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
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
其 一。
有客有客字子美、 나그네여, 나그네여, 자는 자미인데,
白頭亂髮垂過耳。 흰 머리 헝크러져 귀 밑까지 드리웠네.
歲拾橡栗隨狙公、 년말에 원숭이 좇아 도토리와 밤을 줍는데
天寒日暮山谷裏。 추운 산 골짜기에 날이 저무는구나.
中原無書歸有得、 중원에서 편지 없으니 돌아가지 못하고
手脚凍皴皮肉死。 손발은 얼어터지고 피부에 감각이 없구나.
嗚呼一歌兮歌已哀! 오호라! 첫번째 노래여. 노래가 너무 슬프구나!
悲風爲我從天來。 슬픈 바람 나를 향해 하늘에서 불어오네.
乾元 : 당 숙종肅宗의 연호(758~760) 寓居 : (타향이나 남의 집에서) 얹혀살다(= 기거寄居, 교거僑居).
同谷 : 지명, 즉 동곡현을 가리킨다. 唐朝 때 秦州郡과 成州郡의 치소가 있던 곳. 두보가 동곡에 이르러 현령을 만나려 하였으나,
두보가 벼슬이 없고 생활이 곤궁한 것을 알고 있던 현령이 만나주지 않았다. 두보는 산밑에 움막을 틀고 식량도 떨어진
상태에서 눈 쌓인 겨울을 나면서 이 시를 지었다.
有客 :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의탁해 지내는 것을 뜻하는 ‘寓居’를 쓴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듯이 두보는 스스로를 나그
네로 불렀다. ‘子美’는 두보의 자이다. 두보는 이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이나 자호를 자신의 작품 속에 쓰는 것을 좋아했다.
歲拾 : 여기서의 ‘歲’는 세밑(歲暮)을 가리킨다. 다음 구절에 오는 ‘天寒日暮’와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暮’를 생략한 것이다.
橡栗 : 상수리. 도토리. ‘橡’은 상수리나무를 이르는데 종류가 많고 이름도 각각 다르다. 중국의 南京에서는 ‘櫟樹’라 하고, 浙江과
東北에서는 ‘橡樹’라고 하며, 四川에서는 靑紅樹라고 한다.
狙 : 원숭이 저. 원숭이. 개(犬). 교활하다. 속임. 노리다. 엿봄. 찾다.
皴 : 주름 준. 주름. 살갗, 치마 따위에 잔줄이 진 것. 트다. 손, 발등이 얼어터짐.
其二。
長鑱長鑱白木柄、 보습아 보습아 자루가 흰 보습아,
我生托子以爲命。 내가 너에게 기대 살아가는구나.
黃獨無苗山雪盛、 눈 덮인 산에 황독 싹은 안 보이고
短衣數挽不掩脛。 짦은 옷 거듭 당겨도 정강이를 못 가리네
此時與子空歸來、 오늘도 너와 함께 빈 손으로 돌아오니
男呻女吟四壁靜。 고요한 방 안에서 아이들만 앓고 있네
嗚呼二歌兮歌始放、 오호라, 두번째 노래여! 노래를 시작하니,
閭里爲我色惆悵。 이웃들도 나 때문에 안색이 어두워지네.
鑱 : 보습 참. 보습. 쟁기의 날. 침. 돌침. 송곳. 끌. 나무에 구멍을 파는 따위에 쓰는 연장. 파다. 뚫음. 날카롭다. 예리함. 찌르다.
黃獨 : 야생 식물. 토란처럼 생겼으며 옛날에는 사람들이 구황식품으로 먹었다. 唐 詩人 戴叔倫은 시에서 “地瘦無黃獨”고 했다.
其三。
有弟有弟在遠方、 아우들아 아우들아 멀리 있는 아우들아
三人各瘦何人强。 세 사람 모두 여위었으니 그 중 누가 건강할까
生別展轉不相見、 헤어져 떠돌며 사느라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胡塵暗天道路長。 난리 속 어두운 세상에 길도 멀구나.
東飛駕鵝後鶖鶬、 동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물수리가 따르는데
安得送我置汝旁。 어찌하면 네 곁에 머물 수 있을까?
嗚呼三歌兮歌三發、 오호라, 세번째 노래여! 노래를 세 번 불러보는데
汝歸何處收兄骨。 너희가 오면 어디에서 형의 뼈를 거두겠느냐
鶖 : 무수리 추. 무수리. 황새과의 물새. 鶬 : 왜가리 창. 왜가리. 꾀꼬리. 백로과의 두루미.
其四。
有妹有妹在鐘離、 누이야 누이야 종리 사는 누이야
良人早歿諸孤痴。 남편이 일찍 죽어 아이들 모두 어리구나
長淮浪高蛟龍怒、 회수의 물결이 높은 것은 교룡이 화났기 때문인가?
十年不見來何時。 십 년동안 보지도 못했는데 어느 때나 보겠느냐?
