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歷史와文學/列女傳(劉向)

孼嬖傳/趙靈吳女, 楚考李后, 趙悼倡后

柳川 2020. 8. 9. 00:56

趙靈吳女

 

趙靈吳女者, 號孟姚吳廣之女, 趙武靈王之后也。初武靈王娶韓王女爲夫人, 生子章立以爲后, 章爲太子。王嘗夢見處女, 鼓瑟而歌, 曰, 「美人熒熒兮! 顔若苕之榮! 命兮命兮! 逢天時而生, 曾莫我嬴嬴。」 異日王飮酒樂, 數言所夢, 想見其人。吳廣聞之, 乃因后而入其女孟姚, 甚有色焉, 王愛幸之不能離。數年生子何, 孟姚數微言后有淫意, 太子無慈孝之行。王乃廢后與太子, 而立孟姚爲惠后, 以何爲王, 是爲惠文王。武靈王自號主父, 封章於代, 號安陽君。 

 

 

 

조(趙)나라 영오녀(靈吳女)는 호가 맹요(孟姚)인데 오광(吳廣)의 딸이며 조나라 무령왕(武靈王)의 왕후(王后)이다. 애초에 무령왕은 한왕(韓王)의 딸을 취하여 부인으로 삼았는데 아들 장(章)을 낳자 후(后)로 삼았고 장을 태자로 세웠다.

무령왕이 일찌기 꿈속에서 한 처녀를 만났는데 그 처녀는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美人熒熒兮!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인이여!

顔若苕之榮!             얼굴은 능소화 꽃 같구나!

命兮命兮!                운명이여, 운명이여!

逢天時而生,             하늘이 기회를 주어 태어났는데,

曾莫我嬴嬴。          영영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네.

 

어느 날 왕은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자주 꿈이야기를 하며 그 사람을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오광이 그 말을 듣고  그의 딸 맹요를 후(后)로 입궁시켰는데 그녀의 용모가 매우 아름다워 왕이 그녀를 총애하고 떨어질 줄 몰랐다. 몇년이 지나자 아들 하(何)를 낳았는데 맹요는 자주 왕후가 음란하며 태자는 자비심이 없고 효성스러운 행실이 없다고 속삭였다. 왕은 이에 왕후와 태자를 폐하고 맹요를 세워 혜후(惠后)로 삼고 하(何)를 왕으로 삼았는데 이 사람이 혜문왕(惠文王)이다.

무령왕은 스스로 주부(主父)라 부르게 하고, 장(章)을 대(代)에 봉하여 안양군(安陽君)이라 하였다.

 

 

 

四年朝群臣, 安陽君來朝。主父從旁觀窺, 群臣宗室見章儽然也. 反臣於弟, 心憐之。是時惠后死久恩衰, 乃欲分趙而王章於代, 計未決而輟。主父游沙丘宮, 章以其徒作亂。李兌乃起四邑之兵擊章, 章走主父, 主父閉之. 兌因圍主父宮, 旣殺章乃相與謀曰, 「以章圍主父, 卽解兵吾屬夷矣。」 乃遂圍主父。主父欲出不得, 又不得食, 乃探雀鷇而食之, 三月餘, 遂餓死沙丘宮。

詩曰, 「流言以對, 寇攘式內。」 言不善之從內出也。 

頌曰, 吳女苕顔, 神寤趙靈, 旣見嬖近, 惑心乃生, 廢后興戎, 子何是成, 主閉沙丘, 國以亂傾.

 

儽 : 게으를 래(내)/고달플 루(누). 게으르다. 드리우다. 옷을 벗다. 깨뜨리다. 속이다. 드리워진 모양. 높은 곳에 많이 선 모양. 고달프다. 앓

      아 지치다. 피로하다. 나른하다.

鷇 : 새새끼 구. 새의 새끼. 기르다. 깨다. 알에서 갓깨어난 새끼.

