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歷史와文學/列國志

第三五回. 晉重耳周遊列國, 秦懷嬴重婚公子.

柳川 2021. 3. 22. 11:22

第三五回. 晉重耳周遊列國, 秦懷嬴重婚公子.

 

 

話說公子重耳怪狐偃用計去齊,奪魏犨之戈以刺偃,偃急忙下車走避,重耳亦跳下車挺戈逐之。趙衰、臼季、狐射姑、介子推等,一齊下車解勸。重耳投戟於地,恨恨不已。狐偃叩首請罪曰:「殺偃以成公子,偃死愈於生矣!」 重耳曰:「此行有成則已,如無所成,吾必食舅氏之肉!」 狐偃笑而答曰:「事若不濟,偃不知死在何處,焉得與爾食之?如其克濟,子當列鼎而食,偃肉腥臊,何足食?」 趙衰等並進曰:「某等以公子負大有爲之志,故舍骨肉,棄鄕里,奔走道途,相隨不舍,亦望垂功名於竹帛耳。今晉君無道,國人孰不願戴公子爲君?公子自不求入,誰走齊國而迎公子者!今日之事,實出吾等公議,非子犯一人之謀,公子勿錯怪也。」 魏犨亦厲聲曰:「大丈夫當努力成名,聲施後世。奈何戀戀兒女子目前之樂,而不思終身之計耶?」 重耳改容曰:「事旣如此,惟諸君命。」 狐毛進乾糒,介子推捧水以進,重耳與諸人各飽食。壺叔等割草飼馬,重施銜勒,再整輪轅,望前進發。

有詩爲證:

鳳脫雞群翔萬仞,

虎離豹穴奔千山。

要知重耳能成伯,

只在周遊列國間。

 

列鼎 : 그릇이 많이 놓인 식탁. 진수성찬.                                  腥臊 : 비린내가 나고 더러움.

腥 : 비릴 성. 비리다. 날고기. 더럽다. 기름.                  臊 : 누릴 조. 누리다. 누린내가 나다. 돼지기름. 개기름.

錯怪 : 오해하여 남을 나쁘게 생각하다. 오해로 인해 남을 원망하다 .

 

 

 

공자 중이가 호언이 계책을 써서 제나라를 떠나온 것으로  의심하여 위주에게서 창을 빼앗아 호언을 찌르려고 하자 호언은 급히 수레에서 내려 도망쳐 피했는데 중이도 수레에서 내려 창을 들고 호언을 뒤쫒았다. 조최, 구계, 호석고, 개자추등이 일제히 수레에서 내려 마음을 풀으라고 권했다.  중이는 창을 땅에 던져버리기는 했지만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호언이 머리를 숙이며 죄를 청했다.

"저를 죽여 공자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저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중이가 말했다.

"이번에 가서 뜻을 이룬다면 그만이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반드시 외삼촌의 살점을 씹어먹으리라!"

호언이 웃으며 대답했다.

"일을 이루지 못하면 저는 어디에서 죽을지 모르는데 어찌 공자님께 살점을 씹어먹도록 하겠습니까?  일을 이룰 수 있다면 공자께서는 마땅히 진수성찬을 드실터인데 제 비린내 나고 더러운 살점을 어찌 먹을 수 있겠습니까?"

조최등이 함께 나아가 진언했다.

"우리는 공자께서 큰 뜻을 품고 계시다는 생각으로 가족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천하를 떠돌면서도 공자님을 따르며 떠나지 않고 있는 까닭은 우리가 공을 세우고 그 공명이 기록되어 역사에 남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진의 군주가 무도한데 국인들 중에 누가 공자를 군주로 추대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공자께서 스스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데 누가 제나라로 달려가 공자를 맞이해 가려고 하겠습니까? 오늘의 일은 사실 우리들이 상의하여 나온 것이며 자범 한 사람의 꾀가 아니었으니 공자께서는 오해하여 원망하지 마십시오."

위주도 큰소리로 말했다.

"대장부는 마땅히 힘써 공명을 세우고 후세에 그 명성을 전해야 합니다. 어찌 아녀자와 목전의 즐거움에 연연하여 평생의 뜻을 이룰 계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중이가 얼굴 빛을 고치며 말했다.

"일이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제군의 뜻을 따르겠노라!"

호모가 건량을 내놓고 개자추가 물을 물을 떠와 일행이 모두 배부르게 먹었다. 호숙등이 풀을 베어다 말을 먹이고 재갈을 다시 물려 수레바퀴등을 점검한 후 출발했다. 

그 모습을 읊은 시가 있다.

 

봉이 닭들 속에서 하늘 높이 날아 오르고,

범이 표범 굴에서 떠나 천산을 달려 갔도다.

요컨대 중이가 패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열국을 두루 돌아 다녔기 때문이었노라.

 

 

 

不一日行至曹國。卻說曹共公爲人,專好遊嬉,不理朝政,親小人,遠君子,以諛佞爲腹心,視爵位如糞土。朝中服赤芾乘軒車者,三百餘人,皆里巷市井之徒,脅肩諂笑之輩。見晉公子帶領一班豪傑到來,正是「薰蕕不同器」了!惟恐其久留曹國,都阻擋曹共公不要延接他。大夫僖負羈諫曰:「晉曹同姓,公子窮而過我,宜厚禮之。」曹共公曰:「曹,小國也,而居列國之中,子弟往來,何國無之?若一一待之以禮,則國微費重,何以支吾?」 負羈又曰:「晉公子賢德聞於天下,且重瞳駢脅,大貴之徵,不可以尋常子弟視也。」 曹共公一團稚氣,說賢德他也不管,說到重瞳駢脅,便道:「重瞳寡人知之,未知駢脅如何?」 負羈對曰:「駢脅者,駢脅骨相合如一,乃異相也。」曹共公曰:「寡人不信,姑留館中,俟其浴而觀之。」乃使館人自延公子進館,以水飯相待,不致餼,不設享,不講賓主之禮。重耳怒而不食。館人進澡盆請浴,重耳道路腌臢,正想洗滌塵垢,乃解衣就浴。曹共公與嬖幸數人,微服至館,突入浴堂,迫近公子,看他的駢脅,言三語四,嘈雜一番而去。狐偃等聞有外人,急忙來看,猶聞嬉笑之聲。詢問館人,乃曹君也。君臣無不慍怒。

 

赤芾 · 軒車 : 赤芾은 대부 이상의 관리가 조복등을 입을 때 붉은 색의 가죽으로 만들어 무릎을 가리던 예복이며, 軒車는 軺軒으로 한

        필의 말이 끄는 수레로 대부이상의 고관들만 타고 다녔다. 

蕕 : 누린내풀 유.              重瞳 : 두 겹으로 된 눈동자.   舜目蓋重瞳子 又聞項羽亦重瞳子. <史記 卷7. 項羽本紀 Ⅱ>                  

駢脅 : 통갈비. 갈비가 나란히 붙어 통뼈 같은 늑골.           腌 : 절인고기 엄(업). 절인 고기. 절인 생선. 더럽다. 때묻다. 

臢 : 비루할 참. 비루하다. 추악하다. 더럽다. 

言三語四 : 여러 말이 서로 오고감.  이러니저러니 불손하게 말하다. 이러쿵저러쿵 말하다. 의론이 분분하다.

嘈 : 들렐 조. 들레다(야단스럽게 떠들다). 시끄럽다. 지껄이는 소리.         嬉 : 즐길 희. 즐기다. 기쁨. 놀다. 어울려 장난함. 아름답다.

 

 

 

하루가 채 지나지도 않았는 데 조(曹)나라에 도착했다. 조나라 군주인 공공(共公)의 사람됨은 오로지 노는 것만을 좋아하여 정사도 다스리지 않고 소인배만 가까이 하며 군자를 멀리 했다. 또 아첨하는 무리들을 심복으로 삼고 벼슬을 내리는 것도 썩은 흙 버리듯 함부로 했다. 조정 안에 붉은 폐불을 착용하고 수레를 타고 다니는 자가 300여 명이었는데, 모두 시정 잡배들로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첨이나 떨며 웃는 무리들이었다. 당진의 공자 중이가 한 무리의 호걸들을 이끌고 온 것은 바로 '향초(香草)와 나쁜 냄새나는 풀을 한 그릇에 담지 않는다.'는 격이었다, 

공자 중이의 일행이 조나라에 오래 머무를까봐 두려워 했으며 모두 공공이 중이 일행을 맞이하지 못하게 막았다.

