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書/孟子

告子 <下> 第 6章 ~ 第10章

柳川 2020. 5. 7. 00:18

第 6章

 

淳于髡曰, 「先名實者爲人也, 後名實者自爲也。夫子在三卿之中,  名實未加於上下而去之,  仁者固如此乎?」  孟子曰, 「居下位不以賢事不肖者, 伯夷也。五就湯五就桀者, 伊尹也。不惡汙君不辭小官者, 柳下惠也。三子者不同道, 其趨一也,  一者 何也?  曰, 仁也。 君子亦仁而已矣, 何必同?」  曰, 「魯繆公之時,  公儀子爲政, 子柳子思爲臣, 魯之削也滋甚, 若是乎賢者之無益於國也 !」  曰, 「虞不用百里奚而亡,  秦穆公用之而覇, 不用賢則亡,  削何可得與?」  曰, 「昔者王豹處於淇, 而河西善謳,  綿駒處於高唐, 而齊右善歌, 華周杞梁之妻, 善哭其夫, 而變國俗。有諸內必形諸外, 爲其事而無其功者, 髡未嘗覩之也。是故 無賢者也, 有則髡必識之。」  曰, 「孔子爲魯司寇不用,  從而祭燔肉不至, 不稅冕而行。不知者以爲爲肉也, 其知者以爲爲無禮也,  乃孔子則欲以微罪行, 不欲爲苟去, 君子之所爲,  衆人固不識也。」

 

 

순우곤이 말했다.

"명성과 공적을 우선시 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이며, 명성과 공적을 뒤로 돌리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 입니다. 선생은 삼경의 가운데 계셨으나 명성과 공적이 위로 임금과 아래 백성에 더해진 바도 없이 떠나시니, 어진 사람은 본래 이와 같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낮은 지위에 머물러 현명함으로 어리석은 자를 섬기지 않은 사람은 백이였습니다. 탕임금에게 다섯 번 나아가고 걸왕에게 다섯 번 나아간 사람은 이윤이었습니다.  행실이 좋지 못한 군주를 싫어하지 않고 낮은 지위를 사양하지 않은 사람은 유하혜였습니다. 세 사람의 도는 같지 않았으나 추구한 것은 하나였는데 그 하나가 무엇이었습니까?  말하자면 인입니다. 군자 또한 인을 행할 뿐인데, 어찌 반드시 그 도가 같아야 합니까?"

"노나라 목공 시절, 공의자가 정치를 하였고 자유와 자사가 신하로 있었으나 노나라의 땅이 줄어든 것이 더욱 심했는데, 이와 같이 어진 자가 있었어도 나라에 보탬이 없었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우나라에서는 백리해를 기용하지 않아 망했으며, 진나라 목공은 백리해를 기용해서 패자가 되었습니다. 어진 자를 기용하지 않으면 망하는데 어찌 땅이 줄어드는 것에 그치겠습니까?"

순우곤이 말했다.

"옛날 왕표가 기수 가에서 지낼 때, 하서 사람들이 노래를 잘 하였으며, 면구가 고당에서 지낼 때 제나라 서쪽 사람들이 노래를 잘 하였고, 화주와 기량의 아내가 그 남편의 전사소식에 곡하는 것이 매우 애절하여, 나라의 풍속이 바뀌었습니다. 내면에 있는 것은 반드시 모습이 외부에 드러나는 것이며, 일을 하였는데도 그 공적이 없는 것은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때문에 어진 자는 없었던 것이며, 있었다면 제가 반드시 알았을 것입니다."

"공자께서 노나라의 사구가 되었으나 그 도가 쓰이지 않았고, 나아가 교제(郊祭)를 지내고 난후 제사고기를 보내지 않자 면류관도 벗지 않고 떠나셨습니다. 공자를 모르는 자들은 제사 고기 때문에 떠나신 것으로 알고 있고, 공자를 아는 사람들은 무례함 때문에 떠나셨다고 생각하였으나, 공자는 하찮은 잘못이 있더라도 떠나려고 하셨으며, 구차한 모습으로 떠나려 하지 않으셨으니, 군자가 행하는 바는 사람들이 본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名 聲譽也. 實 事功也. 言以名實爲先而爲之者, 是有志於救民者也, 以名實爲後而不爲者, 是欲獨善其身者也. 名實 未加於上下, 言上未能正其君, 下未能濟其民也.

 

○명은 명성과 명예요, 실은 일의 공이라. 명과 실로써 우선하여 하는 자는 이는 백성을 구함에 뜻을 둔 자요, 명과 실로써 뒤에 하고 하지 않는 자는 이는 그 몸을 홀로 선하게 하고자 하는 자를 말함이라. 명과 실이 상하에 더해지지 못했다는 것은 위로는 그 인군을 능히 바르게 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그 백성을 능히 구제하지 못함을 말함이라.

 

☞ 순우곤에 대하여는 離婁 上 17장 參照

 

 

 

孟子曰, 「居下位不以賢事不肖者, 伯夷也。五就湯五就桀者, 伊尹也。不惡汙君不辭小官者, 柳下惠也。三子者不同道,  其趨一也,  一者 何也?  曰, 仁也。 君子亦仁而已矣, 何必同?」

 

 

맹자가 대답했다.

"낮은 지위에 머물러 현명함으로 어리석은 자를 섬기지 않은 사람은 백이였습니다. 탕임금에게 다섯 번 나아가고 걸왕에게 다섯 번 나아간 사람은 이윤이었습니다.  행실이 좋지 못한 군주를 싫어하지 않고 낮은 지위를 사양하지 않은 사람은 유하혜였습니다. 

세 사람의 도는 같지 않았으나 추구한 것은 하나였는데 그 하나가 무엇이었습니까?  말하자면 인입니다. 군자 또한 인을 행할 뿐인데, 어찌 반드시 그 도가 같아야 합니까?"

 

 

○仁者 無私心而合天理之謂. 楊氏曰, 伊尹之就湯 以三聘之勤也. 其就桀也, 湯進之也. 湯豈有伐桀之意哉! 其進伊尹以事之也, 欲其悔過遷善而已, 伊尹旣就湯, 則以湯之心爲心矣. 及其終也 人歸之, 天命之, 不得已而伐之耳. 若湯初求伊尹, 卽有伐桀之心, 而伊尹遂相之以伐桀, 是 以取天下爲心也, 以取天下爲心, 豈聖人之心哉!

 

○인이라는 것은 사심이 없고 천리에 합함을 이름이라. 양씨(楊時) 가로대 이윤이 탕에게 나아감은 세 번 초빙한 부지런함으로써이고, 그 걸에게 나아감은 탕이 추천한 것이니 탕이 어찌 걸을 칠 뜻이 있었으리오, 그 이윤을 추천해서 써 섬기게 함은 그 허물을 뉘우치고 선으로 옮겨가게 하고자 할 뿐이니, 이윤이 이미 탕에게 나아갔다면 탕의 마음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삼았음이라. 그 끝에 이르러 사람들이 돌아오고 하늘이 명하니 부득이 쳤을 뿐이라. 만약에 탕이 처음에 이윤을 구해서 곧 걸을 칠 마음이 있었거늘 이윤이 마침내 도와서 써 걸을 쳤다면, 이는 천하를 취해서 써 마음을 삼음이니 천하를 취해서 써 마음을 삼았다면 어찌 성인의 마음이리오.

