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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書/中庸

中庸. 第十章

by 柳川 2020. 2. 29.

第十章

 

子路問强, 子曰, 「南方之强與? 北方之强與? 抑而强與?  寬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居之。衽金革死而不厭, 北方之强也, 而强者居之。故 君子和而不流, 强哉! 矯。中立而不倚, 强哉! 矯。 國有道, 不變塞焉, 强哉! 矯。國無道, 至死不變, 强哉! 矯。」

 

 

 

자로가 강한 것에 관하여 묻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남방의 강함을 말하는 것인가? 북방의 강함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너의 강함을 묻는 것인가?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나에게 무도한 행동을 한 자에게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함인데, 이는 군자가 취하는 방식이다. 창칼과 갑옷을 깔고 지내면서 죽음도 불사하는 것은 북방의 강함인데 이는 강한 자가 취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모든 사람들과 화합하며 휩쓸리지 않으니 강하다. 꿋꿋함이여! 중도를 취하고 치우치지 않으니 강하도다,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 옹색했던 시절의 뜻이 변치 않으니 강하도다,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가 없어 죽음에 이르러서도 평소의 지조를 변치 않으니 강하도다, 꿋꿋함이여!"

 

 

 

[해설]

 

자로(BC543~BC481)는 공자의 제자로,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이다. 子路는 자(字)이며, 계로(季路)라고도 한다. 노(魯)나라 변(卞, 지금의 산동성) 출신으로, 공자의 훌륭한 10명의 제자인 공문십철(孔門十哲) 가운데 하나이다. 무용(武勇)에 뛰어났으며 인품이 호방하고 성실하였다. 무술로써 항상 공자를 수행하였는데 공자는 가끔 그의 만용과 과단한 성격에 대해 꾸지람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의 솔직한 성격으로 공자와 가장 마음이 통했던 제자로 꼽혀지기도 한다. 공자와 자로의 이러한 관계는 논어에 자주 언급된다.

공야장(公冶長 第 6章)편에 보면, 공자가 “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나갈까 하는데 나를 따를 자는 유일 것이다(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 其由與!)” 하자 자로가 기뻐했다. 그러자 공자는 다시 “유는 용맹하기를 좋아하는데 나보다 더하니 재량 분별할 줄을 모른다(由也 好勇過我, 無所取材.)”고 하였다. 이 말은 공자가 난세에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한탄하며 차라리 세상을 피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얘기인데 정작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다닐 때의 위험은 생각지 않고 그저 스승이 자신을 택해 함께 한다는 사실에만 기뻐할 뿐 깊이 사려하지 못하는 자로를 깨우치고자 하신 말씀이다.

또 한 예를 선진(先進 第25章)편에서 들어보자. 하루는 공자의 네 명의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약간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려워하지 말라. 그대들은 노상 ‘나를 몰라준다’고 말하지만 만약 그대들을 알아서 써 준다면 어찌 하겠느냐?(以吾一日長乎爾, 毋吾以也. 居則曰 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고 하시자 자로가 불쑥 나서서 대답하기를 “병차 천승을 낼 수 있는 나라가 큰 나라 사이에 끼여 곤란을 당하고 더욱 또한 전란과 기근으로 허덕인다 하더라도 제가 나서서 다스리면 삼년 안으로 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또 백성들에게 올바른 길을 알려주겠습니다.”라 하였다. 공자는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모두의 얘기를 듣고 세 사람의 제자가 나간 뒤 증자의 아버지인 증석(曾晳)이 남아 웃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나라는 예로써 다스려야 하는데, 그는 말하는 데도 겸양할 줄을 모르니 웃었노라(爲國以禮, 其言不讓. 是故 哂之.)” 하였다.

자로는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였으나 위나라 괴외(蕢聵)의 내란 때 전사했다. 이때 그의 시체가 소금에 절여진 것을 안 공자는 매우 슬퍼했다고 했다.

