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歷史와文學/史記列傳

史記 卷一一七. 司馬相如列傳

柳川 2019. 6. 3. 08:58

                                    司馬相如列傳

 

 

 

司馬相如者,蜀郡成都人也,字長卿。少時好讀書,學擊劍,故其親名之曰犬子。相如既學,慕藺相如之為人,更名相如。以貲為郎,事孝景帝,為武騎常侍,非其好也。會景帝不好辭賦,是時梁孝王來朝,從遊說之士齊人鄒陽、淮陰枚乘、吳莊忌夫子之徒,相如見而說之,因病免,客游梁。梁孝王令與諸生同舍,相如得與諸生游士居數歲,乃著子虛之賦。

 

사마상여()는 촉군() 성도() 출신으로 자()는 장경()이다. 어릴 때 독서하기를 좋아했고 검술을 배웠기 때문에 그의 부모는 그의 이름을 견자()라 지었다. 사마상여는 학업을 마치자 명재상 인상여()의 사람됨을 흠모해 이름을 상여()라고 고쳤다. 돈을 내고 낭관()이 되었고, 경제()를 섬겨기다가 무기상시()로 올랐으나, 그는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경제는 사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때 마침 양효왕()이 조정으로 들어와 황제를 알현했는데, 당대의 문장가들인 제()나라의 추양(), 회음()의 매승(), 오현()의 장기() 부자등의 유세객들이 따라왔다. 사마상여는 그들을 보고 좋아했다. 그래서 병을 빌미로 관직을 버리고 양나라로 가서 양효왕의 문객이 되었다. 양효왕은 사마상여를 여러 학자들과 더불어 머물게 했다. 사마상여는 이들과 몇 년 동안 함께 지내며 저명한 「자허부()」를 지었다.

 

 

會梁孝王卒,相如歸,而家貧, 無以自業。素與臨邛令王吉相善, 吉曰:「長卿久宦遊不遂,而來過我。」

於是相如往, 舍都亭。臨邛令繆為恭敬, 日往朝相如。相如初尚見之,後稱病,使從者謝吉,吉愈益謹肅。臨邛中多富人,而卓王孫家僮八百人,程鄭亦數百人,二人乃相謂曰:「令有貴客,為具召之。」並召令。令既至,卓氏客以百數。至日中,謁司馬長卿,長卿謝病不能往,臨邛令不敢嘗食,自往迎相如。

相如不得已,彊往,一坐盡傾。酒酣,臨邛令前奏琴曰:「竊聞長卿好之,原以自娛。」相如辭謝,為一再行。是時卓王孫有女文君新寡,好音,故相如繆與令相重,而以琴心挑之。

 

때마침 양효왕이 죽었기 때문에 사마상여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하고 스스로 생업으로 삼을 일이 없었다. 

평소 친하게 지냈던 임공()의 현령인 왕길()이 말했다. “장경이 오래동안 밖으로 돌아다니며 벼슬을 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나에게 와서 지내시오.”

그리하여 사마상여는 왕길을 찾아가 도정()에 머물렀다. 임공의 현령은 일부러 공손한 태도를 취하면서 매일같이 사마상여에게 가서 문안인사를 드렸다. 사마상여는 처음에는 그를 만났으나, 뒤에는 병이라 핑계를 대고 하인을 시켜 왕길의 문안인사를 사양하였다. 왕길은 더욱 공손한 태도로 사마상여를 대했다.

임공현의 성 안에는 부호가 많았는데, 그 중에 탁왕손()은 집에 노복이 8백 명이나 되었고, 정정()이란 사람도 수백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금 현령에게 귀한 손님이 있다고 하니, 우리가 주연을 열어 그를 한번 초대합시다.” 아울러 현령도 함께 초대했다. 현령이 도착했을 때에 탁씨의 빈객은 벌써 1백여 명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정오쯤 되어 사마상여를 초대했는데, 사마상여는 병을 핑계로 대고 갈 수 없다며 사절했다. 그러자 임공의 현령인 왕길은 잔치요리를 손도 대지 않고 몸소 사마상여를 맞으러 나갔다. 사마상여도 하는 수 없이 왕길을 따라 나섰다. 주연에 모였던 사람들은 모두 사마상여의 풍채를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주연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왕길이 먼저 거문고를 연주한 다음 거문고를 사마상여에게 넘기면서 말했다. 

“가만히 들으니 장경께서는 거문고를 잘 타신다고 하니, 원컨대 한곡 연주하여 자리의 흥을 돋궈주시길 바랍니다.” 

처음에 사마상여는 사양하다가 결구 그들을 위해 한 두 곡조를 연주했다. 이 때 탁왕손에게는 막 과부가 된 탁문군()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음악을 좋아했다. 이 때문에 사마상여는 현령과 서로 매우 존중하는 체하고는 거문고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相如之臨邛,從車騎,雍容間雅甚都;及飲卓氏,弄琴,文君竊從戶窺之,心悅而好之,恐不得當也。

既罷,相如乃使人重賜文君侍者通殷勤。文君夜亡奔相如,相如乃與馳歸成都。家居徒四壁立。卓王孫大怒曰:「女至不材,我不忍殺,不分一錢也。」人或謂王孫,王孫終不聽。文君久之不樂,曰:「長卿第俱如臨邛,從昆弟假貸猶足為生,何至自苦如此!」相如與俱之臨邛,盡賣其車騎,買一酒舍酤酒,而令文君當爐。相如身自著犢鼻褌,與保庸雜作,滌器於市中。卓王孫聞而恥之,為杜門不出。昆弟諸公更謂王孫曰:「有一男兩女,所不足者非財也。今文君已失身於司馬長卿,長卿故倦遊,雖貧,其人材足依也,且又令客,獨奈何相辱如此!」卓王孫不得已,分予文君僮百人,錢百萬,及其嫁時衣被財物。文君乃與相如歸成都,買田宅,為富人。

 

 

사마상여가 임공으로 갈 때 거마()를 뒤따르게 했는데, 이때 그의 행동거지는 조용하고 의젓하며 고상한 품위가 있어 주변에 소문이 났다.

그리하여 사마상여는 탁씨의 집에 초대되었고, 드디어 호기롭게 술을 마시며 거문고를 탔다. 탁문군은 문틈으로 몰래 사마상여를 엿보고 마음에 끌려 좋아하게 되었다. 탁문군은 배우자로 삼지 못할 것을 걱정할 정도였다. 주연이 끝나자, 사마상여는 이내 사람을 시켜서 탁문군의 시종에게 후한 선물을 주고 은근히 자신의 마음을 전하게 했다.

이에 탁문군은 야밤에 사마상여에게로 도망쳐 나왔다. 사마상여는 곧바로 그녀와 더불어 성도로 달아났다. 그러나 성도의 사마상여 집은 다 쓰러져가는 네 벽만이 있을 뿐이었다.

탁왕손은 이 사실을 알고 매우 화가 나서 말했다. “딸년이 변변치 못하나 차마 죽이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나는 괘심하여 한 푼의 돈도 탁문군에게 주지 않겠다.” 어떤 사람이 간혹 탁왕손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말하는 자가 있었지만, 탁왕손은 끝내 듣지 않았다. 탁문군은 가난한 생활이 지속되자 더 버티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 “장경, 함께 임공으로 갑시다. 내 형제들에게 돈을 빌리면 족히 생계를 꾸려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며 어렵게 살 필요가 있습니까?”

그리하여 사마상여는 문군과 함께 임공으로 갔다. 그들은 타고 다녔던 거마를 모두 팔아서 집 한 채를 사서 술을 팔았다. 그리고 탁문군으로 하여금 화로에 앉아 술을 팔도록 하고, 상여 자신은 농부가 입는 쇠코잠방이를 걸지고 고용인과 함께 잡일을 하고 길거리에서 술잔을 닦았다. 탁왕손은 이 소문을 듣고 수치스러워 문을 걸어 잠그고 바깥에 나가지 않았다. 탁문군의 형제들과 집안의 장자()들은 번갈아가면서 탁왕손에게 말했다.

“당신께선 아들 하나와 딸 둘이 있고, 부족한 것은 재산이 아닙니다. 지금 탁문군은 이미 몸을 사마상여에게 허락했고, 사마상여는 오랫동안 재주가 뛰어난 자로 세상에 알려졌으니, 비록 가난하지만 그의 인품은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또한 그는 현령의 빈객인데, 어찌하여 그들을 욕되게 하십니까!”

결국 탁왕손은 어쩔 수 없이 탁문군에게 노복 1백 명, 돈 1백만 전과 시집갈 때의 준비했던 의복, 이불, 재물을 나눠주었다. 탁문군은 이에 사마상여와 성도로 돌아가 밭과 논을 사서 부자로 살았다.

 

 

居久之,蜀人楊得意為狗監,侍上。上讀子虛賦而善之,曰:「朕獨不得與此人同時哉!」得意曰:「臣邑人司馬相如自言為此賦。」上驚,乃召問相如。相如曰:「有是。然此乃諸侯之事,未足觀也。請為天子游獵賦,賦成奏之。」上許,令尚書給筆劄。相如以「子虛」,虛言也,為楚稱;「烏有先生」者,烏有此事也,為齊難;「無是公」者,無是人也,明天子之義。故空藉此三人為辭,以推天子諸侯之苑囿。其卒章歸之於節儉,因以風諫。奏之天子,天子大說。其辭曰:

楚使子虛使於齊,齊王悉發境內之士,備車騎之眾,與使者出田。田罷,子虛過詫烏有先生,而無是公在焉。坐定,烏有先生問曰:「今日田樂乎?」子虛曰:「樂。」「獲多乎?」曰:「少。」「然則何樂?」曰:「僕樂齊王之欲夸僕以車騎之眾,而僕對以雲夢之事也。」曰:「可得聞乎?」

 

子虛曰:「可。王駕車千乘,選徒萬騎,田於海濱。列卒滿澤,罘罔彌山,揜兔轔鹿,射麋腳麟。鶩於鹽浦,割鮮染輪。射中獲多,矜而自功。顧謂僕曰:『楚亦有平原廣澤遊獵之地饒樂若此者乎?楚王之獵何與寡人?』僕下車對曰:『臣,楚國之鄙人也,幸得宿衛十有餘年,時從出遊,遊於後園,覽於有無,然猶未能遍睹也,又惡足以言其外澤者乎!』齊王曰:『雖然,略以子之所聞見而言之。』 

「僕對曰:『唯唯。臣聞楚有七澤,嘗見其一,未睹其餘也。臣之所見,蓋特其小小者耳,名曰雲夢。雲夢者,方九百里,其中有山焉。其山則盤紆茀鬱,隆崇嵂崒;岑巖參差,日月蔽虧;交錯糾紛,上干青雲;罷池陂陁,下屬江河。其土則丹青赭堊,雌黃白坿,錫碧金銀,眾色炫燿,照爛龍鱗。其石則赤玉玫瑰,琳瑉琨珸,瑊玏玄厲,瑌石武夫。其東則有蕙圃衡蘭,芷若射干,穹窮昌蒲,江離麋蕪,諸蔗猼且。其南則有平原廣澤,登降陁靡,案衍壇曼,緣以大江,限以巫山。其高燥則生葴蓇苞荔,薛莎青薠。其卑濕則生藏莨蒹葭,東薔雕胡,蓮藕菰蘆,菴軒芋,物居之,不可勝圖。其西則有湧泉清池,激水推移;外發芙蓉蓤華,內隱钜石白沙。其中則有神龜蛟鼉,瑇瑁鱉黿。其北則有陰林巨樹,楩柟豫章,桂椒木蘭,蘗離硃楊,櫨梸梬栗,橘柚芬芳。其上則有赤猨蠷蝚,鵷雛孔鸞,騰遠射干。其下則有白虎元豹,蟃蜒貙豻,兕象野犀,窮奇獌狿。 

「『於是乃使專諸之倫,手格此獸。楚王乃駕馴駁之駟,乘雕玉之輿,靡魚須之橈旃,曳明月之珠旗,建干將之雄戟,左烏嗥之雕弓,右夏服之勁箭;陽子驂乘,纖阿為禦;案節未舒,即陵狡獸,轔邛邛,蹵距虛,軼野馬而?騊駼,乘遺風而射遊騏;儵眒淒浰,靁動熛至,星流霆擊,弓不虛發,中必決眥,洞胷達腋,絕乎心繫,獲若雨獸,揜草蔽地。於是楚王乃弭節裴回,翱翔容與,覽乎陰林,觀壯士之暴怒,與猛獸之恐懼,徼受?詘,殫睹衆物之變態。 

「『於是鄭女曼姬,被阿錫,揄紵縞,襍纖羅,垂霧縠;襞積褰縐,紆徐委曲,郁橈谿穀;衯衯裶裶,揚袘恤削,蜚纖垂髾;扶與猗靡,噏呷萃蔡,下摩蘭蕙,上拂羽蓋,錯翡翠之威蕤,繆繞玉綏;縹乎忽忽,若神仙之仿佛。 

「『於是乃相與獠於蕙圃,媻珊勃窣上金隄,揜翡翠,射鵕䴊,微矰出,纖繳施,弋白鵠,連駕鵝,雙鶬下,玄鶴加。怠而後發,游於清池;浮文鷁,揚桂枻,張翠帷,建羽蓋,罔瑇瑁,釣紫貝;摐金鼓,吹鳴籟,榜人歌,聲流喝,水蟲駭,波鴻沸,湧泉起,奔揚會,礧石相擊,硠硠潏潏,若雷霆之聲,聞乎數百里之外。 

「『將息獠者,擊靈鼓,起烽燧,車案行,騎就隊,纚乎淫淫,班乎裔裔。於是楚王乃登陽雲之臺,泊乎無為,澹乎自持,勺藥之和具而後禦之。不若大王終日馳騁而不下輿,脟割輪淬,自以為娛。臣竊觀之,齊殆不如。』於是王默然無以應僕也。」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촉()나라 사람 양득의()가 구감()이 되어 무제()를 섬기게 되었다. 그때 마침 무제는 「자허부」를 읽고 그것을 칭찬하며 이렇게 한탄했다. “짐은 어찌 이 사람과 동 시대에 살지 못했던가!”

양득의는 말했다. “신의 마을 사람 중 사마상여라는 자가 있는데, 자신이 ‘자허부’를 지었다고 합니다.” 무제는 놀라며 곧 상여를 불러 물었다. 상여가 이렇게 대답했다. “자허부는 제가 지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는 제후의 일에 대해 말한 것으로 황제께서 볼 만한 것이 못됩니다. 청컨대 황제를 위해 「유렵부()」를 짓게 해주시면 부()가 완성되는 대로 바치겠습니다.”

무제는 허락하고, 상서()에게 사마상여에게 붓과 찰()을 주도록 명했다. 사마상여는 ‘비었다’는 뜻인 ‘자허()’라는 가공인물을 내세워 초()나라의 아름다움을 칭찬했고,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오유선생()’이란 가공인물을 형상화하여 제()나라를 위해 초나라를 비난했다. 또 ‘이 사람은 없다’는 뜻으로 ‘무시공()’이란 가공인물을 만들어 황제의 대의()를 밝히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 세 사람의 가공인물을 빌려서 말을 만들어 황제와 제후의 원유()를 미루어 논하고, 그 마지막 장()에서 절약과 검소함을 논하여 이것으로써 풍간()하려 했다.

