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歷史와文學/列女傳(劉向)

節義傳/楚昭越姬, 蓋將之妻, 魯義姑姊

柳川 2020. 7. 17. 14:20

楚昭越姬
  

楚昭越姬者,越王句踐之女,楚昭王之姬也。昭王讌遊,蔡姬在左,越姬參右。王親乘駟以馳逐,遂登附社之臺,以望雲夢之囿。觀士大夫逐者旣驩,乃顧謂二姬曰:「樂乎?」蔡姬對曰:「樂。」王曰:「吾願與子生若此,死又若此。」蔡姬曰:「昔弊邑寡君,固以其黎民之役,事君王之馬足。故以婢子之身爲苞苴玩好。今乃比於妃嬪,固願生俱樂,死同時。」王顧謂史書之,「蔡姬許從孤死矣。」

 

 

초(楚)나라 소왕(昭王)의 월희(越姬)는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의 딸로 초나라 소왕의 후궁이다.  초나라 소왕이 잔치를 벌이며 즐기고 있을 떼, 채희(蔡姬)는 좌측에, 월희는 우측에 참가해 있었다. 왕이 친히 말 네필이 끄는 수레를 몰며 달려 부사(附社)의 누대에 올라 운몽의 동산을 바라보았다. 뒤따르는 사대부들이 보고 기뻐하는 것을 보고 두 후궁을 돌아보며 "즐겁소?"하고 물으니, 채희가, "즐겁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왕이 말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대들과 이와 같이 살고, 죽을 때도 이와 같이 죽는 것이오."

채희가, "지난 날 저희 나라 임금께서 항상 국민들을 부리시는데 군왕을 섬김에 있어 말처럼 소임을 다하도록 하였읍니다. 그러므로써 저희같은 아녀자의 신분은 포장된 노리개감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지금은 비빈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바라는 바는 함께 즐기며 살고 함께 죽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이 사관(史官)을 돌아보고 채희의 말을 적어두라 했다. "채희는 나를 따라 죽는다고 약속하였다."

 

 

乃復謂越姬,越姬對曰:「樂則樂矣,然而不可久也。」王曰:「吾願與子生若此,死若此,其不可得乎?」越姬對曰:「昔吾先君莊王淫樂三年,不聽政事,終而能改,卒霸天下。妾以君王爲能法吾先君,將改斯樂而勤於政也。今則不然,而要婢子以死。其可得乎!且君王以束帛乘馬取婢子於弊邑,寡君受之太廟也,不約死。妾聞之諸姑,婦人以死彰君之善,益君之寵,不聞其以苟從其闇死爲榮,妾不敢聞命。」 於是王寤,敬越姬之言,而猶親嬖蔡姬也。

 

 

그리고 다시 월희에게 물으니 월희가 대답하였다.

"즐거운 것은 즐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왕이, "내가 바라건대 그대와 이와 같이 즐겁게 살다가 이와 같이 함께 죽는 것이오. 그렇게 할 수 있겠소?"하고 물었다.

그러자 월희가 대답했다.

"지난 날, 저희 돌아가신 군주이신 장왕(莊王)께서는 음탕한 놀이로 3년을 즐기시다가 이를 끝내시고 마음을 고쳐 마침내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셨습니다. 저는 대왕께서 능히 선왕의 법도에 따라 즐기려는 마음을 고쳐 정사에 힘쓰실 것을 바랬습니다. 지금 그렇지 않으시고 저에게 함께 죽을 것을 바라시니, 그게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또 왕께서는 비단을 예물로 마차에 실어 저희 나라에서 저를 취하셨고, 저희 군주께서는 태묘에서 예물을 받으셨으니, 죽음을 약속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어른 들에게 듣기로  여인은 죽어서 군왕을 빛내는 일은 좋은 일이라 군왕의 총애를 더욱 받을만 하지만, 구차하게 애매한 것을 좇아 죽어서 빛을 본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감히 명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깨닳은 바 있어 월희의 말을 경청하였으나, 오히려 채희를 가까이 하고 총애하였다.

