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詩 12首
雜詩 12首
一.
人生無根蔕、 飄如陌上塵。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으며, 거리 위 바람에 날리는 먼지같은 것.
分散逐風轉、 此已非常身。 바람에 쫒겨 흩어져 굴러다니니, 이 몸은 이미 한결같은 몸이 아니로다.
落地爲兄弟、 何必骨肉親? 세상에 태어나면 형제가 되는데, 구태어 피를 나눈 친족이라야만 하는가?
得歡當作樂、 斗酒聚比隣。 기쁜 일이 생기면 마땅히 즐기고, 말 술이 생기면 가까운 이웃을 불러모은다.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한창때는 다시 오지 않으며, 하루에 새벽이 두 번 오지 않는다.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때를 만나면 마땅히 힘을 쏟을지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네.
二.
白日淪西阿, 素月出東嶺; 해가 서쪽 언덕에 지니, 흰 달이 동쪽 산봉우리에서 떠올라,
遙遙萬里輝, 蕩蕩空中景。 아득히 만리를 비추고, 드넓은 하늘을 밝히도다.
風來入房戶, 夜中枕席冷;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와, 밤중 잠자리를 서늘하게 하는데,
氣變悟時易, 不眠知夕永。 기후가 변하니 철이 바뀐 것을 깨닫고, 잠을 못 이루니 밤이 긴 것을 알겠구나.
欲言無予和, 揮杯勸孤影。 말을 하려 해도 화답하는 이 없어, 잔 들어 외로운 그림자에게 권하네.
日月擲人去, 有志不獲騁。 세월은 사람을 버리고 가는데 뜻이 있건만, 그 뜻을 펴지도 못하는구나.
念此懷悲淒, 終曉不能靜。 이를 생각하니 서글프고 처량해, 새벽이 되도록 진정시킬 수가 없네.
三.
榮華難久居,盛衰不可量。 영화는 오래가기 어렵고, 성쇠는 헤아리기 어렵도다.
昔爲三春蕖,今作秋蓮房。 지난 봄에 핀 연꽃, 지금은 가을 연밥이 되었네.
嚴霜結野草,枯悴未遽央。 된서리 들풀에 엉겨도, 갑자기 속까지 시들지 않는다네.
日月有環周,我去不再陽。 해와 달은 도는 주기가 있지만, 나는 세상을 떠나면 다시 오지 못하네.
眷眷往昔時,憶此斷人腸。 지나간 옛 시절 돌이켜 보니, 그 추억에 애간장이 끊어지는구나.
蕖 : 연꽃 거. 연꽃, 씨토란, 토란.
四.
丈夫誌四海,我願不知老。 장부가 천하에 뜻을 둔다는데, 나는 늙어가는 것 알고 싶지 않노라.
親戚共一處,子孫還相保。 친척들은 한 곳에 모여 살고, 자손들은 서로 돌보며 살아간다.
觴弦肆朝日,樽中酒不燥。 아침부터 술잔과 거문고 늘어놓고, 술통에 술이 마르지 않노라.
緩帶盡歡娛,起晚眠常早。 허리띠 늦추고 실컷 즐겨, 늦게 일어나고 항상 일찍 잠든다.
孰若當世士,冰炭滿懷抱。 세상 선비가 어찌 이와 같으리오, 서로 다른 뜻 가득 품고 있다네.
百年歸丘壟,用此空名道! 인생 백년이면 무덤으로 가는데, 이러한 헛된 명성 무엇에 쓰려는가.
五.
憶我少壯時,無樂自欣豫。 내 젊은 시절 즐거운 일 없어도 스스로 즐겼노라.
猛誌逸四海,騫翮思遠翥。 굳센 뜻 천하에 떨치고, 날개를 활짝 펴 멀리 날리라 생각했노라.
荏苒歲月頹,此心稍已去。 세월이 가면서 점점 스러지고 그 마음도 차츰 멀어져 갔다.
值歡無復娛,每每多憂慮。 기쁜일을 만나도 더이상 즐겁지 않고 언제나 근심 걱정이 많았다.
氣力漸衰損,轉覺日不如。 기력은 점차 떨어져 가고, 날이 갈수록 전과 같지 않았도다.
壑舟無須臾,引我不得住。 골짜기의 배가 잠깐사이에 없어진 것처럼 나를 놔두지 않는다.
前途當幾許?未知止泊處。 앞으로 갈 길이 얼마쯤 남았는가? 머물러 쉴 곳도 알지 못하네.
古人惜寸陰,念此使人懼。 옛 사람은 촌음을 아꼈는데 이 생각이 사람을 두렵게 하는구나.
