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歷史와文學/列國志

第二二回. 公子友兩定魯君, 齊皇子獨對委蛇.

柳川 2021. 3. 22. 10:57

第二二回. 公子友兩定魯君, 齊皇子獨對委蛇.

 

 

話說公子慶父字仲,魯莊公之庶兄,其同母弟名牙字叔,則莊公之庶弟。莊公之同母弟曰公子友,因手掌中生成一「友」字文,遂以爲名,字季,謂之季友。雖則兄弟三人同爲大夫,一來嫡庶之分,二來惟季友最賢,所以莊公獨親信季友。莊公即位之三年,曾遊郞臺,於臺上窺見黨氏之女孟任,容色殊麗,使內侍召之。孟任不從。莊公曰:「苟從我,當立汝爲夫人也。」 孟任請立盟誓, 莊公許之。孟任遂割臂血誓神,與莊公同宿於臺上,遂載回宮。歲餘生下一子,名般。莊公欲立孟任爲夫人,請命於母文姜。文姜不許。必欲其子與母家聯姻,遂定下襄公始生之女爲婚,只因姜氏年幼,直待二十歲上,方纔娶歸。所以孟任雖未立爲夫人,那二十餘年,卻也權主六宮之政。比及姜氏入魯爲夫人,孟任已病廢不能起。未幾卒,以妾禮葬之。姜氏久而無子。其娣叔姜從嫁,生一子曰啟。先有妾風氏,乃須句子之女,生一子名申。風氏將申託於季友,謀立爲嗣。季友曰:「子般年長。」乃止。姜氏雖爲夫人,莊公念是殺父仇家,外雖禮貌,心中不甚寵愛。公子慶父生得魁偉軒昂,姜氏看上了他,陰使內侍往來通語,遂與慶父私通,情好甚密。因與叔牙爲一黨,相約異日共扶慶父爲君,叔牙爲相。

 

看上 : 반하다. 보고 마음에 들다. 눈에 들다. 넋을 잃고 보다.

  

 

공자 경보는 자가 중(仲)으로 노나라 장공의 서형(庶兄)이었는데, 그에게는 어머니가 같은 동생으로 아(牙)가 있었고 자를 숙(叔)이라 하였으며 정장공에게는 서제(庶弟)가 되었다.  또 장공에게는 어머니가 같은 동생이 있어 공자 우(友)라고 하였는데 태어날 때 손바닥안에 우(友)자 무늬가 있어 우(友)가 그의 이름이 되었고 자를 계(季)로 하였기 때문에 그를 계우(季友)라고 불렀다. 

그들 세 형제는 모두 대부가 되었으나  첫째 적서의 구분이 있었고, 둘째로 오직 계우가 가장 현명하였기 때문에 장공은 계우만을 가까이하고 신뢰하였다. 

장공이 즉위한지 3년이 되었을 때 낭대(郞臺)에 놀러갔다가  낭대위에서 당씨의 딸 맹임(孟任)을 보았는데 용모가 매우 아름다워 내시를 시켜 불러오게 하였으나 맹임은 말을 듣지 않았다.

장공이 말했다. "내 말을 따른다면 너를 부인으로 삼으리라."

맹임이 장공에게 맹세를 하자고 청하자 장공이 허락했다. 맹임은 팔에서 피를 내어 장공이 천지신명에게 맹세하게 한 후 낭대 위에서 동침하였는데 장공이 수레에 태워 궁으로 돌아갔다. 일년 여가 지나자 아들 하나를 낳아 이름을 반(般)이라고 하였다. 장공은 맹임을 부인으로 삼으려고 모친인 문강에게 청했으나 문강은 허락하지 않았다. 문강은 반드시 그 아들을 친정 집안과 혼인시키려고 하였는데 양공에게 딸이 태어나자 마침내 혼인하기로 정하였다.  다만 강씨가 어려 나이가 20세가 넘을 때를 기다려서야 겨우 혼인하게 되었다. 그때문에 맹임이 비록 부인이 되지 못했지만 그 20년동안 오히려 일시적이나마 육궁을 다스리는 주인이 되었다. 

강씨(哀姜)가 노나라에 들어가 부인이 되었을 때 맹임은 이미 병이들어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는데 첩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강씨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으나 그 동생인 숙강(叔姜)이 언니인 애강을 따라 시집을 가서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그 이름을 계(啟)라고 하였다.

앞서 첩 풍씨(風氏)가 있었는데 수구자(須句子)의 딸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신(申)이라 하였다.  풍씨는 신을 계우에게 부탁하여 후사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계우가 말했다. "공자 반(般)이 형입니다." 그리하여 풍씨는 마음을 접었다. 

강씨는 비록 부인이 되었지만 장공은 부친을 죽인 원수의 가문 출신임을 생각하여 겉으로는 예를 갖추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매우 싫어했다. 

공자 경보는 건장하고 헌앙하여 애강이 그에게 반했다. 은밀하게 내시를 시켜 왕래하게 하여 대화를 하다가 마침내 경보와 사통하게 되었고 그 정이 매우 깊어졌다. 그래서 경보는 그 동생인 숙아를 한편으로 끌어들여 장차 경보를 도와 군주로 옹립하게 한다면 숙아를 재상으로 삼기로 약속했다.

 

 

 

髯翁有詩云:

淫風鄭衛只尋常,

更有齊風不可當。

堪笑魯邦偏締好,

文姜之後有哀姜。

 

 

염옹이 시를 지었다.

정나라와 위나라의 음란한 풍속은 예사로운 일일 뿐이지만,

또 제나라의 음란한 풍속에 당할 바가 아니로다. 

노나라는 제나라와 우호조약을 체결한 나라로 웃음꺼리가 되었는데, 

문강이 음란하더니 그 후에 애강도 있었도다.

 

 

 

莊公三十一年,一冬無雨,欲行雩祭祈禱。先一日,演樂於大夫梁氏之庭。梁氏有女色甚美,公子般悅之,陰與往來,亦有約爲夫人之誓。是日,梁女梯牆而觀演樂。圉人犖在牆外窺見梁女姿色,立於牆下,故作歌以挑之。

歌曰:

桃之夭夭兮,凌冬而益芳。

中心如結兮,不能踰牆。

願同翼羽兮,化爲鴛鴦。

 

圉 : 마부 어. 마부, 마굿간. 감옥, 변방, 국경. 막다. 방어함.             圉 : 중국 주(周)나라 시대에 말을 기르는 관리의 명칭.

犖 : 얼룩소 락. 얼룩소. 밝다. 뛰어나다. 명백함. 

 

 

장공 31년 겨울내내 비가 오지 않아 장공은 기우제를 지내 기도하려고 했다. 하루 전날 대부 양씨의 집 뜰에서 주연이 베풀어졌다. 양씨의 딸이 매우 아름다웠는데 공자 반(般)이 그녀를 좋아하여 은밀히 왕래하고 있었고 또한 부인으로 삼겠다고 약속하고 서약까지 하였었다.

이날 양씨의 딸은 담장에 사다리를 걸쳐놓고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때 말기르는 관리 락(犖)이 담장 밖에서 양씨의 미모를 보고 담장밑에 서서 노래를 지어 그녀를 유혹했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았다.

복숭아 꽃의 싱그러움이여! 겨울을 이겨내 더욱 향기롭구나. 

내 마음이 붙잡혔지만 담장을 넘을 수 없네.

부디 함께 날아 한쌍의 원앙이 되었으면.

