爭臣論 - 韓愈
爭臣論
韓 愈
☞ 글 머리에
쟁신(爭臣)은 간쟁(諫諍)을 맡은 신하로 곧 간관(諫官)이다. 한유가 논한 쟁신(爭臣)은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의 간의대부(諫議大夫)였던 양성(陽城)이다. 양성(陽城)은 학문을 좋아하였으나, 가난해서 책을 사 볼 수 없자, 집현원(集賢院)의 사서리(寫書吏)가 되어 책을 훔쳐 밤낮으로 읽었다. 6년이 지나자 모르는 것이 없게 되어 과거에 응시해 급제하였으나, 벼슬하지 않고 중조산(中條山)에 은거하였는데, 정원(貞元) 3년(787년)에 당 덕종(唐 德宗)이 불러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삼았다. 양성은 간의대부가 되어 술로 세월을 보낼 뿐, 정치의 득실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니, 정원 8년에 당시 25세였던 한유가 이 〈쟁신론〉을 지어 양성을 비난하였다. 한유는 이 글에서 어떤 사람(或者)이 한유에게 네 번 묻고 네 번 대답하는 형식으로 양성을 비판하였다.
이 글은 <古文眞寶 後輯 卷3> <唐宋八大家文抄 韓愈 卷9>에 실려 있다.
或問諫議大夫陽城於愈,「可以爲有道之士乎哉?學廣而聞多,不求聞於人也;行古人之道,居於晉之鄙,晉之鄙人,薰其德而善良者幾千人。大臣聞而薦之,天子以爲諫議大夫。人皆以爲華,陽子不色喜。居於位五年矣,視其德如在野,彼豈以富貴移易其心哉!」
어떤 사람이 나(愈)에게 간의대부 양성(陽城)에 대해서 물었다.
"양성은 도(道)가 있는 선비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학식이 넓고 견문이 많음에도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는 옛 성현(聖賢)들의 도를 행하며 옛 진(晉)나라 변방에 살고 있는데 진의 변방사람들 중 그의 덕과 선량함에 감화를 받은 자들이 거의 천명이나 됩니다. 대신들이 그의 소문을 듣고 그를 천거하니 천자가 그를 간의대부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명예로운 일이라 여겼으나 그는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있은지 5년이 지났는데도 그의 덕행을 보면 재야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부귀로 그의 마음을 바꾸겠습니까?"
愈應之曰:「是《易》所謂『恒其德貞』,而『夫子凶』者也。惡得爲有道之士乎哉?在《易 · 蠱》之上九云:『不事王侯,高尙其事』。《蹇》之六二則曰:『王臣蹇蹇,匪躬之故。』夫不以所居之時不一,而所蹈之德不同也?若《蠱》之上九,居無用之地,而致『匪躬』之節;蹇之六二,在王臣之位,而高『不事』之心,則冒進之患生,曠官之刺興,誌不可則,而尤不終無也。今陽子在位不爲不久矣,聞天下之得失不爲不熟矣,天子待之不爲不加矣,而未嚐一言及於政,視政之得失,若越人視秦人之肥瘠,忽焉不加喜戚於其心。問其官,則曰諫議也;問其祿,則曰下大夫之秩也;問其政,則曰我不知也。有道之土,固如是乎哉?且吾聞之有官守者,不得其職則去;有言責者,不得其言則去。今陽子以爲得其言,言乎哉?得其言而不言,與不得其言而不去,無一可者也。陽子將爲祿仕乎?古之人有云:仕不爲貧,而有時乎爲貧,謂祿仕者也。宜乎辭尊而居卑,辭富而居貧,若抱關擊柝者可也。蓋孔子嚐爲委吏矣,嚐爲乘田矣,亦不敢曠其職,必曰『會計當而已矣』,必曰『牛羊遂而已矣』。若陽子之秩祿,不爲卑且貧,章章明矣,而如此,其可乎哉?」
恒其德貞 : 周易 恒卦에 나오는 文句.