騫 : 이지러질 건. 이지러지다. 손상하다. 그르치다. 틀리다. 허물, 과실. 뽑아 가지다. 높이 올리다. 뛰다. 경솔한 모양, 두려워하다.
翮 : 깃촉 핵. 깃 촉. 깃의 아래쪽에 잇는 강경한 축(軸). 세발 솥. 騫翮 : 날개를 떨치다. 높이 날다. 翥 : 높이 날 저.
荏 : 들깨 임. 들깨, 누에 콩. 부드럽다. 구르다. 세월이 흐름. 점점.
苒 : 풀 우거질 염. 풀 우거진 모양. 부드럽고 약한 모양. 차츰 자라는 모양(荏苒).
☞ 壑舟無須臾
夫藏舟於壑,藏山於澤,謂之固矣。然而夜半有力者負之而走,昧者不知也。藏大小有宜,猶有所遯。若夫藏天下於天下,而不得所遯。是恒物之大情也. <莊子 內篇 大宗師>
대저 배를 산골짜기에 감추고 산을 못속에 감추어 두고 그것을 든든하다고 한다. 그러나 깊은 밤중에 힘이 있는 자가 짊어지고 도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한다. 크고 작은 것을 적절히 감추어 두어도 빠져나가는 바가 있다. 만약 천하를 천하 속에 감추어 둔다면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이것은 사물에 두루 미치는 큰 진리이다.
六.
昔聞長者言,掩耳每不喜。 옛날 어른이 말씀하시면 항상 듣지 않으려 했고 싫어했다.
奈何五十年,忽已親此事。 어쩌다 보니 나이 50이 되니 어느덧 내가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求我盛年歡,一毫無復意。 나에게 한창 때의 즐거움을 누리라 해도 조금도 실행할 뜻이 없다.
去去轉欲遠,此生豈再値。 갈수록 더욱 멀어지려 하니 이 삶을 어찌 다시 만나랴!
傾家時作樂,竟此歲月駛。 가산을 털어서 때때로 즐겨도 이 세월은 빠르게 간다네.
有子不留金,何用身後置!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말라. 어찌 죽은 후 쓰라고 놔둘 것인가 !
駛 : 달릴 사. 달리다. 말이 빨리 달림. 빠르다.
七.
日月不肯遲,四時相催迫; 세월은 더디게 가려하지 않으며 사계절은 서로 재촉한다.
寒風拂枯條,落葉掩長陌。 찬 바람이 마른 가지를 흔들고 낙엽은 온 길을 덮었노라.
弱質與運頹,玄鬢早已白; 약한 체질에 운수마저 기우니 검은 머리가 벌써 희어졌노라.
素標揷人頭,前途漸就窄。 흰 머리가 늘어나면, 여생은 점점 갈수록 짧아지네.
家爲逆旅舍,我如當去客; 집은 머물다 가는 여관이며 나는 마땅히 떠나야 할 객과 같도다.
去去欲何之?南山有舊宅。 가고 또 가는데 어디로 가려는가? 남산의 구택(묘지)이라네.
☞ 逆旅舍,當去客
李白이 후세에 「春夜宴桃李園序」에서 「夫天地者,萬物之逆旅;光陰者,百代之過客. 천지는 만물의 쉼터요,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백대의 나그네이다.」으로 썼다.
舊宅 : 여러 대를 거쳐 계속 사는 집으로 先塋을 뜻함.
八.
代耕本非望,所業在田桑。 벼슬은 본래 바라지 않았고, 생업으로 삼으려는 바는 농사와 양잠에 있었도다.
躬親未曾替,寒餒常糟糠。 몸소 일하고 그만 둔 적이 없는데도 춥고 배고팠으며 항상 거친 음식이었도다.
豈期過滿腹,但願飽粳糧。 어찌 배부르기를 바랄까마는 다만 바라는 것은 쌀밥을 실컷 먹는 것이었다네.
禦冬足大布,粗絺以應陽。 겨울 추위를 막는 데에는 거친 포면 족하고 여름에는 거친 갈포로 햇볕을 가리네.
正爾不能得,哀哉亦可傷! 이런 것 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으니, 슬프고 마음이 아프구나!
人皆盡獲宜,拙生失其方。 남들은 모두 다 얻어 잘 사는데 나만 그 방도를 몰랐구나.
理也可奈何,且爲陶一觴! 이치가 그러하니 어쩔건가. 잠시 한 잔 술로 마음을 달래노라.