대부 희부기가 간했다.

"당진과 조나라는 같은 성씨입니다. 공자 중이가 어려움에 처해 우리나라에 왔으니 마땅히 예로써 후하게 대접하여야 합니다."

조 공공이 말했다.

"조나라는 작은 나라요. 열국의 가운데에 있어 모든 나라의 자제들이 오가는데 어느 나라에 그런 자들이 없겠소? 그들을 일일이 예로써 접대한다면 국고는 미미한데도 지출이 많아질 것인데 무엇으로 우리나라를 지탱하겠소?"

희부기가 다시 간했다.

"당진의 공자는 어질고 덕이 있다는 소문이 천하에 자자하고 또 중동이며 늑골이 붙어있는데 이는 아주 귀한 상입니다. 보통의 자제와 같이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조공공은 일단의 치기가 발동하여 중이가 어질고 덕이 있다는 말은 상관하지 않고 중동이며 변협이라는 말에 바로 물었다.

"중동은 과인이 알고 있으나, 변협은 모르겠는데 어찌 생긴 것이오?"

희부기가 대답했다.

"변협이라 하는 것은 늑골이 합쳐져 있어 하나가 된 것인데 기이한 상입니다." 

조공공이 말했다.

"과인은 믿지 못하겠으니 잠시 공관에 머무르게 한 다음 그가 목욕할 때를 기다려 한 번 봐야겠소."

이리하여 공관을 관리하는 자를 시켜 공자를 객관 안으로 들인 다음, 물과 밥을 대접하며 다른 음식은 제공하지 않고 주연도 베풀지 않았으며 손님을 대하는 예를 일체 행하지 않았다.  중이는 노하여 식사도 하지 않았다. 

관인(館人)이 목욕물을 목욕통에 받아놓고 목욕하기를 청했다. 중이는 도로에서 몸이 더럽혀져서 먼지를 씻어내고 싶은 생각을 하던 참이라 옷을 벗고 목욕했다. 조 공공은 총애하는 자들 몇몇과 함께 미복차림으로 공관으로 가 있다가 중이가 목욕을 하기 시작하자 욕실에 들어가 중이 곁으로 가서 그의 변협을 구경했다. 그리고 이러쿵 저러쿵 한 바탕 야단스럽게 떠들다가 나갔다. 호언등 밖에 있던 사람들이 듣고 급히 들어가 보니 즐겁게 웃으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관인에게 물어보자 바로 조나라 군주하고 했다. 군신중에 분노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卻說僖負羈諫曹伯不聽,歸到家中,其妻呂氏迎之,見其面有憂色,問:「朝中何事?」 負羈以晉公子過曹,曹君不禮爲言。呂氏曰:「妾適往郊外採桑,正値晉公子車從過去。妾觀晉公子猶未的,但從行者數人,皆英傑也。吾聞:『有其君者,必有其臣;有其臣者,必有其君。』 以從行諸子觀之,晉公子必能光復晉國,此時興兵伐曹,玉石俱焚,悔之無及。曹君旣不聽忠言,子當私自結納可也。妾已備下食品數盤,可藏白璧於中,以爲贄見之禮。結交在未遇之先,子宜速往。」僖負羈從其言,夜叩公館。重耳腹中方餒,含怒而坐。聞曹大夫僖負羈求見饋飧,乃召之入。負羈再拜,先爲曹君請罪,然後述自家致敬之意。重耳大悅,嘆曰:「不意曹國有此賢臣!亡人幸而返國,當圖相報!」 重耳進食,得盤中白璧,謂負羈曰:「大夫惠顧亡人,使不飢餓於土地足矣,何用重賄?」 負羈曰:「此外臣一點敬心,公子萬乞勿棄!」 重耳再三不受。負羈退而嘆曰:「晉公子窮困如此,而不貪吾璧,其志不可量也!」 次日,重耳即行,負羈私送出城十里方回。

史官有詩云:

錯看龍虎作狉狝,

盲眼曹共識見微;

堪嘆乘軒三百輩,

無人及得負羈妻!

 

狉 : 삵의 새끼 비. 삵의 새끼. 너구리 새끼. 짐승이 떼지어 달리다. 그 모양. 

狝 : 죽일 선/원숭이 미. 죽이다. 가을사냥.   [미] 원숭이. 미후(獼猴)      堪嘆 : 어찌 견뎌 내겠는가?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한편 희부기는 조백(조 공공의 작위가 백작이라 조백이라 함)에게 간했으나 듣지 않자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의 아내 여씨(呂氏)가 맞이하면서 보니 그의 얼굴에 우울한 기색이 가득하여 물었다.

"조정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희부기가 당진의 공자가 조나라에 왔는데 조나라 군주가 예로써 대하지 않는 일을 말했다. 

여씨가 말했다.

"제가 교외에 뽕잎을 따러 갔다가 때마침 당진의 공자가 탄 수레와 종자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당진의 공자를 잘 보지는 못했으나 따라 가는 자 몇명을 보니 모두 영걸이었습니다. 제가 듣건대, '군주다운 자가 있으면 반드시 신하다운 자가 있으며, 신하다운 자가 있으면 반드시 군주다운 자가 있다.' 고 하였습니다. 종자들을 보건대 진나라 공자는 반드시 당진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며 그때는 군대를 일으켜 반드시 조나라를 칠 것이니 옥석이 모두 타버릴 것이라 그때 가서는 후회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조나라 군주가 기왕에 충언을 듣지 않았다면  당신은 마땅히 사적으로나마 인연을 맺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이미 여러 음식을 준비했으니 그 안에 백벽(白璧)을 넣어 만나는 예물로 삼으십시오. 만나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먼저 교분을 맺어야 하니 당신은 서둘러 가셔야 합니다."

희부기가 그 말을 좇아 밤중에 공관 문을 두드렸다. 중이는 배가 고팠지만 분노를 품고 앉아 있었다.  조나라 대부 희부기가 음식을 가져와 만나기를 청한다 하여 불러들였다. 희부기는 두번 절하고는 먼저 조나라 군주의 잘못을 사과한 후 자신의 집안에서 존경하고 있다는 뜻을 전했다. 

중이가 크게 기뻐하며 탄식했다.

"뜻밖에도 조나라에도 이런 어진 신하가 있었구나! 망명객이 다행히도 귀국하게 된다면 마땅히 보답하리라!"

중이가 식사를 하다가 쟁반 안에 백벽이 있어 희부기에게 말했다.

"대부께서 망명객에게 은혜를 베풀고 보살펴 주신 덕분에 굶주린 자가 길을 가다가  쓰러지는 것을 면했습니다. 그로써도 족한데 어찌 또 귀중품을 주십니까?"

희부기가 말했다.

"이것은 외신(外臣)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니 공자께서는 제발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중이가 재삼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희부기가 물러나면서 탄식했다.

"당진의 공자는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내가 주는 백벽을 탐하지 않으니 그 뜻을 헤아릴 수 없구나!"

다음날 중이가 떠났는데 희부기는 성을 나가 10리밖까지 전송하고 돌아갔다.

사관이 시를 지었다.

 

용과 범을 착각하여 승냥이 새끼와 원숭이로 보았는가,

눈 뜬 장님 조공공의 식견이 참으로 천박하구나.

초헌타고 다니는 무리 300명을 어찌 할거나,

희부기 처와 견줄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네. 

