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川 2021. 4. 9. 11:18

蛙利鷺

 

고려 중기 유명한 학자인 이규보(李奎報)에 얽힌 설화이다.

어느 날  임금(고려조 의종宗이라 하나 확실치는 않다)이 미복차림으로 야행을 나갔다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히 민가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밤 묵고자 청했지만 집주인(이규보)은 조금 더 가면 주막이 있다 하고 청을 거절하였다. 임금은 할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는데 그 집 대문에 붙어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唯我無蛙人生之限」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게 인생의 한이다'

 

도데체 개구리가 뭘까 ?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의 지식을 갖추었지만 개구리가 뜻하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막에 들려 국밥을 한 그릇 시켜먹으면서 주모에게 그 집에 대해 물어 보았더니  그는 과거에 낙방한 후 마을에도 잘 나오지 않고 집안에 틀어밖혀 책만 읽으면서 지낸다 했다.

더욱 궁금증이 발동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사정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수 있었는데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오지 않고 궁금증은 더욱 심해져 일어나 주인에게 대화를 청하였다.

그리하여 궁금했던 「唯我無蛙人生之限」이란 글에 대한 유래를 들을 수 있었다.

옛날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을때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바로  3일 후에 백로를 심판으로 하여 누가 노래를 더 잘하는지 시합을 하자는 것.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노래를 잘 하기는 커녕 목소리가 듣기조차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 시합을 제의한다는 것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인가. 일단 시합에 응하고 그래도 시합인지라 3일동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나 노래시합을 제의한 까마귀는 노래 연습은 하지않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을 다니면서 개구리를 잡았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한테 갖다주고 꾀꼬리와의 시합에서 자신의 뒤를 봐 주기를 청한 것.

약속한 3일이 지나자 시합을 하게 되었는데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의 판정을 청했다.

꾀꼬리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미 백로는 까마귀로부터 뇌물을 받은 입장이라 승패판정은 불문가지.결국 까마귀가 이겼다.  이 말은 이규보가 불의와 불법으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해서 한 말로 이때부터 와이로란 말이 생겼다.

 

이규보가 자신을 돌이켜 볼 때 꾀꼬리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한테 상납한 개구리 같은 뒷거래가 없었기에 번번히 과거에 낙방하여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고 은근히 비유하여 당시의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사실을 모두 알게 된 임금은 자신도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한 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전국을 떠도는 중인데, 며칠후에 임시과거가 있다고 해서 도성으로 가는중이라고 하고는, 환궁하여 임시과거를 열도록 하였다.

과거를 보는 날, 이규보도 시험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하고 있을때, 시험관이 내 걸은 시제(詩題)가  「唯我無蛙人生之限」이란 여덟자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라 어쩔 줄을 모르고 있을때  이규보는 비로소 지난 날의 과객이 임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임금이 계신 곳을 향해 큰 절을 올리고는 답을 적어내 장원급제 하였다 한다.

 

이때부터 蛙利鷺 唯我無蛙人生之限」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글의 출처를 찾아보았으나 분명치 않고 글만 떠도는 것으로 보아 설화로 전해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  이규보(李奎報 1168 ~ 1241)

 

고려 시대의 시인이자 철학자. 호탕하고 활달한 시풍(詩風)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가 유명하다.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으나 과거에 여러 차례 떨어졌다.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 최충헌에게 등용되어 엇갈린 평가를 받기도 했다. 몽골 왕에게 고려에 대한 억압을 누그러뜨려 줄 것을 간구하는 진정표(陳情表)로 유명하다. 저서에는 아들이 간행한 시문집 《동국이상국집》 등이 있다. 미신과 관념론을 비판하고, 한국의 유물론적 사상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