憲問。第21章. 其言之不怍。 ~ 第25章. 古之學者 爲己,
第21章
子曰, 「其言之不怍, 則爲之也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말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큰소리를 친다면 그 말은 실천하기 어렵다.”
怍 : 부끄러울 작. 부끄러워하다. 안색이 변하다. 성난모양.
○大言不慙, 則無必爲之志 而自不度其能否矣, 欲踐其言 豈不難哉!
○크게 말하여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해야 할 뜻이 없는 것이고, 스스로 그 능히 가부를 헤아리지 아니하니, 그 말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어찌 어렵지 아니하랴
第22章
陳成子弑簡公, 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曰, 「陳恒弑其君, 請討之。」 公曰, 「告夫三子。」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君曰, 『告夫三子者』」 之三子告, 不可,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진성자(陳成子)가 제(齊)나라 간공(簡公)을 시해하였다.
공자는 목욕하고 조정에 나아가 노(魯)나라 애공(哀公)에게 고하셨다.
“진항(진성자)이 자기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그를 토벌하소서.”
애공이 말하였다.
“저 세 가문(三家)에 가서 말하시오.”
공자께서 물러나와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말석에 있는 까닭에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임금께서는 저 세 가문에 말하라고 하시는구나.”
세 가문에 가서 말씀하셨는데, 안 된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말석에 있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成子 齊大夫, 名 恒. 簡公 齊君, 名 任. 事在春秋哀公十四年.
○성자는 제나라 대부니 이름은 항이고, 간공은 제나라 인군이니 이름은 임이라. 사건이 춘추 애공 4년에 있느니라.
☞ 春秋哀公十四年
甲午, 齊陳恒弑其君壬于舒州. 孔丘三日齊, 而請伐齊三. 公曰, 「魯爲齊弱久矣. 子之伐之, 將若之何?」 對曰, 「陳恒弑其君, 民之不與者半. 以魯之衆加齊之半, 可克也.」 公曰, 「子告季孫.」 孔子辭, 退而告人曰, 「吾以從大夫之後也. 故不敢不言.」
갑오일에 제나라 진항이 그의 임금 임을 서주에서 시해하였다. 그래서 노나라 공자는 3일을 재계하시고, 세 번이나 제나라를 토벌하자고 청하였다. 그러나 노나라애공은 말하기를, "우리 노나라가 제나라의 침략으로 쇠약하여진 지가 오래되었도다. 지금 그대는 제나라를 정벌함에 무슨 방법이 좋겠는가?"하였다
공자가 대답했다. "제나라 진항이 그 임금을 죽였으니, 제나라 백성으로 찬성하지 않는 자가 반수는 될 것입니다. 그래서 노나라의 많은 군사를 제나라의 반수의 군사에다 보탠다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공이 말했다. "그대는 계손에게 고하라."
공자는 작별하고 물러나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 일찍이 대부를 지냈으므로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曰, 「陳恒弑其君, 請討之。」
공자는 목욕하고 조정에 나아가 노(魯)나라 애공(哀公)에게 고하셨다.
“진항(진성자)이 자기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그를 토벌하소서.”
○是時 孔子致仕居魯. 沐浴齊戒以告君, 重其事而不敢忽也. 臣弑其君 人倫之大變, 天理所不容, 人人得而誅之, 況鄰國乎! 故 夫子雖已告老而猶請哀公討之.
○이때에 공자가 벼슬을 버리고(벼슬에서 퇴임하고) 노나라에 거하셨느니라. 목욕재계하야 써 인군에게 고함은 그 일이 중대하고 감히 경솔히 못함이라. 신하가 그 인군을 시해함은 인륜의 큰 변고이고 천리가 용납하지 못하는 바이니, 사람마다 얻어서(나서서) 베어야 하온. 하물며 이웃나라임에야. 그러므로 부자가 비록 이미 늙음으로 고하셨으나 오히려 애공에게 토벌을 청하셨느니라.
公曰, 「告夫三子。」
애공이 말하였다.
“저 세 가문(三家)에 가서 말하시오.”
○三子 三家也. 時 政在三家, 哀公不得自專. 故 使孔子告之.
