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歷史와文學/史記列傳

史記 卷九四. 田儋列傳

柳川 2019. 6. 2. 22:43

                                        田儋列傳




田儋者,狄人也,故齊王田氏族也。儋從弟田榮,榮弟田橫,皆豪,宗彊,能得人。

陳涉之初起王楚也,使周市略定魏地,北至狄,狄城守。田儋詳為縛其奴,從少年之廷,欲謁殺奴。見狄令,因擊殺令,而召豪吏子弟曰:「諸侯皆反秦自立,齊,古之建國,儋,田氏,當王。」遂自立為齊王,發兵以擊周市。周市軍還去,田儋因率兵東略定齊地。

秦將章邯圍魏王咎於臨濟,急。魏王請救於齊,齊王田儋將兵救魏。章邯夜銜枚擊,大破齊、魏軍,殺田儋於臨濟下。儋弟田榮收儋餘兵東走東阿。齊人聞王田儋死,乃立故齊王建之弟田假為齊王、田角為相、田間為將,以距諸侯。

田榮之走東阿,章邯追圍之。項梁聞田榮之急,乃引兵擊破章邯軍東阿下。章邯走而西,項梁因追之。而田榮怒齊之立假,乃引兵歸,擊逐齊王假。假亡走楚。齊相角亡走趙;角弟田閒前求救趙,因留不敢歸。田榮乃立田儋子市為齊王。榮相之,田橫為將,平齊地。

項梁既追章邯,章邯兵益盛,項梁使使告趙、齊,發兵共擊章邯。田榮曰:「使楚殺田假,趙殺田角、田閒,閒肯出兵。」楚懷王曰:「田假與國之王,窮而歸我,殺之不義。」趙亦不殺田角、田閒以市於齊。齊曰:「蝮螫手則斬手,螫足則斬足。何者?為害於身也。今田假、田角、田閒於楚、趙,非直手足戚也,何故不殺?且秦復得志於天下,則齮龁用事者墳墓矣。」楚、趙不聽,齊亦怒,終不肯出兵。章邯果敗殺項梁,破楚兵,楚兵東走,而章邯渡河圍趙於鉅鹿。項羽往救趙,由此怨田榮。

項羽既存趙,降章邯等,西屠咸陽,滅秦而立侯王也,乃徙齊王田市更王膠東,治即墨。齊將田都從共救趙,因入關,故立都為齊王,治臨淄。故齊王建孫田安,項羽方渡河救趙,田安下濟北數城,引兵降項羽,項羽立田安為濟北王,治博陽。田榮以負項梁不肯出兵助楚、趙攻秦,故不得王;趙將陳餘亦失職,不得王:二人俱怨項王。

頊王既歸,諸侯各就國,田榮使人將兵助陳餘,令反趙地,而榮亦發兵以距擊田都,田都亡走楚。田榮留齊王市,無令之膠東。市之左右曰:「項王彊暴,而王當之膠東,不就國,必危。」市懼,乃亡就國。田榮怒,追擊殺齊王市於即墨,還攻殺濟北王安。於是田榮乃自立為齊王,盡并三齊之地。

項王聞之,大怒,乃北伐齊。齊王田榮兵敗,走平原,平原人殺榮。項王遂燒夷齊城郭,所過者盡屠之。齊人相聚畔之。榮弟橫,收齊散兵,得數萬人,反擊項羽於城陽。而漢王率諸侯敗楚,入彭城。項羽聞之,乃醳齊而歸,擊漢於彭城,因連與漢戰,相距滎陽。以故田橫復得收齊城邑,立田榮子廣為齊王,而橫相之,專國政,政無巨細皆斷於相。

