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雲居士語錄, 白雲居士傳 - 李奎報
白雲居士語錄
李奎報
李叟欲晦名。思有以代其名者曰。古之人以號代名者多矣。有就其所居而號之者。有因其所蓄。或以其所得之實而號之者。若王績之東皐子。杜子美之草堂先生。賀知章之四明狂客。白樂天之香山居士。是則就其所居而號之也。其或陶潛之五柳先生。鄭熏之七松處士。歐陽子之六一居士。皆因其所蓄也。張志和之玄眞子。元結之漫浪叟。則所得之實也。李叟異於是。萍蓬四方。居無所定。寥乎無一物可蓄。缺然無所得之實。三者皆不及古人。其於自號也。何如而可乎。或目以爲草堂先生。予以子美之故。讓而不受。況予之草堂。暫寓也。非居也。隨所寓而號之。其號不亦多乎。平生唯酷好琴酒詩三物。故始自號三酷好先生。然鼓琴未精。作詩未工。飮酒未多而享此號。則世之聞者。其不爲噱然大笑耶。翻然改曰白雲居士。或曰。子將入靑山臥白雲耶。何自號如是。曰非也。白雲。吾所慕也。慕而學之。則雖不得其實。亦庶幾矣。夫雲之爲物也。溶溶焉洩洩焉。不滯於山。不繫於天。飄飄乎東西。形迹無所拘也。變化於頃刻。端倪莫可涯也。油然而舒。君子之出也。斂然而卷。高人之隱也。作雨而蘇旱。仁也。來無所著。去無所戀。通也。色之靑黃赤黑。非雲之正也。惟白無華。雲之常也。德旣如彼。色又如此。若慕而學之。出則澤物。入則虛心。守其白處其常。希希夷夷。入於無何有之鄕。不知雲爲我耶。我爲雲耶。若是則其不幾於古人所得之實耶。或曰。居士之稱何哉。曰。或居山或居家。惟能樂道者而後號之也。予則居家而樂道者也。或曰。審如是。子之言達也。宜可錄。故書之。
[한국고전종합DB <東國李相國集 第20卷>]
이수(李叟 이규보(李圭報))가 이름을 숨기고자 하여 그 이름을 대신할 만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옛날 사람은 호로 이름을 대신한 이가 많았다. 거소로 호를 한 이도 있고, 소유물로 호를 한 이도 있고, 소득의 실상으로 호를 한 이도 있었다.
이를테면, 왕적(王績)의 동고자(東皐子), 두자미(杜子美)의 초당선생(草堂先生), 하지장(賀知章)의 사명광객(四明狂客), 백낙천(白樂天)의 향산거사(香山居士)는 거소로 호를 한 것이며, 도잠(陶潛)의 오류선생(五柳先生), 정훈(鄭熏)의 칠송처사(七松處士), 구양자(歐陽子)의 육일거사(六一居士)는 소유물로, 장지화(張志和)의 현진자(玄眞子), 원결(元結)의 만랑수(漫浪叟)는 소득의 실상으로 호를 한 것이다.
이수는 이와는 다르니, 사방으로 떠돌아다녀서 거소가 일정하지 않고, 한 물건도 소유한 것이 없으며, 소득의 실상도 없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옛날 사람에 미치지 못하니, 그 자호(自號)를 무엇이라 해야 좋겠는가?
어떤 이는 초당선생이라 지목하나, 나는 두자미 때문에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더구나 나의 초당은 잠깐 우거한 곳이요 상주한 데가 아니다. 우거한 곳을 가지고 호를 한다면 그 호가 또한 많지 않겠는가? 평생에 오직 거문고ㆍ술ㆍ시 이 세 가지를 매우 좋아하였으므로 자호를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하였다. 그러나 거문고를 잘 타지도 못하고 시를 잘 짓지도 못하고 술을 많이 마시지도 못하면서 이 호를 가진다면 세상에서 듣는 사람들이 크게 웃지 않겠는가?
그래서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고쳤더니 어떤 자가 물었다.
“자네는 장차 청산에 들어가 백운에 누우려는가? 어찌 자호를 이처럼 하였는가?”
이에 내가 대답했다.
“그런 것이 아닐세. 백운은 내가 사모하는 것일세. 사모하여 이것을 배우면 비록 그 실상을 얻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역시 거기에 가깝게는 될 것이네. 대저 구름이란 물체는 한가히 떠서 산에도 머물지 않고 하늘에도 매이지 않으며 나부껴 동서로 떠다녀 그 형적이 구애받은 바 없네. 경각에 변화하면 그 끝나는 데가 어딘지 알 수 없네. 유연(油然)히 펴지는 것은 곧 군자가 세상에 나가는 기상이요, 염연(斂然)히 걷히는 것은 곧 고인(高人)이 세상을 은둔하는 기상이며, 비를 만들어 가뭄을 구제하는 것은 인(仁)이요, 오면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가면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것은 통(通)이네. 그리고 빛깔이 푸르거나 누르거나 붉거나 검은 것은 구름의 정색이 아니요, 오직 화채(華彩) 없이 흰 것만이 구름의 정상인 것이네. 덕과 빛깔이 저와 같으니, 만일 저를 사모해 배워서 세상에 나가면 만물에 은덕을 입히고, 집에 들어앉으면 허심탄회하여 그 흰 것을 지키고 그 정상에 처하여 무성(無聲)ㆍ무색(無色)하여 무한한 경지에 들어가게 된다면 구름이 나인지, 내가 구름인지 알 수 없을 것이네. 이렇게 되면 고인의 소득의 실상에 가깝지 않겠는가?”
어떤 이가 또 물었다.
“거사라고 칭함은 어떤 경우여야 하는가?”
그래서 대답했다.
“산에 거하거나 집에 거하거나 오직 도(道)를 즐기는 자라야 거사라 칭할 수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집에 거하며 도를 즐기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권했다.
“이와 같음을 알고 보니 자네의 말은 통달한 것일세. 기록해 두어야겠네.”
그래서 이것을 적는다.
白雲居士傳
白雲居士。先生自號也。晦其名顯其號。其所以自號之意。具載先生白雲語錄。家屢空。火食不續。居士自怡怡如也。性放曠無檢。六合爲隘。天地爲窄。嘗以酒自昏。人有邀之者。欣然輒造。徑贊曰。志固在六合之外。天地所不囿。將與氣母遊於無何有乎。
[한국고전종합DB <東國李相國集 第20卷>]
백운거사(白雲居士)는 선생의 자호이니, 그 이름을 숨기고 그 호를 드러낸 것이다. 그가 이렇게 자호하게 된 취지는 선생의 백운어록(白雲語錄)에 자세히 기재되었다.
집에는 자주 식량이 떨어져서 끼니를 잇지 못하였으나 거사는 스스로 유쾌히 지냈다. 성격이 소탈하여 단속할 줄을 모르며, 우주를 좁게 여겼다. 항상 술을 마시고 스스로 혼미하였다. 초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곧 반갑게 나가서 잔뜩 취해가지고 돌아왔으니, 아마도 옛적 도연명(陶淵明)의 무리리라.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시며 이렇게 세월을 보냈다. 이것은 그의 기록이다. 거사는 취하면 시를 읊으며 스스로 전(傳)을 짓고 스스로 찬(贊)을 지었다.
그 찬은 이러하다.
“뜻이 본래 천지의 밖에 있으니, 하늘과 땅도 그를 얽매지 못하리로다. 장차 원기(元氣)의 모체(母體)와 함께 무한한 공허의 세계에 노니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