 

 

[참조]

공문십철(孔門十哲)에 관하여

춘추시대 때 공자의 문하생 중 뛰어난 제자 열 명을 말한다. 논어 선진편(先進篇)에 “덕행에는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 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冉有), 계로(季路), 문학에는 자유(子游), 자하(子夏)라 하여 72 제자 중 중심을 이룬 제자 10명을 그 장점에 따라 4분류하고 있다. 이것을 후세에 사과십철(四科十哲)이라 하였다. 덕행이란 모든 행위가 바른 것, 언어란 제후간의 응대 수사(修辭)에 뛰어난 것, 정사란 치국에 재능이 있는 것, 문학이란 고전에 정통한 것이다. 이것을 四科라 한 것은 후한 때의 『논형(論衡)』문공편(問孔篇)과 『後漢書』정현전(鄭玄傳)에서부터이고, 十哲이란 명칭을 부여한 것은 당나라 때 『史通』암혹편(暗惑篇)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子路 孔子弟子仲由也. 子路 好勇. 故 問强.

 

○자로는 공자 제자로 (이름은) 중유이라. 자로는 용맹을 좋아하여 ‘강’에 대해 여쭘이라.

 

 

 

子曰, 「南方之强與? 北方之强與? 抑而强與?」

 

 

공자가 말씀하셨다. 

“남방의 강함을 말하는 것인가? 북방의 강함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너의 강함을 묻는 것인가?

 

 

 

○抑 語辭. 而 汝也.

 

○억은 어조사요, 이는 너라

 

 

 

寬柔以敎, 不報無道, 南方之强也, 君子居之。

 

 

너그러움과 부드러움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나에게 무도한 행동을 한 자에게 보복하지 않는 것은 남방의 강함인데, 이는 군자가 취하는 방식이다.

 

 

 

[해설]

 

주역 설괘전 제5장에 “離也者 明也, 萬物皆相見, 南方之卦也, 聖人南面而聽天下, 嚮明而治, 蓋取諸此也.

(‘離’라는 것은 밝음이니, 만물이 다 서로 봄이니, 남방의 괘이니 성인이 남쪽을 향해 천하를 들어서(천하의 의견을 들어서) 밝은 데를 향하여 다스리니, 다 여기(離卦 : )에서 취함이라)”이라 하였다.

 

離虛中(☲) 불괘는 불이고 해가 되니까 밝다. 사람에게는 눈이기도 하다. 만물은 모두 이괘에서 보기 때문에 남방에 속한 괘가 이괘이다. 모두 만나고 모이고 부딪치는 때이며 가장 밝은 때이므로 모두 다 보인다. 성인이 밝은 남쪽을 향해 앉아서 천하의 소리를 듣고 밝게 정치를 한 것이 대개 이 이괘에서 취한 것이다. 성인이 남쪽을 향해서 천하를 듣는다는 것은 귀를 크게 열어서 백성의 소리를 잘 듣는 것이다.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고도 한다. 정치는 눈으로만 보고 입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이 부당한 경우를 당했다든지 요구사항이나 불만스러운 게 있으면 다 들어서 충족시켜 주고, 잘못된 것은 잘 생각해서 올바로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공자가 용맹을 좋아한 자로의 물음에 먼저 남방지강에 대해 말한 것은, 자로와 같은 용맹한 군자가 취해야 할 ‘寬柔以敎’와 ‘不報無道’의 자세가 중요함을 역설코자 한 뜻도 있을 것이고 북방의 過한 강에 대해 不及한 강을 비유코자 한 뜻도 있을 것이다.

 

 

○寬柔以敎 謂含容巽順, 以誨人之不及也, 不報無道 謂橫逆之來, 直受之而不報也. 南方 風氣柔弱. 故 以含忍之力, 勝人爲强, 君子之道也.

 

○'관유이교’는 이르되 관용을 베풀고 손순해서 남의 불급함을 가르침이오, ‘불보무도’는 비끼고 거스려 오는 것에 그대로 받아주고 보복하지 않는 것이니라. 남방은 바람 기운이 부드럽고 약함이라. 그러므로 함인(포용하고 인내)의 힘으로써 남을 이겨 강으로 삼으니 군자의 도이라

 

巽 : 손괴 손. 손괘(卦). 8괘의 하나.  ☴. 방위로는 동남.  64괘의 하나. 손하손상(巽下巽上). 유순하다. 공순함. 사양하다.