橫定齊三年,漢王使酈生往說下齊王廣及其相國橫。橫以為然,解其歷下軍。漢將韓信引兵且東擊齊。齊初使華無傷、田解軍於歷下以距漢,漢使至,乃罷守戰備,縱酒,且遣使與漢平。漢將韓信已平趙、燕,用蒯通計,度平原,襲破齊歷下軍,因入臨淄。齊王廣、相橫怒,以酈生賣己,而亨酈生。齊王廣東走高密,相橫走博(陽),守相田光走城陽,將軍田既軍於膠東。楚使龍且救齊,齊王與合軍高密。漢將韓信與曹參破殺龍且,虜齊王廣。漢將灌嬰追得齊守相田光。至博(陽),而橫聞齊王死,自立為齊王,還擊嬰,嬰敗橫之軍於嬴下。田橫亡走梁,歸彭越。彭越是時居梁地,中立,且為漢,且為楚。韓信已殺龍且,因令曹參進兵破殺田既於膠東,使灌嬰破殺齊將田吸於千乘。韓信遂平齊,乞自立為齊假王,漢因而立之。

後歲餘,漢滅項籍,漢王立為皇帝,以彭越為梁王。田橫懼誅,而與其徒屬五百餘人入海,居島中。高帝聞之,以為田橫兄弟本定齊,齊人賢者多附焉,今在海中不收,後恐為亂,乃使使赦田橫罪而召之。田橫因謝曰:「臣亨陛下之使酈生,今聞其弟酈商為漢將而賢,臣恐懼,不敢奉詔,請為庶人,守海島中。」使還報,高皇帝乃詔衛尉酈商曰:「齊王田橫即至,人馬從者敢動搖者致族夷!」乃復使使持節具告以詔商狀,曰:「田橫來,大者王,小者乃侯耳;不來,且舉兵加誅焉。」田橫乃與其客二人乘傳詣雒陽。

未至三十里,至尸鄉廄置,橫謝使者曰:「人臣見天子當洗沐。」止留。謂其客曰:「橫始與漢王俱南面稱孤,今漢王為天子,而橫乃為亡虜而北面事之,其恥固已甚矣。且吾亨人之兄,與其弟并肩而事其主,縱彼畏天子之詔,不敢動我,我獨不愧於心乎?且陛下所以欲見我者,不過欲一見吾面貌耳。今陛下在洛陽,今斬吾頭,馳三十里閒,形容尚未能敗,猶可觀也。」遂自剄,令客奉其頭,從使者馳奏之高帝。高帝曰:「嗟乎,有以也夫!起自布衣,兄弟三人更王,豈不賢乎哉!」為之流涕,而拜其二客為都尉,發卒二千人,以王者禮葬田橫。

既葬,二客穿其冢旁孔,皆自剄,下從之。高帝聞之,乃大驚,大田橫之客皆賢。吾聞其餘尚五百人在海中,使使召之。至則聞田橫死,亦皆自殺。於是乃知田橫兄弟能得士也。

評論[编辑]

太史公曰:甚矣蒯通之謀,亂齊驕淮陰,其卒亡此兩人!蒯通者,善為長短說,論戰國之權變,為八十一首。通善齊人安期生,安期生嘗干項羽,項羽不能用其筴。已而項羽欲封此兩人,兩人終不肯受,亡去。田橫之高節,賓客慕義而從橫死,豈非至賢!余因而列焉。不無善畫者,莫能圖,何哉?

【索隱述贊】秦項之際,天下交兵。六國樹黨,自置豪英。田儋殞寇,立市相榮。楚封王假,齊破酈生。兄弟更王,海島傳聲。 



<전담>


전담()은 적현() 사람으로 옛 제()나라 왕족 전씨()의 종족이다. 전담의 사촌 동생 전영()과 전영의 동생 전횡()은 모두 호걸이었고 종족도 강하여 사람들을 얻을 수 있었다.

진섭()은 처음 일어나 초왕()이 되어서 주불(巿)에게 위() 땅을 공략하게 하여 북으로 적현에 이르렀는데 적현은 성을 굳게 지켰다. 전담은 거짓으로 자기 노복을 묶고 젊은이들을 따라 관아에 이르러서 노복을 죽이겠다는 말을 아뢰려 하였다. 적현의 현령이 보이자 현령을 때려 죽이고는 호걸과 자제들을 불러 “제후들이 모두 진나라에 반대하여 자립하고 있소. 제나라는 오래 전에 세워진 나라이고, 나 전담은 전씨이니 왕이 될 수 있소”라 하고는 드디어 제왕으로 자립하여 병사를 일으켜 주불을 공격했다. 주불의 군대가 돌아가자 전담은 병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제 지역을 공략했다.

