賢明傳/秦穆公姬, 楚莊樊姬, 周南之妻
秦穆公姬
穆姬者,秦穆公之夫人,晉獻公之女,太子申生之同母姊,與惠公異母。賢而有義。獻公殺太子申生,逐群公子。惠公號公子夷吾,奔梁。及獻公卒,得因秦立。始卽位,穆姬使納群公子曰:「公族者,君之根本。」惠公不用,又背秦賂。晉饑,請粟於秦,秦與之。秦饑,請粟於晉,晉不與。秦遂興兵與晉戰,獲晉君以歸。
목희(穆姬)는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夫人이며, 진(晉)나라 헌공(獻公)의 딸로 태자 신생(申生)의 어머니가 같은 누님
이고, 혜공(惠公)의 어머니가 다른 누님이다. 현명하면서도 법도가 있었다. 진나라 헌공이 태자 신생을 죽이고 公子들을 추방(追放)하였다. 혜공은 공자시절 이오(夷吾)라 불리웠는데 양(梁)나라로 도망하였었다가, 헌공이 죽자 진나라의 도움을 받아 즉위하였다.
애초에 즉위하자 목희는 公子들을 晉나라로 받아들이게 하면서 말하였다.
"공족은 군주와 같은 뿌리이다."
혜공은 듣지 않고 또 진(秦)나라에 재물을 주기로 한 약속도 어겼다. 진(晉)나라에 기근(饑饉)이 들어 진(秦)나라에 식량을 청하자 진(秦)나라에서 도왔다. 그러나 진(秦)나라에 가뭄으로 기근이 들어 진(晉)나라에 식량을 청했는데도 도와주지 않았다. 진(秦)나라에서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진(晉)나라와 전쟁을 하여 진(晉)나라의 혜공(惠公)을 사로잡아 왔다.
秦穆公曰:「埽除先人之廟,寡人將以晉君見。」穆姬聞之,乃與太子罃、公子宏,與女簡璧,衰絰履薪以迎。且告穆公曰:「上天降災,使兩君匪以玉帛相見,乃以興戎。婢子娣姒,不能相敎,以辱君命。晉君朝以入,婢子夕以死。惟君其圖之。」公懼,乃舍諸靈臺。大夫請以入,公曰:「獲晉君以功歸,今以喪歸,將焉用!」
罃 : 물독 앵. 물독. 술단지.
絰 : 질 질. 질.(상복을 입을 때 머리에 쓰는 수질과 허리에 감는 요질) 衰絰(최질) : 상중에 입는 삼베 옷.
진 목공(秦穆公)이 말하였다. "선조들의 묘당을 청소해라. 과인이 진나라 군주를 제물로 바칠 것이다."
목희가 그 말을 듣고 태자 앵, 공자 굉과 함께 딸 간벽을 데리고 상복을 입고는 섶나무를 밟고 목공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목공에게 고했다.
"위에서 하늘이 재앙을 내려 두 군주로 하여금 예물로써 만나지 않고 전쟁을 일으켜 만나게 하였습니다. 저는 여자 형제로서 어찌할 수 없어 군명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진(晉)나라 군주가 아침에 들어와 제물이 되면 저는 저녁에 죽을 것입니다. 오직 군주께서 헤아려 주시기 바랄뿐입니다."
목공이 두려워 하여 모든 영대를 치웠다. 그리고 대부들을 청하여 들어오게 하고 말했다.
"진나라 군주를 잡고 공을 세워 돌아왔으나 지금 상을 당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遂改館晉君,饋以七牢而遣之。穆姬死,穆姬之弟重耳入秦,秦送之晉,是爲晉文公。太子罃思母之恩,而送其舅氏也,作詩曰:「我送舅氏,曰至渭陽,何以贈之?路車乘黃。」
君子曰:「慈母生孝子。」
詩云:「敬愼威儀,維民之則。」穆姬之謂也。
頌曰:秦穆夫人,晉惠之姊。秦執晉君,夫人流涕,痛不能救,乃將赴死,穆公義之,遂釋其弟。
마침내 진(晉)나라 군주의 처소를 객관으로 옮기고 칠뢰의 음식을 보내어 후히 대접했다. 목희가 죽은 후 목희의 동생 중이가 진(秦)나라에 들어왔는데 진(秦)에서는 그를 진(晉)으로 보내었는데 이 사람이 진 문공(晉文公)이 되었다.
