顔淵。第 1章. 顔淵問仁,
第 1章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안연이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자기 사욕을 이겨내고 본연의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다. 하루라도 자기 사욕을 이겨내고 본연의 예로 돌아간다면 천하가 그의 仁을 인정할 것이다. 仁을 행하는 것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어찌 남이
간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안연이 말하였다.
“그 실천 조목을 묻겠습니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아야 한다.”
안연이 말하였다.
“제가 비록 명민하지는 못하지만 이 말씀을 실천하겠습니다.”
[顔淵]
顔回者, 魯人也, 字子淵. 少孔子三十歳. 顔淵問仁, 孔子曰:「克己複禮, 天下歸仁焉.」 孔子曰:「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回也如愚;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用之則行, 捨之則藏, 唯我與爾有是夫!」 回年二十九, 髪盡白, 蚤死. 孔子哭之慟, 曰:「自吾有回, 門人益親.」 魯哀公問:「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史記 仲尼弟子列傳>
○仁者 本心之全德. 克 勝也. 己 謂身之私欲也. 復 反也. 禮者天理之節文也. 爲仁者 所以全其心之德也. 蓋心之全德 莫非天理, 而亦不能不壞於人欲. 故爲仁者 必有以勝私欲而復於禮, 則事皆天理而本心之德, 復全於我矣. 歸 猶與也. 又言一日克己復禮 則天下之人 皆與其仁, 極言其效之甚速而至大也. 又言爲仁由己, 而非他人所能預, 又見其機之在我而無難也. 日日克之, 不以爲難, 則私欲淨盡, 天理流行, 而仁不可勝用矣.
程子曰, 非禮處便是私意, 旣是私意 如何得仁. 須是克盡己私, 皆歸於禮 方始是仁. 又曰克己復禮 則事事皆仁. 故 曰天下歸仁. 謝氏曰, 克己須從性, 偏難克處 克將去.
○인이라는 것은 본심의 온전한 덕이라. 극은 이김이라. 기는 몸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름이라. 복은 돌이킴이라. 예라는 것은 천리의 절도와 무늬라. 어짊을 하는 자는 써한 바 그 마음의 덕을 온전히 함이라. 대개 마음의 온전한 덕이 천리가 아님이 없고, 또한 능히 인욕에 무너지지 아니치 못하니라. 그러므로 어짊을 하는 자가 반드시 써 사사로운 욕심을 이겨서 예에 회복한다면 일이 다 천리요, 본심의 덕이 나에게 온전히 회복도리라. 귀는 허여함과 같음이라. 또 하루라도 자기의 사사로움을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곧 천하의 사람이 다 그 인을 허여함을 말한 것이니, 그 효력이 심히 빠르고 지극히 큼을 극도로 말함이라. 또 인을 하는 것이 내 몸에서 말미암고 다른 사람이 능히 미리해주는(힘입는) 바가 아님을 말함이니, 또한 그 기틀이 내게 있어 어렵지 않다(하면 된다)는 것을 볼 수 있음이라. 날마다 이겨서 써 어렵게 하지 아니하면 사사로운 욕심이 깨끗이 다하고 천리가 유행하여 인을 가히 이기어 다 쓰지 못하리라.
정자 가라사대 예가 아닌 곳에 문득 이 사사로운 뜻이 있으니 이미 이 사사로운 뜻이 있으면 어찌 인을 얻으리오. 모름지기 이 몸의 사사로움을 다하여 다 예에 돌아가게 하여야 바야흐로 비로소 이 인이 되니라. 또 가라사대 몸을 이겨서 예에 돌아가면 곧 일마다 다 어짊이라. 그러므로 가라사대 천하가 인을 허여해준다 하시니라. 사씨 가로대 극기는 모름지기 성품을 따라서 편벽되고 어려움을 이긴 곳에서 능히 장차 (己, 곧 私欲)버림이라.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안연이 말하였다.
“그 실천 조목을 묻겠습니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아야 한다.”
안연이 말하였다.
