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書/論語

微子。第 6章. 長沮桀溺耦而耕, ~ 第11章. 周有八士,

柳川 2020. 1. 16. 00:45

第 6章

 

長沮桀溺耦而耕, 孔子過之使子路問津焉。長沮曰, 「夫執輿者爲誰?」 子路曰, 「爲孔丘。」  曰, 「是魯孔丘與?」 曰, 「是也。」曰, 「是知津矣。」 問於桀溺, 桀溺曰, 「子爲誰?」 曰, 「爲仲由。」 曰, 「是魯孔丘之徒與。」 對曰, 「然。」 

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耰而不轍。子路行以告, 夫子憮然曰, 「鳥獸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장저와 걸닉이 함께 밭을 갈고 있는데 공자가 지나가다가 자로를 시켜 나루로 가는 길을 묻게 하였다.

장저가 물었다.

“수레 고삐를 잡고 있는 분이 누구신가?”

자로가 대답했다.

“공구이십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저 사람이 노나라의 공구인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니까

“저 사람은 나루를 알 것이오.”라고 하였다.

걸닉에게 물으니, 걸닉이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자로가 “중유(仲由)라 합니다.”라고 답하였다.

그가 다시 물었다. “그대가 바로 노나라 공구의 문도인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천하의 모든 것이 이렇게 도도히 흘러가는데, 누구와 그 흐름을 바꾸겠는가. 또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기 보다는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씨앗 덮는 일을 계속하였다.

자로가 돌아와서 아뢰니, 공자가 한동안 안타까워하며 있다가 말하였다.

“새나 짐승들과 무리지어 살 수는 없는 것이니,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살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 굳이 바꾸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二人 隱者. 耦 幷耕也. 時 孔子自楚反乎蔡. 津 濟渡處.

 

두 사람은 은자라. 우는 함께 밭을 갊이라. 이때에 공자가 초나라로부터 채나라에 돌아가심이라. 진은 물 건너는 곳이라.

 

 

長沮曰, 「夫執輿者爲誰?」 子路曰, 「爲孔丘。」 曰, 「是魯孔丘與?」 曰, 「是也。」曰, 「是知津矣。」

 

장저가 물었다.

“수레 고삐를 잡고 있는 분이 누구신가?”

자로가 대답했다.

“공구이십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저 사람이 노나라의 공구인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니까

“저 사람은 나루를 알 것이오.”라고 하였다.

 

 

執輿 執㘘在車也. 蓋本子路御而執轡. 今下問津. 故 夫子代之也. 知津 言數周流, 自知津處.

 

수레를 잡음은 고삐를 잡고 수레에 있음이라. 대개 본래는 자로가 수레를 몰고 고삐를 잡다가 이제 내려가 나루를 물음이라. 그러므로 부자가 대신하시니라. 나루를 앎은 자주 두루 흘러 다니면서 스스로 나루터를 앎이라.

 

 

 

問於桀溺, 桀溺曰, 「子爲誰?」 曰, 「爲仲由。」 曰, 「是魯孔丘之徒與。」 對曰, 「然。」曰, 「滔滔者天下皆是也, 而誰以易之? 且而與其從辟人之士也, 豈若從辟世之士哉!」 耰而不轍。

 

걸닉에게 물으니, 걸닉이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자로가 “중유(仲由)라 합니다.”라고 답하였다.

그가 다시 물었다. “그대가 바로 노나라 공구의 문도인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천하의 모든 것이 이렇게 도도히 흘러가는데, 누구와 그 흐름을 바꾸겠는가. 또 그대는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기 보다는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는 씨앗 덮는 일을 계속하였다.

 

耰 : 덮을 우, 써레질할 우

 

 

滔滔 流而不反之意. 以 猶與也. 言天下皆亂將誰與變易之. 而 汝也. 辟人 謂孔子, 辟世 桀溺自謂. 耰는 覆種也. 亦不告以津處.

 

도도는 흘러서 돌아오지 못하는 뜻이라. 이는 더불음과 같음이라. 천하가 다 어지러우니 장차 누구와 더불어 변역하리오를 말함이라. 이는 너라. 피인은 공자를 말함이라. 피세는 걸닉 스스로를 이름이라. 우는 씨를 덮음이라. 또한 써 나루터를 가르쳐주지 않음이라.

