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道 - 韓愈
原 道
韓 愈
闢佛老是退之一生命脈。故此文是退之集中命根。其文源遠流洪, 最難鑑定, 兼之其筆下變化詭譎, 足以眩人。若一下打破, 分明如時論中一昌, 一承, 六腹, 一尾。
☞ 原道
‘原’은 문체의 하나로, 本原을 탐구하여 논하는 論辯文이다. 韓愈는 〈原道〉, 〈原性〉, 〈原毁〉, 〈原人〉, 〈原鬼〉의 ‘原’체 문장 5편을 지었는데, 이를 ‘五原’이라 한다. 이 ‘오원’은 韓愈의 철학이론과 정치사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저작 시기는 貞元 21년(805)경, 한유가 38세에 陽山令으로 좌천되었을 때 지었다는 설과, 그가 사면을 받고 양산을 떠나 郴州에서 3개월간 대기하면서 지었다는 설이 있다.
〈原道〉는 儒道의 근원을 탐구한 것이다. 韓愈는 평소에 佛老를 배척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여겼으며, 이 글은 바로 韓愈가 佛老를 배척한 代表作이다.
命脈 : 어떤 일을 지속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중요한 부분이 남아 없어지지 않고 존속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살아 있는 목숨이나 맥(脈)을 이어 나가는 근본.
命根 : 목숨과 생명의 근본. 詭譎 : 변화무쌍하다. 간사스럽고 교묘함. 이상야릇하다. 터무니없다.
一昌, 一承, 六腹, 一尾 : 未詳. 혹 起‧承‧轉‧結과 같은 말이 아닌지 모르겠다.
불교와 노자를 배척하는 것이 한퇴지 평생의 명맥이었다. 그러므로 이 글이 한퇴지 문집중의 명근이다. 그 문장의 근원은 멀고 흐름은 넓어서 감정하기가 가장 어렵고 아울러 그의 붓끝은 변화무쌍하여 사람을 현혹시키기에 족하다.
단번에 때려부순다면 분명히 시론중의 일창(一昌), 일승(一承), 육복(六腹), 일미(一尾)와 같다.
博愛之謂仁, 行而宜之之謂義, 由是而之焉之謂道, 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仁與義, 爲定名 ; 道與德, 爲虛位。 故道有君子有小人, 而德有凶有吉。老子之小仁義, 非毁之也, 其見者小也, 坐井而觀天曰天小者, 非天小也。 彼以煦煦爲仁, 孑孑爲義, 其小之也則宜。其所謂道, 道其所道, 非吾所謂道也 ; 其所謂德, 德其所德, 非吾所謂德也。凡吾所謂道德云者, 合仁與義言之也, 天下之公言也 ; 老子之所謂道德云者, 去仁與義言之也, 一人之私言也.
煦 : 따뜻하게 할 후. 따뜻하게 하다. 찌다. 은혜를 베풀다. 붉은 모양. 붉은빛. 눈동자가 움직이다. 煦煦 : 작은 은혜를 베푸는 것.
널리 사랑하는 것을 인(仁)이라 하고, 행실이 인에 적합한 것을 의(義)라 하며, 이로 말미암아 나아가는 것을 도라 하고, 자신을 족하게 하여 외부에서 바라는 것이 없으면 덕이라 한다. 인과 의는 정해진 이름이고 도와 덕은 빈 자리이다.
그러므로 도는 군자에게도 있고 소인에게도 있으며, 덕은 흉한 것에도 있고 길한 것에도 있다. 노자가 인의(仁義)를 작게 여긴 것은 인의를 폄훼한 것이 아니라 그가 본 것이 작았기 때문이며 우물에 앉아서 하늘을 보고 하늘이 작다고 하는 것인데 하늘이 작은 것이 아니다. 노자는 작은 은혜를 베푸는 것을 인(仁)이라 하고, 사소한 것을 의(義)라고 하였으니 그가 인의를 작다고 한 것은 당연하다. 그가 도를 말한 것은 그가 도라고 여기는 도이며 내가 도로 여기는 것이 아니고, 그가 덕이라고 하는 것은 그가 덕으로 여기는 것일 뿐 내가 도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인과 의를 합하여 말한 것으로 천하의 공변된 말이며, 노자가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인과 의를 분리해 말한 것으로 한 사람의 사견(私見)일 뿐이다.