“제가 비록 명민하지는 못하지만 이 말씀을 실천하겠습니다.”
○目 條件也. 顔淵 聞夫子之言, 則於天理人欲之際 已判然矣. 故 不復有所疑問, 而直請其條目也. 非禮者 己之私也. 勿者 禁止之辭. 是 人心之所以爲主, 而勝私復禮之機也. 私勝 則動容周旋無不中禮, 而日用之間, 莫非天理之流行矣. 事 如事事之事, 請事斯語 顔淵 黙識其理, 又自知其力有以勝之. 故 直以爲己任而不疑也.
○程子曰, 顔淵問克己復禮之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四者身之用也. 由乎中而應乎外, 制於外 所以養其中也. 顔淵事斯語, 所以進於聖人, 後之學聖人者 宜服膺而勿失也. 因箴以自警. 其視箴曰, 心兮本虛, 應物無迹. 操之有要, 視爲之則. 蔽交於前 其中則遷, 制之於外, 以安其內. 克己復禮, 久而誠矣. 其聽箴曰, 人有秉彛 本乎天性, 知誘物化, 遂亡其正. 卓彼先覺 知止有定, 閑邪存誠, 非禮勿聽. 其言箴曰, 人心之動 因言以宣, 發禁躁妄, 內斯靜專. 矧是樞機. 興戎出好, 吉凶榮辱 惟其所召. 傷易則誕, 傷煩則支, 己肆物忤, 出悖來違, 非法不道, 欽哉訓辭. 其動箴曰, 哲人知幾 誠之於思, 志士勵行, 守之於爲, 順理則裕, 從欲則危, 造次克念, 戰兢自持. 習與性成, 聖賢同歸.
愚按此章問答, 乃傳授心法, 切要之言, 非至明不能察其幾, 非至健 不能致其決. 故 惟顔子得聞之, 而凡學者 亦不可以不勉也. 程子之箴 發明親切, 學者尤宜深玩.
○목은 조목이라. 안연이 부자의 말씀을 들으니 천리[道心, 선한 그대로의 바탕] 인욕[人心, 마음의 발동에 따라 선악이 동시에 내재]의 즈음에 이미 판단이 되니라. 그러므로 다시는 의심나서 물을 것이 없고 곧 그 조목을 청하니라. 예가 아닌 것은 자기 몸의 사사로움이라. 물이라는 것은 금지한 말이라. 이것은 사람 마음의 주장이 되는 바요, 사사로움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기틀이라. 사사로움을 이긴다면 동하고 모습을 내고 두루함이 예에 맞지 않음이 없고 날로 쓰는 사이에 천리가 유행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사는 일을 일삼는다는 사와 같음이라. 청컨대 이 말을 일삼는다는 것은 안연이 그 이치를 묵묵히 알고 또 스스로 그 힘이 써 이김이 있음을 아느니라. 그러므로 다만 자기 몸의 책임으로써 삼고 의심하지 않음이라.