 

☞伯夷, 伊尹, 柳下惠에 대하여는 萬章 下 1장 參照.

 

 

 

曰, 「魯繆公之時,  公儀子爲政, 子柳子思爲臣, 魯之削也滋甚, 若是乎賢者之無益於國也 !」

 

 

"노나라 목공 시절, 공의자가 정치를 하였고 자유와 자사가 신하로 있었으나 노나라의 땅이 줄어든 것이 더욱 심했는데, 이와 같이 어진 자가 있었어도 나라에 보탬이 없었습니다!"

 

 

○公儀子 名 休, 爲魯相. 子柳 泄柳, 削 地見侵奪也. 髡 譏孟子雖不去, 亦未必能有爲也.

 

○공의자는 이름이 휴니 노나라 재상이 되었느니라. 자유는 설류라. 삭은 땅이 침탈당함이라. 곤이 맹자가 비록 떠나지 아니했더라도 또한 반드시 능히 하옴이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기롱함이라.

 

 

 

曰, 「虞不用百里奚而亡,  秦穆公用之而覇, 不用賢則亡,  削何可得與?」

 

 

맹자가 말했다. "우나라에서는 백리해를 기용하지 않아 망했으며, 진나라 목공은 백리해를 기용해서 패자가 되었습니다. 어진 자를 기용하지 않으면 망하는데 어찌 땅이 줄어드는 것에 그치겠습니까?"

 

 

○百里奚事 見前篇.

 

○백리해의 일은 전편(萬章 上 제9장)에 나타나니라.

 

 

 

曰, 「昔者王豹處於淇, 而河西善謳,  綿駒處於高唐, 而齊右善歌, 華周杞梁之妻, 善哭其夫, 而變國俗。有諸內必形諸外, 爲其事而無其功者, 髡未嘗覩之也。是故 無賢者也, 有則髡必識之。」

 

 

순우곤이 말했다.

"옛날 왕표가 기수 가에서 지낼 때, 하서 사람들이 노래를 잘 하였으며, 면구가 고당에서 지낼 때 제나라 서쪽 사람들이 노래를 잘 하였고, 화주와 기량의 아내가 그 남편의 전사소식에 곡하는 것이 매우 애절하여, 나라의 풍속이 바뀌었습니다. 내면에 있는 것은 반드시 모습이 외부에 드러나는 것이며, 일을 하였는데도 그 공적이 없는 것은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이때문에 어진 자는 없었던 것이며, 있었다면 제가 반드시 알았을 것입니다."

 

 

○王豹 衛人, 善謳. 淇 水名, 綿駒 齊人 善歌. 高唐 齊西邑. 華周杞梁二人, 皆齊臣戰死於莒, 其妻哭之哀, 國俗化之 皆善哭. 髡 以此 譏孟子仕齊無功, 未足爲賢也.

 

○왕표는 위나라 사람이니 노래를 잘하니라. 기는 물이름이라. 면구는 제나라 사람이니 노래를 잘하니라. 고당은 제나라 서읍이라. 화주와 기량 두 사람은 다 제나라 신하이니 거에서 전사했거늘 그 처가 곡함에 슬프니 나라의 풍속이 화하여 다 곡을 잘함이라. 곤이 이로써 맹자가 제나라에서 벼슬하면서 공이 없으니 족히 현자가 되지 못한다고 기롱함이라.

 

 

☞華周(華舟), 杞梁

 

齊莊公且伐莒,爲車五乘之賓,而杞梁華舟獨不與焉。故歸而不食,其母曰:「汝生而無義,死而無名,則雖非五乘,孰不汝笑也? 汝生而有義,死而有名,則五乘之賓盡汝下也.」 趣食乃行。杞梁華舟同車侍於莊公而行至 , 人逆之。杞梁華舟下,  獲甲首三百,莊公止之曰:「子止,與子同齊國.」 杞梁華舟曰:「君爲五乘之賓,而舟梁不與焉,是少吾勇也;臨敵涉難,止我以利,是汚吾行也。深入多殺者,臣之事也,齊國之利,非吾所知也.」遂進 ,壞軍陷陣,三軍弗敢當,至 城下, 人以炭置地,二人立有間,不能入. 侯重爲右曰:「吾聞古之士,犯患涉難者,其去遂於物也,來,吾踰子.」 侯重仗楯伏炭,二子乘而入,顧而哭之,華舟後息。 杞梁曰:「汝無勇乎? 何哭之久也?」 華舟曰:「吾豈無勇哉,是其勇與我同也,而先吾死,是以哀之.」  人曰:「子毋死,與子同國.」 杞梁華舟曰:「去國歸敵,非忠臣也;去長受賜,非正行也;且 鳴而期,日中而忘之,非信也。深入多殺者,臣之事也, 國之利非吾所知也.」 

遂進 ,殺二十七人而死。其妻聞之而哭,城爲之阤,而隅爲之崩。此非所以起也.   <劉向 說苑 立節>

 

제나라 장공이 거나라를 치려고 할 때, 수레 다섯 승으로 봉양하는 빈객을 선발하였는데 기량과 화주만 거기에 끼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 밥을 먹지 않았는데 그 모친이 말했다. 

"네가 살아서 의를 행한 바 없고, 죽어서 명성을 얻지 못한다면 오승의 빈객이 되지 않았더라도 누가 너를 비웃지 않겠느냐? 네가 살아서 의를 행한 바 있으며, 죽어서 명성을 얻은 바가 있다면 오승의 빈객 모두가 네 휘하에 있을 것이다."

그러자 서둘러 밥을 먹고 길을 떠났다. 기량과 화주는 같은 수레를 타고 장공을 모시며 길을 떠나 거나라에 도착했는데, 거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막아 싸움이 벌어졌다.  기량과 화주는 수레에서 내려 싸우며 무장한 병사들 300명을 베어버렸는데 장공이 그들을 막으며 말했다.  "그대들은 그만 하라. 그대들과 함께 제나라를 다스릴 것이다."

그러자 기량과 화주가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오승의 빈객들을 선발하시며 저희들을 참여시키지 않으셨는데 이것은 저희들의 용맹을 가볍게 보신 것이며,  적을 맞이하여 위난을 겪고 있는데 이로움으로 저희를 막으시는 것은 저희의 행동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적진에 깊숙히 들어가 적을 많이 죽이는 것은 신들이 할 일이며, 제나라의 이로움은 저희가 알 바 아닙니다."