진(秦)나라의 태자 앵이 모친의 은혜를 생각하고 그 외삼촌인 중이를 진(晉)나라로 보내면서 시를 지었다.
"내가 외삼촌(重耳)을 전송하러 위양에 이르렀네. 무엇을 드릴까, 타고 갈 수레에 누런 사마(駟馬)로다.(國風/秦風/渭陽)"
군자는, "어진 어머니가 효자를 낳았다."고 하였다.
시에, "위의가 공경스럽고 신중하니 백성의 본보기가 되도다.(大雅/蕩之什/抑, 魯頌/泮水)"라 한 것은 목희를 말하는 것이다.
송에, "진(秦)나라 목부인은 진(晉)나라 혜공의 누님으로 진(秦)나라에서 진(晉)의 군주인 혜공을 잡아 제물로 바치려 하자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구할 수 없음을 애통해하여 죽으려 하자 목공이 그녀를 의롭게 여겨 마침내 그 동생을 풀어주었다." 고 하였다.
楚莊樊姬
樊姬,楚莊王之夫人也。莊王卽位,好狩獵。樊姬諫不止,乃不食禽獸之肉,王改過,勤於政事。王嘗聽朝罷晏,姬下殿迎曰:「何罷晏也,得無飢倦乎?」王曰:「與賢者語,不知飢倦也。」姬曰:「王之所謂賢者何也?」曰:「虞丘子也。」姬掩口而笑。王曰:「姬之所笑何也?」曰:「虞丘子賢則賢矣,未忠也。」王曰:「何謂也?」對曰:「妾執巾櫛十一年,遣人之鄭衛,求美人進於王。今賢於妾者二人,同列者七人。妾豈不欲擅王之愛寵哉!妾聞『堂上兼女,所以觀人能也。』 妾不能以私蔽公,欲王多見知人能也。
번희(樊姬)는 초(楚)나라 장왕(莊王)의 부인이다. 장왕이 즉위한 후 사냥을 좋아하였다. 번희가 간하여도 사냥을 그치지 않아 사냥해온 짐승의 고기를 먹지않으니 왕이 잘못을 뉘우치고 정사에 전념하였다. 장왕이 조정에서 일을 마치고 늦게 돌아오자 번희는 전각에서 내려와 맞으며 말했다.
"어찌 늦게 물러나셨습니까? 배고프고 지루하지 않으셨습니까?"
왕이 답한다. "현자(賢者)와 더불어 이야기하느라 배고픔도 지루함도 알지 못했소,"
번희가 물었다. "왕께서 현자라고 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우구자(虞丘子)요." 왕이 대답하니 번희가 입을 가리고 웃는다.
왕이, "그대가 웃는 것은 어째서인가?"하고 물으니 번희가 대답했다.
"우구자가 현자라면 현자이겠으나 충성스럽지 못합니다."
왕이, "무슨 말인가?" 물으니 번희가 대답했다.
"제가 대왕을 가까이에서 모신지가 11년이 되었는데 정(鄭)나라, 위(衛)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미인을 구해 대왕께 천거하였습니다. 지금 그 미인 중에 저보다 현명한 자가 2명이며 저와 같은 반열의 여인이 7명입니다. 제가 어찌 왕의 총애를 차지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듣기로 『당상에 여인을 두는 것은 사람의 능력을 보려하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사사로움으로 공적일 일을 가로 막을 수 없으며, 왕께서 많은 사람을 만나시어 사람의 능력을 알아 보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今虞丘子相楚十餘年,所薦非子弟,則族昆弟,未聞進賢退不肖,是蔽君而塞賢路。知賢不進,是不忠;不知其賢,是不智也。妾之所笑,不亦可乎!」王悅。明日,王以姬言告虞丘子,丘子避席,不知所對。於是避舍,使人迎孫叔敖而進之,王以爲令尹。治楚三年,而莊王以霸。
楚史書曰:「莊王之霸,樊姬之力也。」
詩曰:「大夫夙退,無使君勞。」其君者,謂女君也。又曰:「溫恭朝夕,執事有恪。」此之謂也。
頌曰:樊姬謙讓,靡有嫉妒,薦進美人,與己同處,非刺虞丘,蔽賢之路,楚莊用焉,功業遂伯。
지금 우구자는 초나라의 재상으로 10여년간 재직하면서 천거한 자는 자제(子弟)가 아니면 집안의 형제들뿐이며 현자(賢者)를 추천하고 어리석은 자는 물리쳤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이것은 군왕을 가로막아 현자를 등용하는 길을 차단한 것입니다. 현자가 있음을 알고도 천거하지 않음은 불충이며 현자를 알아보지 못함은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웃는 것이 어찌 옳지 않습니까!"
