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進。第 1章. 先進於禮樂野人也, ~ 第 5章. 南容 三復白圭,
此篇 多評弟子賢否, 凡二十五章。 胡氏曰, 「此篇 記閔子騫言行者, 四而其一 直稱閔子, 疑閔氏門人所記也。」
이 편은 제자가 어질고 어질지 아니함을 평론한 것이 많으니, 무릇 25장이라.
호씨가 말했다. "이 편은 민자건의 언행을 기록한 것이 넷에 그 하나는 곧바로 민자건을 일컬었으니 민씨의 문인이 기록한 것으로 의심된다."
------------------------------------------------------------------------------------------------
第 1章
子曰, 「先進於禮樂 野人也, 後進於禮樂 君子也。如用之則吾從先進。」
공자가 말씀하셨다.
“요즘 사람들은, 옛 선배들의 예악이 질박하기가 시골사람(野人) 같다고 하고, 후배들의 예악에 대해서는 세련되어 군자(君子) 같다고 평가하는데, 예악을 쓴다면 나는 선배들의 예악을 택하겠다.”
○先進後進 猶言前輩後輩. 野人 謂郊外之民. 君子 謂賢士大夫也. 程子曰, 先進於禮樂 文質得宜, 今反謂之質朴, 而以爲野人, 後進 於禮樂, 文過其質, 今反謂之彬彬, 而以爲君子, 蓋周末文勝. 故 時人之言 如此, 不自知其過於文也.
○선진 후진은 전배 후배를 말한 것과 같음이라. 야인은 교외의(촌) 백성을 이름이고, 군자는 어진 사대부를 이름이라. 정자 가라사대 선진은 예악에 문(무늬, 문체)과 질이 마땅함을 얻었거늘 지금 오히려 질박하다고 일러 써 야인이라 하고, 후진은 예악에 문이 그 질에 지나치거늘 지금 오히려 빛나고 빛나 써 군자라 하니, 대개 주나라 말기에 문이 이김이라.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의 말이 이와 같아 스스로 그 무늬가 지나침을 아지 못함이라.
[해설]
주공(周公)이 예악을 훌륭히 완비했으니, 복희(伏羲), 신농(神農), 요순(堯舜)의 관점에서 보면 문채가 지나치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은 그 선배들을 촌사람이라고 말하기에 이르렀으니, 세속의 폐해를 장차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그저 ‘사용한다면 선배를 따르겠다.’라고 했으니, 표현이 이처럼 박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웅덩이에 고인 물을 손으로 마셨던 일이나 흙으로 북을 만든 일은 정말로 촌스럽다. 그렇지만 옥이나 비단, 쇠로 만든 종이나 북을 사용하면서도 매번 옛사람들에게 미칠 수 없다는 생각을 마음에 갖고 있으면서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몸과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 만일 스스로 군자라고 믿고 옛사람을 촌스러운 사람이라고 기롱한다면, 이는 자기 할아버지를 두고 ‘시골 늙은 노인네는 이 정도만 누려도 족하다.’라고 말할 자이니, 후세에 항상 어지럽고 망했던 이유이다. <讀書箚義>
如用之則吾從先進.
예악을 쓴다면 나는 선배들의 예악을 택하겠다
○用之 謂用禮樂. 孔子 旣述時人之言, 又自言其如此, 蓋欲損過以就中也.
○쓴다는 것은 예악을 씀을 이름이라. 공자가 이미 당시 사람들의 말을 기술하시고, 또 스스로 말씀하심이 그 이와 같으니 대개 지나친 것을 덜어서 써 중에 나아가고자(중을 맞추고자) 하시니라.
第 2章
子曰, 「從我於陳蔡者, 皆不及門也。德行顔淵 閔子騫 冉伯牛 仲弓, 言語宰我 子貢, 政事 冉有 季路, 文學子游 子夏。」
공자가 말씀하셨다.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에서 나를 따라 고난을 겪었던 제자들이 지금은 모두 문하에 있지 않구나. 덕행(德行)에는 안연(顔淵 : 顔回),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이었고, 언어에는 재아(宰我)와 자공(子貢)이었으며, 정사에는 염유(冉有 : 冉求)와 계로(季路 : 仲由), 문학에는 자유(子游 : 言偃)과 자하(子夏 : 卜商)가 있다."
[본문 해설]
흔히 陳蔡絶糧이라고 부르는 시기로, 공자가 매우 어려운 때를 당했을 때 함께 했던 제자들이 지금 문하에 없음을 생각하며 하신 말씀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앞서『논어』의 서설 해설과 『맹자』公孫丑章句上 제2장 해설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孔子嘗厄於陳蔡之間, 弟子多從之者, 此時 皆不在門. 故 孔子思之, 蓋不忘其相從於患難之中也.
○공자가 일찍이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액을 당하실 적에 제자가 많이 따르더니 이때에는 다 문에 있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공자가 생각하시니, 대개 그 환난 가운데서 서로 따랐음을 잊지 아니하심이라.
德行顔淵閔子騫冉伯牛仲弓, 言語 宰我子貢, 政事 冉有季路, 文學 子游子夏.