 

 

☞ 參考

主父及王游沙丘, 異宮, 公子章即以其徒與田不禮作亂, 詐以主父令召王. 肥義先入, 殺之. 高信即與王戦. 公子成與李兌自國至, 乃起四邑之兵入距難, 殺公子章及田不禮, 滅其黨賊而定王室. 公子章之敗, 往走主父, 主主開之, 成、兌因圍主父宮. 公子章死, 公子成、李兌謀曰:「以章故圍主父, 即解兵, 吾屬夷矣.」乃遂圍主父. 令宮中人「後出者夷」, 宮中人悉出. 主父欲出不得, 又不得食, 探爵鷇而食之, 三月余而餓死沙丘宮. 主父定死, 乃發喪赴諸侯.  <史記 趙世家(惠文王)>

 

 

4년이 지나 신하들이 조회를 하는데 안양군도 조회에 참석했다. 주부가 옆에서 분위기를 엿보니 군신들과 종실 사람들이 장(章)을 괴로운 듯 보고 있고, 장은 신하로서 동생에 거역하는 모습이라 마음속으로 불쌍하게 여겼다. 이때는 혜후가 죽은지 오래되어 인정도 쇠해져 주부는 조나라를 쪼개 장(章)을 대(代) 땅의 왕으로 삼으려 했으나 결정을 못했다.

주부가 사구궁(沙丘宮)에 놀러 가 있는데 장이 그 무리들과 난을 일으켰다. 이에 이태(李兌)가 네 읍의 군사를 소집하여 장을 공격하였는데 장이 패하여 주부에게 달려가자 주부는 장을 받아들이고는 문을 걸어 잠궜다. 

이태가 주부가 머물고 있는 궁을 포위하였는데 장이 죽자 서로 상의했다.

"장때문에 주부를 포위했었지만 병사들을 해산하면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하고는 계속 주부를 포위했다.

주부는 나가려 했지만 나갈 수 없었고 먹을 것도 구할 수 없어 참새새끼를 찾아 먹다가 3개월여를 지내다가 마침내 사구궁에서 굶어 죽었다.

 

시에, "근거없는 말로 대하니 도적이 안에서 어지럽혔도다.(大雅/蕩之什/蕩)"라고 했는데 좋지 않은 것은 안에서 나가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송에, "오녀는 능소화같은 아름다운 얼굴로 그 정령이 조나라 영공의 꿈에 보이더니 현실로 나타나 가까이에서 총애를 받으며 마음을 현혹시켜 황후를 폐하고 전쟁을 일으키게 하였으며 아들이 군주가 되게 하였지만 주부가 사구궁에 갖혀 굶어 죽으니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기울어졌다."고 하였다.  

 

 

 

 

 

楚考李后

 

楚考李后者, 趙人李園之女弟, 楚考烈王之后也。初考烈王無子, 春申君患之。李園爲春申君舍人, 乃取其女弟與春申君。知有身, 園女弟承間謂春申君曰, 「楚王之貴幸君, 雖兄弟不如, 今君相楚三十餘年。而王無子, 卽百歲後, 將立兄弟, 卽楚更立君後, 彼亦各貴其所親, 又安得長有寵乎? 非徒然也。君用事久多失禮於王兄弟。王兄弟誠立, 禍且及身, 何以保相印江東之封乎? 今妾知有身矣. 而人莫知。妾之幸君未久, 誠以君之重而進妾於楚王, 楚王必妾。妾賴天有子男, 則是君之子爲王也。楚國盡可得, 孰與身臨不測之罪乎?」 

 

誠 : 만약 ~ 다면.

孰與, 孰若 : ~ 와 ~ 은 어느 편이 좋은가? 아래에 놓인 내용에 중점을 두고, 그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음.

 

 

초(楚)나라 고이후(考李后)는 조(趙)나라 사람인 이원(李園)의 여동생인데 초나라 고열왕(考烈王)의 왕후이다. 애초에 고열왕이 자식이 없어 춘신군(春申君)이 근심하였다. 이원이 춘신군의 사인(舍人 : 식객)이 되었는데 그 여동생을 춘신군에게 바쳤다. 이원은 그 여동생이 임신했음을 알고 그 누이와 공모했다. 이원의 여동생은 춘신군을 받드는 중 틈을 타서 춘신군에게 말하였다.

