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四回. 宋襄公假仁失眾, 齊姜氏乘醉遣夫.
第三四回. 宋襄公假仁失眾, 齊姜氏乘醉遣夫.
話說楚成王假飾乘車赴會,跟隨人眾,俱是壯丁,內穿暗甲,身帶暗器,都是成得臣鬥勃選練來的,好不勇猛!又遣蔿呂臣鬥般二將統領大軍,隨後而進,准備大大廝殺。宋襄公全然不知,墮其圈套。
正是:
沒心人遇有心人,
要脫身時難脫身了!
楚王拿住了襄公,眾甲士將公館中所備獻享犒勞之儀,及倉中積粟,擄掠一空。隨行車乘,皆爲楚有。陳、蔡、鄭、許、曹五位諸侯,人人悚懼,誰敢上前說個方便!楚成王邀眾諸侯至於館寓,面數宋襄公六罪,曰:「汝伐齊之喪,擅行廢置,一罪也;滕子赴會稍遲,輒加縶辱,二罪也;用人代牲,以祭淫鬼,三罪也;曹缺地主之儀,其事甚小,汝乃恃强圍之,四罪也;以亡國之餘,不能度德量力,天象示戒,猶思圖伯,五罪也;求諸侯於寡人,而妄自尊大,全無遜讓之禮,六罪也。天奪其魄,單車赴會。寡人今日統甲車千乘,戰將千員,踏碎睢陽城,爲齊鄫各國報仇!諸君但少駐車駕,看寡人取宋而回,更與諸君痛飮十日方散。」 眾諸侯莫不唯唯。襄公頓口無言,似木雕泥塑一般,只多著兩行珠淚。須臾,楚國大兵俱集,號曰千乘,實五百乘。楚成王賞勞了軍士,拔寨都起,帶了宋襄公,殺向睢陽城來。列國諸侯,奉楚王之命,俱屯盂地,無敢歸者。
史官有詩譏宋襄之失。詩云:
無端媚楚反遭殃,
引得睢陽做戰場。
昔日齊桓曾九合,
何嘗容楚近封疆?
套 : 씌울 투. 씌우다. 겹치다. 크다. 덮개. 버릇. 전례. 모퉁이. 짐승의 우리. 塑 : 토우 소. 토우(土偶). 흙을 이겨서 물건의 형상을 만들다.
한편 초성왕은 수레를 승거(乘車)로 위장하여 회맹 장소로 왔고, 수행하던 군사들도 모두 건장한 장정으로 안에는 갑옷을 감춰 입었고, 몸에는 무기를 숨기고 왔는데, 그들은 모두 성득신과 투발이 엄선하여 훈련까지 시켜 데리고 왔으니 참으로 용맹스럽지 않았겠는가! 또 위여신(蔿呂臣)과 투반(鬥般)의 두 장수를 대군을 인솔하여 뒤따라 오면서 큰 싸움에 대비하게 하였었다.
송양공만 전혀 모르고 있다가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바로 이와 같았다.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 뜻이 있는 사람을 만났다가,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초성왕은 송양공을 사로잡고나서 공관에 회맹에 참석했던 자들을 호궤하려고 비축했던 것과 창고 안에 쌓아 두었던 양식을 모조리 노획하여 텅텅 비게 만들었다. 수행하던 사람들이 타고 왔던 수레도 모두 초나라가 차지했다. 진(陳)、채(蔡)、정(鄭)、허(許)、조(曹) 다섯 나라의 제후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며 감히 초나라의 행동을 탓하지 못했다.
초성왕은 제후들을 공관으로 부른 다음 그들의 면전에서 송양공을 여섯 가지 죄로 꾸짖었다.
"너는 상중에 있는 제나라를 쳐서 마음대로 기존의 군주를 폐하고 군주를 새로 세웠으니 그 죄가 하나이고, 등(藤)나라 군주가 회맹에 조금 늦었다고 갑자기 체포하여 욕을 보였으니 그 죄가 둘이요, 사람으로 희생을 교체하여 요괴에게 제사를 지냈으니 그 죄가 셋이며, 조나라 제후가 땅 주인의 예를 하지 않은 일은 매우 적은 일인데도 너는 강한 것만을 믿고 조나라를 포위했으니 그 죄가 넷이다. 망한 나라의 후손으로 덕과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늘이 경계하였으나 오히려 패자(伯者)가 되려는 생각을 하였으니 그 죄가 다섯이며, 과인에게 제후들을 소집해 줄 것을 부탁하고 망녕되이 스스로를 높여 겸양하려는 예의가 전혀 없었으니 그 죄가 여섯이다. 하늘이 네 넋을 빼앗아 네가 단기로 회맹에 오게하였다. 과인은 오늘 병거 천승, 유능한 장수 천 명을 거느리고 가서 수양성(睢陽城)을 짓밟아 제(齊)나라와 증(鄫) 각나라의 원수를 갚아 주리라! 군주들께서는 잠시 머물러 과인이 송나라 수양성을 빼앗아 오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후에 또 여러분들과 10일간 실컷 마신 후에 헤어지도록 하겠습니다."
군주들은 '예에'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양공은 머리를 숙이고 말이 없었는데 흡사 나무로 깎아 만든 인형이나 진흙으로 만든 인형같았으며 두 줄기 구슬같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잠시 후 초나라 대군이 모두 집결했는데 1,000승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500백 승이었다. 초성왕은 군사들에게 상을 내리며 위로하고 영채를 뽑고 송양공을 대동하여 수양성을 향해 달려갔다. 열국의 제후들은 초성왕의 명을 받들어 모두 우(盂)에 주둔하고 감히 돌아가는 자가 없었다.
사관이 송양공의 실책을 기롱하여 시를 지었다.
쓸데없이 초나라에 아첨하다 오히여 재앙을 맞이하고,
수양성으로 끌어들여 싸움터로 만들었도다.
옛날 제환공은 아홉 번 회합을 가졌어도,
언제 초나라를 봉토에 접근하게 허용한 적 있었던가?
卻說公子目夷自盂地盟壇逃回本國,向司馬公孫固說知宋公被劫一事:「楚兵旦暮且到,速速調兵,登陴把守。」 公孫固曰:「國不可一日無君,公子須暫攝君位,然後號令賞罰,人心始肅。」 目夷附公孫固之耳曰:「楚人執我君以伐我,有挾而求也。必須如此如此,楚人必放吾君歸國。」 固曰:「此言甚當。」 乃向群臣言:「吾君未必能歸矣!我等宜推戴公子目夷,以主國事。」 群臣知目夷之賢,無不欣然。公子目夷告於太廟,南面攝政。三軍用命,鈴柝嚴明,睢陽各路城門,把守得鐵桶相似。方纔安排停當,楚王大軍已到,立住營寨。使將軍鬥勃向前打話,言:「爾君已被我拘執在此,生殺在我手。早早獻土納降,保全汝君性命!」 公孫固在城樓答曰:「賴社稷神靈,國人已立新君矣。生殺任你,欲降不可得也!」鬥勃曰:「汝君見在,安得復立一君乎?」 公孫固曰:「立君以主社稷也,社稷無主,安得不立新君?」 鬥勃曰:「某等願送汝君歸國,何以相酬?」 公孫固曰:「故君被執,已辱社稷,雖歸亦不得爲君矣。歸與不歸,惟楚所命。若要決戰,我城中甲車未曾損折,情願決一死敵!」
陴 : 성가퀴 비. 성가퀴. 돕다.
한편 공자 목이는 우(盂)라는 곳에 설치된 맹단(盟壇)으로부터 탈출하여 본국으로 돌아가 사마(司馬)인 공손고에게 송양공이 겁박당한 일을 모두 설명하여 알렸다.
"초나라 군사가 조만간 닥쳐올 것이니 빨리 군사들을 집결시켜 성에 올라가 지키도록 하여야 합니다."
공손고가 말했다.
"나라에는 하루라도 군주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공자께서 임시로라도 군주의 지위에 오르시어 상벌을 호령하신다면 인심이 안정될 것입니다."
그러자 목이가 공손고의 귀에 대고 말했다.
"초나라 사람이 우리 군주를 잡았으니 볼모로 삼아 우리를 칠 것입니다. 반드시 대응책을 마련하여 초나라로 하여금 필히 우리 군주를 귀국시키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공손고가 대답했다.
"그 말씀이 매우 지당합니다."
마침내 신하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 주군께서 반드시 돌아올 수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공자 목이를 추대하여 국사를 주관하게 하여야 합니다."