 

그리고 진격하여 군진을 무너뜨리니 삼군이 감당하지 못했다.  거나라의 성 아래에 이르렀는데 거나라 사람들이 땅위에 숯불을 깔아 놓아 두 사람은 그 사이에 서 있었는데 들어갈 수가 없었다.  후중이 오른 쪽에 타고 있다가 말했다. "내가 듣건대 옛 병사들은 환난을 무릅쓰고 어려움을 헤쳐나간 자는 자신을 버려 일을 이룬다고 하였소. 뒤따라 오시오, 내가 이 숯불을 넘어가게 해 주겠소." 

후중이 방패에 의지하여 숯불 위에 엎드리자 두 사람이 그 위를 타고 들어갔는데 뒤돌아보며 울부짖다가 화주는 뒤에 그쳤다.   

기량이 물었다. "너는 용기가 없는가? 왜 오래 우는가?"

화주가 대답했다. "내가 어찌 용기가 없겠는가! 후중의 용기는 우리와 같은데 우리보다 먼저 죽으니 그 때문에 슬퍼한 것이다."

거나라 사람이 말했다. "그대들은 우리를 죽이지 마시오. 그대들과 더불어 거나라를 함께 다스리겠습니다."

기량과 화주가 대답했다. "나라를 버리고 적에게 귀순하는 것은 충신이 할 바가 아니며, 임금을 버리고 포상을 받는 것은 바른 행동이 아니다. 게다가 닭이 울 때 약속을 하고도 한낮에 그것을 잊는 것은 신의가 아니다. 적진에 깊숙히 들어가 적군을 많이 죽이는 것은 신하의 일이며 나라의 이로움은 우리가 알 바 아니다." 하고는 진격하여 27명을 죽이고 전사했다. 그들의 아내가 그들의 전사소식을 듣고 통곡하자 성이 무너져 모퉁이가 붕괴되었다. 이것이 기량의 아내에 관한 거문고 곡이 생긴 기원이다. 

 

 

齊杞梁妻

 

齊杞梁殖之妻也。莊公襲莒,殖戰而死。莊公歸,遇其妻,使使者弔之於路。杞梁妻曰:「今殖有罪,君何辱命焉。若令殖免於罪,則賤妾有先人之弊廬在下,妾不得與郊弔。」 於是莊公乃還車詣其室,成禮然後去。杞梁之妻無子,內外皆無五屬之親。旣無所歸,乃就其夫之尸於城下而哭之,內諴動人,道路過者莫不爲之揮涕,十日,而城爲之崩。

 

제나라 기량식의 아내 이야기이다. 제나라 장공(莊公)이  거(筥)나라를 공격하였는데 기량식이 전사하였다.장공이 돌아가는 길에 기량식의 아내를 만나 사자(使者)를 시켜 길에서 조문하려 하였다.

그러자 기량식의 아내가 말하였다. "지금 제 남편(殖)이 죄를 지었는데 군주께서는 어찌 명(命)을 욕되게 하십니까?  군주께서 제 남편의 죄를 사면해주신다면 저는 선인(先人: 죽은 남편)의 집(弊廬 : 자신의 집을 겸양하여 낮춘 말)에 있겠습니다. 저는 밖에서는 조문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리하여 장공은 수레를 돌려 그녀의 집에 이르러 예를 갖춰 조문한 후 돌아갔다. 기량식의 처에게는 자식이 없고 내외간에 모두 일가친척이 없었다. 기량식의 아내는 돌아가 의지할 곳이 없어 남편의 시신을 성아래에 놓고 통곡을 하니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감동을 하고 길을 가는 행인들이 눈물을 뿌리지 않는 자가 없었는데 10일이 지나자 성(城)이 무너졌다.

 

 

曰, 「孔子爲魯司寇不用,  從而祭燔肉不至, 不稅冕而行。不知者以爲爲肉也, 其知者以爲爲無禮也,  乃孔子則欲以微罪行, 不欲爲苟去, 君子之所爲,  衆人固不識也。」

 

 

"공자께서 노나라의 사구가 되었으나 그 도가 쓰이지 않았고, 나아가 교제(郊祭)를 지내고 난후 제사고기를 보내지 않자 면류관도 벗지 않고 떠나셨습니다. 공자를 모르는 자들은 제사 고기 때문에 떠나신 것으로 알고 있고, 공자를 아는 사람들은 무례함 때문에 떠나셨다고 생각하였으나, 공자는 하찮은 잘못이 있더라도 떠나려고 하셨으며, 구차한 모습으로 떠나려 하지 않으셨으니, 군자가 행하는 바는 사람들이 본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燔 : 구울 번. 굽다. 불이 미치는 면을 넓히어서 태움. 불에 쬔 제물이나 구운 고기.      稅 : 여기서는 ‘벗을 탈’

 

 

○按史記, 孔子爲魯司寇, 攝行相事, 齊人聞而懼,  於是以女樂遺魯君,  季桓子與魯君往觀之, 怠於政事, 子路曰, 夫子可以行矣. 孔子曰魯今且郊, 如致膰于大夫, 則吾猶可以止.  桓子卒受齊女樂, 郊又不致膰肉于大夫, 孔子遂行. 

孟子言, 以爲爲肉者, 固不足道, 以爲爲無禮, 則亦未爲深知孔子者.  蓋聖人於父母之國, 不欲顯其君相之失, 又不欲爲無故而苟去故, 不以女樂去, 而以膰肉行, 其見幾明決, 而用意忠厚, 固非衆人 所能識也. 然則孟子之所爲 豈髡之所能識哉!

◯尹氏曰, 淳于髡 未嘗知仁, 亦未嘗識賢也, 宜乎其言若是.

 

○『사기』를 상고컨대 공자가 노나라의 사구가 되어서 재상의 일을 대신 하시니 제나라 사람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에 여악으로써 노나라 인군에게 보냈는데, 계환자가 노나라 인군과 더불어 가서 보고 정사에 게으르거늘, 자로가 가로대 선생님이 가히 써 가시니이다. 공자 가라사대 노나라가 지금 장차 교제(郊祭)하니 만약에 제사고기를 대부에게 이르게 한다면 내 오히려 가히 써 머무르리라 하시더니, 계환자가 마침내 제나라의 여악을 받고 교제에서 또한 번육을 대부에게 주지 않거늘 공자가 드디어 가셨느니라. 맹자가 써 고기때문에 그러하다라고 하는 자는 진실로 도가 부족한 것이고 써 무례하가 때문에 그러하다 하는 것도 또한 공자를 깊이 알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심이라. 대개 성인이 부모의 나라에 그 인군과 재상의 과실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 하셨고 또한 까닭없이 구차히 떠나려 하지 않으신 고로 여악으로써 떠나지 아니하시고 번육으로써 가시니 그 기미를 봄이 밝고 단호했으며 뜻을 씀이 깊이있고 두터우시니 진실로 무리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라. 그런즉 맹자의 하는 바를 어찌 곤이 능히 알 바리오.

