향해 앉히고 스승으로 모셨다.

졸병이 “제가 장군을 속였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전단은 “그대는 아무 말 말라.”하고는 스승으로 모시는 한편 명령을 내릴 때마다 반드시 신령스러운 스승을 거론하도록 했다. 이어 “우리는 오직 연나라의 군대가 제나라의 병졸들 코를 벤 다음 앞장을 세워 우리와 싸우게 하여 즉묵이 패하는 것을 걱정할 뿐이다.”라고 선전했다. 연나라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는 그 말대로 했다. 성 안의 사람들은 제나라의 항복한 군사들이 죄다 코를 잘리는 것을 보고는 모두 분노하며 성을 더욱 굳게 지키면서 오로지 포로가 될까 두려워했다. 이에 전단은 다시 첩자를 풀어 “나는 연나라 사람들이 우리 성 밖의 무덤을 파헤쳐 선조들을 욕보이면 어쩌나 두렵다. 정말 심장이 떨린다.”라고 했다. 연나라의 군대는 무덤을 모조리 파헤쳐 시신을 불태웠다. 즉묵 사람들이 성 위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모두 눈물을 흘리고 나가 싸우고자 하니 분노가 절로 열 배나 올랐다.

전단이 병사들을 지휘할 수 있음을 알고는 몸소 삽을 들고 병사들과 일을 분담하는 한편 처첩들을 대오에 편입시키고 음식을 모두 나누어 병사들에게 먹였다. 이어 정예병들은 숨기고 노약자와 여자들을 성에 올려 보냈다. 그리고는 사신을 보내 연나라에 항복하겠다고 약속하니 연나라의 군대가 모두 만세를 불렀다.

전단은 또 백성들에게서 돈을 거두어 1천 일()을 모아 즉묵의 부자들로 하여금 연나라의 장수에게 가지고 가서 “즉묵이 항복하면 우리 가족과 처첩들은 포로로 잡지 말고 안전하게 해주십시오.”라 말하게 했다. 연나라의 장수는 크게 기뻐하며 이를 허락했다. 연나라의 군대는 이로써 더욱 해이해졌다.



전단은 성 안의 소 천 여 마리를 모아 붉은 비단을 입히고 거기에 다섯 색의 용 무늬를 그린 다음 그 뿔에 칼날을 매고 꼬리에는 기름에 적신 갈대를 매달아 그 끝에 불을 붙였다. 이어 성에 수십 개의 구멍을 내어 야밤에 그곳으로 소들을 풀어놓고 장사 5천이 그 뒤를 따르게 했다.

꼬리가 뜨거워지자 소들은 성이 나서 연나라의 군대를 향해 내달았고, 밤중에 연나라의 군대는 크게 놀랐다. 소꼬리에 붙은 횃불은 환하게 빛이 났는데 연나라의 군사들이 보니 모두 용 무늬였고, 부딪치면 모두 죽지 않으면 부상을 입었다. 5천 명은 하무를 물고 돌격했다. 성 안에서는 북을 치며 함성을 질렀고, 노약자들도 모두 구리 그릇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대니 그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연나라의 군대는 크게 놀라 패하여 도망갔다. 제나라 사람들이 마침내 그 장수 기겁을 죽였다. 연나라의 군대는 혼란에 빠져 정신없이 달아났고, 제나라 사람들은 도망가는 적을 뒤쫓아 패배시키니 지나는 성읍들이 모두 연나라를 배반하고 항복했다.

전단의 군대는 갈수록 늘어나면서 승기를 탔고, 연나라는 날마다 패배하여 도망쳐 마침내 황하 연안까지 이르렀다. 이윽고 제나라의 70여 개의 성이 모두 다시 제나라에게로 돌아왔다. 이어 양왕()을 거()나라에서 맞아들여 임치()로 들어와 국정을 맡게 했다. 양왕은 전단을 봉하여 안평군()이라 불렀다.



<사마천의 논평>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전투는 정면으로 겨루되 기발한 책략으로 이기는 것이다. (전투를) 잘하는 사람의 기발한 책략은 무궁하다. 정공법과 기발한 책략을 서로 돌아가며 구사하는 것이 마치 둥근 고리에 끄트머리가 없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처녀처럼 약해 보이지만 적으로 하여금 문을 활짝 열게 만들며, 나중에는 도망치는 토끼 같아서 적이 막을 겨를이 없게 만든다. 전단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후일담>
당초 요치()가 민왕()을 죽이자 거()나라 사람들은 민왕의 아들 법장()을 찾았는데, 태사교()의 집에서 정원에 물을 주는 일을 하고 있던 그를 찾았다. 태사교의 딸이 가엾게 여겨 잘 대해주었다. 그 뒤 법장이 자신의 신세를 그녀에게 고백하자 그녀는 마침내 그와 정을 통했다. 거나라 사람들이 법장을 제왕으로 옹립하여 거나라를 거점으로 연나라에 저항하게 되자 태사교의 딸은 왕후가 되니 바로 ‘군왕후()’이다.

연나라가 처음 제나라에 들어왔을 때 획읍() 사람 왕촉()이 어질다는 말을 들은 (연나라의 장수는) “획읍 둘레 30 리 안에 아무도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했는데 왕촉 때문이었다. 이어 사람을 보내 왕촉에게 “많은 제나라 사람들이 그대의 의리를 높이 보고 있소. 내가 그대를 장수로 삼고 만호에 봉하려 하오.”라고 했다. 왕촉은 한사코 사양했다. 연나라 사람이 “그대가 말을 듣지 않겠다면 우리는 삼군을 이끌고 획읍을 도륙할 것이오.”라고 했다. 왕촉이 이렇게 말했다.

“충성스러운 신하는 두 군주를 섬기지 않으며, 정조를 지키는 여자는 남편을 바꾸지 않습니다. 제왕이 나의 말을 듣지 않았기에 물러나 밭을 갈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는 이미 망했고 내가 나라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군대로 겁박하여 당신을 위해 장수가 되라 하니 이는 걸()을 도와 포악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살아서 의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삶겨 죽는 것이 낫습니다!”

마침내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는 스스로 목을 졸라 죽었다. 도망친 제나라의 대부들이 이 소식을 듣고는 “왕촉은 평민으로 연나라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하물며 자리를 차지하고 녹을 먹는 자들이야”라 하고는 함께 거나라로 달려가 (민왕의) 아들을 찾아 양왕으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