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子의 讀大學法
다음 글은 『대학』을 읽을 때 유념해야 할 부분에 대해 주자가 말씀한 내용을 수록한 것으로 대산 김석진 선
생의 『대산대학강의』(한길사, 2000년)에서 발췌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는 二程子(정명도, 정이천)의
학설을 존숭하고 『대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이것이 유학의 핵심 경전이 되는 데 반석같은 역할을 하
였다. 주자는 끊임없이 『대학』에 수정을 가하여 주석서인『대학장구』와 의심나는 구절과 선유의 제 학설을
대비하여 문답식으로 풀이한 『대학혹문』을 지었다. 작고하기 사흘 전 병든 몸으로 『대학』의 성의장을 개정
주해하고 세상을 떠날 정도로 주자는 여기에다 혼신을 기울였다고 한다. - 家苑 註
朱子曰 語孟隨事問答, 難見要領, 惟大學 是曾子述孔子說古人爲學之大方, 而門人 又傳述以明其旨。前
後相因 體統都具, 翫味次序, 知得古人爲學所向, 却讀語孟, 便易入, 後面工夫雖多, 而大體已立矣。
翫(玩) : 희롱할 완. 희롱하다. 장난하다. 가지고 놀다. 깔보다. 탐하다. 구경하다. 욕심내다. 익히다.
주자가 말하기를, 『논어』와 『맹자』는 일에 따라 문답한 것이니 그 요령을 보기 어려우나, 오직 『대학』은
증자가 공자께서 옛 사람이 학문을 한 큰 방법을 말한 것을 기술한 것이요. 또 증자의 문인이 전술하여 그 요지
를 설명하신 것이다. 앞뒤가 서로 인하고 체통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므로 이 글을 완미(翫味 : 구경하고 맛봄)
하고 옛 사람이 학문할 때의 방향을 알아 『논어』와 『맹자』를 읽으면 쉽게 들어가게 되니, 뒤의 공부가 비록
많기는 하나 큰 체는 이미 서게 될 것이다.
看這一書. 又自與看語孟不同, 語孟中 只一項事 是一箇道理。如孟子說仁義處, 只就仁義上說道理, 孔子
答顔淵以克己復禮, 只就克己復禮上說道理. 若大學 却只統說, 論其功用之極, 至於平天下。然天下所以平
却先須治國, 國之所以治 却先須齊家, 家之所以齊 却先須修身, 身之所以修 却先須正心, 心之所以正 却先
須誠意, 意之所以誠, 却先須致知, 知之所以至 却先須格物。
功用 : (기본의미) 무슨 일을 하여 생기는 좋은 결과. 기능, 용도, 효용.
『대학』을 보는 것이 『논어』와 『맹자』를 보는 것과는 같지 않으니, 『논어』『맹자』 중에는 한 가지 일에
이 한 가지 도리일 뿐이다. 예를 들어 맹자가 인의(仁義)를 설명한 곳에는 다만 인의상에 나아가 도리를 설명했
을 뿐이고 공자가 안연(顔淵)에게 극기복례로써 답을 하신 데에는 그 극기복례에 나아가 도리를 설명했을 뿐이
나,『대학』은 이 모두를 통합해서 설명했으니 그 공용(功用)의 지극함을 논하자면 평천하에 이른다.그러나 천
하가 평치(平治)되려면 먼저 치국(治國)을 해야 하고 나라를 다스리려면 제가(齊家)를 해야 하고, 집안을 가지
런히 하려면 수신(修身)을 해야 하고, 몸을 닦으려면 정심(正心)을 해야 하고, 마음을 바로하려면 성의(誠意)를
해야 하고, 뜻을 성실히 하려면 먼저 치지(致知)를 해야 하고, 앎에 이르려면 격물(格物)을 해야 한다.