 

 

 

重耳去曹適宋。狐偃前驅先到,與司馬公孫固相會。公孫固曰:「寡君不自量,與楚爭勝,兵敗股傷,至今病不能起。然聞公子之名,向慕久矣。必當掃除館舍,以候車駕。」 公孫固入告於宋襄公,襄公正恨楚國,日夜求賢人相助,以爲報仇之計。聞晉公子遠來,晉乃大國,公子又有賢名,不勝之喜!其奈傷股未痊,難以面會。隨命公孫固郊迎授館,待以國君之禮,饋之七牢。次日,重耳欲行。公孫固奉襄公之命,再三請其寬留,私問狐偃:「當初齊桓公如何相待?」 偃備細告以納姬贈馬之事。公孫固回復宋公。宋公曰:「公子昔年已婚宋國矣。納女吾不能,馬則如數可也。」 亦以馬二十乘相贈,重耳感激不已。住了數日,饋問不絶。狐偃見宋襄公病體沒有痊好之期,私與公孫固商議復國一事。公孫固曰:「公子若憚風塵之勞,敝邑雖小,亦可以息足。如有大志,敝邑新遭喪敗,力不能振,更求他大國,方可濟耳。」 狐偃曰:「子之言,肺腑也。」 即日告知公子,束裝起程。宋襄公聞公子欲行,復厚贈資糧衣履之類,從人無不歡喜。

 

 

 

중이가 조나라를 떠나 송(宋)나라에 도착했다. 호언이 앞서 달려가 먼저 도착하여 사마 공손고를 만났다.

공손고가 말했다.

"저희 군주는 스스로를 헤아리지 못하고 초나라와 승부를 다투다가 군대는 패하고 자신은 허벅지에 부상을 당해 지금 병중이라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명성을 듣고 공자를 흠모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관사를 청소해야 하니 거가를 멈추고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공손고가 들어가 송양공에게 고했다.  송양공은 초나라에 한을 품고 밤낮으로 현인(賢人)을 구하여 도움을 받아 원수를 갚을 계책만을 생각해왔다.  당진의 공자가 멀리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진나라는 대국이며 공자가 또 현명하다는 명성이 있어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허벅지의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아 만나기 어려웠다. 공손고는 명에 따라 교외에서 공자 일행을 맞아 공관에 들이고는 군주를 대하는 예로 대접하여 7뢰(牢)를 보냈다. 

다음 날 공자가 떠나려고 하자 공손고가 양공의 명을 받들어 재삼 머물러 주기를 청하고는 호언에게 은밀히 물었다.

"처음에 제 환공이 어떻게 대접하였습니까?"

호언은 제환공이 중이에게 여인을 시집보내고 말을 선물한 일등을 세세히 말했다. 공손고가 돌아가 송양공에게 복명했다.

송양공이 말했다.

"공자는 옛날에 이미 송나라 여인과 결혼한 적이 있어 여인을 보내는 일은 내가 할 수 없지만 말이라면 똑같은 수량을 보내줄 수 있소."

그리하여 말 20필을 보내주니 중이가 감격해 마지 않았다.  며칠을 묵는 동안 보내는 물품과 문안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호언은 송양공의 병세가 호전될 기미가 없는 것을 보고 공손고와 은밀히 공자 중이의 귀국에 관한 일을 상의했다. 

공손고가 말했다.

"공자께서 풍진(風塵)의 노고를 꺼리신다면 저희 나라가 비록 작지만 휴식을 취하시기에는 충분합니다.  그러나 큰 뜻을 가지고 계시다면 저희 나라는 초나라와의 전쟁에서 패전하여 입은 상처로 인하여 힘을 쓸 수가 없는 형편이니 다른 큰 나라로 가셔서 협조를 구하셔야 뜻을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호언이 말했다.

"그대의 말씀이 폐부에 와 닿습니다."

그날 바로 공자에게 알리고 속히 짐을 꾸려 길을 떠났다. 송양공은 공자가 떠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후하게 재물과 식량, 의복, 신발등을 보냈는데 종자들이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自晉公子去後,襄公箭瘡日甚一日,不久而薨。臨終,謂世子王臣曰:「吾不聽子魚之言,以及於此!汝嗣位,當以國委之。楚,大仇也,世世勿與通好。晉公子若返國,必然得位,得位必能合諸侯,吾子孫謙事之,可以少安。」 王臣再拜受命。襄公在位十四年薨。王臣主喪即位,是爲成公。

髯仙有詩論宋襄公德力俱無,不當列於五伯之內。

詩云:

一事無成身死傷,

但將迂語自稱揚。

腐儒全不稽名實,

五伯猶然列宋襄。

 

 

 

당진의 공자가 떠난 후부터 송양공은 화살 맞은 상처가 나날이 심해져 오래지 않아 죽었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세자 왕신에게 말했다.

"나는 자어의 말을 듣지 않아 이에 이르게 되었다. 네가 군주의 자리를 이어 받게 되면 나라의 일을 자어에게 맡기도록 해라. 초나라는 큰 원수이니 대대로 우호관계를 맺지 말라. 당진의 공자가 귀국하게 되면 반드시 군주의 지위에 오르게 될것이며 군주가 되면 반드시 제후들을 연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너는 겸손하게 그를 섬겨야 나라를 잠시나마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신은 재배하고 명을 받았다.

송양공은 재위 14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왕신은 상을 주관하며 즉위하였는데 이 사람이 바로 성공이다.

 

염선이 시를 지어 송양공이 덕도 힘도 없었는데 춘추오패의 반열에 올린 것을 부당하다고 논평했다.

 

하나의 일도 이룬 것 없이 몸에 부상을 입고 죽었는데,

단지 황당한 말로 스스로를 칭찬하였을 뿐이었도다. 

썩은 선비들이 소문과 실상을 전혀 헤아리지도 않고

송양공을 여전히 오패의 반열에 올렸네.

 

 

 

再說重耳去宋,將至鄭國,早有人報知鄭文公。文公謂群臣曰:「重耳叛父而逃,列國不納,屢至飢餒。此不肖之人,不必禮之。」 上卿叔詹諫曰:「晉公子有三助,乃天祐之人。不可慢也。」 鄭伯曰:「何爲三助?」 叔詹對曰:「『同姓爲婚,其類不蕃。』 今重耳乃狐女所生,狐與姬同宗,而生重耳,處有賢名,出無禍患,此一助也。自重耳出亡,國家不靖,豈非天意有待治國之人乎?此二助也。趙衰狐偃,皆當世英傑,重耳得而臣之,此三助也。有此三助,君其禮之。禮同姓,恤困窮,尊賢才,順天命,四者皆美事也。」 鄭伯曰:「重耳且老矣,是何能爲?」 叔詹對曰:「君若不能盡禮,則請殺之,毋留仇讎,以遺後患。」 鄭伯笑曰:「大夫之言甚矣!旣使寡人禮之,又使寡人殺之。禮之何恩,殺之何怨?」 乃傳令門官,閉門勿納。

 

 

 

한편 중이는 송나라를 떠나 정나라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재빠르게 정나라 문공에게 보고해 알렸다. 

정문공이 신하들에게 말했다.

"중이는 부친을 거역하고 도망친 자로서 열국에서 받아들이지 않아 누차에 걸쳐 굶어죽을뻔 했다고 들었소. 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예로 대할 필요가 없소."

상경인 숙첨(叔詹)이 간했다.

"당진의 공자를 돕고 있는 것 셋이 있는데 그것이야 말로 하늘이 돕고 있는 것입니다. 소홀히 대해서는 안됩니다."

정백(작위가 백작이라 정백이라 약칭)이 물었다. "그를 돕는 것 셋이 무엇이오?"

숙첨이 대답했다.

"'동성끼리 혼인하면 그 자손들은 번창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중이는 호씨(狐氏)집안의 딸입니다. 호씨와 희씨(姬氏)는 같은 집안이고 중이는 그 사이에서 태어났는데도 가는 곳마다 어질다는 평판이 있고 당진을 떠나 망명중인데도 화를 입지 않고 있으니 이것이 하나입니다. 중이가 국외로 망명한 이후 나라가 안정되어 있지 못하니 어찌 하늘의 뜻이 당진을 다스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겠습니까? 그것이 두번째입니다. 조최와 호언등은 모두 당세의 영걸인데 중이는 그들을 신하로 두고 있으니 이것이 세번째입니다. 이렇게 그를 돕는 것이 셋이나 되니 주군께서는 그를 예로써 대하십시오. 동성을 예로써 대하시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를 구휼하시며, 어진 인재를 존중하시는 것이 천명을 따르는 것이니 이 네 가지가 모두 아름다운 일입니다."

