孼嬖傳/衛宣公姜, 魯桓文姜, 魯莊哀姜
衛宣公姜
宣姜者齊侯之女, 衛宣公之夫人也。初宣公夫人夷姜生伋子, 以爲太子。又娶於齊, 曰宣姜, 生壽及朔。夷姜旣死, 宣姜欲立壽, 乃與壽弟朔謀構伋子。公使伋子之齊, 宣姜乃陰使力士待之界上而殺之. 曰, 有四馬白旄至者,
必要殺之。壽聞之以告太子曰, 「太子其避之。」 伋子曰, 「不可. 夫棄父之命, 則惡用子也!」 壽度太子必行, 乃與太子飮, 奪之旄而行, 盜殺之.
선강(宣姜)은 제(齊)나라 제후의 딸로 위(衛)나라 선공(宣公)의 부인이다. 애초에 선공의 부인은 이강(夷姜)으로 급자(伋子)을 낳아, 그를 태자로 삼았었다. 그 위에 다시 제나라에서 아내를 취하니 선강(宣姜)이라 불리웠는데 수(壽)와 삭(朔)을 낳았다. 이강이 죽자 선강은 자신이 낳은 수를 태자로 세우려고 수의 동생 삭과 모의하여 급자를 도모하여 죽이려 하였다.
선공이 그들의 참소를 듣고 급자를 사신으로 제나라에 보내게 하자, 선강이 은밀히 힘이 좋은 장사들을 시켜 국경부근에서 잠복하여 기다렸다가 급자를 죽이라 하고는,
"말 네필이 끄는 수레에 흰 기(白旄)를 가지고 가는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알렸다.
수가 그 사실을 알고 태자인 형 급자에게 알렸다. "태자께서는 그들을 피하십시오."
급자는, "그럴 수 없다. 부왕의 명을 저버린다면 어찌 자식이라 하겠는가!"하며 거절하였다.
수는 태자가 반드시 떠날 것이라 헤아리고는, 태자와 함께 술을 마시며 태자가 크게 취하게 하고는 흰 기를 빼앗아 출발하였는데 도적들이 그를 급자로 잘 못 알고 죽였다.
伋子醒, 求旄不得。遽往追之, 壽已死矣。伋子痛壽爲己死, 乃謂盜曰, 「所欲殺者乃我也。此何罪, 請殺我。」 盜又殺之, 二子旣死, 朔遂立爲太子。宣公薨朔立, 是爲惠公。竟終無後, 亂及五世, 至戴公而後寧。
詩云, 「乃如之人, 德音無良。」 此之謂也。
頌曰, 衛之宣姜 謀危太子, 欲立子壽, 陰設力士, 壽乃俱死, 衛果危殆, 五世不寧, 亂由姜起。
급자가 술이 깨어 흰 기를 찾았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급자는 필시 수가 자신이 취한 틈을 타서 흰 기를 빼앗아 먼저 출발하였으리라 생각하고는 급히 수를 뒤쫒아 갔으나 수는 이미 죽은 뒤였다. 급자는 수가 자신을 위하여 죽었음을 매우 애통해 하고는 도적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죽이려 한 사람은 나다. 이 사람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나도 죽여라."
도적들이 다시 급자를 죽이니 세 아들 중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여 마침내 삭이 테자가 되었다.
선공이 죽자 삭이 그 위를 이어 받았는데 이가 바로 혜공(惠公)이다. 혜공은 끝내 후사를 보지 못하였고 혼란이 다섯 세대에 걸쳐 미쳤으며 대공(戴公)에 이른 후에야 나라가 편안해졌다.
시에, "이 사람은 말하는 것도 어질지 않네.(國風/邶風/日月)"라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송에, "위나라의 선강은 태자를 위험에 빠지도록 획책하여 자신이 낳은 수를 태자로 세우려고 은밀하게 장사들을 배치하여 태자를 죽이려 하였으나 수와 태자가 한꺼번에 죽어 위나라가 마침내 위태로워졌고 5대에 걸쳐 평안치 못했으니 이는 선강이 혼란을 야기하였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魯桓文姜
文姜者齊侯之女, 魯桓公之夫人也。內亂其兄齊襄公。桓公將伐鄭納厲公, 旣行與夫人俱將如齊也。申繻曰, 「不可。女有家男有室, 無相瀆也, 謂之有禮, 易此必敗。且禮婦人無大故則不歸。」 桓公不聽, 遂與如齊。文姜與襄公通, 桓公怒禁之不止。文姜以告襄公。襄公享桓公酒醉之, 使公子彭生抱而乘之, 因拉其脅而殺之, 遂死於車。魯人求彭生以除恥, 齊人殺彭生。
詩曰, 「亂匪降自天, 生自婦人。」 此之謂也。
頌曰, 文姜淫亂, 配魯桓公, 與俱歸齊, 齊襄淫通, 俾厥彭生, 摧幹拉胸, 維女爲亂, 卒成禍凶。
문강(文姜)은 제나라 제후의 딸이며 노(魯)나라 환공(桓公)의 부인이다. 시집가기 전 국내에 있을 때 오빠인 제나라 양공(襄公 : 당시에는 태자. 이름은 諸兒)과 음란한 관계를 맺었었다. 환공이 정(鄭)나라를 정벌하고 여공(厲公)을 굴복시킨 후, 부인과 함께 출발하여 제(齊)나라로 가려고 하였다.
그 때 신수(申繻)가 간하였다.