周道衰, 孔子沒, 火于秦, 黃老于漢, 佛于晋ㆍ宋ㆍ齊ㆍ梁ㆍ魏ㆍ隨之間, 其言道德仁義者, 不入于楊, 則入于墨, 不入于老, 則入于佛, 入于彼則出于此。入者主之, 出者奴之 ; 入者附之, 出者汚之, 噫, 後之人, 其欲聞仁義道德之說, 孰從而聽之?
老者曰, 「孔子吾師之弟子也。」 佛者曰, 「孔子吾師之弟子也。」 爲孔子者, 習聞其說, 樂其誕而自小也, 亦曰, 「吾師亦嘗。」 云爾, 不惟擧之於其口, 而又筆之於其書。噫, 後之人, 雖欲聞仁義道德之說, 其孰從而求之?
甚矣, 人之好怪也。不求其端, 不訊其末, 惟怪之欲聞。
古之爲民者四, 今之爲民者六, 古之敎者, 處其一, 今之敎者, 處其三。 農之家一而食粟之家六, 工之家一而用器之家六, 賈之家一 而資焉之家六, 奈之何民不窮且盜也?
老者曰 ~ : <莊子 天運 (5)>에 “孔子가 51세가 되어서도 도를 깨닫지 못하자, 남쪽 沛邑으로 가서 老子를 만나보았다고 했으며
(孔子行年五十有一而不聞道, 乃南之沛 見老聃)”는 말이 보이고,
葛洪의 <神仙傳>에도 “공자가 노자를 사사한 일이 있다.[孔子師事老子事]”고 하였다.
佛者曰 ~ : 僧徒가 僞撰한 <淸淨法行經>에 “부처가 세 제자를 보내어 震旦(中國)을 교화시키게 하였는데, 중국인들은 儒童菩薩을
孔子로 칭하고, 光淨菩薩을 顔回로 칭하고, 迦葉菩薩을 老子로 칭한다는 말이 보인다.
[佛遣三弟子震旦敎化 儒童菩薩 彼稱孔子 光淨菩薩 彼稱顔回 迦葉菩薩 彼稱老子]”는 황당한 말이 보인다.
주(周)나라의 도가 쇠퇴하고 공자가 죽은 후, 진(秦)나라 때 경서와 서적이 불태워지고 한나라 때 황제(黃帝)와 노자(道家)사상이 성행하였으며, 진(晋)ㆍ송(宋)ㆍ제(齊)ㆍ양(梁)ㆍ위(魏)ㆍ수(隨)나라로 이어지는 사이에 불교가 성행하여, 도덕(道德)과 인의仁義)를 말하는 자들이 양주(楊朱)의 학파에 들어가지 않으면 묵가(墨家)에 들어갔고, 노자의 도가에 들어가지 않으면 불가(佛家)에 들어갔으니, 저들 학파에 들어가면 이쪽(儒家)에서 나가게 되었다.
들어간 학파의 학설을 주로 하고 떠난 학파의 학설은 천하게 여겼으니 들어간 자들은 그 학설을 따르고 나간 자들은 그 학설을 더럽혔으니 아 ! 후세 사람들이 인의 도덕의 학설을 듣고자 해도 누구로부터 들을 수 있었겠는가?
노자의 학설을 따르는 자들은 "공자는 우리 선생님의 제자였다."고 하고, 불자들도 "공자는 우리 선생님의 제자였다." 고 하였다.
공자의 학문을 배우는 자들은 익히 그러한 말을 들었고 그 거짓말을 즐겨 스스로를 가볍게 여기고 또 "우리 선생님께서도 일찌기 그렇게 말씀하신 바가 있었다."고 하여 그 입으로 거론할 뿐만 아니라 또 책에 기록하기까지 하였다.
아! 후세 사람들이 인의도덕의 학설을 듣고자 해도 누구로부터 구할 것인가?
심하구나, 사람들이 괴이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그 근본을 구하지 않고 말단을 물으며 오직 괴이한 것만 물으려 한다.
옛날 백성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4부류였으나 지금의 백성은 사농공상, 승려, 도사(士農工商僧侶· 道士)의 여섯 부류이며, 옛날에 가르치는 곳은 하나였으나 지금 가르치는 것은 유불도(儒佛道)의 세 곳이다.
농사 짓는 집은 하나인데 곡식을 먹는 집은 여섯이고 공인의 집은 하나인데 기구(器具)를 쓰는 집은 여섯이니 어찌 백성이 어려워지면 도둑이 되지 않겠는가?
