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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歷史와文學/史記列傳

史記 卷七一. 樗里子列傳 [甘茂]

by 柳川 2019. 6. 2.

                                子列傳[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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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무()는 하채() 사람이다. 하채의 사거() 선생 모시고 백가()의 학술을 배웠다. 장의, 저리자를 통해 진 혜왕을 만나고자했다. 왕이 그를 보고 기뻐해 장수로 삼고는 위장()을 도와 한중()의 땅을 공략하여 평정하게 했다.

혜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했다. 장의와 위장은 (진나라를) 떠나 동쪽 위()나라로 갔다. 촉후() 휘(), 재상 진장()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나라는 감무에게 촉나라를 평정하게 했다. (감무가) 돌아오자 감무를 좌승상, 저리자를 우승상으로 삼았다.

진 무왕 3년에 (무왕은) 감무에게 “과인이 수레를 타고 삼천()을 지나 주나라의 형세를 엿볼 수 있다면, 과인은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오.”라고 했다.

감무는 “위()나라로 가서 한()나라를 토벌하는 약속을 받아올 테니 상수()에게 함께 가도록 명령하십시오.”라고 했다. 감무가 (위나라에) 도착하여 상수에게 “그대는 돌아가서 왕에게 ‘위나라가 신의 말을 듣기로 했으나, 왕께서는 (한나라를) 치지 마시길 바랍니다.’라고 말씀드리시오. 일이 성사되면 모두 그대의 공이오.”라고 했다.

상수가 돌아와 왕에게 보고했고, 왕은 식양()에서 감무를 맞이했다. 감무가 도착하자 왕은 그 까닭을 물었다, 감무는 “의양()은 큰 현이고, 상당()과 남양()은 식량을 비축해온 지 오랩니다. 이름이 현이지 실제로는 군입니다. 지금 왕께서 여러 험한 곳을 지나 천리 길을 가서 공격하신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옛날 증삼()이 비읍()에 살 때 증삼과 이름이 같은 노나라 사람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누군가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습니다만 증삼의 어머니는 태연자약 베를 짰습니다. 얼마 뒤 또 한 사람이 ‘증삼이 사람을 죽였답니다.’라고 일렀습니다만 증삼의 어머니는 여전히 또 한 사람이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이르자 증삼의 어머니는 베틀을 내던지고 담을 넘어 달아났습니다. 증삼의 어짊과 그 어머니의 믿음이 있었지만 세 사람이 의심하자 증삼의 어머니도 겁을 먹었습니다.

지금 신의 어짊은 증삼만 못하고, 왕의 신에 대한 믿음 또한 증삼 어머니의 증삼에 대한 믿음만 못하며, 신을 의심하는 자들 또한 세 사람 뿐만 아닐 것이니 신은 대왕께서 베틀을 내던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당초 장의는 서쪽으로 파(), 촉()의 땅을 아우르고, 북쪽으로 서하(西) 밖의 땅을 개척하고, 남쪽으로 상용()을 취했지만 천하는 장의를 많이 칭찬하기보다는 선왕을 영명하다고 칭찬했습니다.

위() 문후()는 악양()을 장수로 삼아, 중산()을 공격하게 하여 3년 만에 멸망시켰습니다. 악양이 돌아와 공을 논하는데, 문후는 악양에게 비방서 한상자를 보여주었습니다. 악양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이는 신의 공이 아니라 주군의 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신은 떠돌이 객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리자, 공손석() 두 사람이 한()나라를 끼고 논의하면 왕께서는 틀림없이 그 말을 들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왕은 위왕을 속이고 신은 공중치()의 원망을 사게 됩니다.”

왕은 “과인은 그 말을 듣지 않을 것이며 그대와 맹서하겠소.”라 하고는 마침내 승상 감무에게 병사를 거느리고 의양을 토벌하게 했다. 다섯 달이 지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자 저리자와 공손석이 과연 이를 트집 잡았다. 무왕이 감무를 불러들이고 군대를 철수시키려 했다. 감무는 “식양()이 저기 있습니다.”라고 했다. 왕은 “그런 일이 있었지.”라며 “병사를 크게 일으켜 감무에게 공격하게 하여 6만 명의 목을 베고, 마침내 의양을 멸망시켰다. 한나라의 양왕은 공중치를 시켜 사죄하게 하고 진나라와 화평했다.

무왕이 결국 주나라에 이르렀고, 주나라에서 죽었다. 그 동생이 즉위하니, 이가 소왕()이다. 소왕의 어머니는 선태후()로 초나라의 여자다.

