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歷史와文學/列國志

第十一回. 宋莊公貪賂搆兵, 鄭祭足殺婿逐主.

柳川 2021. 3. 22. 10:43

第十一回. 宋莊公貪賂搆兵, 鄭祭足殺婿逐主.

 

 

卻說宋莊公遣人致書稱賀,就索取三城,及白璧黃金歲輸穀數。厲公召祭足商議。厲公曰:「當初急於得國,以此恣其需索,不敢違命。今寡人即位方新,就來責償;若依其言,府庫一空矣。況嗣位之始,便失三城,豈不貽笑鄰國?」 祭足曰:「可辭以『人心未定,恐割地生變,願以三城之貢賦,代輸於宋。』 其白璧黃金,姑與以三分之一,婉言謝之。歲輸穀數,請以來年爲始。」 厲公從其言,作書報之。先貢上白璧三十雙,黃金三千鎰,其三城貢賦,約定冬初交納。使者還報,宋莊公大怒曰:「突死而吾生之,突貧賤而吾富貴之。區區所許,乃子忽之物,於突何與,而敢吝惜?」 即日,又遣使往鄭坐索,必欲如數。且立要交割三城,不願輸賦。厲公又與祭足商議,再貢去穀二萬鍾。宋使去而復來,傳言:「若不滿所許之數,要祭足自來回話。」 祭足謂厲公曰:「宋受我先君大德,未報分毫。今乃恃立君之功,貪求無厭,且出言無禮,不可聽也。臣請奉使齊魯,求其宛轉。」 厲公曰:「齊魯肯爲鄭用乎?」 祭足曰:「往年我先君伐許伐宋,無役不與齊魯同事。況魯侯之立,我先君實成之。即齊不厚鄭,魯自無辭。」 厲公曰:「宛轉之策何在?」 祭足曰:「當初華督弒君而立子馮,吾先君與齊魯,並受賄賂,玉成其事。魯受郜之大鼎,吾國亦受商彝。今當訴告齊魯,以商彝還宋。宋公追想前情,必愧而自止。」 厲公大喜曰:「寡人聞仲之言,如夢初醒。」 即遣使賷了禮幣,分頭往齊魯二國,告立新君,且訴以宋人忘恩背德,索賂不休之事。使人到魯致命,魯桓公笑曰:「昔者,宋君行賂於敝邑,止用一鼎。今得鄭賂已多,猶未滿意乎?寡人當身任之,即日親往宋,爲汝君求解。」 使者謝別。

 

需索 : (억지로 재물을) 요구하다.  坐索 : 눌러앉아 재촉하다.         賷 : 가져올 재.  齎와 同.

 

 

송장공은 사람을 파견하여 정 여공의 즉위를 치하하는 서찰을 보냈는데, 나아가 세곳의 성을 할양하고 백벽과 황금, 해마다 바치기로 한 곡식을 보내 줄 것을 요구했다. 여공은 제족을 불러 상의했다. 

여공이 물었다. "처음에는 나라를 얻기에 급급해서 이렇게 무리한 요구를 하여도 감히 거스를 수가 없었소. 지금 과인이 막 새롭게 즉위하자마자 약속한 부채를 갚으라고 하는데 그 말대로 한다면 나라의 부고가 텅텅 비게 될 것이오.  하물며 군주의 지위를 계승하여 그 시작부터 세 곳의 성을 잃게 된다면 어찌 이웃 나라의 조소꺼리가 되지 않겠소?"

제족이 대답했다. " '인심이 안정되지 못했는데 세 곳의 성을 할양해 준다면 변고가 일어날까 두려우니 바라건대 세 성의 부세로 송나라에 대신 보내게 해주십시오.' 라 하시는 것이 좋으며, 백벽과 황금은 얼마동안은 삼분의 일만 보내겠다고 완곡한 말로 사과하십시오. 그리고 해마다 보내기로 한 곡식은 내년부터 시작하겠다고 청하십시오."

여공은 그 말에 따라 서찰을 작성하여 송나라에 보내게 했다. 먼저 백벽 30쌍, 황금 3,000일(鎰)을 보내고, 세 곳의 성에서 바칠 부세를 겨울 초에 보내기로 약속했다.

사자가 돌아가 보고하자 송 장공은 대로하여 말했다. "돌이 죽게 된 것을 내가 살려 주었고, 돌이 빈천한 때에 내가 부귀를 누리게 해 주었다.  구구하게 약속한 것들은 모두 세자 홀의 재물인데, 돌이 어찌하여 주기로 약속해 놓고 감히 인색하게 굴 수 있는가?" 

당일로 또 정나라에 사자를 보내 반드시 약속한대로 보내줄 것을 독촉하게 했다.  또 군주로 즉위하면 주기로 한 세 곳의 성도 부세로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였다. 

여공은 또 재족과 상의하여 재차 곡식 2만종을 보냈다. 

송나라 사자가 갔다가 다시 와서 말을 전했다. "만약 약속한 수량을 채우지 않으려고 한다면 제족이 스스로 송나라에 와서 답변하라." 

제족이 여공에게 말했다. "송공은 우리나라의 선군이신 장공의 큰 은덕을 입고도 조금도 은혜를 갚지 않았습니다. 지금 군주를 세운 공을 믿고 재물을 탐하는 것이 끝이 없으며 또 말을 하는 것이 무례하니 들어줄 수 없습니다. 신은 제나라와 노나라에 사자를 보내 도움을 받을 방도를 찾아보시기를 청합니다." 

여공이 물었다. "제나라와 노나라에서 정나라를 위해 힘을 써 주겠소?"

제족이 말했다. "지난 날 우리 선군께서 허나라와 송나라를 치실 때, 제나라와 노나라는 함께 일하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노나라 제후가 즉위한 데에는 실제로 우리 선군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제나라는 정나라에 후하게 대하지 않더라도 노나라는 거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공이 물었다. "도움을 받을 방도는 무엇이 있소?"

제족이 대답했다. "처음에 화독이 군주를 시해하고 공자 풍을 세울 때 우리 선군께서는 제나라와 노나라와 더불어 모두 뇌물을 받고 일을 성사시킨 것입니다.  노나라에서는 고(郜)의 대정(大鼎 : 큰 솥)을 받았고, 우리 나라 또한 상이(商彛 : 祭器로 큰 술병)를 받았습니다. 이번에 제나라와 노나라에 사정을 알리고 대정을 돌려 받아, 송나라에 상이와 대정을 돌려보낸다면, 송나라에서는 옛 정을 생각하고 반드시 부끄러워하여 스스로 그칠 것입니다."

여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과인이 그대의 말을 들으니 꿈에서 막 깨어난 듯 합니다." 

즉시 사자에게 예물을 가지고 제나라와 노나라에 가서 새로이 군주가 즉위하였음을 고하고,  또 송나라 사람들이 은덕을 배신한 사정과 뇌물요구를 그치지 않는 일을 호소하게 하였다. 

사신이 노나라에 도착하여 명을 전하자 노 환공이 웃으며 말했다. "옛날 송공은 폐읍에 뇌물로 다만 솥 하나를 주었을 뿐이었다.  지금 정나라로부터 이미 뇌물을 많이 받았는데도 오히려 뜻에 차지 않는단 말인가? 과인이 몸소 그 일을 맡으리라. 바로 송나라에 가서 너희 군주를 위해 해결할 방도를 찾으리라."

사자가 사례하고 정나라로 떠났다.