진의 장수 장한()이 위왕 구()를 임제()에서 포위했는데 그 형세가 급했다. 위왕이 제에 구원을 요청했고, 제왕 전담은 병사를 이끌고 위를 구하러 나섰다. 장한은 밤에 하무를 물고 공격하여 제와 위의 군대를 대파하고는 임제 아래에서 전담을 죽였다. 전담의 동생 전영이 전담의 병사를 수습하여 동쪽 동아()로 달아났다.

<전영>
제나라 사람들은 왕 전담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옛 제왕 전건()의 동생인 전가()를 제왕으로, 전각()을 재상으로, 전간()을 장군으로 삼아 제후들에게 대항하게 했다.

전영이 동아 땅으로 달아나자 장한은 추격해 그를 포위했다. 항량()은 전영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병사를 끌고 장한의 군사를 동아 땅 아래에서 격파했다. 장한이 달아나 서쪽으로 가자 향량이 그를 뒤쫓았다.

그리고 전영은 제나라 사람들이 전가를 왕으로 세운 것에 화가 나서 바로 병사를 이끌고 되돌아와서 제왕 전가를 내쫓았다. 전가는 초로 도망갔다. 제나라 재상 전각은 조()로 도망쳤고, 전각의 동생 전간은 이에 앞서 조에 구원을 청하러 갔기 때문에 그곳에 머무르며 돌아오지 않았다. 전영은 전담의 아들 전불(巿)을 제왕으로 세워 그를 보좌했으며, 전횡은 장군이 되어 제를 평정했다.

항량이 앞서 장한을 추격했지만 장한의 병력이 더욱 강성해지자, 항량은 사신을 보내 조와 제에 알려 군대를 일으켜 장한을 함께 공격하자고 했다. 전영은 “초로 하여금 전가를 죽이게 하고, 조로 하여금 전각과 전간을 죽이게 한다면 바로 출병하겠다”고 했다. 초 회왕()은 “전가는 우방국의 왕으로서 궁지에 몰려 우리에게 의지하려는데 그를 죽이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조나라 역시 전각과 전간을 죽이면서까지 제와 거래하려 하지 않았다. 제는 “독사가 손을 물면 손을 자르고, 발을 물으면 발을 자른다. 왜 그런가? 몸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전가, 전각, 전간은 초, 조에게 있어서 손과 발처럼 가깝지 않은데 무슨 까닭으로 죽이지 않는가? 그리고 진이 다시 천하에서 뜻을 얻는다면 제멋대로 군 자들의 무덤까지 파헤칠 것이다”라고 했다.

초와 조가 말을 듣지 않자 제 역시 화가 나서 끝까지 출병하려 하지 않았다. 장한은 예상대로 항량을 죽이고 초 군대를 격파했다. 초 군대가 동쪽으로 도주하니 장한은 황하를 건너가 거록(鹿)에서 조를 포위했다. 항우()가 가서 조를 구했는데 이 때문에 전영을 원망하게 되었다.

항우는 조를 존속시키고 장한 등의 항복을 받은 다음 서쪽으로 함양()을 도륙하여 진을 멸망시키고 제후왕들을 세웠다. 제왕 전불을 교동왕()으로 바꾸어 옮기고 즉묵()을 도읍으로 다스리게 했다. 제위 장군 전도()는 항우를 따라 함께 조를 구원하면서 함곡관()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전도를 제왕으로 세우고 임치를 도읍으로 삼게 했다.

옛 제왕 전건의 손자 전안()은 항우가 막 황하를 건너 조를 구원했을 때 제수() 북쪽의 몇 개의 성을 무찌른 뒤 군사를 거느리고 항우에게 항복했다. 항우는 전안을 제북왕()으로 세우고 박양()에 도읍하게 했다. 전영은 항량을 거역하고 출병하여 초와 조를 원조하고 진을 공격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이 되지 못했다. 조의 장군 진여() 역시 실각하여 왕이 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항왕()을 원망했다.