이윽고 황제에게 이글들이 올리자 황제가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초나라는 자허()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제나라 왕은 나라 안의 선비들을 모두 불러 엄청난 규모의 거마를 갖추어 사신과 더불어 사냥을 나갔다. 사냥이 끝나자, 자허는 오유선생에게 들러서 사냥에 대한 자랑을 했다. 그 깨 마침 무시공이 있었는데, 모두 좌정()했다. 오유선생이 자허에게 물었다. ‘오늘 사냥은 즐거웠습니까?’ 자허가 대답했다. ‘즐거웠습니다.’ 또 ‘많이 잡았습니까?’라고 묻자, 대답하길 ‘적게 잡았습니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즐거웠습니까?’라고 되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제나라 왕이 저에게 수많은 거마들을 동원하여 사냥을 하면서 제나라의 위세를 자랑하고자 한 것을 제가 운몽()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응답한 것이 즐거웠던 것입니다.’ ‘제가 그것에 대해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이에 자허가 말했다. ‘네.’ 제나라 왕은 천승의 수레와 만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해안가로 사냥을 나갔습니다. 병졸들이 계곡과 늪에 가득 찼고, 그물은 온 산에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토끼를 덮쳐잡고 사슴을 수레바퀴로 깔아 잡았습니다. 또 고라니를 활로 쏘아 맞추고 기린을 발을 걸어 넘어뜨렸습니다. 갯벌을 어지럽게 달린 수레바퀴는 찢긴 짐승의 피로 물들었고, 활로 쏘아 맞혀 포획한 사냥감이 대단히 많았습니다. 제나라 왕은 자신의 공을 자랑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나라 역시 평원과 넓은 늪지가 있어 이와 같은 풍요로운 사냥을 즐길 수 있겠소? 초나라 왕의 사냥은 나의 사냥솜씨와 비교하면 어떻소?’

저는 수레에서 내려와 대답하길 ‘신은 초나라의 비루한 사람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초나라 궁궐에서 10여 년을 숙위(宿)하면서 때로는 왕을 모시고 종종 후원()에 들어가 사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보았고 어떤 때는 보지 못하여 두루 다 보았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 어찌 궁궐 밖의 사냥터를 택()에 대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제나라 왕이 말하길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대가 보고 들은 것만 말해보시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네, 신은 초나라에는 일곱 개의 택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중에 신은 하나를 보았고, 나머지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신이 본 것은 대체로 그중에서 특히 가장 작은 것으로 운몽()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운몽은 사방 9백리이고, 그 가운데 산이 있습니다. 그 산세는 구불구불하고 숲은 울창합니다. 봉우리는 높이 치솟아 험준하고, 암석이 들쑥날쑥하여 해와 달을 가려 이지러지게 합니다. 서로 교차하고 어지러이 뒤섞여 위로는 푸른 구름이 솟구치고, 밑으로는 산비탈은 느슨하게 경사가 져서 그 끝이 강과 바다로 이어집니다.

그곳의 흙은 단청(), 자악(), 자황(), 백부(), 석벽(), 금은() 등으로서 여러 가지 색깔로 광채가 나서 용의 비늘처럼 빛났습니다. 그곳의 돌로는 적옥(), 매괴(), 임민(), 곤오(), 감륵(), 현려(), 연석(), 무부() 등이 있습니다. 그 동쪽으로는 혜포()가 있어 형란(), 지약(), 사간(), 궁궁(), 창포(), 강리(), 미무(), 감자(), 박차() 등의 향초나 약초가 납니다.

그 남쪽으로는 드넓은 평원과 깊은 계곡이 있어 오르고 내림이 구불구불 구부러지고 길며, 움푹 패어 들어가고 편편하게 넓게 퍼쳐지기도 하고 장강()에 잇닿아 멀리 무산()에서 끝이 납니다. 높고 건조한 곳에는 짐(), 사, 포(), 려(), 설(), 사(), 청번()이 나고, 그 낮고 습한 곳에는 장량(), 겸가(), 동장(), 조호(), 연우(), 고로(), 암려(▩), 헌우()가 나는데, 온갖 것이 다 모두 모여 있어서 모두 묘사할 수 없습니다.

그 서쪽에는 샘물이 솟아나 생긴 맑은 못이 있고, 급류가 서로 떠밀듯 흘러갑니다. 그 밖으로는 연꽃, 마름꽃들이 만발해 있고, 그 안쪽으로 커다란 바위와 흰모래를 품고 있습니다. 또 연못 속에는 신령스러운 거북과 교룡, 악어, 대모(), 별원(黿) 등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또 그 북쪽으로는 울창한 숲과 거대한 나무들이 있고, 그 사이에 편남(), 예장(), 계초(), 목란(), 벽리(), 주양(), 사리, 영률(), 귤유() 등이 향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들 위에는 적원(), 구유(), 원추(), 공작(), 난조(), 등원(), 사간() 등이 살고 있습니다. 또 그 나무 밑에는 백호(), 현표(), 만연(), 추(), 한(), 시상(), 야서(), 궁기(), 만연() 등의 야생짐승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전제()와 같은 용사들로 하여금 이러한 맹수들을 맨손으로 떼려잡도게 합니다. 초나라 왕은 옥으로 장식한 길들인 박() 네 마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물고기 수염으로 묶은 깃대의 큰 깃발과 명월주()의 깃발을 길게 바람에 날립니다. 간장()의 예리한 창을 높이 세우고 오고()에 조각한 활을 왼쪽에, 하()나라 화살 통에 모진 화살을 오른쪽에 담아두었습니다. 양자()는 수레를 같이 타고 섬아()가 수레를 몹니다. 짐승이 달리는 속도를 고려하여 아직 충분히 달리기도 전에 빠르고 사나운 짐승을 따라잡습니다.

그리하여 공공()을 깔아 죽이고 거허()를 짓밟아서 잡습니다. 야생마를 추월해 도도()를 수레 축의 머리로 들이받아 잡습니다. 천리마 유풍()을 타고 질주하는 기()를 쏘아 죽입니다. 수레와 말은 우레와 같이 날쎄게 움직이며 질풍과 같이 빨라서, 유성처럼 흐르고 벼락처럼 칩니다. 활은 헛되이 발사하지 않고, 명중시키면 반드시 짐승의 눈 꼬리를 찢거나 가슴을 관통해 겨드랑이를 지나 심장의 힘줄을 끊습니다. 이렇게 사냥한 짐승은 마치 비가 쏟아지는 듯해 풀을 덮고 땅을 가립니다.

그때 초나라 왕은 말고삐를 잡고 천천히 배회하며, 새가 날개를 펴고 날듯이 유연하게 소요하며 그늘진 숲을 살피어 장수들의 분노하는 모습과 맹수를 두려워하는 모양을 살핍니다. 앞을 가로 막는 짐승들 중에 힘히 다해 지친 것을 사로잡아 여러 생물의 다양한 자태를 골고루 살핍니다.

그러면 정()나라의 아름다운 여인들은 부드러운 비단을 두르고 가는 삼베와 비단으로 만든 치마를 끌고 각양각색의 비단을 몸에 입고 안개처럼 엷은 비단을 늘어뜨립니다. 그녀들의 주름잡인 옷은 마치 나무가 우거진 깊숙한 골짜기처럼 그 모양이 겹쳐 구불구불하지만 긴 소맷자락은 정연해 가지런하고, 섬()은 날리고 소()는 드리웠습니다.

수레를 붙들고 공손히 따라가면서 옷이 날려 사각사각 하고 소리를 냅니다. 옷자락 아래로는 난초와 혜초()에 스치고 위로는 깃털로 장식한 수레 위의 비단 우산을 쓸고, 비취와 새털로 만든 목걸이에 구슬로 장식한 수레의 끈이 걸리며, 가볍게 솟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지니 선녀의 모습을 방불케 합니다.

그러면 모두가 함께 혜포()로 가서 사냥을 합니다. 살금살금 천천히 걸어서 견고한 제방 위를 기어 올라가 물총새를 덮쳐잡고 화살을 쏘아 준의()를 잡고, 짧은 활에 가는 실을 매어 높은 하늘의 흰 고니를 맞추고, 잇달아 거위를 연달아서 잡으며 학 두 마리를 쏘아 떨어뜨리는데, 검은 학을 거기에 보태 떨어지는 모양은 볼 만합니다. 사냥놀이에 지치면 맑은 못에서 노닙니다.

물새의 모양을 그린 배를 띄우고 계수나무 삿대를 올리고 새털로 장식한 포장을 치고 날개로 장식한 덮개를 세우고 대모()를 그물질하며 자패()를 낚습니다. 황금 북을 치고 퉁소를 불면 사공이 노래를 부릅니다. 그 노랫소리는 여운이 있어 물고기들이 놀랍니다. 물결이 크게 끓어오르고 내뿜는 샘물이 솟아나서 한데 합쳐 소용돌이치니, 물속의 돌들이 서로 부딪쳐 낭랑하게 울리고 천둥벼락처럼 울려 수 백 리 밖에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장차 사냥꾼들에게 휴식을 시키려고 북을 둥둥 치고 신호의 깃발을 들면, 수레는 행렬을 정돈하고 기마는 대열에 들어섭니다. 기다랗게 잇달아 줄을 지어 서로 무리를 이룹니다. 초나라 왕은 양운대()로 올라 편안히 좌정하고 있다가 작약으로 오미()를 조화시켜 요리한 음식을 갖춘 뒤에 그것을 먹습니다.

그것은, 대왕께서 온종일 달리며 수레에서 내리지도 않고 수레바퀴에다 피를 물들인 채 산 고기를 잘라 모닥불을 피워 구워 소금에 찍어 먹으며 스스로 즐겁다고 모습과 같지 않습니다. 신이 가만히 살펴보니, 제나라는 아마 초나라만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제나라 왕은 입을 다물고 저에게 아무 대답도 못했습니다.”

 

 

烏有先生曰:「是何言之過也!足下不遠千里,來況齊國,王悉發境內之士,而備車騎之眾,以出田,乃欲戮力致獲,以娛左右也,何名為誇哉!問楚地之有無者,原聞大國之風烈,先生之餘論也。今足下不稱楚王之德厚,而盛推雲夢以為高,奢言淫樂而顯侈靡,竊為足下不取也。必若所言,固非楚國之美也。有而言之,是章君之惡;無而言之,是害足下之信。章君之惡而傷私義,二者無一可,而先生行之,必且輕於齊而累於楚矣。且齊東陼巨海,南有琅邪,觀乎成山,射乎之罘,浮勃澥,游孟諸,邪與肅慎為鄰,右以湯穀為界,秋田乎青丘,傍徨乎海外,吞若雲夢者八九,其於胸中曾不蒂芥。若乃俶儻瑰偉,異方殊類,珍怪鳥獸,萬端鱗萃,充仞其中者,不可勝記,禹不能名,契不能計。然在諸侯之位,不敢言遊戲之樂,苑囿之大;先生又見客,是以王辭而不復,何為無用應哉!」 

 

無是公听然而笑曰:「楚則失矣,齊亦未為得也。夫使諸侯納貢者,非為財幣,所以述職也;封疆畫界者,非為守禦,所以禁淫也。今齊列為東籓,而外私肅慎,捐國逾限,越海而田,其於義故未可也。且二君之論,不務明君臣之義而正諸侯之禮,徒事爭游獵之樂,苑囿之大,欲以奢侈相勝,荒淫相越,此不可以揚名發譽,而適足以貶君自損也。且夫齊楚之事又焉足道邪!君未睹夫巨麗也,獨不聞天子之上林乎? 

「左蒼梧,右西極,丹水更其南,紫淵徑其北;終始霸滻,出入涇渭;酆鄗潦潏,紆餘委蛇,經營乎其內。蕩蕩兮八川分流,相背而異態。東西南北,馳騖往來,出乎椒丘之闕,行乎洲淤之浦,徑乎桂林之中,過乎泱莽之野。汨乎渾流,順阿而下,赴隘陝之口。觸穹石,激堆埼,沸乎暴怒,洶湧滂晞,滭浡滵汩,湢測泌瀄,橫流逆折,轉騰潎洌,澎濞沆瀣,穹隆雲撓,蜿灗膠戾,逾波趨浥,蒞蒞下瀨,批壧旻壅,餎揚滯沛,臨坻注壑,瀺灂霣墜,湛湛隱隱,砰磅訇潏,潏潏淈淈,湁潗鼎沸,馳波跳沫,汩槃漂疾,悠遠長懷,寂漻無聲,肆乎永歸。然後灝溔潢漾,安翔徐徊,翯乎滈滈,東注大湖,衍溢陂池。於是乎蛟龍赤螭,靧嚲螹離,鰅騄鰬魠,禺禺鱋魶,揵鰭擢尾,振鱗奮翼,潛處於深岩;魚鱉讙聲,萬物眾夥,明月珠子,玓瓅江靡,蜀石黃鶗,水玉磊砢,磷磷爛爛,采色霅旰,叢積乎其中。鴻鵠鷫鴇,?鸀鳿,??目,煩鶩鷛??鵁鸕,羣浮乎其上。汎淫氾濫,隨風澹淡,與波搖蕩,掩薄草渚,唼喋菁藻,咀嚼蓤藕。 

 

「於是乎崇山巃嵸,崔巍嵳峩,深林钜木,嶄巖嵾嵳,九嵏、嶻嶭,南山峩峩,巖陀甗錡,嶊崣崫崎,振谿通穀,蹇產溝瀆,谽呀豁閜,阜陵別島,崴磈嵔瘣,丘墟崫?,隱轔鬱?,登降施靡,陂池貏豸,沇溶淫鬻,散渙夷陸,亭臯千里,靡不被築。掩以綠蕙,被以江離,糅以蘼蕪,雜以流夷。尃結縷,欑戾莎,揭車衡蘭,槀本射干,茈薑蘘荷,葴橙若蓀,鮮枝黃礫,蔣芧青薠,布濩閎澤,延曼太原,麗靡廣衍,應風披靡,吐芳揚烈,鬱鬱斐斐,衆香發越,肹蠁布寫,瞹苾勃。 「於是乎周覽泛觀,瞋盻軋沕,芒芒恍忽,視之無端,察之無崖。日出東沼,入於西陂。其南則隆冬生長,踴水躍波;獸則?旄獏犛,沈牛麈麋,赤首圜題,窮奇象犀。其北則盛夏含凍裂地,涉冰揭河;獸則麒麟角?,騊駼橐駞,蛩蛩驒騱,駃騠驢騾。 

 

「於是乎離宮別館,彌山跨谷,高廊四注,重坐曲閣,華榱璧璫,輦道纚屬,步朓周流,長途中宿。夷顒築堂,累台增成,岩穾洞房,俯杳眇而無見,仰攀橑而捫天,奔星更於閨闥,宛虹拖於楯軒。青虯蚴蟉於東箱,象輿婉蟬於西清,靈圉燕於間觀,偓佺之倫暴於南榮,醴泉湧於清室,通川過乎中庭。槃石裖崖,嶔岩倚傾,嵯峨磼酺,刻削崢嶸,玫瑰碧琳,珊瑚叢生,渼玉旁唐,瑸斒文鱗,赤瑕駁犖,雜臿其間,垂綏琬琰,和氏出焉。 

 

「於是乎盧橘夏孰,黃甘橙楱,枇杷橪柿,楟柰厚朴,梬棗楊梅,櫻桃蒲陶,隱夫鬱棣,榙?荔枝,羅乎後宮,列乎北園。䝯丘陵,下平原,揚翠葉,杌紫莖,發紅華,秀硃榮,煌煌扈扈,照曜钜野。沙棠櫟櫧,華氾弇櫨,留落胥餘,仁頻並閭,欃檀木蘭,豫章女貞,長千仞,大連抱,夸條直暢,實葉葰茂,攢立叢倚,連卷累佹,崔錯癹骫,阬衡閜砢,垂條扶於,落英幡纚,紛容蕭蔘,旖旎從風,瀏莅芔吸,蓋象金石之聲,管籥之音。柴池茈虒,旋環後宮,雜遝累輯,被山緣谷,循阪下隰,視之無端,究之無窮。 