 

 

 

再說鄭使至齊致命,齊僖公向以敗戎之功,感激子忽,欲以次女文姜連姻。雖然子忽堅辭,到底齊侯心內,還偏向他一分。今日鄭國廢忽立突,齊侯自然不喜。謂使者曰:「鄭君何罪,輒行廢立?爲汝君者,不亦難乎?寡人當親率諸侯,相見於城下。」 禮幣俱不受。使者回報厲公。厲公大驚,謂祭足曰:「齊侯見責,必有干戈之事,何以待之?」 祭足曰:「臣請簡兵蒐乘,預作準備,敵至則迎,又何懼焉?」

  

 

한편, 정나라 사자가 제나라에 도착하여 명을 전하자, 제나라 희공은 지난 날 융을 물리친 공으로 세자 홀에게 감격하여 차녀인 문강을 시집보내 인맥(姻脈)으로 연결하려고 했었다.  비록 세자 홀이 완강히 사양하여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제후의 마음 속에는 오히려 그를 향해 조금은 호감이 남아 있었다.  지금 정나라에서 군주인 홀을 폐하고 돌을 군주로 세운데 대해 제후는 자연히 불쾌한 마음이 일었다.

그리하여 사자에게 말했다. "정나라 군주가 무슨 죄가 있어서 갑자기 폐하고 새로운 군주를 세웠는가? 그대의 군주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  과인은 마땅히 제후들과 함께  정나라의 성 아래로 가서 만나보리라."

그리고 예물도 모두 받지 않았다.  사자가 돌아가 여공에게 알리자 여공이 크게 놀라 제족에게 물었다.

"제후가 나를 책망한다는 것은 반드시 군사행동을 하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막아야 되겠소?" 

제족이 대답했다. "병사를 뽑고 수레를 모아 미리 준비하고 적이 이르면 맞아 싸우면 되는데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且說魯桓公遣公子柔往宋,訂期相會。宋莊公曰:「旣魯君有言相訂,寡人當躬造魯境,豈肯煩君遠辱?」 公子柔返命。魯侯再遣人往約,酌地之中,在扶鍾爲會。時周桓王二十年秋九月也。

  

宋莊公與魯侯會於扶鍾。魯侯代鄭稱謝,並爲求寬。宋公曰:「鄭君受寡人之恩深矣!譬之雞卵,寡人抱而翼之,所許酬勞,出彼本心。今歸國篡位,直欲負諾,寡人豈能忘情乎?」 魯侯曰:「大國所以賜鄭者,鄭豈忘之?但以嗣服未久,府庫空虛,一時未得如約。然遲速之間,決不負諾。此事寡人可以力保。」 宋公又曰:「金玉之物,或以府庫不充爲辭。若三城交割,只在片言,何以不決?」 魯侯曰:「鄭君懼失守故業,遺笑列國,故願以賦稅代之。聞已納粟萬鍾矣。」 宋公曰:「二萬鍾之入,原在歲輸數內,與三城無涉。況所許諸物,完未及半。今日尚然,異日事冷,寡人更何望焉?惟君早爲寡人圖之!」 魯侯見宋公十分固執,怏怏而罷。

 

 

한편 노나라 환공은 공자 유(柔)를 송나라에 보내 만날 약속을 정하게 하였다. 

송 장공이 말했다. "노나라 군주께서 만나자는 말씀을 하셨으니 과인이 마땅히 노나라 국경에까지 가겠소.  어찌 번거롭게 군주께서 먼길을 오시게 하겠소?"

공자 유가 돌아가 보고하였다.  노후는 다시 사람을 보내 작(酌)의 땅 부종(扶鍾)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때는 조 환왕 20년 추(秋) 9월이었다. 

송나라 장공은 노후와 부종에서 만났다. 노후는 정나라를 대신하여 치하하고 아울러 관대한 처분을 요청했다.

송공이 말했다. "정군(鄭君)은 과인으로부터 깊은 은덕을 받았습니다. 비유하자면 계란을 과인이 품어 날개를 달아준 것입니다. 공로에 대한 보답을 하기로 약속한 것은 그의 본심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지금 귀국하여 군주의 지위를 빼앗고는 바로 약속한 것을 저바리고자 하니 과인이 어찌 그 뜻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노후가 말했다. "대국에서 정나라에 은덕을 베푸신다면 정나라에서 어찌 그것을 잊겠습니까?  다만 후사를 이어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부고가 빌 것을 염려하여 일시적으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반드시 약속한 것을 저바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일은 과인이 보장할 수 있습니다."

송공이 또 말했다. "금과 옥같은 물건은 혹 부고에 없어서 거절한다 하더라도, 세 곳의 성을 할양하는 일과 같은 것은 다만 한 마디의 말이면 되는데 어찌 결행을 하지 않는 것입니까?"

노후가 말했다. "정군은 옛 가업을 잃고 다른 나라의 웃음꺼리가 될까 두려워 부세로 대신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미 곡식 만종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송공이 말했다. "2만종은 이미 들어 왔지만 원래 보내기로 한 수량에 미치지도 못하며 세 곳의 성과는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약속했던 물건들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오늘에도 그러한데 훗날에는 더할 것이라 과인이 또 어찌 바랄 수 있겠습니까? 오직 군주께서 과인을 위해 빨리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십시오!"

노후는 송공이 심하게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보고 씁쓸하게 돌아섰다.                 

 

 

  

魯侯歸國,即遣公子柔使鄭,致宋公不肯相寬之語。鄭伯又遣大夫雍糾捧著商彝,呈上魯侯,言:「此乃宋國故物,寡君不敢擅留,請納還宋府庫,以當三城。更進白璧三十雙,黃金二千鎰,求君侯善言解釋。」 魯桓公情不能已,只得親至宋國,約宋公於穀邱之地相會。二君相見禮畢,魯侯又代鄭伯致不安之意,呈上白璧黃金如數。魯侯曰:「君謂鄭所許諸物,完未及半。寡人正言責鄭,鄭是以勉力輸納。」 宋公並不稱謝,但問:「三城何日交割?」 魯侯曰:「鄭君念先人世守,不敢以私恩之故,輕棄封疆。今奉一物,可以相當。」 即命左右將黃錦袱包裹一物,高高捧著,跪獻於宋公之前。宋公聞說「私恩」二字,眉頭微皺,已有不悅之意。及啟袱觀看,認得商彝,乃當初宋國賂鄭之物,勃然變色;佯爲不知,問:「此物何用?」 魯侯曰:「此大國故府之珍。鄭先君莊公,向曾效力於上國,蒙上國貺以重器。藏爲世寶, 嗣君不敢自愛,仍歸上國。乞念昔日更事之情, 免其納地。鄭先君咸受其賜,豈惟嗣君?」 宋公見提起舊事,不覺兩頰發赤,應曰:「往事寡人已忘之矣,將歸問之故府。」 正議論間,忽報:「燕伯朝宋,駕到穀邱。」 宋公即請燕伯與魯侯一處相見。燕伯見宋公,訴稱:「地鄰於齊,嘗被齊國侵伐。寡人願邀君之靈,請成於齊,以保社稷。」 宋公許之。魯侯謂宋公曰:「齊與紀世仇,嘗有襲紀之心。君若爲燕請成,寡人亦願爲紀乞好,各修和睦,免搆干戈。」三君遂一同於穀邱結盟。魯桓公回國,自秋至冬,並不見宋國回音。

 

貺 : 줄 황. 주다. 하사하다. 선물, 하사품.

 

 

노후는 귀국하자 바로 공자 유(柔)를 정나라에 사자로 보내 송공이 관용을 베풀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을 전했다. 정백은 또 대부 옹규를 노후에게 파견하여 상이(商彛)를 받들어 노후에게 바치고 말하게 했다. 

"이것은 송나라에서 본래 가지고 있던 물건으로 저희 군주께서 감히 마음대로 정나라에 놔두지 못하고 송나라에 반환하여 세 곳의 성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또 백벽 30쌍, 황금 2천 일을 진상하니 군후께서 좋은 말로 해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환공은 인정상 물리치지 못하고 직접 송나라에 가서 송공과 곡구(穀邱)의 땅에서 만나자고 제의했다. 두 군주가 서로 만나 예를 마친 후 노환공은 정백을 대신하여 불안한 뜻을 전하고 백벽과 황금을 전부 바쳤다. 