○정자 가라사대 안연이 극기복례의 조목을 물으니 공자 가라사대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동하지 말라하고 하시니 이 네 가지는 몸의 씀이라. 중에서 말미암아 밖에 응하니 밖에 제어함은 써 그 중을 기르는 것이라. 안연이 이 말을 일삼으니 써 성인에 나아가는 바이니 뒤에 성인을 배우는 자 마땅히 가슴에 받들어 잃지 말지니라. 인하여 경계하여서 써 스스로 일깨움이라. 그 보는 것을 경계함(視箴)에 가라사대 마음이여, 본래 허하니 물건에 응하여 자취가 없느니라. 잡는데 중요함이 있으니 보는 것이 법칙이 있음이라. 앞에서 사귀어 가려지면 그 가운데가 옮겨가니, 밖에 제어하여 그 안을 편안히 하니라. 극기복례하면 오래하여 성실해지리라. 듣는 것을 경계함(聽箴)에 가라사대 사람이 잡은 떳떳함이라는 것은 천성에 근본함이니 지적인 것은 물건에 이끌리어 화하여 마침내 그 바름을 잃느니라. 탁월한 저 선각들은 그칠 줄을 알고 정함이 있으니 간사함을 막고 정성을 존하여 예가 아니면 듣지 아니하니라. 그 말을 경계함(言箴)에 가라사대 사람 마음의 동함이 말로 인하여 써 베풀어지나니 발함에 조급하고 망령됨을 금하여서 안에 이에 고요하고 오로지 하나니라. 하물며 이 추기(문을 열고 닫는 문에 말을 내고 들이는 입을 비유함)인지라. 군사를 일으키고 좋은 것도 나오나니 길흉과 영욕이 오직 그 부르는 것이니라. 쉽게 여기는 데에서 상하면 허탄해지고, 번거롭게 하는 데에서 상하면 지루하며, 자기가 베풀면 물건이 거슬려서 오고 거슬려서 나가면 어겨서 오나니, 법이 아니면 말하지 말아서 가르친 말을 공경히 하라. 움직이는 것을 경계함(動箴)에 가라사대 철인은 기미를 알아서 생각에 정성스럽게 하고, 뜻있는 선비는 가다듬어 행하니라. 일을 함에 지키나니 이치를 따르면 넉넉해지고, 욕심을 따르면 위태로워지니 잠깐이라도 능히 생각하여 두려워하고 조심하면서 스스로 (몸가짐을) 가져라. 익힘이 성품과 더불어 이뤄지면 성현과 함께 돌아가리라.
우는 이 장의 문답을 상고하건대 이에 전수한 심법이고, 간절하고 중요한 말이니, 지극히 밝지 않으면 능히 그 기미를 살피지 못하고, 지극히 굳세지 아니하면 능히 그 결단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오직 안자라야 얻어 들으니 무릇 배우는 자는 또한 가히 써 힘쓰지 아니치 못하리라. 정자의 잠이 발명하고 친절하니 배우는 자가 더욱 마땅히 깊이 완미할지어다.
[앞주 해설]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의 4조목에 대하여 정자가 부연 설명한 四箴論이다. 程子四箴은 곧 視箴 ․ 聽箴 ․ 言箴 ․ 動箴으로 다시 한 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其視箴曰, 心兮本虛, 應物無迹. 操之有要, 視爲之則. 蔽交於前, 其中則遷, 制之於外, 以安其內. 克己復禮, 久而誠矣.(視箴에 가라사대 마음이여, 본래 허하니 물건에 응하여 자취가 없느니라. 잡는데 중요함이 있으니 보는 것이 법칙이 있음이라. 앞에서 사귀어 가려지면 그 가운데가 옮겨가니, 밖에 제어하여 그 안을 편안히 하니라. 극기복례하면 오래하여 성실해지리라).
마음이라는 것은 본래 허하니 물건에 응하여 자취가 없다. 자취가 없으니 마음으로 잘 잡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하기에 보는 것에는 법칙이 있다. 마음은 맑고 영묘하여 일체의 대상을 명찰할 수 있는 허령불매(虛靈不昧)함을 갖고 있다. 『음부경』에 “心生於物死於物, 機在於目.(마음은 물건에서 나오고 물건에서 죽으니 그 기틀이 눈에 있느니라)”고 하였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듯이 보는 것에 따라 마음이 흔들기에 보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대학』에도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마음에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느니라)”라 하였다.
② 其聽箴曰, 人有秉彛 本乎天性, 知有物化, 遂亡其正. 卓彼先覺, 知止有定, 閑邪存誠, 非禮勿聽.(聽箴에 가라사대 사람이 잡은 떳떳함이라는 것은 천성에 근본함이니 지적인 것은 물건에 이끌리어 화하여 마침내 그 바름을 잃느니라. 탁월한 저 선각들은 그칠 줄을 알고 정함이 있으니 간사함을 막고 정성을 존하여 예가 아니면 듣지 아니하니라).