 

「於是玄猿素雌,蜼玃飛鸓,蛭蜩蠗蝚,螹胡豰蛫,棲息乎其間;長嘯哀鳴,翩幡互經,夭蟜枝格,偃蹇杪顛。於是乎隃絕梁,騰殊榛,捷垂條,踔稀間,牢落陸離,爛曼遠遷。 

「若此輩者,數千百處。嬉游往來,宮宿館舍,庖廚不徙,後宮不移,百官備具。 

「於是乎背秋涉冬,天子校獵。乘鏤象,六玉虯,拖蜺旌,靡雲旗,前皮軒,後道遊;孫叔奉轡,衛公驂乘,扈從橫行,出乎四校之中。鼓嚴簿,縱獠者,江河為阹,泰山為櫓,車騎雷起,隱天動地,先後陸離,離散別追,淫淫裔裔,緣陵流澤,雲布雨施。」 

「生貔豹,搏豺狼,手熊羆,足野羊,蒙鶡蘇,絝白虎,被豳文,跨野馬。陵三顒之危,下磧曆之坻;俓鷟赴險,越壑厲水。推蜚廉,弄解豸,格瑕蛤,鋋猛氏,罥騕褭,射封豕。箭不苟害,解脰陷腦;弓不虛發,應聲而倒。於是乎乘輿彌節裴回,翱翔往來,睨部曲之進退,覽將率之變態。然後浸潭促節,儵夐遠去,流離輕禽,槅履狡獸,轊白鹿,捷狡兔,軼赤電,遺光燿,追怪物,出宇宙,彎繁弱,滿白羽,射遊梟,櫟蜚虡,擇肉後發,先中命處,弦矢分,藝殪僕。 

 

「然後揚節而上浮,陵驚風,曆駭梠,乘虛無,與神俱,轔玄鶴,亂昆雞。遒孔鸞,促鵕璘,拂鷖鳥,捎鳳皇,捷鴛雛,掩焦明。 

「道盡塗殫,回車而還。招搖乎襄羊,降集乎北紘,率乎直指,闇乎反鄉。「道盡塗殫,回車而還。招搖乎襄羊,降集乎北紘,率乎直指,闇乎反鄉。蹶石,曆封巒,過乂鵲,望露寒,下棠梨,息宜春,西馳宣曲,濯鷁牛首,登龍台,掩細柳,觀士大夫之勤略,鈞獠者之所得獲。徒車之所轔轢,乘騎之所蹂若,人民之所蹈騃,與其窮極倦,驚憚慴伏,不被創刃而死者,佗佗籍籍,填阬滿谷,揜平彌澤。 

 

「於是乎遊戲懈怠,置酒乎昊天之台,張樂乎轇輵之宇;撞千石之鐘,立萬石之钜;建翠華之旗,樹靈鼉之鼓。奏陶唐氏之舞,聽葛天氏之歌,千人唱,萬人和,山陵為之震動,川穀為之蕩波。巴俞宋蔡,淮南于遮,文成顛歌,族舉遞奏,金鼓迭起,鏗鎗鐺剸,洞心駭耳。荊吳鄭衛之聲,韶濩武象之樂,陰淫案衍之音,鄢郢繽紛,激楚結風,俳優侏儒,狄鞮之倡,所以娛耳目而樂心意者,麗靡爛漫於前,靡曼美色於後。 

 

「若夫青琴宓妃之徒,絕殊離俗,姣冶嫺都,靚莊刻飭,便嬛綽約,柔橈嬛嬛,娬媚姌嫋;抴獨繭之褕袘,眇閻易以戌削,編姺徶蘋,與世殊服;芬香漚鬱,酷烈淑鬱;皓齒粲爛,宜笑旳皪;長眉連娟,微睇釂藐;色授魂與,心愉於側。 

 

「於是酒中樂酣,天子芒然而思,似若有亡。曰:『嗟乎,此泰奢侈!朕以覽聽餘「於是酒中樂酣,天子芒然而思,似若有亡。曰:『嗟乎,此泰奢侈!朕以覽聽餘間,無事棄日,順天道以殺伐,時休息於此,恐後世靡麗,遂往而不反,非所以為繼嗣創業垂統也。』於是乃解酒罷獵,而命有司曰:『地可以墾辟,悉為農郊,以贍萌隸;隤牆填塹,使山澤之民得至焉。實陂池而勿禁,虛宮觀而勿仞。發倉廩以振貧窮,補不足,恤鰥寡,存孤獨。出德號,省刑罰,改制度,易服色,更正朔,與天下為始。』 

 

「於是曆吉日以齊戒,襲朝衣,乘法駕,建華旗,鳴玉鸞,遊乎六藝之囿,騖乎仁義之塗,覽觀春秋之林,射貍首,兼騶虞,弋玄鶴,建干戚,載雲鶒,揜群雅,悲伐檀,樂樂胥,修容乎禮園,翱翔乎書圃,述易道,放怪獸,登明堂,坐清廟,恣群臣,奏得失,四海之內,靡不受獲。於斯之時,天下大說,鄉風而聽,隨流而化,喟然興道而遷義,刑錯而不用,德隆乎三皇,功羨於五帝。若此,故獵乃可喜也。 

 

「若夫終日暴露馳騁,勞神苦形,罷車馬之用,抏士卒之精,費府庫之財,而無德厚之恩,務在獨樂,不顧眾庶,忘國家之政,而貪雉兔之獲,則仁者不由也。從此觀之,齊楚之事,豈不哀哉!地方不過千里,而囿居九百,是草木不得墾辟,而民無所食也。夫以諸侯之細,而樂萬乘之所侈,僕恐百姓之被其尤也。」 

 

於是二子愀然改容,超若自失,逡巡避席曰:「鄙人固陋,不知忌諱,乃今日見教,謹聞命矣。」

賦奏,天子以為郎。無是公言天子上林廣大,山谷水泉萬物,乃子虛言楚雲夢所有甚眾,侈靡過其實,且非義理所尚,故刪取其要,歸正道而論之。

相如為郎數歲,會唐蒙使略通夜郎西僰中,發巴蜀吏卒千人,郡又多為發轉漕萬餘人,用興法誅其渠帥,巴蜀民大驚恐。上聞之,乃使相如責唐蒙,因喻告巴蜀民以非上意。檄曰:

 

告巴蜀太守:蠻夷自擅不討之日久矣,時侵犯邊境,勞士大夫。陛下即位,存撫天下,輯安中國。然後興師出兵,北征匈奴,單于怖駭,交臂受事,詘膝請和。康居西域,重譯請朝,稽首來享。移師東指,閩越相誅。右吊番禺,太子入朝。南夷之君,西僰之長,常效貢職,不敢怠墮,延頸舉踵,喁喁然皆爭歸義,欲為臣妾,道裏遼遠,山川阻深,不能自致。夫不順者已誅,而為善者未賞,故遣中郎將往賓之,發巴蜀士民各五百人,以奉幣帛,衛使者不然,靡有兵革之事,戰鬥之患。今聞其乃發軍興制,驚懼子弟,憂患長老,郡又擅為轉粟運輸,皆非陛下之意也。當行者或亡逃自賊殺,亦非人臣之節也。

 

夫邊郡之士,聞烽舉燧燔,皆攝弓而馳,荷兵而走,流汗相屬,唯恐居後,觸白刃,冒流矢,義不反顧,計不旋踵,人懷怒心,如報私讎。彼豈樂死惡生,非編列之民,而與巴蜀異主哉?計深慮遠,急國家之難,而樂盡人臣之道也。故有剖符之封,析珪而爵,位為通侯,居列東第,終則遺顯號於後世,傳土地於子孫,行事甚忠敬,居位甚安佚,名聲施於無窮,功烈著而不滅。是以賢人君子,肝腦塗中原,膏液潤野草而不辭也。今奉幣役至南夷,即自賊殺,或亡逃抵誅,身死無名,諡為至愚,恥及父母,為天下笑。人之度量相越,豈不遠哉!然此非獨行者之罪也,父兄之教不先,子弟之率不謹也;寡廉鮮恥,而俗不長厚也。其被刑戮,不亦宜乎! 

 

陛下患使者有司之若彼,悼不肖愚民之如此,故遣信使曉喻百姓以發卒之事,因數之以不忠死亡之罪,讓三老孝弟以不教誨之過。方今田時,重煩百姓,已親見近縣,恐遠所谿穀山澤之民不遍聞,檄到,亟下縣道,使咸知陛下之意,唯毋忽也。

相如還報。唐蒙已略通夜郎,因通西南夷道,發巴、蜀、廣漢卒,作者數萬人。治道二歲,道不成,士卒多物故,費以巨萬計。蜀民及漢用事者多言其不便。是時邛筰之君長聞南夷與漢通,得賞賜多,多欲原為內臣妾,請吏,比南夷。天子問相如,相如曰:「邛、筰、厓、駹者近蜀,道亦易通,秦時嘗通為郡縣,至漢興而罷。今誠複通,為置郡縣,愈於南夷。」天子以為然,乃拜相如為中郎將,建節往使。副使王然於、壺充國、呂越人馳四乘之傳,因巴蜀吏幣物以賂西夷。至蜀,蜀太守以下郊迎,縣令負弩矢先驅,蜀人以為寵。於是卓王孫、臨邛諸公皆因門下獻牛酒以交驩。卓王孫喟然而歎,自以得使女尚司馬長卿晚,而厚分與其女財,與男等同。司馬長卿便略定西夷,邛、筰、厓、駹、斯榆之君皆請為內臣。除邊關,關益斥,西至沬、若水,南至牂柯為徼,通零關道,橋孫水以通邛都。還報天子,天子大說。

 

오유선생이 자허의 이야기를 다 듣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의 말씀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선생은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제나라에 오는 영광을 주셨으므로, 제나라 왕이 경내의 선비를 모두 불러서 수레와 말의 무리를 정돈해 나가서 사냥을 했던 것입니다. 힘을 합쳐 짐승을 잡는 데 힘써서 선생을 즐겁게 하려고 했습니다. 어찌해 자랑을 떠벌린다고 하십니까! 초나라에 그러한 곳이 있는지의 여부를 질문한 것은 초나라와 같은 큰 나라의 풍속의 아름다움과 선생의 아름답고 훌륭한 이야기를 듣기 듣기를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선생은 초나라 왕의 후한 덕을 칭송하지 아니하고, 다만 운몽의 광대함만을 추켜세워서 높고 사치스러움을 자랑하며 음탕함과 사치스러움을 드러내었습니다.

내가 가만히 선생을 위해 이러한 태도가 애석한 일이라고 봅니다. 반드시 선생이 말한 바와 같다면 본디 그것은 초나라의 아름다움이 아닌 것입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어서 말했다면 그것은 초나라 왕의 악덕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선생의 신의를 해치는 것입니다. 선생의 악덕을 드러내고 사신의 신의를 손상시키는 것은 두 가지 다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없는데, 선생이 굳이 그런 일을 한 것은 반드시 제나라를 가볍게 여기고 초나라에 누를 끼치게 하는 태도입니다.”

“제나라는 동쪽으로는 대해가 있고 남쪽으로는 낭야산()이 있습니다. 성산()에서 유람하고 지부산()에서 활을 쏘며, 발해()에서 배를 띄우고, 맹제()에서 노닐며, 옆으로 숙신국()과 이웃했고, 오른쪽으로는 탕곡()으로써 경계를 삼고 있습니다. 가을에는 청구산()에서 사냥하고 자유롭게 바다 밖에서 소요하면 운몽과 같은 사냥터 따위는 여덟 개나 아홉 개쯤 삼켜도 그 가슴속에서는 겨자씨만큼도 걸릴 것이 없습니다. 비범하고 탁월한 큰 인물과 다른 나라의 특이하고 기이한 조수() 등 만물이 비늘처럼 많이 모여, 그 가운데 충만한 것을 말한다면 모두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비록 우()임금일지라도 모두 이름 붙일 수는 없고, 설()일지라도 그 수를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합니다. 그렇지만 제나라 왕은 제후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감히 유희의 즐거움이라든지 원유()의 광대함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생은 또 빈객으로서 접대할 손님이었기 때문에 제나라 왕은 선생의 말에 대구하지 않는 것이지, 어찌 응답할 것이 없어서 그랬겠습니까?”

무시공이 오유선생이 하는 말을 듣고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초나라의 이야기는 사리에 맞지 않지만, 제나라의 이야기 또한 당연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제후로 하여금 공물을 바치게 하는 것은 재물과 보배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제후가 천자에 대한 직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흙을 쌓아 올려서 경계를 만드는 것도 수비와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사악한 것을 금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제나라는 제후의 대열에 서서 동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밖으로는 숙신과 사사로이 왕래해 나라를 버리고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서까지 사냥을 즐기는 행위는 제후로써 할 도리가 아닙니다.

또 두 선생의 논쟁은 군신의 도리를 밝혀서 제후의 예의를 바로잡는 데에 힘쓰지 않고, 헛되이 사냥의 즐거움과 동산의 큰 것을 다투는 것을 일로 삼으며, 사치스러운 것을 가지고 서로 이기려고만 합니다. 또 황음한 행동을 가지고 서로 우월함을 자랑하니, 이것은 이름을 드러내고 칭찬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군주의 명성을 폄하하고 자신을 손상시키기에 적합할 뿐입니다. 그리고 제나라와 초나라 같은 소국의 일에 대해 어찌 그리 할 말이 많습니까!

선생들은 아직 저 거대하고 화려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까? 유독 황제의 상림원()의 이야기도 듣지 못했단 말씀입니까?

“상림원의 동쪽에는 창오()와 오른쪽에는 서극(西)이 있고, 단수()는 다시 그 남쪽에 있고, 자연()은 그 북쪽을 가로질렀습니다. 패수()와 산수()는 수원()과 수류()가 다 상림원 안에 있고, 경수()와 위수()는 다 상림원 밖에서 들어와서 다시 원() 밖으로 나갑니다.

풍수(), 호수(), 요수(), 휼수() 등의 네 강물이 굽이굽이 뒤틀려 상림원 안을 돌고 있습니다. 탕탕()하게 흘러서 여덟 개의 냇물로 갈라집니다. 서로 등지고 각기 형태를 달리하면서 동서남북으로 뒤섞여서 흐릅니다. 다시 산초나무가 자라고 있는 언덕 사이로 나오고 섬의 물기슭에 이르러 계수나무 숲속을 가로지르고, 이윽고 끝이 안 보이는 망망한 평원을 유유히 흘러갑니다.

다시 강물은 세차게 흐르는 급류로 변하여 높은 구릉을 따라 밑으로 흘러 좁은 산구() 사이를 뚫고 달려갑니다.

이 물결은 큰 돌에 부딪치고 돌출한 모래 언덕에 충돌해 부글부글 끓어올라 노하여 소리 지릅니다. 물이 뛰고 물이 되돌아오고 뭉치어 솟아오르는가 하면 금방 또 달아나고 서로 육박하며 서로 칩니다. 옆으로 퍼지며 거꾸로 꺾이고 중첩해서 가볍게 달리고 소리가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부풀어 오는 물결은 갑자기 높았다가 낮았다가 하면서 뒷 물결은 앞 물결을 넘어서 푹 꺼진 곳으로 달려가고, 굉음을 내면서 급류가 되어 여울로 내려갑니다. 그러다가 바위를 치고 제방을 때리다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깨어져 흩어집니다.

