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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論語

憲問。第41章. 子路宿於石門, ~ 第47章. 闕黨童子將命,

by 柳川 2020. 1. 14.

 

第41章

 

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자로가 석문에서 유숙하고 다음날 새벽 성문에 들어서자,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요?”

자로가 말하였다.

“공씨(孔氏) 문하에서 오는 길이오.”

문지기가 말하였다.

“아, 그 안되는 줄 알면서도 하려는 사람 말이지요?”

 

 

 

[해설]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말은 벌써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물어본 것이니, 그 기상이 천년 후에도 손에 잡힐 듯 눈에 선하다. ‘바로 불가능한 줄을 알면서도 하는 자 말인가.’라는 구절에서 ‘시(是)’ 자는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뜻이 있다. 참다운 고사(高士)로다.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애석하게 여긴다. 만고토록 ‘신문(晨門)’이라고만 칭하게 된 것은 자기가 만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대바구니를 멘 노인과 삼태기를 멘 은둔자가 모두 그러하다. 성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지만, 속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이 어찌 아득한 정도뿐이겠는가.<讀書箚義>

 

 

石門 地名. 晨門 掌晨啓門, 蓋賢人 隱於抱關者也. 自 從也, 問其何所從來也. 胡氏曰, 晨門 知世之不可而不爲. 故 以是 譏孔子. 然 不知聖人之視天下 無不可爲之時也.

 

석문은 지명이라. 신문은 새벽에 문을 열어주는 것을 맡으니, 대개 어진 사람으로 포관에 숨어 있는 자라. 자는 좇음이니 그 어느 곳을 따라 왔느냐고 물음이라. 호씨 가로대 신문은 세상의 불가함을 알면서 하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이로써 공자를 기롱함이라. 그러나 성인이 천하를 보심에 가히 하지 못하는 때가 없음을 아지 못함이라.

 

 

 

 

 

第42章

 

子擊磬於衛, 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曰, 「有心哉 !  擊磬乎。」  旣而曰, 「鄙哉 ! 硜硜乎。 莫己知也, 斯己而已矣。深則厲, 淺則揭。」  子曰, 「果哉, 末之難矣。」

 

 

공자가 위(衛)나라에 계실 때 하루는 경쇠를 치고 계셨는데, 마침 삼태기를 지고 공자의 문 앞을 지나던 사람이 말하였다.

“천하를 마음에 두고 있구나, 저 경쇠를 치는 사람은.”

잠시 뒤에 또 말하였다.

“댕댕거리는 저 소리, 참으로 비루하다. 자기를 몰라줄 땐 그만두면 그뿐인 것이다. ‘물이 깊으면 벗어들고 얕으면 걷고 건너야지’라는 시구(詩句)도 있지 않은가? ”

공자께서 뒤에 이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과감하구나. 그렇게 산다면 어려울게 없겠구나.”

 

蕢 : 삼태기 궤/상할 괴. 삼태기. [괴]상하다. 썩음. 흙덩이. 붉은 비름. 

 

 

[해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위나라에서 도를 펴기 위해 경을 치고 다녔다. 하루는 집에서 경을 치고 있는데 지나가던 은자가 경치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담긴 공자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공자가 세상의 일에 너무 마음을 쓰는구나. 뭐 그리 야단스럽게 그러는고.’

 

 

磬 樂器. 荷 擔也. 蕢 草器也. 此荷蕢者 亦隱士也. 聖人之心 未嘗忘天下, 此人 聞其磬聲而知之 則亦非常人矣.

 

경은 악기라. 하는 메는 것이라. 궤는 풀그릇이라. 이 삼태기를 멘 자도 또한 은사라. 성인의 마음이 일찍이 천하를 잊지 아니하시니 이 사람이 그 경을 치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아니, 또한 비상한 사람이라.

 

 

旣而曰, 「鄙哉 ! 硜硜乎。 莫己知也, 斯己而已矣, 深則厲, 淺則揭。」

 

잠시 뒤에 또 말하였다.

“댕댕거리는 저 소리, 참으로 비루하다. 자기를 몰라줄 땐 그만두면 그뿐인 것이다. ‘물이 깊으면 벗어들고 얕으면 걷고 건너야지’라는 시구(詩句)도 있지 않은가? ”

 

 

硜硜 石聲, 亦專確之意. 以衣涉水曰厲, 攝衣涉水曰揭, 此兩句 衛風匏有苦葉之詩也. 譏孔子人不知己而不止, 不能適淺深之宜.