초 회왕()은 전에 진나라가 단양()에서 초나라를 패배시켰을 때 한나라가 구하지 않은 것에 원한을 품고 바로 군대로 한나라의 옹지()를 포위했다. 한나라는 공중치를 시켜 진나라에 급히 알렸다. 진 소왕이 새로 즉위하고 태후가 초나라 사람인지라 구원하려 하지 않았다. 공중치는 감무를 찾았고, 감무는 위나라를 위하여 진 소왕에게 “공중치가 지금 진나라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초나라에 감히 맞서려는 것입니다. 지금 옹지가 포위당해 있는데 진나라는 군사를 내어 효산을 나서려 하지 않으면 공중치는 머리를 치켜들고 조회하지 않을 것이며, (한나라의) 공숙은 나라를 들고 남으로 초나라와 연합할 것입니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하나가 되면 위나라는 감히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진나라를 토벌하자는 형세가 만들어집니다. 모르고 앉아서 공격을 기다리는 것과 상대를 치는 것 중 어느 쪽이 유리하겠습니까?”라고 했다. 진왕은 “좋습니다.”라 하고는 바로 군대에게 효산을 나와 한나라를 구하게 하니 초나라의 군대는 철수했다.

진나라는 상수()에게 의양을 평정케 하고, 저리자와 감무에게 위()나라의 피지()를 치게 했다. 상수는 선 태후의 외가 사람으로 소왕과 어려서 함께 자랐기 때문에 임용되었다. 상수가 초나라로 가자 초나라는 진나라가 상수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듣고는 상수를 후하게 모셨다.

상수는 진나라를 위해 의양을 지키면서 한나라를 토벌하려 했다. 한나라의 공중치는 소대()를 시켜 상수에게 “금수도 곤경에 처하면 수레를 엎습니다. 공이 한나라를 깨고 공중치를 욕보여 공중치는 나라를 수습하여 다시 진나라를 섬겼는데, 당시 (공은) 스스로 틀림없이 땅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공은 초나라에게 해구()의 땅을 주고 (초나라의) 소영윤()을 두양()에 봉했습니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연합하여 다시 한나라를 공격하면 한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나라가 망하면 공중치는 몸소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진나라에 맞설 것입니다. 원컨대 공께서는 심사숙고하십시오.”

상수는 “내가 진나라와 초나라를 연합시키려는 것은 한나라에 대한 것이 아니니 그대는 상수를 위해 공중치에게 ‘진나라와 한나라는 연합할 수 있다.’고 전해주시오.”라고 했다.

소대는 이렇게 대답했다. “공께 한 말씀 아뢰길 원합니다. 사람들은 ‘귀하게 된 까닭을 아는 사람이 귀해진다’고 말합니다. 왕께서 공을 아끼시지만 공손석을 아끼는 것만 못하고, 지혜와 능력에 대해서는 감무에 대한 것만 못합니다. 지금 그 두 사람이 모두 진나라의 일에 간여하지 못하고 공 혼자만 왕과 함께 나라를 독단하는 것은 왜입니까? 저들에게 과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손석은 한나라의 편을 들고, 감무는 위나라를 편들었기 때문에, 진왕이 믿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가 힘을 다투는데 공께서 초나라의 편을 든다면 이는 공손석, 감무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인데 그들과 공이 뭐가 다릅니까? 사람들은 모두 초나라가 잘 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공은 구지 그런 일이 없다고 하시니, 이는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것입니다. 공께서는 왕과 초나라의 변심에 대해 모의하고, 한나라와 잘 지내 초나라에 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한나라는 틀림없이 먼저 나라를 들어 공손석을 따른 다음 감무에게 나라를 맡길 것입니다. 한나라는 공의 원수입니다. 지금 공이 한나라와 잘 지내며 초나라에 대비하자고 하시면, 이것이 바로 ‘외부에서 인재를 기용하되 원수라도 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수는 “옳소, 내가 정말 한나라와 연합하고 싶소!”라고 했다.

소대는 “감무는 공중치에게 무수()를 (한나라에) 돌려주고 의양의 백성들을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으니 지금 공께서 그저 얻겠다는 것은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했다. 상수가 “그렇다면 어찌하면 되겠소? 무수는 끝내 얻을 수 없는 것 아니오?”라고 했다. 소대는 “공께서는 어째서 진나라를 내세워 한나라를 대신하여 초나라에게 영천()을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곳은 한나라의 땅이었습니다. 공이 요구해서 그 땅을 얻으면 초나라에서 그것이 이루어지고, 그 땅으로 한나라에 덕을 베풀게 되는 것입니다. 공이 요구해서 얻지 못하면 한나라와 초나라의 원한이 풀리지 않아 서로 진나라에게로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진나라와 초나라가 힘을 다툴 때 공은 서서히 초나라에게 잘못을 넘기면서 한나라를 거두어들이면 되는데 이는 진나라에게도 유리합니다.”

상수가 “어째서 그렇소?”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감무는 위나라를 이용하여 제나라를 취하려 하고, 공손석은 한나라를 이용하여 제나라를 취하려 합니다. 지금 공께서는 의양을 취하는 공을 세워 초나라와 한나라를 거두어 안정시켰으며 다시 제나라와 위나라의 잘못을 나무랐습니다. 이로써 공손석과 감무가 할 일은 없어졌습니다.”

