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歷史와文學/史記世家

史記 卷四四. 魏世家[武子 · 魏絳]

柳川 2019. 6. 23. 11:31

                                     卷四四. 魏世家[武子 · 魏絳]



畢萬封十一年, 晉献公卒, 四子争更立, 晉亂. 而畢萬之世弥大, 従其国名為魏氏. 生武子.1) 魏武子以魏諸子事晉公子重耳. 晉献公之二十一年, 武子従重耳出亡. 十九年反, 重耳立為晉文公, 而令魏武子襲魏氏之後封, 列為大夫, 治於魏. 生悼子.

 

필만이 녹봉(錄封)을 받은 지 11년 되던 해에 진 헌공이 죽었고, 그의 네 아들이 왕위를 쟁탈하느라 나라가 어지러웠다. 필만의 자손들은 날로 번창해 자신들이 제후로 봉해진 곳의 지명을 따서 위씨(魏氏)로 했다.

 

 

필만의 후손이 무자(武子)를 낳았고, 위 무자는 위씨 집안의 자손 자격으로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를 섬겼다. 진 헌공 21년에 무자가 중이를 따라서 도망했다. 19년 뒤에 돌아와서 중이가 즉위해 진 문공(晉文公)이 되어, 위 무자로 하여금 위씨 집안의 봉토를 세습하게 했다. 또 그를 대부(大夫)의 대열에 올려주고, 위 땅을 통치하게 했다. 위 무자는 위 도자(魏悼子)를 낳았다.

 

각주

1 索隠左傳武子名犨. 系本云「畢萬生芒季, 芒季生武仲州」. 州與犨声相近, 字異耳, 代亦不同

 



魏悼子徙治霍.1) 生魏絳.2)

 

위 도자는 위의 통치구역을 곽 땅으로 옮겼다. 그는 아들 위강(魏降)을 낳았다.

 

魏絳事晉悼公. 悼公三年, 会諸侯. 悼公弟楊干亂行, 魏絳僇辱楊干.3) 悼公怒曰:「合諸侯以為栄, 今辱吾弟!」将誅魏絳. 或説悼公, 悼公止. 卒任魏絳政, 使和戎、翟, 戎、翟親附. 悼公之十一年, 曰:「自吾用魏絳, 八年之中, 九合諸侯, 戎、翟和, 子之力也.」賜之樂, 三譲, 然後受之. 徙治安邑.4) 魏絳卒, 謚為昭子.5) 生魏嬴. 嬴生魏献子.6)

 

위강은 진 도공(晉悼公)을 섬겼다. 도공 3년에 제후들과 회맹했다. 도공의 동생 양간(楊干)의 군대 대열이 문란하자, 위강이 양간에게 모욕을 주었다.

 

도공이 노하여 말하기를 “제후들을 회맹한 것이 명예 때문인데, 지금 과인의 동생을 욕되게 했도다!”라고 하며, 위강을 죽이려고 했다. 어떤 이가 도공을 설득해 도공이 멈추었다. 마침내 위강을 행정관에 임명해 그로 하여금 융족(戎族), 적족(狄族)과 화약을 맺도록 해, 융족과 적족을 속국으로 삼았다. 진 도공 11년, 도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위강을 임용한 이래 8년 동안에 수없이 제후들을 규합하고 융족, 적족과 화약을 맺었으니, 이는 그대의 공이로다.”라고 하며 악기를 하사하니, 그가 재삼 사양한 연후에 악기를 받았다.

 

 

그 후 안읍(安邑)으로 옮겨서 통치했다. 위강이 죽은 후 시호를 소자(昭子)라 했다. 그는 위영(魏嬴)을 낳았다. 위영은 위 헌자(魏獻子)를 낳았다.

 

각주

1 索隠系本云「武仲生荘子絳」, 無悼子. 又系本居篇曰「魏武子居魏, 悼子徙霍」. 宋忠曰「霍, 今河東彘県也」. 則是有悼子, 系本卿大夫代自脱耳. 然魏, 今河北魏県是也. 正義晉州霍邑県, 漢彘県也, 後漢改曰永安, 隋改曰霍邑, 本春秋時霍伯国也.

2 索隠謚昭子. 系本云「荘子」, 文錯也. 居篇又曰「昭子徙安邑」, 亦與此文同也.

3 索隠左傳曰僇楊干之僕.

4 正義安邑在絳州夏県安邑故城是.

5 集解徐広曰:「世本曰荘子.」

6 索隠系本云「献子名荼. 荼, 荘子之子」. 無魏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