신하들은 목이의 현명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공자 목이는 태묘에 고하고 남면하여 정사를 섭정했다.
삼군에 명을 내려 군령을 엄하게 하고 수양성의 각 성문을 철통같이 지키게 했다. 막 안배를 마치고 났을 때 초왕의 대군이 도착하여 영채를 세웠다.
장군 투발로 하여금 진영의 앞으로 나가 말하게 하였다.
"너희 군주는 이미 우리에게 사로잡혀 이곳에 와 있다. 살고 죽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렸으니 빨리 땅을 바치고 항복하여 너희 군주의 생명을 보전케 하라! "
공손고가 성루에서 대답했다.
"사직의 신령이 보살펴 주신 덕택에 우리는 이미 새로운 군주를 세웠노라! 살리고 죽이는 것은 너희에게 맡긴다. 항복을 받아내려 해도 결코 뜻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투발이 물었다. "너희 군주가 여기 있는데 어찌 또 군주를 세울 수 있단 말인가?"
공손고가 대답했다.
"군주를 세우는 것은 사직을 지탱하기 위해서이다. 사직에 주인이 없는데 어찌 새로운 군주를 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투발이 물었다.
"우리가 너희 군주를 귀국시키려 하는데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공손고가 대답했다.
"옛 군주는 사로잡혔기 때문에 이미 사직을 욕되게 하였다. 귀국한다고 해도 군주가 될 수는 없다. 귀국시키던 귀국시키지 않던 오직 초나라의 명에 달렸다. 결전을 요한다면 우리 성안의 병거와 갑사들이 아직 건재하니 결사항전 할 것이다."
鬥勃見公孫固答語硬掙,回報楚王。楚王大怒,喝敎攻城。城上矢石如雨,楚兵多有損傷。連攻三日,乾折便宜,不能取勝。楚王曰:「彼國旣不用宋君,殺之何如?」 成得臣對曰:「王以殺鄫子爲宋罪,今殺宋公,是效尤也。殺宋公猶殺匹夫耳,不能得宋,而徒取怨,不如釋之。」 楚王曰:「攻宋不下,又釋其君,何以爲名?」 得臣對曰:「臣有計矣。今不與盂之會者,惟齊魯二國。齊與我已兩次通好,且不必較。魯禮義之邦,一向輔齊定伯,目中無楚。若以宋之俘獲獻魯,請魯君於亳都相會,魯見宋俘,必恐懼而來。魯宋是葵邱同盟之人,況魯侯甚賢,必然爲宋求情,我因以爲魯君之德。是我一擧而兼得宋魯也。」 楚王鼓掌大笑曰:「子玉眞有見識!」 乃退兵屯於亳都,用宜申爲使,將鹵獲數車,如曲阜獻捷。
其書云:宋公傲慢無禮,寡人已幽之於亳。不敢擅功,謹獻捷於上國,望君辱臨,同決其獄!
魯僖公覽書大驚。
正是 :
兔死狐悲,
物傷其類。
明知楚使獻捷,詞意誇張,是恐嚇之意。但魯弱楚强,若不往會,恐其移師來伐,悔無及矣!乃厚待宜申,先發回書,馳報楚王,言:「魯侯如命,即日赴會。」
掙 : 찌를 쟁. 찌르다. 눈을 부릅뜨다. 참다. 견디다. 노력하다.
투발은 공손고의 대답이 강경한 것을 보고 돌아가 초왕에게 보고했다. 초왕이 크게 노하여 성의 공격을 명했다. 성위에서 화살과 돌이 비오듯 쏟아져 초나라 군사들이 많이 상했다. 3일동안 연달아 공격했으나 헛되이 병사들만 꺾였을 뿐 승리할 수 없었다.
초왕이 말했다.
"저 나라에서 이미 송양공을 군주로 삼지 않겠다면 죽이는 것이 어떤가?"
성득신이 말했다.
"왕께서는 증나라 군주(鄫子)를 죽인 일로 송양공에게 벌을 내리셨는데 지금 송양공을 죽이신다면 이는 허물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송공을 죽이는 것은 필부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뿐이니 송나라를 취하지 못한다면 한갓 원한만 살 뿐이라 풀어주느니만 못합니다."
초왕이 말했다.
"송나라를 공격하여 깨뜨리지도 못하고 그 군주를 풀어준다면 무엇으로 명분으로 삼겠는가?"
성득신이 말했다.
"신에게 계책이 있습니다. 지금 우(盂)의 회맹에 참석하지 않은 나라는 오직 제(齊)나라와 노(魯)나라 두 나라 뿐입니다. 제나라와 우리나라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우의를 다진 바 있으니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나라는 예의를 중히 여기는 나라라 지난 날 한 차례 제나라를 도와 패자로 인정한 적이 있지만 초나라는 안중에 없을 것입니다. 만약 송나라의 포로와 노획물을 노나라에 바치며 노나라의 군주를 박성(亳城)에서 만나기를 청하십시오. 노나라 군주가 송나라의 포로를 보게 된다면 반드시 두려워하며 만나러 올 것입니다. 노나라와 송나라는 규구(葵邱)에서 동맹을 맺은 사이이고 노나라 군주는 매우 현명한 사람이라 반드시 송나라를 위해 인정을 베풀기를 청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로 인해서 노나라 군주에게 덕을 베풀게 될 것이니 이는 우리가 일거에 송나라와 노나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초왕이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자옥은 참으로 견식이 있도다."
그리하여 군대를 물려 박도에 주둔시키고 투의신(鬥宜申)을 사자로 기용하여 노획물(鹵獲物)을 실은 수레 여러 대를 노나라의 도읍인 곡부(曲阜)에 보내 전리품으로 바쳤다.
그리고 다음의 내용으로 한 서찰을 함께 보냈다.
"송공이 오만무례하여 과인이 이미 박(亳)에 유폐시켜놓았습니다. 그리고 감히 공을 함부로 논하지 못하고 상국에 삼가 전리품을 바치오니 군주께서는 수고스러우시겠지만 이곳에 왕림하시어 그 잘못을 평결해 주시기 바라나이다."
노나라 희공은 서찰을 읽어보고 크게 놀랐다.
바로
'토끼가 죽으면 여우도 슬퍼하고
동물도 같은 부류의 불행을 마음 아파한다.’는 것이었다.
초나라 사신이 전리품을 바치며 보낸 서찰의 말이 과장된 것으로 공갈과 위협의 뜻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단지 노나라는 약하고 초나라는 강해서 만약 회맹에 가지 않는다면 초나라 군대가 와서 칠 것이 두렵고 그때 가서는 후회해 봐여 소용없게 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투의신을 후하게 대접하고 먼저 회신을 보내 초왕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노후(魯侯)는 명하신대로 즉일 회맹에 참석하러 가겠습니다."
魯僖公隨後發駕,大夫仲遂從行。來至亳都,仲遂因宜申先容,用私禮先見了成得臣,囑其於楚王前,每事方便。得臣引魯僖公與楚成王相見,各致敬慕之意。其時,陳、蔡、鄭、許、曹五位諸侯,俱自盂地來會,和魯僖公共是六位,聚於一處商議。鄭文公開言,欲尊楚王爲盟主,諸侯囁嚅未應。魯僖公奮然曰:「盟主須仁義布聞,人心悅服。今楚王恃兵車之眾,襲執上公,有威無德,人心疑懼。吾等與宋,俱有同盟之誼,若坐視不救,惟知奉楚,恐被天下豪傑恥笑。楚若能釋宋公之囚,終此盟好,寡人敢不惟命是聽!」 眾諸侯皆曰:「魯侯之言甚善!」 仲遂將這話私告於成得臣,得臣轉聞於楚王。楚王曰:「諸侯以盟主之義責寡人,寡人其可違乎?」 乃於亳郊,更築盟壇,期以十二月癸丑日,歃血要神,同赦宋罪。
先容 : 미리[사전에] 소개[추천]해 주다. 잘 보아 달라고 사전에 언질을 해 주다. 囁 :소곤거릴 섭/말많을 녑. 소곤거리다. 속삭이다.
囁嚅 : 머뭇거리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입만 벌렸다 오므렸다 함. 嚅 : 선웃음칠 유, 선웃음 치다. 입다물다. 말이 많더, 떠들썩하다.
노나라 희공은 뒤따라 어가를 출발시켰는데 대부 중수(仲遂)가 수행했다. 박(亳) 성에 도착한 후 중수는 투의신으로부터 사전에 소개받은 대로 사사로이 성득신을 먼저 만나 초왕을 만날 수 있도록 부탁했었는데 매사가 편하게 진행되었다.