덕행(德行)에는 안연(顔淵 : 顔回),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이었고, 언어에는 재아(宰我)와 자공(子貢)이었으며, 정사에는 염유(冉有 : 冉求)와 계로(季路 : 仲由), 문학에는 자유(子游 : 言偃)과 자하(子夏 : 卜商)가 있다."
○弟子因孔子之言, 記此十人而幷目其所長, 分爲四科, 孔子敎人 各因其材 於此可見.
○程子曰, 四科 乃從夫子於陳蔡者爾. 門人之賢者固不止此, 曾子傳道而不與焉. 故 知十哲世俗論也.
○제자가 공자의 말씀을 인하여 이 열 사람을 기록하여 아울러 그 장점인 바를 지목하여 나누어 네 과목으로 삼으니, 공자가 사람을 각각 그 재목으로 인하여 가르쳤음을 이에서 가히 볼 수 있음이라.
○정자 가라사대 네 과목은 이에 부자를 진, 채 사이에서 따른 자이라. 문인의 어진 자가 진실로 이에 그치지 않고(72인), 증자는 도를 전했음에도 참여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십철은 세속에서 논한 것임을 알 수 있음이라.
第 3章
子曰, 「回也非助我者也。 於吾言 無所不說。」
공자가 말씀하셨다.
"안회(顔回)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다. 내 말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다.”
○助我 若子夏之起予 因疑問而有以相長也. 顔子於聖人之言, 黙識心通, 無所疑問. 故 夫子云然, 其辭若有憾焉, 其實乃深喜之.
○胡氏曰, 夫子之於回 豈眞以助我望之, 蓋聖人之謙德, 又以深贊顔氏云爾.
○나를 돕는다는 것은 ‘子夏之起予’(팔일편 제8장)와 같으니 의심이 생겨 묻는 것으로 인하여 서 서로 자라게 함(敎學相長)이 있음이라. 안자가 성인의 말씀에 묵묵히 알고 마음이 통하여 의심하고 묻는 바가 없음이라. 그러므로 부자가 그렇게 말씀하셨으나 그 말이 마치 유감이 있는 듯하니 그 실은 이에 깊이 하심이라.
○호씨 가로대 부자의 안회에 대하여 어찌 참으로 나를 돕는 것으로써 바라셨으리오마는 대개 성인의 겸손한 덕이오, 또 써 안씨를 깊이 칭찬하신 말씀이라.
第 4章
子曰, 「孝哉 ! 閔子騫。 人不間於其父母昆弟之言。」
공자가 말씀하셨다.
“효자로다, 민자건은! 사람들은 그의 부모 형제들이 그를 칭찬하는 말에 대해 이의를 달지 못하는구나.”
○胡氏曰, 父母兄弟稱其孝友, 人皆信之 無異辭者, 蓋其孝友之 有以積於中而著於外. 故 夫子嘆而美之.
○호씨 가로대 부모형제가 그 효도와 우애를 칭찬함에 사람들이 다 믿어서 다른 말이 없으니 대개 그 효도와 우애가 가운데에서(집안에서) 쌓여서 바깥으로 나타남이 있음이라. 그러므로 부자가 탄식하며 아름다이 여기시니라.
第 5章
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
남용(南容)이 백규(白圭)의 시를 하루 세 번 반복하여 외우자, 공자께서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셨다.
○詩大雅抑篇曰, 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 南容一日 三復此言. 事見家語 蓋深有意於謹言也. 此 邦有道 所以不廢 邦無道 所以免禍. 故 孔子兄子妻之.
○范氏曰, 言者行之表, 行者言之實, 未有易其言而能謹於行者. 南容欲謹其言如此, 則必能謹其行矣.
○시경 대아 억편에 가로대 “흰 구슬의 티는 오히려 가히 갈 수 있거니와 이 말의 티는 가히 어찌 할 수 없다”하니라. 남용이 하루에 이 말을 세 번 반복하니라. 일이 가어에 나타나니, 대개 깊이 말을 삼감에 대한 뜻이 있음이라. 이는 나라에 도가 있음에 써한 바 폐하지 아니하고 나라에 도가 없음에 써 화를 면하는 바라. 그러므로 공자가 형의 딸로써 아내를 삼게 하시니라.
○범씨 가로대 말이라는 것은 행실의 표본이오, 행실이라는 것은 말의 실지이니 그 말을 쉽게 하고서 능히 행실에 삼갈 자가 있지 않느니라.
玷 : 티 점 * 爲를 앞의 ‘磨’와 운을 맞춰 ‘와’로 읽음
大雅/蕩之什/抑
質爾人民,謹爾侯度, 네 백성을 안정시며 삼가 제후를 헤아려,
用戒不虞。 경계하고 우환이 없도록 할지어다.
愼爾出話,敬爾威儀, 신중하게 말을 하고 위의를 공경하여,
無不柔嘉。 유순하고 아름답지 않게 하지 말지어다.
白圭之玷,尙可磨也; 흰 옥홀의 흠은 갈아서 없앨 수 있어도,
斯言之玷,不可爲也。 말의 흠은 어찌할 수 없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