"초왕께서 군을 귀하게 여기시는데 형제라 할지라도 그와 같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군께서 초나라의 재상으로 30여년동안 계셨습니다. 그런데 왕께 자식이 없어 왕이 돌아가시면 그 형제가 옹립될 것인데 초나라의 군왕이 바뀐 후에는 그 군왕 또한 각 그 친한 사람을 귀하게 등용할 것이니 군께서 어찌 오랫동안 총애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군께서 오랫동안 일을 해 오시면서 왕의 형제분들께 실례를 범한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왕의 형제분이 정말로 옹립된다면 화가 군의 몸에 미칠 것인데 어찌 재상의 인수를 가지고 강동의 봉지를 보전하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제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저 뿐이며 아무도 알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군의 총애를 받은지 오래 되지 않았지만 

군의 지위로 저를 초왕께 나아가게 하신다면 초왕께서는 반드시 저를 총애하실 것입니다. 제가 하늘의 도움으로 아들을 낳게 된다면 군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군께서는 초나라를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뜻하지 않은 화를 당하는 것과 어느 쪽이 더 낫습니까?

 

 

 

春申君大然之, 乃出園女弟謹舍之, 言之考烈王。考烈王召而幸之, 遂生子悼, 立爲太子. 園女弟爲后。而李園貴用事, 養士欲殺春申君以滅口。及考烈王死, 園乃殺春申君, 滅其家悼立, 是爲幽王. 后有考烈王遺腹子猶立, 是爲哀王。考烈王弟公子負芻之徒聞知幽王非考烈王子, 疑哀王, 乃襲殺哀王及太后, 盡滅李園之家。而立負芻爲王, 五年而秦滅之。

詩云, 「盜言孔甘, 亂是用餤。」 此之謂也。 

頌曰, 李園女弟, 發跡春申, 考烈無子, 果得納身, 知重而入, 遂得爲嗣, 旣立畔本, 宗族滅弑。

 

☞ 參考

    이원의 여동생이 낳은 아들을 여기에서는 도(悼)라 기록되어 있으나 사기(史記) 초세가(楚世家 幽王 · 哀王)에는 한(悍)으로 되어 있음.

    考烈王卒, 子幽王悍立. 李園殺春申君.

    본 내용은 사기(史記) 춘신군열전(春臣君列傳)에 자세히 나와 있음.

 

 

춘신군은 매우 그럴듯 하게 여기고 이원의 여동생을 집에서 내보내고 정중히 지내게 하고는 고열왕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했다. 고열왕이 그녀를 불러 총애하였는데 마침내 아들 도(悼)를 낳으니 태자로 봉해졌고 이원의 여동생은 왕후가 되었다. 이원은 귀한 신분이 되어 정사에 간여하게 되었는데 이원은 그 누이를 들여보내 왕후가 되고 아들이 태자가 되자 춘신군이 이 일을 발설하거나 더욱 교만해질 것이 두려웠다. 그리하여 병사를 양성하고 춘신군을 죽여 입을 막으려 하였다. 고열왕이 죽자 이원은 춘신군과 그 가족을 모조리 죽이고 도를 옹립했는데 이 사람이 유왕(幽王)이다. 

그 후 유왕 10년에 유왕이 죽자, 왕후와 고열왕사이의 유복자인 유(猶)를 옹립하니 이 사람이 애왕(哀王)이다.

고열왕의 동생 공자 부추(負芻)의 무리가 유왕이 고열왕의 아들이 아닌 것을 알고 애왕마저 의심하여 애왕과 태후를 습격하여 살해하고 이원의 집안을 멸족시켰다. 그리고 부추를 왕으로 삼았으나 5년 후 진(秦)나라에 멸망당했다.

 

시에, "도적의 말이 매우 달콤해 난이 진전되었도다.(小雅/小旻之什/巧言)"라 하였는데 이를 말한 것이다.

송에, "이원의 여동생은 춘신군의 업적을 바탕으로 계책을 내놓았는데 고열왕이 아들이 없어 과연 받아들여졌고 임신 사실을 알면서 궁에 들어가 마침내 아들을 낳아 대를 잇게 되었으나 아들이 옹립되자 본 남편을 배반하였으며 결국 종족이 멸망당했다."고 하였다.