古之時, 人之害多矣, 有聖人者立然後, 敎之以相生養之道。爲之君, 爲之師, 驅其蟲蛇禽獸, 而處其中土。寒然後爲之衣, 飢然後爲之食, 木處而顚, 土處而病也, 然後爲之宮室。爲之工, 以贍其器用 ; 爲之賈, 以通其有無 ; 爲之醫藥, 以濟其夭死; 爲之葬埋祭祀, 以長其恩愛 ; 爲之禮, 以次其先後 ; 爲之樂, 以宣其湮鬱 ; 爲之政, 以率其怠倦 ; 爲之刑, 以鋤其强梗。相欺也, 爲之符璽斗斛權衡以信之 ; 相奪也, 爲之城郭甲兵以守之。害至而爲之備, 患生而爲之防。今其言曰, 「聖人不死, 大盜不止, 剖斗折衡, 而民不爭。」 鳴呼! 其亦不思而已矣。
梗 : 대개 경. 대개, 대강. 가시나무. 느릅나무. 도라지. 굳세다. 강함. 곧다. (재앙을)막다. 근심. 괴로워함. 인형. 우인(偶人).
聖人不死 ~ : 이 말은 <莊子 胠篋 (1)〉에 보인다.
옛날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많았는데 성인이 나온 뒤에 사람들에게 서로 도와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쳤다. 군주가 되고 스승이 되어 해충과 독사, 금수를 몰아내고 사람들을 중원에서 살게 하였다. 추워진 후에 옷을 만들어 입게 하고, 굶주린 후에 먹을 것을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나무 위에서 살다가 떨어지고 땅에서 살다가 병이 든 연후에 집을 지어 살게 하였다. 그들이 공인이 되어 그들이 쓸 그릇을 넉넉하게 만들게 하였으며, 그들이 상인이 되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없는 것과 유통하게 하였고, 의술과 약 쓰는 법을 가르쳐 일찍 죽게 되는 자들을 구제하였으며, 장례와 매장, 제사를 가르쳐 은혜와 사랑을 키우게 하였고, 예의를 가르쳐 선후의 차례를 알게 하였으며, 악을 가르쳐 답답함을 풀게 하였고, 정사를 가르쳐 게르른 자들에게 모범을 보이게 하였으며, 형법을 가르쳐 흉악한 자들을 없애게 하였다. 서로 속이는 일이 있어 부절(符節), 도장(璽), 말(斗), 휘(斛 : 10斗), 저울(權衡)을 만들게 하여 믿게 하였고, 서로 쟁탈하는 일이 있어 성곽과 갑옷, 무기를 만들어 지키게 하였다. 피해를 입게 되자 대비하도록 하였고, 환난이 일어나자 예방하게 하였다.
이제 그(道家 : 莊子)가 말하였다. "성인이 죽지 않으면 대도가 그치지 않으며 말을 부수고 저울을 꺾으면 백성이 다투지 않는다."
오호라! 그 역시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如古之無聖人, 人之類滅, 久矣。何也? 無羽毛鱗介以居寒熱也, 無爪牙以爭食也。是故君者, 出令者也, 臣者行君之令, 而致之民者也, 民者出粟米麻絲, 作器皿, 通貨財, 以事其上者也。君不出令,則失其所以爲君, 臣不行君之令而致之民, 則失其所以爲臣, 民不出粟米麻絲, 作器皿, 通貨財, 以事其上, 則誅。
今其法曰, 「必棄而君臣, 去而父子, 禁而相生相養之道, 以求其所謂淸凈寂滅者。」
鳴呼! 其亦幸而出於三代之後, 而不見黜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 其亦不幸而不出於三代之前, 不見正於禹湯文武周公孔子也。
淸淨寂滅 : 淸淨은 일체의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남이고, 寂滅은 生死輪廻를 초월함이니, 곧 佛敎修行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것.