 

 

 

公子般亦在梁氏觀雩,聞歌聲出看。見圉人犖大怒,命左右擒下,鞭之三百,血流滿地。犖再三哀求,乃釋之。公子般訴之於莊公,莊公曰:「犖無禮,便當殺之,不可鞭也。犖之勇捷,天下無比,鞭之,必懷恨於汝矣。」 原來圉人犖有名絶力,曾登稷門城樓,飛身而下,及地,復踴身一躍,遂手攀樓屋之角,以手撼之,樓俱震動。莊公勸殺犖,亦畏其勇故也。子般曰:「彼匹夫耳,何慮焉?」 圉人犖果恨子般,遂投慶父門下。

 

撼 : 흔들 감. 

 

 

공자 반도 양씨집에서 기우제에 참관하기 위해 기다리다가 락의 노래소리를 듣고 나가 보았다.  노래부르는 자가 말을 기르는 관리인 락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좌우에 명해 사로잡아오게 하여 등에 채찍으로 300대를 치니 땅에 피가 흘러 흥건했다. 락이 재삼 목숨을 애걸하여 마침내 그를 풀어주었다.

공자 반이 장공에게 그 사실을 알리자 장공이 말했다.

"락은 무례하구나. 바로 죽였어야 마땅하며 채찍질은 옳지 않다. 락은 용감하고 빠르기가 천하에 비할 자가 없는데 채찍질을 하였으니 반드시 네게 한을 품었을 것이다." 

원래 말기르는 관리인 락은 힘이 뛰어난 자로 유명했는데  일찍이 임치성(臨淄城)의 남쪽 직문(稷門)의 성루에 올라갔다가, 몸을 날려 땅에 이르자마자 다시 몸을 한번 도약하여 손으로 누각 지붕의 모서리를 잡고 흔들었는데 누각 전체가 흔들렸던 적이 있었다. 

장공이 락을 죽이라고 권한 것은 그 용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공자 반이 말했다. "그는 한낱 필부일 뿐인데, 어찌 염려하십니까?" 말기르는 관리 락은 과연 공자 반에게 한을 품고 마침네 경보의 문하로 들어갔다.

  

 

 

次年秋,莊公疾篤,心疑慶父。故意先召叔牙,問以身後之事。叔牙果盛稱慶父之才:「若主魯國,社稷有賴。況一生一及,魯之常也。」 莊公不應。叔牙出,復召季友問之。季友對曰:「君與孟任有盟矣。旣降其母,可復廢其子乎?」 莊公曰:「叔牙勸寡人立慶父何如?」 季友曰:「慶父殘忍無親,非人君之器。叔牙私於其兄,不可聽之。臣當以死奉般。」 莊公點首,遂不能言。季友出宮,急命內侍傳莊公口語,使叔牙待於大夫鍼季之家,即有君命來到。叔牙果往鍼氏。季友乃封鴆酒一瓶,使鍼季毒死叔牙。復手書致牙曰:「君有命,賜公子死。公子飲此而死,子孫世不失其位。不然,族且滅矣!」 叔牙猶不肯服,鍼季執耳灌之。須臾,九竅流血而死。

史官有詩論鴆牙之事。曰:

周公誅管安周室,

季友酖牙靖魯邦。

爲國滅親眞大義,

六朝底事忍相戕。

 

一生一及 : 아버지가 죽은 후 아들이 그 대를 잇거나 형이 죽은 후 동생이 그 뒤를 잇는 일.

六朝 : 한(漢)이 망하고 수(隋)가 중국을 통일하기까지의 과도기(220~589)에 중국에 지금의 남경(南京)을 도읍으로 하여 일어난 여섯 왕조,          즉 () · 동진(東晉) · () · () · () · ()을 말함.

 

 

 

다음 해 가을, 장공은 병이 위독해지자 마음속으로 경보를 불안하게 여겼다.  일부러 먼저 숙아를 불러 자신이 죽은 후의 일을 물었다.

과연 숙아는 경보의 재주를 칭찬했다.

"그가 노나라의 주인이 된다면 사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들이 대를 잇는 것은 노나라의 법도가 아니겠습니까?"

장공이 듣지 않고, 숙아가 나가자 다시 계우를 불러 물었다.

계우가 대답했다. "군주께서는 맹임에게 맹세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미 그 모친이 죽었는데 다시 그 아들까지 폐하셔야 하겠습니까?"

장공이 물었다.

"숙아는 과인에게 경보를 후사로 세우라는데 어떤가?"

계우가 말했다.

"경보는 잔인하여 화목하지 못하므로 인군의 그릇이 되지 못합니다. 숙아는 그 형인 경보와  어머니가 같은 사사로운 정이 있으니 그의 말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신은 마땅히 반을 죽음으로 받들겠습니다."

장공은 머리를 끄덕였으나 말을 하지 못했다. 

계우는 궁에서 나가자 급히 내시에게 명을 내려 장공의 말을 전하게 하고 숙아로 하여금 대부 침계(鍼季)의 집에서 대기하도록 하였으며 바로 군명이 내릴 것이라고 하였다. 숙아가 과연 침씨의 집으로 갔다. 

계우는 짐독(鴆毒)을 타서 봉한 술 한 병을 보내 침계가 숙아를 죽이게 했다. 

그리고 다시 편지를 써서 숙아에게 보냈다.

"주군께서 명을 내려 공자께 죽음을 내리셨습니다. 공자께서 이 술을 마시고 죽는다면 자손들이 대대로 지위를 잃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멸족될 것입니다."

숙아가 받아들이지 않자 침계가 그의 귀를 잡고 입에 흘려 부었다. 잠시 후에 숙아는 구공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숙아를 짐독으로 죽인 일을 논평했다.

 

주공이 관숙을 죽여 주나라 왕실을 안정시켰는데,

계아는 숙아를 독살하여 노나라를 편안케 했도다.

나라를 위해 멸친하는 것은 진정 대의라 할 수 있지만 

육조시대에는 이일로 차마 서로 죽이지 못했도다.

 

 

 

 

是夕,莊公薨。季友奉公子般主喪,諭國人以明年改元。各國遣弔。自不必說。

  

至冬十月,子般念外家黨氏之恩,聞外祖黨臣病死,往臨其喪。慶父密召圉人犖謂曰:「汝不記鞭背之恨乎?夫蛟龍離水,匹夫可制。汝何不報之於黨氏?吾爲汝主。」 犖曰:「苟公子相助,敢不如命!」 乃懷利刃,夤夜奔黨大夫家。時已三更,踰牆而入,伏於舍外。至天明時,小內侍啟門取水,圉人犖突入寢室。子般方下牀穿履,驚問曰:「汝何至此?」犖曰:「來報去年鞭背之恨耳!」子般急取牀頭劍劈之,傷額破腦。犖左手格劍,右手握刃刺般,中脅而死。內侍驚報黨氏。黨氏家眾操兵齊來攻犖,犖因腦破不能戰,被眾人亂斫爲泥。季友聞子般之變,知是慶父所爲,恐及於禍,乃出奔陳國以避難。慶父佯爲不知,歸罪於圉人犖,滅其家,以解說於國人。夫人姜氏欲遂立慶父。慶父曰:「二公子猶在,不盡殺絶,未可代也。」 姜氏曰:「當立申乎?」 慶父曰:「申年長難制,不如立啟。」 乃爲子般發喪,假訃告爲名,親至齊國,告以子般之變,納賄於豎貂,立子啟爲君。時年八歲,是爲閔公。閔公乃叔姜之子,叔姜是夫人姜氏之娣也。閔公爲齊桓公外甥。閔公內畏哀姜,外畏慶父,欲借外家爲重。故使人訂齊桓公,會於落姑之地。閔公牽桓公之衣,密訴以慶父內亂之事,垂淚不止。桓公曰:「今者魯大夫誰最賢?」 閔公曰:「惟季友最賢,今避難於陳國。」 桓公曰:「何不召而復之?」 閔公曰:「恐慶父見疑。」 桓公曰:「但出寡人之意,誰敢違者?」 乃使人以桓公之命,召季友於陳。閔公次於郞地,候季友至郞,並載歸國,立季友爲相。託言齊侯所命,不敢不從。時周惠王之六年,魯閔公之元年也。

 

夤 : 조심할 인.            夤夜 : 심야, 깊은 밤. 