 

 

 

子路行以告, 夫子憮然曰, 「鳥獸不可與同群, 吾非斯人之徒與而誰與? 天下有道, 丘不與易也。」

 

자로가 돌아와서 아뢰니, 공자가 한동안 안타까워하며 있다가 말하였다.

“새나 짐승들과 무리지어 살 수는 없는 것이니, 내가 이 세상 사람들과 살지 않고 누구와 더불어 살겠는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내 굳이 바꾸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憮然 猶悵然, 惜其不喩己意也. 言所當與同群者斯人而已, 豈可絶人逃世, 以爲潔哉. 天下若已平治, 則我無用變易之, 正爲天下無道. 故 欲以道易之耳. 

○程子曰, 聖人 不敢有忘天下之心. 故 其言如此也. 張子曰, 聖人之仁, 不以無道로 必天下而棄之也.

 

무연은 창연과 같으니 그 자기 뜻을 깨우치지 못함을 애석히 함이라. 마땅히 더불어 무리를 같이 할 바는 이 사람들일 뿐이니 어찌 가히 사람을 끊고 세상을 피하여 써 깨끗함을 삼으리오. 천하가 이미 평치가 되었다면 내 써 변역함이 없으니 정히 천하가 도가 없음이라. 그러므로 도로써 바꾸고자 함을 말씀함이라. 

정자 가라사대 성인은 감히 천하의 마음을 잊지 않음이라. 그러므로 그 말이 이와 같으시니라. 장자 가라사대 성인의 인은 무도함로써 반드시 천하를 버리지 않느니라.

 

 

 

 

 

第 7章

 

子路從而後, 遇丈人以杖荷蓧。子路問曰, 「子見夫子乎?」 丈人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子路拱而立, 止子路宿, 殺鷄爲黍而食之, 見其二子焉。明日子路行以告, 子曰, 「隱者也。」 使子路反見之, 至則行矣。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不可廢也, 君臣之義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자로가 뒤따라가던중 일행에 뒤처져 가다가, 한 노인(丈人)을 만났는데 지팡이에 삼태기를 걸어 매고 있었다.

자로가 물었다.

“노인께서는 우리 선생님을 보셨습니까?”

노인이 물었다.

“사지를 부지런히 움직여 일하지도 않고 오곡도 구분 못하는 사람을 어찌 선생이라고 하는가?”

그리고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매었다.

자로가 손을 마주 잡고 공손한 자세로 서 있으니,  자로를 자기 집에 머물러 자게 하고는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먹이고 그의 두 아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다음 날 자로가 떠나와서 공자에게 아뢰니, 공자가 “은자이다.”라고 말하고, 자로에게 돌아가 만나 보게 하였는데, 다시 와 보니 떠나가고 없었다.

자로가 말했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니다. 자유(長幼)의 예절도 폐할 수 없는 법인데, 하물며 임금과 신하의 의를 어찌 폐할 수 있겠는가. 자기 몸 하나 깨끗이 하려고 큰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그 의를 천하에 행하려고 하는 것인데 세상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것이다.”

 

植 : 심을 식, 여기서는 ‘꽂을 치’         丈人 : (中)장인, 옛날 노인에 대한 높임 말.

 

 

丈人 亦隱者. 蓧 竹器. 分 辨也. 五穀不分 猶言不辨菽麥爾, 責其不事農業而從師遠遊也. 植 立之也. 芸 去草也.

 

장인은 또한 은자라. 조는 대그릇이라. 분은 분별함이라. 오곡불분은 콩과 보리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이니 그 농업을 일삼지 않고 스승 따라 멀리 놀러다님을 꾸짖음과 같음이라. 치는 세우는 것이라. 운은 김매는 것이라.

 

 

子路拱而立,

 

자로가 손을 마주 잡고 공손한 자세로 서 있으니, 

 

 

知其隱者 敬之也.

 

그 은자인줄을 알고 공경함이라.