감무는 끝내 진 소왕을 설득하여 무수를 다시 한나라에 돌려주었다. 상수와 공손석이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상수와 공손석은 이 때문에 감무에게 원한을 품고 감무를 헐뜯었고, 감무는 겁이 나서 위나라의 피지(포판; )을 토벌하려는 일을 그만두고 도망쳤다. 저리자는 위나라와 강화했고, (양국) 군대는 철수했다.

감무는 진나라에서 도망쳐 제나라로 달아나가다 소대를 만났다. 소대는 제나라를 위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던 길이었다. 감무가 말했다.

“신은 진나라에 죄를 짓고 두려워 도망쳐서 몸을 맡길 곳이 없습니다. 신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난한집 여자와 부잣집 여자가 함께 옷감을 짜는데 가난한 집 여자가 ‘나는 초를 살 수 없지만 당신 촛불의 남는 빛을 내게 나눠주면 그대의 빛을 덜지 않고도 한 사람이 그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답니다. 지금 신은 곤경에 처했고, 그대는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길입니다. 원하옵건대 이 감무의 아내가 그곳에 있으니 그대의 남은 빛을 저의 아내에게 비춰주십시오.”

소대는 허락했다. 마침내 진나라에 도착하여 일을 마치고 틈을 타서 진왕에게 “감무는 보통 인재가 아닙니다. 진나라에 있을 때 여러 대에 걸쳐 중용되었고, 효산에서 귀곡()에 이르기까지 그 지형의 험준함이나 평탄함 등에 훤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가 제나라로 하여금 한나라, 위나라와 맹약하게 도리어 진나라를 도모한다면 진나라에 유리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유세했다.

진왕이 “그럼 어찌 하면 되겠소?”라고 하자 소대는 “왕께서는 후한 예물을 보내고 많은 녹봉으로 맞아들여 그를 귀곡에 가두어 평생 나오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진왕이 “좋소.”라 하고는 바로 상경 벼슬을 내리는 한편 재상의 도장으로 그를 제나라에서 맞아들이려 했다. 감무는 가지 않았다.

소대가 제 민왕()에게 “저 감무는 유능한 사람입니다. 지금 진나라가 상경 벼슬을 내리고 재상의 도장으로 그를 맞이하려 했습니다. 감무는 왕의 은덕을 입어 왕을 위해 기꺼이 신하가 되려 하기 때문에 사양하고 가지 않은 것입니다. 왕께서는 어찌 그를 예우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했다. 제왕이 “좋소이다.”라 하고는 바로 그에게 상경의 자리를 주어 정착시켰다. 그러자 진나라는 감무의 집에 대해 세금을 면제하는 등 제나라와 같은 대우를 해주었다.

제나라가 감무를 초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초 회왕()은 막 진나라와 혼인하여 관계가 좋았다. 진나라는 감무가 초나라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초왕에게 “감무를 진나라로 보내길 원합니다.”라 했다. 초왕이 범연()에게 “과인이 진나라에 상을 추천하려는데 누가 좋겠소?”라고 묻자 “신이 그 일을 알기에는 부족합니다.”라고 했다.

초왕이 “과인이 감무를 재상으로 추천하고자 하는데 괜찮겠소?”라고 묻자 “안 됩니다. (그의 스승) 사거()는 하채의 문지기로서 크게는 왕을 섬기지 않았고 작게는 집안을 돌보지 않으면서 비천하고 청렴치 못한 명성만 세간에 남겼습니다. 그런데도 감무는 그를 섬기면서 따랐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혜왕의 현명함, 무왕의 세심함, 장의의 언변에도 불구하고 감무가 그들을 섬기면서 열 번이나 벼슬을 했지만 한 번도 죄를 얻지 않았던 것입니다. 감무는 정말 유능한 자이지만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나라가 유능한 재상을 갖게 되면 초나라에 불리합니다. 그리고 왕께서는 전에 월()나라가 소활()을 기용하게 하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안에서 장의()의 반란을 불러 일으켜 월나라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에 초나라는 남쪽으로 여문()을 막고 (월나라의) 강동()을 (초나라의) 군으로 편입시켰습니다. 왕께서 그런 공을 세운 까닭을 따져보면 월나라는 혼란에 빠졌고 초나라는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왕께서는 이런 계책을 월나라에는 써놓고 진나라에게 쓰는 것은 잊고 계시니 신은 왕께서 크게 잘못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왕께서 만약 진나라에 재상을 추천하고자 한다면 상수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상수는 진왕과 가깝습니다. 어릴 때는 옷을 함께 입었고, 커서는 수레를 함께 타고 다니면서 일을 상의했습니다. 왕께서는 상수를 진나라의 재상으로 추천하셔야만 초나라에 유리합니다.”라고 했다.

이에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상수를 진나라의 상으로 추천했다. 진나라가 마침내 상수를 상으로 삼으니, 감무는 결국 진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위나라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