정백이 또 물었다.

"중이는 이미 늙었는데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소?"

숙첨이 대답했다.

"주군께서 그를 예로써 극진히 대접하실 수 없다면 그를 죽여 원수가 되지 말아야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

정백이 웃으며 말했다.

"대부의 말이 너무 심합니다. 이미 과인에게 예로 대하라고 하고서 또 과인에게 그를 죽이라고 하고 있소. 예를 베푼들 무슨 은혜가 되며 그를 죽인들 무슨 원한이 되겠소?"

마침내 문을 지키는 관리에게 영을 전해 문을 닫아 걸고 그를 들이지 말라 하였다.

 

  

  

重耳見鄭不相延接,遂驅車竟過。行至楚國,謁見楚成王。成王亦待以國君之禮,設享九獻。重耳謙讓不敢當。趙衰侍立,謂公子曰:「公子出亡在外,十餘年矣,小國猶輕慢,況大國乎?此天命也,子勿讓。」 重耳乃受其享。終席,楚王恭敬不衰。重耳言詞亦愈遜。由此兩人甚相得,重耳遂安居於楚。一日,楚王與重耳獵於雲夢之澤。楚王賣弄武藝,連射一鹿一兎,俱獲之。諸將皆伏地稱賀。適有人熊一頭,衝車而過,楚王謂重耳曰:「公子何不射之?」 重耳拈弓搭箭,暗暗祝禱:「某若能歸晉爲君,此箭去,中其右掌。」 颼的一箭,正穿右掌之上,軍士取熊以獻。楚王驚服曰:「公子眞神箭也!」須臾,圍場中發起喊來,楚王使左右視之,回報道:「山谷中趕出一獸,似熊非熊,其鼻如象,其頭似獅,其足似虎,其髮如豺,其鬣似野豕,其尾似牛,其身大於馬,其文黑白斑駁,劍戟刀箭,俱不能傷,嚼鐵如泥,車軸裹鐵,俱被嚙食,矯捷無倫,人不能制,以此喧鬧。」 楚王謂重耳曰:「公子生長中原,博聞多識,必知此獸之名?」 重耳回顧趙衰,衰前進曰:「臣能知之。此獸其名曰『貘』,秉天地之金氣而生,頭小足卑,好食銅鐵,便溺所至,五金見之,皆消化爲水,其骨實無髓,可以代槌,取其皮爲褥,能闢瘟去濕。」 楚王曰:「然則何以制之?」 趙衰曰:「皮肉皆鐵所結,惟鼻孔中有虛竅,可以純鋼之物刺之,或以火炙,立死,金性畏火故也。」 言畢,魏犨厲聲曰:「臣不用兵器,活擒此獸,獻於駕前。」 跳下車來,飛奔去了。楚王謂重耳曰:「寡人與公子同往觀之。」 即命馳車而往。

 

九獻 : 제34회 참조.        相得 : 서로 의기가 투합되다. 서로 이익을 얻다. 서로 사이좋게 지내다.

賣弄 :  뽐내다. 자랑하다. 뻐기다. 으스대다. 뇌물을 받고 권리를 파는 따위의 농간을 부림.

人熊 : 비(羆)는 곰과의 짐승으로 털빛이 갈색인 큰 짐승이다. 그 글자는 그물이 아니면 잡을 수 없는 크고 사나운 곰을 뜻하며

        마웅(馬熊) · 인웅(人熊)이라고도 부른다. <山海經 大荒東經>

颼 : 바람소리 수. 바람소리. 비소리. (바람이)우수수 불다.            鬣 : 갈기 렵(엽). 갈기. 수염. 물고기의 옆지느러미. 새의 머리에 난 털.

矯捷 : 용감하고 날쌔다. 힘차고도[굳세고] 민첩하다.                    貘 : 짐승이름 맥. 짐승 이름. 표범의 다른 이름. 

便溺 : (변뇨). 똥오줌.        槌 : 망치 추. 鎚. 망치. (망치로)치다.          五金 : 다섯가지 쇠붙이. 금, 은, 구리, 쇠, 납.

瘟 : 염병 온. 염병. 온역. 아픈 모양. 괴로워하다.

 

 

 

중이는 정나라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고 수레를 달려 지나갔다.  초나라에 도착하자 초성왕을 알현하게 되었는데 초성왕은 또 군주를 대하는 예로 대접하여 주연을 베풀고 구헌(九獻)의 예로 대하고자 했는데 중이는 감당할 수 없다고 겸양하였다.

옆에 서있던 조최가 말했다.

"공자께서는 망명생활을 하시며 천하를 떠돈지 10년입니다. 작은 나라에서도 멸시당해 오셨는데 하물며 큰 나라에서는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천명이니 공자께서는 사양하지 마십시오."

중이가 마침내 그 향응을 받아들였다. 자리가 끝나도 초왕의 공경하는 모습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중이의 언사도 더욱 겸손해졌다. 이로부터 두 사람은 더욱 의기투합하여 중이 일행은 초나라에서 편히 지내게 되었다. 

하루는 초왕은 중이와 함께 운몽의 택지(澤地)로 사냥을 나갔다. 초왕이 무예를 자랑하려고 연달아 사슴과 토끼를 쏘았는데 모두 명중했다.

장수들이 모두 땅에 엎드려 칭하(稱賀)를 올렸다.

그때 커다란 곰 한 마리가 나타나 수레를 들이받고 지나갔는데 초왕이 중이에게 물었다.

"공자는 어찌 저 짐승에게 활을 쏘지 않습니까?"

중이가 활을 잡아 화살을 활시위에 얹으며 마음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내가 귀국하여 당진의 군주가 될 수 있다면 이 화살이 저 곰의 오른 쪽 손바닥을 명중시켜 주소서!"

화살 하나가 시윗소리를 내며 날아가 곰의 오른쪽 손바닥에 바로 꽂혀 꿰뚫자 군사들이 곰을 잡아다 바쳤다.

초성왕이 놀라며 중이에게 말했다.

"공자의 활 솜씨는 참으로 귀신같습니다."

잠시 후 사냥터 안에서 함성이 크게 울렸는데 초왕이 좌우에 알아보게 하였더니 돌아와 보고했다.

"산골짜기 안에서 짐승 한 마리가 쫒겨 나왔는데 곰같지만 곰이 아니고, 그 코는 코끼리 같으며, 그 머리는 사자 같고, 그 발은 범같으며 그 털은 승냥이같고, 갈기는 멧돼지같으며 꼬리는 소같은데 그 체격이 말처럼 큽니다. 그 무늬는 검은 색과 흰 색으로 얼룩져 있으며 검이나 창, 칼이나 화살로도 모두 그 짐승을 상하게 할 수 없으며, 쇠를 씹어 진흙처럼 짓이기고 수레바퀴를 둘러싸고 있는 쇠도 모두 씹어 먹으며 용맹스럽고 날쌔기까지 해 사람이 어찌할 수 없으니 이와같이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초왕이 중이에게 말했다.

"공자께서는 중원에서 나고 자랐으니 들은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아서 반드시 이 짐승의 이름을 아시겠지요?"

공자가 조최를 바라보자 조최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신이 그 짐승을 압니다. 그 짐승의 이름은 '맥(貘)'이라 하는데 하늘과 땅의 쇠 기운을 받고 태어나 머리는 작고 다리는 짧으며 구리와 쇠 먹는 것을 좋아하고 대소변을 보면 오금(五金)으로 나타나며 모두 소화되면 물이 되고, 그 뼈는 골수가 채워져 있지 않아 망치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그 가죽을 취하여 요를 만들면 온역을 피할수 있고 습기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초왕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압할 수 있습니까?"