 

 

 

그날 밤  장공이 죽었다. 계우는 공자 반을 받들어 주군으로 세우고 장례를 치렀고 백성들에게 알려 다음해에 개원한다고 밝혔다. 

각 나라에서 조문사절을 파견하였음은 설명이 필요없다.

 

그해 10월, 공자 반은 외가인 당씨의 은혜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외조부 당씨가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에 문상을 위해 외가에 행차했다. 

경보가 은밀히 말 사육사 락을 불러 말했다.

"너는 등에 채찍을 맞은 원한을 기억하고 있지 않느냐? 무릇 교룡이 물을 떠나면 필부라도 제압할 수 있다. 너는 어찌하여 당씨 상가에서 공자 반에게 원한을 갚으려 하지 않느냐? 내가 너를 위해 일을 주도하리라."

락이 말했다. "공자께서 도와주신다면 어찌 감히 명을 어기겠습니까!"

이리하여 날카로운 칼을 품고 깊은 밤중에 당대부의 집으로 달려갔다.  때는 이미 삼경이 되어 담장을 넘어 들어가 건물 밖에서 잠복했다. 날이 밝아오자 시동이 문을 열고 물을 길러 나갔는데 락은 틈을 이용해 침실로 잽싸게 들어갔다. 

그때 공자 반은 막 침상에서 내려와 신을 신고 있었는데 깜짝 놀라 물었다.

"네가 어찌 이곳에 왔느냐?"

락이 대답했다.

"지난 해 채찍으로 등에 매질을 당한 원한을 갚으러 왔다!"

공자 반은 급히 침상머리에 있는 칼로 그의 얼굴을 내리쳤다. 락은 왼 손으로 검을 막고 오른 손으로 칼을 잡아 공자 반을 찔렀는데 공자 반은 늑골에 칼을 맞고 죽고 말았다.  시동이 놀라 당씨 집안에 알려 당씨집안의 사람들이 병기를 들고 일제히 락을 공격해 왔다. 락은 공자 반의 검에 의해 머리에 상처를 입어 싸울 수 없었으므로 당씨 집안 사람들로부터 난자당해 어육이 되었다. 

계우는 공자 반이 변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경보의 소행임을 알고 화가 미칠까 두려워 진(陳)나라로 화를 피해 도망쳤다.

경보는 모르는 체 하고 말 사육인 락에게 죄를 몰아 그 가문을 멸족시키고 국인들에게 해명했다. 

부인 강씨(哀姜)가 경보를 군주로 옹립하려고 하자 경보가 말했다. 

"두 공자가 아직 살아 있어 모두 죽여 후환을 없애지 못했으므로 아직 바꿀 수 없습니다."

애강이 물었다. "신(申)을 세워야 합니까?"

경보가 대답했다. "신은 나이가 많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계(啟)를 세우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하여 공자 반의 상을 발표하고 부고를 전한다는 명분을 빌어 직접 제(齊)나라로 가서 공자 반의 변고를 알리고 수초(豎貂)에게 뇌물을 쓴 다음 공자 계를 군주로 옹립하였다. 그때 공자 계의 나이는 8살이었는데 바로 민공(閔公)이다.

민공은 바로 숙강의 아들로 숙강은 애강의 동생이다. 민공은 제환공(齊桓公)의 생질(外甥)이다.  민공은 안으로는 애강을 두려워 하고 밖으로는 경보를 두려워 하여 외가인 제나라에 크게 의지하려고 했다. 그때문에 사람을 시켜 제환공에게 만나자고 청하여 낙고(落姑)라는 곳에서 만났다. 민공은 환공의 옷을 잡아당겨 은밀히 경보가 내란을 일으킨 일을 하소연했는데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환공이 물었다. "지금 노나라 대부중에서 누가 제일 현명한가?"

민공이 대답했다. "계우(季友)가 가장 현명한데 지금 화를 피해 진(陳)나라에 있습니다."

환공이 다시 물었다. "어찌 불러 그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지 않는가?"

민공이 대답했다. "경보가 의심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과인의 뜻으로 진나라에서 나오라고 한다면 누가 감히 거역하겠는가?"

그리하여 사람을 보내 제환공의 명으로 진나라에 있는 계우를 불렀다. 민공은 랑(郞)이라는 곳으로 행차하여 계우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수레에 타고 귀국하여 계우를 재상으로 삼았다.  제나라 환공의 명이라 핑계대자 감히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때가 주나라 혜왕(惠王) 6년이었는데, 노나라 민공 원년이 되었다.

 

 

 

 

是冬,齊侯復恐魯之君臣不安其位,使大夫仲孫湫來候問,且窺慶父之動靜。閔公見了仲孫湫,流涕不能成語。後見公子申,與之談論魯事,甚有條理。仲孫曰:「此治國之器也!」 囑季友善視之。因勸季友早除慶父,季友伸一掌示之。仲孫已悟孤掌難鳴之意,曰:「湫當言於吾君,倘有緩急,不敢坐視。」 慶父以重賂來見仲孫。仲孫曰:「苟公子能忠於社稷,寡君亦受其賜,豈惟湫乎?」 固辭不受。慶父悚懼而退。仲孫辭閔公歸,謂桓公曰:「不去慶父,魯難未已也!」  桓公曰:「寡人以兵去之,何如?」 仲孫曰:「慶父兇惡未彰,討之無名。臣觀其志,不安於爲下,必復有變。乘其變而誅之,此霸王之業也。」 桓公曰:「善。」 閔公二年,慶父謀篡益急,只爲閔公是齊侯外甥,又且季友忠心相輔,不敢輕動。忽一日,閽人報:「大夫卜齮相訪。」 慶父迎進書房,見卜齮怒氣勃勃,問其來意。卜齮訴曰:「我有田與太傅愼不害田莊相近,被愼不害用强奪去。我去告訴主公,主公偏護師傅,反勸我讓他。以此不甘,特來投公子,求於主公前一言。」 慶父屛去從人,謂卜齮曰:「主公年幼無知,雖言不聽。子若能行大事,我爲子殺愼不害何如?」 卜齮曰:「季友在,懼不免。」 慶父曰:「主公有童心,嘗夜出武闈,遊行街市。子伏人於武闈,候其出而刺之,但云盜賊,誰能知者。吾以國母之命,代立爲君,逐季友如反掌耳。」 卜齮許諾。乃求勇士,得秋亞,授以利匕首,使伏武闈。閔公果夜出,秋亞突起,刺殺閔公。左右驚呼,擒住秋亞。卜齮領家甲至奪去。慶父殺慎不害於家。季友聞變,夜叩公子申之門,蹴之起,告以慶父之亂,兩人同奔邾國避難。

 

髯翁有詩云:

子般遭弒閔公戕,

操刃當時誰主張?

魯亂盡由宮閫起,

娶妻何必定齊姜!

 

孤掌難鳴 : 한쪽 손뼉은 울리지 못한다는 뜻으로, 혼자서는 일을 이루기가 어려운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서로 같으니까 싸움이

        난다는 말.