扁舟欲往箭滿眼、 작은 배 타고 가고 싶어도 화살이 날아들고
杳杳南國多旌旗。 머나먼 남쪽 땅엔 군대 깃발 많도다
嗚呼四歌兮歌四奏、 오호라, 네번째 노래여! 네 번 불러보는데
林猿爲我啼淸晝。 숲 속의 잔나비도 나를 위해 대낮에 우네.
痴 : 어리석을 치. 癡 → 稚.
其五。
四山多風溪水急、 산마다 바람 많아 물살 급하고
寒雨颯颯枯樹濕。 찬비까지 내려서 마른나무 적시네
黃蒿古城雲不開、 개똥쑥 가득한 옛 성에 운무가 자욱한데
白狐跳梁黃狐立。 흰 여우들 뛰어다니고 노랑 여우는 서있네
我生何爲在窮谷、 내가 살아 무엇 하러 이곳까지 들어왔는지
中夜起坐萬感集。 한밤중에 일어나 앉으니 만감이 일어나네
嗚呼五歌兮歌正長、 오호라, 다섯째 노래 다섯 번 길게 불러보는데
魂招不來歸故鄕。 혼을 불러도 오지 않고 고향으로 가버리네
其六。
南有龍兮在山湫、 남쪽에 용 있는데 산속 연못이고
古木巃嵷枝相樛。 고목들 모여 있어 가지 서로 휘었네
木葉黃落龍正蟄、 나뭇잎 누렇게 져 용이 막 잠들었는데
蝮蛇東來水上游。 동쪽에서 온 독사가 물 위에서 노니네
我行怪此安敢出、 내가 가서 무서움 모르는 괴이한 뱀을
拔劍欲斬且復休。 칼을 빼서 베어버리려다 그만 두었네
嗚呼六歌兮歌思遲、 오호라, 여섯째 노래 생각 더디 나는데
溪壑爲我回春姿。 산골짝도 나를 위해 봄 모습으로 돌아오네
其七。
男兒生不成名身已老、 남자로 나서 이름 못 낸 채 몸 이미 늙었고
三年饑走荒山道。 지난 삼 년 속 주리며 거친 길을 지나왔네
長安卿相多少年、 장안 사는 높은 이들 젊은이가 많은데
富貴應須致身早。 부귀도 마땅히 몸 젊을 때 이르러야지
山中儒生舊相識、 산 속의 유생도 예전엔 서로 알았건만
但話宿昔傷懷抱。 말하는 게 옛날 일뿐이라 맘만 다치네
嗚呼七歌兮悄終曲、 오호라, 일곱째 노래 쓸쓸하게 마치고 나서
仰視皇天白日速。 하늘을 바라보자니 세월 참 빠르네
弟 : 두보에게는 潁, 觀, 豊, 占 등 아우가 넷 있었는데 시를 지었을 때는 占 한 명만 그와 함께 있었다.
駕鵝 : 들새의 이름. 기러기처럼 크다. 鶖鶬 : 고서에 나오는 뱀 등을 잡아먹는 성질이 사나운 새를 가리킨다.
鐘離 : 지명. 淮水 남쪽에 있다.
黃蒿古城雲不開 : 同谷은 한나라 때 武都郡에 속해 있었는데 당 天寶 원년(742)에 同谷으로 이름을 바꿨다. 성에 개똥쑥(黃蒿)이 많이
자라 있어 古城이라 한 것이다. ‘雲不開’는 앞이 잘 안 보일 만큼 운무가 짙게 끼어있는 것을 가리킨다.
跳梁(도량): 뛰어오르다. 도약하다. 湫 : 용이 있는 연못. 巃嵷: 산이 험준한 모양. 김이 솟는 모양. 모여있는 모양. (정도가) 깊다.
蟄 : 엎드려 숨다(= 伏藏) 蝮蛇 : 살무사 身已老 : 이때 두보의 나이 48세였다.
▶ 三年 : 지덕 至德 2년(757)부터 건원 乾元 2년(759)까지의 3년을 가리킨다. 宿昔 : 이전. 지난날(=昔日).
[해설]
이 시는 두보가 건원乾元 2년(759) 음력 11월에 지은 것이다. 이 해는 두보의 행로가 가장 많은 한 해이기도 했고 그런 만큼 그는 참담한 고생을 겪어야 했다. 그는 그렇게 비참한 한 해를 보내면서 피를 토하고 눈물을 쏟아내듯 이 시를 썼다.
첫 편에서는 나그네처럼 떠도는 자신의 곤궁한 신세를 노래했고,
둘째 시에서는 온 가족이 배를 곯다 병을 앓기에 이른 참담한 상황을 읊었으며,
셋째부터 다섯째 시까지는 형제와 누이를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여섯 번째 시에서는 한 사람, 한 가족에서부터 나라까지를 걱정하는 마음을,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시에서는 이룬 것 없이 늙어버린 시인 자신의 쓸쓸한 처지를 노래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숙종때의 위항시인 홍세태(洪世泰 1653 ~ 1625)가 이 시의 형태를 빌어 염곡칠가(鹽谷七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