 

 

止子路宿, 殺鷄爲黍而食之, 見其二子焉。明日子路行以告, 子曰, 「隱者也。」使子路反見之, 至則行矣。

 

자로를 자기 집에 머물러 자게 하고는 닭을 잡고 기장밥을 지어 먹이고 그의 두 아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다음 날 자로가 떠나와서 공자에게 아뢰니, 공자가 “은자이다.”라고 말하고, 자로에게 돌아가 만나 보게 하였는데, 다시 와 보니 떠나가고 없었다.

 

食 : 먹일 사

 

 

孔子使子路反見之 蓋欲告之以君臣之義, 而丈人 意子路必將復來. 故 先去之, 以滅其跡 亦接輿之意也.

 

공자가 자로로 하여금 돌아가 보게 한 것은 대개 군신의 의로써(벼슬을 하도록) 가르치려 함이고, 장인이 자로가 반드시 장차 다시 올 것이라는 뜻이라. 그러므로 먼저 떠나서 써 그 자취를 없애니 또한 접여의 뜻이라.

 

 

子路曰, 「不仕無義, 長幼之節不可廢也, 君臣之義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而亂大倫。 君子之仕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자로가 말했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니다. 자유(長幼)의 예절도 폐할 수 없는 법인데, 하물며 임금과 신하의 의를 어찌 폐할 수 있겠는가. 자기 몸 하나 깨끗이 하려고 큰 인륜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그 의를 천하에 행하려고 하는 것인데 세상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것이다.”

 

 

子路述夫子之意如此. 蓋丈人之接子路 甚倨, 而子路益恭, 丈人 因見其二子焉, 則於長幼之節, 固知其不可廢矣. 故 因其所明 以曉之倫序也. 人之大倫有五,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是也. 仕 所以行君臣之義. 故 雖知道之不行, 而不可廢. 然 謂之義, 則事之可否 身之去就 亦自有不可苟者. 是以 雖不潔身以亂倫, 亦非忘義以徇祿也. 福州 有國初時寫本, 路下 有反子二字, 以此 爲子路反而夫子言之也, 未知是否. 

○范氏曰, 隱者爲高故 往而不返, 仕者爲通故 溺而不止, 不與鳥獸同群, 則決性命之情 以饕富貴, 此二者皆惑也. 是以 依乎中庸者爲難, 惟聖人 不廢君臣之義, 而必以其正, 所以或出或處, 而終不離於道也.

 

자로가 부자의 뜻을 기술함이 이와 같으니라. 대개 장인이 자로를 대접함에 심히 거만했으나 자로가 더욱 공순한대 장인이 인하여 그 두 아들을 뵙게 하니 장유의 절차에 진실로 그 가히 폐하지 못할 것을 알았느니라. 그러므로 그 밝은 바를 인하여 써 윤리와 질서를 깨닫게 함이라. 사람의 대륜이 다섯이 있으니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이 이것이라. 벼슬은 써 군신의 의를 행하는 바라. 그러므로 비록 도가 행하지 못할 줄을 알지만 가히 폐하지 못함이라. 그러나 의를 이를진댄 일의 가부와 몸의 거취를 또한 스스로 가히 구차히 하지 않음이 있느니라. 이로써 비록 몸을 깨끗이 하여서 써 윤리를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고(은자라고 하여 오륜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고), 또한 의리를 잊고서 써 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복주에 나라가 처음 설 때의 (『논어』의) 사본이 있는데 路 아래에 反子 두 글자가 있어 (子路反子曰) 이로써 자로가 돌아가니 부자가 말씀하셨다가 되니,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하겠노라. 

○범씨 가로대 은자는 높은 까닭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고, 벼슬은 통하기 때문에 빠져서 그치지 못하니 더불어 조수와 같은 무리가 아니라면 성명의 정을 결정하여서 써 부귀를 탐내니 이 두 가지는 다 의혹됨이라. 이로써 중용에 의지함이 어려움이 되니 오직 성인은 군신의 의를 폐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그 바름으로써 혹 나가기도 하고 혹 처하기도 하여 마침내 도를 떠나지 않느니라.

 

饕 : 탐할 도. (재물이나 음식등을)탐하다.