옛날 성인이 없었다면 인류는 멸망한지 오래 되었을 것이다. 어째서인가? 추위와 더위를 지탱할 깃과 털, 비늘과 조개껍질이 없고 먹이를 다툴 손톱과 이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군이 된 자는 정령을 내리고 신하된 자는 군왕의 정령을 집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는 자이며, 백성된 자는 곡식과 면사를 생산하고 기구(器具)를 만들며 재화를 유통시키며 윗사람을 섬기는 자이다. 인군이 된 자가 정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군주가 해야 할 바를 하지 않는 것이고, 신하가 군왕의 정령을 집행하여 백성에게 이르게 하지 않으면 신하가 해야할 바를 하지 않는 것이며, 백성이 곡식과 면사를 생산하고 기구를 만들며 재화를 유통시켜 윗사람을 섬기지 않는다면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금 그들(불가)의 법에, "반드시 군신의 관계를 버리고, 부자의 관계를 떠나며, 서로 돕고 서로 부양하는 길을 버리므로써 청정적멸이라고 하는 것을 구해야 한다."고 한다.
오호라! 그들 또한 다행스럽게도 삼대의 후에 나와서 우왕(夏 禹王), 탕왕(殷 湯王), 주문왕, 무왕(周文王, 武王), 공자로부터 축출당하지 않았으며, 또한 불행하게도 삼대 이전에 나오지 않아 우왕, 탕왕, 주문왕, 무왕, 공자로부터 바로잡히지 못했다.
帝之與王, 其號名殊, 其所以爲聖一也, 夏葛而冬裘, 渴飮而飢食, 其事雖殊, 其所以爲智一也。今其言曰, 「曷不爲太古之無事?」 是亦責冬之裘者曰, 「曷不爲葛之之易也?」 責飢之食者曰, 「曷不爲飮之之易也?」
傳曰,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然則古之所謂正心而誠意者, 將以有爲也, 今也欲治其心而外天下國家者, 滅其天常, 子焉而不父其父, 臣焉而不君其君, 民焉而不事其事。孔子之作『春秋』也, 諸侯用夷禮則夷之, 夷而進於中國則中國之。經曰, 「夷狄之有君, 不如諸夏之亡。」 詩曰, 「戎狄是膺, 荊舒是懲。」
今也, 擧夷狄之法, 而加之先王之敎之上, 幾何其不胥而爲夷也。
帝之與王 : 帝는 五帝를 이르고, 王은 三王을 이른다. 經 : 論語 八佾 第 5章. 詩 : 詩經 魯頌/閟宮
황제와 왕은 그 명칭은 다르지만 그 성인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같으며, 여름에는 갈옷을 입고 겨울에는 갖옷을 입으며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식사하는 것은 그 일이 다를지라도 지혜로 여겨지는 것은 같다.
지금 그들은 말한다. "어찌하여 태고의 무위(無爲 : 無事)를 행하지 않는가?"
이 또한 겨울에 갖옷을 입은 자를 꾸짖어 "어찌 갈옷을 입어 수월함을 취하지 않는가?" 라 하고, 배고파서 밥을 먹는 자를 꾸짖어 "어찌 물을 마셔서 수월함을 취하지 않는가?"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전(傳 : 大學)에 이르기를, "옛날 천하에 밝은 덕을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하며, 그 나라를 잘 다스리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하며, 그 가정을 잘 다스리려고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을 닦으려고 하는 자는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하게 하여야 한다." 고 했다.
그렇다면 옛날에 이른 바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장차 유위(有爲)하게 한다는 것인데, 지금 그 마음을 다스리려고 하면서 천하와 나라를 도외시하고 천상(天常 : 天倫)을 없애버려, 자식이면서 그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고, 신하이면서 그 인군을 인군으로 여기지 않으며, 백성이면서 그 본분을 일로 여기지 않는다.
공자께서는 「춘추」를 지으시면서 제후가 오랑캐의 예(禮)를 지키면 오랑캐가 되고, 오랑캐가 중국의 예로 나아가면 중국으로 여기셨다.
경(논어)에 이르기를 "이적에 군주가 있다고 해도 중국에 군주가 없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으며,
시에 이르기를, "융(戎)과 적(狄)을 막고 형(荊)과 서(舒)를 응징한다."고 하였다.
지금 이적(夷狄)의 법을 들어 선왕의 가르침 위에 올려 놓으니 얼마 가지 않아 모두 이적(夷狄)이 되지 않겠는가.