노후가 말했다. "군주께서는 정나라에서 바치기로 약속한 물건들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과인이 그 말씀으로 정백을 꾸짖었더니 정백이 이것을 힘써 보내왔습니다."

송공은 전혀 치하하지도 않고 묻기만 했다. "세 곳의 성은 언제 넘겨준다고 했습니까?"

노후가 말했다. "정군은 조상들이 대대로 지켜온 것임을 생각하고 감히 사사로운 은혜때문에 경솔하게 봉토를 포기하지 못합니다. 지금 정나라에서 보내온 하나의 물건을 바치는데  이것으로 세 곳의 성 문제를 충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시 좌우에 명하여 황금색 비단보자기로 싼 물건을 가져오게 하여, 높이 받들어 송공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바치게 했다.  송공은 '사은(私恩)'이라는 두 마디를 듣고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매우 불쾌한 마음이 일었었다.  보자기를 열어 보자 상이임을 알아보았는데 그것은 애초에 송나라에서 정나라에 뇌물로 바친 물건이라 발연히 낯빛이 변했지만 모르는체 하고 물었다. "이 물건은 무엇에 쓰는 것입니까?"

노후가 말했다. "이것은 본래 대국에서 부고에 보관해왔던 보배입니다. 정나라 선군인 장공이 지난 날 상국에 도움을 준 댓가로 상국에서 소중히 여기던 기물을 정나라에 바친 것입니다. 그것은 귀국에서 대대로 이어받아 보관해온 보배로 정나라의 새로운 군주가 감히 스스로 가지고 있을 수 없어 상국에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옛 일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세 성을 바칠 책임을 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선군인 장공께서는 귀국에서 바치는 것을 모두 받았지만 어찌 새로운 군주조차 그렇게 하겠습니까?"

송공은 노후가 옛 일을 제기하는 것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양 볼을 붉히며 말했다.

"지난 일은 과인은 이미 잊었습니다. 돌아가면 옛 관리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한창 의논하는 중에 갑자기 보고가 들어왔다. "연백(燕伯)이 송나라에 군주를 알현하고자 왔다가 수레가 곡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송공이 바로 연백을 들어오게 해 노후와 한 곳에서 만났다. 

연백이 송공을 만나자 하소연했다. "연나라의 땅이 제나라와 이웃해 있는데 항상 제나라의 침략을 당하고 있습니다.  과인은 군주께서 은덕을 베풀어 제나라와 화해하여 사직을 보전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송공이 허락하자 노후가 송공에게 말했다. "제나라와 기(紀)나라는 누대에 걸친 원한으로 제나라는 항상 기나라를 습격할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주께서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 화해를 청하신다면, 과인도 또한 기나라를 위해 화해를 청하여, 각 나라들이 화목하게 지내도록 하고 전쟁에서 헤어나게 하고자 합니다." 

세나라 군주가 마침내 곡구에서 함께 맹약을 맺었다. 노나라 환공은 귀국한 후 가을부터 겨울까지 송나라의 회신을 받지 못했다.                             

 

  

鄭國因宋使督促財賄,不絕於道,又遣人求魯侯。魯候只得又約宋公於虛龜之境面會,以決平鄭之事。宋公不至,遣使報魯曰:「寡君與鄭自有成約,君勿與聞可也。」 魯侯大怒,罵曰:「匹夫貪而無信,尙然不可,況國君乎?」 遂轉轅至鄭,與鄭伯會於武父之地,約定連兵伐宋。

 

 

정나라에서는 송나라 사신의 재물을 바치라는 독촉으로 연락이 끊이지 않자 또 노후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노후는 오직 또 송공과 허구(虛龜)의 경계에서 만나 정나라의 일을 결정하고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송공은 오지 않고 사자를 보내 노후에게 말했다. "과군이 정백과 더불어 스스로 약속한 것이므로 군주께서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노후가 대로하여 꾸짖었다. "필부도 탐욕스럽고 믿음이 없으면 오히려 좋지 않은데 하물며 나라의 군주임에랴?"

마침내 수레를 돌려 정나라에 도착하여 정백과 무부(武父)의 땅에서 회동하고 군대를 연합하여 송나라를 치기로 하였다.         

 

 

髯翁有詩云:

逐忽弒隱並元兇,

同惡相求意自濃。

只爲宋莊貪詐甚,

致令魯鄭起兵鋒。

 

 

염옹이 시를 지어 남겼다.

 

홀(忽)을 쫒아내고, 은공(隱公)을 시해하였으니 모두 원흉인데,

똑같은 악당이 서로 도우려는 뜻이 농후하구나. 

단지 송나라 장공의 심한 탐욕과 거짓 때문에,

노나라와 정나라가 군사를 일으키게 되었구나. 

 

 

 

宋莊公聞魯候發怒,料想歡好不終。又聞齊侯不肯助突,乃遣公子游往齊結好,訴以子突負德之事:「寡君有悔於心,願與君協力攻突,以復故君忽之位,並爲燕伯求平。」 使者未返,宋疆吏報:「魯鄭二國興兵來伐,其鋒甚銳,將近睢陽。」 宋公大驚,遂召諸大夫計議迎敵。公子御說諫曰:「師之老壯,在乎曲直。我貪鄭賂,又棄魯好,彼有詞矣。不如請罪求和,息兵罷戰,乃爲上策。」 南宮長萬曰:「兵至城下,不發一矢自救,是示弱也。何以爲國?」 太宰督曰:「長萬言是也。」 宋公遂不聽御說之言,命南宮長萬爲將。長萬薦猛獲為先鋒,出車三百乘。兩下排開陣勢。魯侯鄭伯並駕而出,停車陣前,單搦宋君打話。宋公心下懷慚,託病不出。南宮長萬遠遠望見兩枝繡蓋飄揚,知是二國之君。乃撫猛獲之背曰:「今日爾不建功,更待何時?」猛獲應命,手握渾鐵點鋼矛,麾車直進。魯鄭二君看見來勢兇猛,將車退後一步。左右擁出二員上將,魯有公子溺,鄭有原繁,各駕戎車迎住。先問姓名,答曰:「吾乃先鋒猛獲是也。」 原繁笑曰:「無名小卒,不得污吾刀斧,換你正將來決一死敵。」 猛獲大怒,擧矛直到原繁。原繁掄刀接戰。子溺指引魯軍,鐵葉般裹來。猛獲力戰二將,全無懼怯。魯將秦子梁子,鄭將檀伯,一齊俱上。猛獲力不能加,被梁子一箭射著右臂,不能持矛,束手受縛。兵車甲士,盡爲俘獲,只逃走得步卒五十餘人。南宮長萬聞敗,咬牙切齒曰:「不取回猛獲,何面目入城?」 乃命長子南宮牛,引車三十乘搦戰:「佯輸詐敗,誘得敵軍追至西門,我自有計。」 南宮牛應聲而出,橫戟大罵:「鄭突背義之賊,自來送死,何不速降?」 剛遇鄭將引著弓弩手數人,單車巡陣,欺南宮牛年少,便與交鋒。未及三合,南宮牛回車便走,鄭將不捨,隨後趕來。將近西門,砲聲大擧,南宮長萬從後截住,南宮牛回車,兩下夾攻。鄭將連發數箭,射南宮牛不著,心裏落慌,被南宮長萬躍入車中,隻手擒來。鄭將原繁,聞知本營偏將單車赴敵,恐其有失,同檀伯引軍疾驅而前。只見宋國城門大開,太宰華督自率大軍,出城接應。這裏魯將公子溺,亦引秦子梁子助戰。兩下各秉火炬,混殺一場,直殺至雞鳴方止。宋兵折損極多。南宮長萬將鄭將獻功,請宋公遣使到鄭營,願以鄭將換回猛獲。宋公許之。宋使至於鄭營,說明交換之事。鄭伯應允,各將檻車推出陣前,彼此互換。鄭將歸於鄭營,猛獲仍歸宋城去了。是日各自休息不戰。

 

掄 : 가릴 륜(론). 가리다. 선택함. 꿰뚫다. 일관함.      剛 : 지금, 바야흐로. 