성득신은 노희공(魯僖公)을 초성왕에게 안내하여 만나보게 하였는데 각자 존경하고 보고싶어했다는 뜻을 표명했다. 그때 진(陳)、채(蔡)、정(鄭)、허(許)、조(曹)의 다섯 명의 제후들도 모두 우(盂)로부터 박(亳)에 왔었으므로 노희공이 가세하자 6명이 한 장소에 모여 상의하게 되었다. 정문공이 입을 열어 초왕을 맹주로 추대하자고 하였으나 제후들은 머뭇거리며 반응이 없었다.
노희공이 분연히 말했다.
"맹주는 모름지기 인의를 베풀었다는 소문이 나야 인심이 기쁘게 승복합니다. 지금 초왕은 병거가 많은 것을 믿고 기습적으로 작위가 제일 높은 송양공을 붙잡아 위력을 보였지만 덕행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인심이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송공과 더불어 모두 동맹을 맺은 우의가 있는데 만약 좌시하여 구하지 않고 초왕을 받들 줄만 안다면 천하 호걸의 비웃음을 받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초왕이 송양공을 풀어주고 이 회맹을 끝낼 수 있다면 과인이 감히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노후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중수는 그 대화내용을 은밀히 성득신에게 고하였는데 성득신은 초왕에게 들은대로 전했다.
초왕이 말했다.
"제후들이 맹주의 의를 들어 과인을 책한다면 과인이 어찌 거스를 수 있겠는가?"
이에 박(亳)성의 교외에 다시 회맹할 제단을 쌓아 12월 계축(癸丑)일에 삽혈의식을 행하고 신에게 맹세함과 동시에 송양공을 사면하기로 하였다.
約會已定。先一日,將宋公釋放,與眾諸侯相見。宋襄公且羞且憤,滿肚不樂,卻又不得不向諸侯稱謝。至日,鄭文公拉眾諸侯,敦請楚成王登壇主盟。成王執牛耳,宋魯以下,次第受歃。襄公敢怒而不敢言。事畢,諸侯各散。宋襄公訛聞公子目夷已即君位,將奔衛以避之。公子目夷遣使已到,致詞曰:「臣所以攝位者,爲君守也。國固君之國,何爲不入?」 須臾,法駕齊備,迎襄公以歸,目夷退就臣列。胡曾先生論襄公之釋,全虧公子目夷定計,神閒氣定,全不以舊君爲意;若手忙腳亂,求歸襄公,楚益視爲奇貨,豈肯輕放。有詩贊云:
金注何如瓦注奇?
新君能解舊君圍。
爲君守位仍推位,
千古賢名誦目夷。
又有詩說六位諸侯,公然媚楚求寬,明明把中國操縱之權,授之於楚,楚目中尙有中國乎?詩云:
從來兔死自狐悲,
被劫何人劫是誰?
用夏媚夷全不恥,
還誇釋宋得便宜。
神閒氣定 : 정신이 편안하고 기(氣)가 안정된 상태. 정확한 의미는 아니지만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인 것 같다.
手忙腳亂 : 손이 바쁘고 다리가 떨리는 상태. 즉 허둥대는 모습을 말함.
奇貨 : 奇貨可居. 진기한 물건은 사서 잘 보관해 두면 장차 큰 이득을 본다는 말. 좋은 기회로 이용하기에 알맞음. <史記 呂不韋列傳>
金注 · 瓦注 : 마음 먹고 잘 하려 하면 잘 되지 않는다는 말. 莊子에 나온다. (破閑集 卷上 2. 참조>
기와를 걸고 활을 쏘면 교묘하게 맞으며 허리띠의 고리를 걸고 활을 쏘면 어렵게 여겨지고 황금을 걸고 쏘면 혼미해져 잘 맞지
않는다. 솜씨는 한결같지만 재물에 마음이 쏠리는 것은 외물을 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莊子外編 達生篇4.>
제후들의 회맹일이 정해지자 하루 전에 송양공을 석방하여 제후들과 만나게 했다. 송양공은 수치스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앙앙불락하였으나 제후들을 향해 사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일이 되자 정문공은 제후들을 제후들을 이끌고 초성왕에게 단에 올라 회맹을 주관하도록 간청했다. 초성왕이 희생으로 바쳐진 소의 귀를 잡고 송공과 노공이하 제후들이 서열에 따라 삽혈의식을 행했다. 송양공은 분노가 일었으나 감히 입밖에 내어 말하지 못했다. 행사가 끝나자 제후들이 각자 흩어졌다.
송양공은 공자 목이가 이미 군주로 즉위하였다고 잘못 듣고 위(衛)나라로 망명하려고 하였으나 공자 목이가 파견한 사자가 미리 도착하여 말을 전했다.
"신이 군주의 지위를 대행한 까닭은 군주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송나라는 본래 주군의 나라인데 어찌 귀국하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잠시 후 어가가 모두 준비되어 송양공을 맞이하여 귀국하였고 목이는 물러나 신하의 반열에 섰다.
호증선생은 양공이 석방된 것을 논하여 모두 공자 목이의 계책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침착하게 대처하여 전혀 송양공을 군주로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만약 성급하게 허둥대며 양공을 구하려고 하였다면 초나라에서는 더욱 기화로 보았을 것인데 어찌 기꺼이 풀어주었겠는가?
그리하여 시를 지어 칭찬했다.
금을 걸고 활을 쏘는데 어찌 기와를 걸 때처럼 훌륭하겠는가?
새로운 군주가 옛 군주를 속박에서 풀려나게 할 수 있었도다.
군주의 자리를 지키려고 군주의 지위에 나아갔었으니,
천고에 어진 이름 목이를 읊조리리라.
또 시를 지어 '여섯 명의 제후들이 공연히 초왕에게 아첨하여 관용을 베풀기를 구했으며 명명백백히 중국을 조종하는 권한을 초나라에 주었으니 초성왕의 안중에 중국이 있었겠는가?' 라고 하였는데 시는 다음과 같다.
종래 토끼가 죽으니 여우가 슬퍼했다고 하는데
겁박당한 사람은 누구이고 겁박한 사람은 누구던가?
중국이 오랑캐에게 아부하고도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송양공을 석방한 일을 잘했다고 자랑하네.
宋襄公志欲求伯,被楚人捉弄一場,反受大辱,怨恨之情,痛入骨髓,但恨力不能報。又怪鄭伯倡議,尊楚王爲盟主,不勝其憤,正要與鄭國作對。時周襄王之十四年春三月,鄭文公如楚行朝禮,宋襄公聞之大怒,遂起傾國之兵,親討鄭罪,使上卿公子目夷輔世子王臣居守。目夷諫曰:「楚鄭方睦,宋若伐鄭,楚必救之。此行恐不能取勝,不如修德待時爲上。」大司馬公孫固亦諫。襄公怒曰:「司馬不願行,寡人將獨往!」 固不敢復言,遂出師伐鄭。襄公自將中軍,公孫固爲副,大夫樂僕伊、華秀老、公子蕩、向訾守等皆從行。諜人報知鄭文公。文公大驚,急遣人告急於楚。楚成王曰:「鄭事我如父,宜亟救之。」 成得臣進曰:「救鄭不如伐宋。」 楚成王曰:「何故?」 得臣對曰:「宋公被執,國人已破膽矣。今復不自量,以大兵伐鄭,其國必虛,乘虛而擣之,其國必懼,此不待戰而知勝負者也。若宋還而自救,彼亦勞矣。以逸制勞,安往而不得志耶?」 楚王以爲然。即命得臣爲大將,鬥勃副之,興兵伐宋。
捉弄 : 희롱하다. 농락하다. 조롱하다. 놀리다. 속이다. 正要 : 바로 …하려고 하다. 마침 …하려던 참이다.
破膽 : 간 떨어지다. 대단히 놀라다. 혼나다.
송양공의 뜻은 패자(伯者)가 되는 것이었는데, 초성왕에 의하여 한바탕 조롱거리가 되고 도리어 큰 모욕까지 당했으니 원한이 골수에 사무쳤으나 한스럽게도 힘으로는 보복할 수 없었다. 또 정문공이 앞장서서 초성왕을 맹주로 추대하자고 한 일에 대해서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정나라를 응징하려고 하였다.
때는 주양왕 14년 봄 3월이었는데 정문공이 초나라에 가서 조례를 행하자 송양공이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마침내 전병력을 동원하여 친히 정나라를 치기로 하고 상경인 공자 목이에게 세자 왕신(王臣)을 도와 도성을 지키게 했다.