齮 : 깨물 의(기).                             閫 : 문지방 곤. 문지방. 문지방 한가운데의 턱. 왕후(王后)가 거처하는 곳. 궁중의 작은 문.

 

 

 

이 해 겨울, 제환공은 다시 노나라 군신의 지위가 불안한 것을 염려하여 대부 중손추(仲孫湫)로 하여금 노나라에 가서 노나라 민공의 안부를 묻고 경보의 동정을 살피게 하였다. 민공은 중손추를 보자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후 공자 신(申)을 만나 노나라의 일을 담론하였는데 매우 조리가 있었다.

중손추가 "이 사람이야 말로 나라를 다스릴만한 그릇이다." 라고 중얼거리고는 계우에게 그를 잘 돌봐 주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계우에게 경보를 속히 제거하라고 권하였는데 계우는 한손의 손바닥을 펴 보였다.

중손추는 이미 고장난명의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저는 마땅히 우리 군주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경보가 많은 뇌물을 가지고 중손추를 만났는데 증손추가 말했다. 

"공자께서 노나라 사직에 충성을 바칠 수가 있다면 저의 군주께서도 주시는 것을 받으실 것입니다. 어찌 저에게 주십니까?"

그리고 고사하며 받지 않았다. 경보는 송구한 마음으로 물러났다. 

중손추가 민공과 작별하고 돌아가 환공에게 말했다. "경보를 제거하지 않으면 노나라의 재앙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환공이 물었다. "과인이 군대를 동원하여 그를 제거하는 것은 어떤가?"

중손추가 대답했다. "경보의 흉악함이 아직 드러나지 않아 그를 토벌하는 것은 명분이 없습니다. 신이 그의 뜻을 보건대 아랫사람으로 있는 것을 편치않게 여겨 반드시 일을 저지를 것입니다. 그가 변고를 일으키는 틈을 타서 그를 죽인다면 이 일은 패왕의 일이 될 것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좋소."

민공 2년 경보가 찬역을 도모하려는 마음이 더욱 급해졌으나 다만 민공이 제환공의 생질이고 또 계우가 충심으로 민공을 보좌하고 있어 감히 경동하지 못했다. 

어느날 갑자기 문지기가 보고했다. "대부 복기(卜齮)가 방문했습니다."

경보가 서재로 나아가 만나보니 복기는 노기등등한 모습이라 찾아온 까닭을 물었다.

복기가 하소연 했다. 

"제 밭이 태부 신불해(愼不害)의 농장과 가까이 있는데 신불해에게 강제로 빼앗겼습니다. 제가 주공께 가서 말씀드렸으나 주공은 사부를 편들어 비호하며 오히려 저에게 양보하라고 합니다. 이일은 달갑지 않은 일이라 특별히 공자님이 주공께 가서 한 말씀 해주십사 요청드리려고 온 것입니다."

경보는 종자들을 물리치고 복기에게 말했다. 

"주공이 어려서 사리를 알지 못해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 것이오. 그대가 대사를 행할 수 있다면 내가 그대를 위해 신불해를 죽일 것인데 어떻소?"

복기가 말했다. "계우가 있어 일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경보가 말했다.

"주공은 동심(童心)이 있어 항상 밤이 되면 무위문을 나가 저자거리에 나가서 놉니다. 그대가 무위문에 잠복하고 있다가 그가 문을 나가기를 기다려 칼로 찔러 죽이고 도적의 짓이라고 한다면 누가 알겠소? 내가 국모의 명으로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계우를 내쫒는 것은 여반장일 것이오."

복기가 승락하고 바로 일을 맡길 용사를 찾아 추아(秋亞)라는 자를 얻었다. 그에게 예리한 비수를 주어 무위문 밖에서 잠복하게 하였다. 

민공이 과연 밤이 되자 무위문을 나섰는데 그때 추아가 갑자기 일어나 민공을 비수로 찔러 살해했다. 좌우에서 놀라 비명을 지르며 추아를 사로 잡았다.  그때 복기가 무장한 가병들을 이끌고 달려와 추아를 빼앗아 갔다. 그 사이에 경보는 신불해의 집에 가서 신불해를 살해했다. 

계우는 변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밤중에 공자 신(申)의 집 문을 두드려 그를 깨운 후 경보가 난을 일으켰음을 알리고 두 사람이 함께 주(邾)나라로 도망쳐 화를 피했다.

 

염옹이 시를 지었다.

 

공자 반이 시해를 당하고 민공도 살해되었는데,

당시 칼들 들도록 일을 주도한 자가 누구였던가?

노나라의 난은 모두 궁궐안에서 비롯되었으니,

하필이면 제나라에서 부인을 얻었던가?

 

 

 

 

卻說國人素服季友,聞魯侯被殺,相國出奔,舉國若狂,皆怨卜齮而恨慶父。是日國中罷市,一聚千人,先圍卜齮之家,滿門遭戮。將攻慶父,聚者益眾。慶父知人心不附,欲謀出奔。想起齊侯曾藉莒力以復國,齊莒有恩,可因莒以自解於齊。況文姜原有莒醫一脈交情,今夫人姜氏,即文姜之姪女,有此因緣,凡事可託。遂微服扮作商人,載了貨賂滿車,出奔莒國。夫人姜氏聞慶父奔莒,安身不牢,亦想至莒國躲避。左右曰:「夫人以仲故,得罪國人,今復聚一國,誰能容之?季友在邾,眾所與也,夫人不如適邾,以乞憐於季。」 乃奔邾國,求見季友。季友拒之弗見。季友聞慶父姜氏俱出,遂將公子申歸魯,一面使人告難於齊。齊桓公謂仲孫湫曰:「今魯國無君,取之如何?」 仲孫湫曰:「魯,秉禮之國,雖遭弒亂,一時之變,人心未忘周公,不可取也。況公子申明習國事,季友有戡亂之才,必能安集眾庶,不如因而守之。」 桓公曰:「諾。」 乃命上卿高傒,率南陽甲士三千人,吩咐高傒,相機而動:「公子申果堪主社稷,即當扶立爲君,以脩鄰好;不然,便可併兼其地。」 高傒領命而行。來至魯國,恰好公子申季友亦到。高傒見公子申相貌端莊,議論條理,心中十分敬重。遂與季友定計,擁立公子申爲君,是爲僖公。使甲士幫助魯人,築鹿門之城,以防邾莒之變。季友使公子奚斯,隨高傒至齊,謝齊侯定國之功。一面使人如莒,要假手莒人以戮慶父,啖以重賂。

 

滿門 : 한 집안. 온 집안. 일가(一家).          戡 : 찌를 감. 찌르다. 죽임. 이기다. 평정함.       傒 : 가둘 혜. 가두다. 江西人. 기다리다.

 

 

 

노나라 사람들은 평소 계우를 따랐는데 노후(魯侯)가 피살되었고 재상인 계우가 나라 밖으로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자, 나라 전체가 들끓는 듯 하였으며 모두 복기를 원망하고 경보에게 한을 품었다. 이날 도성안 저자거리의 문이 닫히고 순식간에 천명이 모여 먼저 복기의 집을 에워싸고 온 집안이 도륙당했다.  다음에 경보의 집안을 공격하려고 하자 모이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경보는 인심이 이미 떠난 것을 알고 나라 밖으로 도망치려고 하였다. 제 환공이 일찌기 거나라의 힘을 빌어 나라를 되찾은 것을 상기하고 제나라가 거나라의 은혜를 입은 바 있어 자신이 거나라로 가서 의지해도 제나라에서 자신을 어쩌지 못하리라 여겼다.  하물며 문강이 원래 거나라 의원과 한 가닥 정분을 나눈 일이 있었고 지금 부인도 강씨로 문강의 질녀가 되므로 그 인연으로 모든 일을 부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미복을 입고 상인으로 분장하여 수레에 재물을 가득 싣고 거나라로 도망쳤다. 애강도 경보가 거나라로 도망쳤다는 소식을 듣고 신변의 안전을 위해 거나라로 도피하려고 했다. 