大學 是爲學綱目, 先讀大學 立定綱領, 他書 皆雜說在裏許。通得大學了 去看他經, 方見得此是格物致知
事, 此是誠意正心事, 此是修身事, 此是齊家治國平天下事。
『대학』은 학문을 하는 강목(綱目)이 되니, 먼저 『대학』을 읽고 강령(綱領)을 세워서 정하면 다른 글들은 다
섞인 말들로 그 속에 들어 있다. 『대학』을 통득(通得)하고 다른 글을 봐야 비로소 이 격물 치지의 일이며, 이
성의 정심의 일이며, 이 수신의 일이며, 이 제가 치국 평천하의 일을 보게 될 것이다.
今且熟讀大學作間架, 却以他書塡補去。大學是通言學之初終, 中庸是指本原極致處。問欲專看一書, 以
何爲先? 曰先讀大學, 可見古人爲學首末次第, 不比他書。他書非一時所言, 非一人所記。又曰看大學 固
是着逐句看去, 也須先通讀傳文敎熟, 方好從頭仔細看, 若專不識傳文大意, 便看前頭 亦難。
間架 : (기본의미) 집의 칸살의 얽이.. 글의 짜임새. 間架結句(점과 획의 간격을 조형적으로 알맞게 하는 것)
着 : 조사 (동작을 나타내는 말에 붙임: 진행형, 상태)
이제 또 『대학』을 숙독해서 공간을 만들어놓고 다른 글로 메워 보충해 나아가라. 『대학』은 이 학문의 처음
과 마침을 통틀어 말한 것이고, 『중용』은 본원의 극치처를 가리킨 것이다. 묻기를, 한 가지 책을 전문적으로
보고자 하는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말씀하시기를, 먼저 『대학』을 읽으면 옛 사람이 학문을 하는 수말
(首末 : 시작과 끝)과 차례를 볼 수 있으니, 다른 책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다른 글은 한때에 말한 바가 아니며
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대학』을 볼 때 진실로 글귀를 따라 보아가야 하나 모름지
기 먼저 전문을 통독하고 가르침에 익숙해져야 비로소 처음부터 자세히 보기가 좋으니, 만약 전문(傳文)의 큰
뜻을 알지 못하면 앞 부분을 보는 데도 어렵다.
又曰嘗欲作一說敎人, 只將大學 一日 去讀一遍, 看他如何是大人之學, 如何是小學, 如何是明明德, 如何
是新民, 如何是止於至善. 日日如是讀, 月來日去 自見所謂溫故而知新。須是知新, 日日看得新, 方得却不
是道理解新, 但自家這箇意思長長地新。
方得 : ~ 하고 나서야 비로소 ~ 할 수 있다.
必须熟练地掌握技术方得随心应手. 기술을 숙련되게 익히고 나서야 비로소 뜻대로 할 수가 있다.
地 : 바탕, 어조사, 무의미한 조사(忽地 : 별안간, 갑자기, 문득). 다만.
(中)단어나 ‘词组’가 ‘状语’(상황어)로 쓰여, 동사·형용사를 수식할 경우에 쓰이며, 그 밖의 경우에는 ‘的’를 쓰고, 특히 ‘状语’인 형용사
앞에 정도를 나타내는 부사가 있을 때는 일반적으로 꼭 ‘地’를 씀. 長長地 : 자라나서, 꾸준히, 끊임없이. 自在地 : 자유롭게.
또 말씀하였다. 내 일찍이 한 말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니, 다만 『대학』을 가지고 하루에 한 번씩 읽어
나가서 어느 것이 대인의 학문이며, 어느 것이 소학이며, 어느 것이 명명덕이며, 어느 것이 신민이며, 어느 것이
지어지선인가 하는 것을 보아 날마다 이같이 읽어 나가면, 세월이 흘러감에 스스로 이른바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 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앎)함을 보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이 새로움을 알게 되면 계속해서 보아 다시 또 새로운 것을 얻게 될 것이니, 이도리가 저절로 풀려서
새롭게 됨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의사가 자라나서 새롭게 되는 것이다.
讀大學 初間也只如此讀, 後來也只如此讀, 只是初間讀得 似不與自家相關, 後來看熟, 見許多說話 須看如
此做, 不如此做 自不得。讀書不可貪多, 當且以大學 爲先, 逐段熟讀精思, 須令了了分明, 方可改讀後段,
看第二段 却思量前段, 令文意連續, 却不妨。
了了 : 확실(분명)히 알다. 영리하다. 현명하다. 완료하다. 끝을 맺다.