목이가 간했다.
"초나라와 정나라는 지금 서로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송나라에서 정나라를 친다면 반드시 초나라에서 구원할 것입니다. 이번에 가신다면 승리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덕을 닦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대사마 공손고(公孫固)도 간했는데 양공이 노하여 말했다.
"사마가 가기를 원치 않으면 과인 혼자서라도 가리라!"
감히 다시 말을 하지 못했는데 마침내 정나라를 치기 위해 군대가 출발하였다. 양공이 스스로 장수가 되어 중군을 거느리고 공손고는 부장이 되었으며 대부 악복이(樂僕伊), 화수로(華秀老), 공자 탕(蕩), 상자수(向訾守)등이 모두 참전했다.
첩자들이 송나라의 침공사실을 정문공(鄭文公)에게 알리자 정문공은 크게 놀라 급히 사람을 초나라에 보내 긴급한 상황을 알렸다.
초성왕이 말했다.
"정문공은 나를 부친처럼 섬기는데 빨리 가서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득신이 진언했다.
"정나라를 구원하려고 하신다면 송나라를 치는 것이 낫습니다."
초성왕이 물었다.
"어째서인가?"
성득신이 대답했다.
"송공이 사로잡힌 바 있어 송나라 사람들이 이미 간담이 서늘했을 것입니다. 지금 또 스스로를 헤아리지 못하고 대병을 일으켜 정나라를 친다고 하는데 송나라 도성은 반드시 텅 비어있을 것입니다. 그 허를 틈타서 송나라 도읍성을 친다면 송나라에서는 반드시 두려워할 것이니 이는 싸우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승부를 아는 것입니다. 송양공이 군사를 돌려 도읍성을 구원하려고 한다면 송군은 지치게 될 것이고, 편안히 기다린 군사로 지친 군사를 제압하는 것인데 어찌 가서 뜻을 이룰 수 없겠습니까?"
초왕이 옳다고 여겼다. 바로 성득신을 대장으로 삼고 투발을 부장으로 삼아 군대를 일으켜 송나라를 치기로 하였다.
宋襄公正與鄭相持,得了楚兵之信,兼程而歸,列營於泓水之南以拒楚。成得臣使人下戰書。公孫固謂襄公曰:「楚師之來,爲救鄭也。吾以釋鄭謝楚,楚必歸。不可與戰。」 襄公曰:「昔齊桓公興兵伐楚,今楚來伐而不與戰,何以繼桓公之業乎?」 公孫固又曰:「臣聞『一姓不再興』。天之棄商久矣,君欲興之,得乎?且吾之甲不如楚堅,兵不如楚利,人不如楚强。宋人畏楚如畏蛇蝎,君何恃以勝楚?」 襄公曰:「楚兵甲有餘,仁義不足。寡人兵甲不足,仁義有餘。昔武王虎賁三千,而勝殷億萬之眾,惟仁義也。以有道之君,而避無道之臣,寡人雖生不如死矣。」 乃批戰書之尾,約以十一月朔日,交戰於泓陽。命建大旗一面於輅車,旗上寫「仁義」二字。公孫固暗暗叫苦,私謂樂僕伊曰:「戰主殺而言仁義,吾不知君之仁義何在也?天奪君魄矣,竊爲危之!吾等必戒愼其事,毋致喪國足矣。」 至期,公孫固未雞鳴而起,請於襄公,嚴陣以待。
兼程 : 하루에 이틀 길을 가다. 겸행(兼行)하다. (=倍道) 虎賁 : 고대 중국에서 귀족들의 자제로 이루어진 근위병(近衛兵)을 말함.
叫苦 : 괴로워서 울부짖음. 竊 : 분명하다. 분명하게 함. 嚴陣 : 진을 엄격히 정비하다.
송양공이 바로 정나라 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초나라의 군대가 송나라에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 귀국하여 홍수(泓水)의 남쪽에 진영을 벌리고 초나라 군대와 대치했다. 초군 장수 성득신이 사람을 보내 전서를 보내왔다.
공손고가 양공에게 말했다.
"초나라 군대가 온 것은 정나라를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정나라 도읍의 포위를 풀었으니 초나라에 사과한다면 초나라 군은 반드시 돌아갈 것입니다. 싸워서는 안됩니다."
양공이 말했다.
"옛날 제환공이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정벌했었지만, 지금은 초나라가 쳐들어 왔는데도 싸우지 않는다면 어찌 환공의 패업을 계승하겠는가?"
공손고가 또 말했다.
"신이 듣기로 '한 번 망한 성씨의 조정은 다시 흥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이 상(商)나라를 버린지 오랜데 주군께서 다시 일으키려고 한다고 해서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우리나라의 갑옷이 초나라보다 견고하지 못하고 무기도 초나라보다 예리하지 못하며 병사들도 초나라 병사들보다 강하지 못합니다. 송나라 병사들이 초나라 병사를 두려워하는 것이 사갈(蛇蝎)처럼 두려워하는데 주군께서는 무엇을 믿고 초군을 이긴다고 하십니까?"
양공이 대답했다.
"초나라는 병사들과 무기가 여유가 있어도 인의(仁義)가 부족하지만, 과인은 병사와 무기가 부족해도 인의가 있도다. 옛날 무왕이 목야에서 근위병 3천명으로 은나라의 억만이나 되는 무리를 이겼는데 오직 인의의 군사였기 때문이다. 도가 있는 군주가 무도한 군주를 피하는 일이 있다지만, 과인이 그렇다면 살아도 죽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리하여 전서의 답신 끝에 11월 초 하룻날이라고 적어 약속하고 홍양에서 교전하기로 했다.
명을 내려 노거(輅車) 한쪽에 큰 기를 세우고 그 위에 '인의(仁義)'라는 두 글자를 쓰게 했다.
공손고는 암암리에 괴롭게 울부짖으며 은밀히 낙복이(樂僕伊)에게 말햇다.
"전쟁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주된 행동인데 인의를 내세우고 있소. 나는 주군이 말하는 인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소. 하늘이 주군의 혼백을 빼앗아버려 위기에 빠뜨린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경계하고 신중히 임하여 나라를 잃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결전일이 되자 공손고는 닭이 울기도 전에 일어나 송양공에게 진을 엄중히 정비하고 기다리자고 요청했다.
且說楚將成得臣屯兵於泓水之北,鬥勃請:「五鼓濟師,防宋人先布陣以扼我。」 得臣笑曰:「宋公專務迂闊,全不知兵。吾早濟早戰,晚濟晚戰,何所懼哉?」 天明,甲乘始陸續渡水。公孫固請於襄公曰:「楚兵天明始渡,其意甚輕。我今乘其半渡,突前擊之,是吾以全軍而制楚之半也。若令皆濟,楚眾我寡,恐不敵,奈何?」 襄公指大旗曰:「汝見『仁義』二字否?寡人堂堂之陣,豈有半濟而擊之理?」 公孫固又暗暗叫苦。須臾,楚兵盡濟。成得臣服瓊弁,結玉纓,繡袍軟甲,腰掛彫弓,手執長鞭,指揮軍士,東西布陣,氣宇昻昻,旁若無人。公孫固又請於襄公曰:「楚方布陣,尙未成列,急鼓之必亂。」 襄公唾其面曰:「咄!汝貪一擊之利,不顧萬世之仁義耶?寡人堂堂之陣,豈有未成列而鼓之之理?」 公孫固又暗暗叫苦。楚兵陣勢已成,人强馬壯,漫山遍野,宋兵皆有懼色。襄公使軍中發鼓,楚軍中亦發鼓。襄公自挺長戈,帶著公子蕩向訾守二將,及門官之眾,催車直沖楚陣。得臣見來勢兇猛,暗傳號令,開了陣門,只放襄公一隊車騎進來。公孫固隨後趕上護駕,襄公已殺入陣內去了。
五鼓 : 옛날에는 황혼 무렵부터 새벽까지를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까지 다섯 단계로 나누었는데 그것을 '오경(五更)'
또는 '오야(五夜)', '오고(五鼓)'이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그 다섯 단계 가운데 맨 마지막, 즉 새벽 3시부터 5시까지를 일컬어
'오경' 또는 '오고', '무야(戊夜)'라고 부르게 되었다.
참고로, 새벽 4시 무렵인 오경(五更) 3점(點)에는 북이나 종을 33번을 쳐서 통행금지의 해제를 알렸는데, 이것을 파루(罷漏)라고
했다.