 

 

 

 

趙悼倡后

 

倡后者邯鄲之倡, 趙悼襄王之后也。前日而亂一宗之族旣寡, 悼襄王以其美而取之。李牧諫曰, 「不可. 女之不正, 國家所以覆而不安也。此女亂一宗, 大王不畏乎?」 王曰, 「亂與不亂, 在寡人爲政。」 遂娶之。初悼襄王后生子嘉爲太子。倡后旣入爲姬, 生子遷。倡后旣嬖幸於王, 陰譖后及太子於王, 使人犯太子而陷之於罪。王遂廢嘉而立遷, 黜后而立倡姬爲后。及悼襄王薨, 遷立, 是爲幽穆王。倡后淫佚不正, 通於春平君, 多受秦賂。而使王誅其良將武安君, 李牧其後秦兵徑入。莫能距, 遷遂見虜於秦, 趙亡。大夫怨倡后之譖太子及殺李牧, 乃殺倡后而滅其家, 共立嘉於代, 七年不能勝秦, 趙遂滅爲郡。

詩云, 「人而無禮, 不死何俟。」 此之謂也。 

頌曰, 趙悼倡后, 貪叨無足, 隳廢后適, 執詐不慤, 淫亂春平, 窮意所欲, 受賂亡趙, 身死滅國。

 

隳 : 무너뜨릴 휴. 무너뜨리다. 무너짐. 깨뜨리다. 깨짐. 쓸모없게 되다. 쇠퇴함. 위태하다.

 

 

창후(倡后)는 한단(邯鄲)의 창기였는데 조(趙)나라 도양왕(悼襄王)의 왕후가 된 자이다. 일찌기 출가하여 한 집안을 어지럽히고 과부가 되었는데 도양왕이 그 녀의 미색을 보고 취하려 하였다.

그러자 장군 이목(李牧이 간했다. "안됩니다. 그 여인은 바르지 못하여 나라들 뒤엎고 불안하게 할 것입니다. 이 여인은 한 집안을 어지럽혔는데 대왕께서는 두렵지 않으십니까?"

왕은, 어지럽히냐 어지럽히지 않느냐는 과인이 정치하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오." 하고는 그녀를 아내로 맞았다.

애초에 도양왕은 왕후가 아들 가(嘉)를 낳자 가를 태자로 봉했었다. 창후가 들어와 후궁이 되어 아들 천(遷)을 낳았다.

창후는 왕에게 총애를 받자 은밀히 왕에게 왕후와 태자를 참소하고 사람을 시켜 태자를 속여 죄를 짓도록 함정에 빠뜨렸다. 왕이 마침내 태자 가(嘉)를 폐하여 천(遷)을 태자로 세우고 왕후를 쫒아내고 창희를 왕후로 삼았다. 

도양왕이 죽자 천이 옹립되니 이 사람이 유목왕(幽穆王)이다. 창후가 음란하고 행실이 바르지 못하여 춘평군(春平君)과 정을 통하고 진(秦)나라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았다. 그리고 왕으로 하여금 훌륭한 장군인 무안군(武安君) 이목(李牧)을 주륙하게 하였는데 그 후 진(秦)나라에서 바로 쳐들어 왔다. 결국 진나라의 공세를 막지 못해 유목왕 천은 진나에 포로가 되었고 조나라는 멸망했다.  조나라 대부들이 창희가 태자를 참소하고 장군 이목을 죽인 것에 원한을 품고 창후를 죽이고 그 일가를 멸족시킨 다음 대(代) 땅에서 폐위당한 태자 가(嘉)를 옹립하였으나 7년이 지나도록 진나라를 이기지 못하고 조나라는 마침내 멸망하고 진나라의 군(郡)이 되었다.

 

시에. "사람이 예의가 없다면 죽지않고 무엇을 기다리랴.(國風/ 鄘風/相鼠)"라 했는데 이를 말한 것이다.

송에, "조나라 도양왕 때의 창후는 탐욕이 많아 만족할 줄 몰랐으며, 왕후를 폐하고 적통을 무너지게 하였으며 사특하게 정권을 잡고 삼가지 않아 춘평군과 음란하게 놀아났고 탐하는 마음이 끝이 없어 진나라로부터 뇌물을 받아 조나라를 망하게 하므로써 마침내 자신도 죽이고 나라를 멸망시켰다."고 하였다.

 

 

 

                                                                                                                                  

列女傳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