 

 

 

衽金革死而不厭, 北方之强也, 而强者居之。

 

 

창칼과 갑옷을 깔고 지내면서 죽음도 불사하는 것은 북방의 강함인데 이는 강한 자가 취하는 방식이다.

 

 

衽 : 옷깃 임. 옷깃, 옷섶. 여미다. 옷깃을 바로 잡음. 소매, 요 까는 침구, 깔다. 요 같은 것을 깖. 솔기. 자락, 치마자락. 치마. 

金革 : 무기와 갑옷. 전투할 때 쓰이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해설]

 

여기서 북방은 주역으로 볼 때 서북건방(西北乾方)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주역 설괘전 제5장에 “戰乎乾”이라 하였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사이에 음기운이 극성해져 戰乎乾으로 싸움이 붙는다. 乾은 방위상으로 戌亥方으로 서북쪽이다. 서북쪽은 험준한 데다 일기도 좋지 않아서 늘 음양의 기운이 싸우는(陰陽相搏) 곳이다. 하루 온종일 강했던 양이 저녁이 되면서 음이 극성해지니까 서로 싸움이 붙는다는 뜻이다. 결국은 음이 이기고 어두워지는데 늦저녁의 양은 늙어서(乾三連 老陽: ) 쇠한 때이고 음은 한창 파릇파릇한 때인데, 한낮의 양에 한밤의 음이 오느라 음양이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싸우다 죽을지언정 싸우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니 그것은 (서)북방의 강함이고 강한 자가 이에 거하는 것이다. 남방의 강에 비해 過한 강의 예를 든 것이다.

 

 

○衽 席也, 金 戈兵之屬, 革 甲胄之屬. 北方 風氣剛勁. 故 以果敢之力, 勝人爲强. 强者之事也.

 

○임은 자리요 금은 창과 병기에 속한 것이오 혁은 갑옷과 투구에 속한 것이라. 북방은 풍기가 강하고 굳셈이라 그러므로 과감의 힘으로 남을 이겨 강으로 삼으니 강자의 일이라.

 

 

 

故 君子和而不流, 强哉! 矯。中立而不倚, 强哉! 矯。 國有道, 不變塞焉, 强哉! 矯。國無道, 至死不變, 强哉! 矯。

 

 

그러므로 군자는 모든 사람들과 화합하며 휩쓸리지 않으니 강하다. 꿋꿋함이여! 중도를 취하고 치우치지 않으니 강하도다,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道)가 있을 때 옹색했던 시절의 뜻이 변치 않으니 강하도다, 꿋꿋함이여! 나라에 도가 없어 죽음에 이르러서도 평소의 지조를 변치 않으니 강하도다, 꿋꿋함이여!"

 

 

 

 

 

[해설]

 

남방은 풍기가 유약하여 중으로 말하면 불급한 점이 있고, 북방은 풍기가 강하여 지나친 점이 있다. 그런데 군자라는 것은 모든 사람과 잘 화합하되 어느 한쪽으로 흐르지 않아야 한다(和而不流). 주역 38번째 괘인 화택규(火澤睽)괘 대상전에 “象曰 上火下澤睽, 君子以同而異.(상전에 이르길 위에는 불 아래에는 못이 규니, 군자가 이로써 같되 다르게 하나니라)” 하였다.

위에는 火動而上의 불(上火)이고, 아래에는 澤動而下의 못(下澤)으로 어긋났다는 것이다. 군자가 이 규괘를 보고 본받아 먼저 어긋난 걸 같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긋난 것을 그냥 보고만 있으면 안 되고, 같이 하나 되도록 하고(同) 그러면서도 달리한다(而異)는 것이 和而不流이다. 사람을 和하게 대해서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고 이 사람 의견도 받아들이고 저 사람 의견도 받아들이되(和而), 나쁜 일을 하자고 하거나 도둑질하자고 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즉 화하되 의리가 아니고 예가 아닌 곳에는 절대로 흐르지 말아야 하니 참으로 강한 것이다.