迂闊 : 곧바르지 아니하고 에돌아서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사리에 어둡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다.
門官 : 궁안을 지키는 관리. 즉 군주의 친위군.
한편 초나라 장수 성득신은 홍수(泓水)의 북쪽에 군사들을 주둔시켰는데 투발이 청했다.
"오경에 군사들을 모두 강을 건너게 한다면 송나라 군이 먼저 포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득신이 웃으며 말했다.
"송양공은 사리에 어둡고 군사에 전혀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일찍 건너가면 일찍 싸우게 되고 늦게 건너가면 늦게 싸우게 되는데 어찌 두려워 하겠소?"
날이 밝아오자 갑사들을 태우고 비로소 홍수를 건너가기 시작했다.
공손고가 송양공에게 청했다.
"초나라 군사들이 날이 밝자 강을 건너오기 시작했는데 그 뜻은 우리를 매우 깔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들이 강을 건너고 있는 틈을 타서 돌격하여 친다면 우리가 전군으로 초군의 반을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전부 강을 건너온다면 초나라 병사는 많고 우리 병사들은 적어 대적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양공이 큰 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인의(仁義)'라 쓴 두 글자가 보이지 않느냐? 과인이 당당하게 진용을 펼치고 있는데 어찌 반쯤 건너온 적을 치는 짓을 하겠는가?"
공손고는 내심 무척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렀다. 잠시 후 초군이 모두 홍수를 건너 왔다. 성득신은 옥으로 장식한 관을 쓰고 옥으로 장식한 끈으로 동여매고 수놓은 전포 속에 부드러운 갑옷을 입었으며, 허리에는 조각한 활을 매고 손에는 긴 채찍을 들어 군사들을 지휘하는데 동서로 군사들을 포진시키는 모습이 당당하며 방약무인이었다.
공손고가 또 양공에게 청했다.
"오군이 지금 포진 중인데 아직 포진이 끝나지 않아서 급히 친다면 반드시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양공이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아! 너는 오로지 공격의 이로움만을 탐하여 만세에 빛나게 될 인의로써 전쟁에 승리한 내 모습을 보지 못하는구나! 과인은 당당하게 진을 치고 있는데 어찌 미처 진을 치지도 못한 적을 치는 짓을 한단 말인가?"
공손고는 또 마음속으로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초나라 군의 진세가 완성되자 병사들은 강하고 말은 씩씩한데 그 모습이 산과 들을 가득 메웠다. 송나라 군사들은 모두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양공이 군중에서 북을 울리게 하자 초군 진영 안에서도 북을 울렸다. 양공은 스스로 긴 창을 들고 공자 탕과 성자수등 두 장수를 대동하고 친위군인 문관의 무리를 이끌고 수레를 재촉하여 초군 진영으로 짓쳐들어갔다. 성득신은 송양공이 달려드는 기세가 매우 흉맹스러운 것을 보고 은밀히 영을 내려 진문을 모두 열고 양공이 이끌고 들어오는 일대의 병거를 모두 내버려두게 하였다.
공손고는 송양공을 뒤쫒아 오며 어가를 호위하려고 하였으나 양공은 이미 초나라 군의 진영 안으로 짓쳐들어가버렸다.
只見一員上將擋住陣門,口口聲聲叫道:「有本事的快來決戰!」 那員將乃鬥勃也。公孫固大怒,挺戟直刺鬥勃,勃即擧刀相迎。兩下交戰,未及二十合,宋將樂僕伊引軍來到,鬥勃微有著忙之意。恰好陣中又沖出一員上將蔫氏呂臣,接住樂僕伊廝殺。公孫固乘忙,覷個方便,撥開刀頭,馳入楚軍。鬥勃提刀來趕,宋將華秀老又到,牽住鬥勃,兩對兒在陣前廝殺。公孫固在楚陣中,左沖右突,良久,望見東北角上甲士如林,圍裹甚緊,疾驅赴之。正遇宋將向訾守,流血被面,急呼曰:「司馬可速來救主!」 公孫固隨著訾守,殺入重圍,只見門官之眾,一個個身帶重傷,兀自與楚軍死戰不退。原來襄公待下人極有恩,所以門官皆盡死力。楚軍見公孫固英勇,稍稍退卻。公孫固上前看時,公子蕩要害被傷,臥於車下,「仁義」大旗,已被楚軍奪去了。襄公身被數創,右股中箭,射斷膝筋,不能起立。公子蕩見公孫固到來,張目曰:「司馬好扶主公,吾死於此矣!」 言訖而絶。公孫固感傷不已。扶襄公於自己車上,以身蔽之,奮勇殺出。向訾守爲後殿,門官等一路擁衛,且戰且走。比及脫離楚陣,門官之眾,無一存者。宋之甲車,十喪八九。樂僕伊華秀老見宋公已離虎穴,各自逃回。成得臣乘勝追之,宋軍大敗。輜重器械,委棄殆盡。公孫固同襄公連夜奔回。宋兵死者甚眾,其父母妻子,皆相訕於朝外,怨襄公不聽司馬之言,以致於敗。襄公聞之,嘆曰:「『君子不重傷,不擒二毛。』 寡人將以仁義行師,豈效此乘危扼險之擧哉?」 擧國無不譏笑。後人相傳,以爲宋襄公行仁義,失眾而亡,正指戰泓之事。
髯翁有詩嘆云:
不恤滕鄫恤楚兵,
寧甘傷股博虛名。
宋襄若可稱仁義,
盜跖文王兩不明。
口口聲聲 : 말끝마다. 말할 때마다. 입을 열 때마다. 蔫 : 시들 언/풀이름 연. 시들다. 신선하지 않다. (음식물이) 쉬다.
兀自 : 아직. 여전히. 역시. 張目 : 눈을 부릅뜨다. 二毛 : 검은 털과 흰 털. 二毛之年(32세)
한 사람의 장수가 나타나 진문을 막아서며 외쳤다.
"빨리 와서 본격적으로 싸워보자!"
그 장수는 투발이었다. 공손고가 크게 노해 창을 내밀며 투발을 바로 찔러가자 투발도 바로 칼을 들고 맞이했다. 두 사람이 교전하며 20합도 채 되지 못했는데 송나라 장수 낙복이가 군사들을 이끌고 도착하여 투발이 내심 당황했다. 때마침 초나라군 진영에서 한 사람의 장군 언여신(蔫呂臣)이 튀어나와 낙복이를 맞아 싸웠다. 공손고는 황망한 틈을 타서 상황을 보고는 즉시 칼을 뽑아 휘두르며 초군 진영으로 달려들어갔다. 투발이 칼을 들고 뒤쫒았는데 송군 장수 화수노가 나타나 투발을 가로막고는 두 사람이 양 진영 앞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공손고가 초군 진영 안에서 좌충우돌하면서 한참 후에 동북쪽 모퉁이 위를 바라보니 갑사들이 숲처럼 몰려 둘러 싸고 있는데 그 안이 매우 긴박해보여 급히 달려갔다.
바로 그 때 송군 장수 상자수가 얼굴에 피를 뒤집어 쓴채 황급히 외쳤다.
"사마께서는 빨리 와서 주군을 구하시라!"
공손고가 상자수를 바짝 따라가며 겹겹이 둘러싸인 포위망 안으로 짓쳐들어가니 친위군의 모습이 보이는데 모두가 몸에 중상을 입었으나 여전히 초나라 군사들과 죽기로 싸우며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원래 양공은 아랫 사람들에게 극진하게 은혜를 베풀며 대했기 때문에 친위군들은 모두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초나라 군사들은 공손고의 용맹함을 보자 점점 물러나기 시작했다. 공손고가 위를 올려다 봤을 때 공자 탕이 이미 급소를 다쳐 수레 아래에 누워있고 '인의(仁義)' 라 쓴 큰 기는 이미 초군이 빼앗아 가지고 가버렸다. 양공은 몸 여러 곳에 창상을 입고 오른 쪽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 화살에 무릎 근육이 끊겨 일어설 수가 없었다.
공자 탕은 공손고가 온 것을 보고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사마께 주공을 잘 부탁합니다. 나는 이곳에서 죽습니다!"
말을 마치자 목숨이 끊어졌다. 공손고는 마음이 아픈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양공을 부축하여 자신의 병거에 태운 후 몸을 가리고는 용력을 떨치며 빠르게 포위망을 벗어났다. 상자수가 후진을 맡아 친위대인 문관들을 옹위하며 한편으로는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도망쳤다.