 

 

송장공은 노후가 화를 내고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좋은 관계는 끝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또 제나라 제후가 정나라의 새로운 군주인 돌(突)을 도우려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 유(游)를 제나라에 보내 결연을 맺도록 하며 돌이 은덕을 배신한 일을 하소연하게 했다. "저희 군주께서는 돌을 도운 일을 매우 후회하시며 군주와 협력하여 돌을 쳐 옛 군주인 홀(忽)을 복위시키기를 원하시고, 아울러 연백(燕伯)과 우호관계를 맺으시기를 청합니다."

사자가 돌아가지도 않았는데 송나라에서는 국경을 지키는 관리가 보고했다.

"노나라와 정나라 두 나라에서 군대를 일으켜 쳐들어 왔는데 그 기세가 매우 날카로우며 수양(睢陽)에 거의 접근했습니다."

송공이 크게 놀라 대부들을 소집하여 적을 맞을 계책을 논의했다. 

공자 어설(御說)이 간했다. "군대의 강약은 명분이 그르냐 옳으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정나라의 뇌물을 탐하고, 또 노나라의 호의를 저버려서 저쪽에 할 말이 생겼습니다. 죄를 청하고 강화를 구하느니만 못합니다. 군사를 쉬게 하고 싸움을 그치는 것이 상책입니다."

남궁장만이 말했다. "적의 군사가 성아래에 이르렀는데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 뿐인데,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태재 화독이 말했다. "장만의 말이 맞습니다." 

송공은 마침내 어설의 간언을 물리치고 남궁장만을 장수로 삼았다.  장만은 맹획(猛獲)을 천거하여 선봉으로 삼고 병거 3백대로 출진했다. 

양군이 진세를 펼치고 나자 노후와 정백이 수레를 나란히 하고 나와 진 앞에 섰다. 오직 송후와 대화를 하자고 했다. 

송공은 부끄러워 병을 핑계대고 나가지 않았다. 남궁장만이 보니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두 개의 버팀목에 수놓은 덮개가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어 바로 두 나라의 군주라는 것을 알았다. 

이에 맹획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오늘 네가 공을 세우지 않고 또 어느 때를 기다리겠느냐?" 

맹획이 명에 따라 손에 혼철점강모를 잡고 수레를 지휘하여 곧바로 나아갔다.  노정(魯鄭) 두 나라의 군주는 달려오는 기세가 사나운 모습을 보고 수레를 약간 뒤로 물렸다.  좌우에서 두 사람의 상장(上將)이 나와 앞을 막았는데, 노나라의 공자 익(溺)과 정나라의 원번(原繁)이 각각 융거(戎車)를 타고 나와 맞으며 먼저 성명을 물었다.

맹획이 대답했다. "나는 바로 선봉 맹획이다."

원번이 웃으며 말했다. "이름도 없는 하찮은 졸병에게 내 무기를 더럽힐 수 없으니 네 대장에게 바꿔 나와 대결하자고 해라."  

맹획이 대로하여 창을 들고 언번을 향해 짓쳐나갔다. 원번이 칼을 휘둘러 싸우기 시작했다. 공자 익이 노나라 병사들을 이끌고 철로 된 방어벽 안에서 나왔다.  맹획이 힘을 다하여 두 장수와 싸우는데 전혀 두려워 함이 없었다.  노나라 장수 진자(秦子)와 양자(梁子), 정나라 장수 단백(檀伯)이 일제히 나아갔다.  맹획이 다섯 명을 상대하게 되자 힘이 딸리는데 양자의 화살 한 발이 오른 쪽 팔에 꽂혀 창을 잡을 수가 없어 꼼짝 못하고 포박을 당했다.  병거와 갑사들도 모두 사로잡히고 노획당했으며 도망자는 보졸 오십여명뿐이었다. 

남궁장만은 패전 소식을 듣자 이를 갈며 말했다. "맹획을 되찾아 오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성에 돌아가겠는가?"

큰 아들 남궁우(南宮牛)에게 명하여 병거 삼십대를 이끌고 가서 싸움을 걸도록 하였다.

"거짓 패하여 적군을 서문까지 추격하도록 유인해라. 나에게 계책이 있다."

남궁우가 그 말에 따라 창을 빗겨들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정나라 군주 돌(突)은 의를 저버린 도적인데 스스로 죽으러 왔으면서 어찌 빨리 항복하지 않느냐?"

그 때 정나라 장수가 궁노수 몇명을 이끌고 병거 한대로 진을 돌다가 남궁우가 나이 어린 것을 얕잡아 보고 바로 싸우게 되었는데 세 합도 되지 않아 남궁우가 수레를 돌려 도주하자 정나라 장수는 놓치지 않고 뒤쫒아 왔다.  서문에 가까워지자 포성이 크게 일며 남궁장만이 뒤쫒으며 뒤를 차단하고 도주하던 남궁우는 수레를 돌려 앞뒤로 협공했다. 정나라 장수는 연달아 수차례 화살을 날렸으나 남궁우를 맞히지 못하자 마음이 다급해졌는데 남궁장만이 수레안으로 뛰어들어 두손으로 사로잡았다.

정나라 장수 원번은 본영의 편장(偏長)이 수레 한대로 적을 쫒아 갔다는 말을 듣고 그를 잃을까 두려워 단백과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앞으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단지 보이는 것은 송나라 성문이 크게 열려 있는데 태재 화독이 스스로 대군을 인솔하고 성을 나와 맞이했다.  이 쪽 안에서도 노나라 장수 공자 익(溺)이 역시 진자와 양자를 인솔하고 나와 싸움을 도왔다.  양쪽에서 각 횃불을 들고 한바탕 혼전하였는데 닭이 울때 쯤이 되어서야 싸움이 그쳤다.  송나라 군사의 손실이 매우 많았다. 남궁장만은 정나라 장수를 사로잡는 공을 세웠는데  송공에게 정나라 병영으로 사자를 보내 정나라 장수와 맹획을 교환하기를 바란다고 승락해 주기를 청했다.  송공이 허락하자 송나라 사자가 정나라 군영에 이르러 장수를 교환하는 일을 설명하자 정백도 허락하여 각 함거에 실어 진영 앞으로 보내므로써 교환이 이루어졌다. 정나라 장수는 정나라 군영으로 돌아갔고 맹획도 송나라 성으로 돌아갔다. 이날 각 진영은 스스로 휴식을 취하며 싸움이 없었다.                 

 

 

 

卻說公子游往齊致命,齊僖公曰:「鄭突逐兄而立,寡人之所惡也。但寡人方有事於紀,未暇及此,倘貴國肯出師助寡人伐紀,寡人敢不相助伐鄭?」公子游辭了齊侯,回復宋公去訖。

 

 

한편 공자 유(游)는 제나라에 가서 명을 전했는데 제희공이 말했다. "정나라 새 군주 돌(突)은 형을 쫒아내고 스스로 군주가 되었으니 과인이 싫어하는 것이오. 단지 과인은 지금 막 기(紀)나라와 변고가 생겨 이를 돌아볼 틈이 없으니 귀국에서 군사를 내보내 과인이 기나라를 치는 일을 돕는다면 과인이 감히 정나라 치는 일을 돕지 않을 수 있겠소?" 