곁에서 말렸다. "부인께서는 경보로 인하여 허물을 저질러 국인들에게 죄를 지었는데 이제 또 같은 나라로 가서 모이려 한다면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계우가 주나라에 있어 많은 백성들이 그와 함께 하려 하고 있으니 차라리 주나라로 가서 계우에게 사정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邾)나라로 달려가 계우를 만나고자 했는데 계우는 만나주지 않았다. 

계우는 경보와 애강이 모두 다른 나라로 탈출했다는 것을 알고 마침내 공자 신과 함께 노나라로 돌아가면서 한편으로 사람을 보내 제나라에 노나라에 변고가 생겼음을 알렸다.

제환공이 중손추에게 물었다. "지금 노나라에 군주가 없는데 노나라를 취하여 병합하는 것이 어떻겠소?"

중손추가 대답했다. "노나라는 예의를 중요시 하는 나라로 비록 인군이 시해를 당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 때의 변고일 뿐이며 인심은 아직 주공을 잊지 않고 있으므로 취해서는 안됩니다. 하물며 공자 신이 나라 일에 밝고 익숙하며 계우는 난을 충분히 평정할만한 인재이니 반드시 무리들을 결집시켜 안정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맡기고 지켜보는 것만 못합니다."

환공이 말했다. "좋소."

제환공은 바로 상경 고혜(高傒)에게 명하여 남양의 갑사 삼천명을 거느리게 하고 고혜에게 분부를 내려 상황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였다. 

"공자 신(申)이 과연 사직의 주인이 될만하다면 그를 도와 군주로 삼아 이웃나라로서 우호관계를 맺고 그렇지 않으면 노나라 땅을 병합시키도록 하시오."

고혜가 명을 받고 떠났다.  노나라에 도착하니 때마침 공자 신과 계우도 막 도착했다.  고혜가 공자 신을 바라보니 그 모습이 단정하고 엄숙하며 말에 조리가 있어 마음 속으로 매우 존경하게 되었다. 마침내 계우와 계책을 정하여 공자 신을 군주로 옹립하니 이 사람이 바로 희공(僖公)이다.  갑사들로 하여금 노나라 사람들을 도와 녹문(鹿門)에 성을 쌓게 하여 주(邾)나라와 거(莒)나라의 변란을 방비하도록 했다.

계우는 공자 해사(奚斯)로 하여금 고혜와 함께 제나라에 가서 제환공에게 노나라를 안정시켜준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하도록 했다.

한편으로 사람을 거나라에 보내 거나라 사람이 손을 써서 경보를 죽인다면 후한 뇌물을 보내겠다고 요청했다.  

 

 

 

  

卻說慶父奔莒之時,載有魯國寶器,因莒醫以獻於莒子,莒子納之。至是復貪魯重賂,使人謂慶父曰:「莒國褊小,懼以公子爲兵端,請公子改適他國。」 慶父猶未行,莒子下令逐之。慶父思豎貂曾受賂相好,乃自邾如齊。齊疆吏素知慶父之惡,不敢擅納,乃寓居於汶水之上。恰好公子奚斯謝齊事畢,還至汶水,與慶父相見,欲載之歸國。慶父曰:「季友必不見容。子魚能為我代言,乞念先君一脈,願留性命,長爲匹夫,死且不朽!」 奚斯至魯復命,遂致慶父之言。僖公欲許之。季友曰:「使弒君者不誅,何以戒後?」 因私謂奚斯曰:「慶父若自裁,尙可爲立後,不絶世祀也。」 奚斯領命,再往汶上,欲告慶父,而難於啟齒,乃於門外號啕大哭。慶父聞其聲,知是奚斯,乃嘆曰:「子魚不入見而哭甚哀,吾不免矣!」乃解帶自縊於樹而死。奚斯乃入而殮之,還報僖公,僖公嘆息不已。忽報:「莒子遣其弟嬴拿,領兵臨境。聞慶父已死。特索謝賂。」 季友曰:「莒人未嘗擒送慶父,安得居功?」 乃自請率師迎敵。僖公解所佩寶刀相贈,謂曰:「此刀名曰『孟勞』,長不滿尺,鋒利無比,叔父寶之。」 季友懸於腰胯之間,謝恩而出。行至酈地,莒公子嬴拏列陣以待。季友曰:「魯新立君,國事未定,若戰而不勝,人心動搖矣。莒拿貪而無謀,吾當以計取之。」 乃出陣前,請嬴拿面話。因謂之曰:「我二人不相悅,士卒何罪?聞公子多力善搏,友請各釋器械,與公子徒手賭一雌雄,何如?」 嬴拏曰:「甚善!」 兩下約退軍士,就於戰場放對。一來一往,各無破綻。約鬥五十餘合,季友之子行父,時年八歲,友甚愛之,俱至軍中,時在旁觀鬥, 見父親不能取勝,連呼「『孟勞』何在?」 季友忽然醒悟,故意賣個破綻,讓嬴拏趕入一步。季友略一轉身,於腰間拔出「孟勞」。回手一揮,連眉帶額,削去天靈蓋半邊。刃無血痕,眞寶刀也!莒軍見主將劈倒,不待交鋒,各自逃命。季友全勝,唱凱還朝。

 

啕 : 수다스러울 도. 수다스럽다. 얼버무리다. 분명치 않다.      胯 : 사타구니 과(고). 사타구니. 다리. 넓적다리. 허리에 차다. 

酈 : 땅이름 리/고을이름 역. 춘추 시대 () 지금의 산동성(山東省연주부(兗州府부근. 춘추 시대 () 역읍(酈邑).

 

 

 

경보가 거나라로 도망갔을 때 노나라의 보물과 기보를 잔뜩 싣고 갔는데, 문강이 치료를 받았던 거나라 의원을 통해 거자(莒子 : 거나라의 제후)에게 바쳤다. 이때 또 노나라의 후한 뇌물을 탐하여 사람을 시켜 경보에게 말했다.

"거나라는 좁고 작은 나라인데 공자로 인해 병화가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공자가 다시 다른 나라로 가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러나 경보는 머뭇거리며 떠나지 않아 결국 거자가 명을 내려 경보를 추방했다.  경보는 일찍이 수초가 뇌물을 받고 좋아했던 모습을 생각하고 곧장 주(邾)나라에서 제(齊)나라로 갔다. 제나라의 국경을 지키는 관리는 평소 경보의 악한 성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함부로 입국시키지 못하고 문수(汶水)가에서 머물게 했다. 

때마침 노나라의 공자 해사(奚斯)가 제환공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돌아가는 길에 문수에 들렀다가 경보를 만나 경보를 수레에 태워 노나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경보가 말했다. "계우는 반드시 나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자어(子魚 : 奚斯의 字)가 나를 위해 대신 말해 주시오. 부디 선군의 같은 후손임을 생각하고 성명을 보전해 주면 영원히 필부로 살아가며 죽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오."

해사가 노나라에 돌아가 복명하면서 경보의 말을 전했다. 

희공이 허락하려고 하자 계우가 말했다.

"군주를 시해한 자를 죽이지 않으면 무엇으로 후대에 경계하겠습니까?"

그리고 은밀히 해사에게 말했다. "경보가 스스로 결단한다면 후사를 잇게 해줄 수 있으니 대대로 제사가 끊기지 않을 것이오."