『대학』을 읽는 처음에 이와 같이 읽고 뒤에도 이와 같이 읽어 처음 읽은 것이 자신과 서로 관계치 않더라도,
뒤에 올수록 숙독해 나아가면 많은 설명이 모름지기 와 닿아서 이와같이 공부가 됨을 볼 것이니 이같이 공부해
나아가지 않으면 스스로 얻지 못할 것이다. 독서는 많은 것을 탐해서는 안 되니, 마땅히 『대학』으로 먼저 하
여 한 단락 한 단락을 따라 숙독하여 정미롭게 생각하고 모름지기 분명하게 해놓고서야, 바야흐로 뒤의 단락을
바꾸어 읽어야 하니, 제이단(第二段)을 보는 데에 앞의 단락을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해서 글의 뜻과 연
결시키면 해롭지 않으리라.
問大學稍通 方要讀論語? 曰且未可, 大學稍通, 正好着心精讀. 前日讀時見得前 未見得後面, 見得後未見
得前面, 今識得大綱體統, 正好熟看 讀此書功深, 則用博。
昔尹和靖見伊川半年 方得大學西銘看, 今人半年 要讀多少書. 某此要人讀此是如何? 緣此書却不多而規
模周備. 凡讀書初一項 須看十分工夫了, 第二項 只費得八九分工夫, 第三項 便只費得六七分工夫, 少間讀
漸多 自通貫, 他書 自著不得多工夫。
묻기를, 『대학』을 조금 통함에 바야흐로 『논어』를 읽으려고 합니다만. 이르기를, 가하지 않으니, 『대학』
을 조금 통했으면 마음을 붙여 정독함이 좋다. 전일에 읽을 때에는 앞만 알고 뒤를 보지 못했거나 뒤만 보고
앞을 보지 못하더니, 이제 대강과 체통을 알았으니 정히 숙독함을 좋아해서 이 글을 읽는 공이 깊어지면 씀이
넓어질 것이다.
옛적 윤화정(尹和靖, 1071~1142, 이름은 淳, 字는 彦明, 정자의 학문을 이어 敬을 함양하려면 '其心收斂 不容
一物'이어야 한다고 제시))은 이천(伊川)에게 배운 반년에야 비로소 『대학』과 『서명(西銘)』을 보더니 지금
사람은 많은 글을 읽기를 요하는구나! 내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면 이 글
이 양이 많지 않고 규모가 두루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무릇 글을 읽는 것은 처음 한 줄에 십 푼 공부를 부치면
다음 둘째 줄에서는 팔구 푼 공부를 소비하고 그 다음 줄에는 육칠 푼 공부만 소비하면 되니, 얼마 동안을 점점
많이 읽어 나가면 스스로 관통할 것이니 다른 글은 많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 西銘
張橫渠가 書齋 서쪽벽에 붙인 글로 윤화정이 '서명'을 논하고 주자가 해설을 붙이면서 널리 알려짐.
○ 장재(張載 1020~1077) : 북송(北宋) 성리학자, 명은 정완(訂頑), 자는 자후(子厚)다. 횡거진(橫渠鎭) 출신으로 횡거
선생이라고도 한다. 이 西銘은 그의 기(氣) 중심의 철학을 요약 정리해서 보여주는 명문으로 꼽히는 문장이다.