망망한 물결은 작은 섬을 휘돌아 좁은 산곡으로 들어가 물결은 점점 완만해졌다가 가늘어졌다가 갑자기 높은 곳에 밑으로 떨어져 깊은 연못에 모여 큰물이 되어 쾅쾅, 콸콸하며 요란한 소리로 포효합니다. 다시 물살은 거대한 몸체를 뒤집어 공중으로 뛰어올라 가마솥의 끊는 물처럼 끓어오르고 포말을 일으키며 급하게 방향을 바꾸어 쏜살같이 치달려서 저 아득한 쪽에서 길게 흘러가고, 마침내 대호로 들어가서 형체와 소리도 없이 고요한 영겁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그런 다음에는 끝없이 망망한 바다와 같은 호수룰 서서히 선회하면서 흘러가는데 은빛의 섬광을 내뿜고 동쪽으로 흘러서 태호()에 들어가고 다시 넘친 물은 작은 못이나 호수로 흘러갑니다. 이곳에는 교룡(), 적리(), 긍몽, 점리(), 옹용(), 건탁(), 우우(), 허납() 등이 수중동물들이 지느러미를 흔들고 꼬리를 흔들며 비늘과 날개를 떨쳐 깊은 바위 속으로 잠깁니다. 물고기와 자라의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듯하고, 수중동물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명월()이라는 구슬이 강기슭에 반짝이고, 촉석(), 황연, 수정()의 덩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뒹굴면서 찬란한 광채를 번쩍이며 서로 비치어 물 가운데 더미를 지어 쌓여 있습니다. 홍곡(), 숙보(), 가아, 촉옥(鳿), 교청(), 환목, 번목(), 용거, 침자, 교로() 등 온갖 물새들이 물 위에서 떼를 지어 떠서 바람 따라 흔들리고 물결 따라 움직입니다. 풀이 우거진 물가로 몰려가서는 물풀을 쪼아 먹고 연과 마름을 씹습니다.

여기에 산은 높이 솟아 있는데, 산세가 험준하고 우람합니다 깊은 숲속에 수목은 울창해서 짙게 물들고 높고 낮아서 가지런하지 않습니다. 구종산은 높고 험준하며, 종남산()은 깎아지른 듯 가파릅니다. 바위 벼랑은 기이한 형상을 보이면서 높고 굽이지며 험준합니다. 시냇물은 계곡에 쏟아져 다시 골짜기를 통해 굽이굽이 시내를 이루었습니다. 공허한 큰 입을 벌린 크고 작은 언덕과 따로 떨어져 있는 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높고 험준하고 울퉁불퉁해 평탄하지 않습니다. 경사진 언덕과 섬들은 높고 낮은 곳이 급경사를 이루면서 멀리 이어집니다. 계곡 못은 괴수의 형상과 같고 물은 계곡으로 떨어져 왕성하게 흘러내리니 넓고 평탄한 평야에 이릅니다. 언덕 위 10리마다 하나씩 정자를 세워 천리에 뻗혔습니다. 그 어느 것도 다듬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향기 좋은 초록 색의 혜초()나 강리()로 뒤덮여 있고, 미무()와 유이()가 섞여 있으며, 결루()도 심어져 있고, 여사()도 모여 있으며, 게거(), 형란(), 고본(), 사간(), 자강(), 양하(), 짐증(), 약손(), 선지(), 황력(), 장모(), 청번()은 큰 못에 분포되어 있고 넓은 들에 널려 있어 서로 이어져 끝이 없고 넓은 들에 가득합니다. 넓게 퍼진 것이 서로 이러져 바람 따라 쓰러져 흔들리고 여러 가지 향기가 퍼져 바람에 실려서 사람의 마음속으로 스며듭니다.

여기서 경물()의 풍부함과 치밀함을 두루 살펴보면, 망망하고 황홀해 끝이 없고 한정이 없습니다. 해는 동쪽 못에서 나와서 서쪽 언덕으로 들어갑니다. 동산의 남쪽에는 기후가 따뜻해 엄동()에도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고 물이 생동하고 물결은 뛰놉니다. 짐승은 용, 모(), 맥리, 침우(), 주미(), 적수(), 환제(), 궁기(), 상서() 등이 있습니다.

그 북쪽에는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어 땅이 터집니다. 얼음 위를 걸어서 옷자락을 걷어들고 하수()를 건너게 됩니다. 그곳의 짐승으로는 기린(), 각단, 도도(), 낙타(), 공공(), 탄해(), 결제(), 여마(), 나마() 등이 있습니다.

게다가 이궁()과 별관()은 산에 가득하고 골짜기에 걸쳐 있습니다. 높다란 회랑은 사방으로 처마를 드리우고, 2층 누각과 굽은 주랑()이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단청한 서까래 위에 옥으로 장식해 임금의 수레가 갈 수 있는 길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첨하의 주랑은 길게 둘러져 있어서 그 길은 중간에 반드시 머물러야만 할 정도입니다. 종산을 평평하게 닦아서 집을 짓고, 높은 누대를 겹쳐 쌓아올려서 바위틈의 깊숙한 곳에 방을 꾸미니, 그곳에서는 아득히 멀어서 보이는 것이 없고, 쳐다보면 대들보가 높아 하늘을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유성은 궁궐 안의 작은 문을 지나가고, 무지개는 난간에 길게 걸려 있습니다.

그 사이에 청룡은 동상()에 꿈틀거리고, 상여(輿)는 서상(西)에 서립니다. 영어()는 고요한 집에서 휴식하고, 악전()의 무리는 남쪽 처마의 햇볕 속에 몸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단 샘물은 깨끗한 방 안에서 솟아오르고, 통과하는 냇물은 안뜰을 지나갑니다. 반석으로 벼랑을 가지런하게 끊어 세우고, 가지런하지 않은 작은 산을 닦고 높고 험준한 산봉우리를 정리하며 조각한 듯 기이한 천연석을 보존시킵니다. 매괴()와 벽림()의 구슬들과 산호()가 무더기로 더부룩하게 났고, 민옥()과 문석()에는 무늬진 비늘이 있습니다. 적옥()은 아롱진 무늬를 띠고 그 사이에 섞여 있습니다. 수수(), 완염(), 화씨벽()이 이곳에서 나옵니다.

여기에서 여름에 노귤()이 익고, 황감(), 유자(), 비파(), 소조(), 산리(), 후박(), 영조(), 양매(), 앵도(), 포도(), 은부(), 울체(), 답답, 여지()의 온갖 과일들이 후궁에 많이 있고, 북쪽 동산에 이어 있고, 언덕에 이어지고 평원으로 이어져 내려갑니다. 푸른 잎새와 붉은 줄기가 생동하는 그 사이에 붉은 꽃을 피웁니다. 붉은 꽃봉오리는 빼어나서 찬란하게 넓은 들에 비쳐 빛이 납니다. 사당(), 역저(), 화범(), 벽로(), 유락(), 서여(), 빈랑(), 종려(), 단(), 목란(), 예장(), 여정()의 진기한 나무들은 키가 큰 것은 천 길이나 되고 굵은 것은 아름드리가 됩니다.

꽃가지는 곧고 시원스러우며 열매와 잎은 크고 무성합니다. 모여 서로 뭉쳐서 서로 의지해 휘감기고 겹쳐 뒤엉켜 있는 것이 구불구불 서리고 뒤섞여서 헝클어져 있습니다. 꼿꼿하게 혹은 비스듬하게 척척 휘어진 가지 사이로 떨리는 꽃은 펄펄 나부낍니다. 바람은 나뭇가지를 울리고 금석()의 소리는 피리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이 여러 나무들이 길고 짧음이 가지런하지 않은 모습으로 후궁을 둘러싸고 떼를 지어 모여 있으며 뒤섞여 겹쳐 있습니다. 산을 덮고 골짜기를 수놓으며 언덕을 따라서 습지로 이어졌습니다. 이것은 보아도 끝이 없고 아무리 자세하게 관찰하려해도 끝이 없습니다.

여기에 현원(), 소자(), 유획(), 비류(), 질조(), 구유(), 점호()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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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궤()들이 그 사이에 서식하면서 길게 울부짖는가 하면 슬픈 소리로 웁니다. 훨훨 나는 듯 서로 지나가고,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교만한 몸짓을 하곤 합니다.

이에 다리가 없는 냇물을 뛰어넘으며, 우뚝 솟은 나무에 올라가서 늘어진 가지를 잡고 나뭇가지가 드문 곳을 훌쩍 뛰어 건넙니다. 그러면 짐승들은 어지럽게 흐트러지고 먼 데로 이동합니다.

이러한 곳이 수천 수백 곳입니다. 즐거이 유람하고 오가면서 궁궐에서 유숙하고 관()에서 손님 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요리장을 옮기는 일이 없고 후궁을 이동시키는 일이 없어도 가는 곳마다 온갖 것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로 접어들면, 천자가 목책을 만들어 사냥을 합니다. 상아로 장식한 수레를 타고 구슬로 장식한 용과 같은 백마 여섯 마리를 세웁니다. 오색 찬란한 깃발이 번득이며, 용과 호랑이를 구름처럼 그린 깃발이 나부낍니다. 혁거()는 앞에서 인도하고, 도거()와 유거()는 뒤를 따릅니다.

손숙()이 고삐를 잡고 위공()이 모셔서 태우고, 좌우 종횡으로 호위하며 따르면서 사방의 목책으로 나아갑니다. 북을 울려 행차를 엄중히 하고 사냥꾼을 내보냅니다. 강하()를 막아서 짐승을 가두며, 태산을 망루로 하고, 수레와 말은 우레와 같이 일어나서 하늘을 떨치고 땅을 움직이며 흩어져 쫓아갑니다. 떼지어 가는 모양이 언덕에 이어지고 못에 흘러내리며 구름처럼 퍼지고 비처럼 쏟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어 비(), 표()를 산 채로 잡고 승냥이와 이리를 두들겨서 잡으며 곰과 큰 곰을 손으로 잡으며, 산양()을 발로 차서 죽이며 할() 새의 꼬리를 모자처럼 쓰고 백호()의 가죽으로 바지를 만들어서 입고, 야생말을 타고 위태로운 언덕을 오르고 경사진 언덕을 내려가며 험준한 지름길을 달려서 구렁을 건너고 물을 건너서 비렴()을 방망이로 치고 채치()를 희롱하며, 하합()을 치고 맹씨()를 창으로 찌르고 신마()를 줄을 매서 붙듭니다. 봉시()를 쏘고 화살을 헛되이 쏘지 않습니다. 짐승의 목을 찌르고 뇌수를 부숩니다. 화살을 헛되게 쏘지 않습니다. 시위소리가 났는가 하면 어느새 짐승이 거꾸로 넘어져 있습니다.

그 사이에 천자의 수레는 깃대를 멈추고 배회합니다. 나는 듯이 왕래하면서 각 부대의 나아가고 물러남을 곁눈으로 바라보고 장수의 지휘하는 모습을 살핍니다. 그리고 서 점차로 깃대를 재촉해 아득히 멀리 떠나갑니다. 나는 새들은 놀라 날아 흩어지고, 교활한 짐승은 짓밟으며 흰 사슴을 깔아 죽이고 토끼를 재빨리 잡습니다. 신속하게 붉은 섬광을 앞질러 그 빛이 뒤에 남게 됩니다. 괴물을 따라 우주의 밖으로 나가고 번약()에 흰 깃이 달린 살을 가득히 메웁니다. 유효()를 쏘고 비허()를 칩니다. 살찐 놈을 골라서 겨누어 화살을 쏘는데 먼저 맞히기 전에 명중할 위치를 정하고 화살을 쏩니다. 화살이 활을 벗어나는가 하면 짐승은 벌써 쓰러집니다.

그런 다음에 깃발을 올려 다시 높게 띄워 공중에 나부끼게 해 강풍을 견디고, 허무()를 타고 천상에 올라서 신선과 함께 노니는 기분으로 현학()을 짓밟고 곤계()의 행렬을 혼란시키며 공작()과 난조()를 쫓고 준의를 재촉하며 예조()를 덮치고 봉황을 잡으며 원추()를 움켜잡고 초명()를 덮칩니다.

이윽고 더 나갈 길이 없는 곳에 이르러 수레를 돌려 돌아옵니다. 마음을 따라 소요하고 멀리 북쪽 끝에 내려 곧바로 가기도 하고 돌기도 하면서 석궐관()을 지나고 봉만관()을 거치며, 모작관()을 지나 노한관()을 바라보고, 당리궁()으로 내려옵니다. 의춘궁()에서 쉬고 서쪽으로 의곡궁()에 달려가며, 배를 우수()의 못에 씻고 용대()에 올라가 세류관()에서 쉽니다. 이 때 사대부의 근면함과 지략을 관찰하고, 사냥꾼의 포획물을 살펴봅니다. 보병과 수레가 밟고 갈아붙인 것과 승기()가 유린해 잡은 것과 백성들이 발로 밟아 잡은 것과 그밖에 짐승이 극도로 피로하고 놀라 엎드려 칼을 받지 않고 죽은 것이 뒤섞여 무수히 많습니다. 구덩이에 차고 골짜기에 가득해 평지를 덮고 못을 메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사냥놀이에 싫증이 나면 하늘처럼 높은 누대에 술을 벌여놓고 넓은 집에서 풍악을 아룁니다. 천섬 무게의 큰 종을 치고 만섬의 기둥을 세우며 비취의 날개털로 장식한 기를 세우고 악어 가죽의 북을 설치하고 갈천씨()의 노래를 듣습니다. 천 명이 부르면 만 명이 화답합니다. 산과 언덕은 그 소리에 진동하고, 냇물과 골짜기는 그 때문에 흔들려 물결이 일렁입니다.

파유()의 춤과 송()과 채() 나라의 음악, 회남()의 음악, 우차()의 곡(), 문성현()과 전현()의 노래를 한꺼번에 연주하기도 하고 교대로 연주하기도 합니다. 금(), 고()는 교대로 울립니다. 금석()의 소리와 태고()의 소리는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고 귀를 놀라게 합니다. 형(), 오(), 정(), 위()의 노랫소리와 '소()', '호()', '무()', '상()'의 음악과 주색에 흘러들어가는 속악()과 언(), 영()의 음악이 어지럽게 뒤섞여 일어나며 '격초()'와 '결풍()'이 있습니다. 배우(), 난쟁이가 있으며 적제()의 명창이 있어서 귀와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과 뜻을 기쁘게 합니다. 앞에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뒤에는 아름다운 미인들이 즐비하게 서 있습니다.

저 청금(), 복비()와 같은 무리는 절세미인이어서 세속을 초월했으며, 아름답고 우아하고 정숙합니다. 짙은 화장과 곱게 꾸민 모습은 경쾌하고 곱고 가냘프고 부드러우며 섬세하고 나긋나긋합니다. 비단 치마를 끌고 선 모습은 아름답고 기다란 옷매무새가 마치 그림을 그려놓은 것 같습니다.