 

갱갱은 돌소리니 또한 오로지하고 확고한 뜻이라(돌같이 단단한 고집불통의 짓이라). 옷으로써 물을 건넘을 가로대 여고, 옷을 끼고서 물을 건넘을 가로대 게라 하니, 이 두 글귀는 『시경』 위풍 포유고엽장의 시라. 공자가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데도 그치지 아니하니, 능히 얕고 깊음의 마땅함을 맞추지 못함을 기롱함이라.

 

 

國風/邶風/匏有苦葉

 

匏有苦葉, 濟有深涉。                         박은 잎이 쓰고.   나루  건너기엔  물이 깊다네. 

深則厲, 淺則揭。                                깊으면 옷을 벗어들고 ,  옅으면 옷을 걷고 건너야지.

 

有瀰濟盈,  有鷕雉鳴。                        나루엔 물이 넘실대는데,  까투리 우네.

濟盈不濡軌,  雉鳴求其牡。                 물이 차 있어도 바퀴가 젖지 않았는데  까투리 장끼 부르네.

 

雝雝鳴雁,  旭日始旦。                        기러기가 화답하며 우니,  해 뜨는 이른 아침이네.

士如歸妻,  迨冰未泮。                        사내가 신부를 맞으려는데   얼음이 아직 녹지 않았도다.

 

招招舟子,  人涉卬否。                        사공 손짓하여 부르네.   사람들이 건너가도 나는 가지 않네.

人涉卬否,  卬須我友。                        사람들이 건너도 내가 안가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 있기때문이네.

 

 

子曰, 「果哉, 末之難矣。」

 

공자께서 뒤에 이 말을 듣고 말씀하셨다.

“과감하구나. 그렇게 산다면 어려울게 없겠구나.”

 

 

[해설]

 

삼태기를 지고 가는 사람을 말을 듣고 공자가 하신 말씀이다. ‘과감하게 나가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라. 어떻게든 세상을 구하려고 하니 어려운 것이니라.’

 

 

果哉 嘆其果於忘世也. 末 無也. 聖人心同天地, 視天下 猶一家 中國 猶一人, 不能一日忘也. 故 聞荷蕢之言而嘆其果於忘世, 且言人之出處若但如此 則亦無所難矣.

 

과감하다는 것은 그 세상을 잊어버리는데 과감함을 탄식하심이라. 말은 없음이라. 성인이, 마음이 천지와 같아 천하 보심을 한 집안처럼 하시고 중국을 한 사람같이 하시니 능히 하루도 잊지 못하시니라. 그러므로 삼태기를 진 자의 말을 듣고 그 세상을 잊는 데에 과감함을 탄식하시고 또한 사람의 출처를 만약 다만 이같이 한다면 또한 어려울 바가 없음을 말씀하심이라.

 

 

 

 

 

第43章

 

子張曰, 「書云, 『高宗諒陰三年 不言。』 何謂也 ?」 子曰, 「何必高宗。 古之人 皆然, 君薨百官總己, 以聽於冢宰三年。」

 

 

자장이 물었다.

“서경(書經)에 ‘고종(高宗)이 양음(諒陰)에서 거상(居喪)하는 3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 고 했는데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고종뿐이겠는가. 옛날 임금들은 다 그러하였다. 임금이 돌아가시면 백관들은 3년 동안 자기 직무 일체를 총재의 지휘 하에 행하였다.”

 

 

 

高宗은 商王武丁也. 諒陰 天子居喪之名 未詳其義.

 

고종은 상나라 왕 무정이라. 양음은 천자가 상에 거하는 것을 이름함이니 그 뜻은 상세하지 못함이라.

 

 

子曰, 「何必高宗。 古之人 皆然, 君薨百官總己, 以聽於冢宰三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찌 고종뿐이겠는가. 옛날 임금들은 다 그러하였다. 임금이 돌아가시면 백관들은 3년 동안 자기 직무 일체를 총재의 지휘 하에 행하였다.”

 

 

[본문 해설]

 

왜 꼭 고종 임금만 그렇게 했겠는가. 옛날 사람들이 다 그러했다. 임금이 죽으면 새로 등극한 임금이 3년 동안 상주 노릇을 해야 하기에 그 사이에 정치는 총재가 맡아했다.

 

言君薨則諸侯 亦然. 總己 謂總攝己職. 冢宰 大宰也. 百官 聽於冢宰故 君得以三年不言也. 

○胡氏曰, 位有貴賤, 而生於父母 無以異者. 故 三年之喪 自天子達. 子張 非疑此也. 殆以爲人君 三年不言, 則臣下無所稟命, 禍亂 或由以起也, 孔子告以聽於冢宰, 則禍亂非所憂矣.