 

 

 

居二十五年,王救陳,二姬從。王病在軍中,有赤雲夾日,如飛烏。王問周史,史曰:「是害王身,然可以移於將相。」將相聞之,將請以身禱於神。王曰:「將相之於孤猶股肱也,今移禍焉,庸爲去是身乎?」不聽。越姬曰:「大哉君王之德!以是,妾願從王矣。昔日之遊淫樂也,是以不敢許。及君王復於禮,國人皆將爲君王死,而況於妾乎!請願先驅狐狸於地下。」王曰:「昔之遊樂,吾戱耳。若將必死,是彰孤之不德也。」越姬曰:「昔日妾雖口不言,心旣許之矣。妾聞信者不負其心,義者不虛設其事。妾死王之義,不死王之好也。」遂自殺。

 

股肱 : 股肱之臣, 임금이 가장 믿고 중히 여기는 신하

庸 : 어찌.

 

 

25년 후, 왕이 진(陳)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떠나자 두 후궁이 따라갔다. 왕이 진중(軍中)에서 병이 들었는데 붉은 구름이 해를 가리고 까마귀가 날아왔다. 왕이 사관(史官)을 불러 물으니, 사관이 말하였다.

"이는 왕의 신변에 해가 미칠 징조입니다. 그러나 장수나 대신들에게 그 해로움을 옮길 수는 있습니다."

장수들과 대신들이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몸을 바쳐 신에게 기도하겠다고 청하였다.

왕은, "장수와 대신은 나에게 고굉지신이다. 지금 나를 대신해서 화(禍)를  받겠다는데 어찌 내 수족(股肱)을 떼어버린단 말인가! "라 하며 듣지 않았다.

월희가 이를 보고 말했다. "크도다! 대왕의덕이여! 이러한 모습이 제가 왕을 모시면서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날, 음란한 음악으로 즐기셨는데 그리하여 제가 감히 함께 죽기를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왕께서 예로 함께 하시니 나라 사람들이 모두 군왕을 위해 죽으려 하고 있으니 하물며 저에게 있어서도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제가 먼저 죽어 땅속으로 재앙을 몰고 가기를 원합니다."

왕이, "지난 날 놀 때에 내가 희롱으로 한 말이오. 반드시 죽으려 한다면 이는 내 부덕함을 드러내는 것이오."라 답하자,

월희는, "지난 날 제가 입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약속하였습니다. 제가 듣기로 신의가 있는 자는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으며, 의로운 자는 헛되이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저는 죽어 왕께 의리를 지키려는 것이며 왕께서 바라셔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하고는 자살했다.

 

 

 

王病甚,讓位於三弟,三弟不聽。王薨於軍中,蔡姬竟不能死。王弟子閭與子西、子期謀曰:「母信者,其子必仁。」乃伏師閉壁,迎越姬之子熊章,立是爲惠王。然後罷兵歸葬昭王。

君子謂越姬信能死義。

詩曰:「德音莫違,及爾同死。」越姬之謂也。
頌曰:楚昭遊樂,要姬從死,蔡姬許王,越姬執禮,終獨死節,群臣嘉美,維斯兩姬,其德不比。
  

 

왕의 병이 심해지자 세 동생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였으나 세 동생를이 모두 듣지 않았다. 왕이 진중에서 죽었는데 채희는 결국 죽지 못했다. 왕의 동생들인, 자여(子閭), 자서(子西), 자기(子期)들이 상의한 바,

"어머니가 신의가 있으니 그 아들은 반드시 어질 것이다."하고 뜻을 모으고는,  군사들에게 알리고 진을 폐쇄하고는 월희의 아들 웅장(熊章)을 맞아 왕으로 옹립하니 바로 혜왕(惠王)이다. 그 후, 군대를 파하여 귀국하여 소왕의 장례를 치렀다.

군자는, "월희는 신의가 있어 능히 죽음으로 의를 지켰다."고 하였다.

시에, "언약을 어기지만 않았다면, 함께 해로하였을 것이로다.(國風/邶風/谷風)"라 함은 월희를 말하는 것이다.