걸을 때마다 옷이 물결치는 모양은 여느 세상의 옷과는 다릅니다. 아름다운 향기는 풍기어 맵고 향긋합니다. 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낸 모습은 웃음에 아주 어울리어 선명하게 빛이 납니다. 기다란 눈썹의 가늘게 굽어진 눈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 곁눈질을 보낸답니다. 저편의 눈빛이 오고 이편의 혼이 가서 이 마음 그 곁에서 즐깁니다. 이에 술자리는 무르익고 풍악은 한창 흥을 돋우며 천자는 망연히 생각에 잠깁니다. 그리하여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이 있는 것 같은 심경이 되어 이렇게 말합니다. ‘아아, 이것은 너무 지나친 사치로다! 짐은 정사를 보고 듣는 것 외에는 한가롭게 날을 보내는 것이 없이 가을철과 겨울철에는 사냥을 즐기면서 때로 여기서 휴식을 취할 뿐이다. 그러나 아마 후세의 자손들이 사치하고 화려한 데에 흘러서 마침내는 처음의 근검과 순박한 데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될까 두렵다. 이는 후세의 자손들을 위해 대업을 일으켜 전통을 남기는 선조의 본 뜻이 아니다.’

이에 드디어 술자리를 끝내고 사냥을 중지한 뒤 담당 관리에 이렇게 명해 말합니다. ‘개간할 수 있는 토지는 모두 갈아서 밭을 만들어 백성들을 부유하게 만들라. 담을 헐고 도랑을 메워서 산골의 백성들에게 이곳으로 올 수 있도록 하라. 저수지에도 물고기를 길러서 백성들에게 그 채취를 금지하지 말라. 궁관()을 비워서 백성들을 궁궐의 하인으로 삼아 채우지 말라. 창고의 곡식을 풀어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부족한 것은 보충해주도록 하라. 과부와 홀아비들을 돌보아주고 고아와 의지할 곳 없는 늙은이를 위로해주도록 하라. 황제의 조서를 말해 형벌을 덜어주고 제도를 고치며 복색을 바꾸고 달력을 바꾸어 천하 백성들과 함께 다시 시작하도록 하라!’

그런 후에 황제는 길일을 가려서 재계하고 예복을 입고 육두마차()를 타고 비취 깃발을 세우고 방울을 울리면서 육예()의 동산에서 놀고 인의의 길로 달리고 『춘추()』의 숲을 돌아봅니다. 이어서 이수()를 쏘고 추우()를 아울러 현학()을 쏘고 간척()을 세우고 운한()을 장식하고 「대아()」와 「소아()」를 망라하고 벌단()을 불러 슬퍼합니다. 악서()의 시를 즐기고 『예기()』의 동산에서 위엄 있는 태도를 닦고 『상서()』의 밭에 날개를 펴서 춤을 추며 날고, 『역경()』의 도를 서술합니다.

원()안에 기이한 짐승을 풀어주고, 명당()에 올라가 태묘에 앉아서 군신에게 마음대로 정치의 득실을 아뢰게 합니다. 그리하여 사해에 천자의 은혜를 입지 않는 자가 없게 됩니다. 이때에 황제는 매우 기뻐해 바람을 향해 듣고 물의 흐름에 따라 교화되므로 도에 부합하고 의에 옮겨갑니다. 형벌은 있으나 쓰지 않습니다. 덕은 삼황()보다 높고 공은 오제()보다 많아졌습니다. 이와 같았기 때문에 사냥은 비로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단지 종일토록 풍우에 몸을 쐬어 말을 달려서 심신을 수고롭게 하여 지치고 거마를 혹사시키며 정예 병졸들의 사기를 손상시키고, 창고의 재물을 말리며 후한 은덕은 없고 일신의 향락만을 힘쓰면서 만 백성들을 돌보지도 않고 국가의 정사를 잊은 채 꿩과 토끼 등의 포획만을 탐낸다면, 그것은 어진 사람이 하는 바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본다면, 제나라와 초나라의 일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땅은 사방 천리를 넘지 않는데 원유()는 9백리나 됩니다. 이곳에서는 초목을 개간할 수 없어서 백성들은 농사를 지어 먹을 곳이 없습니다. 한낱 제후의 작은 나라로서 만승의 천자조차도 사치로 여기는 바를 즐기신다면, 나는 백성들이 그 해를 입을 것을 두렵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깜작 놀라 안색을 고치고 멍하니 자신을 잃고 있다가 주춤주춤 물러나 자리를 물러나며 말했다. “시골뜨기가 고루해서 사양하고 겸손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드디어 가르침을 받았으니 삼가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사마상여가 이 부()를 올리자, 황제는 그를 낭()으로 임명했다.

무시공은 황제의 상림원의 광대함과 산곡(), 수천(), 만물()을 말했고, 자허는 초나라의 운몽택이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많은 것을 말했는데, 그것은 매우 사치스럽고 화려해 그 실질보다 지나치며, 또 의리를 숭상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여기에서 그 중요한 것만을 취하고 정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논한 것이다.

사마상여가 낭관이 된 지 몇 년 만에 때마침 한나라의 사절이 된 당몽()은 계략을 써서 야랑(), 서북(西)을 점령하고, 이곳과 통하기 위해 파(), 촉()의 관리와 군졸 1천 명을 징발했다. 또 주변 군()에서는 또 그들의 양곡을 운송하기 위해 많은 사람을 동원하니 무려 만여 명이나 되었다.

당몽은 한나라 법을 발동하여 그들의 수령을 베어 죽이니 파와 촉의 백성들이 크게 놀라고 두려워했다. 황제가 듣고 이에 사마상여를 시켜서 당몽을 꾸짖고, 이어 파와 촉의 백성들에게 그것은 황제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해명하도록 했다. 그리하여 사마상여가 쓴 격문은 다음과 같다.

“파와 촉의 태수에게 고한다. 만이()가 스스로 제멋대로 행동하건만 아직 토벌하지 않은 것이 오래되었다. 수시로 한나라의 변방 지역을 침범하고 사대부()를 괴롭히기도 했다. 이에 새로 등극한 폐하께서 천하를 위로하시고 중국()을 편안하게 하셨다. 그렇게 한 뒤에 군사를 일으켜 북쪽으로 흉노()를 정벌하니, 선우()가 놀라고 두려워해 양손을 마주 잡고 공손히 폐하의 말씀을 경청하고 무릎을 꿇고 화평을 청했다. 강거(), 서역(西)의 나라들은 통역을 거듭해 와서 입조하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진기한 공물을 바쳤다. 군대를 옮겨 동쪽을 향해 동월()에 침공을 당한 남월()을 위해서 남쪽의 반우()를 깨뜨렸더니 남월은 태자를 입조시켰다. 남이()의 군주들과 서북(西)의 군장들은 항상 공물을 바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목을 길게 빼고 발꿈치를 들어서 물고기가 입을 위로 향하듯 모두 서로 다투어 의()에 돌아와 신하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데, 길은 멀고 산천은 막히고 깊어서 스스로 이룰 수가 없다. 지금 순종하지 않는 자는 이미 모두 죽였으며, 선행한 자들은 아직 상을 주지 못했다.

그 때문에 중랑장() 당몽으로 하여금 가서 빈객을 대하는 예의로써 그들을 상을 주고 파와 촉의 사졸과 백성 각각 5백 명을 징발해 폐백을 받들고 가게 하는 한편, 사자가 불의의 변을 당하지 않게 호위하게 했던 것이다. 이제 들으니, 그는 드디어 군사를 동원하고 군법을 일으켜서 자제()들을 놀라고 두려워하게 하며 장로()들을 근심하게 만들었다. 군에서도 또 저희 마음대로 함부로 그들을 위해 식량을 운송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은 다 폐하의 뜻이 아니다. 징발된 자들 중에 혹은 도망치고 혹은 자살한다고 하니 이것 또한 남의 신하된 자의 도리가 아니다.

저 변방의 무사가 봉수()가 올랐다고 들으면 모두 활을 잡고 달려가며 무기를 메고 뛰어가서 땀을 흘리며 서로 잇달아 모여, 다른 사람에게 뒤질세라 두려워한다. 시퍼런 적의 칼날을 무릅쓰고 날아오는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의로움으로 여겨서 뒤돌아보지 않으며 발꿈치를 돌리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노여움을 품는 것을 마치 자신의 사적인 원수를 갚는 것처럼 한다. 그들이라고 어찌 죽는 것을 기뻐하고 사는 것을 싫어해서겠는가? 그들이 호적에 들어 있는 백성이 아니며, 파와 촉의 사람들과 달리 다른 군주를 속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단지 그들은 계책이 깊고 생각하는 바가 고원하여 국가의 위급함을 급선무로 생각하고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부()를 쪼개 봉읍()을 받고, 규()를 나누어 작위를 받는 것이다. 지위는 통후()에 오르고 사는 집은 성의 동쪽 저택 가와 줄짓게 되며, 마침내는 현달한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토지를 자손에게 전하게 된다.

행하는 일은 매우 충성스럽고 공경스러우며 머무는 지위는 매우 편하다. 명성은 무궁하게 전해지고 공업은 드러나서 없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현인과 군자들이 간과 뇌를 중원의 땅에 바르고 기름과 혈액으로 들풀을 적시면서 결코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신의 경호의 임무를 맡고 가는 관리가 남이에 이르러서 즉시 자살하거나 혹은 도망해 죽임을 받게 된다면, 몸이 죽고도 이름을 남길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을 일컬어 '지극히 어리석다'라고 한다. 그 치욕은 부모에게 미치고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다. 사람의 도량이 서로 어긋남이 어찌 크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혼자 그렇게 하는 자의 죄만은 아니다. 그것은 앞서 부형의 가르치지 않아 자제가 행동을 신중하지 못한 탓이고, 청렴함과 부끄러워함이 적으며, 풍속이 돈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형벌을 받는 것은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폐하께서는 사자와 관리가 저 당몽과 같을까 걱정하시고, 또 불초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그와 같은 행동함을 슬퍼하신다. 그래서 사자를 보내어 백성에게는 군졸을 징발한 이유를 알려주고, 이어 나라에 불충하게 죽고 도망하는 것을 책망하는 바이다. 삼로(), 효제()에게는 백성들은 깨우치지 못하게 한 허물을 꾸짖는 것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바쁜 농사철이니, 백성들을 번거롭게 불러 모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이미 친히 가까운 고을의 백성들은 직접 살펴볼 수 있으나, 멀리 떨어진 곳의 계곡과 두메산골의 백성들이 두루 듣지 못할까 걱정이 된다. 이 격문이 도착하거든 즉시 현 안의 오랑캐 부족에 내려주어 모두가 폐하의 뜻을 알게 하도록 하라! 결코 소홀하게 처리함이 없도록 하라.”

사마상여가 돌아와 천자에게 보고했다. 당몽은 이미 계략을 써서 야랑과 통했고, 그 틈을 타서 서남이(西)의 길을 개통하고자 해 파, 촉, 광한()의 사졸, 노역하는 자 수만 명을 징발했다. 2년 동안 길을 닦았으나 채 완성이 되지 않았다. 사졸의 대다수가 죽었고 막대한 경비가 들었다. 촉의 백성들과 한나라의 조정에서 파견된 자들은 대부분 그 일이 옳지 않다고 말하는 자가 많았다. 이때에 공(), 작()의 군장()들은 남이()가 한나라와 통해 수많은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대부분 한나라 신하가 되기를 원했다. 한나라의 관리를 두고 남이와 동등한 대우를 해줄 것을 청했다. 천자가 사마상여에게 물으니, 그는 이렇게 아뢰었다.

“공(), 작(), 염(), 방()은 촉군()에 가깝고 길도 또한 통하기 쉽습니다. 일찍이 진()나라 때에는 서로 통해 군과 현을 두었는데, 한나라가 일어나면서 폐지했습니다. 이제 참으로 다시 통해 군과 현을 설치한다면 남이의 경우보다 나을 것입니다.”

황제는 사마상여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마상여를 중랑장으로 임명하고 사자의 부절을 가지고 서이(西)로 가게 했다. 부사(使)로는 왕연우(), 호충국(), 여월인()이 사두마차의 급행 전마()를 달려 파, 촉의 관리를 통해 폐물을 서이에게 뇌물로 주었다.

사마상여의 일행이 촉에 도착하자, 촉의 태수와 이하의 관원들이 모두 교외로 나와 맞이하고 현령은 몸소 활과 화살을 지고 앞에서 인도했다. 이처럼 촉의 사람들사마상여를 맞이하는 일을 영광으로 여겼다.

이에 탁왕손과 임공()의 모든 부로들은 저마다 사마상여의 문하를 통해 소와 술을 바치고 서로 환심을 사려고 했다. 탁왕손은 탄성을 지르며 스스로 딸을 사마상여에게 시집보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딸에게 재물을 후하게 나누어 주어서 다른 아들과 공평하게 했다.

사마상여는 곧바로 서이를 평정했다. 공, 작, 염, 방, 사유()의 군장 등은 모두 달려와서 스스로 내신()이 되길 청했다.

이에 한나라는 서남이로 통하는 변경의 관소()를 철거하고 변관()을 더욱 넓혔다. 서쪽으로는 말수()와 약수()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장가강()에 이르러 변방의 경계를 만들고, 영관()의 길을 통하게 했으며, 손수()에 다리를 가설해 공, 작과 통하게 했다. 돌아와 천자에게 보고하니, 천자가 매우 기뻐했다.

 

 

相如使時,蜀長老多言通西南夷不為用,唯大臣亦以為然。相如欲諫,業已建之,不敢,乃著書,籍以蜀父老為辭,而己詰難之,以風天子,且因宣其使指,令百姓知天子之意。其辭曰:

 

漢興七十有八載,德茂存乎六世,威武紛紜,湛恩汪濊,群生澍濡,洋溢乎方外。於是乃命使西征,隨流而攘,風之所被,罔不披靡。因朝厓從駹,定筰存邛,略斯榆,舉苞滿,結軼還轅,東鄉將報,至於蜀都。

 

耆老大夫薦紳先生之徒二十有七人,儼然造焉。辭畢,因進曰:「蓋聞天子之於夷狄也,其義羈縻勿絕而已。今罷三郡之士,通夜郎之塗,三年於茲,而功不竟,士卒勞倦,萬民不贍,今又接以西夷,百姓力屈,恐不能卒業,此亦使者之累也,竊為左右患之。且夫邛、筰、西僰之與中國並也,歷年茲多,不可記已。仁者不以德來,彊者不以力並,意者其殆不可乎!今割齊民以附夷狄,弊所恃以事無用,鄙人固陋,不識所謂。」 

 

使者曰:「烏謂此邪?必若所云,則是蜀不變服而巴不化俗也。余尚惡聞若說。然斯事體大,固非觀者之所覯也。餘之行急,其詳不可得聞已,請為大夫粗陳其略。 

 

「蓋世必有非常之人,然後有非常之事;有非常之事,然後有非常之功。非常者,固常之所異也。故曰非常之原,黎民懼焉;及臻厥成,天下晏如也。 

 

「昔者鴻水浡出,氾濫衍溢,民人登降移徙,陭麕而不安。夏後氏戚之,乃堙鴻水,決江疏河,漉沈贍菑,東歸之於海,而天下永寧。當斯之勤,豈唯民哉。心煩於慮而身親其勞,躬胝無胈,膚不生毛。故休烈顯乎無窮,聲稱浹乎於茲。 

 

「且夫賢君之踐位也。豈特委瑣握麀,拘文牽俗,循誦習傳,當世取說云爾哉!必將崇論閎議,創業垂統,為萬世規。故馳騖乎相容並包,而勤思乎參天貳地。且詩不云乎:『普天之下,莫非王土;率土之濱,莫非王臣。』是以六合之內,八方之外,浸潯衍溢,懷生之物有不浸潤於澤者,賢君恥之。今封疆之內,冠帶之倫,鹹獲嘉祉,靡有闕遺矣。而夷狄殊俗之國,遼絕異黨之地,舟輿不通,人跡罕至,政教未加,流風猶微。內之則犯義侵禮於邊境,外之則邪行橫作,放弑其上。君臣易位,尊卑失序,父兄不辜,幼孤為奴,系累號泣,內鄉而怨,曰『蓋聞中國有至仁焉,德洋而恩普,物靡不得其所,今獨曷為遺己』。舉踵思慕,若枯旱之望雨。盭夫為之垂涕,況乎上聖,又惡能已?故北出師以討彊胡,南馳使以誚勁越。四面風德,二方之君鱗集仰流,原得受號者以億計。故乃關沬、若,徼牂柯,鏤零山,梁孫原。創道德之塗,垂仁義之統。將博恩廣施,遠撫長駕,使疏逖不閉,阻深闇昧得耀乎光明,以偃甲兵於此,而息誅伐於彼。遐邇一體,中外褆福,不亦康乎?夫拯民於沈溺,奉至尊之休德,反衰世之陵遲,繼周氏之絕業,斯乃天子之急務也。百姓雖勞,又惡可以已哉? 