『詩經』「大雅 蒸民」편에 “天生烝民, 有物有則. 民之秉彛, 好是懿德.(하늘이 여러 백성을 내시니 사물이 있고 법칙이 있도다. 백성이 잡은 떳떳함이라.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함이로다)”라고 하였다. 사람에게 있는 떳떳함은 타고난 천성이지만 물건에 따라 바름을 잃기도 한다. 『대학』에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 能得.(그칠 줄을 안 뒤에 정함(일정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능히 고요하며(방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음),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며, 편안한 뒤에 능히 생각(순수하고 진실한 생각)하며,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느니라)”하였듯이 그칠 때 그칠 줄을 알아야 마음이 한곳으로 정해지고 그 일정한 곳에 몰입하면 자연 고요해져 편안해지고 사려 깊게 생각할 수 있어서 마침내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체득하게 된다. 이것은 곧 『주역』의 건괘 문언전 구이효에서 말한 ‘閑邪存其誠(간사한 것을 막고 그 정성을 보존함)’의 자세를 갖추어야 非禮勿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大雅/蕩之什/ 蒸民
天生烝民,有物有則。 하늘이 많은 백성을 내시니 물체에는 법칙이 있도다.
民之秉彝,好是懿德。 백성이 지키는 것은 떳떳함이라,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도다.
天監有周,昭假于下。 하늘이 주나라를 보시어 밝음이 아래에 이르렀도다.
保茲天子,生仲山甫。 이 천자를 보우하시어 중산보를 낳으셨도다.
③ 其言箴曰, 人心之動 因言以宣, 發禁躁妄, 內斯靜專. 矧是樞機. 興戎出好, 吉凶榮辱 惟其所召. 傷易則誕, 傷煩則支. 己肆物忤, 出悖來違, 非法不道, 欽哉訓辭.(言箴에 가라사대 사람 마음의 동함이 말로 인하여 써 베풀어지나니 발함에 조급하고 망령됨을 금하여서 안에 이에 고요하고 오로지 하나니라. 하물며 이 추기(문을 열고 닫는 문에 말을 내고 들이는 입을 비유함)인지라. 군사를 일으키고 좋은 것도 나오나니 길흉과 영욕이 오직 그 부르는 것이니라. 쉽게 여기는 데에서 상하면 허탄(虛誕)해지고 번거롭게 하는 데에서 상하면 지루하며 자기가 베풀면 물건이 거슬려서 오고 거슬려서 나가면 어겨서 오나니 법이 아니면 말하지 말아서 가르친 말을 공경히 하라).
『서경』대우모(大禹謨) 15장에 순임금이 우에게“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하고 도의 마음은 오직 미미하니 오직 정미롭고 오직 한결같이 하여)” “윤집궐중(允執厥中, 모름지기 그 중을 잡는다)”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스스로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 말에 달려있다. 입을 열어 좋은 얘기(出好)도 나오지만 군사를 내어 싸움을 일으키듯이 나쁜 일(興戎)도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 말은 따라야 되고(從) 다스려져야(乂) 하는데, 함부로 쉽게 뱉으면 허황되고,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다보면 지루해 아무도 듣게 되지 아니한다. 더욱이 방자하게 말을 베풀다보면 『대학』에서도 말했듯이 “言悖而出者, 亦悖而入(말이 거슬러 나간 것은 역시 거슬러 들어온다)”하게 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과 같다. 그러므로 법이 아닌 것은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④ 其動箴曰, 哲人知幾 誠之於思, 志士勵行 守之於爲, 順理則裕, 從欲則危, 造次克念, 戰兢自持. 習與性成 聖賢同歸.(動箴에 가라사대 철인은 기미를 알아서 생각에 정성스럽게 하고, 뜻있는 선비는 가다듬어 행하니라. 일을 함에 지키나니 이치를 따르면 넉넉해지고, 욕심을 따르면 위태로워지니 잠깐이라도 능히 생각하여 두려워하고 조심하면서 스스로 (몸가짐을) 가져라. 익힘이 성품과 더불어 이뤄지면 성현과 함께 돌아가리라).