공자 유가 제후를 작별하고 송나라로 돌아가 송공에게 보고했다.  

  

 

 

再說魯侯與鄭伯在營中,正商議攻宋之策,忽報:「紀國有人告急。」 魯侯召見,呈上國書,內言:「齊兵攻紀至急,亡在旦夕。乞念婚姻世好,以一旅拔之水火。」 魯桓公大驚,謂鄭伯曰:「紀君告急,孤不得不救。宋城亦未可猝拔,不如撤兵。量宋公亦不敢復來索賂矣。」 鄭厲公曰:「君旣移兵救紀,寡人亦願悉率敝賦以從。」 魯侯大喜,即時傳令拔寨,齊望紀國進發。魯侯先行三十里,鄭伯引軍斷後。宋國先得了公子游回音,後知敵營移動,恐別有誘兵之計,不來追趕,只遣諜遠探。回報:「敵兵盡已出境,果往紀國。」 方纔放心。太宰華督奏曰:「齊旣許助攻鄭,我國亦當助其攻紀。」 南宮長萬曰:「臣願往。」 宋公發兵車二百乘,仍命猛獲爲先鋒,星夜前來助齊。

 

猝 : 갑자기 졸. 갑자기. 느닷없이. 창졸. 빠르다. 급속함. 갑자기 지르는 성난 목소리.

 

 

노후와 정백이 군영 안에서 송나라를 공격할 계책을 상의하고 있는데 홀연히 보고가 들어왔다.

"기(紀)나라에서 사람이 왔는데 급히 고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노후가 불러서 만나보니 국서를 바쳤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제나라 군대가 기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매우 급하여 존망이 조석에 달려있습니다.  바라옵건대 혼인으로 대대로 좋은 관계를 맺어온 일을 생각하시어 적은 군사라도 보내 주시어 위급한 상황을 도와주소서."

노환공이 크게 놀라 정백애개 말했다. "기나라 군주가 급한 상황을 알리니 고(孤)가 가서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송나라 성 역시 빨리 뽑히지 않을 것 같으니 군대를 철수하는 것만 못합니다. 헤아리건데 송공 또한 감히 또 뇌물을 독촉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 여공이 말했다. "군주께서 군사를 움직여 기나라를 도우신다면 과인 또한 제 군사를 모두 거느리고 뒤따르겠습니다." 

노후가 크게 기뻐하고 즉시 영을 내려 영채를 뽑고 일제히 기(紀)나라를 향해서 진발하였다.  노후는 먼저 출발하여 삼십리를 간 후에 정백은 군대를 이끌고 뒤를 끊었다.  송나라에서는 먼저 공자 유(游)의 회신을 받았는데 후에 적의 군영이 이동한 사실을 알고 따로 군대를 유인하는 계책이 있을까 두려워 뒤쫒지 않고 다만 첩자를 파견하여 멀리까지 나가서 알아보게 하였다. 

돌아와 보고하기를, "적병은 모두 이미 국경을 넘어 마침내 기나라로 갔습니다." 하였다. 겨우 마음을 놓았는데 태재 화독이 아뢰었다.

"제나라는 이미 우리 나라가 정나라 치는 일을 돕기로 약속하였으니 우리나라 또한 제나라가 기나라 치는 일을 돕는 것이 마땅합니다."

남궁장만이 말했다. "신이 가겠습니다."

송공이 병거 이백대를 내어 주고 맹획을 선봉으로 삼아 밤새도록 달려가서 제나라를 돕게 하였다.

  

 

  

卻說齊僖公約會衛侯,並徵燕兵。衛方欲發兵,而宣公適病薨。世子朔即位,是爲惠公。惠公雖在喪中,不敢推辭,遣兵車二百乘相助。燕伯懼齊呑並,正欲借此修好,遂親自引兵來會。紀侯見三國兵多,不敢出戰,只深溝高壘,堅守以待。忽一日報到:「魯鄭二君,前來救紀。」 紀侯登城而望,心中大喜,安排接應。

 

 

한편 제희공은 위후(衛侯)와 회동하고 연(燕)나라 군을 불러 함께 하기로 하였다.  위나라에서는 막 군대를 일으키려고 하는데 때마침 선공이 병으로 죽었다.  세자 삭(朔)이 즉위하였는데 바로 혜공이다. 혜공은 비록 상중이지만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병거 2백대를 보내 도왔다. 연백(燕伯)은 제나라가 병탄할까 두려워 하여 이 기회를 빌어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친히 군대를 이끌고 와서 만났다. 

기후(紀侯)는 세 나라의 군사가 많은 것을 보고 감히 출전하지는 못하고, 다만 해자(垓字)를 깊이 파고 성을 높이 쌓아  굳게 지키며 대적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보고가 이르렀는데, "노나라, 정나라 두나라의 군주가 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라고 했다. 

기후가 성에 올라 바라보며 매우 기뻐하고 맞이할 준비를 했다.  

  

 

 

再說魯侯先至,與齊侯相遇於軍前。魯侯曰:「紀乃敝邑世姻,聞得罪於上國,寡人躬來請赦。」 齊侯曰:「吾先祖哀公爲紀所譖,見烹於周,於今八世,此仇未報。君助其親,我報其仇,今日之事,惟有戰耳。」 魯侯大怒,即命公子溺出車。齊將公子彭生接住廝殺。彭生有萬夫不當之勇,公子溺如何敵得過?秦子、梁子二將,並力向前,未能取勝,剛辦得架隔遮攔。衛燕二主,聞齊魯交戰,亦來合攻。卻得後隊鄭伯大軍已到,原繁引檀伯眾將,直衝齊侯老營,紀侯亦使其弟嬴季,引軍出城相助,喊聲震天。公子彭生不敢戀戰,急急回轅。六國兵車,混做一處相殺。魯侯遇見燕伯,謂曰「穀邱之盟,宋、魯、燕三國同事。口血未乾,宋人背盟,寡人伐之。君亦效宋所為,但知媚齊目前,獨不為國家長計乎?」 燕伯自知失信。垂首避去,託言兵敗奔逃。衛無大將,其師先潰。齊侯之師亦敗,殺得屍橫遍野,血流成河。彭生中箭幾死, 正在危急,又得宋國兵到。魯鄭方纔收軍。

 

架隔 : 막다.     遮攔 : 막다. 가로막는 것.       轅 : 轅門. 군대의 주둔지 안. 진영.

 

 

노후(魯侯)는 먼저 도착하였는데 제후(齊侯)와 군영 앞에서 만났다.

노후가 말했다. "기나라는 폐읍과 대대로 혼인을 맺어 온 사이인데, 상국에 죄를 지었다고 듣고 과인이 몸소 와서 용서를 청합니다."

제후가 말했다. "우리 선조 애공께서는 기나라의 참소를 받아 주나라에서 팽형을 당한 바 있는데 지금이 팔대 째인데도 아직 이 원한을 갚지 못했습니다. 군후께서는 친척을 도우려 하지만 나는 원수를 갚으려고 하니 오늘의 일은 오직 싸움만 있을 뿐입니다."

노후가 대로하여 공자 익에게 출전을 명했다.

제나라 장수 공자 팽생(彭生)이 나와 시살했다.  팽생은 만부부당지용이 있는데 공자 익이 어찌 대적할 수 있겠는가? 진자(秦子), 양자(梁子)의 두 장수가 나가 힘을 보탰으나 이길 수가 없었고 가까스로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뿐이었다. 위나라와 연나라의 두 군주는 제나라와 노나라가 교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또한 와서 노나라 군을 합공하였다. 