 

임금이 죽으면 제후도 또한 그러함을 말함이라. 총기는 자기의 직책을 총섭함(다 거느려서 하나로 껴나감. 하나로 단일화하여 총재에게 정치를 들음)을 이름이라. 총재는 태재라. 백관이 총재에게 (정사를) 듣는 고로 인군이 얻어 써 (안심하고) 삼년 동안을 말하지 않음(정치에 관여하지 않음)이라. 

○호씨 가로대 위에는 귀천이 있으되 부모에게 나온 것은 써 다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삼년상은 천자로부터 통하니 자장이 이를 의심함이 아니고, 자못 인군이 삼년을 말하지 않으면 신하가 품명하는 바가 없어 화란이 혹 써 일어날까에서 말미암음이라. 공자가 총재에게 들으면 화란은 근심할 바가 아니라고 가르쳐주심이라.

 

 

 

 

 

第44章

 

子曰, 「上好禮則民易使也。」

 

 

공자가 말씀하셨다.

"위에서 예를 좋아하면 백성을 부리기 쉽다."

 

 

[본문 해설]

 

임금이 예를 좋아하면 절도가 있어서 백성이 그 절도를 본받을 것이고, 또한 예를 좋아하는 임금은 절도가 있게 백성을 부리기 때문에 백성을 부리기에 쉬우니라.

 

 

謝氏曰, 禮達而分定. 故 民易使.

 

사씨 가로대 예는 통하고 분수가 정해짐이라. 그러므로 백성을 부리기가 쉬우니라

 

 

 

 

 

第45章

 

子路問君子, 子曰, 「修己以敬。」 曰, 「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人。」 曰, 「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百姓, 修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자로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신중하게 자신을 닦는 사람이다.”

자로가 물었다.

“그렇게만 하면 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을 닦아 남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

자로가 또 물었다.

“그렇게만 하면 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해줘야 하니, 자신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은 요순(堯舜)도 오히려 부족하다고 여기셨다.”

 

 

 

修己以敬, 夫子之言至矣盡矣, 而子路小之. 故 再以其充積之盛, 自然及物者 告之, 無他道也. 人者對己而言. 百姓則盡乎人矣. 堯舜猶病 言不可以有加於此, 以抑子路, 使反求諸近也. 蓋聖人之心無窮, 世雖極治, 然 豈能必知四海之內 果無一物不得其所哉. 故 堯舜 猶以安百姓爲病, 若曰吾治已足 則非所以爲聖人矣. 

○程子曰, 君子修己以安百姓, 篤恭而天下平. 唯上下一於恭敬則天地自位, 萬物 自育, 氣無不和, 而四靈畢至矣. 此 體信達順之道, 聰明睿知皆由是出, 以此 事天饗帝.

 

몸을 닦아서 써 공경함은 부자의 말씀이 지극하고 다했으되 자로가 적게 여김이라(대수롭게 여기지 않음이라). 그러므로 두 번째로 써 그 충적의 성함이 자연히 물건에 미치는 것으로 가르치시니(修己以安人) 다른 도가 없음이라. 사람이라는 것은 내 몸의 상대를 말함이라. 백성은 곧 모든 사람이라. 요순도 오히려 병됨은 가히 써 이에 더함이 있지 않음을 말함이니(修己以安百姓), 써 자로를 억제하여 하여금 돌이켜 저 가까움에서 구하게 함이라. 대개 성인의 마음은 궁함이(끝이) 없어 세상을 비록 지극히 다스리나 그러나 어찌 능히 반드시 사해의 안이 과연 한 가지 물건이라도 그 곳을 얻지 않음이 없다고 주장하리오. 그러므로 요순도 오히려 백성을 편안히 함으로써 병되이 여기시니 만약 가로대 나의 다스림이 이미 족하다하면 곧 써 성인이 되지 못하니라. 

○정자 가라사대 군자는 몸을 닦아서 써 백성을 편안히 하여 돈독하고 공순히 하여 천하가 편안해지니 오직 상하가 공경에 한결같으면 곧 천지도 스스로 자리하고, 만물도 스스로 길러지며 기운이 화해지지 않음이 없어서(『中庸』제1장,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사령(용 ․ 봉황 ․ 기린 ․ 거북)도 다 지극해지니라. 이것은 믿음을 체로 하고 순함에 통달하는 도니 총명예지가 다 이로 말미암아 나오니 이로써 하늘도 섬기고 상제도 제사 지내니라.

 

 

 

 

 

第46章

 

原壤夷俟, 子曰, 「幼而不孫弟, 長而無述焉, 老而不死是爲賊。」   以杖叩其脛。

 

 

공자의 예친구 원양(原壤)이 웅크리고 앉아 공자를 기다리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어려서는 공손하지도 못하고, 커서는 칭찬 받을 만한 일 하나 없고, 늙어서도 죽지 않는 것이 바로 도적이다.”