○삼자는 세 집(계손, 숙손, 맹손)이라. 때는 정치가 삼가에 있어서 애공이 얻어 스스로 오로지 하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공자로 하여금 고하게 함이라.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不敢不告也, 君曰, 『告夫三子者』」
공자께서 물러나와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말석에 있는 까닭에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임금께서는 저 세 가문에 말하라고 하시는구나.”
○孔子出而自言如此. 意謂弑君之賊 法所必討. 大夫謀國 義所當告, 君內不能自命三子 而使我告之邪.
○공자가 나가서 스스로 이와 같이 말씀하심이라. 인군을 죽인 적은 법이 반드시 토벌하는 바요, 대부가 나라를 도모함은 의가 마땅히 고해야 하는 바이거늘 인군이 이에 능히 스스로 삼자에게 명하지 아니하고 나로 하여금 고하게 하는구나.
之三子告, 不可。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세 가문에 가서 말씀하셨는데, 안 된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말석에 있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以君命往告, 而三子魯之强臣, 素有無君之心, 實與陳氏 聲勢相倚. 故 沮其謀而夫子復以此應之, 其所以警之者 深矣.
○程子曰, 左氏記孔子之言曰, '陳恒 弑其君 民之不予者半, 以魯之衆 加齊之半 可克也.' 此非孔子之言. 誠若此言, 是以力, 不以義也. 若孔子之志 必將正名其罪, 上告天子, 下告方伯而率與國以討之, 至於所以勝齊者, 孔子之餘事也. 豈計魯人之衆寡哉. 當是時 天下之亂 極矣, 因是足以正之, 周室其復興乎. 魯之君臣終不從之, 可勝惜哉.
胡氏曰, 春秋之法 弑君之賊 人得而討之, 仲尼此擧 先發後聞 可也.
○군명으로써 가서 고하는데 세 사람은 노나라의 막강한 신하로 본디 인군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어 실은 진씨와 더불어 성세(소리와 형세)가 서로 의지하니라. 그러므로 그 도모함을 저지하자 부자가 다시 이로써 응하시니 그 경계하는 바가 깊도다.
○정자 가라사대, 좌씨(춘추좌씨전)가 공자의 말씀을 기록하여 가로대 진항이 그 인군을 죽임에 백성이 기뻐하지 않는 자가 반이니, 노나라의 무리로써 제나라의 반을 더하면 가히 이기리라 하니, 이는 공자의 말씀이 아니라. 진실로 이 말과 같을진댄 이는 힘으로써 이고, 의로써가 아니니라. 만약 공자의 뜻은 반드시 장차 그 죄의 명분을 바르게 하여, 위로 천자에게 고하고 아래로 방백에게 고하여 동맹국을 거느려 써 토벌하시니, 써 제나라를 이기는 데에 이르러서는 공자의 나머지 일이라(이기고 지는 일은 별개의 일이라). 어찌 노나라 사람이 무리가 적음을 계산하리오. 이때를 다하여 천하의 어지러움이 극했으니 이를 인하여 족히 써 바룬다면 주나라 왕실이 그 복흥할 것인저. 노나라 군신이 마침내 따르지 아니하니 가히 애석함을 이기랴(심히 애석하도다). 호씨 가로대 춘추의 법에 인군을 시해한 적은 사람마다 얻어 토벌하니 중니의 이 거사는 먼저 발(거사)하고 나중에 알림이 가하니라.
第23章
子路問事君, 子曰, 「勿欺也。而犯之。」
자로가 임금 섬기는 도리를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을 속이지 말고, 면전에서 직언해야 한다.”
○犯 謂犯顔諫爭.
○范氏曰, 犯非子路之所難也. 而以不欺爲難. 故 夫子告以先勿欺而後犯也.
○범은 얼굴을 범하고(들이대고, 맞대고) 간하면서 다툼이라.
○범씨 가로대 범은 자로의 어려운 바가 아니고 속이지 않음으로써 어려움이 됨이라. 그러므로 부자가 먼저 속이지 말고 뒤에 범하는 것으로써 고하시니라.
