猗蘭操 - 孔子/韓愈
猗蘭操
孔子
習習風俗、光陰以雨。 훈훈한 바람 불더니 어두워지고 비가 오도다.
之子于歸、遠送于野。 그 사람 돌아간다기에 멀리 들로 나가 전송하였네.
何彼蒼天、不得其所。 푸른 하늘은 어이하여 날 버리는가,
逍遙九州、無有定處。 천하를 떠돌았어도 머물 곳이 없구나.
世人闇蔽、不知賢者。 세상 사람들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워 어진 이를 몰라보네.
年紀逝邁、一身將老。 세월은 흐르고 이 한 몸만 늙어 가는구나.
☞習習風俗、光陰以雨 : 시경(國風/邶風/谷風)에 나오는 문구.
習習谷風,以陰以雨。 골짜기에 훈훈한 바람 불더니 어두워지고 비가 오도다.
黽勉同心,不宜有怒。 한마음으로 힘써야지 노여워하는 것은 마땅치 않노라.
采葑采菲,無以下體。 무를 캐는데 뿌리만 다가 아니로다.
德音莫違,及爾同死。 언약을 어기지만 않았다면 함께 해로하였을 것이로다.
☞之子于歸 : 시경(國風/邶風/燕燕)에 나오는 文句.
燕燕于飛,差池其羽。 제비들이 나네, 이리저리.
之子于歸,遠送于野, 그 사람 돌아간다기에 멀리 들로 나가 전송하였네.
瞻望弗及,泣涕如雨。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네.
[해설]
공곡유란(空谷幽蘭) 의란조(倚蘭操)란 2500여 년 전 춘추전국시대의 공자와 난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사이다.
공자가 생애 초반 약 30년 동안 닦는 학문으로 천하를 다니면서 제후들을 만나 왕도정치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다녔는데. 패도정치(覇道政治)의 무력(武力)이 지배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어느 제후도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자는 공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참담한 심정으로 고향인 노나라로 향하던 공자는 어느 인적 없는 빈 골짜기에서 홀로 피어 있는 난(蘭)을 만나게 된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공곡에서 홀로 핀 난의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공자는 깊이 탄식한다.
"저 난은 왕자의 향을 지녔거늘 어찌 잡초사이에서 외롭게 피어 있느냐,
어리석은 자들 틈에서 때를 만나지 못한 현자와 같구나".
잡초와 가시덩굴 속에 묻힌 애처로운 난의 모습에서 자신의 처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자는 그 빈 골짜기의 난처럼 남이 알아주든 말든 자신만의 학문을 완성해야 하겠다고 결심한다. 난으로 인하여 공자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날 이후 공자는 제후들을 찿아다니며 자신의 학문과 이념을 설파하고자 하는 뜻을 접고 조용히 향리에 은거해 학문을 즐기고 문덕을 쌓았다. 학문이 깊어져 도에 이르니 신기하게도 자신이 그렇게 찾아다닐 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찾아다니지 않아도 전국 각지에서 현자들이 공자를 찿아오게 되었고, 공자의 제자가 3천 명에 이르렀다.
인적 없는 빈 골짜기에서 고아한 자태로 피어있는 난이 그윽한 향기를 풍기니 세상의 온갖 벌과 나비가 날아드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의란조(倚蘭操)는 공자가 인적 없는 빈 골짜기에서 운명적으로 난을 만나 크게 깨달음을 얻으며 거문고를 들어 거문고 가락으로 “倚蘭操(의란조)”라는 거문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猗蘭操
韓 愈
蘭之猗猗、揚揚其香。 난초 무성하고 향기를 드날린다.
不採而佩、於蘭何傷。 꺾어서 몸에 지니는 이 없어도, 어찌 마음 상하리오?
今天之旋、其曷爲然。 소용돌이치는 세상, 어찌 그렇게 되었는가.
我行四方、以日以年。 세상을 떠돌다 보니, 하루가 지나고 한 해가 지났도다.
雪霜貿貿、薺麥之茂。 혹한(酷寒)을 견디더니, 냉이와 보리가 힘차게 자라는구나.
子如不傷、我不爾覯。 공자가 상처받지 않았다면 나도 네 본성을 보지 못했을 것이로다.
薺麥之茂、薺麥之有。 혹한을 견딘 냉이와 보리가 힘차게 자라는 것은 그들이 가진 속성이며,
君子之傷、君子之守。 군자가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은 그가 지키고자 하는 것 때문이로다.
猗猗 : 아름답고 무성한 모양. 번창한 모양.
貿貿 : 경솔하다. 눈이 흐릿하다. 멍청하다. 무턱대고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