송에, "초나라 소왕이 놀면서 후궁들에게 내가 죽으면 따라서 죽겠는냐고 물은 바, 채희는 왕에게 그렇다고 약속하였으나 월희는 예(禮)를 고집하며 거절하였으나 끝에 가서는 홀로 죽어 법도를 지키니 왕과 신하가 모두 가상하고 아름다이 여겼으며,  두 후궁이 그 덕을 비교할 바 없다."고 했다.

 

 

 

蓋將之妻


蓋之偏將邱子之妻也。戎伐蓋,殺其君,令於蓋群臣曰:「敢有自殺者,妻子盡誅。」邱子自殺,人救之,不得死。旣歸,其妻謂之曰:「吾聞將節勇而不果生,故士民盡力而不畏死。是以戰勝攻取,故能存國安君。夫戰而忘勇,非孝也, 君亡不死,非忠也。今軍敗君死,子獨何生?忠孝忘於身,何忍以歸?」邱子曰:「蓋小戎大,吾力畢能盡,君不幸而死,吾固自殺也,以救故,不得死。」

 

蓋 : 땅이름 갑. 

 

 

갑(蓋)땅의 편장 구자(邱子)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이다. 융(戎)족이  갑(蓋)고을을 공격하여 그 군주를 살해하고, 갑 땅의 신하들에게 알렸다. "감히 자살하는 자가 있다면 그 아내와 자식을 모두 죽이겠다."

구자가 자살을 시도 하였는데 사람들이 구하여 죽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 왔는데 그 아내가 말하였다.

"제가 듣기로, 장수의 법도는 용감히 싸워 진실로 살아남기를 도모하지 않는 것이며, 그러므로 사민(士民 :벼슬아치와 백성들)이 힘을 다하여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취하게 되므로 능히 나라를 존속시키며 군주를 편안하게 합니다.  무릇 싸움에서 용기를 잃으면 효도가 아니며, 군주가 사망해도 죽지 않으면 충성이 아닙니다. 지금 군대가 패하여 군주가 사망했음에도 그대만 어찌 살았습니까? 충효(忠孝)가 몸에서 떠났는데 어떻게 차마 돌아올 수 있었습니까?"

구자는, "갑 땅은 작고 융 땅은 커서, 나는 힘을 다해서 싸웠으나 군주가 불행히도 사망하였고, 나도 진실로 죽으려 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구해 죽을 수도 없었소,"라 변명하였다.

 

 

 

其妻曰:「曩日有救,今又何也?」邱子曰:「吾非愛身也。戎令曰『自殺者誅及妻子』是以不死,死又何益於君?」其妻曰:「吾聞之:『主憂臣辱,主辱臣死。』 今君死而子不死,可謂義乎!多殺士民,不能存國而自活,可謂仁乎!憂妻子而忘仁義,背故君而事强暴,可謂忠乎!人無忠臣之道仁義之行,可謂賢乎!周書曰:『先君而後臣,先父母而後兄弟,先兄弟而後交友,先交友而後妻子。』 妻子私愛也。事君公義也。今子以妻子之故,失人臣之節,無事君之禮,棄忠臣之公道,營妻子之私愛,偸生苟活,妾等恥之,況於子乎!吾不能與子蒙恥而生焉。」 遂自殺。

 

 

아내가 다시 말하였다. "지난 날에는 다른 사람의 구원이 있어 살았지만 이제 또 어찌하겠습니까?"

구자는, "내가 내 몸을 아끼는 것이 아니오, 융족이 영을 내려 '자살자는 그 처자를 주륙하리라.' 하여 죽지 못한 것이오. 죽는다 해서 이미 죽은 군주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소?"하고 물었다.

