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處難忘酒 - 李荇/兪好仁
何處難忘酒
容齋 李 荇
何處難忘酒、 어디에 있어도 술 생각 잊기 어렵구나.
蠻天風雨辰。 남쪽 먼 땅에 비바람 친다.
浮休萬里夢、 만리를 떠도는 꿈인가?
寂寞百年身。 한평생이 적막한 신세로다
鬱鬱披襟倦、 울적한 마음 터놓기도 싫어서,
沈沈抱膝頻。 조용히 무릎 껴안는다.
此時無一盞、 이럴 때 한 잔 술 없다면,
華髮坐來新。 앉아 있어도 흰 머리 생기겠다.
☞ 1506년 2월 거제도(巨濟島)로 귀양 가서 지었다.
李 荇 (1478 ~ 1534)
1495년(연산군 1)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권지승문원부정자를 거쳐 검열·전적을 역임했고, 〈성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다. 1504년 응교로 있을 때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충주에 유배되었고,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교리에 등용, 대사간·대사성을 거쳐 대사헌·대제학·공조판서·이조판서·우의정 등 고위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펴내는 데 참여했고, 1531년 김안로를 논박하여 좌천된 뒤 이듬해 함종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그의 시는 허균 등에 의해 매우 높게 평가되었다. 당시의 전통에서 벗어나 기발한 착상과 참신한 표현을 강조하는 기교적인 시를 써서 새로운 시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표현의 격조가 높아진 반면 폭넓은 경험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은 없었다. 저서로는 〈용재집〉이 있다. 1537년 신원되었고, 중종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정이고, 뒤에 문헌으로 바뀌었다.
何處難忘酒
兪好仁
何處難忘酒、 어느 곳인들 술을 잊겠는가.
防秋二十年。 오랑캐 막기 20년.
黃昏低寒月、 황혼에 겨울의 달은 낮게 떠 있고,
靑海接胡天。 바다는 하늘에 닿아있다
鐵騎邊常警、 갑옷 입고 말에 올라 항상 변방을 지키는데
鄕書雁不傳。 기러기조차 고향소식 전하지 않네.
此時無一盞、 이럴 때 한 잔 술이 없다면
羈抱更茫然。 나그네 회포는 더욱 막막하리라.
何處難忘酒、 어디를 가던 술을 잊기 어렵구나.
衰齡謝事歸。 나이 많아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傷鴻思戢翼、 다친 기러기 날개 접을 생각하고
老驥不任鞿。 늙은 말도 굴레를 감당 못하는구나.
林壑無人過、 숲속 으슥한 곳은 지나가는 사람 없고
雲途有夢飛。 구름 자욱한 길 어두워 길을 재촉하네.
此時無一盞、 이럴 때 한 잔 술도 없이
奈此送殘暉。 어찌 이 저녁 노을을 보내겠는가.
防秋 : 오랑캐를 방어하는 것. 오랑캐는 늦가을 무렵에 세력이 강성해져 쳐들어오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 『구당서(舊唐書)』
鞿 : 재갈 기. 재갈. 고삐. 굴레. 단속하다. 夢 : 어둡다. 흐림. 飛 : 빠르게 가다.
☞ 兪好仁(1445 ~ 1494)
본관은 고령. 자는 극기, 호는 임계(林溪) · 뇌계. 아버지는 음(蔭)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합격하여 봉상시부봉사가 되었다.
1478년 사가독서를 했으며, 1480년 거창현감이 되었다. 이어 공조좌랑·검토관을 거쳐, 1487년 노사신 등이 찬진한 〈동국여지승람〉 50권을 다시 정리해 53권으로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뒤 홍문관교리로 있다가 1488년 의성현령으로 나갔으나, 백성의 괴로움은 돌보지 않고 시만 읊는다 하여 파면되었다. 1490년 〈유호인시고 兪好仁詩藁〉를 편찬했다. 1494년 장령을 거쳐 합천군수로 나갔다가 1개월도 안 되어 병으로 죽었다.
시·문장·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3절로 불렸다. 특히 성종의 총애가 지극했는데,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외관직을 청하여 나가게 되자 성종이 직접 시조를 읊어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저서로 〈임계유고〉가 있다. 장수 창계서원, 함양 남계서원 등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