그러나 후속 부대로 정백의 대군이 이미 도착하자 원번이 단백과 장수들을 인솔하고 바로 제후의 본영을 짓쳐 들어가자 기후(紀侯) 또한 동생 영계(嬴季)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성을 나가 돕게 하니 함성이 하늘을 진동했다.  공자 팽생은 감히 싸울 마음이 없어 급히 진영으로 돌아갔다.  여섯 나라의 병거가 한 곳에서 어지러이 섞여 서로 싸웠다. 

노후(魯侯)는 연백(燕伯)을 만나게 되자 연백에게 말했다. "곡구(穀邱)에서의 맹약은 송(宋), 노(魯), 연(燕)의 세나라가 변고가 있으면 함께 대처한다는 것이었소. 입에 바른 피가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송나라 사람은 맹약을 배신하여 과인이 그를 쳤었소. 군주 또한 행하는 바가 송나라를 본받고, 단지 제나라 눈앞에서 아첨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어찌 나라를 위해 장기적인 계책을 세우지 않소?"

연백은 스스로 신뢰를 잃은 것을 알고 머리를 숙이고 피했는데 싸움에서 패했다고 핑계대고 도망가버렸다.  위나라 군영에서는 대장이 없어 군대가 먼저 무너졌다.  제후의 군대도 역시 패하려 죽은 시신이 들에 널렸으며 피가 흘러 하천을 이루었다.  팽생은 화살을 맞아 거의 죽을뻔 하였으나 바로 위급한 상황에 송나라 병사들이 도착하였다. 노나라와 정나라는 바로 군사들을 거두었다.           

 

 

 

胡曾先生詠史詩云:

明欺弱小恣貪謀,

只道孤城頃刻收。

他國未亡我已敗,

令人千載笑齊侯。

 

 

호증선생이 사시(史詩)를 지어 읊었다. 

 

약소국이라 공공연하게 업신여기고 함부로 탐내어,

다만 외로운 성이라 순식간에 빼앗을 줄 알았다. 

그 나라가 망하기도 전에 먼저 패했으니,

제나라 제후는 천년의 웃음거리가 되었구나. 

 

 

 

宋軍方到,喘息未定,卻被魯鄭各遣一軍衝突前來。宋軍不能立營,亦大敗而去。各國收拾殘兵,分頭回國。齊侯回顧紀城,誓曰:「有我無紀,有紀無我,決不兩存也!」 紀侯迎接魯鄭二君入城,設享款待,軍士皆重加賞犒。嬴季進曰:「齊兵失利,恨紀愈深,今兩君在堂,願求保全之策!」 魯侯曰:「今未可也,當徐圖之。」 次日,紀侯遠送出城三十里,垂淚而別。

魯侯歸國後,鄭厲公又使人來修好,尋武父之盟,自此魯鄭爲一黨,宋齊爲一黨。時鄭國守櫟大夫子元已卒,祭足奏過厲公,以檀伯代之。此周桓王二十二年也。

 

 

송나라 군대가 도착하여 숨도 돌리지 못했는데 노나라와 정나라가 각 일 군을 보내 전방으로 돌진해 왔다. 송군은 영채도 세우지 못하고 또한 크게 패해 물러갔다.  각 나라가 남은 병사들을 수습하여 제각각 나라로 돌아갔다. 

제후는 기나라의 성에서의 싸움을 돌이켜 보고 맹세했다. "내가 살아 있다면 기나라는 없어질 것이고, 기나라가 존속하는 한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결코 함께 존재할 수 없다."

기후(紀侯)는 노나라와 정나라의 두 군주를 맞이하여 성안으로 들어가 향연을 베풀고 정성껏 대접하고 군사들 모두에게도 후하게 상을 내리고 호궤했다. 

영계(嬴季)가 잔언했다. "제나라 군사가 예기를 잃었다고 해도 기나라에 대한 원한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지금 두 군주께서 이곳에 계실 때 기나라의 보전책을 강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후가 대답했다. "지금은 가능하지 않으니, 서서히 도모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다음 날 멀리 성밖 삼십리까지 나가 전송하고 눈물을 흘리며 작별했다.

노후가 귀국한 후에 정 여공은 또 사람을 보내 우호조약을 맺어 무부의 맹약(武父之盟)을 이어가니  이로부터 노나라와 정나라가  한 편이 되고 송나라와 제나라가 한 편이 되었다.  그때 정나라에 역(櫟)을 지키던 대부 자원(子元)이 죽자 제족이 여공에게 직접 아뢰어 단백이 대신하게 했다.

이때가 주 환왕 22년의 일이었다. 

  

 

  

齊僖公爲兵敗於紀,懷憤成疾。是冬病篤,召世子諸兒至榻前囑曰:「紀吾世仇也,能滅紀者,方爲孝子。汝今嗣位,當以此爲第一件事。不能報此仇者,勿入吾廟!」 諸兒頓首受敎。僖公又召夷仲年之子無知,使拜諸兒。囑曰:「吾同母弟,只此一點骨血,汝當善視之。衣服禮秩,一如我生前可也。」 言畢,目遂瞑。諸大夫奉世子諸兒成喪即位,是爲襄公。

 

 

제나라 희공은 기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일에 분을 풀지 못해 병이 되었다. 

이해 겨울 병이 위독해지자 세자 제아를 탑전에 불러 부탁했다. 

"기나라는 우리나라의 누대에 걸친 원수라 기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어야 효자가 되는 것이다.  너는 지금 내 자리를 물려 받으면 마땅히 기나라를 멸망시키는 일을 첫번째 일로 삼아야 한다. 이 원한을 갚을 수 없다면 내 빈소에 들어오지도 말아라!" 

제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교지를 받았다. 희공은 또 이중년의 아들 무지(無知)를 불러 제아에게 절하게 하고 부탁했다.

"나의 어머니가 같은 동생에게 단지 이 아이는 일점 혈육이니 너는 마땅히 잘 돌봐야 한다. 의복과 예절의 절차가 내가 살아 있을 때와 똑 같아야 한다."  

말을 마치자 마침내 눈을 감았다. 대부들은 세자 제아를 받들어 상중에 즉위하게 하였으니 바로 양공(襄公)이다.

 

 

 

宋莊公恨鄭入骨,復遣使將鄭國所納金玉,分賂齊、蔡、衛、陳四國,乞兵復仇。齊因新喪,止遣大夫雍廩,率車一百五十乘相助。蔡衛亦各遣將同宋伐鄭。鄭厲公欲戰,上卿祭足曰:「不可!宋大國也,起傾國之兵,盛氣而來。若戰而失利,社稷難保,幸而勝,將結沒世之怨,吾國無寧日矣!不如縱之。」 厲公意猶未決。祭足遂發令,使百姓守城,有請戰者罪之。宋公見鄭師不出,乃大掠東郊。以火攻破渠門,入及大逵,至於太宮,盡取其椽以歸,爲宋盧門之椽以辱之。鄭伯鬱鬱不樂,歎曰:「吾爲祭仲所制,何樂乎爲君?」 於是陰有殺祭足之意。

 

明年春三月,周桓王病篤。召周公黑肩於牀前,謂曰:「立子以嫡,禮也。然次子克,朕所鍾愛,今以託卿。異日兄終弟及,惟卿主持。」言訖遂崩。周公遵命,奉世子佗即王位,是爲莊王。

  

 

송나라 장공은 정나라에 대한 한이 뼈에 사무쳐, 다시 정나라에 사자를 보내 황금과 옥을 바치라고 하고, 제(齊), 채(蔡), 위(衛), 진(陳) 네 나라에 뇌물을 보내 정나라에 복수할 지원군을 청했다.  제나라에서는 상을 당해 단지 대부 옹름(雍廩)을 보내 병거 백오십대를 인솔하여 돕게 했다. 채, 위 또한 각 장수들을 파견하여 송나라가 정나라를 치는 일을 함께 하게 했다. 