그리고 지팡이로 그의 정강이를 두드리셨다.

 

 

[본문 해설]

 

원양은 공자의 어릴 적 친구이다. 공자가 온다니까 웅크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기에 공자가 그를 꾸짖는 말이다. ‘너는 어렸을 때도 공순하지 못했고, 커서는 칭찬들을 만한 일 하나 한 것도 없는데다 늙어서는 쉽게 죽지도 않으니 너야말로 세상에 해가 될 뿐이다’ 하시면서 끌고가서 지팡이로 그 정강이를 때려주었다.

 

 

原壤 孔子之故人. 母死而歌, 蓋老氏之流, 自放於禮法之外者. 夷 蹲踞也. 俟 待也. 言見孔子來而蹲踞以待之也. 述 猶稱也. 賊者 害人之名. 以其自幼至老 無一善狀, 而久生於世, 徒足以敗常亂俗 則是賊而已矣. 脛 足骨也. 孔子旣責之, 而因以所曳之杖, 微擊其脛 若使勿蹲踞然.

 

원양은 공자의 옛 사람이라. 어미가 죽었는데 노래를 불렀으니 대개 노자의 흐름으로(노자의 종류로) 스스로 예법의 밖에서 방종한 자라. 이는 걸터앉음이라. 사는 기다림이라. 공자가 오는 것을 보고 걸터앉아서 써 기다림이라. 술은 칭술함과 같음이라. 적이라는 것은 사람을 해롭게 하는 명칭이라. 써 그 어려서부터 늙기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선한 일이 없고, 오래 세상에 살아서 한갓 족히 써 오상을 무너뜨리고 풍속을 어지럽게 했으니 이것은 해롭게 할 뿐이라. 경은 발 뼈라. 공자가 이미 꾸짖으시고, 인하여 써 끌고 간 지팡이로 그 앞정강이를 살살 치시니 하여금 웅크리고 앉지 않도록 하심이라.

 

 

 

 

 

第47章

 

闕黨童子將命, 或問之曰, 「益者與?」 子曰, 「吾見其居於位也, 見其與先生並行也, 非求益者也。欲速成者也。」

 

 

궐당(闕黨)의 동자에게 손님과 주인의 말을 전하는 일을 맡기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학문에 정진하는 아이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가 어른들의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어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걷는 것을 볼 때, 이 아이는 학문에 정진하고자 하는 아이가 아니라 빨리 이루려고 하는 자이다.”

 

 

[해설]

 

하루는 공자가 궐당동자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이를 본 사람이 궐당동자가 공부하는데 장차 진전이 많이 있기에 공자가 특별히 총애하여 심부름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묻는 물음이다.

 

 

闕黨 黨名, 童子 未冠者之稱. 將命 謂傳賓主之言. 或人 疑此童子學有進益故 孔子使之傳命 以寵異之也.

 

궐당은 당명이오, 동자는 아직 장가들지 않은 자를 칭함이라. 장명은 손과 주인의 말을 전함을 이름이라. 어떤 사람이, 이 동자가 학문이 진전되고 유익함이 있기 때문에 공자가 전명을 시키는 것으로써 총애하고 다름이 있는가하고 의심함이라.

 

 

子曰, 「吾見其居於位也, 見其與先生並行也, 非求益者也。欲速成者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가 어른들의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어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걷는 것을 볼 때, 이 아이는 학문에 정진하고자 하는 아이가 아니라 빨리 이루려고 하는 자이다.”

 

 

[본문 해설]

 

혹자의 물음에 대해 공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궐당동자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거나 어른과 더불어 다니는 것을 본다면, 예절을 익혀가며 점차적으로 공부에 진전을 두려는 자가 아니고, 당장 칭찬 듣고 유명해지려고 서두는 자라.’

 

禮 童子當隅坐隨行. 孔子言吾見此童子, 不循此禮, 非能求益, 但欲速成爾. 故 使之給使令之役, 觀長少之序, 習揖遜之容, 蓋所以抑而敎之, 非寵而異之也.

 

『예기』에, 동자는 마땅히 귀퉁이에 앉고 (어른을 따라) 행하니라(『맹자』 고자하편 제2장에도 “徐行後長者謂之弟, 疾行先長者謂之不弟.”하였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동자를 보니 이 예를 따르지 아니하니 능히 유익함을 구함이 아니고 다만 속히 이루고자 함이라. 그러므로 하여금 심부름하는 일을 주어서 어른과 젊은이의 순서를 보게 하며 읍손의 용모를 익히게 함이니 대개 써한 바 억제하여 가르치려는 것이지, 사랑하고 남달리 함이 아니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