해사가 명을 받아 다시 문수가에 가서 경보를 만나려고 하다가 입이 떨어지지 않아 문밖에서 큰 소리로 통곡했다. 

경보가 그 소리를 듣고 탄식했다. "자어가 나를 만나러 들어오지 않고 매우 슬프게 우는 것을 보니 내가 죽음을 면치 못하겠구나." 

그리고 차고 있던 허리끈을 풀어 스스로 나무에 걸고 목매 죽었다.  해사가 바로 들어가 시신을 염하고 돌아가 희공에게 보고하니 희공이 탄식해 마지 않았다. 

홀연히 보고가 들어왔다.

"거자(莒子)가 그 동생 영나(嬴拿)를 보냈는데 지금 영나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경보가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사례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계우가 말했다. "거나라 사람이 경보를 잡아서 보낸 것도 아닌데 어찌 공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마침내 계우가 자청해서 군사들을 거느리고 대적하겠다고 하였다. 희공이 차고있던 보검을 풀어 주며 말했다.

"이 칼의 이름은 '맹로(孟勞)'라고 합니다.  길이가 한 자도 채 안되지만 날카로움이 비랄 데가 없습니다. 숙부께서 보검으로 쓰십시오."

계우가 허리에 매달아 차고 은혜에 사례한 후 나갔다.  계우가 출발하여 리(酈)라는 곳에 도착하니 거나라 공자 영나가 진을 벌려놓고 기다렸다. 

계우가 말했다. "노나라에 새로이 군주가 등극하여 나라 일이 아직 안정되어 있지 않아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인심이 요동칠 것이다. 거나라 영나는 탐욕이 심하고 무모하니 내가 마땅히 계책을 내어 승리할 것이다."

그리하여 진 앞으로 나아가 영나와 대화를 청하여 영나가 진 앞으로 나오자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싸우기를 피한다면 사졸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듣자니 공자께서 힘이 좋아 싸움을 매우 잘한다고 하는데 각자의 무기를 풀어놓고 공자와 맨손으로 자웅을 결하기를 청한다면 어떻겠소?"

영나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양군이 군사를 물리기로 하고 전장으로 나아가 마주 섰다. 주먹을 주고 받으며 싸우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다.  대략 오십여 합을 싸웠을 때 계우의 아들 행보(行父)가 당시 여덟 살로 계우가 매우 사랑하여 군중에 함께 왔었는데 곁에서 싸움을 보고 있다가 부친이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연이어 외쳤다. 

"맹로(孟勞)는 어디다 뒀습니까?"

계우가 홀연히 깨닫고 일부러 패한척 속이니 영나가 꾸짖으며 한 걸음 내닫는 순간 계우가 몸을 돌려 허리에서 맹로를 뽑아 손을 한번 휘두르자 두 눈썹에 연이어 이마를 그어 천령개가 반이나 잘려 나갔다.  그러나 칼에는 피 묻은 흔적이 없다. 전정한 보도였다. 거나라 군사들은 주장이 칼을 맞고 굴러떨어지자 싸우지도 못하고 각자 도망쳐 목숨을 부지했다. 계우가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갔다.

 

 

 

  

僖公親自迎之於郊,立爲上相,賜費邑爲之采地。季友奏曰:「臣與慶父叔牙並是桓公之孫,臣以社稷之故,酖叔牙,縊慶父,大義滅親,誠非得已。今二子俱絶後,而臣獨叨榮爵,受大邑,臣何顔見桓公於地下?」 僖公曰:「二子造逆,封之得無非典?」 季友曰:「二子有逆心,無逆形,且其死非有刀鋸之戮也。宜並建之,以明親親之誼。」 僖公從之。乃以公孫敖繼慶父之後,是爲孟孫氏。慶父字仲,後人以字爲氏,本曰仲孫,因諱慶父之惡,改爲孟也。孟孫氏食采於成。以公孫茲繼叔牙之後,是爲叔孫氏,食采於郈。季友食采於費,加封以汶陽之田,是爲季孫氏。於是季、孟、叔三家,鼎足而立,並執魯政,謂之「三桓」。是日魯南門無故自崩。識者以爲高而忽傾,異日必有凌替之禍,兆已見矣。

史官有詩云:

手文徵異已褒功,

孟叔如何亦並封?

亂世天心偏助逆,

三家宗裔是桓公。

 

叨 : 탐낼 도. 탐내다. 함부로 차지하다. 함부로, 외람되게.         宗裔 : 예전에, 왕실의 먼 일가붙이를 이르던 말.

 

 

 

희공이 친히 교외에 나가 영접하였으며 계우를 상경으로 삼고 비읍(費邑)을 채지(采地)로 내렸다.

계우가 아뢰었다. 

"신과 경보, 숙아는 모두 환공(桓公)의 후손인데 신이 사직을 지키고자 숙아를 독살시키고 경보를 목매 죽게 하였습니다. 대의멸친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태를 끝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두 공자가 모두 죽은 후 신이 홀로 외람되게 영예를 누리며 봉작으로  큰 고을을 받는다면 신이 무슨 얼굴로 지하에서 환공을 뵈올 수 있겠습니까?"

희공이 말했다. 

"두 사람은 모두 반역을 하여 봉지를 받지 못한 것인데 그것이 법도가 아닙니까?"

계우가 말했다. "두 공자가 반역할 마음이 있었다고 하지만 반역의 형체는 없으며 또 그들의 죽음도 형벌에 의한 죽음도 아니었습니다. 마땅히 그들의 집안을 일으켜 주어 친족을 친족으로 대한다는 모습을 밝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희공이 그의 말에 따르자 공손오(公孫敖)가  경보의 뒤를 잇게 하였는데 바로 맹손씨(孟孫氏)가 되었다. 경보의 자가 중(仲)이었으나 후손이 자를 씨로 삼아 본을 중손(仲孫)으로 하였다가 경보의 악행을 싫어하여 다시 맹(孟)으로 바꾸었다. 맹손씨의 식읍을 성(成)으로 하였다.

또 공손자(公孫玆)에게 숙아의 뒤를 잇게 하여 숙손씨(叔孫氏)가 되었으며 후(郈)를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 계우는 비(費)를 식읍으로 하고 문수(汶水)의 북쪽 땅을 더해 봉했는데 계손씨(季孫氏)가 되었다. 

이리하여 계(季), 맹(孟), 숙(叔)의 세 가문이 정족(鼎足)을 이루고 노나라의 정권을 잡았는데 이 세 가문을 삼환(三桓)이라 했다.

이날 노나라 남문이 까닭없이 저절로 무너졌다. 노나라의 식자(識者)는  높은 성문이 갑자기 무너졌으니 후일 반드시 나라가 쇠락하는 재앙을 맞이할 것이며 그 조짐이 이미 나타났다고 하였다. 

 

사관이 시를 남겼다.

손금의 징조가 기이하더니 이미 공을 세웠는데,

어찌 맹손씨와 숙손씨를 함께 봉하게 했는가?

어지러운 세상에 하늘이 역신을 편들어 도왔으니,

세 가문은 모두 환공의 후예로다.