정 여공이 싸우려 하자 제족이 말했다. "불가합니다. 송나라는 큰 나라인데 온 나라의 힘을 기울여 군사를 일으켰으니 그 기세가 매우 성합니다. 만약 싸워 패하기라도 한다면 사직을 보전하기가 어려우며, 다행히 이긴다 해도 평생의 원한을 맺게 될 것이니 우리나라에 평안한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의견을 따르니만 못합니다."

여공이 뜻을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제족이 마침내 영을 내려 백성들로 하여금 성을 지키게 하고 싸우자고 하는 자가 있으면 벌을 내렸다.

송공은 정나라 군사가 출전하지 않는 것을 보고 동쪽 교외를 크게 약탈했다. 화공을 써서 거문(渠門)을 깨뜨리고 큰 거리까지 들어가 태궁에 이르렀는데 서까래를 모두 걷어 돌아가서는 송나라 노문(盧門)의 서까래로 사용해 정나라를 욕보였다. 

정백(鄭伯)은 우울하고 불쾌해 탄식했다. "나는 제중의 제약을 받으니 군주가 되었어도 무슨 낙이 있겠는가?" 

이리하여 은밀히 제족을 죽이려는 뜻을 품게 되었다.  

 

다음 해 봄 3월에 주 환왕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주공 흑견을 침상 앞으로 불러 말했다.

"적자인 아들을 세우는 것이 예인데, 둘째 아들 극은 짐이 사랑하는 바라 이제 그 아이를 경에게 부탁 하오. 훗날 세자인 형이 죽거든 동생인 극이 뒤를 잇도록 오직 경이 주관하여 행하시오." 

말을 마치자 마침내 붕어했다.  주공은 명을 좇아 세자 타(佗)를 왕위에 오르게 하니 바로 장왕(莊王)이다. 

 

 

  

鄭厲公聞周有喪,欲遣使行弔。祭足固諫,以爲:「周乃先君之仇,祝聃曾射王肩,若遣人往弔,祇取其辱。」 厲公雖然依允,心中愈怒。

一日,遊於後圃,止有大夫雍糾相從。厲公見飛鳥翔鳴,淒然而歎。雍糾進曰:「當此春景融和,百鳥莫不得意。主公貴爲諸侯,似有不樂之色,何也?」 厲公曰:「百鳥飛鳴自繇,全不受制於人。寡人反不如鳥,是以不樂。」 雍糾曰:「主公所慮,豈非秉鈞之人耶?」 厲公嘿然。雍糾又曰:「吾聞『君猶父也,臣猶子也。』 子不能爲父分憂,即爲不孝;臣不能爲君排難,即爲不忠。倘主公不以糾爲不肖,有事相委,不敢不竭死力!」 厲公屏去左右,謂雍糾曰:「卿非仲之愛婿乎?」 糾曰:「婿則有之,愛則未也。糾之婚於祭氏,實出宋君所迫,非祭足本心。足每言及舊君,猶有依戀之心,但畏宋不敢改圖耳。」 厲公曰:「卿能殺仲,吾以卿代之,但不知計將安出?」 雍糾曰:「今東郊被宋兵殘破,民居未復。主公明日命司徒修整廛舍,卻敎祭足賷粟帛往彼安撫居民,臣當於東郊設享,以鴆酒毒之。」 厲公曰:「寡人委命於卿,卿當仔細。」

 

 

정나라 여공은 주나라에 상이 있음을 알고 사자를 보내 조문하려고 했다.

그러나 제족이 극구 간했다. "주나라는 선군의 원수입니다. 축담이 일찌기 환왕의 어깨에 활을 쏘았었는데 만약 사람을 보내 조문한다면 다만 욕을 당할 뿐일 것입니다."

여공은 그렇다 할지라도 그 의견에 따랐으나 마음속에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하루는 후원을 거닐고 있다가 대부 옹규를 만났다. 여공은 날아가는 새가 날면서 우는 모습을 보고 처량한 마음으로 탄식했다.

옹규가 물었다. "이렇게 봄 경치가 화창하니 새들도 마음껏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귀하기가 제후의 신분이신데 불쾌한 기색이 있으신 것 같으니 무엇때문입니까?"

여공이 말했다. "온갖 새들은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우짖으면서도 전혀 사람으로부터 제약을 받지 않는데 과인은 오히려 새보다도 못하니 그때문에 즐겁지 않은 것이오." 

옹규가 물었다. "주공께서 염려하시는 것은 어찌 정권을 잡은 사람때문이 아닙니까?"

여공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러자 옹규가 또 말했다. "제가 듣건대, '군주는 아비와 같으며 신하는 아들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자식이 아비를 위하여 근심을 나누지 못하면 곧 불효이며, 신하가 군주를 위하여 어려움을 물리치지 못하면 곧 불충입니다. 주공께서 저를 어리석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일이 있을 때 맡겨 주시면 감히 죽을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공은 좌우를 물리치고 옹규에게 말했다. "경은 중(仲 : 祭足)이 사랑하는 사위가 아닌가?"

옹규가 대답했다. "사위이긴 합니다만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제씨와 혼인한 것은 사실 송나라 군주의 압박에서 나온 것이며 제족의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제족은 말할 때마다 옛 군주를 언급하며 오히려 그리워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은데 다만 송나라가 두려워 감히 바꾸려고 일을 도모하지 못할 뿐입니다."

여공이 말했다. "경이 제족을 죽일 수 있다면 나는 경에게 그의 직책을 대신하게 하겠소. 다만 계책을 어떻게 실행할지 모르겠소."

옹규가 말했다. "지금 동쪽 교외가 송나라 군사들에게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의 집도 아직 복구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내일 사도에게 명을 내리시어 가게와 집들을 수리하고 정비하게 하시고, 제족에게 이르시어 곡식과 비단을 가지고 가서 주민들을 위로하게 하신다면 신은 동쪽 교외에 향연을 베풀고 술에 독을 타서 그를 독살하겠습니다."

여공이 말했다. "과인은 경에게 목숨을 맡기니 경은 마땅히 조심하시오."         

 

 

  

雍糾歸家,見其妻祭氏,不覺有皇遽之色。祭氏心疑,問:「朝中今日有何事?」 糾曰:「無也。」 祭氏曰:「妾未察其言,先觀其色,今日朝中,必無無事之理。夫婦同體,事無大小,妾當與知。」 糾曰:「君欲使汝父往東郊安撫居民,至期,吾當設享於彼,與汝父稱壽,別無他事。」 祭氏曰:「子欲享吾父,何必郊外?」 糾曰:「此君命也,汝不必問。」 祭氏愈疑。乃醉糾以酒,乘其昏睡,佯問曰:「君命汝殺祭仲,汝忘之耶?」糾夢中糊塗應曰:「此事如何敢忘?」早起,祭氏謂糾曰:「子欲殺吾父,吾已盡知矣。」 糾曰:「未嘗有此。」 祭氏曰:「夜來子醉後自言,不必諱也。」 糾曰:「設有此事,與爾何如?」 祭氏曰:「旣嫁從夫,又何說焉?」 糾乃盡以其謀告於祭氏。祭氏曰:「吾父恐行止未定。至期,吾當先一日歸寧,慫恿其行。」 糾曰:「事若成,吾代其位,於爾亦有榮也。」

 

恿 : 날랠 용. 날래다. 용감하다. 과감하다. 결단력이 있다. 강하다. 용기가 있다. 다툼. 용사. 병사.      慫恿 : 종용하다. 권하다. 꼬드기다.

 

 

옹규가 집에 돌아가 부인 제씨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제씨가 의심이 일어 물었다. "오늘 조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옹규가 대답했다. "없었소."