 

「且夫王事固未有不始於憂勤,而終於佚樂者也。然則受命之符,合在於此矣。方將增泰山之封,加梁父之事,鳴和鸞,揚樂頌,上鹹五,下登三。觀者未睹指,聽者未聞音,猶鷦明已翔乎寥廓,而羅者猶視乎藪澤。悲夫!」 

 

於是諸大夫芒然喪其所懷來而失厥所以進,喟然並稱曰:「允哉漢德,此鄙人之所原聞也。百姓雖怠,請以身先之。」敞罔靡徙,因遷延而辭避。 

其後人有上書言相如使時受金,失官。居歲餘,複召為郎。 

 

相如口吃而善著書。常有消渴疾。與卓氏婚,饒於財。其進仕宦,未嘗肯與公卿國家之事,稱病間居,不慕官爵。常從上至長楊獵,是時天子方好自擊熊彘,馳逐野獸,相如上疏諫之。其辭曰: 

 

臣聞物有同類而殊能者,故力稱烏獲,捷言慶忌,勇期賁、育。臣之愚,竊以為人誠有之,獸亦宜然。今陛下好陵阻險,射猛獸,卒然遇軼材之獸,駭不存之地,犯屬車之清塵,輿不及還轅,人不暇施巧,雖有烏獲、逢蒙之伎,力不得用,枯木朽株盡為害矣。是胡越起於轂下,而羌夷接軫也,豈不殆哉!雖萬全無患,然本非天子之所宜近也。 

 

且夫清道而後行,中路而後馳,猶時有銜橛之變,而況涉乎蓬蒿,馳乎丘墳,前有利獸之樂而內無存變之意,其為禍也不亦難矣!夫輕萬乘之重不以為安,而樂出於萬有一危之塗以為娛,臣竊為陛下不取也。 

 

蓋明者遠見於未萌而智者避危於無形,禍固多藏於隱微而發於人之所忽者也。故鄙諺曰「家累千金,坐不垂堂」。此言雖小,可以喻大。臣原陛下之留意幸察。

上善之。還過宜春宮,相如奏賦以哀二世行失也。其辭曰:

登陂阤之長阪兮,坌入曾宮之嵳峩。臨曲江之隑州兮,望南山之參差。巖巖深山之谾谾兮,通谷?兮谽?。汩淢噏習以永逝兮,注平臯之廣衍。觀衆樹之塕薆兮,覽竹林之榛榛。東馳土山兮,北揭石瀨。彌節容與兮,曆吊二世。持身不謹兮,亡國失埶。信讒不寤兮,宗廟滅絕。嗚呼哀哉!操行之不得兮,墳墓蕪穢而不脩兮,魂無歸而不食。夐邈絕而不齊兮,彌久遠而愈鬐。精罔閬而飛揚兮,拾九天而永逝。嗚呼哀哉!

相如拜為孝文園令。天子既美子虛之事,相如見上好仙道,因曰:「上林之事未足美也,尚有靡者。臣嘗為大人賦,未就,請具而奏之。」相如以為列仙之傳居山澤間,形容甚臒,此非帝王之仙意也,乃遂就大人賦。其辭曰:

 

世有大人兮,在於中州。宅彌萬里兮,曾不足以少留。悲世俗之迫隘兮,朅輕舉而遠遊。垂絳幡之素蜺兮,載雲氣而上浮。建格澤之長竿兮,總光耀之采旄。垂旬始以為幓兮,抴彗星而為髾。掉指橋以偃蹇兮,又旖旎以招搖。攬欃槍以為旌兮,靡屈虹而為綢。紅杳渺以眩湣兮,猋風湧而雲浮。駕應龍象輿之蠖略逶麗兮,驂赤螭青虯之鞮蟉蜿蜒。低卬夭蟜據以驕驁兮,詘折隆窮蠼以連卷沛艾赳螑仡以佁儗兮,放散畔岸驤以孱顏。跮踱輵轄容以委麗兮,綢繆偃蹇怵鞨以梁倚。糾蓼叫奡蹋以艐路兮,蔑蒙踴躍騰而狂趡。蒞颯卉翕熛至電過兮,煥然霧除,霍然雲消。

 

邪絕少陽而登太陰兮,與真人乎相求。互折窈窕以右轉兮,橫厲飛泉以正東。悉徵靈圉而選之兮,部乘眾神於瑤光。使五帝先導兮,反太一而從陵陽。左玄冥而右含靁兮,前陸離而後潏湟。厮征北僑而役羡門兮,屬岐伯使尚方。祝融驚而蹕御兮,清氛氣而後行。屯余車其萬乘兮,綷雲蓋而樹華旗。使勾芒其將行兮,吾欲往乎南嬉。 

 

歴唐堯於崇山兮,過虞舜於九疑。紛湛湛其差錯兮,雜遝膠葛以方馳。騷擾?蓯其相紛挐兮,滂濞泱軋灑以林離。鑽羅列聚叢以蘢茸兮,衍曼流爛壇以陸離。徑入靁室之砰磷鬱律兮,洞出鬼谷之崫礨嵬。遍覽八紘而觀四荒兮,朅渡九江而越五河。經營炎火而浮弱水兮,杭絕浮渚而渉流沙。奄息總極氾濫水嬉兮,使靈媧鼓瑟而舞馮夷。時若薆薆將混濁兮,召屏翳誅風伯而刑雨師。西望崑崙之軋沕洸忽兮,直徑馳乎三危。排閶闔而入帝宮兮,載玉女而與之歸。舒閬風而搖集兮,亢烏騰而一止。低囘陰山翔以紆曲兮,吾乃今目睹西王母皬然白首。載勝而穴處兮,亦幸有三足烏爲之使。必長生若此而不死兮,雖濟萬世不足以喜。 

 

囘車朅來兮,絕道不周,會食幽都。呼吸沆瀣飱朝霞兮,噍咀芝英兮嘰瓊華。嬐侵潯而高縱兮,紛鴻湧而上厲。貫列缺之倒景兮,涉豐隆之滂沛。馳遊道而脩降兮,騖遺霧而遠逝。迫區中之隘陝兮,舒節出乎北垠。遺屯騎於玄闕兮,軼先驅於寒門。下崢嶸而無地兮,上寥廓而無天。視眩眠而無見兮,聽惝恍而無聞。乘虛無而上假兮,超無友而獨存。

相如既奏大人之頌,天子大說,飄飄有淩雲之氣,似遊天地之間意。

相如既病免,家居茂陵。天子曰:「司馬相如病甚,可往從悉取其書;若不然,後失之矣。」使所忠往,而相如已死,家無書。問其妻,對曰:「長卿固未嘗有書也。時時著書,人又取去,即空居。長卿未死時,為一卷書,曰有使者來求書,奏之。無他書。」其遺劄書言封禪事,奏所忠。忠奏其書,天子異之。

 

사마상여가 사자로 촉 땅에 갔을 때, 현지의 장로들은 대부분 서남이와 통해봐야 별 다른 소용이 없을 것으로 말했다. 또 조정 대신들 그렇다고 여겼다. 이에 사마상여가 간하고자 했으나, 자기가 건의한 일에 대한 계획이 이미 섰으므로 감히 행하지 못하고 대신 글을 지어 촉군의 부로()의 말의 형식을 빌려 자기가 상대방을 힐난하는 것으로써 황제에게 풍간하고자 했다. 또 자신이 황제의 사신으로 온 취지를 밝혀 백성들로 하여금 황제의 뜻을 알게 했다. 그 글은 다음과 같다.

“한나라가 일어난 지 78년, 천자의 은덕은 6대()에 걸쳐 흥성했고, 무위()는 성대하고 은혜는 깊었다. 모든 만물을 윤택하게 적셔주어서 한 왕조 이외의 지역에까지 크게 넘치고 있다. 그래서 사자를 서쪽으로 가게 해 물의 흐름과 같은 형세로 점차 복종하지 않는 자를 물리치니, 바람이 부는 곳에 따라 쓰러지는 초목과 같았다.

그리하여 염()을 입조시키고, 방()을 복종시켰으며, 작()을 평정하고 공()을 어루만지며 사유()를 공략했으며, 포만(滿)을 점령했다. 그런 뒤에 수레를 돌려 귀환해 동쪽을 향해 장차 보고하려고 했다. 사자의 일행이 촉도()에 이르렀을 때에 현지의 기로(), 대부(), 그 지역의 유력인사 27명이 위엄 있는 태도를 갖추고 사자를 방문하여 인사를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들으니 황제께서는 이적()을 통제하는 목적은 그들의 관계를 의()로써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제 삼군()의 군사를 피로하게 하면서 야랑과의 길을 개통하려고 한 것이 3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업은 완성되지 못하고 사졸은 지쳤으며 백성들은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계속해 서이와 교통하려고 하니, 백성의 힘이 다해 아마 일을 마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사자와 관련된 일이라서 저희들은 은근히 사자를 위해서 걱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 공()ㆍ작()ㆍ서북(西) 등의 이적들이 중국과 아울러 존립한지가 오래되어 기록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어진 자도 덕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따르게 하지 못했고, 강한 자도 무력으로써 그들을 병탄하지 못했습니다. 생각컨대 그것은 설복하거나 병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양민의 재물을 쪼개어 이적()에게 나눠주며, 도리어 믿을 수 있는 촉의 백성을 피로하게 만들어 쓸모없는 이적들을 도우려고 하니, 시골 사람들은 고루해 어찌 말씀을 드려야할 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자가 말했다. ‘어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설령 여러분의 말과 같다면, 이 촉 땅의 백성들도 원래 만이의 의복을 바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파의 땅의 백성들 풍속도 중국처럼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을 싫어합니다. 더구나 이 일은 중대하여 방관할 사항이 아닙니다. 저는 급히 돌아가 보고해야 하므로 상세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으나 이제 대부를 위해 그 개략적인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무릇 세상에는 반드시 비상한 사람이 있은 뒤라야 비상한 일이 있고, 비상한 일이 있은 뒤에라야 비상한 공이 있는 것입니다. 비상함이라는 것은 본래부터 평범한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비상한 일의 그 시초는 알기 어렵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성공하면 천하가 비로소 편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홍수가 넘쳐흘러서 범람하니, 백성들은 짐을 꾸려서 혹은 올라가고 혹은 내려가면서 이사를 다니곤 했습니다. 그러한 기구한 모양으로 백성들은 편안할 수 없었습니다. 하후씨()가 이것을 근심해 드디어 홍수를 다스렸습니다. 강을 트고 하수를 소통해 잠긴 곳을 말리고 재해를 덜어 안정되게 하면서, 동쪽으로 물을 바다에 돌려보내니 천하가 영원히 편안해졌습니다. 그 당시 이 일을 함에 어찌 백성들만 수고로웠겠습니까?

하후씨는 마음속으로 번민하고 몸으로는 몸소 노동을 실천했기에, 손발에는 못이 박히고, 발에는 털이 닳아 없어지고, 피부에는 털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아름다운 공적은 끝없이 드러나고 그 명성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진 군주가 즉위하면, 어찌 작은 일에만 구애받아 기량이 좁고 습속에 메이고 서책에서 익힌 것을 따르고 전통에 익어서 세상에 즐거움을 얻는 일에만 그치겠습니까! 반드시 장차 숭고하고 원대한 전통을 세우고 의론이 있어 만세의 모범이 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만국을 포용하고 사색에 힘써 천지와 나란히 합니다. 하물며 『시경』에서, '넓은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곳 없고, 온 땅 위에 왕의 신하 아닌 자 없다.'라고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육합()의 안과 팔방()의 밖에 물이 스며들고 물이 넘쳐흐르고 마치 생명이 있으면서 하나라도 윤택하지 않으면 어진 군주는 그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이제 나라 안의 의관을 갖추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복을 받아서 한사람도 빠진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적은 풍속을 달리한 나라로서 멀리 떨어져 있고, 종류가 다른 종족의 땅이어서 배와 수레가 통하지 않고, 인적도 드물어 정치와 교화는 오히려 아직 베풀어지지 않았으며, 황제의 덕화도 미미할 뿐입니다. 이들은 안으로 와서는 변경에서 의를 범하고 예를 침범하며, 밖으로 나가서는 제멋대로 간사한 짓을 저질러 자신들의 군주를 내쫓고 죽였습니다. 군주와 신하의 위치가 바뀌게 하고 높은 자와 낮은 자가 차례를 잃게 하고 부형()은 죄 없이 형벌을 받고, 어린이와 고아는 종이 되어 묶여 가며 울게 했습니다.

그리고 중원을 향해 원망해 이러게 말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들으니 중원에는 지극히 어진 이가 있어서 덕은 성대하고 은택은 널리 덮어 만물이 제자리를 얻지 못한 자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홀로 어찌해 우리만 버려두는가?’

그들이 중국을 사모하는 것은 마치 발뒤꿈치를 들고 가문 날에 비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포학한 자도 이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데, 하물며 성스러운 황제가 또 어찌 그대로 둘 수 있겠습니까? 그 때문에 북쪽으로 군대를 출동시켜 강한 오랑캐를 치고, 남쪽으로 사자를 보내어 강한 월()을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사면이 덕에 감화했습니다. 서이와 남이 두 곳의 군장들은 물고기가 흐르는 물을 따르듯 우러러보며 작호() 받기를 원하는 서이와 남이의 군주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에 말수()와 약수()에 관소를 정하고 장가강()을 경계로 했으며, 영산()을 소통해 길을 열고 손수()의 원천에 다리를 가설했습니다. 또한 도덕의 길을 창설하고 인의의 전통을 드리웠습니다. 장차 은혜를 널리 베풀고, 먼 곳의 백성을 어루만져 소원하고 먼 곳까지 미치게 해 폐쇄되지 않게 하며, 아직 막히어 미개한 곳으로 하여금 광명의 빛을 얻게 함으로써 이러한 전쟁을 쉬게 하고 그 토벌을 그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멀고 가까운 곳이 일체가 되며 안과 밖을 안락하고 행복하게 하려는 것도 즐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백성들을 곤고함 속에서 구제하고, 지존의 미덕을 받들어 말세의 쇠미한 형세를 만회하고 주나라의 끊어진 맥락을 잇는 것은 천자로서의 급선무입니다. 설령 백성들이 수고로울지라도 또 어찌 그칠 수 있겠습니까?

또 제왕의 일은 진실로 근심하고 부지런히 하는 데서 시작되고, 편안하고 즐거워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명을 받은 이 사신의 사명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장차 태산에 봉제()를 올리고 양보산()에서 제의()를 올려 수레의 방울을 울리고 음악과 송가()를 높이어 위로는 오제()와 같고 아래로는 삼왕()과 같아지려 하려는 것입니다.