조최가 대답했다.

"그 가죽과 살은 모두 쇠로 되어 있는데 오직 콧구멍이 비어있어 순수한 강철로 만든 것으로 그곳을 찌를 수 있으며 혹 불로 태우면 버로 죽는데 그것은 쇠의 성질이 불을 만나면 죽기 때문입니다."

말을 마치자 위주가 소리높여 말했다.

"신이 병기를 쓰지 않고 그 짐승을 산채로 잡아 수레 앞에 바치겠습니다."

바로 수레를 뛰어내리더니 나는 듯이 달려갔다. 

초왕이 중이에게 말했다.

"과인이 공자와 함께 가서 보겠습니다." 

즉시 명을 내려 수레를 달려갔다.

 

 

 

 

且說魏犨趕入西北角圍中,一見那獸,便揮拳連擊幾下。那獸全然不怕,大叫一聲,如牛鳴之響,直立起來,用舌一舐,將魏犨腰間鎏金鋥帶,舐去一段。魏犨大怒曰:「孽畜不得無禮!」 聳身一躍,離地約五尺許。那獸就地打一滾,又蹲在一邊。魏犨心中愈怒,再復躍起,趁這一躍之勢,用盡平生威力,騰身跨在那獸身上,雙手將他項子抱住。那獸奮力躑躅,魏犨隨之上下,只不放手。掙扎多時,那獸力勢漸衰,魏犨兇猛有餘,兩臂抱持愈緊。那獸項子被勒,氣塞不通,全不動彈。魏犨乃跳下身來,再舒銅筋鐵骨兩隻臂膊,將那獸的象鼻,一手捻定,如牽犬羊一般,直至二君之前。(眞虎將也!)趙衰命軍士取火薰其鼻端,火氣透入,那獸便軟做一堆。魏犨方纔放手,拔起腰間寶劍砍之,劍光迸起,獸毛亦不損傷。趙衰曰:「欲殺此獸取皮,亦當用火圍而炙之。」 楚王依其言。那獸皮肉如鐵,經四圍火炙,漸漸柔軟,可以開剝。

 

鎏 : 금속 류. 금속. 미금. 면류관(冕旒冠)에 꿰어 늘리는 구슬.            鋥 : 칼날 세울 정. 칼날을 세우다. 칼을 갈다. 

銅筋鐵骨 : 구리로 된 근육과 철로 된 뼈.

 

 

 

한편 위주는 서북쪽 모퉁이로 달려가 병사들이 에워싸고 있는 곳 안으로 들어갔었는데,  한 마리의 짐승이 눈에 띄어 곧바로 주먹을 휘둘러 연거푸 몇번을 가격했다. 그러나 그 짐승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 마치 소 울음소리 같았다. 똑바로 일어서서 달려들어 혀로 한 차례 위주의 허리 사이를 핥았는데 허리띠의 소장식인 유금정대(鎏金鋥帶)가 입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위주가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미천한 짐승이 무례하기 짝이 없구나!"

그리고 몸을 한 번 솟구치니 땅에서 대략 5척이나 떠올랐다. 그 짐승은 땅을 한 번 박차고는 위주를 피하며 한 쪽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았다. 

위주는 더욱 노하여  다시 뛰어오르며 그 짐승을 뒤쫒다가 평생의 힘을 다해 그 짐승의 위로 뛰어올라 두 손으로 그 짐승의 목을 부등켜 안았다. 그 짐승도 있는 있는 힘을 다해 이리 저리 발버둥치며 위주를 떨쳐버리려고 하였으나 위주는 짐승이 뛰는대로 몸을 맡긴채 손을 놓지 않았다.  뺏고 뺏기고 한동안 힘을 겨루다 보니 그 짐승은 힘도 기세도 점차 쇠약해졌으나 위주의 흉맹함은 오히려 여유만만하여 목을 부등켜 안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 그 짐승은 목이 막혀 숨을 쉬지 못하다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위주가 뛰어 내려 다시 동근철골(銅筋鐵骨) 같은 양쪽 팔을 펴고는 그 짐승의 코끼리 코 같은 코를 한 손으로 잡고 개나 양처럼 끌고 두 군주 앞으로갔다. - 위주는 참으로 범같은 장수였다. - 조최는 군사들에게 명을 내려 불을 가져다가 그 짐승의 코끝에 대게 하였는데 불기운이 콧 속으로 스며 들어가자 그 짐승은 바로 부드러워지더니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위주가 손을 들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그 짐승을 베려고 하였으나 검광만 일어났을 뿐 짐승의 털마저도 상하게 하지 못했다.

조최가 말했다.

"이 짐승을 죽여 가죽을 얻으려면 주위에 불을 피우고 구워야 합니다."

초왕이 그 말에 따랐다. 그 짐승의 가죽과 근육은 쇠로 된 것 같았으나 사방에 불을 피워 구으니 점점 부드러워져 가죽을 벗길 수 있었다. 

 

 

 

 

楚王曰:「公子相從諸傑,文武俱備,吾國中萬不及一也!」 時楚將成得臣在旁,頗有不服之意,即奏楚王曰:「吾王誇晉臣之武,臣願與之比較。」 楚王不許曰:「晉君臣,客也,汝當敬之。」 是日獵罷,會飮大歡。楚王謂重耳曰:「公子若返晉國,何以報寡人?」 重耳曰:「子女玉帛,君所餘也,羽毛齒革,則楚地之所産。何以報君王?」 楚王笑曰:「雖然,必有所報。寡人願聞之。」 重耳曰:「若以君王之靈,得復晉國,願同歡好,以安百姓。倘不得已,與君王以兵車會於平原廣澤之間,請避君王三舍。」(按行軍三十里一停,謂之一舍,三舍九十里。言異日晉楚交兵,當退避三舍,不敢即戰,以報楚相待之恩。)當日飮罷,楚將成得臣怒言於楚王曰:「王遇晉公子甚厚,今重耳出言不遜,異日歸晉,必負楚恩,臣請殺之。」 楚王曰:「晉公子賢,其從者皆國器,似有天助。楚其敢違天乎?」 得臣曰:「王即不殺重耳,且拘留狐偃趙衰數人,勿令與虎添翼。」 楚王曰:「留之不爲吾用,徒取怨焉。寡人方施德於公子,以怨易德,非計也!」 於是待晉公子益厚。

 

 

 

초왕이 말했다. "공자를 따르는 호걸들은 문무를 모두 갖추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그와 같은 호걸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때 초나라 장수 성득신이 곁에 있었는데 매우 못마땅해 하며 초왕에게 아뢰었다.

"왕께서는 당진의 신하의 무예를 과찬하고 계시는데 신은 그들과 한 번 겨뤄보고 싶습니다."

초왕이 허락하지 않고 말했다. "당진의 군신은 손님이시니 그대는 마땅히 그들을 공경해야 한다."

이날 사냥을 마치자 주연을 베풀어 크게 즐겼다. 

초왕이 중이에게 물었다.

"공자께서 만약 당진으로 돌아가 군주가 되신다면 과인에게 무엇으로 보답하시겠습니까?
중이가 대답했다. 

"대왕께서는 미녀와 보물은 넉넉하시고 새의 깃털과 상아, 가죽은 초나라 땅에서 생산되는 것들입니다. 무엇으로 대왕께 보답해야 합니까?"

초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해도 반드시 보답을 하셔야 합니다. 과인은 꼭 듣고 싶습니다."

중이가 말했다.

"제가 만약 대왕의 도움으로 당진에 복귀하여 군주가 된다면 우호조약을 맺어 백성을 편안하게 하겠습니다.  부득이하게 대왕과 평원(平原)과 광택(廣澤)사이에서 전쟁을 하게 된다면 군왕께 삼사(三舍)를 피해 드리겠습니다."

- 상고하건대 군대가 하루에 30리를 행군하는 거리를 1 사(舍)라 하니 3 사는 90리이다. 훗날 당진과 초나라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3사를 물러나 감히 싸우지 않고 초왕이 후대한 은혜를 갚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

그날 잔치가 끝나자 초나라 장수 성득신이 노한 어조로 초왕에게 말했다.