 

 

 

 

話說齊桓公知姜氏在邾,謂管仲曰:「魯桓閔二公不得令終,皆以我姜之故。若不行討,魯人必以爲戒,姻好絕矣。」 管仲曰:「女子旣嫁從夫,得罪夫家,非外家所得討也。君欲討之,宜隱其事。」 桓公曰:「善。」 乃使豎貂往邾,送姜氏歸魯。姜氏行至夷,宿館舍,豎貂告姜氏曰:「夫人與弑二君,齊魯莫不聞之,夫人即歸,何面目見太廟乎?不如自裁,猶可自蓋也。」 姜氏聞之,閉門哭泣,至半夜寂然。豎貂啟門視之,已自縊死矣。豎貂告夷宰,使治殯事,飛報僖公。僖公迎其喪以歸,葬之成禮。曰:「母子之情,不可絶也。」 謚之曰哀,故曰哀姜。後八年,僖公以莊公無配,仍祔哀姜於太廟。此乃過厚之處。

 

令終 : 자신이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고 살다가 편안히 죽음.     祔 : 합사할 부.  합사(合祀)하다.  합장(合葬)하다. 

 

 

제환공(齊桓公)은 강씨(→哀姜)가 주(邾)나라에 있는 것을 알고 관중에게 말했다.

"노나라 환공(桓公)과 민공(閔公) 두 군주가 수명대로 살지 못하고 비명에 죽은 것은 모두 우리 제나라의 강씨(姜氏)의 여인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노(魯)나라 사람들이 반드시 우리를 경계하여 혼인으로 맺은 우호관계를 단절하려고 할 것입니다."

관중이 대답했다.

"여자가 출가하여 지아비를 따르게 되면 그 지아비에게 죄를 짓는 것이므로 친정에서 죄를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군께서 그들의 죄를 다스리려고 하신다면 은밀하게 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환공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리하여 수초로 하여금 주(邾)나라로 가서 애강을 노나라로 돌려보내게 하였다. 

애강의 행렬이 이(夷)에 이르자 관사에서 묵게 되었는데 수초가 애강에게 말했다. 

"부인이 두 군주(공자 班, 閔公)를 시해한 일에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은 제나라와 노나라 사람으로 모르는 자가 없는데 부인께서 노나라에 돌아가시면 무슨 면목으로 태묘를 보시겠습니까? 스스로 자진하시는 것이 오히려 합당할 것입니다." 

강씨가 그 말을 듣고 문을 닫고 통곡하여 울더니 깊은 밤이 되자 조용해졌다. 수초가 문을 열고 보니 강씨는 이미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었다. 수초가 이(夷)의 관리에게 알려 장례를 치르게 하고 노나라 희공에게 급히 알렸다. 

희공은 강씨의 시신을 담은 관을 맞아 돌아가 예로써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말했다. "모자의 정은 끊을 수 없는 것이다."

시호를 애(哀)라고 하여 애강(哀姜)이라 불렀다. 

8년이 지나 희공은 장공의 배필이 없었기 때문에 애강을 태묘에 합사하였다.  이것은 지나친 처사였다고 할 것이다.

 

 

 

  

卻說齊桓公自救燕定魯以後,威名愈振,諸侯悅服。桓公益信任管仲,專事飮獵爲樂。一日,獵於大澤之陂,豎貂爲御,車馳馬驟,較射方懽。桓公忽然停目而視,半晌無言,若有懼容。豎貂問曰:「君瞪目何所視也?」 桓公曰:「寡人適見一鬼物,其狀甚怪而可畏,良久忽滅,殆不祥乎 !」 豎貂曰:「鬼陰物,安敢晝見?」 桓公曰:「先君田姑棼而見大豕,是亦晝也。汝爲我亟召仲父。」 豎貂曰:「仲父非聖人,烏能悉知鬼神之事?」 桓公曰:「仲父能識『兪兒』,何謂非聖?」 豎貂曰:「君前者先言俞兒之狀,仲父因逢君之意,飾美說以勸君之行也。君今但言見鬼,勿洩其狀,如仲父言與君合,則仲父信聖不欺矣。」 桓公曰:「諾。」 乃趨駕歸,心懷疑懼,是夜遂大病如瘧。明日,管仲與諸大夫問疾。桓公召管仲,與之言見鬼:「寡人心中畏惡,不能出口,仲父試道其狀。」 管仲不能答,曰:「容臣詢之。」 豎貂在旁笑曰:「臣固知仲父之不能言也。」 桓公病益增,管仲憂之,懸書於門:「如有能言公所見之鬼者,當贈以封邑三分之一。」 有一人,荷笠懸鶉而來,求見管仲。管仲揖而進之。其人曰:「君有恙乎?」 管仲曰:「然。」 其人曰:「君病見鬼乎?」 管仲又曰:「然。」 其人曰:「君見鬼於大澤之中乎?」 管仲曰:「子能言鬼之狀否?吾當與子共家。」 其人曰:「請見君而言之。」 管仲見桓公於寢室。桓公方累重裀而坐,使兩婦人摩背,兩婦人搥足,豎貂捧湯,立而候飮。管仲曰:「君之病,有能言者,臣已與之俱來,君可召之。」 桓公召入,見其荷笠懸鶉,心殊不喜。遽問曰:「仲父言識鬼者乃汝乎?」 對曰:「公則自傷耳,鬼安能傷公?」 桓公曰:「然則有鬼否?」 對曰:「有之。水有『罔象』,邱有『峷』,山有『夔』,野有『彷徨』,澤有『委蛇』。」 桓公曰:「汝試言『委蛇』之狀。」 對曰:「夫『委蛇』者,其大如轂,其長如轅,紫衣而朱冠。其爲物也,惡聞轟車之聲,聞則捧其首而立。此不輕見,見之者必霸天下。」桓公囅然而笑,不覺起立曰:「此正寡人之所見也!」於是頓覺精神開爽,不知病之何往矣。桓公曰:「子何名?」 對曰:「臣名皇子,齊西鄙之農夫也。」 桓公曰:「子可留仕寡人。」 遂欲爵爲大夫。皇子固辭曰:「公尊王室,攘四夷,安中國,撫百姓,使臣常爲治世之民,不妨農務足矣。不願居官。」 桓公曰:「高士也!」 賜之粟帛,命有司復其家。復重賞管仲。豎貂曰:「仲父不能言,而皇子言之,仲父安得受賞乎?」 桓公曰:「寡人聞之,『任獨者暗,任眾者明』。微仲父,寡人固不得聞皇子之言也。」 豎貂乃服。

 

晌 : 정오 상. 한낮, 대낮, 정오. 나절. 낮의 어느 무렵이나 동안.         瞪 : 바로볼 징. 盯.  바로 보다주시(注視). 멍하다얼빠진 모양.

棼 : 마룻대 분. 마룻대. 삼베. 마포.  어지럽다. 나무가 뒤섞여 얽히다.      烏 : 安, 焉. 어찌.             

峷 : 짐승 이름 신. 짐승 이름. 모양이 개와 비슷함. 도깨비 이름개와 비슷한 모양에 뿔이 나고다섯 가지 무늬가 있다 .

 

桓公田於澤,管仲御,見鬼焉。公撫管仲之手曰:「仲父何見?」對曰:「臣無所見。」公反,誒詒為病,數日不出。齊士有皇子告敖者曰:「公則自傷,鬼惡能傷公!夫忿滀之氣,散而不反,則為不足;上而不下,則使人善怒;下而不上,則使人善忘;不上不下,中身當心,則為病。」桓公曰:「然則有鬼乎?」曰:「有。沈有履,灶有髻。戶內之煩壤,雷霆處之;東北方之下者,倍阿、鮭蠪躍之;西北方之下者,則泆陽處之。水有罔象,丘有峷,山有夔,野有彷徨,澤有委蛇。」公曰:「請問委蛇之狀何如?」皇子曰:「委蛇,其大如轂,其長如轅,紫衣而朱冠。其為物也惡,聞雷車之聲,則捧其首而立。見之者殆乎霸。」桓公囅然而笑曰:「此寡人之所見者也。」於是正衣冠與之坐,不終日而不知病之去也。  <莊子 達生 (8)>

 

囅 : 웃는 모양 천.               囅然 : 소리를 내어 크게 웃는 모양.