초군진영을 완전히 벗어났을 때 문관의 무리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으며 송나라 갑사들과 병거는 열에 여덟, 아홉을 잃었다.
낙복이와 화수로는 송양공이 이미 호혈(虎穴)을 벗어난 것을 보고 각자가 도망쳐 진영으로 돌아갔다. 성득신이 승세를 타 송군을 추격하자 송군이 대패했다. 치중과 기계등 버리고 간 물품이 거의 끝이 없을 정도였다. 공손고는 자신의 병거에 송양공을 싣고 밤낮을 달려 도성으로 돌아갔다. 송나라 병사로 죽은 자들이 매우 많았는데 그 부모와 처자들이 모두 조문(朝門) 밖에서 꾸짖으며 송양공이 사마의 간언을 듣지 않아 패전에 이르렀음을 원망했다.
송양공이 듣고 탄식했다.
"'군자는 거듭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고 머리가 반백(半白)인 사람은 사로잡지 않는다.'고 했다. 과인이 인의의 군사를 일으켰는데 어찌 이와 같이 상대의 위기나 약점을 노려 적을 치겠는가?"
온 나라에서 송양공을 조롱하며 웃지 않는 자가 없었다.
후인에게 '송양공이 인의를 행하였다.'고 전해진 것은 송양공이 많은 군사를 잃은 바로 홍수(泓水)에서 싸운 일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염옹이 시를 지어 탄식했다.
등(藤)나라와 증(鄫)나라를 보살피지 않고 초나라를 돌보더니,
어찌 허벅다리를 다치며 허명(虛名)만 키웠는가?
송양공이 인의를 부르짖어도 좋았다면
도척과 주문왕 두 사람의 구별도 분명하지 않았으리라.
楚兵大獲全勝,復渡泓水,奏凱而還。方出宋界,哨馬報「楚王親率大軍接應,見屯柯澤。」 得臣即於柯澤謁見楚王獻捷。楚成王曰:「明日鄭君將率其夫人,至此勞軍,當大陳俘馘以誇示之。」 原來鄭文公的夫人羋氏,正是楚成王之妹,是爲文羋,以兄妹之親,駕了輜軿,隨鄭文公至於柯澤,相會楚王。楚王示以俘獲之盛。鄭文公夫婦稱賀,大出金帛,犒賞三軍。鄭文公敦請楚王來日赴宴。次早,鄭文公親自出郭,邀楚王進城。設享於太廟之中,行九獻禮,比於天子。食品數百,外加籩豆六器,宴享之侈,列國所未有也。文羋所生二女,曰伯羋叔羋,未嫁在室。文羋又率之以甥禮見舅,楚王大喜。鄭文公同妻女更番進壽,自午至戌,吃得楚王酩酊大醉。楚王謂文羋曰:「寡人領情過厚,已踰量矣!妹與二甥,送我一程何如?」 文羋曰:「如命。」 鄭文公送楚王出城,先別。文羋及二女,與楚王並駕而行,直至軍營。原來楚王看上了二甥美貌,是夜拉入寢室,遂成枕席之歡。文羋徬徨於帳中,一夜不寐,然畏楚王之威,不敢出聲。(以舅納甥,眞禽獸也!)次日,楚王將軍獲之半,贈於文羋,載其二女以歸,納之後宮。鄭大夫叔詹嘆曰:「楚王其不得令終乎?享以成禮,禮而無別,是不終也。」
馘 : 벨 괵/빰 혁. (귀를) 베다. 죽이다. 포로. [혁] 뺨. 얼굴. 軿 : 수레 병(변). (부인용)수레. 거마 소리. 수레에 친 휘장.
九獻禮 : 천자가 외국이나 제후의 나라에서 보내온 사자를 맞이할 때 구빈에 해당하는 모든 관원들이 참석하여 행하는 가장 성대한 의례식. 구빈(九賓)이란 공(公), 후(侯), 백(伯),자(子), 남(男), 고(孤), 대부(大夫), 사(士)를 말한다.
또 九賓之禮라고도 하며 국가간의 외교상 행해지는 가장 성대한 의식이다. 9명의 영접관이 구주(九州)의 이름 순에 의해 도열했
다가 호명하면 차례대로 나와 사자를 전당으로 인도했다.
一程 : 어느 구간(區間)의 거리. 看上 : 마음에 들다. 반하다. 넋을 잃고 보다.
詹 : 이를 첨/족할 담. 이르다. 도달함. 수다스럽다. 보다. 점. 점침. 두꺼비. [담] 족하다. 충족함.
초나라 군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 다시 홍수(泓水)를 건너 개선가를 연주하며 돌아갔다.
송나라의 국경을 막 통과하는데 척후병이 보고했다.
"초왕이 친히 대군을 이끌고 접응을 나와 가택(柯澤)에 주둔하고 계십니다."
성득신은 바로 가택으로 가서 초왕을 알현하고 승첩을 바쳤다.
초성왕이 말했다.
"내일 정나라의 군주가 그 부인을 대동하고 이곳에 와서 군사들을 위로한다고 하니, 포로들을 크게 늘어놓고 보여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오."
원래 정문공의 부인은 미씨(羋氏)인데 바로 초성왕의 누이동생이었다. 그래서 문미(文羋)라 하였으며 오누이의 친분이 있어 수레를 타고 정문공을 따라 가택에 와서 초왕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초왕은 포로들과 노획물을 성대하게 늘어놓고 전공을 과시했다. 정문공 부부가 칭하하며 금과 비단을 크게 내놓고 삼군을 호궤하고 포상했다. 정문공은 초왕에게 다음날 자신이 베푸는 연회에 참석해 줄 것을 간청했다.
다음날 일찍 정문공은 친히 성을 나가 초왕을 맞이하여 성으로 들어갔다. 태묘 안에 주연을 설치하고 구헌례(九獻禮)를 행하여 마치 천자를 대하듯 했다. 수백가지 음식외에도 변두(籩豆)와 육기(六器)까지 내와 향연의 사치가 열국에서는 행해진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문미는 두 딸을 두어 백미(伯羋)와 숙미(叔羋)라 하였는데 아직 출가하지 않았다. 문미가 두 딸을 거느리고 가서 외삼촌을 만나게 하자 초왕이 크게 기뻐했다. 정문공이 처와 아내가 함께 번갈아 술을 권했는데 오시부터 술시까지 마시게 되자 초왕이 크게 취했다.
초왕이 문미에게 말했다.
"과인이 지나친 후의를 받아 너무 많이 마셨다. 누이와 두 조카는 나를 좀 데려다 주지 않겠느냐?"
문미가 대답했다.
"명에 따르겠습니다."
정문공은 성밖에 나가 초왕을 전송하고 먼저 작별했다. 문미와 두 딸은 초왕과 함께 수레에 올라 바로 초군 군영으로 갔다. 원래 초왕은 두 조카의 미모에 반했던 차라 그날 밤 침실에 끌어들여 마침내 환락을 누렸다. 문미는 장막 안에서 방황하며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초왕의 위세가 두려워 감히 말을 입밖에 내지 못했다. - 외삼촌이 조카를 취한 것은 참으로 금수같은 짓이었다. -
다음날 초왕은 군이 노획한 전리품의 반을 문미에게 주고 두 조카를 싣고 돌아가 후궁으로 삼았다.
정나라 대부 숙첨(叔詹)이 탄식했다.
"초왕이 생을 좋게 마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예를 갖추어 대접했으나 예를 분별하지 못했으니 끝이 좋을 수 없을 것이다."
且不說楚宋之事。再表晉公子重耳,自周襄王八年適齊,至襄王十四年,前後留齊共七年了。遭桓公之變,諸子爭立,國內大亂,及至孝公嗣位,又反先人之所爲,附楚仇宋,紛紛多事,諸侯多與齊不睦。趙衰等私議曰:「吾等適齊,謂伯主之力,可借以圖復也。今嗣君失業,諸侯皆叛,此其不能爲公子謀,亦明矣。不如更適他國,別作良圖。」 乃相與見公子,欲言其事。公子重耳溺愛齊姜,朝夕歡宴,不問外事。眾豪傑伺候十日,尙不能見。魏犨怒曰:「吾等以公子有爲,故不憚勞苦,執鞭從遊。今留齊七載,偸安惰志,日月如流,吾等十日不能一見,安能成其大事哉?」 狐偃曰:「此非聚談之處,諸君都隨我來。」 乃共出東門外里許,其地名曰桑陰。一望都是老桑,綠蔭重重,日色不至。趙衰等九位豪傑,打一圈兒席地而坐。趙衰曰:「子犯計將安出?」 狐偃曰:「公子之行,在我而已。我等商議停妥,預備行裝,一等公子出來,只說邀他郊外打獵,出了齊城,大家齊心劫他上路便了。但不知此行,得力在於何國?」 趙衰曰:「宋方圖伯,且其君好名之人,盍往投之。如不得志,更適秦楚,必有遇焉。」 狐偃曰:「吾與公孫司馬有舊,且看如何?」 眾人商議許久方散。
停妥 : 적절하다. 타당하다. 잘 되어 있다. 便了 : ~ 면 된다. ~ 뿐이다. [구말(句末)에 두어 결정·허락·양보의 어기를 나타냄]
초나라와 송나라의 일은 잠시 접어둔다.