『주역』에 ‘君子見機而作’ 곧 군자는 기미를 알아서 일어나고, 『맹자』에서 “志士不忘在溝壑.(뜻있는 선비는 구학에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고”라 하였듯이 늘 행동을 가다듬어 나가기에 모든 일을 하는데 늘 지켜나간다. 무슨 일을 하든지 늘 두려워하고 조심하면서 스스로를 지켜나간다면 성현과 같아질 것이다.
☞ 參考
孔子謂安回曰 : 「回來, 家貧居卑, 胡不仕乎?」 安回對曰 : 「不願仕。回有郭外之田五十畝, 足以給飦粥。郭內之田十畝, 足以爲絲麻。鼓琴足以自娛, 所學夫子之道者, 足以自樂也。回不願仕。」 孔子愀然變容曰 : 「善哉!回之意。丘聞之, 『知足者, 不以利自累也, 審自得者, 失之而不懼, 行修於內者, 無位而不怍。』 丘誦之久矣, 今於回而後見之。是丘之得也。」。」
<莊子 讓王章>
공자가 안회에게 말했다. "안회야, 이리 오너라. 너는 집도 가난하고 지위도 없는데 어째서 벼슬을 하지 않느냐?"
안회가 대답하기를, "저는 벼슬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성밖에 밭 50묘가 있어 죽을 먹기에 족하고, 성안에 밭 10묘가 있어 베옷을 입
을 수 있습니다. 거문고를 뜯으며 스스로 즐기고 선생님께 도를 배워 스스로 즐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벼슬을 바라지 않습니다."
하니, 공자가 정색하고 얼굴빛을 고치며 말했다.
"훌륭하도다. 안회의 생각이. 내가 듣기를, 『족할 줄 아는 자는 이욕에 얽매이지 않고 자득할 줄을 깨달은 자는 이득을 잃어도 두려워하
지 않으며 정신적으로 수행을 쌓은 사람은 지위가 없어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하였는데 내가 이 말을 외운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다
가 이제서야 안회에게서 그 말이 실현되는 것을 알았구나. 이는 나의 큰 득이로다."
☞ 莊子 內篇 人間世.
顏回見仲尼,請行。曰:「奚之?」曰:「將之衛。」曰:「奚爲焉?」曰:「回聞, 衛君其年壯,其行獨;輕用其國,而不見其過;輕用民死,死者以國量乎澤若蕉,民其无如矣。回嘗聞之夫子曰:『治國去之,亂國就之,醫門多疾。』 願以所聞思其則,庶幾其國有瘳乎!」
안회가 공자를 보고 하직인사를 하였다. 공자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안회가 답했다. "위나라로 가려고 합니다."
"뭘 하러 가려고 하느냐?"
"제가 듣기로 위나라 군주는 나이는 젊은데 그 행동이 독단적이라 경솔하게 그 국민을 부리면서도 그 잘못을 보지 못하며 백성을 함부로 부려 죽는데, 죽는 자가 나라에 가득하여 연못을 메우고 풀더미같이 쌓여 있어 백성들이 갈 바를 모른다고 합니다. 저는 일찌기 선생님께서 '다스려지는 나라를 떠나 어지러운 나라로 가라. 의사의 문에는 환자가 많다.'고 하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제가 선생남의 가르침을 행한다면 위나라를 고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仲尼曰:「譆!若殆往而刑耳!夫道不欲雜,雜則多,多則擾,擾則憂,憂而不救。古之至人,先存諸己而後存諸人。所存於己者未定,何暇至於暴人之所行!且若亦知夫德之所蕩, 而知之所爲出乎哉?德蕩乎名,知出乎爭。名也者,相札也;知也者,爭之器也。二者凶器,非所以盡行也。且德厚信矼,未達人氣,名聞不爭,未達人心, 而强以仁義繩墨之言術暴人之前者,是以人惡有其美也,命之曰菑人。菑人者,人必反菑之,若殆爲人菑夫!