제씨가 말했다. "제가 그 말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앞서 낭군의 기색을 보았을 때 오늘 조정에서 반드시 아무일도 없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부는 한 몸인데 일이 크건 작던간에 상관없이 제게 알려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옹규가 말했다. "군주께서 그대의 부친으로 하여금 동쪽 교외로 나가서 주민들을 위로하게 하셨는데, 그 때 나는 장인에게 향연을 베풀어 그대의 부친에게 장수를 빌 것이며 달리 특별한 일은 없소."

제씨가 물었다. "낭군께서 아버님께 향연을 베푸는 일을 하필이면 교외에서 합니까?

옹규가 대답했다. "그것은 군주의 명이니 그대는 물을 필요 없소." 

제씨는 더욱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옹규에게 술을 권해 취하게 하고 정신이 몽롱한 틈을 이용해 건너짚고 물었다.

"군주는 그대에게 제중을 죽이라고 명했는데 그대는 그 일을 잊었는가?"

옹규는 비몽사몽간에 얼버무리듯 말했다. "그일을 감히 어찌 잊겠소?"

다음날 아침 제씨가 옹규에게 말했다. "낭군께서 아버님을 죽이려고 하는 일을 저는 이미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옹규가 말했다. "그런 일 없소."

제씨가 말했다. "지난 밤 들어오신 후 낭군께서 술에 취해 하신 말씀인데 숨길 필요 없습니다." 

옹규가 물었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면 그대는 어찌 하겠소?"

제씨가 대답했다. "이미 출가하여 남편을 따르고 있는데, 또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옹규는 그리하여 제씨에게 그 부친을 죽이려고 도모한 일을 모두 말해 주었다. 

제씨가 말했다. "아버님께서 가실지의 여부는 아마 미정일 것입니다. 그때 제가 마땅히 하루전에 친정에 가서 가시도록 권하겠습니다."

옹규가 말했다. "일이 성사되면 내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며 그대에게도 영화가 있을 것이오."

 

 

  

祭氏果先一日回至父家,問其母曰:「父與夫二者孰親?」 其母曰:「皆親。」 又問:「二者親情孰甚?」 其母曰:「父甚於夫。」 祭氏曰:「何也?」 其母曰:「未嫁之女,夫無定而父有定;已嫁之女,有再嫁而無再生。夫合於人,父合於天,夫安得比於父哉?」 其母雖則無心之言,卻點醒了祭氏有心之聽,遂雙眼流淚曰:「吾今日爲父,不能復顧夫矣!」 遂以雍糾之謀,密告其母。其母大驚,轉告於祭足。祭足曰:「汝等勿言,臨時吾自能處分。」 至期,祭足使心腹强鉏,帶勇士十餘人,暗藏利刃跟隨。再命公子閼率家甲百餘,郊外接應防變。祭足行至東郊,雍糾半路迎迓,設享甚豐。祭足曰:「國事奔走,禮之當然,何勞大享。」 雍糾曰:「郊外春色可娛,聊具一酌節勞耳。」 言訖,滿斟大觥,跪於祭足之前,滿臉笑容,口稱百壽。祭足假作相攙,先將右手握糾之臂,左手接杯澆地,火光迸裂。遂大喝曰:「匹夫何敢弄吾!」 叱左右:「爲我動手。」 强鉏與眾勇士一擁而上,擒雍糾縛而斬之,以其屍棄於周池。厲公伏有甲士在於郊外,幫助雍糾做事。早被公子閼搜著,殺得七零八落。厲公聞之,大驚曰:「祭仲不吾容也!」 乃出奔蔡國。後有人言及雍糾通知祭氏,以致祭足預作準備。厲公乃歎曰:「國家大事,謀及婦人,其死宜矣!」

 

且說祭足聞厲公已出,乃使公父定叔往衛國迎昭公忽復位,曰:「吾不失信於舊君也!」

 

鉏 : 호미 서. 호미, 괭이. 김매다. 죽이다. 땅이름. 어긋나다.   攙 : 찌를 참. 찌르다. 찔러 꿰뚫다. 섞다. 돕다. 살별이름.

澆 : 물댈 요. 물을 대다. 물을 줌. 엷다. 경박함. 엷게 하다. 얇게 . 경박하게 . 물결이 맴돌다. 맴도는 물결.

 

 

제씨가 마침내 하루전에 친정에 가서 그 모친에게 물었다. "아버지와 남편 두 사람중 어느 쪽이 더 가깝습니까?"

모친이 대답했다. "모두 가깝다."

또 물었다. "두 사람 다 가깝다면 누가 정이 더 깊습니까?"

모친이 대답했다. "아버지가 남편보다 더 깊다."

제씨가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모친이 대답했다. "출가하지 않은 딸은 남편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아버지는 이미 정해져 있으며, 이미 출가한 딸이라 해도 다시 출가하여 남편을 정할 수 있어도 아버지는 돌아가시면 다시 살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인륜으로 화합한 것이지만, 아버지는 천륜으로 화합한 것이니 남편이 어찌 아버지보다 가까울 수 있느냐?"

그 모친은 무심히 말한 것이었지만 제씨를 깨닫게 하여 모친의 말을 듣고는, 마침내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제가 오늘 아버지를 위해 말씀드린다면 다시는 남편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침내 남편 옹규가 도모하려는 일을 모친에게 은밀히 털어놓았다.  모친이 크게 놀라 제족에게 전달했다.

제족이 말했다. "너희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 때가 되면 내가 스스로 처리할 것이다."

때가 되자 제족은 심복 강서(强鉏)로 하여금 용사 십여명을 대동하고 은밀히 날카로운 칼을 감추고 따르게 하였다. 다시 공자 알에게 명하여 가병 백여명을 인솔하고 교외에 나가 접응케 하여 변고에 대비토록 했다.

제족이 동쪽 교외에 도착하자 옹규가 도중에 마중을 나와 매우 성대하게 향연을 베풀었다. 

제족이 말했다. "국사가 바쁘니 예만 취해도 마땅한데 어찌 수고롭게 성대히 향연까지 베푸는가." 

옹규가 말했다. "교외의 봄기운이 즐길만 하여, 한 잔 술을 마련하여 간소하게 위로할 뿐입니다."

말을 마치자 큰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제족 앞에서 무릎꿇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백세를 축수했다.  제족이 짐짓 받는 척 하며 먼저 오른 손으로 옹규의 팔을 잡고 왼 손으로 잔을 잡아 술을 땅에 쏟으니 불빛이 솟구쳐 올랐다. 

제족이 큰 소리로 꾸짖었다. "필부가 어찌 감히 나를 농락하려고 하는가!" 그리고 좌우를 질책했다. "나를 위해 손을 써라."

강서와 용사 한 무리를 이끌고 올라서서 옹규를 잡아 묶고 참하여 시신을 해자(垓字)에 버렸다.  여공은 무장한 병사들을 교외에 잠복시켜 옹규의 일을 돕도록 하였으나 공자 알이 재빨리 찾아내 모조리 죽였다. 

여공이 그 소식을 듣고, "제중이 나를 가만두지 않겠구나." 하고는 채(蔡)나라로 도망쳤다.

후에 어떤 사람이 옹규가 부인 제씨에게 알렸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제족이 미리 준비해둔 것이라 했다. 

여공이 탄식했다. "국가의 대사를 도모하는 일을 부인에게 알린 것은 죽어 마땅한 일이었다."       

 

한편 제족은 여공이 이미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공보정숙(公父定叔)을 위나라에 보내 소공 홀을 맞아 오도록 하여 복위시켰다. 

그리고, "내가 옛 군주에게 신의를 잃지 않았다."고 하였다.

 

 

 

不知後事如何,且看下回分解。

 

 

뒷 일이 어떨지 모르면 다음회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