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古文學/破閑集
卷下25. 耆之避地江南幾十餘載
柳川
2020. 11. 1. 21:41
耆之避地江南幾十餘載, 携病妻還京師, 無托錐之地。偶遊一蕭寺, 岸幅巾兀坐長嘯, 僧問, 「君是何人, 放傲如是?」 卽書二十八字,
早把文章動帝京,
乾坤一介老書生。
如今始覺空門味,
滿院無人識姓名。
空門 : 불교(佛敎)’를 달리 이르는 말. 불교가 공(空)의 사상을 근본으로 한다는 데에서 나온 이름이다.
기지(耆之 : 林椿)가 난리가 일어난 땅을 피하여 강남에서 거의 10여 년 간을 숨어살다가, 병이 든 아내를 데리고 서울[京師]로 돌아왔지만, 송곳 하나 의탁할 땅이 없었다. 우연히 어느 한적한 절을 노닐다가, 幅巾을 젖혀 쓰고 꼿꼿이 앉아 길게 휘파람을 부니,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오만방자하기가 이와 같은가?"
기지는 즉시 스물여덟 자의 시를 써서 답했다.
일찍이 문장으로 도읍을 진동시켰던,
천하의 일개 늙은 서생이오.
이제야 비로소 불교의 의미를 깨우쳤는데,
절이 만원이지만 사람들 중에 이름을 알아보는 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