◯윤씨(尹焞, 北宋 河南人) 가로대 순우곤이 일찍이 인을 알지 못하였고 또한 일찍이 현자를 알지 못했으니 그 말이 이와 같음이 당연하도다.

 

膰 : 제사 고기 번, 제사 고기. 종묘와 사직의 제사에 쓰는 익힌 고기. 음복(飮福)으로 나눠 줌.

 

 

 

 

 

第 7章

 

孟子曰, 「五覇者三王之罪人也, 今之諸侯五覇之罪人也, 今之大夫 今之諸侯之罪人也。天子適諸侯曰巡狩, 諸侯朝於天子曰述職, 春省耕而補不足, 秋省斂而助不給。入其疆, 土地辟田野治, 養老尊賢, 俊傑在位則有慶, 慶以地。 入其疆, 土地荒蕪, 遺老失賢, 掊克在位則有讓。一不朝則貶其爵,  再不朝則削其地, 三不朝則六師, 移之。是故 天子討而不伐, 諸侯伐而不討。 五覇者摟諸侯, 以伐諸侯者也。曰五覇者, 三王之罪人也。五覇桓公爲盛, 葵丘之會,  諸侯束牲載書而不歃血, 初命曰, 誅不孝, 無易樹子, 無以妾爲妻, 再命曰, 尊賢育才, 以彰有德, 三命曰, 敬老慈幼, 無忘賓旅, 四命曰, 士無世官, 官事無攝, 取士必得, 無專殺大夫, 五命曰, 無曲防, 無遏糴, 無有封而不告, 曰, 『凡我同盟之人, 旣盟之後, 言歸于好。』 今之諸侯皆犯此五禁,  故曰今之諸侯, 五覇之罪人也。長君之惡其罪小, 逢君之惡其罪大, 今之大夫皆逢君之惡。故曰今之大夫, 今之諸侯之罪人也。」  

 

 

맹자가 말했다.

"다섯 명의 패자는 삼왕에 대한 죄인이며, 지금의 제후들은 오패에 대한 죄인이고, 지금의 대부들은 제후들에 대한 죄인이다.

천자가 제후의 나라에 가는 것을 순수라고 하고, 제후가 천자에게 조회하는 것을 술직이라 하는데, 봄에는 밭 가는 것을 살펴 부족한 것을 돕고, 가을에는 거두는 것을 살펴 넉넉하지 못한 것을 도와준다. 천자가 제후 나라의 경계에 들어서면 토지가 개간되고 들이 다스려지며, 노인이 봉양되고 어진 자가 존중되며, 우수한 인재가 등용되어 제자리에 있으면 상이 있어 땅으로 상을 내렸다.

천자가 제후국의 경계에 들어서서, 토지가 황폐하고 노인들이 버려지고 어진 자를 등용하지 못하며, 가혹한 인재가 등용되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꾸짖음이 있었다. 

조회에 한 번 불참하면 벼슬을 낮추고, 두번 불참하면 영지를 삭감하며, 세번 불참하면 천자의 군대를 동원하여 제후를 바꾼다. 그러므로 천자는 죄를 성토하고 정벌하지는 않는데, 제후는 정벌하고 성토하지 않는다. 다섯 패자는 제후들을 모아 제후를 정벌한 자들이다. 그래서 내가 다섯 명의 패자는 삼왕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오패 중 제나라 환공이 가장 강성했는데, 규구의 회맹에 제후들을 모아 희생을 묶어 놓고는 그 위에 맹약 문서를 올려 놓고, 피를 마시지 않고 첫 명을 내려, '불효한 자를 벌하며, 세자를 바꾸지 말고, 첩을 아내로 삼지 말라.'고 하였다. 두 번째 명을 내려, '어진 자를 높이고 인재를 육성하며, 덕이 있는 자를 표창하라.' 고 하였으며, 세 번째 명을 내려,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 아이를 사랑하며, 손님과 나그네를 잊지 말라.' 하고, 네 번째 명을 내려, '선비는 관직을 세습하지 말고, 관의 일을 겸직하지 말며, 선비를 등용함에 반드시 적임자를 얻도록 하며, 대부를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하였다. 다섯번 째 명을 내려, '제방을 굽게 쌓지 말며, 쌀을 사들이는 것을 막지 말며, 대부를 봉하고 보고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라.' 고 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함께 맹약한 우리들 모두는 맹약이후 맹약을 잘 지키자.'고 하였다.  지금의 제후들은 모두 이 다섯 가지 금하는 것을 모두 거스르고 있으므로 지금의 제후들은 다섯 패자에게 죄를 지었다고 한 것이다.

임금의 악을 조장하는 것은 그 죄가 적은 것이고, 임금의 악에 영합한 것은 그 죄가 큰 것이다. 지금의 대부들은 모두 임금의 악과 영합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대부는 지금의 제후들에게 죄를 지은 죄인들이라고 하였다."  

 

 

 

 

○趙氏曰, 五覇, 齊桓, 晉文, 秦穆, 宋襄, 楚莊也, 三王, 夏禹, 商湯, 周文武也. 丁氏曰, 夏昆吾, 商大彭, 豕韋, 周齊桓, 晉文 謂之五覇.

 

○조씨(趙岐) 가로대 오패는 제환공과 진문공, 진목공, 송양공, 초장왕이라. 삼왕은 하나라 우임금, 상나라 탕임금, 주나라 문왕과 무왕이라. 정씨(丁公著, 唐) 가로대 하나라 곤오, 상나라 대팽과 시위, 주나라 제환공과 진문공을 일러 오패라 하니라.

 

 

 

天子適諸侯曰巡狩, 諸侯朝於天子曰述職, 春省耕而補不足, 秋省斂而助不給。入其疆, 土地辟田野治, 養老尊賢, 俊傑在位則有慶, 慶以地。入其疆, 土地荒蕪, 遺老失賢, 掊克在位則有讓。一不朝則貶其爵,  再不朝則削其地, 三不朝則六師, 移之。是故 天子討而不伐, 諸侯伐而不討。五覇者摟諸侯, 以伐諸侯者也。曰五覇者, 三王之罪人也。

 

 

천자가 제후의 나라에 가는 것을 순수라고 하고, 제후가 천자에게 조회하는 것을 술직이라 하는데, 봄에는 밭 가는 것을 살펴 부족한 것을 돕고, 가을에는 거두는 것을 살펴 넉넉하지 못한 것을 도와준다. 천자가 제후 나라의 경계에 들어서면 토지가 개간되고 들이 다스려지며, 노인이 봉양되고 어진 자가 존중되며, 우수한 인재가 등용되어 제자리에 있으면 상이 있어 땅으로 상을 내렸다.

천자가 제후국의 경계에 들어서서, 토지가 황폐하고 노인들이 버려지고 어진 자를 등용하지 못하며, 가혹한 인재가 등용되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꾸짖음이 있다.  조회에 한 번 불참하면 벼슬을 낮추고, 두번 불참하면 영지를 삭감하며, 세번 불참하면 천자의 군대를 동원하여 제후를 바꾼다. 그러므로 천자는 죄를 성토하고 정벌하지는 않는데, 제후는 정벌하고 성토하지 않는다. 다섯 패자는 제후들을 모아 제후를 정벌한 자들이다. 그래서 내가 다섯 명의 패자는 삼왕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掊克 : 가렴주구(苛斂誅求)하거나 가렴주구하는 사람.       讓 : 꾸짖다.   

