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漢詩/李奎報

寒食感子推事

柳川 2022. 4. 6. 23:54

                                                寒食感子推事

 

 

衆鱗化雲雨、一蛇不與爭。         어족(魚族) 모두가 구름과 비의 은택을  받는데, 한 마리 뱀만은 다투지 않았도다.     

未見恩波潤反爲燥炭烹。         은택도 입지 못했는데 오히려 숯에 그을리고 타버렸구나.

綿山山上火已忍焚人英。         면산 산위의 불은 이미 인재를 잔인하게 태워버렸도다.

胡不放神燄焚滅千載名。         어찌 귀신은 불을 놓고도, 천년동안이나 이름은 태워버리지 않아,

遂使後代人聞名輒傷情。         후세인이 그 이름을 듣고 마음을 상하게 하였는가.

每至百五辰萬屋禁煙生。         해마다 한식일이 되면 모든 집에서 연기를 내는 것을 금하는데,

不及炎岡日一勺江水淸。         산등성이에 더위도 오지 않았는데  한 줌 강물만 맑구나.

 

                                                                                      [동국이상국전집 제1권]

 

 

 

寒食 :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청명(淸明)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이다. 설날 · 단오 · 추석과 함께 전통 4대 명절에 해당한다. 계절적으로는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철이며 조상의 무덤을 보수하는 시기로 여겨진다.

 

중국 춘추시대에 진(晉)나라 헌공(獻公)은 여융(驪戎)을 정벌하고 여희(驪姬)와 여희의 여동생을 얻었는데, 그는 그 둘을 모두 총애했다.

여희가 해제(奚齊)를 낳자 여희는 태자 신생(申生)과 공자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를 모함하여 태자 신생은 자살하고 공자 중이와 이오는 국외로 망명하게 되었다.

중이는 오랜 세월 여러 나라를 전전 · 유랑하며 형언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는데 한 예로 문공이 굶주렸을 때 개자추(介子推)는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바치기도 했다. 결국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도움으로 진나라에 귀국하여 문공(文公)이 되었다. 문공은 지난 날 함께 유랑하며 고생했던 신하들에게 모두 포상하였는데 모두 자신의 공을 다투니 개자추(介子推)가 실망하고 모친과 함께 은거해버렸다.  

 

문공이 뒤에 잘못을 뉘우치고 그를 찾았으나 산중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불을 놓으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불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서로 껴안고 버드나무 밑에서 불에 타 죽었다(捕木燒死). 이에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문공이 이날은 불을 쓰지 않도록 한 것에서 유래하여, 이날은 불을 지피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한식'이라는 말은 '찬 음식'이라는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에서는 한식을 '냉절(冷節)', 또는 '숙식(熟食)'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史記 卷39. 晉世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