"왕께서는 당진의 공자 중이를 매우 후하게 대접하고 계시는데 지금 중이는 불손한 말을 내뱉고 있습니다. 훗날 중이가 당진에 돌아가 군주가 된다면 반드시 초나라의 은혜를 배반할 것이니 죽여 버리시기 바랍니다." 

초왕이 말했다.

"당진의 공자는 어질고 그 종자들도 모두 나라를 다스릴만한 인재들이라 하늘의 도움이 있는 것 같소. 초나라가 어찌 감히 하늘의 뜻을 거스르겠소?"

성득신이 다시 권했다.

"왕께서 중이를 죽이시지 않겠다면 호언, 조최등 몇명이라도 잡아두시어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초왕이 말했다.

"우리가 그들을 억류해놓고 기용하지 않는다면 원한만 살 뿐이오. 과인이 이미 공자에게 덕을 베풀었는데 원한으로 바꾸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오."

그리하여 초왕은 당진의 공자 일행을 더욱 후하게 대접했다.

 

 

 

  

話分兩頭。卻說周襄王十五年,實晉惠公之十四年,是歲惠公抱病在身,不能視朝。其太子圉,久質秦國,圉之母家,乃梁國也。梁君無道,不恤民力,日以築鑿爲事,萬民嗟怨,往往流徙入秦,以逃苛役。秦穆公乘民心之變,命百里奚興兵襲梁,滅之。梁君爲亂民所殺。太子圉聞梁見滅,嘆曰:「秦滅我外家,是輕我也!」 遂有怨秦之意。及聞惠公有疾,思想:「隻身在外,外無哀憐之交,內無腹心之援,萬一君父不測,諸大夫更立他公子,我終身客死於秦,與草木何異?不如逃歸侍疾,以安國人之心。」 乃夜與其妻懷嬴,枕席之間,說明其事:「我如今欲不逃歸,晉國非我之有,欲逃歸,又割捨不得夫婦之情。你可與我同歸晉國,公私兩盡。」 懷嬴泣下,對曰:「子一國太子,乃拘辱於此,其欲歸不亦宜乎?寡君使婢子侍巾櫛,欲以固子之心也。今從子而歸,背棄君命,妾罪大矣。子自擇便,勿與妾言。妾不敢從,亦不敢洩子之語於他人也。」 太子圉遂逃歸於晉。秦穆公聞子圉不別而行,大罵:「背義之賊!天不祐汝!」 乃謂諸大夫曰:「夷吾父子,俱負寡人,寡人必有以報之!」 自悔當時不納重耳,乃使人訪重耳,蹤跡,知其在楚,已數月矣。於是遣公孫枝聘於楚王,因迎重耳至秦,欲以納之。重耳假意謂楚王曰:「亡人委命於君王,不願入秦。」 楚王曰:「楚晉隔遠,公子若求入晉,必須更歷數國。秦與晉接境,朝發夕到。且秦君素賢,又與晉君相惡,此公子天贊之會也。公子其勉行!」 重耳拜謝。楚王厚贈金帛車馬,以壯其行色。重耳在路復數月,方至秦界。雖然經歷尙有數國,都是秦楚所屬,況有公孫枝同行,一路安穩。自不必說。

 

 

 

한편 주양왕 15년은 당진의 혜공 14년이다. 이 해에 혜공은 몸에 병을 얻어 조회를 볼 수 없었다. 그 태자 어(圉)는 오랫동안 섬진에 인질로 가 있었는데 태자 어의 외가는 양(梁)나라였다. 양나라 군주는 무도하여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매일 성을 쌓고 못을 파는 것을 일삼으니 온 백성들이 비명을 지르며 원한을 품고 날이 갈수록 살아오던 터전을 떠나 섬진으로 흘러 들어가 노역을 피했다.

섬진의 목공(穆公)은 양나라의 민심이 변하는 것을 틈타 백리해에게 군사를 일으켜 양나라를 치도록 명을 내려 양나라를 멸망시켰다.  

양나라의 군주는 난민에 의해 살해당했다. 

태자 어는 양나라가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섬진에서 우리 외가를 멸망시켰는데 이것은 나를 가볍게 본 것이다."

마침내 섬진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부친인 당진의 혜공이 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했다.

"이 한 몸이 나라 밖에 있으니 밖에서는 나를 불쌍히 여기는 친구도 없고 나라 안에서는 심복의 도움도 없다. 만일 부친인 군주에게 변고라도 생기게 되면 대부들이 다시 다른 공자를 군주로 세우게 될 것이라 나는 종신토록 섬진에 인질로 있다가 죽을 것이니 들에 있는 초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당진으로 도망쳐 돌아가 아버님 병구완을 하면서 국인들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것이 낫다."

그리하여 그날 밤 그의 처 회영(懷嬴)에게 침상에서 그 일을 설명했다. 

"내가 지금 당진으로 도망쳐 돌아가려고 하지 않으면 당진은 내 나라가 아니며, 도망쳐 당진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또 그대와 부부간의 정을 끊을 수가 없소. 그대가 나와 당진으로 함께 갈 수 있다면 공사가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오."

회영은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당신은 일국의 태자이니 이곳에 억류되어 있는 것은 굴욕이라 고국인 당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저희 군주께서 자식인 소첩으로 하여금 당신의 수발을 들게 하신 것은 당신의 마음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당신을 따라 당진으로 간다면 군주이자 부친의 명을 배신하는 것이니 첩의 죄가 큽니다.  당신은 스스로 편한 쪽을 택하고 첩에게 더이상 말하지 마십시오. 첩이 감히 당신을 따라가지는 못해도 당신의 말을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겠습니다."

태자 어는 마침내 섬진에서 도망쳐 당진으로 돌아갔다. 

섬진의 목공은 태자 어가 작별인사도 없이 당진으로 떠났다는 보고를 받고 크게 노하여 꾸짖었다.

"의를 배반한 도적같으니, 하늘이 너를 돕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들에게 말했다.

"이오(夷吾)의 부자는 모두 과인을 배신했소. 과인은 반드시 그들에게 보복할 것이오."

스리고 스스로 당시 중이를 당진의 군주로 세우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을 시켜 중이의 종적을 탐지케 한 결과 초나라에 머문지 이미 수개월이 지난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공손지를 초왕에게 사신으로 보내 중이를 섬진으로 맞아들여 당진의 군주로 세우려고 하였다. 

중이는 모르는체 하고 초왕에게 말했다.

"망명객이라 대왕의 명을 저버리고 섬진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초왕이 말했다.

"초나라와 당진은 멀리 떨어져 있어 공자께서 당진에 들어가려고 하신다면 반드시 여러 나라를 거쳐야 합니다. 섬진과 당진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아침에 출발한다면 저녁때 도착합니다.  또 진나라 군주는 바탕이 어질어 당진의 군주를 싫어하고 있으니 이는 공자께서 하늘의 도움을 받을 기회입니다.  공자께서는 부지런히 가십시오."

중이는 절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초왕이 금과 비단, 거마를 후하게 제공하여 그 행색이 장관이었다. 중이는 길에서 수개월을 보낸 끝에 마침내 섬진의 국경에 도착했다.  그렇게 여러 나라를 거쳐 왔다 해도 모두가 섬진이나 초나라를 따르는 나라들이었고  하물며 공손지까지 동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결같이 여정이 평온했다.

 

 

  

 

秦穆公聞重耳來信,喜形於色,郊迎授館,禮數極豐。秦夫人穆姬,亦敬愛重耳,而恨子圉,勸穆公以懷嬴妻重耳,結爲姻好。穆公使夫人告於懷嬴。懷嬴曰:「妾已失身公子圉矣,可再字乎?」 穆姬曰:「子圉不來矣!重耳賢而多助,必得晉國。得晉國,必以汝爲夫人,是秦晉世爲婚姻也。」 懷嬴默然良久,曰:「誠如此,妾何惜一身,不以成兩國之好?」 穆公乃使公孫枝通語於重耳。子圉與重耳有叔姪之分,懷嬴是嫡親姪婦,重耳恐於礙倫理,欲辭不受。趙衰進曰:「吾聞懷嬴美而才,秦君及夫人之所愛也。不納秦女,無以結秦歡。臣聞之:『欲人愛己,必先愛人;欲人從己,必先從人。』 無以結秦歡,而欲用秦之力,必不可得也。公子其毋辭!」

 

嫡親 :  한 핏줄을 이은 친혈육. 육친.