"안됩니다. 여자에게 남편이 있고 남자에게 아내가 있으면 서로 더럽혀서는 안되며, 이것을 예(禮)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어기면 반드시 낭패를 보게 됩니다. 또 예(禮)에 여인은 부모상을 당하지 않으면 친정에 가지 않는 법입니다."
환공은 듣지 않고 부인과 함께 제나라에 갔다. 문강이 양공과 정을 통하게 되자 이를 알게 된 환공이 노하여 양공에게 가는 것을 금하였다. 문강이 양공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양공은 환공에게 잔치를 베풀고 잔뜩 취하게 한 다음, 공자 팽생(彭生)을 시켜 환공을 안고 수레에 타게 한 다음 갈비뼈를 꺾어 죽이게 하여 마침내 환공이 수레안에서 죽었다.
노나라 사람들이 팽생을 찾아 치욕을 씻고자 했는데, 제나라 사람이 팽생을 죽였다.
시에, "난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지어미로부터 일어났노라.(大雅/蕩之什/瞻卬)"라고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송에, "문강이 음란하여 노나라 환공의 배필이 되었음에도 함께 제나라에 간 기회를 이용하여 제나라 양공과 정을 통하고 팽생을 시켜 환공의 몸을 껴안고 갈비뼈를 꺾어 죽였으니 이는 오로지 여인이 난을 일으켜 결국 재앙을 일으켰다."고 하였다.
魯莊哀姜
哀姜者齊侯之女, 魯莊公之夫人也。初哀姜未入時, 公數如齊, 與哀姜淫, 旣入與其弟叔姜俱。公使大夫宗婦用幣見, 大夫夏甫不忌曰, 「婦贄不過棗栗, 以致禮也. 贄不過玉帛禽鳥, 以章物也。今婦贄用幣, 是男女無別也。男女之別, 國之大節也。無乃不可乎!」 公不聽。又丹其父桓公廟宮之楹, 刻其桷, 以夸哀姜。
애강(哀姜)은 제(齊)나라 제후의 딸이며 노(魯)나라 장공(莊公)의 부인이다. 애초 애강이 노나라에 들어가기 전부터 장공이 자주 제나라에 가서 애강과 정을 통하였는데 노나라에 출가할 때 동생인 숙강과 함께 들어갔다. 장공이 대부 종부(宗婦)로 하여금 예물로 비단을 가지고 가서 맞아 오도록 하자 대부 하보불기(夏甫不忌)가 아뢰었다.
"여인에게 드리는 예물은 대추, 밤을 넘지 않아도 예에 적합하며, 남자에게 드리는 예물은 구슬과 비단, 새(禽鳥)를 넘지 않아도 신분을 드러냅니다. 지금 여인에 대한 예물로 비단을 보내는 것은 남녀의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남녀를 구별하는 것은 나라의 큰 법도입니다. 법도를 지키지 않는 것은 불가합니다!"
그러나 장공은 듣지 않았다. 그 위에 부친인 환공(桓公)을 모신 사당의 기둥을 붉게 칠하고 서까래에 조각하므로써 애강에게 과시했다.
哀姜驕淫, 通於二叔公子慶父公子牙, 哀姜欲立慶父。公薨子般立, 慶父與哀姜謀, 遂殺子般於黨氏, 立叔姜之子, 是爲閔公。閔公旣立, 慶父與哀姜淫益甚。又與慶父謀殺閔公而立慶父, 遂使卜齮襲弑閔公於武闈, 將自立。魯人謀之, 慶父恐奔莒, 哀姜奔邾。齊桓公立僖公, 聞哀姜與慶父通以危魯, 乃召哀姜, 酖而殺之, 魯遂殺慶父。
詩云, 「啜其泣矣, 何嗟及矣!」 此之謂也。」此之謂也。
頌曰, 哀姜好邪, 淫於魯莊, 延及二叔, 驕妒縱橫, 慶父是依, 國適以亡, 齊桓征伐, 酖殺哀姜。
애강은 교만하고 음란하여 두 시동생인 공자 경보(慶父)와 공자 아(牙)와 정을 통했다. 장공이 죽자 아들 반(般)이 그 뒤를 이었는데 경보는 애강과 모의하여 마침내 당씨(黨氏)집에서 상(喪)을 지키며 머물고 있던 반을 죽이고 숙강의 아들 개(開)를 옹립하였는데 이 사람이 민공(閔公)이다. 민공을 세우고 나자 경보와 애강의 음행은 더욱 심해졌다.
또 애강은 경보와 모의하여 민공을 죽이고 경보를 군주로 세우려 하여, 마침내 경보는 복의(卜齮)로 하여금 무위(武闈)에서 민공을 시해하도록 한 다음 스스로 보위에 오르려 하였다. 노나라 사람들이 경보를 죽이려 하자 경보는 두려워 거(莒)나라로 도망갔고 애강은 주(邾)나라로 도주했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희공(僖公 : 史記에는 釐公으로 씀)을 세웠는데 애강과 경보가 통간하여 노나라를 위태롭게 하였음을 알고 애강을 제나라로 불러 짐독(酖毒 : 독을 탄 술)을 먹여 죽였는데 노나라에서는 경보를 죽였다.
시에, "훌쩍이며 우는 것은 탄식해도 어쩔 수 없어서라네.(國風/王風/中穀有蓷)"라 한 것은 이를 말한 것이다.
송에, "애강이 사악한 짓을 즐겨 노나라 장공과 음행을 행하고 나아가 두 시동생과도 정을 통하였는데, 교만하고 투기가 심했으며 행실이 분방하여 경보는 애강에 의지해 군주가 되려 하다가 나라를 망쳤고 제환공이 이들을 정벌하여 애강을 독을 먹여 죽였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