아내는,

"제가 듣건대, '주군이 근심하면 신하가 욕을 당한 것으로 여기며, 주군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음으로 갚는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군주가 죽음을 당했는데도 그대는 죽지 않았는데 의롭다 하겠습니까!  사민(士民)이 많이 죽고 나라가 존속될 수 없는데도 스스로 살 길을 찾았으니 어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처자를 근심하여 인의를 저버렸고, 옛 군주를 저버리고 흉악한 적을 섬기는데도 충(忠)이라 하겠읍니까! 사람이 되어 충신(忠臣)의 법도가 없고 인의(仁義)의 행실이 없음에도 현명하다 하겠습니까!  주서(周書)에 이르기를, '군주가 먼저이고 신하는 뒤이며, 부모가 먼저이고, 형제가 먼저이며 벗들이 뒤이고, 벗들이 먼저이며 처자가 뒤이다.'라 하였습니다.  처자(妻子)는 사사로운 애정이며 군주를 섬기는 것은 공의(公義)입니다.  지금 그대는 처자때문에 사람으로서 신하의 법도를 잃고, 임금을 섬기는 예가 없고,  충신의 공도(公道)를 저버린채 처자에 대한 사사로운 애정을 영위하고, 구차한 삶을 훔치니 저희는 그것을 치욕으로 여기는데 하물며 그대와 어찌 함께 살겠습니까! 나는 그대와 더불어 치욕을 무릅쓰고 함께 살 수 없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자살해 버렸다.

 

 

 

戎君賢之,祠以太牢,而以將禮葬之,賜其弟金百鎰,以爲卿,而使別治蓋。

君子謂蓋將之妻潔而好義。

詩曰:「淑人君子,其德不回。」此之謂也。
頌曰:蓋將之妻,據節銳精,戎旣滅蓋,邱子獨生,妻恥不死,陳設五榮,爲夫先死,卒遺顯名。
  

蓋 : 땅이름 갑. 

太牢 : 고대에 제사를 지낼 때 최고 등급의 제수 명칭이다. 뇌(牢)란 제물로 바치는 가축을 담는 그릇으로, 큰 것을 태뢰(太牢)라 한다. 태뢰

        에는 소 · 양 · 돼지 세 가지 동물을 담기 때문에 이 세 동물로 제사 지내는 것을 태뢰라 부른다.

 

 

융(戎)족의 군주가 그 사실을 듣고 그들을 현자(賢者)라 하여 태뢰로써 제사를 지내고 장수의 예로 장례를 치르고, 그 동생에게 금 백일(鎰)을 내리고 경을 삼아 그로 하여금 따로 갑 고을을 다스리게 하였다.

군자는, "갑 땅의 장수의 아내는 고결(高潔)하고 의를 좋아하였다."고 하였다.

시에, "아름다운 군자여, 그 덕행이 간사하지 않도다.(小雅/北山之什/鼓鐘)"라 함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송에, "갑 땅의 장수의 아내는 법도를 지키는데 있어 예민하고 정성스러웠는데 융족이 갑을 멸하고 군주를 살해했는데도 구자가 홀로 살아 돌아오니 그 아내는 죽지 않고 돌아온 것을 치욕으로 여겨 다섯가지 명예로운 일을 개진하고는 남편보다 먼저 죽어 마침내 그 이름을 후세에 빛냈다.

 

 

 

魯義姑姊
  

魯義姑姊者,魯野之婦人也。齊攻魯至郊,望見一婦人,抱一兒,攜一兒而行,軍且及之,棄其所抱,抱其所攜而走於山。兒隨而啼,婦人遂行不顧。齊將問兒曰:「走者爾母耶?」曰:「是也。」「母所抱者誰也?」曰:「不知也。」齊將乃追之,軍士引弓將射之,曰:「止,不止,吾將射爾。」婦人乃還。齊將問所抱者誰也,所棄者誰也。對曰:「所抱者妾兄之子也,所棄者妾之子也。見軍之至,力不能兩護,故棄妾之子。」

 

 

노(魯)나라의 의로운 고모는 노나라 도성 밖의 부인이다. 제(齊)나라가 노나라를 침공하여 도성 밖 교외에 이르렀을 때 부인 한 사람이 한 아이를 안고, 한 아이는 손을 잡고 가다가,  제나라 군대가 밀려 오자 안고 있던 아이를 버리고, 손을 잡고 가던 아이를 안고 산으로 도주하였다. 아이가 따라가면서 울부짖는데도 부인은 계속 달려가며 쳐다보지도 않았다.

제나라 장수가 아이에게 물었다.

"도망가는 여인이 네 어머니냐?"

아이가,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여 다시 물었다.

"너의 어머니가 안고 가는 아이는 누구냐?"하니,

"모릅니다."하고 아이가 대답한다.