 

 

 

 

 

第 8章

 

逸民伯夷, 叔齊, 虞仲, 夷逸, 朱張, 柳下惠, 少連。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叔齊與。」   謂柳下惠, 少連, 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謂虞仲, 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일민(逸民)은 백이와 숙제와 우중과 이일과 주장과 유하혜와 소련이었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을 욕되게 하지 않은 자는 백이와 숙제이다."

또 말씀하셨다.

"유하혜와 소련은 뜻을 굽히고 자신을 욕되게 하였지만 말이 도리에 맞고 행실이 생각과 맞았는데 그 뿐이었다."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중과 이일은 은거하면서 말을 함부로 했지만 몸가짐이 깨끗했고 그만 두는 것도 권도에 맞았다. 나는 그들과 달라서 해야 하는 것도 해서는 안되는 것도 없다."

 

逸民 : 세속을 벗어나 벼슬을 하지 않은 사람. 

 

 

逸 遺, 逸民者 無位之稱. 虞仲 卽仲雍, 與泰伯同竄荊蠻者. 夷逸,朱張 不見經傳. 少連 東夷人.

 

일은 버려짐이니 일민이라는 것은 벼슬자리가 없음을 일컬음이라. 우중은 곧 중옹(태백의 동생)이니 태백과 더불어 형만에 숨었음이라. 이일과 주장은 경전에 나타나지 않느니라. 소련은 동이 사람이라.

 

 

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叔齊與。」

 

공자가 말씀하셨다.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을 욕되개 하지 않은 자는 백이와 숙제로다."

 

 

謂柳下惠少連, 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

 

다시 말씀하셨다.

"유하혜와 소련은 뜻을 굽히고 자신을 욕되게 하였지만 말이 도리에 맞고 행실이 사려에 맞았으나  그 뿐이었다." 

 

 

[해설]

 

降志는 맹자가 말하는 不辭小官이고 辱身은 不羞惡君을 말한다(『맹자』萬章下 제1장 참조).

 

○柳下惠事 見上. 倫 義理之次第也. 慮 思慮也. 中慮 言有意義合人心. 少連事 不可考. 然 記稱其善居喪, 三日不怠, 三月不解, 朞悲哀, 三年憂, 則行之中慮 亦可見矣.

 

○유하혜의 일은 위에 나타나니라. 윤은 의리의 순서라. 여는 사려라. 중려는 뜻과 의리가 인심에 합함을 말함이라. 소련의 일은 가히 상고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기록에 그 상에 거함(상주 노릇)을 잘하여 삼 일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고, 삼 개월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며, 일년상도 슬퍼하고 삼년 동안을 근심했으니 행실이 생각에 맞음을 또한 가히 볼 수 있음이라.

 

 

謂虞仲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중과 이일은 은거하면서 말을 함부로 했지만 자신을 깨끗하게 지켰고 그만 두는 것도 권도에 맞았다.

 

 

仲雍居吳斷髮文身, 裸以爲飾. 隱居獨善 合乎道之淸, 放言自廢 合乎道之權.

 

중옹이 오나라에 거할 적에 머리를 자르고 문신하여 발가벗고서 써 꾸몄느니라(『춘추좌전』襄公七年편 참조). 숨어 살며 홀로 선함은 도의 맑음에 합함이오, 말을 함부로 하고 스스로 폐하는 것은 도의 권도에 합함이라.

 

 

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

 

나는 그들과 달라서 해야 하는 것도 해서는 안되는 것도 없다.

 

 

孟子曰, 孔子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所謂無可無不可也. 

○謝氏曰, 七人隱遁不汙則同, 其立心造行則異. 伯夷叔齊 天子不得臣, 諸侯不得友, 蓋已遯世離群矣, 下聖人一䓁, 此其最高與. 柳下惠, 少連 雖降志而不枉己, 雖辱身而不求合, 其心有不屑也. 故 言能中倫, 行能中慮. 虞仲夷逸隱居放言, 則言不合先王之法者多矣. 然 淸而不汙也, 權而適宜也, 與方外之士害義傷敎而亂大倫者 殊科. 是以 均謂之逸民.

