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卷四九. 外戚世家[鉤弋夫人]
卷四九. 外戚世家[鉤弋夫人] 鈎弋夫人1)姓趙氏,2) 河閒人也. 得幸武帝, 生子一人, 昭帝是也. 武帝年七十, 乃生昭帝. 昭帝立時, 年五歳耳.3)
구익부인(鉤弋夫人)은 성이 조씨(趙氏)이며 하간(河間) 사람이다. 그녀는 무제의 총애를 받아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소제(昭帝)이다. 무제가 70세 때에 비로소 소제가 태어났으며, 소제가 제위에 올랐을 때에는 나이가 겨우 5세였다.
衛太子廃後, 未复立太子. 而燕王旦上書, 願帰国入宿衛. 武帝怒, 立斬其使者於北闕.
위태자(衛太子)는 폐출당한 후 더 이상은 태자로 있지 못했다. 연왕(燕王) 단(旦)이 상서를 올려 국도(國都)로 돌아가 입궁해 숙위를 담당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무제는 몹시 화가 나서 즉각 사자를 북궐(北闕)로 보내 그를 참형에 처했다.
上居甘泉宮, 召畫工図畫周公負成王也. 於是左右群臣知武帝意欲立少子也. 後數日, 帝譴責鈎弋夫人. 夫人脱簪珥叩頭. 帝曰:「引持去, 送掖庭獄!」夫人還顧, 帝曰:「趣行, 女不得活!」夫人死雲陽宮.4) 時暴風揚塵, 百姓感傷. 使者夜持棺往葬之,5) 封識其処.
무제는 감천궁(甘泉宮)에 살았는데, 화공(畵工)을 불러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업은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이리하여 좌우의 군신들은 무제가 작은아들을 태자로 옹립하려는 것을 알았다. 며칠이 지나자 무제는 구익부인을 책망했다.
부인은 비녀와 장식들을 뽑아버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무제는 ‘끌어내서 액정옥(掖庭獄)으로 보내라!’라고 명령했다. 부인이 머리를 돌려 무제를 바라보자 무제는 ‘빨리 가거라, 너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라 했다. 부인은 운양궁(雲陽宮)에서 죽었다. 그때 광풍이 먼지를 일으켰으며, 백성들 또한 애상함을 느꼈다. 사자(使者)가 밤에 관재(棺材)를 가지고 가서 그녀를 묻어주었으며 분묘 위에 표지를 해두었다.
其後帝閑居, 問左右曰:「人言云何?」左右対曰:「人言且立其子, 何去其母乎?」帝曰:「然. 是非児曹愚人所知也. 往古国家所以亂也, 由主少母壮也. 女主独居驕蹇, 淫亂自恣, 莫能禁也. 女不聞呂后邪?」故諸為武帝生子者, 無男女, 其母無不譴死, 豈可謂非賢聖哉! 昭然遠見, 為後世計慮, 固非浅聞愚儒之所及也. 謚為「武」, 豈虚哉!
후에 무제가 한가해 일이 없을 때 좌우의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느냐?’라고 묻자, 좌우의 사람들이 ‘사람들은 그녀의 아들을 세우려고 하면서 어째서 그녀의 모친을 제거해야만 했느냐?’라고 말한다고 했다.
무제가 ‘그럴 것이다. 이러한 것은 소인배나 우인(愚人)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자고로 국가에 난동이 있었던 까닭은 황제의 젊은 어미가 혈기왕성한 나이였기 때문이다. 황후가 독단적이며 교만 방자하고 음탕하기 이를 데 없으면 이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너희들은 여후(呂后)를 들어보지도 못했느냐?’라 했다. 그래서 무릇 무제를 위해 아이를 낳은 비빈은 남자를 낳든 여자를 낳든 관계없이 그들의 모친은 문책당해 죽음에 이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것이 어찌 현성지주(賢聖之主)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현명하고 탁월한 식견은 사후에 국가의 운명을 위한 계산인 것으로, 이것은 확실히 천문(淺聞)하고 이루(耳陋)한 멍청한 유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는 ‘무(武)’라는 시호를 가졌는데, 설마 유명무실한 것이겠는가?
각주 1 索隠按:夫人姓趙, 河閒人. 漢書云「武帝過河閒, 望気者言此有奇女, 天子乃使使召之. 女両手皆拳, 上自披之, 手即時伸. 由是幸, 号曰拳夫人. 後居鈎弋宮, 号曰鈎弋夫人」. 列仙傳云「発手得一玉鈎, 故号焉」. 漢武故事云「宮在直城門南」. 廟記云「宮有千門萬戸, 不可記名也」. 正義括地志云:「鈎弋宮在長安城中, 門名尭母門也.」 2 索隠按漢書, 昭帝即位, 追尊太后父趙父為順成侯. 3 集解徐広曰:「武帝崩年正七十, 昭帝年八歳耳.」 索隠按:徐広依漢書, 以武帝年七十崩, 崩時昭帝年八歳. 此褚先生之記. 漢書云「元始三年, 昭帝生」, 誤也. 按:元始當為太始. 4 索隠按:三輔故事云「葬甘泉宮南. 後昭帝起雲陵, 邑三千戸」. 漢武故事云「既殯, 香聞十里, 上疑非常人, 発棺視之, 無尸, 衣履存焉」. 正義括地志云:「雲陽宮, 秦之甘泉宮, 在雍州雲陽県西北八十里. 秦始皇作甘泉宮, 去長安三百里, 黄帝以來祭圜丘処也.」 5 正義括地志云:「雲陽陵, 漢鈎弋夫人陵也, 在雲陽県西北五十八里. 孝武帝鈎弋趙婕妤, 昭帝之母, 斉人, 姓趙. 少好清静, 六年臥病, 右手捲, 飲食少. 望気者云『東北有貴人』, 推而得之. 召到, 姿色甚佳. 武帝持其手伸之, 得玉鈎, 後生昭帝. 武帝末年殺夫人, 殯之而尸香一日. 昭帝更葬之, 棺但存糸履也. 宮記云『武帝思之, 為起通霊台於甘泉, 常有一青鳥集台上往來, 至宣帝時乃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