곁에서 보는 자는 아직 가르치는 손가락을 보지 못하고, 듣는 자는 아직 지휘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황제 취지를 보통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초명()은 이미 하늘을 날고 있음에도 새그물을 치는 자는 오히려 숲과 못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리석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진실로 슬픈 일입니다!”

이 글을 보고 여러 대부들은 망연자실해 그들이 품고 있던 생각과 간언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모두 감탄하여 이렇게 칭찬했다. “한나라의 은덕은 진실로 위대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듣고 싶어 했던 말입니다. 비록 백성들이 태만하게 할지라도 우리들이 앞장서서 실천하겠습니다.”

부로들 또한 낙담하여 고개를 떨어뜨리고 하직 인사를 물러갔다.

그 뒤에 어떤 사람이 상서를 올려 사마상여가 사자로 나갔을 때 뇌물을 받았다고 고발했다. 이로 말미암아 사마상여는 벼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는 한 해 남짓 뒤에 다시 부름을 받고 낭관이 되었다. 상여는 말은 어눌했으나 글은 잘 지었다. 평소 그는 소갈병()을 앓고 있었지만 탁문군()과 혼인해 재물이 풍족했다. 그는 비록 벼슬을 살았지만 일찍이 공경()대신이나 국가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질병을 핑계 삼아 한가하게 살면서 관직과 작위를 흠모하지 않았다.

그는 일찍이 황제를 뒤쫓아 장양궁()에 가서 사냥을 했다. 이때 천자는 사냥을 좋아해 직접 곰, 산돼지를 쏘고, 말을 달려 들짐승을 쫓곤 했다. 사마상여가 상소해 그것을 중지하라고 간언했다. 그 상소문은 다음과 같다.

“신이 듣건대, 만물에는 동유()라 할지라도 그 능력은 다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힘은 오획()을 일컫고, 날랜 것은 경기()를 숭상하며, 용감한 것은 맹분()과 하육()을 기대한다고 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가만히 생각하니, 그와 같은 정황은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도 또한 마땅히 그와 같을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험준하고 가파른 곳을 돌보지 않고 맹수를 쫓아가 잡고 계십니다. 만일 갑자기 특출한 맹수와 만나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놀라 폐하를 따르던 수레가 일으킨 먼지를 범한다면, 수레는 바퀴를 돌릴 겨를이 없을 것이고 사람은 기교를 부릴 틈도 없이 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비록 오획의 힘과 봉몽()의 활쏘기 기술이 있을지라도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쓸 수 없을 것이니, 마른 나무와 썩은 그루터기도 모두 해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흉노와 월()나라가 수레의 바퀴통 밑에서 일어나고, 강족()과 이적()가 수레 뒤의 횡목()에 달려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찌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설령 만전을 기해 화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본래 황제께서 마땅히 가까이 가야 할 길은 아닌 것입니다.

또 저 길을 깨끗이 쓸고 정비한 다음에 가고, 도로의 중앙을 달릴지라도, 때로는 말이 재갈을 벗어버리고 날뛰는 변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무성한 풀 속에서 지나가고 구릉을 달리면서, 앞에는 짐승을 쫓아가는 즐거움에 팔려 의외의 사변에 방비하는 것이 없으니, 아마 그것이 바로 화를 만드는 첩경이 될 수 있습니다.

만승의 존귀한 황제가 소중한 몸을 가볍게 여기시는 행동을 하는 것을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에 하나 위험한 길로 나가는 것을 즐겨 그것을 오락으로 삼으신다면, 신은 폐하를 위해서 그와 같은 일을 하셔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선견지명이 있는 자는 싹이 트기 전에 일을 미리 알고, 지혜가 있는 자는 위험을 미연에 피하는 것입니다. 화라는 것은 본래부터 대부분 쉽게 발각되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가 사람들이 소홀하게 하는 곳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담에도 ‘집에 천금을 쌓아놓으면 그 집의 자식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비록 하찮은 듯하나, 그것으로써 큰 것을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신은 폐하께서 이 점을 유의하시어 신의 마음을 살펴주시기를 바랍니다.”

황제는 사마상여의 글을 보고 잘 썼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의춘궁()을 지나면서 사마상여는 진나라 2세의 행위의 과실을 한탄하는 부를 지어 황제에 바쳤다. 그 부는 다음과 같다.

“가파른 긴 언덕을 올라가, 나란히 늘어선 높이 솟은 궁전의 높은 곳에 들어갔다. 굽이진 강 머리의 물가를 굽어보며 남산()의 높낮이를 바라본다. 산세는 높고 아득히 깊구나. 깊은 계곡은 산간에 퍼져 있구나. 시냇물은 때로는 급하게 때로는 느리게 멀리 흘러 넓고 평평한 연못과 평원으로 쏟아지네. 온갖 무성한 나무들을 보고, 무성하게 자란 죽림도 본다. 동쪽의 토산()으로 달려가고, 옷을 걷고 여울물을 건너 북쪽으로 흘러간다. 잠시 조용히 걸으면서 2세 황제의 유적을 살펴 조문한다.

진나라 2세는 몸가짐을 삼가지 않아 나라는 멸망하고 권세는 잃게 되었다. 참소를 믿고 깨닫지 못해 종묘사직은 끊어지고 멸망했네. 아아 슬프구나! 품행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분묘에는 풀이 우거져도 돌볼 이 없고, 혼은 돌아갈 곳이 없어서 제사를 받지도 못하네. 아득히 멀리 세월이 흘러갈수록 황폐는 더해 더욱더 암담해갈 것이다. 정령()은 의지할 곳 없는 귀신이 되어, 날아올라서 저 높은 하늘을 향해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아아, 슬픈 일이로다!”

사마상여는 효문원령()으로 임명되었다. 황제는 이미 사마상여의 ‘자허부’가 훌륭한 글로 여겼다. 사마상여는 천자가 선도()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상림의 일을 노래한 글은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이보다 더 화려한 글이 있습니다. 신이 일찍이 「대인부()」를 지었으나,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청컨대 제가 완성하여 올리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사마상여가 전설 속의 선인()들이 산과 못 사이에 사는데 그 형용이 매우 파리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것은 제왕의 염원하는 선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에 드디어 「대인부」를 지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 대인(: 황제를 비유)이 있어 중주(: 중국)에 살았다. 그의 저택이 만 리에 가득 찼건만, 일찍이 그것을 가지고 잠깐이나마 머무를 수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세속이 각박하고 비좁은 것을 슬퍼해 훨훨 가볍게 일어나 멀리 노닐었다. 붉은 기운의 깃발을 날리며 흰 무지개를 드리운 채 구름 기운을 타고 위로 떠올라갔다. 황백()의 긴 장대를 세우고 광채로 빛나는 깃발을 달았으며, 오색 빛깔을 늘어뜨려 깃발 끝을 장식하고, 혜성()을 끌어당겨 수술로 삼았다. 깃발은 바람 따라 나부끼며 아리따운 자태로 흔들린다. 참(), 창()을 따다 깃발로 삼고, 둥그런 무지개를 길게 엮어 활집인 도()를 삼는다.

이때 하늘에는 붉은 빛이 아득히 멀어 눈부시고 변화무쌍해 바람처럼 솟아오르고 구름처럼 떠오른다. 날개 달린 응룡()이 끄는 수례를 타고 적룡(), 청룡()을 부마()로 삼았는데, 그 오르내리는 기세가 왕성하다. 목을 꼿꼿이 세우고 교만한 자세로 달리고 굴절하고 높다랗게 높이 일어나서 뛰는가 하면 구불구불 감곤 한다. 머리를 끄덕끄덕 흔들면서 목덜미를 길게 펴고 앞으로 전진한다. 방자하고 자유자재하다. 머리를 쑥 치켜드는 것이 가지런하지 않으며, 빨리 가서 앞으로 나아갔다가는 뒤로 물러서며, 눈을 움직이고 혀를 내민다.

쭉 위로 날아오르면서 좌우가 서로 따라간다. 여러 번 머리를 흔들고 달려서 서로 의지해 뒤엉키고 서로 이끌고 서로 부른다. 땅을 밟고 내려섰는가 하면 훌쩍 날아 솟아오른다. 날아올라서는 미친 듯 달리고 나란히 날고 달려서 서로 쫓곤 한다. 신속하게 호흡하는 것은 번개가 지나가는 것과 같다. 풀어지듯 안개처럼 가버리고, 순식간에 구름처럼 흩어진다.

비스듬히 극동()을 건너가서 북극()에 올라 신선과 결합한다. 진인()이 서로 찾아서 서로 꺾어 굽힘이 심원하다. 그리하여 오른쪽으로 회전하고 옆으로 비천()을 건너며, 그러고는 바로 동쪽으로 간다. 모두 영어()를 불러 선정하게 하고 신들을 수레에 태우고 오제()를 길잡이로 하고 태일()로 하여금 제자리에 돌아가게 하며, 능양()으로 하여금 뒤따르게 해 현명()을 왼쪽에 있게 하고, 함뢰()를 오른쪽에 있게 한다. 그리고 육리()를 앞세우고 휼황()을 뒤따르게 한다. 선인 정백교()를 부리고 선문()을 사역한다. 기백()에게 명해 의방()을 맡게 한다. 축융()으로 하여금 경호하게 해 행인을 멈추게 하고 악기()를 맑게 한 뒤에 간다. 나는 수레 만승을 모아 오색의 구름으로 수레의 일산()을 삼고, 빛나는 깃발을 올려 구망()으로 하여금 종자를 인솔하게 한다. 나는 남쪽으로 가서 즐기고자 한다.

숭산()을 지나서 당요()를 위문하고, 우순()을 구의()로 찾아간다. 수레 행렬은 어지럽게 뒤섞이고 서로 교차한 채로 나아가려 한다. 소란스럽고 서로 부딪쳐 서로 혼란스럽고, 팽배해 전진할 수 없다. 이제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행렬은 움직인다. 잇달아 모여드니 그 모습이 모아놓은 것이고, 넓게 퍼져 흩어지니 그 상태 또한 광막하게 섞여 있는 듯하다. 뇌실()의 우레소리는 우르르 쾅 하고 들리는 곳으로 곧바로 들어가고, 귀곡()의 산곡은 울퉁불퉁해 평탄하지 않은 곳을 통과해 나온다. 팔굉()을 두루 관람하고 사황()을 본다. 가서 구강()을 건너고 오하()를 넘는다. 염화산()을 지나 약수()에 배를 띄워 작은 주()를 건넌다. 사막을 건넌다. 갑자기 총령산()에 쉬며 물장난을 즐긴다.

여와()로 하여금 비파를 타게 하고, 풍이()로 하여금 춤추게 한다. 때로는 아득하고 혼미해 장차 정신이 혼탁해질 것 같다. 병예()를 불러서 풍백()을 죄 주고 우사()를 형에 처한다. 서쪽으로 곤륜산()의 모호한 형체를 바라보며, 곧바로 가서 삼위산()으로 달린다. 창합()을 밀치고 천제의 궁궐로 들어가 옥녀()를 태우고 돌아온다. 낭풍산()을 올라 멀리 모이니, 마치 까마귀가 높이 날아오른 후 한 번 멈춰 쉬는 것과 같다.

음산()을 낮게 돌아가서 날아오른다. 이제 서왕모(西)의 하얗게 희어진 머리를 본다. 그녀는 머리꾸미개를 쓰고 바위틈에서 살고 있다. 다행히도 세 발을 가진 까마귀가 있어서 그녀를 위해 일한다. 반드시 불로장생하여 이와 같이 된다면 만년에 걸쳐 살아도 즐거워하기에는 부족하다.

수레를 돌려 이리저리 왕래하면서 부주산()에 바로 건너가 유도산()에서 회식한다. 밤 사이의 수기()를 호흡하고 조하()를 먹는다. 지초()의 꽃을 씹고 경수()의 꽃을 조금 먹는다. 점차로 나아가서 높이 오르고 어지럽게 크게 성큼 뛰어서 위로 올라간다. 천문()의 거꾸로 달린 그림자를 뚫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을 건너서 유거()와 도거()를 달려 길게 내려갈 때 안개를 뒤로 남긴 채 멀리 달려간다.

인간 세상을 비좁게 여겨 깃발을 펼쳐들고 북극으로 나간다. 주둔시킨 기사를 현궐()에 남겨두고 선구를 한문()에서 앞질러 가게 한다. 아래는 깊고 멀어서 땅이 없고 위는 광막해 하늘이 없다. 보아도 눈이 아물거려 보이지 않고, 들어도 귀가 멍해 들리는 것이 없다. 허무를 타고 올라가니, 초연해 벗이 없어 홀로 남아있다.”

사마상여가 이「대인부」를 바치자, 황제가 매우 기뻐했다. 갑자기 구름 위로 두둥실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이고, 천지 사이를 자유로이 노니는 것 같은 뜻이 있다고 했다.

상여는 이미 병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무릉()의 집으로 물러나 살고 있었다. 황제가 말했다. “사마상여의 병이 위독하다니, 가서 그의 책을 모두 가져오는 것이 좋겠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뒤에 그것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소충()을 보냈지만 사마상여는 이미 죽고 집에는 책이 없었다. 그의 아내에게 물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사마상여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책이란 없었습니다. 때때로 글을 저술하면 사람들이 가져가버려 집에는 남은 책이 없습니다. 단지 장경이 아직 죽기 전에 한 권의 책을 저술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자가 와서 책을 찾거든 이것을 올리시오.’ 이밖에 다른 책은 없습니다.”

그가 남긴 서찰은 봉선()에 관한 글이었다. 그의 아내는 그것을 소충에게 전해주었다. 소충이 그 서찰을 황제에게 바쳤는데, 황제는 그것을 진중하게 여겼다. 

 

其書曰:

 

伊上古之初肇,自昊穹兮生民,曆撰列辟,以迄于秦。率邇者踵武,逖聽者風聲。紛綸葳蕤,堙滅而不稱者,不可勝數也。續昭夏,崇號諡,略可道者七十有二君。罔若淑而不昌,疇逆失而能存?

 

軒轅之前,遐哉邈乎,其詳不可得聞也。五三六經載籍之傳,維見可觀也。書曰「元首明哉,股肱良哉」。因斯以談,君莫盛於唐堯,臣莫賢於後稷。後稷創業於唐,公劉發跡於西戎,文王改制,爰周郅隆,大行越成,而後陵夷衰微,千載無聲,豈不善始善終哉。然無異端,慎所由於前,謹遺教於後耳。故軌跡夷易,易遵也;湛恩濛湧,易豐也;憲度著明,易則也;垂統理順,易繼也。是以業隆於繦褓而崇冠於二後。揆厥所元,終都攸卒,未有殊尤絕跡可考於今者也。然猶躡梁父,登泰山,建顯號,施尊名。大漢之德,逢湧原泉,沕潏漫衍,旁魄四塞,雲尃霧散,上暢九垓,下溯八埏。懷生之類霑濡浸潤,協氣橫流,武節飄逝,邇陝游原,迥闊泳沫,首惡湮沒,闇昧昭晢,昆蟲凱澤,回首面內。然後囿騶虞之珍群,徼麋鹿之怪獸,鰜一莖六穗於庖,犧雙共抵之獸,獲周餘珍收龜於岐,招翠黃乘龍於沼。鬼神接靈圉,賓於間館。奇物譎詭,俶儻窮變。欽哉,符瑞臻茲,猶以為薄,不敢道封禪。蓋周躍魚隕杭,休之以燎,微夫斯之為符也,以登介丘,不亦恧乎!進讓之道,其何爽與? 