尹氏曰, 七人各守其一節, 而孔子則無可無不可, 所以常適其可, 而異於逸民之徒也. 楊雄曰, 觀乎聖人則見賢人, 是以 孟子語夷惠 亦必以孔子斷之.

 

遯 : 달아날 둔(돈). 달아나다. 물러나다. 피함. 속이다. 옮기다. 

 

 

맹자 가라사대 공자께서 가히 써 벼슬함즉하면 벼슬하고 가히 써 그침즉 하면 그치고 가히 써 오래함즉하면 오래하고 가히 써 속함즉하면 속하셨다 하시니(『맹자』공손추상편 제2장) 이른바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음이라. 

○사씨 가로대 7인이 은둔하면서 더럽히지 않은 것은 같으나 그 마음을 세우고 행실을 지어나간 것은 다르니라. 백이 숙제는 천자가 얻어 신하 삼지 못하고 제후가 얻어 친구 삼지 못했으니 대개 이미 세상을 피하고 무리를 떠났으니 성인을 한 등급만 내리면 이 그 최고인저. 유하혜와 소련은 비록 뜻을 내리고 몸을 굽히지 아니했으며 비록 몸을 욕되게 하고 합함을 구하지 아니했으나 그 마음은 조촐하지 않음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말이 능히 윤리에 맞았으며 행실이 능히 생각에 맞았느니라. 우중과 이일은 숨어서 살며 말을 함부로 했으니 말이 선왕의 법에 합하지 못한 것이 많으니라. 그러나 맑고 더럽지 아니하고 권도를 부리면서도 마땅하게 했으니, 방외지사(법도 밖의 선비)가 의를 해치고 가르침을 상해서 대륜을 어지럽히는 자와 더불어 등급이 다르니라. 이로써 고르게 일러 일민이라 하니라.

윤씨 가로대 일곱 사람은 각각 그 한 절개를 지켰으나 공자는 곧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으시니 써한 바 항상 그 가한 데에 맞추어 일민의 무리와는 다르니라. 양웅이 가로대 성인을 보면 현인을 보니 이로써 맹자가 백이와 유하혜를 말함에 또한 반드시 공자로써 단정하셨느니라.

 

 

 

 

 

第 9章

 

大師摯適齊, 亞飯干適楚, 三飯繚適蔡, 四飯缺適秦, 鼓方叔入於河, 播鼗武入於漢, 少師陽 擊磬襄入於海。

 

 

노(魯)나라 태사 지(摯)는 제(齊)나라로 가고, 악관 중 아반(亞飯)인 간(干)은 초(楚)나라로, 삼반(三飯)인 료(繚)는 채(蔡)나라로, 사반(四飯)인 결(缺)은 진(秦)나라로 갔으며, 북을 치던 방숙(方叔)은 하내(河內)로, 소고(小鼓)를 흔들던 무(武)는 한중(漢中)으로, 소사(少師)인 양(陽)과 경쇠 치던 양(襄)은 섬으로 들어갔다.

 

摯 : 잡을 지. 잡다. 지극하다. 도타움. 이르다. 옴. 올리다. 진언함. 거칠다. 사나움. 치다. 폐백(贄).

鼗 : 땡땡이 도. 땡땡이.  자루를 잡고 돌리면 동체의 양쪽 끈에  구슬이 북면을 쳐서 소리를 내는 .

 

 

大師 魯樂官之長. 摯 其名也.

 

태사는 노나라 악관의 장이라. 지는 그 이름이라.

 

 

[參考}

 

지(摯)가 가고 간(干)이 가며 료(繚)가 가고 결(缺)이 갔으니, 벌써 사람으로 하여금 처량한 감정이 들게 하였다. 게다가 방숙(方叔)도 떠나고 무(武)도 떠나고 양(襄)도 떠났으니, 궐리(闕里 공자가 살았던 마을)의 늙은이가 매우 마음 붙일 곳이 없었을 것이다.