矼 : 징검다리 강/성실할 공
이에 공자가 대답했다.
"허! 네가 간다면 반드시 형벌만 받을 것이다. 무릇 도는 번잡한 것을 싫어하며 번잡하면 일이 많아지고 일이 많으면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워지면 근심이 생기며 근심이 생기면 구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지인(=聖人)들은 먼저 자기를 존립시키고나서 남을 존립시킨다. 자신도 존립시키지 못하면서 어느 겨를에 사나운 사람들의 소행을 간섭하겠는가! 또 너는 덕이 혼란해지는 바와 지혜가 생겨나는 바를 아느냐? 덕은 명예를 구하는데에서 혼란해지고 지혜는 다투는 것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명예는 서로 해치는 것이요, 지혜는 다투는 기구가 된다. 이 두 가지는 흉기라 모두 취할 바가 아니다. 또 덕이 후덕하고 신망이 두텁다 해도 남의 기분에 통달하지 못하고 명예를 다투지 않아도 남의 마음에 통하지 못하는데 거친 사람들의 면전에서 애서 인의와 법도를 말하는 것은 남의 악함을 들어내 자신의 미덕을 드러내는 것이니 이를 일컬어 남을 해친다고 하는 것이다. 남을 해치는 자는 반드시 남으로부터 재앙을 되돌려 받게 된다. 그러니 너도 아마 남에게 해를 당하게 될 것이다.
且苟爲悅賢而惡不肖,惡用而求有以異?若唯無詔,王公必將乘人而鬪其捷。而目將熒之,而色將平之,口將營之,容將形之,心且成之。是以火救火,以水救水,名之曰益多。順始無窮,若殆以不信厚言,必死於暴人之前矣!
且昔者桀殺關龍逢,紂殺王子比干,是皆修其身以下傴拊人之民,以下拂其上者也. 故其君因其修以擠之。是好名者也。昔者堯攻叢枝、胥敖,禹攻有扈,國爲虛厲,身爲刑戮. 其用兵不止,其求實無已,是皆求名實者也,而獨不聞之乎?名實者,聖人之所不能勝也,而況若乎!雖然,若必有以也,嘗以語我來!」
또 위왕이 진실로 현인을 좋아하고 어리석은 자를 미워한다면 어찌하여 너를 등용하여 특이한 일을 하려 하겠는가? 너는 오로지 말을 하지 말라. 왕은 반드시 남의 약점을 틈타서 이기려만 할 것이다. 그러면 너의 눈은 현혹될 것이고 안색은 꺾이게 될 것이며, 입으로는 변명만 하게 될 것이고 모습도 단정해지며 마음도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불로써 불을 끄고 물로써 물을 막아 이름하여 '한술 더 뜬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순종이 시작되어 끝이 없고 네가 신임도 받지 못하면서 심한 말을 한다면 반드시 난폭한 사람의 면전에서 죽게 될 것이다.
또 옛날 하나라 걸왕은 어진 신하인 관용봉을 죽였고 은나라 주왕은 왕자 비간을 죽였는데 이는 모두 자신을 닦아 신하로서 군왕의 백성을 보살폈으나 신하의 몸으로 그 군왕을 거스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군왕은 그들의 훌륭함때문에 그들을 죽인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명예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옛날 요임금은 총지와 서오를 쳤고 우임금은 유호를 쳤는데 그 나라들은 폐허가 되고 백성은 살해되었으며 왕은 처형되었다. 이는 이 세 나라가 모두 용병을 그치지 않고 실리의 추구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는 모두 명예와 실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그것을 듣지 못했느냐? 명예와 실리라는 것은 성인도 억제하지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너에게 있어서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까닭이 있을 것이니 어디 말해 보아라."