[해설]
속이지 않음과 얼굴을 대놓고 간쟁함은 두 가지 일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속이지 않는 진심이 있는 이후에야 얼굴을 대놓고 감히 간쟁을 할 수 있으며, 얼굴을 대놓고 간쟁하는 충성이 있는 이후에야 속이지 않을 수 있다. 속인다는 말은 꼭 지록위마(指鹿爲馬) 같은 거짓말을 해야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터럭만큼이라도 진심이 아니면 바로 속이는 것이다. 터럭만큼 스스로 속이는 행위가 일을 망치고 도리를 상실하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을 듯하지만, 터럭만큼 차이가 결국 임금을 저버리는 행태에까지 이른다.
“얼굴을 대놓고 간쟁함〔犯之〕”과 “윗사람을 범함〔犯上〕”의 ‘범(犯)’ 자는 글자가 동일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신하가 직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임금의 벼락 같은 진노가 두렵고 죽음이나 유배를 당하는 재앙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하는 행동이 바로 얼굴을 대놓고 간쟁하는 것이다. 이런 간쟁은 자로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속이지 말라는 말과 대비하여 거론하므로 ‘이(而)’ 자를 붙이고 이 ‘범’ 자를 써 놓았다. <讀書箚義>
第24章
子曰, 「君子上達, 小人下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높고 밝은데로 나아가고, 소인은 더러운 아래로 빠져든다."
○君子反天理. 故日進乎高明, 小人 徇人欲. 故日究乎汙下.
○군자는 천리로 돌아감이라. 그러므로 날로 높고 밝은데 나아가고, 소인은 인욕을 따름이라. 그러므로 날로 더러운 아래로 빠져드니라.
[해설]
군자와 소인의 차이가 당초 어찌 하늘과 땅 정도뿐이었겠는가. 한쪽은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선행을 하고, 다른 한쪽은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니, 아침나절이 지날 정도에 벌써 순(舜) 임금과 도척(盜蹠)의 구별이 생긴다. 한쪽은 한순간 생각의 조짐에서도 신중하고, 다른 한쪽은 홀로 아는 은밀한 행위라고 하여 전혀 꺼림이 없으므로 실제 일에서 곧장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이른바 상달(上達)과 하달(下達)이다.
비유하면, 정면을 바라보고 산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산꼭대기 밝은 곳에 도착하지만, 몸을 돌려 산을 등지고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자는 필시 깊은 계곡의 더럽고 낮은 곳에 도착할 것이다. 공자가 말한 이 내용이 후생(後生)을 깨우치는 데에 가장 절실하다. 배우는 사람은 최초에 그칠 데를 알아 정(定)함이 있을〔知止有定〕 때에 삼가고 조심해야 하니, 이것이 바로 격물치지를 중요시하는 이유이다.
“군자는 날로 높고 밝은 곳으로 나아가고, 소인은 날로 낮은 곳에 이른다.〔日進日究〕”라는 네 글자는 가장 유념하고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讀書箚義>
第25章
子曰, 「古之學者 爲己, 今之學者 爲人。」
공자가 말씀하셨다.
“옛날의 학자들은 자기 인격 수양을 위하여 공부를 했는데, 요즘 학자들은 남에게 알려지기 위하여 공부를 한다.”
[해설]
옛날 학자들은 자신이 사람되기 위하여 공부한 반면, 지금의 학자들은 남을 의식하고 자신을 내세우고 자랑하기 위하여 공부한다.
○程子曰, 爲己欲得之於己也, 爲人 欲見之於人也.
○程子曰, 古之學者 爲己其終至於成物, 今之學者 爲人其終至於喪己. 愚 按聖賢論學者用心得失之際 其說多矣. 然 未有如此言之切而要者, 於此明辯而日省之 則庶乎其不昧於所從矣.
○정자 가라사대 내 몸을 위함은 내 몸에서 얻고자 함이고, 남을 위함은 남에게 보이고자 함이라. ,
○정자 가라사대 옛적의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그 마침내 성물에 이르더니 지금의 배우는 자는 남을 위하여 그 마침내 자기 몸을 상하는 데에 이르도다. 우는 상고하건대 성현이 학자의 마음 씀이 얻고 잃는 즈음을 논함에 그 말이 많았다. 그러나 이와 같이 말의 절실하고 요약한 자 있지 아니하니, 이에 밝게 분별하여 날로 살피면 거의 그 따르는 바에 어둡지 아니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