 

 

 

섬진의 목공은 중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희색이 만면하여 교외에 나가 영접하고는 공관으로 인도하여 예로써 대하며 갖가지 음식으로 극진히 대접했다. 목공의 부인인 목희(穆姬)도 오빠인 중이를 공경하고 사랑하였는데 태자 어의 행동에 한을 품고는 목공에게 권하여 태자 어의 아내였던 회영을 중이에게 출가시켜 혼인으로 우호괸계를 맺으라 하였다. 

목공이 부인으로 하여금 회영에게 알리게 하니 회영이 말했다.

"저는 이미 공자 어에게 출가했었는데 다시 정혼할 수 있습니까?"

목희가 말했다.

"태자 어는 오지 않는다.  중이는 어질고 도와주는 자들이 많아서 반드시 당진의 군주가 될 것이다. 당진의 군주가 되면 반드시 너를 부인으로 삼을 것이니 이로써 섬진과 당진이 대를 이어 혼인을 하게 되는 것이다." 

회영은 말없이 한참 있다가 말했다.

"진실로 그렇다면 제가 어찌 한 몸을 아껴 두 나라의 우호관계를 이루지 못하게 하겠습니까?" 

목공이 마침내 공손지로 하여금 중이에게 알리게 하였다.  태자 어와 중이는 숙질지간이고 회영은 한 핏줄을 이은 조카 며느리이니 중이는 윤리를 거스르는 것이라 사양하고 받지 않으려고 하였다.

조최가 진언했다.

"제가 듣기로 회영은 아름답고 재주가 많아 섬진의 목공과 부인이 사랑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녀(=회영)를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섬진과 우호관계를 맺는 기쁨은 없게 될 것입니다. 신이 듣기에 '남이 자신을 사랑하게 하려면 반드시 자신이 먼저 넘을 사랑해야 하고, 남이 자신을 따르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남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섬진과 우호관계를 맺는 기쁨이 없다면 섬진의 힘을 이용하려고 해도 반드시 불가능할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사양하지 마십시오."

 

 

 

 

重耳曰:「同姓爲婚,猶有避焉。況猶子乎?」 臼季進曰:「古之同姓,爲同德也,非謂族也。昔黃帝炎帝,俱有熊國君少典之子,黃帝生於姬水,炎帝生於姜水,二帝異德,故黃帝爲姬姓,炎帝爲姜姓。姬姜之族,世爲婚姻。黃帝之子二十五人,得姓者十四人,惟姬己各二,同德故也。德同姓同,族雖遠,婚姻不通。德異姓異,族雖近,男女不避。堯爲帝嚳之子,黃帝五代之孫,而舜爲黃帝八代之孫,堯之女於舜爲祖姑,而堯以妻舜,舜未嘗辭。古人婚姻之道若此。以德言,子圉之德,豈同公子?以親言,秦女之親,不比祖姑。況收其所棄,非奪其所歡,是何傷哉?」 重耳復謀於狐偃曰:「舅犯以爲可否?」 狐偃問曰:「公子今求入,欲事之乎?抑代之也?」 重耳不應。狐偃曰:「晉之統系,將在圉矣。如欲事之,是爲國母。如欲代之,則仇讎之妻,又何問焉?」 重耳猶有慚色。趙衰曰:「方奪其國,何有於妻?成大事而惜小節,後悔何及?」 重耳意乃決。公孫枝復命於穆公。重耳擇吉布幣,就公館中成婚。懷嬴之貌,更美於齊姜,又妙選宗女四名爲媵,俱有顔色,重耳喜出望處,遂不知有道路之苦矣。

史官有詩論懷嬴之事云:

一女如何有二天?

況於叔姪分相懸。

只因要結秦歡好,

不恤人言禮義愆。

 

 

 

중이가 말했다.

"동성끼리의 결혼도 피하는 것인데 하물며 조카 며느리가 아니오?"

구계가 진언했다.

"옛날의 동성(同姓)은 동덕(同德)이라 하며 동족(同族)이 아닙니다. 옛날 황제(黃帝)와 염제(炎帝)는 모두 웅국(熊國)의 군주인 소전(少典)의 아들들이었는데 황제는 희수(姬水)를 낳았고 염제는 강수(姜水)를 낳았습니다. 두 황제가 덕이 달랐기 때문에 황제는 희성이 되고 염제는 강성이 되었으며 희씨와 강씨는 대를 이어 혼인했습니다. 황제는 아들이 25명인데 성을 얻은 자는 14명이었으며 오직 희씨(姬氏)와 기씨(己氏)의 각 2성씨가 덕이 같았습니다. 덕이 같고 성이 같으면 종족이 멀다 해도 혼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덕이 다르고 성이 다르면 종족이 가까워도 남녀간의 혼인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요(堯)는 제곡(帝嚳)의 아들이며 황제의 5대손인데 순(舜)은 황제의 8대손이라 요의 딸은 순의 고모할머니이지만 요가 순에게 딸을 시집보낸다고 했을 때 순은 사양하지 않았습니다. 옛날 사람들의 혼인의 법도는 이와 같았습니다. 덕으로 말하면 태자 어의 덕이 어찌 공자와 같습니까? 친족관계로 말한다면 섬진 군주의 딸이라 고모할머니에 비견되지 않습니다. 하물며 그가 버린 여인을 거두는 일이며 그가 좋아하는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닌데 이것이 어찌 마음 상하는 일이 되겠습니까?"

중이는 다시 호언에게 물었다.

"구범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러자 호언이 물었다.

"공자께서 지금 섬진에 들어와 구하시는 것이 태자 어를 섬기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를 대신하여 당진의 군주가 되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중이가 대웅하지 않자 호언이 다시 말했다.

"당진 군주의 계통은 어(圉)에게 있습니다. 회영이 그를 섬긴다면 국모가 될 것입니다. 공자께서 어를 대신하여 군주 위에 오르려고 하신다면 원수의 아내인데 또 어찌 물으십니까?"

중이의 얼굴에 여전히 부끄러운 빛이 돌자 조최가 말했다.

"나라를 빼앗으면 군주의 처를 어찌했습니까? 큰 일을 이루어야 하는데 작은 절개를 애석해 한다면 후회한들 어찌하겠습니까?"

중이의 뜻이 마침내 결정되자 공손지가 목공에게 복명하였다. 중이는 길일을 택하여 예물을 보내고 공관으로 나아가 결혼했다. 

회영의 용모는 제강보다 더 예뻤다. 또 종가집 딸 4명을 골라 잉첩으로 보냈는데 모두 아름다웠다.  중이는 기뻐하며 처소로 갔는데 마침내 그동안 천하를 떠돌아 다니며 겪었던 고초를 잊게 되었다.

사관이 시를 지어 회영의 일을 논했다.

 

한 여인이 어찌 두 하늘을 섬기게 되었는가?

하물며 숙질간의 분별이 뚜렷하지 않았던가?

단지 섬진의 환심을 사며 우호관계를 맺으려고,

예의를 돌보지 않고 잘못을 저질렀구나.

 

 

 

 

秦穆公素重晉公子之品,又添上甥舅之親,情誼愈篤。三日一宴,五日一饗。秦世子罃亦敬事重耳,時時饋問。趙衰狐偃等因與秦臣蹇叔、百里奚、公孫枝等深相結納,共躊躇復國之事。一來公子新婚,二來晉國無釁,以此不敢輕易擧動。自古道:「運到時來,鐵樹花開。」 天生下公子重耳,有晉君之分,有名的伯主,自然生出機會。

 

 

 

섬진의 목공은 평소 당진 공자 중이의 인품을 존중하였는데, 그 위에 장인과 사위의 친분이 덧붙여지자 그 우의가 더욱 돈독해졌다. 3일마다 한 번씩 술자리를 베풀고 5일마다 한 번씩 잔치를 베풀었다. 섬진의 세자 앵(罃)도 중이를 존경하며 섬겼는데, 때때로 음식을 가져가며 문안을 드렸다.