왕이 기뻐하고 다음 날 왕은 우구자에게 번희의 말을 알리니 우구자는 자리를 피하며 응대할 바를 몰랐다. 이리하여 우구자는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사람을 시켜 손숙오(孫叔敖)를 맞아오게 하여 천거하니 왕이 그를 영윤으로 삼았다. 손숙오가 영윤이 되어 초나라를 다스린지 3년이 지나자 장왕이 천하의 패자가 되었다.
초나라 사서(史書)에서는, "장왕이 패자가 된 것은 번희의 힘이었다."고 했다.
시에, " 대부들 일찍 퇴궐하여 군주를 수고롭게 하지 않네.(國風/衛風/碩人)"라 했는데 군(君)은 여인이 남편을 말하는 것이다. 또, "조석으로 온화하고 공손하며, 일을 함에 정성스럽도다.(商頌/那)"라 함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송에, "번희는 겸손하고 양보심이 있어 질투하지 않고 미인을 천거하여 함께 지냈으며 우구자를 비난하지 않고 현자의 등용길을 막는다 하므로써 초장왕이 그 말을 받아들이게 하여 마침내 패자의 공업을 이루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周南之妻
周南之妻者,周南大夫之妻也。大夫受命,平治水土。過時不來,妻恐其懈於王事,蓋與其鄰人陳素所與大夫言:「國家多難,惟勉强之,無有譴怒,遺父母憂。昔舜耕於歷山,漁於雷澤,陶於河濱。非舜之事,而舜爲之者,爲養父母也。家貧親老,不擇官而仕。親操井臼,不擇妻而娶。故父母在,當與時小同,無虧大義,
不罹患害而已。
주남(周南)의 아내는 주남대부의 아내이다. 대부가 명을 받아 치수공사를 맡게 되었다. 때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그가 나랏일을 게을리 할까 두려워 이웃 사람에게 평소 대부와 함께 나누던 말을 하였다.
"나라에 어려움이 많을 때에는 오로지 힘써 이겨내고 꾸짖거나 분노하여 부모에게 근심을 끼쳐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 순(舜)임금은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짓고 뇌택(雷澤)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만들었습니다.
그 일은 순임금의 일이 아니었지만 순임금이 그러한 일을 한 것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었으면 일을 가리지 않고 합니다. 부모가 물을 긷거나 절구질을 하면 아내를 가리지 않고 결혼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때때로 부모님과 잠시라도 함께 지내는 것이 마땅하며 대의를 손상하지 않고 근심과 재해를 겪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夫鳳凰不離於蔚羅,麒麟不入於陷穽,蛟龍不及於枯澤。鳥獸之智,猶知避害,而況於人乎!生於亂世,不得道理,而迫於暴虐,不得行義,然而仕者,爲父母在故也。乃作詩曰:『魴魚赬尾,王室如毁,雖則如毁,父母孔邇。』蓋不得已也。」
君子以是知周南之妻而能匡夫也。
頌曰:周大夫妻,夫出治土,維戒無怠,勉爲父母,凡事遠周,之在,作詩魴魚,以敕君子。
무릇 봉황새는 그물에 걸리는 일이 없고 기린(麒麟)은 함정(陷穽)에 빠지지 않으며 교룡(蛟龍)은 메마른 연못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새나 짐승도 지혜가 있어 재앙을 피할 줄 알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어지러운 시대에 살면서 도리를 깨우치지 못하고 사나움에 위축되어 의를 행할 수 없다 해도 벼슬살이를 하는 것은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시를 지어, 『방어의 붉은 꼬리. 왕실이 불타 듯 붉네. 불타 듯 붉으니 부모는 매우 가까이에 계시네.(國風/周南/汝墳)』라 한 것은 모두 부득이한 것입니다."
군자는 이로써 주남의 아내를 알았으며 그녀가 능히 그 지아비를 바로 잡을 수 있음을 알았다.
송에, "주나라 대부의 아내는 지아비가 토목공사로 집을 떠나자 게으르지 않고 부모를 위해 힘쓰도록 경계하였으며 임무때문에 주나라 도읍을 멀리 떠나 있는 것은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니 『방어』라는 시를 지어 남편을 경계하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