 

 

 

제환공(齊桓公)은 연(燕)나라를 구원하고 노(魯)나라를 안정시킨 이후, 위명이 더욱 진동하였으며 제후들은 기쁘게 승복하였다.  환공은 관중을 더욱 신임하여 정사를 맡기고 자신은 오로지 술마시고 사냥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하루는 대택(大澤)의 늪지대로 사냥을 나가 수초가 수레를 몰았는데 달리는 수레에서 활을 쏘면서 매우 즐거워하였다.  환공이 홀연히 눈길을 멈추고 바라보며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지었다. 

수초가 물었다. "주군께서는 무엇을 그렇게 바라보셨습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과인이 귀신같은 물체를 보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괴상하고 두려워할만 했으며 한참 있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렸으니 반드시 상서롭지 못하리라!"

수초가 물었다. "귀신은 음습한 존재인데 어찌 감히 낮에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환공이 말했다. "선군께서 고분(姑焚)에서 사냥을 하실 때 큰 멧돼지가 나타났는데 그때도 낮이었다. 너는 빨리 중부를 불러오라."

수초가 물었다. "중부는 성인이 아닌데 어찌 귀신의 일을 모두 알 수 있겠습니까?"

환공이 말했다. "중부는 유아(兪兒)를 알아보았는데 어찌 성인이 아니라 하느냐?"

수초가 말했다. "지난번에는 주군께서 유아의 모습에 대하여 먼저 말씀하셨기 때문에 중부는 주군의 뜻을 잠작하고 좋은 말로 꾸며 주군께서 행군하시도록 권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귀신이 나타났다는 말씀만 하시고 그 모습은 말씀하지 마십시오.  중부의 말이 주군이 보신 모습과 부합한다면 중부는 진실로 성인이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환공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자." 

그리하여 말을 달려 돌아갔지만 마음속으로 의구심이 일어 그날 밤 학질에 걸린 것처럼 크게 앓았다. 

다음날 관중과 대부들이 병문안을 갔다. 

환공은 관중을 불러 귀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했다. "과인이 마음속에 두렵고 끔찍하여 차마 말을 할 수 없소. 중부가 그 모습을 말해 주시오."

관중은 대답할 수 없었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초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신이 원래 중부가 말씀드릴 수 없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환공의 병이 더욱 심해지자 관중이 걱정하다가 문에 글을 내 걸었다. 

"주공께서 사냥터에서 보신 귀신을 말할 수 있다면 내 봉읍의 삼분지 일을 주겠노라."

어떤 사람이 누더기 옷에 삿갓을 등에 걸치고 와서 관중을 만나기를 청했다.

관중이 읍하고 그에게 다가가자 그가 물었다. "군주께서 병이 있으십니까?"

관중이,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자 그 사람이 물었다. 

"군주의 병은 귀신이 나타나서 생긴 것입니까?"

관중이 다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물었다. "군주께서는 대택에서 귀신을 보았습니까?"

관중이 물었다. "선생은 귀신의 모습을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는 마땅히 선생과 국사를 함께 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청했다. "군주를 만나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관중이 환공을 알현하게 하고자 침실로 갔다. 환공은 그때 겹옷을 몇 겹으로 껴입고 앉아 두 사람의 부인은 등을 안마하고 두 사람의 부인은 발을 주무르게 하며 수초가 탕약을 받들고 서서 환공이 마시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관중이 고했다. "주군의 병을 말할 수 있는 자가 있어 신이 함께 왔는데 주군께서 불러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환공이 불러들여 보니 누더기 옷에 삿갓을 등에 걸치고 나타나 마음이 매우 불쾌하여 다짜고짜 물었다.

"중부가 귀신을 알아 보았다고 한 사람이 그대인가?"

그가 대답했다. "주공께서는 스스로 마음이 상하신 것일 뿐입니다. 귀신이 어찌 주공을 상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환공이 물었다. "그렇다면 귀신이 있는 것인가?"

그가 대답했다. "귀신은 있습니다. 물에는 망상(罔象)이 있고, 언덕에는 신(峷)이 있으며, 산에는 기(虁)가 있고, 들에는 방황(彷徨)이 있으며, 늪지대에는 위사(委蛇)가 있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위사의 모습을 말해보라."

"그가 대답했다. 위사는 크기가 수레바퀴통만 하고, 길이가 수레의 끌채만 한데 자주색 옷을 입고 붉은 관을 쓰고 있습니다. 위사는 수레의 굉음을 싫어하며 수레의 굉음이 들리면 머리를 쳐들고 일어섭니다. 이것은 함부로 볼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을 본 자는 반드시 천하의 패자가 됩니다."

환공이 큰 소리로 웃으며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며 말했다. "그것은 과인이 본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갑자기 정신이 돌아오고 상쾌해져 병이 언제 나았는지도 몰랐다. 

환공이 물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신의 이름은 황자(皇子)이옵고 제나라 서쪽 변방의 농사꾼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그대는 과인의 곁에 머물러 과인을 섬기도록 하라."

그리하여 대부의 관직을 내리려고 하니 황자가 굳이 사양하며 말했다.

"주공께서 왕실을 높이고 사이(四夷)를 물리쳐 나라를 안정시키셨고, 백성을 어루만져 신과 같은 보통 사람을 치세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농사일에 방해받지 않도록 해주신것으로 족합니다. 관직에 있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환공이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선비로다."

그에게 양식과 비단을 내리고 관리에게 명하여 그의 집안의 부세를 면제하도록 했다.  다시 관중에게 후히 상을 내렸다.

수초가 간했다. "중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황자가 말을 했는데 중부가 어찌 상을 받을 수 있습니까?"

환공이 말했다. "과인이 듣기로, '맡은 일을 혼자서 하려고 하는 자는 어리석고, 맡은 일을 여럿이 하려고 하는 자는 현명하다.'고 하였다. 중부가 아니었으면 과인이 황자의 말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수초가 바로 감복했다.

 

 

 

  

時周惠王十七年。狄人侵犯邢邦,又移兵伐衛。衛懿公使人如齊告急。諸大夫請救之,桓公曰:「伐戎之役,瘡痍未息。且俟來春,合諸侯往救可也。」 其冬,衛大夫寧速至齊,言:「狄已破衛,殺衛懿公。今欲迎公子燬爲君。」  齊侯大驚曰:「不早救衛,孤罪無辭矣。」

 

 

주혜왕(周惠王) 17년, 적인(狄人)이 형(邢)나라를 침범하더니, 또 군대를 이동하여 위(衛)나라를 쳤다. 위나라 의공(懿公)이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 위급한 상황을 알렸다. 

대부들이 위나라를 구원해 줄 것을 청하자 환공이 말했다.

"융(戎)을 정벌한 일로 입은 상처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소. 잠시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제후들과 연합하여 구원을 하는 것이 좋겠소."

그해 겨울 위나라 대부 영속(寧速)이 제나라에 가서 말했다. 

"적인이 이미 위나라를 깨뜨려 위나라 의공을 살해하였습니다. 지금 제나라에 머물고 있는 공자 훼(燬)를 모셔가 군주로 삼고자 합니다."

제환공이 크게 놀라 말했다. "일찍 위나라를 구원하지 못했으니 내 죄를 어찌할 수 없구나!"

 

 

 

不知狄如何破衛,且看下回分解。

 

 

적인이 어떻게 위나라를 깨뜨렸는지 다음회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