조최와 호언등은 섬진의 신하인 건숙과 백리해, 공손지등과 깊이 사귀게 되었으나 중이의 귀국에 관한 일은 모두 주저하였다.

첫째는 공자 중이가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고, 두번째는 당진에 틈이 없어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어서였다. 

옛날부터 '운이 돌아오면 쇠로 된 나무에도 꽃이 핀다.'고 하였다.

하늘이 공자 중이를 낸 것은 당진의 운명이니, 패주(伯主)의 명예는 자연히 기회가 올것이었다.

  

 

 

 

再說太子圉自秦逃歸,見了父親晉惠公。惠公大喜曰:「吾抱病已久,正愁付託無人。今吾子得脫樊籠,復還儲位,吾心安矣。」 是秋九月,惠公病篤,託孤於呂省郤芮二人,使輔子圉:「群公子不足慮,只要謹防重耳。」 呂郤二人頓首受命。是夜,惠公薨,太子圉主喪即位,是爲懷公。懷公恐重耳在外爲變,乃出令:「凡晉臣從重耳出亡者,因親及親,限三個月內俱要喚回。如期回者,仍復舊職,旣往不咎。若過期不至,祿籍除名,丹書註死。父子兄弟坐視不召者,並死不赦!」 老國舅狐突二子狐毛狐偃,俱從重耳在秦,郤芮私勸狐突作書,喚二子歸國。狐突再三不肯。郤芮乃謂懷公曰:「二狐有將相之才,今從重耳,如虎得翼。突不肯喚歸,其意不測,主公當自與言之。」 懷公即使人召狐突。突與家人訣別而行。來見懷公,奏曰:「老臣病廢在家,不知宣召何言?」 懷公曰:「毛偃在外,老國舅曾有家信去喚否?」 突對曰:「未曾。」

 

 

 

한편 태자 어는 섬진에서 탈출하여 당진으로 돌아가자 부친인 혜공을 알현하였다. 

혜공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병을 얻은지 이미 오래 되어 후사를 부탁할 사람이 없어 근심이었다. 이제 네가 새장에서 탈출하여 태자의 지위에 복귀하였으니 안심이 되느구나." 

그해 9월 혜공은 병이 위독해져 여생(呂省)과 극예(郤芮) 두 사람에게 후사를 부탁하여 태자 어를 도우라고 하며 말했다.

"공자들을 염려할 바가 없으나 오직 중이만은 막아야 할 것이오."

여생과 극예 두 사람은 머리를 조아리고 명을 받았다. 이날 밤 혜공은 숨을 거두니 태자 어가 상주가 되어 즉위하였는데 이 사람이 바로 회공(懷公)이다. 

회공은 중이가 밖에 머무르면서 변을 일으킬까 두려워 명을 내렸다.

"중이를 따라 망명을 나간 모든 신하와 그 친척들은 3개월 안에 모두 불러들이도록 하시오. 기한내에 들어오는 자는 옛 직위에 복직시키고 지난 날의 잘못은 벌하지 않겠소. 기한 내에 돌아오지 않는 자는 녹봉을 받았던 자들의 명부에서 제명하고 붉은 글자로 죽은 자로 기록할 것이다. 부자형제간에 불러들이지 않고 좌시하고 있는 자는 같은 죄로 죽이고 용서하지 않으리라!"  

노국구 호돌(狐突)의 두 아들 호모(狐毛)와 호언(狐偃)은 모두  중이를 따라 섬진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극예는 사사로이 호돌에게 서찰을 써서 두 아들을 불러들이라고 권했으나 호돌은 재삼 응하지 않았다. 

마침내 극예는 회공에게 보고했다.

"호씨 형제는 재상의 재목인데 지금 중이를 따르고 있어 범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되고 있습니다. 호돌은 두 아들을 불러들이기를 거부하고 있어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주군께서는 그를 만나 말씀하시기 바랍니다."

회공이 즉시 사람을 보내 호돌을 불렀다.

호돌은 가솔들과 작별하고 궁으로 들어가 회공을 만나 물었다.

"노신은 병이 있어 집에만 있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부르셨습니까?"

회공이 말했다.

"호모와 호언이 외국에 있는데 노국구께서는 집에 계시면서 어찌 서신을 보내 불러들였습니까?"

호돌이 대답했다.

"그런적 없습니다."

 

 

 

 

懷公曰:「寡人有令:『過期不至者,罪及親黨。』老國舅豈不聞乎?」 突對曰:「臣二子委質重耳,非一日矣。忠臣事君,有死無二!二子之忠於重耳,猶在朝諸臣之忠於君也,即使逃歸,臣猶將數其不忠,戮於家廟。況召之乎?」 懷公大怒,喝令二力士以白刃交加其頸,謂曰:「二子若來,免汝一死!」 因索簡置突前,郤芮執其手,使書之。突呼曰:「勿執我手,我當自書。」 乃大書「子無二父,臣無二君」八字。懷公大怒曰:「汝不懼耶?」 突對曰:「爲子不孝,爲臣不忠,老臣之所懼也。若死,乃臣子之常事,有何懼焉!」 舒頸受刑。懷公命斬於市曹。太卜郭偃見其屍,嘆曰:「君初嗣位,德未及於匹夫,而誅戮老臣,其敗不久矣!」 即日稱疾不出。狐氏家臣,急忙逃奔秦國,報與毛偃知道。

 

 

 

회공이 말했다.

"과인은 명을내려, '기한 내에 돌아오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 죄가 가족에게까지 미칠것이다.' 라 했는데 노국구께서는 어찌 모르고 계셨습니까?"

호돌이 대답했다.

"신의 두 아들이 공자 중이를 섬긴 것은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충신이 군주를 섬기면서 죽음이 내려진다해도 두 군주를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두 아들이 중이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는 것은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주군께 충성을 바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설령 그 아이들이 섬진에서 도망쳐 귀국한다면 신은 오히려 그들을 꾸짖어 가묘에서 죽일 것인데 하물며 그들을 불러들이겠습니까?"

회공이 크게 노해 두 장정에게 명을 내려 날카로운 칼을 그의 목에 대도록 하고 말했다.

"두 아들을 오라고 한다면 너는 죽음을 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죽간을 찾아 호돌 앞에 놓고 극예가 그의 손에 쥐어주며 서찰을 쓰게 했다. 

그러자 호돌이 외쳤다.

"내 손을 잡지 말라. 내가 스스로 쓰리라!"

그리고 크게 글자 8자를 썼다.

"아들은 아비가 둘이 될 수 없으며 신하는 군주가 둘이 될 수 없다. (子無二父,臣無二君.)

회공이 크게 노해 물었다.

"너는 두렵지도 않느냐?"

호돌이 말했다.

"자식이 되어 불효하고 신하가 되어 불충하는 것이 노신이 두려워하는 것이오. 죽게 된다면 신하와 자식으로서 겪는 일상의 일일 뿐인데 어찌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리고 목을 늘여 형을 받으려고 했다. 회공은 명을 내려 저자거리에서 참하게 했다.

태복 곽언(郭偃)이 그의 시신을 보며 탄식했다.

"군주가 이제 막 그 자리에 올랐는데 덕이 필부보다 못하여 원로대신을 죽이는구나.  오래지 않아 그도 무너지리라!" 

즉일로 병을 핑계대고 문밖에 나가지 않았다. 호씨 집안의 가신이 급히 도망쳐 섬진으로 들어가 호모와 호언에게 알렸다. 

 

 

 

不知毛偃如何,且看下回分解。

 

호모와 호언형제가 어찌할 것인지 모른다면 다음회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