태사는 음악을 맡고 있는 장관이니, 관호(官號)로 부른 것은 괜찮다. 그리고 아반 이하는 각기 맡고 있는 일을 이름 앞에 붙여 불렀으니, 당시 각자의 장점을 취하여 직무를 맡겨 줄줄이 볼만한 성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적(適)’ 자가 네 번 연이어 나오는데 태사에 관한 것을 특별히 한 구절로 만들고, 나머지를 한 구절로 만들었으니, 집주(集註)에서 구절을 나눈 것은 분명 귀신의 솜씨이다. 세 ‘입(入)’ 자로써 또 각기 한 구절씩 나누었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넋을 놓은 채 눈물을 흘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들이 떠나서 나라로 가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내륙 지역이 아닌 하수(河水), 한수(漢水), 해도(海島)로 간 것은 세상과 영영 작별하여 일단 떠난 뒤에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고 한 의도임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에서 ‘적’ 자를 바꾸어 ‘입’ 자로 썼으니, 신묘하고 신묘하다. 문장이 조화를 빼앗는 경지가 이 정도까지인 줄은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다.

 

《논어》를 편찬한 사람이 편(篇)과 장(章)의 차례를 매길 때 모두 대략이나마 고려한 뜻이 있다. 이 편의 끝 부분에 이르러 이처럼 별다른 의미 없이 대충 기술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분명히 의도가 있다. 만약 억지로 끌어다가 붙여 설명하면 이는 천착하는 것이니, 읽는 자가 마음속으로 잘 깨닫는다면 또한 유익할 것이다.  <讀書箚義>

 

 

 

亞飯干適楚, 三飯繚適蔡, 四飯缺適秦,

 

아반간은 초나라로 가고, 삼반료는 채나라로 가고, 사반결은 진나라로 가고, 

 

 

亞飯以下以樂侑食之官. 干, 繚, 缺 皆名也.

 

아반 이하는 음악으로써 밥을 먹이는(밥 먹는 동안 음악을 연주하는) 벼슬이라. 간, 요, 결은 다 이름이라.

 

侑 : 권할 유. 권하다. 돕다. 음식을 들 때 흥을 돋움. 갚다. 보답함. 용서하다.

 

 

鼓方叔入於河,

 

고 방숙은 하내에 들어가고,

 

 

鼓 擊鼓者 方叔 名. 河 河內.

 

고는 북을 침이라. 방숙은 이름이라. 하는 하내라.

 

 

播鼗武 入於漢,

 

소고를 흔드는 무는 한중에 들어가고,

 

 

播 搖也. 鼗 小鼓, 兩旁有耳, 持其柄而搖之 則旁耳還自擊. 武 名也. 漢 漢中.

 

파는 흔듦이라. 도는 소고이니 양쪽으로로 귀가 달려 그 자루를 잡고 흔들면 두 귀가 돌아가며 스스로 침이라. 무는 이름이라. 한은 한중이라.

 

 

少師陽, 擊磬襄入於海.

 

소사 양과 쇠북 치는 양은 해도에 들어 가니라.

 

 

少師 樂官之佐. 陽襄 二人名. 襄 卽孔子所從學琴者. 海 海島也. 

○此 記賢人之隱遁以附前章, 然未必夫子之言也. 末章放此.  張子曰, 周衰樂廢 夫子自衛反魯 一嘗治之, 其後伶人賤工 識樂之正, 及魯益衰, 三桓僭妄, 自大師以下皆知散之四方, 逾河蹈海以去亂. 聖人俄頃之助, 功化如此, 如有用我 期月而可, 豈虛語哉.

 

伶 : 악공 령. 악공(樂工). 음악을 아뢰는 사람. 배우. 영리하다. 하인, 관노. 홀로. 외로운 모양.

 

소사는 악관을 돕는 벼슬이라. 양과 양은 두 사람 이름이라. 양은 곧 공자가 찾아가 거문고를 배운 자라. 해는 바다섬이라. 

○이는 현인의 은둔을 기록하여서 써 앞장에 붙인 것이라. 그러나 반드시 부자의 말씀은 아니니라. 끝장도 이와 같으니라. 장자 가로대 주나라가 쇠하고 음악이 피폐하거늘 부자가 위나라로부터 노나라에 돌아와 한번 일찍이 (음악을) 다스리시니 그 뒤에 광대와 천공들도 음악의 바름을 알더니 노나라가 더욱 쇠함에 미쳐 삼환이 참람하고 망령되이 한대 태사로부터 이하로 다 사방으로 흩어져 하수를 넘고 바다를 건너서 써 난을 떠나감을 알았더라. 성인이 잠깐이라도 도우심에 공과 교화가 이와 같으니 만약 나를 쓰는 이가 있다면 한 달이면 가하다고 함이 어찌 헛된 말씀이시리오.