顏回曰:「端而虛,勉而一,則可乎?」曰:「惡!惡可!夫以陽爲充孔揚,采色不定,常人之所不違. 因案人之所感,以求容與其心。名之曰日漸之德不成,而況大德乎!將執而不化,外合而內不訾,其庸詎可乎!」
「然則我內直而外曲,成而上比。內直者,與天爲徒。與天爲徒者,知天子之與己皆天之所子,而獨以己言蘄乎而人善之,蘄乎而人不善之邪?若然者,人謂之童子, 是之謂與天爲徒。外曲者,與人之爲徒也。擎跽曲拳,人臣之禮也,人皆爲之,吾敢不爲邪!爲人之所爲者,人亦無疵焉,是之謂與人爲徒。成而上比者,與古爲徒。其言雖教,讁之實也, 古之有也,非吾有也。若然者,雖直而不病。是之謂與古爲徒。若是則可乎?」
訾 : 헐뜯을 자. 헐뜯다. 훼손함. 생각하다. 헤아리다. 직무에 태만한 모양, 한정하다. 재보, 자본. 병폐, 흉터. 나쁘다. 앓다. 방자하다.
蘄 : 풀이름 기/승검초 근. 풀이름, 미나리. 근채. 재갈, 馬銜. 구하다, 기원함. 부지란하다. 승검초.
跽 : 꿇어앉을 기. 꿇어앉다. 무릎을 꿇고 앉아 궁둥이를 들고 몸을 폄. 장궤(長跪). 굽다. 몸을 앞으로 구부림.
擎跽曲拳 : 홀(笏)을 높이 들거나 무릎 꿇고 절하거나 몸을 구부리는 동작. 곧 임금 앞에서 예모(禮貌)를 갖추어 행동함을 비유.
擎은 홀(笏)을 들어 올리는 동작, 跽는 무릎을 꿇고 앉아 절하는 모습, 曲拳은 鞠躬, 곧 몸을 굽히는 동작.
안회가 말했다. "단정하고 겸허하며 함쓰기를 한결같이 하면 되겠는지요?"
"아! 어찌 될 수가 있겠느냐. 너는 겉으로 보기에는 덕이 충만되어 있는 것 같으나 안색마저도 안정되어있지 않아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남의 감정을 헤아려 그 마음에 들기를 바라지만 이름하여 '날마다 조금씩 덕을 이루어 갈 수도 없다.'는 것인데 하물며 큰 덕을 이룸에 있어서랴! 위나라 임금은 고집이 세어서 뜻을 바꾸지 않을 것이며 겉으로는 들어주는 척하면서 내심으로는 멋대로 할 것이니 어찌 될 것인가?"
"그렇다면 저는 속으로는 곧지만 겉으로는 완곡하고 의견을 낼 때에는 옛사람의 가르침에 따르겠습니다. 속이 곧은 자는 하늘과 함께 하는 무리가 되는 것이며 하늘과 함께하는 무리가 된다는 것은 천자가 자기와 더불어 모두 하늘의 자식임을 알 것이니 어찌 자기의 말을 남이
좋게 여기기를 바라며 남이 좋지않게 여기기를 바라겠습니까? 이와 같은 자를 사람들은 어린아이라고 하는데 이는 하늘과 함께하는 무리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겉으로 자신의 뜻을 굽히는 자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무리가 되니 손에 홀을 들고 무릎을 꿇으며 절을 하고 몸을 굽히는 것은 신하된 자의 예로 사람들이 모두 행하는 바이니 제가 감히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행하는 것을 따라 행하면 사람들도 탓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무리가 되었다 할 것입니다. 의견을 내세울 때 옛 사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옛사람과 함께하는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말은 가르침이지만 견책이 그 실체이며 그것은 옛날부터 있던 것이고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곧더라도 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옛사람과 함께 하는 무리가 된다 할 것이니 이러면 되겠습니까?"