당진의 공자 중이는 주양왕 8년 제나라에 갔을 때부터 양왕 14년까지 전후로 제나라에서 7년간을 머물렀다. 환공이 변을 당한 후 그 아들들이 후계자다툼을 벌여 나라 안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효공이 즉위하게 되자 선공인 제환공이 했던 일과는 반대로 초나라와 친하고 송나라와는 원수처럼 지내게 되었는데 나라 안에 의견이 분분해지고 사건이 많이 일어났으며 많은 제후국들이 제나라와 불화하게 되었다.
조최(趙衰)등이 은밀히 상의했다.
"우리가 제나라에 온 것은 패자인 제환공의 도움을 얻어 당진에 복귀하기 위해서였소. 지금 효공은 패자의 지위를 잃고 제후들이 모두 배반하여 이곳에서는 공자를 위해 일을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소. 차라리 다른 나라로 가서 달리 좋은 계책을 도모하는 것이 낫겠소."
그리고 함께 공자 중이를 만나 그 일을 설명했다. 공자 중이는 제강(齊姜)에게 빠져 아침 저녁으로 술을 즐기며 바깥 일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호걸들이 10일 동안 기다렸으나 여전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위주(魏犨)가 화가 나서 말했다.
"우리가 공자를 위하여 온갖 고난을 마다 않고 채찍을 잡아 공자를 따라 천하를 주유하였소. 지금 제나라에 머문지 7년이 되었는데 공자는 안락함을 탐내고 뜻을 가볍게 여겨 세월은 흐르는데도 우리는 공자를 10일동안 한번도 보지못했소. 어찌 대사를 이룰 수 있겠소?"
호언(狐偃)이 말했다.
"이곳은 우리가 모여 이야기할 곳이 아니니 여러분은 모두 나를 따라 오시오."
마침내 모두 함께 동문 밖 10리쯤 되는 곳으로 나갔는데 그곳은 상음(桑陰)이라는 곳이었다. 바라보니 모두 오래된 뽕나무라 녹음이 짙어 햇볕이 들지 않았다. 조최등 9명의 호걸들은 둥글게 자리를 만들고 앉았다.
조최가 물었다.
"자범의 계책은 무엇이오?'
호언이 대답했다.
"공자가 떠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소. 우리가 잘 상의해서 미리 행장을 꾸린 후 공자가 나오시기를 기다려 교외로 사냥을 나가자고 청한 다음 제나라 도성을 나가게 되면 우리가 합심하여 겁박하고 떠나면 그 뿐이오. 단 이번에 갈 곳을 모르겠는데 어느 나라에 가야 힘을 얻을 수 있겠소?"
조최가 말했다.
"송나라에서 지금 패업을 도모하고 또 양공이 명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찌 그에게 가려고 하지 않소? 송나라에서 뜻을 얻지 못한다면 또 섬진이나 초나라에 가서 반드시 뜻을 이루도록 합시다."
호언이 말했다.
"나는 송나라의 공손사마(=공손고)와 구면이니 또 만나보면 어떻겠소?"
사람들은 오랫동안 상의한 후 헤어졌다.
只道幽僻之處,無人知覺,卻不道「若要不聞,除非莫說,若要不知,除非莫作。」 其時姜氏的婢妾十餘人,正在樹上採桑喂蠶,見眾人環坐議事,停手而聽之,盡得其語,回宮時,如此恁般,都述於姜氏知道。姜氏喝道:「那有此話,不得亂道!」 乃命蠶妾十餘人,幽之一室,至夜半盡殺之,以滅其口。蹴公子重耳起,告之曰:「從者將以公子更適他國,有蠶妾聞其謀,吾恐洩漏其機,或有阻當,今已除卻矣。公子宜早定行計。」 重耳曰:「人生安樂,誰知其他。吾將老此,誓不他往。」 姜氏曰:「自公子出亡以來,晉國未有寧歲。夷吾無道,兵敗身辱,國人不悅,鄰國不親,此天所以待公子也。公子此行,必得晉國,萬勿遲疑!」 重耳迷戀姜氏,猶弗肯。次早,趙衰、狐偃、臼季、魏犨四人,立宮門之外,傳語:「請公子郊外射獵!」重耳尙高臥未起,使宮人報曰:「公子偶有微恙,尙未梳櫛,不能往也。」 齊姜聞言,急使人單召狐偃入宮。姜氏屛去左右,問其來意。狐偃曰:「公子向在翟國,無日不馳車驟馬,伐狐擊兔。今在齊,久不出獵,恐其四肢懶惰,故來相請,別無他意。」 姜氏微笑曰:「此番出獵,非宋即秦楚耶?」 狐偃大驚曰:「一獵安得如此之遠?」 姜氏曰:「汝等欲劫公子逃歸,吾已盡知,不得諱也。吾夜來亦曾苦勸公子,奈彼執意不從。今晚吾當設宴,灌醉公子,汝等以車夜載出城,事必諧矣。」 狐偃頓首曰:「夫人割房闈之愛,以成公子之名,賢德千古罕有!」 狐偃辭出,與趙衰等說知其事。凡車馬人眾鞭刀糗糒之類,收拾一一完備,趙衰狐毛等先押往郊外停泊。只留狐偃、魏犨、顚頡三人,將小車二乘,伏於宮門左右,專等姜氏送信,即便行事。
正是:
要爲天下奇男子,
須歷人間萬里程。
喂 : 두려울 위(외). 두렵다. 두려워하다. 겁내다. (먹이를 먹여)기르다. 부르는 소리. 恁般 : 이와 같은. 그와 같은. 이처럼. 그처럼.
房闈之愛 : 규방(閨房)의 정. 糗 : 볶은 쌀 구. 볶은 쌀. 건량. 씹다. 먹다. 糒 : 말린 밥 비. 糗糒 : 건량.
길이 깊고 후미진 곳이라 사람이 없는 줄 알겠지만, 말이 있지 않은가? '듣지 않으려면 말하지 말고 알지 못하려면 일을 만들지 말라.'
그때 강씨의 비첩 10여명이 바로 그 나무 위에서 누에를 먹일 뽕잎을 따고 있다가 사람들이 둘러앉아 의논하는 모습을 보고 손을 멈춘채 그들의 말을 모두 들었다. 궁으로 돌아가자 들은 내용을 상세하게 강씨에게 말해 알렸다.
강씨가 꾸짖으며 말했다.
"너희들은 이 일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그리고는 누에치는 비첩 10여 명을 깊숙한 곳에 가두고 밤이 깊어지자 그들을 모두 죽여 입을 막았다.
그리고 공자 중이를 깨워 고했다.
"종자들이 공자님을 모시고 다른 나라로 가시려고 합니다. 누에를 치는 비첩들이 그들이 모의하는 내용을 모두 듣고 저에게 알려 왔는데 제가 기밀이 누설되면 혹 막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 이미 비첩들을 모두 제거하였습니다. 공자께서는 일찍 떠나실 계책을 세우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중이가 말했다.
"편안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데 누가 다른 것을 생각하겠소? 나는 이렇게 늙었으니 결코 다른 곳으로는 가지 않겠소."
강씨가 말했다.
"공자께서 망명하신이래 당진에서는 평안한 때가 없었습니다. 이오(夷吾)가 무도하여 군사들은 패배하고 자신은 굴욕을 당해 백성들은 마음이 편치 않으며 이웃나라들과는 화목하지 못하니 이는 하늘이 공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자께서 이번에 가신다면 반드시 당진을 얻을 것이니 절대 지체하지 마십시오."
중이는 강씨에게 미련이 있어 수긍을 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조최, 호언, 구계, 위주등 네명이 궁 밖에 와서 말을 전했다.