이것은 본래 『정몽 正蒙』,「건칭 乾稱」편의 한 대목인데, 원래 이름은 정완(訂頑-완고한 사람을 바로잡아 준
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정이(程頥)가 「서명」이라고 이름을 고친 것이다. 이황(李滉)의 성학십도(聖學十圖)의
제 2도가 바로 이 西銘을 소개한 西銘圖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乾稱父 坤稱母. 予茲藐焉乃混然中處. 故天地之塞 吾其體, 天地之帥 吾其性, 民吾同胞, 物吾與也. 大君者 吾父
母宗子, 其大臣 宗子之家相也. 尊高年所以長其長, 慈孤弱 所以幼其幼. 聖其合德, 賢其秀也. 凡天下疲癃殘疾煢
獨鰥寡 皆吾兄弟之顚連而無告者也. 于時保之 子之翼也, 樂且不憂 純乎孝者也, 違曰悖德, 害仁曰賊. 濟惡者 不
才, 其踐形 唯肖者也. 知化則善述其事, 窮神則善繼其志. 不愧屋漏 爲無忝, 存心養性 爲匪懈. 惡旨酒 崇伯子之
顧養, 育英才 穎封人之賜類. 不弛勞而底豫 舜其功也, 無所逃而待烹 申生其恭也, 體其受而歸全者 參乎, 勇于從
而順令者 伯奇也. 富貴福澤 將厚吾之生也, 貧賤憂戚 庸玉汝于成也, 存吾順事沒吾寧也.
藐 : 멀묘/아득할 막/지치모. 멀다. 작다. 어둡다. 희미하다. 가벼이 보다. 업신여기다. 약하다. 예쁘다. 아름답다.
[막] 아득하다. 넓다. 조금. 사물의 모양, 상태. 지치(지칫과의 여러해살이 풀)
癃 : 느른할 륭. 느른하다.(몸이 쇠하여 폐인이 됨) 위독하다. 늙다. 곱사등이.
顚連 : 몹시 가난하여 어찌할 수가 없다. 形 : 이치, 모범. 肖 : 좋다. 선함.
穎封人 : 春秋戰國時代 鄭 나라의 효자ㆍ무신. 潁考叔. 鄭 莊公에게 받은 고기를 먹지 않고 모친에게 드림으로써 효도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으며, 鄭伯 무호기(蝥弧旗)를 들고 적군의 성벽에 먼저 올라가는 용맹을 보여줌.
底 : 밑 저/이를 지(저). 豫 : 미리 예/펼 서. 즐기다. 기뻐함. 底豫 : 瞽瞍底豫(고수가 기뻐함) 瞽瞍는 순임금의 父.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땅을 어머니라 부른다. 내 작은 몸은 천지 가운데에 섞여 존재하도다. 그러므로 천지 가득한 기운이 내
몸을 이루고, 천지를 주재하는 이치가 바로 내 본성을 이룬다. 백성은 나와 태가 같은 동포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존재하는 동
류(同類)다.
위대한 임금은 내 부모(天地)의 장자(長子)이고, 그 대신은 장자(長子)의 가신(家臣)이다. 연장자를 존대하는 것은 장로(長老)를
내 어른처럼 모심이고, 고아나 약자에 자비로움은 내 아이처럼 사랑하는 바다. 성인(聖人)은 그 덕이 천지의 덕과 부합하는 사
람이고, 현인(賢人)은 그 덕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다. 천하의 무릇 피륭(기운이 쇠약하여 생기는 노인의 병), 잔질
(殘疾 : 불구자), 경독(惸獨 : 의지할 곳 없는 사람), 환과(鰥寡 : 홀아비와 과부)는 모두 내 형제임에도 전연 하소연할 곳조차 없
는 무리(群像)다. 이러한 때에 그들을 잘 보양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공양함이요, (이를) 즐겁게 여기고 근심하지 않는 것이야말
로 순수한 효성이다.
도리를 어기는 것을 패덕, 인(仁)을 해치는 것을 역적이라 한다. 악(惡)을 행함은 못난 짓이며, 도리를 행함이 마땅한 일이다.
천지조화를 알면 그 일을 잘 풀 수 있고, 신명(神明)을 궁구(窮究)하면 그 뜻을 잘 이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집안
구석에서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욕됨이 없고,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양육해야만 나태(懶怠)하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술을 끊음은 숭백(崇伯)의 아들(禹)이 부모를 돌보고 봉양코자 함이었다. 영재육성은 정(鄭) 영봉인(潁谷封人) 고숙
(潁考叔)의 석류(錫類 : 선량한 자손이 나오도록 함) 효심의 전파였다.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 부모를 기쁘게 한 것은 순(舜)의
공적이요. 참언으로 죽게 되었어도 도망가지 않고 팽살(烹殺)형을 기다린 것은 진(晉) 태자 신생(申生)의 공경함이다.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온전히 되돌려 보낸 사람은 증자(曾子)이며, 부모 뜻을 따르는데 용감하고 명령에 순종한 사람은 윤길보
(尹吉甫)의 아들 백기(伯奇)이다.