六師 : 천자의 군대. 주나라 때 1軍은 1만2천5백명으로 여섯 군은 모두 7만5천명임. 주나라 때의 군대 편제로 伍 · 兩 · 卒 · 旅 · 師 · 軍. 

 

 

○慶 賞也, 益其地以賞之也. 掊克 聚斂也. 讓 責也. 移之者 誅其人而變置之也. 討者 出命以討其罪, 而使方伯連帥, 帥諸侯以伐之也. 伐者 奉天子之命, 聲其罪而伐之也. 摟 牽也. 五覇 牽諸侯, 以伐諸侯, 不用天子之命也. 自入其疆, 至則有讓, 言巡狩之事, 自一不朝, 至六師移之 言述職之事.

 

○경은 상이니 그 땅을 더해서 써 상줌이라. 부극은 세금을 많이 거둠이라. 양은 꾸짖음이라. 옮긴다는 것은 그 사람(제후)을 베고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둠이라. 토라는 것은 명을 내어 써 그 죄를 성토하고 방백과 연수로 하여금 제후를 거느려서 써 정벌함이라. 벌이라는 것은 천자의 명을 받들어 그 죄를 성토하고 정벌함이라. 루는 끎이라. 오패는 제후를 끌어서 써 제후를 정벌하고 천자의 명을 쓰지 아니함이라. ‘入其疆’부터 ‘則有讓’까지는 순수의 일을 말하고, ‘一不朝’부터 ‘六師移之’까지는 술직의 일을 말함이라.

 

方伯 : 제후 중의 우두머리로, 東西南北마다 東伯 西伯 南伯 北伯이라 불렀다.

連帥 : 주나라의 제도로서 三國을 連이라 하고, 그 우두머리를 帥라 하였다. 후대에는 道伯을 方伯, 兵使를 連帥라 하였다.

 

 

 

五覇桓公爲盛, 葵丘之會,  諸侯束牲載書而不歃血, 初命曰, 誅不孝, 無易樹子, 無以妾爲妻。再命曰, 尊賢育才, 以彰有德, 三命曰, 敬老慈幼, 無忘賓旅, 四命曰, 士無世官, 官事無攝, 取士必得, 無專殺大夫, 五命曰, 無曲防, 無遏糴, 無有封而不告, 曰, 『凡我同盟之人, 旣盟之後, 言歸于好。』 今之諸侯皆犯此五禁,  故曰今之諸侯, 五覇之罪人也。

 

 

오패 중 제나라 환공이 가장 강성했는데, 규구의 회맹에 제후들을 모아 희생을 묶어 놓고는 그 위에 맹약 문서를 올려 놓고, 피를 마시지 않고 첫 명을 내려, '불효한 자를 벌하며, 세자를 바꾸지 말고, 첩을 아내로 삼지 말라.'고 하였다. 두 번째 명을 내려, '어진 자를 높이고 인재를 육성하며, 덕이 있는 자를 표창하라.' 고 하였으며, 세 번째 명을 내려,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 아이를 사랑하며, 손님과 나그네를 잊지 말라.' 하고, 네 번째 명을 내려, '선비는 관직을 세습하지 말고, 관의 일을 겸직하지 말며, 선비를 등용함에 반드시 적임자를 얻도록 하며, 대부를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하였다. 다섯번 째 명을 내려, '제방을 굽게 쌓지 말며, 쌀을 사들이는 것을 막지 말며, 대부를 봉하고 보고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라.' 고 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함께 맹약한 우리들 모두는 맹약이후 맹약을 잘 지키자.'고 하였다.  지금의 제후들은 모두 이 다섯 가지 금하는 것을 모두 거스르고 있으므로 지금의 제후들은 다섯 패자에게 죄를 지었다고 한 것이다.   

 

 

言歸于好 : (中) 화해하다. 다시 사이가 좋아지다.  다시 좋게 되다.

 

 

○按春秋傳, 僖公九年 葵丘之會, 陳牲而不殺, 讀書加於牲上, 壹明天子之禁. 樹 立也, 已立世子 不得擅易.  初命三事 所以修身正家之要也. 賓 賓客也. 旅 行旅也. 皆當有以待之, 不可忽忘也. 士世祿而不世官, 恐其未必賢也; 官事無攝 當廣求賢才以充之, 不可以闕人廢事也. 取士必得, 必得其人也. 無專殺大夫, 有罪則請命于天子而後 殺之也. 無曲防 不得曲爲隄防, 壅泉激水, 以專小利病鄰國也. 無遏糴, 鄰國凶荒, 不得閉糴也. 無有封而不告者, 不得專封國邑, 而不告天子也.

 

○춘추전((春秋穀梁傳)을 상고하건대 (노나라) 희공 9년에 규구의 모임에 희생을 늘어놓고 죽이지 아니하고 글을 읽고 희생 위에 올려놓아 천자가 금하는 것을 한번 밝혔느니라. 수는 세움이니 이미 세자를 세웠으면 시러곰 멋대로 바꾸지 않음이라. 처음 명한 세 가지 일은 써한 바 수신과 집을 바루게 함의 요지라. 빈은 빈객이오, 려는 나그네이니 모두 마땅히 써 대함이 있어야 하고 가히 소홀히 하고 잊어서는 아니됨이라. 선비가 대대로 녹을 받으면서 대대로 관직을 (잇게 하지) 아니함은 그 반드시 어질지 못할까를 두려워함이라. 관청의 일을 겸함이 없음은 마땅히 어진 인재를 널리 구해서 써 채우고, 가히 써 사람(인재)을 빠뜨려 일을 폐하지 아니함이라. 선비를 취함에 반드시 얻음은 반드시 그 사람을 얻음이라. 멋대로 대부를 죽임이 없음은 죄가 있다면 천자에게 명을 청한 후에 죽이는 것이라. 제방을 구부림이 없음은, 시러곰 구부려서 제방을 만들어 샘을 막고 물을 격하게 하여 써 작은 이익을 오로지 하고 이웃나라를 병들게 하지 아니함이라. 쌀 사들임을 막음이 없음은 이웃나라가 흉년이거든 시러곰 쌀 사들이는 것을 막음이 없음이라. 봉하고도 고하지 않음이 없음은 시러곰 멋대로 국읍을 봉해주고 천자에게 고하지 아니함을 못하게 함이라. 

 

 

 

長君之惡其罪小, 逢君之惡其罪大。今之大夫皆逢君之惡。故曰今之大夫, 今之諸侯之罪人也。

 

 

임금의 악을 조장하는 것은 그 죄가 적은 것이고, 임금의 악에 영합한 것은 그 죄가 큰 것이다. 지금의 대부들은 모두 임금의 악과 영합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대부는 지금의 제후들에게 죄를 지은 죄인들이라고 하였다.