夫所謂先王之敎者何也? 博愛之謂仁, 行而宜之之謂義, 由是而之焉之謂道, 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其文 『詩』ㆍ『書』ㆍ『易』ㆍ『春秋』, 其法禮樂刑政, 其民士農工賈, 其位君臣ㆍ父子ㆍ師友ㆍ賓主ㆍ昆弟ㆍ夫婦, 其服麻絲, 其居宮室, 其食粟米蔬果魚肉, 其爲道易明, 而其爲敎易行也。是故以之爲己則順而從, 以之爲人則愛而公, 以之爲心則和而平, 以之爲天下國家, 無所處而不當。是故生則得其情, 死則盡其常, 郊焉而天神假, 廟焉而人鬼饗。
曰, 「斯道也, 何道也?」 曰, 「斯吾所謂道也。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 堯以是傳之舜, 舜以是傳之禹, 禹以是傳之湯, 湯以是傳之文武周公, 文武周公傳之孔子, 孔子傳之孟軻, 軻之死, 不得其傳焉。荀與楊也, 擇焉而不精, 語焉而不詳。由周公而上, 上而爲君, 故其事行, 由周公而下, 下而爲臣, 故其說長。
「然則如之何而可也?」 曰, 「不塞, 不流; 不止, 不行。人其人, 火其書, 廬其居, 明先王之道以道之, 鰥寡孤獨廢疾者有養也, 其亦庶乎其可也。」
假 : 이르다. 다다름.
소위 선왕의 가르침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널리 사랑하는 것은 인(仁)이라 하고, 행실이 인에 적합한 것을 의(義)라고 하며, 인의(仁義)로 말미암아 나아가는 것을 도(道)라고 하고, 자신을 족하게 하여 외부로부터 바라는 것이 없으면 덕(德)이라 한다.
그 문헌은 시경, 서경, 역경, 춘추이고, 그 법은 예(禮), 악(樂), 형(刑), 정(政)이며, 백성은 사(士), 농(農), 공(工), 고(賈) 이고, 그 지위는 군신, 부자, 사우(師友), 빈주(賓主), 형제(昆弟), 부부이며, 의복은 마(麻)와 명주(絲)이고, 사는 곳은 궁실(宮室)이며, 먹는 것은 곡식(粟米), 채소, 과일, 물고기, 고기이니 그 도를 밝히기 쉽고 그 가르침을 행하기 쉽다.
그러므로 그것으로 자신을 다스리면 화순(和順)하고 숙부드러우며, 그것으로 남을 다스리면 사랑하고 공정하며, 그것으로 마음을 다스리면 온화하고 평온하고, 그것으로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면 합당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므로 살아서는 사람간의 마음을 얻고, 죽어서는 자연의 이치에 맡기며 교제(郊祭)를 지내면 하늘에 이르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면 조상의 영령(英靈)이 흠향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이 도가 무슨 도인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도라고 하는 것이며, 앞서 말한 노자와 불가의 도가 아니다."
요임금은 이것을 순임금에게 전하였고 순임금은 이것을 우왕에게 전하였으며, 우왕은 이것을 탕왕에게 전하였고, 탕왕은 이것을 문왕, 무왕, 주공에게 전하였으며, 문왕, 무왕, 주공은 이것을 공자에게 전했고, 공자는 이것을 맹자에게 전하였고, 맹자가 죽자 이것이 전해지지 못했다. 순자(筍子)와 양주(楊朱)는 이것을 택하였으나 정순하지 못했고 이것을 말했으나 상세하지 못했다. 주공으로부터 올라가면 그 위는 군왕이기 때문에 그것이 행해졌고, 주공으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그 아래는 신하였기 때문에 그 학설이 길이 전해졌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좋겠는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불가와 도가를 막지 않는다면 유가의 도는 흐르지 않을 것이니, 불가와 도가를 막지 않으면 유가의 도는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들(승려와 도사들)을 환속시켜 일반 사람으로 만들고 그 책들을 불태워 버리고 그들의 거처를 민가로 만들어 선왕의 도를 밝히고 인도하여, 홀아비와 과부, 고아, 자식없는 늙은이, 불치병자들을 부양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될 것이다."
退之一生闢佛老在此篇。然到底是說得老子而已, 一字不入佛氏域。盖退之元不知佛氏之學, 故佛骨表亦只以福田上立說。
한퇴지의 평생에 걸쳐 불가와 도가를 배척한 정신이 이편에 담겨있다. 그러나 끝까지 이 설은 노자를 말했을 뿐 불가의 영역에는 한자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마 한퇴지는 원래 불가의 학문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論佛骨表〉에도 다만 福田으로 立論하였을 뿐이다.
<이상은 번역에 동양고전종합DB를 많이 참고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