항왕이 돌아가고 제후들도 각자 제후국으로 돌아가자 전영은 사람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진여를 도와 조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하고, 전영 또한 병사를 징발하여 전도를 맞이하여 공격하자 전도는 초로 도망쳤다. 전영은 제왕 전불을 억류시키고 교동으로 가지 못하게 했다. 전불의 측근들은 “항왕이 포악하기 때문에 왕께서는 교동으로 가야 합니다. 나라로 가지 못하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했다. 전불은 두려워 곧바로 도망쳐 나라로 갔다. 전영은 노하여 제왕 전불을 추격해 즉묵에서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제북왕 전안을 공격하여 죽였다. 이에 전영은 곧바로 스스로 제왕으로 즉위하여 삼제()의 땅을 모두 병합했다.

항왕이 이를 듣고 크게 노하여 바로 북으로 제를 쳤다. 제왕 전영의 군대는 평원()으로 달아났고 평원 사람들이 전영을 죽였다. 항왕은 마침내 제의 성곽에 불을 지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도륙했다. 제나라 사람들이 서로 모여 반발했다. 전영의 동생 전횡은 흩어졌던 병사를 수습하여 수만 명에 이르자 성양()에서 항우에게 반격했다. 한편 한왕()은 제후들을 이끌고 초를 무찌른 뒤 팽성()으로 들어갔다.

항우는 이 소식을 듣자 바로 제를 포기하고 귀국해 팽성에서 한()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한과의 전투가 잇따라 벌어졌고, 형양()에서 서로 대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전횡은 다시 제의 성읍을 수습하여 전영의 아들 전광()을 제왕으로 옹립했다. 전횡은 재상이 되어 국정을 도맡았는데, 크고 작은 국정 모두를 재상이 결정했다.


<전횡>


전횡이 제나라를 평정한 지 3년, 한왕은 역생()을 시켜 제왕 전광과 그 상국 전횡에게 가서 항복을 설득하게 했다. 전횡은 그것을 받아들여 역하()의 군대를 해산시켰다. 한의 장군 한신()은 병사를 끌고 동쪽으로 제를 공격하려고 했다. 제는 당초 화무상()과 전해()를 시켜 역하 땅에 주둔하여 한에 맞서게 했다. 한의 사신이 이르자 수비를 풀고 술을 내리는 한편 사신을 보내 한과 화평하고자 했다.

한의 장군 한신은 이미 조와 연을 평정했고, 괴통()의 계략에 따라 평원() 나루를 건너 제의 역하() 군대를 습격하고 그 기세로 임치로 들어갔다. 제왕 전광과 국상 전횡은 화가 났고, 역생이 자신들을 팔아넘겼다고 여겨서 역생을 삶아 죽였다. 제왕 전광은 동쪽 고밀()로 달아났고, 국상 전횡은 박()으로 달아났으며, 임시 재상 전광()은 성양()으로 달아났고, 장군 전기()는 교동()에 주둔했다.

초는 용저()에게 제를 구원하게 하고 제왕과 고밀에서 군을 합쳤다. 한의 장수 한신과 조참()은 용저를 죽이고 제왕 전광을 사로잡았다. 한의 장군 관영()은 제의 임시 재상 전광을 추격해 사로잡고 박양에 이르렀다. 그리고 전횡은 제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왕으로 자립하여 관영에게 반격을 가했다. 관영은 전횡의 군대를 영() 아래에서 패배시켰다. 전횡은 양()으로 달아나 팽월()에게로 귀순했다.

팽월은 당시에 양 땅을 거점으로 중립을 지키면서 한을 편들기도 하고 초를 편들기도 했다. 한신이 용저를 죽이고는 조참에게 진군하여 교동에서 전기를 죽이게 했으며, 관영에게는 제의 장군 전흡()을 천승()에서 죽이게 했다. 한신은 마침내 제를 평정하고 자신이 제의 임시 왕이 되길 요청하니 한은 그 참에 한신을 세웠다.