 

 

○君有過不能諫, 又順之者 長君之惡也, 君之過未萌而先意導之者, 逢君之惡也.

◯林氏曰, 邵子有言, 治春秋者不先治五覇之功罪, 則事無統理, 而不得聖人之心. 春秋之間有功者, 未有大於五覇, 有過者亦未有大於五覇故, 五覇者功之首, 罪之魁也.  孟子此章之義, 其亦若此也與.  然 五覇得罪於三王, 今之諸侯得罪於五覇, 皆出於異世. 故 得以逃其罪, 至於今之大夫, 宜得罪於今之諸侯, 則同時矣, 而諸侯非惟莫之罪也. 乃反以爲良臣而厚禮之, 不以爲罪而反以爲功, 何其謬哉!

 

○인군이 허물이 있음에 능히 간하지 아니하고 또 순하는 것은 인군의 악을 자라게 함이오, 인군이 허물이 아직 싹트지 아니했는데 먼저 안내하려는 뜻이 있는 자는 인군의 악을 맞이함이라.

◯임씨(林之奇, 北宋人) 가로대 소자가 말하기를 춘추를 익히는 자가 먼저 오패의 공과 죄를 다스리지 아니한다면 일이 계통과 이치가 없어 능히 성인의 마음을 얻지 못하니라. 춘추시대에 공이 있는 자는 오패보다 더 큰 자가 있지 아니하고, 허물이 있는 자 또한 오패보다 큰 자가 있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오패는 공의 머리요, 죄의 으뜸이라 하였으니 『맹자』의 이 장의 뜻도 그 또한 이와 같을진저! 그러나 오패는 삼왕에게 죄를 지었고, 지금의 제후는 오패에게 죄를 지었음은 모두 다른 세대에서 나옴이라. 그러므로 시러곰 써 그 죄에서 달아나거니와 이제의 대부에 이르러서는 의당 지금의 제후에게 죄를 지었으니 곧 같은 시대로되 제후들은 오직 크나큰 죄가 아니라 도리어 써 좋은 신하로 삼아 후히 예후하고 써 죄 삼지 아니하고 도리어 써 공을 삼으니 무엇이 그 그릇됨인고! 

 

 

 

 

第 8章

 

魯欲使愼子爲將軍,  孟子曰, 「不敎民而用之, 謂之殃民, 殃民者不容於堯舜之世。一戰勝齊, 遂有南陽, 然且不可,」 愼子勃然不悅曰, 「此則滑釐所不識也。」 曰, 「吾明告子。天子之地方千里,  不千里不足以待諸侯, 諸侯之地方百里, 不百里不足以守宗廟之典籍。周公之封於魯, 爲方百里也。地非不足而儉於百里, 太公之封於齊也, 亦爲方百里也, 地非不足也, 而儉於百里。今魯方百里者五,  子以爲有王者作, 則魯在所損乎?  在所益乎?  徒取諸彼以與此,  然且仁者不爲,  況於殺人以求之乎! 君子之事君也, 務引其君以當道, 志於仁而已。」

 

 

노나라에서 신자를 장군에 임명하려고 하자, 맹자가 말했다.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전쟁에 동원하는 것을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하는데,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요순시대에는 용납되지 않았다. 한번 싸워 제나라를 이기고 남양을 차지한다 해도 좋지 않다."

신자가 발끈하여 화를 내며 말했다. "이것은 제가 납득할 수 없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내가 분명히 그대에게 밝힙니다. 천자의 땅이 사방 천리인데, 천리가 되지 못하면 제후를 족히 대하지 못하며, 제후의 땅은 사방 백리인데 백리가 되지 못하면 종묘의 전적을 지킬 수 없습니다. 주공이 노나라에 봉해졌을 때, 사방 백리였습니다. 땅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백리에 국한되었으며, 태공이 제나라에 봉해졌을 때, 역시 사방 백리였는데 땅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백리로 제한 하였습니다. 지금 노나라에는 사방 백리인 자가 다섯인데 그대는 왕업을 이루는 자가 있다면 노나라에서는 땅을 덜어내는 쪽에 해당되겠습니까? 땅이 늘어나는 쪽에 해당되겠습니까? 한갓 저쪽에서 취하여 이쪽에 주는 것도 어진 자로서는 할 바가 아닌데 하물며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땅을 탐낸단 말입니까!

군자는 임금을 섬기는데 있어  임금을 도에 합당하게 하여 뜻을 어짊에 두도록 인도하는데 힘써야 할 뿐입니다."

 

 

○愼子 魯臣. 敎民者 敎之禮義, 使知入事父兄, 出事長上也. 用之 使之戰也.

 

○신자는 노나라 신하라.  백성을 가르친다는 것은 가르침이 예의로 하여 들어가서는 부형을 섬기고 나가서는 장상을 섬김을 알게 하는 것이라. 쓴다는 것은 하여금 싸우게 함이라.

 

 

 

 一戰勝齊, 遂有南陽, 然且不可,

 

 

한번 싸워 제나라를 이기고 남양을 차지한다 해도 좋지 않다.

 

 

○是時 魯蓋欲使愼子伐齊, 取南陽也. 故 孟子言, 就使愼子善戰, 有功如此, 且猶不可.

 

○이 때에 노나라가 아마도 신자로 하여금 제나라를 정벌케 하여 남양을 취하려 한 듯하다. 그러므로 맹자가 가령 신자로 하여금 잘 싸우게 하여 이와같이 공을 세우더라도 또한 오히려 옳지 않다고 말씀하심이라. 

 

 

 

愼子勃然不悅曰, 「此則滑釐所不識也。」

 

 

신자가 발끈하여 화를 내며 말했다. "이것은 제가 납득할 수 없습니다."

 

 

 ○滑釐 愼子名.

 

○골리는 신자의 이름이라.

 

 

 

曰, 「吾明告子。天子之地方千里,  不千里不足以待諸侯, 諸侯之地方百里, 不百里不足以守宗廟之典籍。」

 

 

맹자가 말했다."내가 분명히 그대에게 밝힙니다. 천자의 땅이 사방 천리인데, 천리가 되지 못하면 제후를 족히 대하지 못하며, 제후의 땅은 사방 백리인데 백리가 되지 못하면 종묘의 전적을 지킬 수 없습니다."

 

 

○待諸侯 謂待其朝覲聘問之禮. 宗廟典籍 祭祀會同之常制也.

 

○대제후는 그 조회하고 빙문의 예를 대함을 이름이라. 종묘전적은 제사하고 회동하는 떳떳한 제도라.

 

 

 

周公之封於魯, 爲方百里也。地非不足而儉於百里, 太公之封於齊也, 亦爲方百里也, 地非不足也, 而儉於百里。

 

 

주공이 노나라에 봉해졌을 때, 사방 백리였습니다. 땅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백리에 국한되었으며, 태공이 제나라에 봉해졌을 때, 역시 사방 백리였는데 땅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백리로 제한 하였습니다. 

