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雨
夜雨
李穡
夜雨空階滴不休、 빈 섬돌에 내리는 밤비는 그치지 않고,
疾餘情興轉悠悠。 병을 앓은 뒤라 마음도 서글프고나.
神仙已遠誰靑骨、 신선 되기는 아득한데 누가 청골이란 말인가?
天地無窮我白頭。 천지는 무궁한데 나는 백발이로다.
頗信殘年如上瀨、 참으로 남은 생애는 여울처럼 빠른데,
可憐當日欲東周。 가련하게도 당시에 동주(東周)에 도를 펼치려 하였구나.
祗今心跡誰能辨、 지금의 마음을 그 누가 알까
高臥元龍百尺樓。 진원룡의 백 척 누대에 누워있노라.
滴 : 물방울 적. 물방울. 방울져 떨어지다. 매우 작은 것의 비유. 윤기있고 싱싱한 모양. 瀨 : 여울 뢰. 여울. 급류.
☞ 靑骨 : 靑骨은 蔣子文에 연결된 故事로 수신기(搜神記)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 前部를 인용해 설명으로 갈음한다.
蔣子文者. 廣陵人也. 嗜酒. 好色. 挑撻無度. 常自謂 : 「己骨清. 死當爲神.」 漢末. 爲秣陵尉. 逐賊至鍾山下. 賊擊傷額. 因解綬縛之. 有頃遂死. 及吳先主之初. 其故吏見文於道. 乘白馬. 執白羽. 侍從如平生. 見者驚走. 文追之. 謂曰 : 「我當爲此土地神. 以福爾下民. 爾可宣告百姓. 爲我立祠. 不爾. 將有大咎.」 是歲夏. 大疫. 百姓竊相恐動. 頗有竊祠之者矣. 文又下巫祝 : 「吾將大啟祐孫氏. 宜爲我立祠, 不爾. 將使蟲入人耳爲災.」 俄而小蟲如塵虻. 入耳. 皆死. 醫不能治. 百姓愈恐. 孫主未之信也. 又下巫祝 : 「吾不祀我. 將又以大火爲災.」 是歲. 火災大發. 一日數十處. 火及公宮.
議者以爲鬼有所歸. 乃不爲厲. 宜有以撫之. 於是使使者封子文爲中都侯. 次弟子緒爲長水校尉. 皆加印綬. 爲立廟堂. 轉號鍾山爲蔣山. 今建康東北蔣山是也. 自是災厲止息. 百姓遂大事之. 以下 略. <搜神記 卷五>
☞ 東周 : 논어(陽貨 第5章)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公山弗擾以費畔召, 子欲往, 子路不說曰,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子曰, 「夫召我者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 元龍 : 元龍高臥. 後漢의 陳登이 자기는 上床에 눕고 그의 벗 許汜는 下床에 눕게 한 고사. <三國志 魏書 呂布傳>
허사는 진등에게 귀순하여 그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피신할 곳을 찾고자 많은 고생을 하며 진등이 살고 있는 비(邳) 땅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진등은 허사를 손님으로 대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를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 허사는 진등의 집에서 꽤 오래 머물고 있었지만, 진등은 그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위에 있는 큰 침상에서 잠을 자고, 허사에게는 아래 침상에서 잠을 자게 하였다(久不相與語, 自上大床臥, 使客臥下床).
훗날 허사는 유비(劉備)를 따라 유표(劉表)의 본거지에 올 기회가 있었다. 이 때 허사가 유비, 유표 등과 함께 천하의 인물들을 이야기하면서 이 일을 꺼내자, 유비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이름이 있는 사람이오. 지금은 천하가 어지럽고, 국군(國君)이 그 자리를 잃어버린 때인 터라, 진등은 그대가 나라를 생각하여, 개인의 집과 개인의 안전을 잊어버리고 나라와 백성을 구해주기 바랬을 것이오. 하지만 그대는 자신의 안전만을 위해 진등의 집을 찾았으니, 진등은 이를 매우 마음 아프게 생각하였을 것이오. 이럴진데 그대를 상대할 무슨 이유가 있었겠오? 만약 내가 그대 같은 소인을 만났다면, 나는 백척 높이의 누각에 올라가서 자고, 그대에게는 땅바닥에서 자게 해 줄 것이오."
유비의 말에 비로소 허사는 크게 깨달았다. 이후, 허사는 유비를 도와 촉나라를 세우는데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