부귀와 복택(福澤)은 하늘이 내 삶을 풍부하게 하려 함이요, 빈천과 근심걱정은 그대를 옥처럼 절차탁마하여 왕성시키려는 것이
다. 나 살아서 하늘을 순리대로 섬기면 죽어서도 편안할 것이다.
看大學 俟見大指, 乃及他書, 但看時 須是更將大段, 分作小段, 字字句句 不可容易放過, 常時暗誦黙思, 反
覆硏究, 未上口時 須敎上口, 未通透 須敎通透, 已通透後 便要純熟, 直待不思索時 此意常在心胸之間, 驅
遣不去, 方是此一段了, 又換一段看, 令如此數段之後 心安理熟, 覺工夫省力時 便漸得力也。
『대학』을 봄에 대지(大指)를 보기를 기다리고 다른 글에 이르되, 볼 때에 모름지기 대단을 가지고 소단을 지
어 나누고 자구와 자구를 쉽게 놓거나 지나쳐서는 안 된다. 평소에 암송하면서 묵묵히 생각하고 연구를 반복해
서 입에 오르지 않을 때엔 입에 오르도록 익히고, 뚫어서 통하지 않았을 때에는 통투(通透 : 통하여 꿰뚫음)할
때까지 기다리고, 통투한 후에는 순전히 익혀야 하니, 사색하지 않을 때에도 이 뜻이 항상 마음 속에 있어서 내
쫓아도 떠나가지 않아야만 일단락을 마치고 다음 일단락을 바꾸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몇 단락을
한 후에 마음이 편안하고 이치가 익어서 공부가 덜 힘듬을 깨닫게 될 때 곧 점점 힘을 더 받을 것이다.
又曰 大學是一箇腔子, 而今 却要塡敎他實, 如他說格物 自家須是去格物後 塡敎他實, 著誠意 亦然, 若只
讀得空殼子, 亦無益也. 讀大學 豈在看他言語. 正欲驗之於心如何, 如好好色 惡惡臭 試驗之吾心, 果能好
善惡惡 如此乎. 閒居 爲不善 是果有此乎. 一有不至, 則勇猛奮躍不已 必有長進. 今不知如此, 則書自書
我自我, 何益之有。
또 말씀하시기를, 『대학』은 한낱 빈칸인데 지금 저 실제를 메워 나가야 할 것이다. 예컨대 격물은 스스로 모
름지기 격물에 나아간 뒤에 저 실제를 메워 나갈 것이고, 성의를 붙이는 것도 그러하니, 만약 껍데기만 읽어
얻으면 유익함이 없다. 대학을 읽음이 어찌 저 언어에만 있겠는가, 마음에 어떠한가 함을 징험하여야 할 것이
니, 좋은 색을 좋아하고 악한 냄새를 싫어함을 내 마음에 시험해서, 과연 “능히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함이
이와 같은가” 하며 “한가로이 거처함에 불선을 함이 과연 이러함이 있는가” 하여, 하나라도 이르지 못함이 있
으면 용감하고 맹렬히 떨치고 뛰어서 그치지 않아야만 반드시 길게 나아감이 있게 된다. 이제 이와 같음을 모
르면 책은 책대로이고 나는 나대로이리니 어찌 유익함이 있겠는가.
又曰 某一生 只看得這文字透, 見得前賢所未到處。溫公作通鑑, 言平生精力 盡在此書, 某於大學 亦然, 先
須通此, 方可讀他書。又曰伊川 舊日敎人 先看大學, 那時未解說, 而今有註解 覺大段分曉了, 只在仔細看。
又曰 看大學 且逐章理會, 先將本文念得, 次將章句來解本文, 又將或問來參章句, 須逐一令記得, 反覆尋究
待他浹洽, 旣逐段曉得 却統看溫尋過。
會 : 깨닫다.