六五 恒其德貞, 婦人吉, 夫子凶. 象曰, 婦人貞吉, 從一而終也. 夫子制義, 從婦凶也.
육오, 덕행이 한결같으면 곧으니 부인에게는 길하지만 남자에게는 흉하다. 상에 이르기를 부인이 곧으면 길하니 한 사람을 따르고 생을 마치는 것이며, 남자는 의를 따라야 하고 부인을 따르면 흉하다.
不事王侯,高尙其事 : 周易 蠱卦에 나온다.
上九, 不事王侯, 高尙其事. 象曰:「不事王侯」,志可則也。
상구, 왕후를 섬기지 않고 그 일을 높이 숭상한다. 상전에서 말했다. "왕후를 섬기지 않는다."는 것은 그 뜻을 본받을만 하다.
王臣蹇蹇,匪躬之故 : 周易 蹇卦에 나온다.
彖曰, 蹇, 難也, 險在前也, 見險而能止, 知矣哉. 蹇利西南, 往得中也, 不利東北, 其道窮也, 利見大人, 往有功也, 當位貞吉, 以正邦也, 蹇之時用, 大矣哉. 象曰, 山上有水, 蹇, 君子以, 反身脩德. 初六, 往蹇, 來譽. 象曰, 往蹇來譽, 宜待也. 六二, 王臣蹇蹇, 匪躬之故.
曠官 : 직무를 태만히 함. 수령의 자리가 오래 빔. 嚐 : 嘗과 同字.
古之人 ~ : 孟子 萬章<下> 第 5章의 文句.
孟子曰, 「仕非爲貧也, 而有時乎爲貧, 娶妻非爲養也, 而有時乎爲養。爲貧者辭尊居卑, 辭富居貧。辭尊居卑, 辭富居貧, 惡乎宜乎! 抱關擊柝。孔子嘗爲委吏矣曰, 『會計當而已矣。』 嘗爲乘田矣曰, 『牛羊茁壯長而已矣。』 位卑而言高罪也, 立乎人之本朝, 而道不行恥也。」
抱關擊柝 : 관문을 지키고 딱딱이를 치는 자.
委吏 : 출납계원. 孔子貧且賤. 及長, 嘗爲季氏史, 料量平;嘗爲司職吏而畜蕃息. 由是爲司空. <史記 孔子世家>및 注.
注) 索隠有本作「委吏」. 按:趙岐曰「委吏, 主委積倉庫之吏」.
乘田 : 主苑囿芻牧之吏也. 원유에서 가축을 기르는 관리.
내가 그에게 응답하였다.
"이것은 역에서 말하는 이른바 '덕행이 변하지 않는 것은 곧은 것이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흉하다.'는 것입니다. 어찌 도가 있는 선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또 주역 고괘(蠱卦)의 상구(上九) 효사(爻辭)에 이르기를 '왕후를 섬기지 않고 그 일을 고상히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또 건괘(蹇卦)의 육이(六二) 효사에 이르기를 '왕의 신하가 어려운데 그 어려움은 자신때문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살았던 때가 같지 않으니 덕행을 행하는 것도 다르지 않겠습니까? 만약 고괘(蠱卦)의 상구에 있어서와 같이 기용되지도 않았는데 몸을 아끼지 않고 절개를 바친다거나, 건괘 육이의 효사에 있어서와 같이 왕의 신하의 지위에 있으면서 왕을 섬기지 않으려는 마음을 높게 여긴다면 무모하게 벼슬에 나가는 재앙이 생기거나 직무를 태만히 한다는 비난이 일어나게 될 것이니 그 뜻을 본받을 수 없으며 허물이 있어도 아무 것도 끝내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양자가 그 자리에 오래 있지 않은 것도 아니고, 천하의 득실(得失)관계에 정통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천자가 그를 대우함에 더해줄 것이 없게 한 것도 아니지만 정사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한 적이 없고, 정사의 이해득실을 보는 것이 월(越)나라 사람이 진(秦)나라 사람의 비대하고 여윈 모습을 보는 듯 하니 어찌 갑자기 그의 마음에 기쁘거나 슬픈 감정이 일어난 것을 알겠습니까?
