卷下11. 京城西十里許
京城西十里許, 有安流慢波, 澄碧澈底。遙岑遠岫相與際天, 實與蘇黃集中所說西興秀氣無異。
士子盧永綏有才調, 嘗日暮泛一葉, 泝流而行, 欲抵宿湖邊寺。中流長嘯, 怳若有得云,
風蕭蕭兮, 易水寒。
孤舟獨往。
放聲吟諷, 恨未有續之者。
忽於蘆葦間, 烟霏掩昧中, 卽應聲曰,
靄沉沉兮楚天濶,
遊子何之?
盧公聞之驚愕不自定, 乃曰, 「此間無人居 是必仙眞也。」 停棹不得去。 夜將午四顧無人聲, 惟殘星缺月倒影霜濤間遂還。明日都下喧傳, 「有天仙降西湖。」 後踰月聞之, 「乃及第柳脩, 寄宿於漁舟。」
澄 : 맑을 징. 맑다. 물이 깨끗함. 맑게 하다. 岫 : 산굴 수. 산 굴. 巖穴. 신봉우리. 산꼭대기.
蘇黃 : 蘇東坡와 黃庭堅. 宋代의 대문장가.
☞ 風蕭蕭兮易水寒 <史記 卷86. 刺客列傳>
太子及賓客知其事者,皆白衣冠以送之。至易水之上,既祖,取道,高漸離擊筑,荊軻和而歌,為變徵之聲,士皆垂淚涕泣。又前而為歌曰:「風蕭蕭兮易水寒,壯士一去兮不復還!」復為羽聲忼慨,士皆瞋目,髮盡上指冠。於是荊軻就車而去,終已不顧。
烟 : 연기연. 煙과 同字. 靄 : 아지랑이 애(알). 아지랑이, 煙霧. 자욱하게 낀 기운. 구름이 모이는 모양. 눈이 오는 모양.
서울[京城]의 서쪽으로 십리쯤 가면, 잔잔하고 느리게 흐르는 물결이, 맑고 푸르러 밑까지 비쳐 보였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하늘과 서로 맞닿아 있었으니, 실로 소식과 황정견이 문집에서 말한 서흥의 빼어난 경치와 다름이 없었다.
선비 노영수(盧永綏)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일찍이 해질 무렵에 작은 조각배 한 척을 띄워, 물을 거슬러 올라가, 호수 가의 절까지 가 그곳에서 묵고자 하였다.
중류쯤에서 길게 휘파람을 불다가, 황홀히 한 구절을 얻었다.
바람은 쓸쓸하게 불고 역수는 찬데,
외로운 배는 홀로 가는구나.
하고 소리 내어 읊으나, 여기에 이어주는 사람이 없음을 한스럽게 여겼다.
홀연히 갈대숲 사이에서, 안개가 자욱하여 속이 보이지 않으나, 바로 응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개 자욱하고 초나라 하늘은 넓은데,
나그네는 어디로 가는가?
노공이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스스로를 진정하지 못하고, 말했다.
"이 안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으니, 이는 필시 신선[仙眞]일 것이다."
노를 멈추고 떠나지 못하였다. 밤은 깊어가는데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직 희미한 별빛과 이지러진 달빛만이 흰 물결에 비칠 뿐이라 마침내 돌아오고 말았다.
다음 날 도성 지역에 떠들썩하게 전하는 말이, 「하늘에서 신선이 서호로 내려왔다.」라고 하였다.
그 뒤 한 달이 지나서 들리는 말이 있었다.
"급제한 유수(柳脩)가, 고기잡이 배에서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