그로부터 1년여 뒤, 한은 항적()을 멸망시켰고, 한왕은 황제로 즉위하여 팽월을 양왕으로 삼았다. 전횡은 죽을까 겁이 나서 그 무리 500여 명과 함께 바다로 들어가 섬에 살았다. 고제가 이를 듣고는 전횡 형제가 본래 제를 평정했고 제의 현자들이 많이 그를 따르는 바 지금 바다에서 두고 수습하지 않으면 나중에 난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고 여겨 사신을 보내 전횡의 죄를 용서하고 그를 불러들였다. 이에 전횡은 “신은 폐하의 사신 역생을 삶아 죽였고, 지금 듣자하니 그 동생 역상()이 한의 장수인데다 어질다고 합니다. 신은 두려워 감히 조서를 받들 수 없으니 서인이 되어 바다의 섬을 지키게 해주십시오”라며 사양했다.

사신이 돌아와 보고하자 고제는 곧바로 위위() 역상에게 “제왕 전횡이 왔을 때 그를 따르는 사람과 말을 괴롭히는 자는 일족을 멸하겠다”라는 조서를 내리고 바로 다시 사신에게 부절을 가지고 역상에게 조서를 내린 상황을 알리고는 “전횡이 오면 크게는 왕, 작게는 후로 삼을 것이나, 오지 않으면 군대를 일으켜 죽일 것이다”라고 했다. 전횡은 곧 자신의 빈객 두 사람과 함께 역마를 타고 낙양()으로 갔다.

30리가 채 안 되는 시향() 역의 마구간에 이르러 전횡은 사신에게 “신하된 자가 천자를 뵙는데 목욕은 해야지요”라 하고는 멈추어 머물렀다.

그리고는 그 빈객에게 “이 전횡은 처음 한왕과 함께 남면하여 ‘고()’로 칭했소. 지금 한왕은 천자가 되었고 이 전횡은 도망다니는 포로로서 북면하여 그를 섬겨야 하니 그 수치가 참으로 심하오. 그리고 내가 남의 형을 삶아 죽이기도 그 동생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주인을 섬겨야 하니, 저 무시한 천자의 조서로도 감히 나를 움직일 수 없다고는 하지만 내가 어찌 부끄러운 마음이 없겠소? 지금 폐하께서 낙양에 계시니 지금 내 목을 잘라 30리를 말로 달리면 모습이 썩지 않고 볼 만할 것이오”라 하고는 자신의 목을 잘라 빈객에게 그 머리를 들고 사신을 따라 말을 달려 고제에게 아뢰게 했다.

고제는 “오호라, 이유가 있었구나! 평민에서 일어나 형제 셋이 돌아가며 왕이 되었으니 어찌 현명하다 않을 것인가”라 하고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전횡의 빈객 두 사람은 도위로 삼고, 군졸 2천 명을 선발하여 왕의 예로 전횡의 장례를 치르게 했다.

장례가 끝나자 두 빈객은 무덤 옆에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 목을 그어 쓰러져 전횡을 따랐다. 고제가 이 소식을 듣고는 크게 놀라며 전횡의 빈객들이 모두 대단히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듣기에 그 나머지 5백 명은 바다에 있었는데 사신을 시켜 불렀다고 한다. 그들이 이르러 전횡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그들 역시 모두 자살하니 이로써 전횡의 형제가 인재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마천의 논평>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심하구나 괴통()의 계략이! 제를 어지럽히고 회음후를 교만하게 만들어 끝내 두 사람을 망쳤으니! 괴통이란 자는 말솜씨가 뛰어나 전국시대의 권모와 변화를 논하여 81편으로 만들었다. 괴통은 제나라 사람 안기생()과 잘 지냈는데 안기생은 일찍이 항우에게 벼슬자리를 얻기 바랐지만 항우는 그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얼마 뒤 항우가 이 두 사람을 책봉하려고 했지만 두 사람은 끝내 받지 않고 달아났다. 전횡은 고상한 절개를 가지고 있었고, 그 빈객들이 그의 의리를 흠모해 따라 죽은 것은 어찌 더할 수 없는 현명함이 아니리요! 나는 이런 까닭에 그를 열전에 넣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자가 없지 않았을 텐데 그리지 못했으니 왜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