 

 

○二公 有大勳勞於天下, 而其封國不過百里. 儉止而不過之意也.

 

○두 공은 천하에 큰 공과 노고가 있었으되 그 봉국이 백리를 넘지 못했느니라. 검은 그쳐서 넘지 못한 뜻이라.

 

 

 

今魯方百里者五,  子以爲有王者作, 則魯在所損乎?  在所益乎?

 

 

지금 노나라에는 사방 백리인 자가 다섯인데 그대는 왕업을 이루는 자가 있다면 노나라에서는 땅을 덜어내는 쪽에 해당되겠습니까? 땅이 늘어나는 쪽에 해당되겠습니까?

 

 

○魯地之大 皆幷呑小國而得之, 有王者作則必在所損矣.

 

○노나라 땅의 큼은 다 소국을 병탄하여 얻은 것이니 왕자가 일어남이 있다면 반드시 덜어내야 할 바에 있으리라.

 

 

 

徒取諸彼以與此,  然且仁者不爲,  況於殺人以求之乎!

 

 

한갓 저쪽에서 취하여 이쪽에 주는 것도 어진 자로서는 할 바가 아닌데 하물며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땅을 탐낸단 말입니까!

 

 

○徒 空也. 言不殺人而取之也.

 

○도는 헛됨(한갓)이라. 사람을 죽여서 취하지 아니함을 말함이라.

 

 

 

君子之事君也, 務引其君以當道, 志於仁而已。

 

 

군자가 임금을 섬기는데 있어  임금을 도에 합당하게 하여 뜻을 어짊에 두도록 인도하는데 힘써야 할 뿐입니다.

 

 

○當道 謂事合於理, 志仁 謂心在於仁.

 

○당도는 일이 이치에 합함을 이름이오, 지인은 마음이 인에 있음을 이름이라.

 

 

 

 

 

 

第 9章

 

孟子曰, 「今之事君者曰, 『我能爲君, 辟土地充府庫。』 今之所謂良臣, 古之所謂民賊也。 君不鄕道不志於仁, 而求富之, 是富桀也。我能爲君約與國, 戰必克,  今之所謂良臣, 古之所謂民賊也。 君不鄕道, 不志於仁, 而求爲之强戰, 是輔桀也。由今之道,  無變今之俗, 雖與之天下, 不能一朝居也。」

 

 

맹자가 말했다.

"지금 임금을 섬기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는 임금을 위하여 토지를 개간하고 부고를 채울 수 있다.' 고 하는데, 지금은 좋은 신하라고 하겠지만 옛날의 이른바 백성의 도적이다. 임금이 도를 지향하지 않고 인에 뜻을 두지 않는데도 임금을 부유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폭군 걸왕을 부유하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임금을 위하여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고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이른바 좋은 신하이지만, 예날의 이른 바 백성의 도적이다. 임금이 도를 지향하지 않고 인에 뜻을 두지 않는데도 그를 위해 억지로 싸우는 것은 걸왕을 돕는 것이다. 지금의 도를 따르고 지금의 풍속에 변화가 없다면 천하를 준다 해도 하루 아침도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辟 開墾也.

 

○벽은 개간이라.

 

 

 

我能爲君約與國, 戰必克,  今之所謂良臣, 古之所謂民賊也。 君不鄕道, 不志於仁, 而求爲之强戰, 是輔桀也。

 

 

나는 임금을 위하여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고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의 이른바 좋은 신하이지만, 예날의 이른 바 백성의 도적이다. 임금이 도를 지향하지 않고 인에 뜻을 두지 않는데도 그를 위해 억지로 싸우는 것은 걸왕을 돕는 것이다.  

 

 

○約 要結也. 與國 和好相與之國也.

 

○약은 긴요하게 맺음이라. 여국은 화합하고 좋아하며 서로 더부는 나라라.

 

 

由今之道,  無變今之俗, 雖與之天下, 不能一朝居也。

 

지금의 도를 따르고 지금의 풍속에 변화가 없다면 천하를 준다 해도 하루 아침도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言必爭奪, 而至於危亡也.

 

○반드시 싸우고 빼앗아 위태롭고 망함에 이름을 말씀하심이라.

 

 

 

 

 

 

第10章

 

白圭曰, 「吾欲二十而取一,  何如?」  孟子曰, 「子之道貉道也。萬室之國,  一人陶則可乎?」  曰, 「不可, 器不足用也。」  曰, 「夫貉五穀不生,  惟黍生之,  無城郭宮室宗廟祭祀之禮, 無諸侯幣帛饔飱, 無百官有司。 故二十取一而足也。今居中國,  去人倫無君子, 如之何其可也?  陶以寡, 且不可以爲國, 況無君子乎!  欲輕之於堯舜之道者, 大貉小貉也。 欲重之於堯舜之道者, 大桀小桀也。」

 

 

 

백규가 물었다. "내가 20분의 1을 조세로 취하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그대의 도는 오랑캐인 맥(貊)의 도입니다. 만 가구가 있는 나라에서 한 사람이 그릇을 구우면 됩니까?"

"안됩니다. 그릇이 부족합니다."

맹자가 말했다.

"맥나라에서는 오곡이 나지 않고 오직 기장만 자라며, 성곽과 궁실과 종묘와 제사하는 예가 없고, 제후 사이의 예물을 주고 받는 일과 음식대접도 없으며, 백관을 담당하는 관리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20분의 1이면 충분합니다. 지금 중국에 살면서 인륜을 버리고 군자를 없앤다면 어찌 옳겠습니까? 그릇이 적어도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데 하물며 군자가 없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요순의 도보다 조세를 가볍게 하려는 자는 대맥과 소맥이며, 요순의 도보다 무겁게 하려는 자는 큰 걸왕과 작은 걸왕입니다."

 

 

 

○白圭 名 丹, 周人也. 欲更稅法, 二十分而取其一分. 林氏曰, 按史記, 白圭能薄飮食, 恐嗜欲與童僕同苦樂, 樂觀時變, 人棄我取, 人取我與, 以此居積致富, 其爲此論 蓋欲以其術, 施之國家也.

 

○백규는 이름이 단이니 주나라 사람이라. 세법을 고쳐서 20분하고 그 일분을 취하려 하니라. 임시 가로대 사기를 상고컨대 백규는 능히 먹고 마심을 박하게 하고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종들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며 때의 변화를 보기 좋아하여 다른 사람들이 버리면 나는 취하고 다른 사람들이 취하면 나는 주어서 이로써 재물을 쌓아 치부하니 그 이 논함은 대개 이 방법으로써 국가에 베풀고자 함이니라.