仲尼曰:「惡!惡可!大多政,法而不諜,雖固亦無罪。雖然,止是耳矣,夫胡可以及化,猶師心者也。」 顏回曰:「吾無以進矣,敢問其方。」仲尼曰:「齋,吾將語若。有[心]而爲之,其易邪?易之者,皡天不宜。」 顏回曰:「回之家貧,唯不飮酒不茹葷者數月矣。若此,則可以爲齋乎?」 曰:「是祭祀之齋,非心齋也。」 回曰:「敢問心齋。」仲尼曰:「若一志,無聽之以耳而聽之以心,無聽之以心而聽之以氣!聽止於耳,心止於符。氣也者,虛而待物者也。唯道集虛。虛者,心齋也。」
공자가 말했다. "아! 어찌 될 수가 있겠느냐? 정사가 많고 법을 지키면서 도모하는 일이 없다면 진실로 죄를 짓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그칠뿐이니 어찌 상대방을 변화시키는데까지 미칠 수 있겠느냐. 너는 아직도 네 마음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에 안회가 말했다. "저는 더이상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감히 그 방도를 여쭙니다."
공자가 말했다. "재계해라. 내가 너에게 말해주겠다. 마음이 있어서 한들 그것이 쉽겠는가? 쉽게 하는 자가 있다면 하늘이 마땅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안회가 말했다. "저는 집이 가난해서 술도 마시지 않고 냄새나는 채소를 먹지 않은지가 몇개월이 지났습니다. 이렇다면 재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제사지낼 때의 재계이지 마음의 재계는 아니다."
안회가 말했다. "마음의 재계에 대해서 귿고자 합니다."
"너는 뜻이 한결같아야 한다. 귀로 듣지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말고 기로써 들어라. 귀로는 듣는데 그치고 마음은 부합(지각)하는데에서 그친다. 기라는 것은 마음을 비워 사물을 기다리는 것이다, 오직 도는 비운 곳에 모이니 마음을 비우는 것이 마음을 재계하는 것이다.
顏回曰:「回之未始得使,實自回也;得使之也,未始有回也;可謂虛乎?」夫子曰:「盡矣。吾語若!若能入遊其樊而無感其名,入則嗚,不入則止。無門無毒。一宅而寓於不得已,則幾矣。絶跡易,無行地難。爲人使易以僞,爲天使難以僞。聞以有翼飛者矣,未聞以無翼飛者也;聞以有知知者矣,未聞以無知知者也。瞻彼闋者,虛室生白,吉祥止止。夫且不止,是之謂坐馳。夫徇耳目內通而外於心知,鬼神將來舍,而況人乎!是萬物之化也,禹舜之所紐也,伏戲几蘧之所行終,而況散焉者乎!」
안회가 말했다. "제가 가르침을 얻기 전에는 진실로 제 자신이 안회임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만 가르침을 얻고난 후에는 비로소 제 자신이 안회라는 의식이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비워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되었다.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네가 위나라에 들어가 노닐게 될 때 명예에 사로잡히지 말아라. 받아들이면 말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쳐야 한다. 마음에 문과 담을 없이하고 오로지 도를 거처로 삼아 부득이한 경우에만 말 할 수 있다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세속에 종적을 끊어버리는 것은 쉽지만 땅 위를 가지 않는 것은 어렵다. 남의 부림을 받으면 거짓을저지르기 쉽고 하늘의 부림을 받으면 거짓을 저지르기 어렵다. 있는 날개로 난다는 것은 들었어도 없는 날개로 난다는 것은 듣지 못했으며, 지혜로써 안다는 말은 들었어도 없는 지혜로써 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저 열려있는 문을 보라. 텅 빈방에 밝음이 있고 길한 징조가 깃들어 있다. 대저 마음이 정지하고 있지 않으면 이를 앉아 있지만 마음만 바쁜 것이라 한다. 무릇 귀와 눈이 전해주는 것에 따라 안으로 통하고 마음의 지각을 벗어난다면 귀신도 와서 머물 것인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이것은 만물을 교화하는 길이며 우와 순이 근본으로 삼았던 바이며 복희와 궤거도 평생 행하다 마쳤던 바인데 하물며 이들보다 못한 보통사람에 있어서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