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風
宛丘
子之湯兮,宛丘之上兮, 그 사람 방탕하여 완구 위에서 노네.
洵有情兮,而無望兮。 참으로 뜻이 있겠지만 우러러보지는 않는다네.
坎其擊鼓,宛丘之下。 북을 치며 완구 아래에서 노네.
無冬無夏,值其鷺羽。 겨울도 여름도 없네. 해오라기 깃 꽂았네.
坎其擊缶,宛丘之道。 질장구 치며 완구의 길에서 노네.
無冬無夏,值其鷺翿。 겨울도 여름도 없이 해오라기 깃 꽂았네.
[註]
陳一之十二
陳 國名, 大皥伏羲氏之墟, 在禹貢豫州之東. 其地廣平, 無明山大川, 西望外方, 東不及孟諸. 周武王時 帝舜之冑 有虞閼父爲周陶正, 武王賴
其利器用, 與其神明之後, 以元女大姬, 妻其子滿而封之于陳, 都於宛丘之側, 與黃帝帝堯之後, 共爲三恪, 是爲胡公. 大姬婦人尊貴, 好樂巫
覡歌舞之事, 其民化之, 今之陳州卽其地也.
覡 : 박수 격. 박수. 남자무당.
진은 나라 이름이니 태호 복희씨의 유허이니 (『서경』) 우공편에 예주의 동쪽에 있느니라. 기 땅이 넓고 평평하여 명산대천이 없어 서쪽
으로는 외방(먼 지방)을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맹제까지는 이르지 못하니라. 주 무왕의 때에 순임금의 종손인 우알보가 있어서 주나라의
도정이 되더니 무왕이 그 이기(이로운 그릇, 쓰기 좋게 만든 그릇) 쓰는 것에 힘입고 더불어 그 신명의 후손이라 하면서, 큰 딸인 대희로
써 그 아들 만에게 시집보내고 진나라에 봉하고, 완구의 곁에 도읍하게 하여 황제씨와 요임금 후손들과 더불어 한가지로 삼각으로 삼았
으니 이것이 호공이라. 대희부인이 존귀하면서도 음악과 무격과 가무의 일을 좋아하니까 그 백성들도 동화되니 지금의 진주가 곧 그 땅
이라.
[참고] 三恪
『禮記』 樂記편에 “무왕이 은나라를 이기고 도읍지인 상땅에 이르러(反商=及商) 마차에서 내리기 전에 황제의 후손을 계땅에 봉하고,
요임금의 후손을 축땅에 봉하고, 순임금의 후손을 진땅에 봉하고 나서야 마차에서 내려 하후씨의 후손을 기땅에 봉하고, 은나라의 후손
(微子)을 송 땅으로 이주시키고, 왕자 비간의 무덤을 봉분하고, 갇혔던 기자를 풀어주고, 상용에게 가서 그 지위를 회복시켰다." 했다. 곧
위에서 말하는 三恪의 나라는 薊와 祝과 陳을 말한다.
武王 克殷反商, 未及下車而封黃帝之後於薊, 封帝堯之後於祝, 封帝舜之後於陳, 下車而封夏后氏之後於杞, 投殷之後於宋, 封王子比干之墓,
釋箕子之囚, 使之行商容而復其位.
子之湯兮,宛丘之上兮,洵有情兮,而無望兮。
자지탕혜, 완구지상혜, 순유정혜, 이무망혜。
그대의 방탕함이여! 완구의 위로다. 진실로 정이 있으나 우러러볼 수 없도다.
○賦也. 子 指遊蕩之人也. 湯 蕩也. 四方 高, 中央 下曰宛丘. 洵 信也. 望 人所瞻望也.
○國人 見此人 常遊蕩於宛丘之上. 故叙其事以刺之. 言雖信有情思而可樂矣. 然 無威儀可瞻望也.
○부라. 자는 방탕한 사람을 가리킴이라. 탕은 방탕함이라. 사방이 높고 가운데가 낮은 것을 완구라 하니라. 순은 진실로라. 망은 사람이
우러러보는 바라.
○국인이 이 사람이 항상 완구위에서 놀고 방탕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그 일을 서술하여서 써 비난함이라. 비록 진실로 정과 생
각이 있어 가히 즐거워하나 그러나 위의를 가히 우러러볼 것이 없음이라.
坎其擊鼓,宛丘之下。無冬無夏,值其鷺羽。
감기격고, 완구지하。 무동무하, 치기노우。
둥둥 그 북을 침이여! 완구의 아래로다. 겨울도 없고 여름도 없이 해오라기 깃을 꽂았도다.
○賦也. 坎 擊鼓聲. 値 植也. 鷺 舂鉏. 今鷺鷥, 好而潔白, 頭上 有長毛十數枚. 羽 以其羽, 爲翳, 舞者, 持以指麾也. 言無時不出遊而鼓舞於
是也.
○부라. 감은 북치는 소리라. 치는 꽂음이라. 노는 용저니 지금은 노사니 좋게 생겼고 하얘며 머리 위에 긴 털 열 두어 개가 있느니라. 우
는 그 깃으로써 일산을 삼았으니 춤추는 자가 손에 쥐고서 써 흔드는 것이라. 때로 나가 놀지 않음이 없고 이에 북치며 춤춤을 말함이라.
植 : 심을 식, 여기서는 ‘둘 치, 꽂을 치’ 鉏 : 호미 저(서) 鷥 : 해오라기 사
坎其擊缶,宛丘之道。無冬無夏,值其鷺翿。
○賦也. 缶 瓦器, 可以節樂. 翿 翳也.
○부라. 부는 질그릇이니, 가히 써 음악의 가락을 맞추는 것이라. 도는 일산이라.
宛丘三章章四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