그에게 관직을 물으면 '간의대부'라 하고, 그의 녹봉을 물으면 '하대부의 녹봉(秩)'이라 하며, 그에게 정사를 물으면 '나는 모른다'고 합니다. 도가 있는 선비라면 진실로 이와 같겠습니까? 또 내가 듣건대 관직을 지키는 자가 그 직을 감당할 수 없다면 떠나야 하고, 간언하는 책무를 가진 사람이 간언하지 못하면 떠나야 합니다. 지금 양자는 간언할 수 있을 때 간언을 한 적이 있습니까? 간언할 수 있을 때 간언하지 않고 간언할 수도 없는데 떠나지 않는 것은 전혀 옳지 않습니다. 양자는 오직 복록을 위해 벼슬을 하는 것입니까? 옛 사람이 말하기를, "가난때문에 벼슬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가난때문에 벼슬하기도 한다.' 고 하였으니 봉록을 받기 위하여 벼슬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높은 지위를 사양하고 낮은 지위에서 지내며, 부유함을 사양하고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니 관문을 지키고 딱딱이를 치는 것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공자께서도 일찍이 위리(委吏)가 되고 숭전(乘田)이 되신 적이 있으나 감히 그 직무를 태만히 하지 않으셨으며, 반드시 '회계일을 합당하게 하였을 뿐이다.'라 하시고, 또 반드시 '소와 양을 키웠을 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양자의 벼슬과 봉록이 낮고 적은 것도 아닌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그가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까?"
或曰:「否,非若此也。夫陽子惡訕上者,惡爲人臣招其君之過而以爲名者,故雖諫且議,使人不得而知焉。《書》曰:『爾有嘉謨嘉猷,則入告爾后於內,爾乃順之於外,曰:‘斯謨斯猷,惟我后之德。’』 夫陽子之用心,亦若此者。」
愈應之曰:「若陽子之用心如此,滋所謂惑者矣。入則諫其君,出不使人知者,大臣宰相者之事,非陽子之所宜行也。夫陽子本以布衣隱於蓬蒿之下,主上嘉其行誼,擢在此位,官以諫爲名,誠宜有以奉其職,使四方後代知朝廷有直言骨鯁之臣,天子有不亻朁賞、從諫如流之美。庶岩穴之士,聞而慕之,束帶結髮,願進於闕下,而伸其辭說,致吾君於堯舜,熙鴻號於無窮也。若《書》所謂,則大臣宰相之事,非陽子之所宜行也。且陽子之心,將使君人者惡聞其過乎?是啟之也。」
惡訕上者 : <論語 陽貨 第24章>에 나온다.
子貢曰, 「君子亦有惡乎?」 子曰, 「有惡, 惡稱人之惡者, 惡居下流而訕上者, 惡勇而無禮者, 惡果敢而窒者。」
爾有嘉謨嘉猷,則入告爾后於內,爾乃順之於外,曰:‘斯謨斯猷,惟我后之德。: <書經 周書 第23章 君陳 第6節>에 나오는 文句.
「爾有嘉謀嘉猷,則入告爾后于內,爾乃順之于外,曰:『斯謀斯猷,惟我后之德。』 嗚呼!臣人咸若時,惟良顯哉!」
骨鯁之臣 :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듣기에 괴로운 직언(直言)을 하는 강직한 신하를 비유하는 말.
鯁 : 생선뼈 경. 생선뼈. 가시가 목에 걸리다. 바르다. 곧음. 강직함. 막히다. 재앙.