제나라 장수가 그 여인을 쫒아가 군사가 활을 쏠듯이 겨누도록 한 다음에 그 여인에게 말했다.

"서라, 서지 않으면 활을 쏘겠다." 결국 부인이 돌아왔다.

제나라 장수는 안고 있는 아이가 누구이고, 버린 아이는 누구인가 물었다.

그 여인은, "제가 안고 있는 아이는 오빠의 아들이며, 제가 버린 아이는 제 아들입니다. 군사들이 밀려와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갈수 없어 제 아이를 버린 것입니다."라 답한다.

 

 

 

齊將曰:「子之於母,其親愛也,痛甚於心,今釋之,而反抱兄之子,何也?」婦人曰:「己之子,私愛也。兄之子,公義也。夫背公義而嚮私愛,亡兄子而存妾子, 幸而得幸,則魯君不吾畜,大夫不吾養,庶民國人不吾與也。夫如是,則脅肩無所容,而累足無所履也。子雖痛乎,獨謂義何?故忍棄子而行義,不能無義而視魯國。」

 

獨 : 장차, 어찌, 어찌하여, 어느, 그, 이에, 곧, 필시, 틀림없이. 

 

 

제나라 장수가 물었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자식은 몸소 사랑하는 바라 마음이 매우 아플터인데, 이제 아들을 놓아두고 오히려 오빠의 아들을 안고 가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여인은, "제 자식은 사사로이 사랑하는 아이이며, 오빠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공적인 도리입니다. 무릇 공적인 도리를 저버리고 사사로운 사랑을 지향하여  오빠의 자식을 버려 제 자식을 구한다면 다행이지만, 그 행운을 얻는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노나라 군주가 우리를 보살피지 않으며 대부들이 우리를 돌보지 않을 것이고 모든 백성들도 우리와 함께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몸을 움츠려도 소용이 없고 발을 멈추어도 디딜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자식을 버려 마음이 아픈데 어찌 의가 무엇이냐고 묻습니까?  그러므로 자식을 버리는 것을 감수하고 의를 행한 것이며,  의를 행하지 않고는 노나라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於是齊將按兵而止,使人言於齊君曰:「魯未可伐也。乃至於境,山澤之婦人耳,猶知持節行義,不以私害公,而況於朝臣士大夫乎!請還。」齊君許之。魯君聞之,賜婦人束帛百端,號曰義姑姊。公正誠信,果於行義。夫義,其大哉!雖在匹婦,國猶賴之,況以禮義治國乎!詩云:「有覺德行,四國順之。」此之謂也。
頌曰:齊君攻魯,義姑有節,見軍走山,棄子抱姪,齊將問之,賢其推理,一婦爲義,齊兵遂止。

 

 

이리하여 제나라 장수는 병사들을 단속하여 행군을 멈추고, 사람을 시켜 제나라 군주에게 고하였다.

"노나라는 아직 정벌할 수 없습니다.  이 곳에 이르니 들에 사는 부인들마저도 법도를 지키고 의를 행할 줄 알고 있으며, 사사로움으로 공적인 일을 해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니 하물며 조정 대신이나 사대부들이 어떻겠습니까! 귀국하라는 명을 내리시기를 청합니다." 이에 제나라 군주가 귀국하기를 허락하였다. 

노나라 군주가 그 사실을 듣고 부인에게 비단 100단을 내리며 그 부인을 의로운 고모라 부르게 하였다. 

군자는, "공정하고 진실로 신의를 지키며 의를 행함에 과감하였다. 무릇 의(義)라 함은 위대하도다! 비록 하찮은 여인이지만 나라가 그 여인에 힘입었으니 하물며 예의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어찌 되겠는가!"라 하였다.

시에, "덕을 깨닳아 행하면 천하가 따르니라.(大雅/蕩之什/抑)"라 함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송에, "제나라 군주가 노나라를 침공하였는데 의로운 고모가 법도가 있어 제나라 군대가 밀려오는 것을 보고 산으로 도주하는데 자식을 버리고 조카를 안고 가니 제나라 장수가 그 까닭을 묻자 현명하게 그 이치를 설파하고 한 부인이 의를 행하므로써 제나라 군대가 멈추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