 

 

☞ 白圭

 

白圭, 周人也. 當魏文侯時, 李克務盡地力, 而白圭樂觀時變, 故人棄我取, 人取我與. 夫歲孰取谷, 予之絲漆;繭出取帛絮, 予之食. 太陰在卯, 穰;明歲衰惡. 至午, 旱;明歲美. 至酉, 穰;明歲衰惡. 至子, 大旱;明歲美, 有水. 至卯, 積著率歲倍. 欲長錢, 取下谷;長石鬥, 取上種. 能薄飲食, 忍嗜欲, 節衣服, 與用事僮僕同苦樂, 趨時若猛獸摯鳥之發. 故曰:「吾治生産, 猶伊尹、呂尙之謀, 孫吳用兵, 商鞅行法是也. 是故其智不足與權變 勇不足以決斷, 仁不能以取予, 彊不能有所守, 雖欲學吾術, 終不告之矣.」 蓋天下言治生祖白圭. 白圭其有所試矣, 能試有所長, 非苟而已也.  <史記 貨殖列傳>

 

 

백규(白圭)는 주(周)나라 사람이다. 위(魏) 문후(文侯) 때, 이극(李克)은 농토를 최대한 활용하는데 힘을 썼고, 백규는 시세의 변화를 잘 살펴서 남이 버리면 취하고 남이 취하면 내다 팔았다. 매해 수확할 때에는 곡식을 사들이고 실과 옻을 내다 팔았으며, 고치가 나올 때에는 비단과 솜을 사들이고 식량을 내다 팔았다. 토끼해에 풍년이 들면 이듬해의 경기는 아주 나빠진다. 말의 해에 가뭄이 들면 이듬해에는 상황이 좋아진다. 닭의 해에 풍년이 들면 이듬해는 나쁘고, 쥐해에 큰 가뭄이 들면 이듬해는 좋아지고 홍수가 난다. 따라서 토끼해에는 물건을 사서 비축했다가 팔면 대체로 두 배 정도 이익을 얻는다. 돈을 크게 벌려면 하등 곡식을 사들이며, 생산량을 늘리려면 상등 품종을 사들인다.

간소하게 먹었고, 하고 싶은 것을 참았으며 입는 것을 절약했다. 노복들과 동고동락하며 일했고, 때를 잡으면 사나운 짐승이나 새처럼 달려들었다. 그래서 그는 “나의 경영은 이윤(伊尹)과 여상(呂尙)이 모략을 구사하듯, 손자(孫子)와 오자(吳子)가 군대를 부리듯, 상앙(商鞅)이 법을 시행하듯 한다. 따라서 임기응변할 지혜가 없거나, 결단을 내릴 용기가 없거나, 주고받을 자애로움이 없거나, 지켜낼 강단이 없으면 나의 기술을 배우려 해도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라고 했다.

대개 천하에서 장사를 말하면 백규를 시조로 받든다. 백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 경험에서 나온 것이고, 경험상의 장점이지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다.

 

 

☞ 參考   

 

論語에 '三復白圭'라는 말이 있고 詩經에 '白圭'라는 말이 나온다. 

 

南容 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論語 先進 第21. 5> 

朱子는 해설에서 시경을 인용하고 흰 옥의 흠은 갈아 없앨 수 있어도 말의 흠은 고칠 수 없다 하고 남용이 하루 3번 반복하여 말하였다고 한다. 이 말은 공자가어에 나온다.

詩大雅抑篇曰, 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 南容一日 三復此言. 事見家語 蓋深有意於謹言也.

 

 

大雅/蕩之什/抑

 

質爾人民,謹爾侯度,                네 백성을 안정시며 삼가 제후를 헤아려,

用戒不虞。                                   경계하고 우환이 없도록 할지어다.

愼爾出話,敬爾威儀,                신중하게 말을 하고 위의를 공경하여,

無不柔嘉。                                   유순하고 아름답지 않게 하지 말지어다.

白圭之玷,尙可磨也;                흰 옥홀의 흠은 갈아서 없앨 수 있어도,

斯言之玷,不可爲也。                말의 흠은 어찌할 수 없노라.

 

 

 

 

孟子曰, 「子之道貉道也。」

 

 

맹자가 말했다. "그대의 도는 오랑캐인 맥(貊)의 도입니다."

 

 

○貉 北方夷狄之國名.

 

○맥은 북방 이적의 나라 이름이라.

 

 

 

「萬室之國,  一人陶則可乎?」  曰, 「不可, 器不足用也。」

 

"만 가구가 있는 나라에서 한 사람이 그릇을 구우면 됩니까?"

"안됩니다. 그릇이 부족합니다."

 

 

○孟子設喩以詰圭, 而圭亦知其不可也.

 

○맹자가 비유를 가설하여 써 규를 힐난함에 규가 또한 그 불가함을 앎이라.

 

 

 

曰, 「夫貉五穀不生,  惟黍生之,  無城郭宮室宗廟祭祀之禮, 無諸侯幣帛饔飱, 無百官有司。 故二十取一而足也。」

 

 

맹자가 말했다.

"무릇 맥나라에서는 오곡이 나지 않고 오직 기장만 자라며, 성곽과 궁실과 종묘와 제사하는 예가 없고, 제후 사이의 예물을 주고 받는 일과 음식대접도 없으며, 백관을 담당하는 관리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20분의 1이면 충분합니다."

 

 

饔 : 아침밥 옹. 아침밥, 조반. 익은 음식. 요리. 희생. 죽은 희생.    飱, 飧 : 저녁밥 손. 

 

 

○北方 地寒, 不生五穀, 黍早熟故, 生之. 饔飧 以飮食饋客之禮也.

 

○북방은 땅이 차서 오곡이 나지 못하고 기장은 일찍 익는고로 남이라. 옹손은 음식으로써 손님을 먹이는 예라.

 

 

 

今居中國,  去人倫無君子, 如之何其可也?

 

 

지금 중국에 살면서 인륜을 버리고 군자를 없앤다면 어찌 옳겠습니까?"

 

 

○無君臣祭祀交際之禮, 是 去人倫, 無百官有司 是 無君子.

 

○군신과 제사, 교제의 예가 없다면 이는 인륜을 버림이오, 백관과 유사가 없다면 이는 군자가 없음이라.

 

 

 

陶以寡, 且不可以爲國, 況無君子乎!

 

 

그릇이 적어도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데 하물며 군자가 없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因其辭以折之.

 

○그 말을 인하여 써 꺾으심이라.

 

 

 

欲輕之於堯舜之道者, 大貉小貉也。 欲重之於堯舜之道者, 大桀小桀也。

 

 

요순의 도보다 조세를 가볍게 하려는 자는 대맥과 소맥이며, 요순의 도보다 무겁게 하려는 자는 큰 걸왕과 작은 걸왕입니다.

 

 

○什一而稅 堯舜之道也, 多則桀, 寡則貉. 今欲輕重之, 則是 小貉 小桀而已.

 

○10분의 1로 하는 세는 요순의 도이니 많으면 걸이오, 적으면 맥이라. 이제 가볍고 무겁게 한다면 이는 소맥과 소걸일 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