어떤 사람이 말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양자는 윗 사람을 헐뜯기를 싫어하는 것이며 남의 신하가 되어 그 군주의 잘못을 들추어 내서 유명해지는 것을 싫어하므로 간쟁과 논의를 하는 것도 남들이 알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서(書)에 이르기를 '너에게 좋은 계책과 꾀가 있다면 안에 들어가 네 임금에게 고하고, 네가 밖에 나와 말할 때에는 〈이 계책과 꾀는 우리 임금님의 덕에서 나온 것이다.〉 라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양자가 마음을 쓰는 것도 이와같은 것일 뿐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양자의 마음쓰는 것이 이와 같다면 이른바 더욱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것입니다. 들어가서는 군주에게 간하고 나가서는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신과 재상들의 일이며 양자가 마땅히 행할 바가 아닌 것입니다. 양자는 본래 포의(布衣)를 입고 초야에 묻혀 살던 자였는데, 주상께서 그의 행실이 바름을 가상히 여기시고 그를 발탁하여 현재의 지위에 두셨으며 관직은 간관(諫官)으로 명명(命名)하셨으니 진실로 그 직무를 받들어, 사방 사람들과 후대의 사람들에게 조정에 직언하는 강직한 신하가 있었고 천자께서는 함부로 상을 내리지 않으시며 간언을 따르시는 것이 물흐르듯 아름다웠음을 알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하여 뭇 재야의 은둔거사들이 그 소문을 듣고 천자를 흠모하여 의관을 갖추고 궐하(闕下)에 나아가, 그들의 학식을 펼쳐 우리의 군주가 요순(堯舜)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음을 말하며 그 훌륭한 명성이 끝없이 빛나기를 기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경에서 말한 것은 대신과 재상의 일이므로 양자가 마땅히 해야 할 바가 아닌 것입니다.
도대체 양자의 생각은 인군으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듣기 싫어하게 하려는 것인가? 이는 그렇게 되도록 계도하는 것입니다."
或曰:「陽子之不求聞而人聞之,不求用而君用之,不得已而起,守其道而不變,何子過之深也?」
愈曰:「自古聖人賢士,皆非有求於聞用也。閔其時之不平,人之不乂,得其道,不敢獨善其身,而必以兼濟天下也。孜孜矻矻,死而後已。故禹過家門不入,孔席不暇暖,而墨突不得黔。彼二聖一賢者,豈不知自安佚之爲樂哉?誠畏天命而悲人窮也。夫天授人以賢聖才能,豈使自有餘而已?誠欲以補其不足者也。耳目之於身也,耳司聞而目司見,聽其是非,視其險易,然後身得安焉。聖賢者,時人之耳目也;時人者,聖賢之身也。且陽子之不賢,則將役於賢以奉其上矣,若果賢,則固畏天命而閔人窮也,惡得以自暇逸乎哉?」
孜孜矻矻 : 부지런하여 쉴줄을 모르다. 矻矻 ; 부지런히 애쓰는 모양.
矻 : 돌 골(갈). 돌. 돌이 단단한 모양. 조심하는 모양. 부지런한 모양.
死而後已 : <論語 泰伯 第 7章>에 나오는 문구.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禹過家門不入 : <史記 卷2. 夏本記>에 나온다. 禹傷先人父鯀功之不成受誅, 乃勞身焦思, 居外十三年, 過家門不敢入.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양자는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그를 알아 주었고, 임금에게 기용되기를 바라지 않았는데도 임금께서 그를 기용하셨으니, 그가 도를 지키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어찌 그대는 그를 심하게 꾸짖으십니까?"
내가 대답했다.