 

於是大司馬進曰:「陛下仁育群生,義征不憓,諸夏樂貢,百蠻執贄,德侔往初,功無與二,休烈浹洽,符瑞眾變,期應紹至,不特創見。意者泰山、梁父設壇場望幸,蓋號以況榮,上帝垂恩儲祉,將以薦成,陛下謙讓而弗發也。挈三神之驩,缺王道之儀,群臣恧焉。或謂且天為質闇,珍符固不可辭;若然辭之,是泰山靡記而梁父靡幾也。亦各並時而榮,鹹濟世而屈,說者尚何稱於後,而云七十二君乎?夫修德以錫符,奉符以行事,不為進越。故聖王弗替,而修禮地祇,謁款天神,勒功中嶽,以彰至尊,舒盛德,發號榮,受厚福,以浸黎民也。皇皇哉斯事!天下之壯觀,王者之丕業,不可貶也。原陛下全之。而後因雜薦紳先生之略術,使獲燿日月之末光絕炎,以展采錯事,猶兼正列其義,校飭厥文,作春秋一藝,將襲舊六為七,攄之無窮,俾萬世得激清流,揚微波,蜚英聲,騰茂實。前聖之所以永保鴻名而常為稱首者用此,宜命掌故悉奏其義而覽焉。」 

 

於是天子沛然改容,曰:「愉乎,朕其試哉!」乃遷思回慮,總公卿之議,詢封禪之事,詩大澤之博,廣符瑞之富。乃作頌曰: 

 

自我天覆,雲之油油。甘露時雨,厥壤可遊。滋液滲漉,何生不育;嘉自我天覆,雲之油油。甘露時雨,厥壤可遊。滋液滲漉,何生不育;嘉穀六穗,我穡曷蓄。 

 

非唯雨之,又潤澤之;非唯濡之,氾尃濩之。萬物熙熙,懷而慕思。名山非唯雨之,又潤澤之;非唯濡之,氾尃濩之。萬物熙熙,懷而慕思。名山顯位,望君之來。君乎君乎,侯不邁哉! 

 

般般之獸,樂我君囿;白質黑章,其儀可;旼旼睦睦,君子之般般之獸,樂我君囿;白質黑章,其儀可;旼旼睦睦,君子之能。蓋聞其聲,今觀其來。厥塗靡蹤,天瑞之徵。茲亦於舜,虞氏以興。 

 

濯濯之麟,遊彼靈畤。孟冬十月,君俎郊祀。馳我君輿,帝以享祉。三濯濯之麟,遊彼靈畤。孟冬十月,君俎郊祀。馳我君輿,帝以享祉。三代之前,蓋未嘗有。 

 

宛宛黃龍,興德而升;采色炫燿,熿炳煇煌。正陽顯見,於傳載之,雲受命所乘。 

 

厥之有章,不必諄諄。依類讬寓,諭以封巒。厥之有章,不必諄諄。依類託寓,諭以封巒。 

 

披藝觀之,天人之際已交,上下相發允答。聖王之德,兢兢翼翼也。故曰「興必慮衰,安必思危」。是以湯武至尊嚴,不失肅祗;舜在假典,顧省厥遺:此之謂也。

司馬相如既卒五歲,天子始祭后土。八年而遂先禮中嶽,封於太山,至梁父禪肅然。

相如他所著,若遺平陵侯書、與五公子相難、草木書篇不采,采其尤著公卿者云。

 

 

그가 남긴 봉선에 관한 글은 다음과 같았다.

 

“태초에 천지가 처음 열려 하늘이 백성을 낳았습니다. 역조()의 임금을 거쳐서 진()나라에 이르렀습니다. 가까운 자의 유적을 살피고 먼 자의 유풍을 들으면, 예부터 군주가 된 자는 많지만 이름이 묻혀 서적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이루 다 셀 수 없습니다. 순임금과 우임금의 뒤를 이어 밝고 큰 덕을 계승해 생전의 이름과 사후의 시호를 높이 받들어 후세에 일컬을 만한 자는 대략 72명의 군()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선을 따르고도 창성하지 않은 자는 없었고, 그 누구도 덕을 잃고 오래 존속할 수가 없습니다.

헌원씨() 이전의 일은 멀고 아득해 그 자세한 것을 얻어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제와 삼왕의 치적이 육경의 서적에 전하는 것은 볼 만합니다. 『상서()』에 말하기를 "원수()는 현명하구나, 신하는 선량하구나."라고 했습니다. 이것에 근거해 말한다면, 군왕은 당요()보다 성대한 이가 없고, 신하는 후직()보다 현량한 이가 없습니다. 후직은 사업을 당()에서 처음으로 했고, 공류()는 공적을 서융(西)에 드러내었습니다. 문왕()이 제도를 고치니, 이에 주나라가 크게 융성하고 대도()가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점차 쇠미해 천년에 이른 뒤에 그 성교()가 끊어졌습니다. 어찌 처음을 잘하고 끝도 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된 것에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앞의 것을 따르는 데 삼가고, 그 교화를 삼가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나라의 사적은 평이해 따르기 쉽고, 은택은 깊고 광대해 풍부하게 되기 쉬우며, 법도는 명백하고 본받기가 쉽고, 전통을 드리우는 것이 이치에 순응하기 때문에 계승하기가 쉬웠던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왕업은 성왕() 때에 성취되었고, 공적은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이 으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처음을 살피고 그 마친 바를 궁구해보면, 특히 두드러지게 이상하리만큼 뛰어난 사적은 지금의 한나라와 비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한나라는 태산과 양보산()에 올라 봉선()해 영광스러운 명예를 세우고 높은 명성을 이루었습니다.

대한()의 덕은 왕성하게 솟아오름이 원천()과 같아서 성대하게 넘치고 퍼져서 널리 사방에 미칩니다. 무위()는 구름처럼 퍼지고 안개처럼 흩어져서 위로는 구천()에 사무치고 아래로는 팔방의 극에 흘러갑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천자의 은택에 잠기어 윤택해집니다. 화기()는 옆으로 흐르고 무위는 질풍같이 빨리 퍼져나갑니다. 가까운 자는 그 근원에서 놀고 먼 자는 그 말류에서 헤엄칩니다. 곤충도 화락해 모두 머리를 돌려 안으로 향하고 황제의 은택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뒤에 추우()와 같은 진귀한 짐승을 원유()에서 기르고 미록(鹿)과 같은 괴수를 국경에서 잡았습니다. 한 줄기에서 여섯 이삭이 달린 곡식을 부엌에서 골라서 종묘에 바치고, 주나라에서 길렀던 거북을 기산()가에서 얻었습니다. 취황색() 용을 못에서 부릅니다. 귀신은 영어()와 접촉해 한관()에 빈객으로 대우합니다. 기이한 물건의 괴이함과 다양한 변화는 이보다 더할 수 없습니다. 진실로 존중해야 할 일입니다. 상서()의 징험이 이에 이르렀건만 오히려 엷다고 겸손해하며 감히 봉선할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무릇 주나라에서는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칠 때에 펄펄 뛰는 백어()가 배에 떨어진 것을 아름다운 상서라고 해 구워서 하늘에 제사 지냈습니다. 이와 같은 미세한 것을 징험이라고 해 태산에 올라가 봉선했던 것입니다. 또한 부끄럽지 않습니까! 주나라의 지나침과 한나라의 겸양이 어찌 이렇게 다릅니까?”

이에 대사마()가 나아가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어짊으로 천하의 백성들을 기르시고, 의로움으로 불순한 자를 정벌하십니다. 중국의 모든 사람들은 공물을 받드는 직책을 기뻐하고, 모든 만이()들은 폐백을 바치니, 덕은 상고의 제왕과 같고, 공은 함께 병칭할 만한 자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공업은 두루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태평스러운 상서의 징험은 여러 가지로 변화해 시기를 따라 계속해 이르러서, 유독 처음 나타난 것은 없습니다.

생각하건대 이것은 태산, 양보산에 제단을 설치하고 거둥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체로 명호()를 세워 영광을 드러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즉 하늘이 은택을 내려 땅을 복되게 해 장차 제사 지내 성공을 고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 겸양해 출발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천신(), 지기(), 산악()의 신의 환심을 끊고 왕도()의 예의를 잃는 것이 됩니다. 여러 신하들은 이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길 ‘하늘의 뜻은 진실로 이미 상서로운 징조로 암시했고, 상서로운 징조가 나타나면 본래 사양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만일 이것을 사양한다면 그것은 옛날부터 태산에는 표기()를 세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양보산은 제사 받을 가능성이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각각 때에 따라 한때를 영화로 삼고 그 세상을 지나갈 뿐이라면 이야기하는 자가 오히려 뒷세상에서 어떻게 72명의 군주가 있던 것을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무릇 덕을 닦은 이에게 부서()를 주면, 그것을 받들어 봉선의 일을 행하는 것은 방자함이 지나친 행위가 아닙니다. 때문에 성왕은 봉선의 일을 폐하지 않아서 중악()에 새겨서 지존함을 드러내고 성덕을 서술해 영광스러운 명호를 발하고 두터운 복을 받음으로써 은택을 서민에게 미치게 했던 것입니다. 성대하구나, 이 일이여! 이것은 천하의 장관이며 왕자()의 위대한 업적이니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이것을 완수하십시오.

그렇게 한 뒤에 이어 유학자들의 학술과 책략을 빌려서 일월()의 찬란한 빛을 우러르는 것처럼 하고, 그것으로써 관직을 지키고 일을 처리하게 하며, 또 겸해 그 의()를 정열하고 그 글을 교감해 『춘추』 같은 경서를 짓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종래의 육경()을 칠경()이 되게 해, 길이 후세에 전해 만세에 이르기까지 맑은 흐름을 흐르게 함으로써 그 여파를 높이고 영명한 명성을 날려서 풍성한 덕을 얻을 수 있게 하십시오. 이전 시대의 성왕들이 길이 위대한 명성을 보전해 항상 칭송의 으뜸이 되는 까닭은 이러한 도를 행했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장고()에게 명해 그 뜻을 모두 아뢰게 해 살피시길 바랍니다.”

이에 황제가 크게 감동해 안색을 고치고 이렇게 말했다. “그렇도다. 짐이 그 일을 시험해보겠노라!” 이에 즉시 생각을 고친 황제는 마음을 돌려 공경들의 의견을 종합해 봉선의 일을 물었다. 그리고 황제의 덕택이 큰 것을 시로써 읊게 하고, 표적의 풍부함을 넓혀서 즉시 송()을 짓게 했다. 그 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같은 덕으로 만민을 덮으니, 구름은 유유히 흘러간다. 때로 감로()가 때에 이르러 내리니 저 토양을 충분히 적신다. 맛있는 유액이 땅에 스미니 무슨 생물인들 자라지 않으리. 아름다운 곡식 한 줄기에 여섯 이삭 맺히네. 수확이 어찌 쌓이지 않으리?

비로써 적셔줄 뿐만 아니라 또 만물을 윤택하게 하네. 다만 윤택하게 할 뿐만 아니라 널리 그것이 퍼지고 흩어지게 하네. 만물이 화락해 그리워하고 사모한다네. 명산이 봉선을 분명히 나타내며, 우리 황제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네. 황제님, 황제님, 어찌해 봉선하러 나가지 않으십니까!

아름다운 무늬의 짐승은 우리 황제의 동산에서 즐기며 있네. 흰 바탕 검은 무늬에 그 모습 아름답구나. 화목한 모습, 바로 군자의 태도로구나. 대체로 일찍이 그 짐승 있다는 소리만 들었더니 이제 그 온 것을 보네. 그가 좇아온 길 어딘가 알 수 없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상서로운 조짐이라네. 이 짐승은 순임금 때 나타나고, 그로 말미암아 우씨()가 일어났다네.

살찐 기린이 저 제단의 뜰에 노닐었네. 맹동() 10월에 우리 임금이 가셔서 교사()하셨네. 저 기린이 우리 임금의 수레 앞을 달려 우리 임금은 그것으로써 복을 받으셨네. 삼대() 이전에도 일찍이 이러한 상서는 없었네.

꿈틀거리는 황룡이 지극한 덕에 감동해 날아올랐네. 그 채색은 번쩍번쩍 빛이 나네. 진정한 용(제왕)이 모습을 보여 만백성들을 각성시켰네. 고서에도 육룡()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고 기록되었다네.

용은 천명()을 받은 자가 타는 것으로, 천명의 징조는 반드시 말을 쓰지 아니하고, 사물에 기탁해 봉선하는 군주에게 알려주네.

육경을 펼쳐놓고 살펴보니, 하늘의 뜻과 사람의 일이 이미 서로 어울려 합치되고, 위와 아래가 서로 화해를 나타냈네. 성왕의 덕망을 찬양하며 항상 스스로의 부덕함을 두려워하고 삼가네.

고로 흥기할 때는 반드시 쇠할 것을 염려하고, 편안할 때에는 반드시 위태로움을 생각한다네.

은나라의 탕왕()과 주나라의 무왕()은 지극히 존엄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존경하고 삼감을 잃지 않았네. 순임금은 큰 법칙을 밝혀서 항상 스스로 성찰하고, 정치의 득실을 살폈다네. 이런 일들이 바로 봉선의 상서로운 조짐을 말하는 것이라네.”

사마상여가 죽은 지 5년 뒤에 황제가 비로소 후토()에 제사를 지냈다. 8년 뒤에 드디어 먼저 중악()에 제례()하고 태산()에 봉()하고, 양보산 자락의 숙연산()에서 선()했다.

사마상여의 다른 그로는 『유평릉후서()』, 『여오공자상난()』, 『초목서()』 등과 같은 것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수록하지 않았다. 그 저서들 중에서 특히 공경()대신들 사이에게 이름난 것만을 기재했다.

 

太史公曰:春秋推見至隱,易本隱之以顯,大雅言王公大人而德逮黎庶,小雅譏小己之得失,其流及上。所以言雖外殊,其合德一也。相如雖多虛辭濫說,然其要歸引之節儉,此與詩之風諫何異。楊雄以為靡麗之賦,勸百風一,猶馳騁鄭衛之聲,曲終而奏雅,不已虧乎?餘采其語可論者著於篇。

索隱述贊

【索隱述贊】相如縱誕,竊貲卓氏。其學無方,其才足倚。子虛過吒,上林非侈。四馬還邛,百金獻伎。惜哉封禪,遺文卓爾。

 

 

태사공은 이렇게 말한다.

“『춘추』는 드러난 사실을 추론하여 은미한 것에 도달했고, 『역경』은 은미한 것을 근본으로 해 명백한 사실에 이르고 있으며, 「대아()」는 먼저 왕공()과 대인()의 덕을 말해 여러 백성들에게 이르렀고, 「소아()」는 개인의 행위를 말해 정치의 선악을 풍자하여 왕공대인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고로 『춘추』, 『역경』, 「대아」, 「소아」의 말은 비록 겉으로는 서로 다르지만 그것이 모두 덕으로 귀일하는 점에서는 같다. 사마상여의 글은 비록 공허한 문자와 함부로 하는 말이 많으나 그 취지는 절약과 검소에 귀착된다. 이것이 『시경』의 풍간()과 무엇이 차이가 있겠는가?

 

 

 

양웅()은 ‘사치스럽고 화려한 사마상여의 부()는 백 가지를 칭찬하고 한 가지를 풍자했다. 이는 마치 정(), 위()의 음란한 음악을 질탕하게 연주하고, 곡이 끝난 뒤에 아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이미 본지()를 훼손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 중에서 논할 가치가 있는 것만을 취해서 이 편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