"공자님께 교외로 사냥하러 나가자고 청합니다."
중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아 궁인에게 말을 전하게 했다.
"공자께서는 몸이 약간 불편하시어 아직 머리도 다듬지 못하셨기 때문에 나가실 수 없습니다."
제강이 그 말을 듣고 급히 사람을 보내 오로지 호언 한 사람만 불러들였다. 강씨는 좌우를 물리치고 온 뜻을 물었다.
호언이 말했다.
"공자께서는 지난 날 적국(翟國)에 계실 때에는 수레를 몰고 말을 달려 여우와 토끼사냥을 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나라에 와서는 오랫동안 사냥을 나가지 않으시니 사지가 게을러질까 두려워 와서 청하는 것이며 다른 뜻은 없습니다."
강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 사냥을 나가시면 송나라가 아니면 섬진이나 초나라로 가시는 것이지요?"
호언이 크게 놀라 말했다.
"사냥 한 번 나가는데 어찌 그렇게 멀리 갈 수 있습니까?"
강씨가 말했다.
"그대들이 공자를 겁박하여 도망치려고 하는 것을 내가 이미 모두 알고 있으니 속이실 수 없습니다. 나도 밤에 공자께 간곡하게 권한 바 있었으나 공자께서는 고집을 피우며 듣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밤 내가 주석을 마련하여 공자를 취하게 할 것이니 여러분들이 수레에 공자님을 태우고 성을 나가신다면 일은 잘 마무리 될 것입니다."
호언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부인께서 규방의 정을 끊고 공자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니 그 어진 덕행은 천고에 드물 것입니다!"
호언이 사례하고 나가서 조최등 일행에게 그 일을 알렸다. 마침내 수레와 인부, 병장기와 건량 등속을 일일이 거두어 완전히 준비를 마치고 조최와 호모등은 먼저 출발하여 교외에서 묵었다. 다만 호언, 위주, 전힐등 세 명은 작은 수레 두 대를 궁문 좌우에 감춰두고 오로지 강씨의 신호만을 기다려 즉시 일을 거행하기로 했다.
이것은 바로.
'천하의 훌륭한 남자가 되려면,
모름지기 만리 길을 두루 섭렵해야 한다.' 는 것이다.
是晩,姜氏置酒宮中,與公子把盞。重耳曰:「此酒爲何而設?」 姜氏曰:「知公子有四方之志,特具一杯餞行耳。」 重耳曰:「人生如白駒過隙,苟可適志,何必他求?」 姜氏曰:「縱欲懷安,非丈夫之事也。從者乃忠謀,子必從之!」 重耳勃然變色,擱杯不飮。姜氏曰:「子眞不欲行乎?抑誑妾也?」 重耳曰:「吾不行。誰誑汝!」 姜氏帶笑言曰:「行者,公子之志,不行者,公子之情。此酒爲餞公子,今且以留公子矣。願與公子盡歡可乎?」 重耳大喜,夫婦交酢,更使侍女歌舞進觴。重耳已不勝飮,再四强之,不覺酪酊大醉,倒於席上。姜氏覆之以衾,使人召狐偃。狐偃知公子已醉,急引魏犨顚頡二人入宮,和衾連席,抬出宮中。先用重褥襯貼,安頓車上停當。狐偃拜辭姜氏,姜氏不覺淚流。
有詞爲證:
公子貪歡樂,
佳人慕遠行;
要成鴻鵠志,
生割鳳鸞情。
白駒過隙 : 흰 망아지가 빨리 달리는 것을 본다는 뜻으로, 세월과 인생이 덧없이 짧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卻, 忽然而已. <莊子 知北遊(5)>
擱 : 놓을 각. 놓다. 두다. 버리다. (배가) 좌초하다.
이날 저녁 강씨는 궁안에 술상을 차려놓고 공자 중이에게 잔을 권했다.
중이가 물었다.
"이 술상은 어찌 차린 것이오?"
강씨가 대답했다.
"공자께서는 천하에 뜻을 두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 특별히 술 한잔을 권해 전별하려고 마련했습니다."
중이가 말했다.
"인생은 참으로 덧없이 빨리 지나가는 것이오, 겨우 뜻을 얻었는데 하필이면 다른 곳에서 구하여야 하겠소?"
강씨가 말했다.
"탐욕을 쫒고 안락을 생각하는 것은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닙니다. 종자들은 충성스럽고 지모가 있는 자들이니 공자께서는 반드시 그들을 따르셔야 합니다."
공자 중이가 발연히 얼굴빛이 변하며 잔을 놓고 마시지 않았다.
강씨가 물었다.
"공자께서는 진심으로 갈 생각이 없으십니까? 아니면 저를 속이시는 것입니까?"
중이가 말했다.
"나는 가지 않겠소. 누가 그대를 속이겠소?"
강씨가 말했다.
"가는 것은 공자의 뜻이요, 가지 않으시려는 것은 공자의 정입니다. 이 술은 공자님을 전별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공자님을 머무르게 하기 위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공자님과 마음껏 즐기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중이가 크게 기뻐하고 부부가 잔을 들며 또 시녀들로 하여금 가무와 더불어 술을 권하게 했다. 중이는 이미 술을 이기지 못할만큼 취했으나 다시 강권하여 마침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대취하고는 술자리에서 쓰러졌다. 강씨는 이불로 덮고 사람을 시켜 호언을 불렀다.
호언은 중이가 이미 취한 것을 알고 급히 위주와 전힐 두 사람을 궁안으로 불러들여 이불과 요로 둘둘 말아들고 궁을 나갔다. 먼저 두터운 요를 깔고 편안하게 수레에 실었다. 호언이 강씨에게 절하며 작별하자 강씨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를 말해주는 시가 있다.
공자는 환락을 탐했으나,
가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나 보냈네.
장부가 뜻을 이루려면,
봉황과 난새의 애틋한 정도 끊어야 하리라!
狐偃等催趲小車二乘,趕黃昏離了齊城,與趙衰等合做一處,連夜驅馳。約行五六十里,但聞得雞聲四起,東方微白。重耳方纔在車兒上翻身,喚宮人取水解渴。時狐偃執轡在傍,對曰:「要水須待天明。」 重耳自覺搖動不安,曰:「可扶我下牀。」 狐偃曰:「非牀也,車也。」 重耳張目曰:「汝爲誰?」 對曰:「狐偃。」 重耳心下恍然,知爲偃等所算。推衾而起,大罵子犯:「汝等如何不通知我,將我出城,意欲何爲?」 狐偃曰:「將以晉國奉公子也。」 重耳曰:「未得晉,先失齊,吾不願行!」 狐偃誑曰:「離齊已百里矣。齊侯知公子之逃,必發兵來追,不可復也。」重耳勃然發怒,見魏犨執戈侍衛,乃奪其戈以刺狐偃。
恍然 : 언뜻. 문득 깨닫는 모양. 문득. 갑자기.
호언등은 수레 두 대를 채찍질하여 황혼이 질 때까지 달리고 나서야 제나라 성을 벗어나게 되었으며 조최등 일행과 합류한 후 다시 밤새도록 달렸다. 대략 50 ~ 60리를 갔는데 닭 우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며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중이가 수레 위에서 막 몸을 일으키며 궁인을 부르며 갈증을 해소할 물을 찾았다.
그때 호언은 옆에서 말고삐를 잡은 채 대답했다.
"물은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중이는 몸이 흔들리는 것을 깨닫고 편안치 못해 말했다.
"나를 부축해 침상아래로 내려다오."
호언이 대답했다.
"침상이 아니라 수레 안입니다."
중이가 눈을 부릅 뜨고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가?"
"호언입니다."
중이는 갑자기 마음이 맑아지며 호언등이 꾸민 술책임을 알았다.
그리고 이불을 밀치고 일어나 자범을 꾸짖었다.
"너희들은 어찌 알리지도 않고 나를 성 밖으로 데리고 나왔으며,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호언이 말했다.
"당진의 군주로 공자를 받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중이가 말했다.
"당진을 얻지 못하고 제나라를 먼저 잃는 것이니 나는 가기 싫도다!"
호언이 중이를 속이며 말했다.
"제나라를 떠난지 이미 100리가 되었습니다. 제나라 군주가 공자께서 도망친 사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군사들에게 명하여 추격하게 할 것이니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중이가 발연히 노하여 위주가 창을 들고 호위하는 것을 보고 창을 빼앗아 호언을 찌르려고 하였다.
不知生死如何,且看下回分解。
호언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면 다음회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