"예로부터 성인과 현명한 선비는 모두 남들에게 알려지고 임금에게 기용되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대가 평온하지 않고 사람들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을 민망하게 여겨 도를 깨닳았으면 감히 그 자신만을 선하게 할 수 없어 반드시 천하를 구제하려고 하였습니다. 부지런히 힘쓰며 죽은 후에야 그만두려고 하였습니다. 우(禹)임금은 자기 집 문앞을 지나가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공자는 자리에 온기가 생길 틈이 없을만큼 바쁘게 다녔으며, 묵자의 집 굴뚝은 검게 그을려질 수가 없을 정도로 바빴습니다. 이 두 분 성인과 한 사람의 현자가 어찌 스스로 안일하게 즐길 줄을 몰랐겠습니까? 진실로 천명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의 곤궁함을 슬퍼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사람에게 어짐과 성스러움과 재능을 부여한 것이 어찌 자신에게 여유롭게 하려고 하였을 뿐이었겠습니까? 진실로 그것이 부족한 자들에게 메꾸어주도록 하기 위한 것일 것입니다. 몸에 귀와 눈이 있어 귀는 듣는 것을 임무로 하고 눈은 보는 것을 임무로 하고 있으니 그 옳고 그른 것을 알아듣고 그 험한 것과 쉬운 것을 분간하게 된 연후에야 몸이 편안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성현(聖賢)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귀와 눈이며 그 시대의 사람이라는 것은 성현의 몸과 같은 것입니다. 양자가 현명치 못하다면 현자를 윗사람으로 받들기에 힘써야 하고, 과연 현명하다면 진실로 천명을 두려워하고 사람들의 곤궁함을 불쌍히 여기게 될 것이니 어찌 스스로 안일하게 보낼 틈이 있겠습니까?"
或曰:「吾聞君子不欲加諸人,而惡訐以爲直者。若吾子之論,直則直矣,無乃傷於德而費於辭乎?好盡言以招人過,國武子之所以見殺於齊也,吾子其亦聞乎?」
愈曰:「君子居其位,則思死其官;未得位,則思修其辭以明其道。我將以明道也,非以爲直而加人也。且國武子不能得善人,而好盡言於亂國,是以見殺。《傳》曰:『惟善人能受盡言。』 謂其聞而能改之也。子告我曰:『陽子可以爲有道之士也。』 今雖不能及已,陽子將不得爲善人乎哉?」
不欲加諸人 : 論語 公冶長 第11章에 나온다.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惡訐以爲直者 : 論語 陽貨 第24장 下段에 나온다. 曰, 「賜也。亦有惡乎?」 「惡徼以爲知者, 惡不孫以爲勇者, 惡訐以爲直者。」
訐 : 들추어낼 알/거리낌없이 말할 계. 들추어내다. 비방하다. 긴 모양.
國武子 :
齊慶克通于聲孟子. 與婦人蒙衣乘輦, 而入于閎. 鮑牽見之, 以告國武子, 武子召慶克而謂之, 慶克久不出, 而告夫人, 「國子謫我.」 夫人怒, ...... 秋七月壬寅, 刖鮑牽而逐高無咎, 無咎奔莒. <春秋左傳 成公 17年>
어떤 사람이 물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군자는 남을 헐뜯지 않으며, 남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것을 정직한 것으로 삼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대가 논하는 바는 곧다면 곧지만 바로 덕을 손상하는 쓸데없는 말이 아닙니까? 생각한 바를 모두 말해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를 좋아하는 것이 국무자(國武子)가 제나라에서 죽음을 당한 까닭이라는 것을 그대는 듣지 못했습니까?"
내가 대답했다.
"군자가 자리에 앉게 되면 그 관직에 목숨을 거는 것을 생각하고, 자리를 얻지 못하면 문장을 닦아 그의 도를 밝힐 것을 생각합니다. 나는 도를 밝히려고 하는 것이며 내가 바르다고 여겨 남을 헐뜯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무자는 훌륭한 사람(善人)을 얻을 수 없었는데도 어지러운 나라에서 마음대로 직언을 했기 때문에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오직 선인(善人)이라야 직언을 받아들일 수 있다.' 고 하였으니 그가 듣고 잘못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나에게 '양자는 도가 있는 선비라고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그가 도가 있는 선비에는 이를 수 없겠지만 양자가 어찌 선인이 될 수 없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