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張。第 1章. 士見危致命, ~ 第 5章. 日知其所亡,
此篇皆記弟子之言, 而子夏爲多, 子貢次之。 蓋孔門自顔子以下, 穎悟 莫若子貢, 自曾子以下, 篤實莫若子夏, 故特記之詳焉。凡二十五章。
이 편은 다 제자의 말을 기록했는데 자하가 많고, 자공이 다음이라. 대개 공자 문인에 안자로부터 써 아래는 영오함(총명하게 깨달음)이 자공만한 이가 없고 증자로부터 아래는 독실함이 자하만한 이가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특별히 자세히 기록함이라. 무릇 25장이라.
------------------------------------------------------------------------------------------------------
第 1章
子張曰,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
자장이 말하였다.
“선비가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고, 이득을 보면 의(義)에 맞는가를 생각하며, 제사에 공경을 생각하고 상사(喪事)에 슬픔을 생각한다면 무난하다.”
[子張]
顓孫師, 陳人, 字子張. 少孔子四十八歲.
子張問幹祿, 孔子曰:「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他日從在陳蔡閒, 困, 問行. 孔子曰:「言忠信, 行篤敬, 雖蠻貊之國行也;言不忠信, 行不篤敬, 雖州里行乎哉! 立則見其參於前也, 在輿則見其倚於衡, 夫然後行.」 子張書諸紳. 子張問:「士何如斯可謂之達矣?」孔子曰:「何哉, 爾所謂達者?」子張對曰:「在國必聞, 在家必聞.」 孔子曰:「是聞也, 非達也. 夫達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國及家必達.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在國及家必聞.」
전손사(顓孫師)는 진(陳) 사람이고 자를 자장(子張)이라 했다. 공자보다 48년 아래였다.
자장이 벼슬하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는 “많이 듣고 의심나는 것은 보류해두며, 다 아는 일을 신중히 말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위험한 일을 보류해두며, 다 아는 일을 신중하게 행동하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벼슬이 그 안에 있다.”라고 했다.
자장이 행실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말이 정성스럽고 믿음이 있으며 행실이 돈독하고 공경스러우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 하더라도 행할 것이다. 말이 충신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경하지 못하면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이라고 하더라도 행해질 수 있겠는가.
서 있으면 앞에 참여함을 볼 수 있고, 수레에 있으면 멍에에 기댐을 볼 수 있어야 하니, 이와 같은 뒤에야 행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장이 큰 띠에 기록하였다.
자장이 “선비가 어떠해야 통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가 “무엇이냐, 네가 말하는 통달이란 것이?”라고 했다. 자장이 “나라에서는 반드시 그 이름이 들려야 하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그 이름이 들리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자는 “그것은 명성이지 통달이 아니다. 무릇 통달이란 바탕이 곧아 의리를 좋아하고, 말을 잘 살피고 표정을 관찰하며, 늘 남보다 낮은 자세로 임하면 나라에서건 집안에서건 통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릇 명성이란 어진 것 같지만 행동은 어긋나는데도 거기에 안주하여 의심하지 않는 것으로, 그러면 나라건 집안이건 명성이 나기 마련이다.”
<史記 仲尼弟子列傳>
○致命 謂委致其命, 猶言授命也. 四者 立身之大節, 一有不至則餘無足觀. 故 言士能如此則庶乎其可矣.
○명을 이룸은 그 명을 버림을 말함이니 명을 받는다는 말과 같음이라. 네 가지는 입신의 큰 절개이니 하나라도 이르지 못함이 있으면 나머지는 족히 보잘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선비가 능히 이와 같으면 거의 그 가하다고 말함이라.
第 2章
子張曰, 「執德不弘, 信道不篤, 焉能有爲, 焉能有亡。」
자장이 말하였다.
“덕을 지닌 것이 넓지 못하고, 도를 믿는 것이 독실하지 못하다면 어찌 세상에 쓸모가 있고 없고를 말할 수 있겠는가?"
○有所得而守之太狹, 則德孤, 有所聞而信之不篤, 道廢. 焉能爲有亡, 猶言不足爲輕重.
○얻는 바가 있으면서 지킴이 매우 좁으면 덕이 외롭고, 듣는 바가 있으면서 믿음이 돈독하지 못하면 도가 폐하니라. 어찌 능히 있다 할 수 있으며 없다 할 수 있음은 족히 경중을 따지지 못한다는 말과 같음이라.
第 3章
子夏之門人問交於子張, 子張曰, 「子夏云何?」 對曰, 「子夏曰, 『可者與之, 其不可者拒之。』」 子張曰, 「異乎! 吾所聞。君子尊賢而容衆, 嘉善而矜不能, 我之大賢與, 於人何所不容, 我之不賢與, 人將拒我, 如之何其拒人也?」
자하의 문인이 자장에게 사람을 사귀는 방도에 대해 묻자, 자장이 되물었다.
“자하는 뭐라고 하시던가?”
문인이 대답하였다.
“자하께서는 ‘좋은 사람과는 사귀고 좋지 않은 사람은 거절하라.’ 하셨습니다.”
자장이 말하였다.
“내가 들은 것과는 다르구나. 군자는 어진이를 존경하고 대중을 포용하며, 잘하는 이를 훌륭하게 보고 잘하지 못하는 이를 불쌍히 여기는 법이니, 내가 크게 어질면 남들로부터 어떤 것인들 용납하지 못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어질지 못하면 남들이 먼저 나를 거절할 것이니, 어떻게 남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子夏之言 迫狹, 子張 譏之是也. 但其所言亦有過高之弊, 蓋大賢 雖無所不容, 然 大故亦所當絶, 不賢 固不可以拒人, 然 損友 亦所當遠, 學者不可不察.
○자하의 말이 박절하고 좁으니 자장이 이를 기롱함이라. 다만 그 말하는 바가 또한 지나치고 높은 폐단이 있으니 대개 크게 어질면 비록 포용하지 않는 바가 없으나 그러나 대고(큰 사고를 저지른 사람)는 또한 마땅히 거절하는 바이고 어질지 못하면 진실로 가히 써 남을 막지 못하나 그러나 손해되는 벗은 마땅히 멀리 해야 할 바이니, 배우는 자가 가히 살피지 아니치 못하니라.
第 4章
子夏曰, 「雖小道必有可觀者焉, 致遠恐泥。是以君子不爲也。」
자하가 말하였다.
“비록 작은 도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볼 만한 것이 있으나, 원대한 뜻을 이루는데는 장애가 될까 두렵다. 이때문에 군자가 작은 도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小道 如農圃醫卜之屬, 泥 不通也.
○楊氏曰, 百家衆技 猶耳目鼻口, 皆有所明而不能相通, 非無可觀也, 致遠則泥矣. 故 君子不爲也.
○소도는 농사짓고 남새밭 가꾸고 의원노릇하고 점치는 것과 같은 속이라. 니는 통하지 못함이라.
○양씨 가로대 백가의 여러 기술은 마치 눈과 코 귀와 입과 같아서 다 밝은 바가 있으나 능히 서로 통하지 못하니 가히 볼만한 것이 없지 아니하되 먼데 이른다면 막히니라. 그러므로 군자가 하지 않느니라.
第 5章
子夏曰, 「日知其所亡, 月無亡其所能, 可謂好學也已矣。」
자하가 말했다.
“날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알아내고 달마다 자기가 능한 것을 잊지 않는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亡 無也, 謂己之所未有.
○尹氏曰, 好學者 日新而不失.
○亡은 없음이니 몸에 있지 않는 바를 이름이라.
○윤씨 가로대 배움을 좋아하는 자는 날로 새롭고 잃지 않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