浹 : 두루미칠 협. 두루미치다, 그 모양. 사무치다. 통함. 젖다. 적시다. 돌다. 일주함.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생 동안 문자를 다 보고 전현들이 미치지 못한 곳을 발견했다. 사마온공(司馬溫公)
『통감(通鑑)』을 지어 놓고 평생의 정력을 그 책에 다했다 했는데, 나는 『대학』에 또한 그러하니 먼저 『대
학』을 통해야만 비로소 다른 글을 읽는 것이 가능하다. 또 말씀하시기를 이천 선생이 옛날 사람을 가르칠 때
먼저 『대학』을 보게 하였다. 그 당시엔 해설이 없었으나 지금은 주해가 있어 대단(大段)을 깨달아 분명히 밝
아지니 다만 자세히 봄에 달려 있을 뿐이다. 또 말씀하시기를, 『대학』을 봄에 문장을 따라 이해해야 하니, 먼
저 본문을 가지고 생각해 얻어야 하고 다음에 장구를 가지고 본문을 해석하고, 혹문(或問)을 가지고 장구를 참
고하여 모름지기 일연을 따라서 기억해 얻어낼 것이니, 반복하고 찾아 구해서 무젖어 흐뭇함을 기다려야 한다.
이미 단락을 따라 깨우쳐 얻었으면 통합해 보아 익혀 나아가야 할 것이다.
又曰 大學一書 有正經 有章句 有或文, 看來看去 不用或問, 只看章句便了。久之 又只看正經便了。又久
之, 自有一部大學 在我胸中, 而正經 亦不用矣。然不用某許多工夫 亦看某底不出, 不用聖賢許多工夫, 亦
看聖賢底不出。
便 : 익히다. 숙달하다.
또 말씀하시기를, 『대학』 한 글에 정경(正經)이 있고 장구가 있고 혹문이 있으니, 계속 보아 나가면 혹문을
쓰지 않고 다만 장구만을 보아 익히고, 오래 되면 다만 정경만을 보아 마칠 것이다. 또 오래 되면 스스로 한 부
의 『대학』이 내 가슴 속에 있어 정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허다한 공부를 쓰지 않으면 또한 나의 뜻이
나오지 않음을 볼 것이고, 성현의 허다한 공부를 쓰지 않으면 역시 성현이 나오지 않음을 볼 것이다.
又曰 大學解本文未詳者 於或問中 詳之, 且從頭逐句理會, 到不通處 却看。或問 乃註脚之註脚。某解書
不合太多, 又先准備學者 爲他設疑說了, 所以致得學者看得容易了。人只說某說大學等不略說 使人自致
思 此事大不然。人之爲學 只爭箇肯與不肯耳, 他若不肯向這裏 略 亦不解致思, 他若肯向此一邊, 自然
有味 愈詳愈有味。
또 이르기를 『대학』본문을 해석하는데 상세하지 못한 것을 혹문 중에 상세히 해놓았으니, 또한 머릿부분을
따라 글귀마다 이해해 나가다 통하지 못하는 곳에 이르거든 보아라. 혹문은 주각(註脚)의 주각이다.
내가 『대학』을 해석함에 간략히 해놓고 먼저 배우는 자를 대비해서 달리 의문나는 바를 가설해 놓았으니 배
우는 자에게 보여 얻는데 용이하게 한 것이다. 사람들이 다만 내가 『대학』을 간략히 설명하여 공부하는 사람
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지 못하였다고 하나, 이 일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다만 즐겨
하느냐 즐겨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다툴 뿐이니, 저들이 만약 저 속으로 향함을 즐겨하지 않는다면 간략할지
라도 역시 풀어서 생각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저들이 만약 이 한쪽만 향해서 즐겨 한다면 자연 맛이 있어 더욱
상세하고 더욱 맛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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