 

 

 

 

 

第10章

 

周公謂魯公曰, 「君子不施其親, 不使大臣怨乎不以, 故舊無大故則不棄也, 無求備於一人。」

 

 

주공이 노공(魯公 : 아들 伯禽)에게 말하였다.

“군자는 자기 친척에게 소홀하지 않고, 대신이 자신을 기용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게 하지 않으며, 친구에게 큰 잘못이 없으면 버리지 않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갖추기를 요구하지 말아라.”

 

 

施 陸氏本作弛, 福本同. 

○魯公 周公子伯禽也. 弛 遺棄也. 以 用也. 大臣 非其人則去之, 在其位則不可不用. 大故 謂惡逆. 李氏曰, 四者 皆君子之事, 忠厚之至也. 

○胡氏曰, 此伯禽受封之國, 周公訓戒之辭 魯人傳誦, 久而不忘也. 其或夫子嘗與門弟子 言之歟.

 

施는 육씨본에 弛라고 지었으니 복주본도 같음이라. 

○노공은 주공의 아들 백금이라. 弛는 버림이라. 以는 씀이라. 대신은 그 사람이 아니면 버리고, 그 자리가 있다면 가히 쓰지 않음이 없느니라. 대고는 악역이라. 이씨 가로대 네 가지는 다 군자의 일이니 충후의 지극함이라. 

○호씨 가로대 이것은 백금이 나라를 봉함을 받을 적에 주공이 훈계하는 말을 노나라 사람이 전하여 외워서 오래 되어도 잊어버리지 않았거나 그 혹 부자가 일찍이 문인 제자로 더불어 말씀한 것인가.

 

 

 

 

 

第11章

 

周有八士, 伯達, 伯适, 仲突, 仲忽, 叔夜, 叔夏, 季隨, 季騧。

 

 

주나라에 여덟 선비가 있으니 백달과 백괄과 중돌과 중홀과 숙야와 숙하와 계수와 계와니라.

 

騧 : 공골말 과(와). 공골말. 입 가장자리가 검은 누른 말. 담황색 말. 지나다. 달팽이.

 

 

或曰, 成王時人, 或曰宣王時人, 蓋一母四乳而生八子也. 然 不可考矣. 

○張子曰, 記善人之多也. 愚 按此篇, 孔子於三仁, 逸民 師摯 八士, 旣皆稱贊而品列之, 於接輿沮溺丈人, 又每有惓惓接引之意, 皆衰世之志也. 其所感者深矣. 在陳之歎 蓋如此. 三仁 則無間然矣. 其餘數君子者 亦皆一世之高士, 若使得聞聖人之道, 以裁其所過而勉其所不及 則其所立, 豈止於此而已哉.

 

혹이 가로대 성왕 때의 사람이라 하고 혹은 가로대 선왕 때의 사람이라 하니 대개 한 어미가 네 개의 젖이 있어 여덟 자식을 낳느니라. 그러나 가히 상고하지 못하니라. 

○장자 가라사대 선한 사람이 많음을 기록함이라. 우는 상고하건대 이 편은 공자가 삼인과 일민 사지 팔사에 이미 다 칭찬하고 품평하여 열을 지어놓고, 접여 장저 걸닉 장인에 대하여는 또한 매번 연연하여 접하여 이끌려는 뜻이 있으시니 다 쇠한 세상의 뜻이라. 그 느끼는 바가 깊도다. 진나라에서 탄식하심도 대개 이와 같으니라. 삼인은 (비난할 수 있는) 틈이 없으니라. 그 나머지 여러 군자는 또한 다 한 세상의 높은 선비니 만약 하여금 성인의 도를 듣게 하여서 써 그 잘못된 바를 마름하고 그 미치지 못한 바를 힘쓰게 하면 그 서는 바가 어찌 이에 그칠 뿐이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