代耕 ; 대리 경작. 밭을 경작하는 대신 관직에 나가 녹봉을 받는 것. 粳 : = 秔. 메벼 갱. 粳糧 : 쌀밥. 大 : 거칠다. 衣大布
九.
遙遙從羈役,一心處兩端。 먼 곳에서 객지생활을 하다보니 마음이 고향과 타향 두 끝에 있도다.
掩淚泛東逝,順流追時遷。 눈물을 감추고 배타고 동쪽으로 가는데 물 따라 시간 따라 나아간다.
日沒星與昴,勢翳西山巓。 해는 성수와 묘수쪽으로 지는데 노을이 서산 마루를 덮었도다.
蕭條隔天涯,惆悵念常餐。 쓸쓸히 아득히 먼 곳에 있다보니 항상 저녁먹던 생각에 마음이 서럽다.
慷慨思南歸,路遐無由緣。 원통하고 슬픈 마음에 남쪽으로 돌아가려니, 길도 멀고 까닭도 없구나.
關梁難虧替,絶音寄斯篇。 관문과 다리도 이지러져 고치기도 어려워 끊어진 소식 이 시 한편에 부치노라.
蕭條 : 매우 쓸슬함, 고요하고 조용함.
十.
閑居執蕩誌,時駛不可稽。 한가로이 지내며 호방한 뜻 지녔으나 시간이 빨라 붙잡을 수 없었네.
驅役無停息,軒裳逝東崖。 일에 쫒겨 잠시 쉬지도 않고 수레 몰아 동쪽 끝까지 갔었노라.
沉陰擬薰麝,寒氣激我懷。 사향노루 향인가 해서 깊이 들어갔다가, 찬 기운에 내 마음이 격동되었도다.
歲月有常禦,我來淹已彌。 세월은 늘 빠르게 흘러 내가 와서 머문지도 오래 되었다.
慷慨憶綢繆,此情久已離。 일에 얽매인 것을 생각하면 슬프고 원통했는데 이 마음도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荏苒經十載,暫爲人所羈。 차츰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나도록 잠시 남에게 매어 있었도다.
庭宇翳餘木,倏忽日月虧。 집 뜰은 죄다 나무로 뒤덮였고 어느덧 세월이 흘렀도다.
麝 : 사향노루 사.
十一.
我行未雲遠,回顧慘風涼。 내가 집을 떠나 멀리 왔다고는 못하지만 돌아보면 애처롭고 모습도 처량하도다.
春燕應節起,高飛拂塵梁。 봄 제비는 계절따라 날아와 높이 날아 대들보의 먼지를 떨어낸다.
邊雁悲無所,代謝歸北鄕; 변방의 기러기는 머물 곳 없음을 슬퍼하고 무리지어 북쪽 고향으로 돌아간다.
離鵾鳴淸池,涉暑經秋霜。 낙오된 두루미 맑은 연못에서 울고 여름 더위를 지나 가을 서리를 겪었도다.
愁人難爲辭,遙遙春夜長。 수심에 젖은 사람 마음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아득한 봄 밤이 길구나.
鵾 : 곤계 곤. 곤계(鵾鷄). 댓닭. 두루미 비슷한 황백색의 새.
十二.
裊裊松標崖,婉孌柔童子。 간들거리는 벼랑 끝 소나무, 아름답고 여린 모습이 동자같구나.
年始三五間,喬柯何可倚? 나이는 갓 3년과 5년 사이인데, 높은 가지는 어느 곳에 기대야 하나?
養色含津氣,粲然有心理。 형상을 가꾸고 진기를 머금으면, 심을 가꿈이 눈부시리라.
孌 : 아름다울 련.
☞ 이 12首는 해석에 異見이 있다.
「年始三五間」은 소나무의 나이를 말한 것인데 15년으로 해석하면 매우 어색하다.
간들거린다는 표현, 아름답고 여린 모습이 동자같다는 표현은 15년정도 된 소나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3 ~ 5년 사이의 어린 소나무라면 제법 문맥과 어울린다. 다른 해석을 아무리 찾아봐도 15년이외의 다른 해석이 없었지만 전체의 분위기, 문맥상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3 ~ 5년사이의 어린 소나무로 해석한다.
「古詩19首」중 17首에 나오는 구절 「三五明月滿, 四五蟾兔缺。」을 들어 15년으로 해석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 경우에는 마지막에 「間」字가 없다. 間은 '때', '무렵'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본래의 의미는 '사이' '중간'이다. 이 시의 문구 「年始三五間」과 「三五明月滿, 四五蟾兔缺。」은 확실히 분위기와 문맥이 다르다. 그러므로 古詩의 표현과는 달리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