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古文學/散文, 小說

論走筆事略言 - 李奎報

柳川 2022. 7. 27. 11:04

                                                                                論走筆事略言

 

 

                                                                                                                                                             李奎報

 

夫唱韻走筆者。使人唱其韻而賦之。不容一瞥者也。其始也。但於朋伴間使酒時。狂無所洩。遂託於詩。以激昂其氣。供一時之快笑耳。不可以爲常法。亦不可於尊貴之前所爲也。此法。李湛之淸卿始倡之矣。予少狂, 「自以爲彼何人予何人。而獨未爾耶?」 往往與淸卿賦焉。於是乃始之。然若予者。性本燥急。移之於走筆。又必於昏醉中乃作。故凡不慮善惡。唯以拙速爲貴。非特亂書而已。皆去傍邊點畫。不具字體。若其時不有人隨所下輒問別書于旁。則雖吾亦莽莽不復識也。其格亦於平時所著。降級倍百。然後爲之。不足以章句體裁觀之。實詩家之罪人也。初不意區區此戲之聞于世矣。乃反爲公卿貴戚所及聞知。無不邀飮。勸令爲之。則有或不得已而賦之者。然漸類倡優雜戲之伎。或觀之者如堵墻。尤可笑已。方欲罷不復爲。而復爲今相國崔公所大咨賞。則後進之走筆者。紛紛踵出矣。但此事初若可觀。後則無用。且失其詩體。若寢成風俗。烏知後世有以予爲口實者耶。其醉中所作。多棄去不復記云。       

                                                                                      [한국고전종합DB <東國李相國集 第22卷>]

 

 

 

대저 창운주필(唱韻走筆)이란 것은, 사람을 시켜서 운자를 부르게 하고는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시를 지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당초에는 친구들 사이에 술이 취하였을 때에 광흥(狂興)을 풀 길이 없어, 드디어 시에 의탁하여 그 기백을 격앙하여 한때의 쾌소(快笑)를 제공하는 것으로 쓰였을 뿐이니, 상법(常法)으로 삼을 수도 없는 것이며, 또한 존귀한 사람 앞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법은 이담지 청경(李湛之淸卿)이 처음 만들어낸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 스스로 생각했다.

"저는 과연 어떠한 사람이고 나는 과연 어떠한 사람인데, 나만이 그런 것을 하지 못하겠는가?"

그래서 가끔 청경(淸卿)과 함께 지었으니, 이때부터 이것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은 성품이 본시 조급하므로 그것을 그대로 주필에 옮기게 되고 따라서 반드시 혼취(昏醉) 중에 짓게 되므로 잘되고 못되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오직 빨리 지어내는 것만으로 최상을 삼았다. 그러므로 난서(亂書)일 뿐만 아니라, 모두 글자 획을 약해서 자체(字體)가 갖추어지지 않으니, 만일 그 당시에 옆에 사람이 있어서, 써내려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때그때 물어서 글자 옆에다 별도로 적어 놓지 않는다면, 나 자신도 역시 잘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격으로 보아도 역시 평시에 저작한 것에 비해 백배나 급이 떨어진 상황에서 짓게 되는 셈이므로 족히 장구(章句)나 체재(體裁)를 따져서 볼 것이 못되니, 실은 시가(詩家)의 죄인이다.

처음에는 구구한 이런 짓을 세상에 알리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 도리어 공경(公卿)ㆍ귀척(貴戚)들에게 알려진 바가 되어, 그들이 모두 나를 맞이하여 술자리를 베풀고 지어보기를 권하면 간혹 부득이할 경우에는 짓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창우(倡優)의 유희하는 잡기와 같이 되어서, 간혹 구경꾼들이 담처럼 둘러서기도 하였으니, 더욱 가소로운 일이었다.

 

그것을 그만두고 다시는 하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이제 다시 상국(相國) 최공(崔公)이 찬미하게 되자, 후진 중에서 주필(走筆)을 하는 자가 잇달아 나왔다.

이 일이 처음에는 꽤 볼 만한 듯하지만 뒤에는 쓸데가 없다. 더구나 시체(詩體)를 잃은 것이니, 만일 그것이 점점 풍속화된다면 후세에 나를 구실로 삼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취중에 지은 것이므로 많이 버리고 기록하지 않는다.

 

 

相國 崔公 : 진강공(晉康公) 최충헌(崔忠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