늘 중도에 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니, 이 또한 참으로 강하고 꿋꿋한 것이다. 또한 나라에 도가 있어 평화로운 세상이라 하더라도 방심하지 않고 예전에 도가 없어 곤궁했을 적에도 흔들리지 않던 내 의지를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이 또한 강하고 꿋꿋한 것이다. 나라에 도가 없어 무도하고 포악하며, 혼란한 세상이 되었다 해도 또한 평소에 지키던 지조를 변하지 않으니, 이것 역시 참으로 강하고 꿋꿋한 것이다.

 

 

○此四者 汝之所當强也. 矯 强貌, 詩曰, 矯矯虎臣 是也. 倚 偏著也. 塞 未達也. 國有道 不變未達之所守, 國無道 不變平生之所守也. 此 則所謂中庸之不可能者, 非有以自勝其人欲之私, 不能擇而守也. 君子之强, 孰大於是. 夫子以是, 告子路者, 所以抑其氣血之强, 而進之以德義之勇也.

 

○이 네 가지는 너의 마땅히 강해야 할 바이니라. 교는 굳센 모양이니 시경에 이르기를 ‘교교호신(굳세고 굳센 범 같은 신하)’이 이것이라. 의는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붙는 것이고, 색은 통하지 못함이라. 나라에 도가 있음에 통하지 못했을 때 지켰던 바를 변하지 아니하고, 나라에 도가 없음에 평소에 지킨 바(지조)를 변하지 아니함이라. 이것은 이른바 중용의 가히 능치 못하는 것이니 써 스스로 그 인욕의 사사로움을 이기는 이가 아니면 능히 가려내서 지키지 못하느니라. 군자의 강함이 무엇이 이보다 크리오. 공자께서 이 네 가지로써 자로에게 고한 것은 기혈의 강함을 누르고 덕의의 용맹으로써 나아가게 하심이라.

 

 

[해설]

 

군자가 마땅히 강해야 할 바인 네 가지는 和而不流, 中立而不倚, 國有道 不變塞焉, 國無道 至死不變을 말함이다. ‘矯’는 굳센 모양으로 詩經의 노송(魯頌) 반수편(泮水篇)에 나오는 말이다.

 

 

和而不流

 

論語 (子路 第23章)에 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다.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화합하면서도 부화뇌동하지 않으며, 소인은 부화뇌동할 뿐 화합하지는 못한다.”

    

 

詩經/魯頌/泮水

 

明明魯侯,克明其德,                밝고 밝은 노후, 능히 그 덕을 밝혔도다.

旣作泮宮,淮夷攸服。                반궁을 지었으니  회이가 복종하였도다.

矯矯虎臣,在泮獻馘;                굳세고 범같은 신하들이 반궁에서 적의 귀를 바치고,

淑問如皋陶,在泮獻囚。            고요처럼 신문을 잘하는 자가 반궁에서 죄수를 바치도다.

 

馘 : 귀벨 괵/뺨 혁. 귀를 베다. (전쟁에서 적의)왼쪽 귀나 머리를 베다. [혁]뺨. 볼. 낯. 얼굴.

 

 

『孟子』 양혜왕장구하(梁惠王 下. 3章)에 제나라 선왕(宣王)과 맹자의 문답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王曰, 「大哉! 言矣。寡人有疾, 寡人好勇。」  對曰, 「王請無好小勇, 夫撫劒疾視曰, 『彼惡敢當我哉!』 此 匹夫之勇, 敵一人者也, 王請大之。」

 

왕이 말하였다. ”훌륭합니다. 그대의 말씀! 과인이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용맹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말했다. “왕은 부디 작은 용맹을 좋아하지 마소서. 칼을 어루만지고 상대방을 노려보며 말하길, ‘네가 어찌 감히 나를 당하겠는가’하나니 이것은 필부의 용맹이라. 한 사람을 대적하는 것이니, 왕은 청컨대 용맹을 크게 하소서”

 

용맹함에는 작은 용맹(小勇)과 큰 용맹(大勇)이 있는데, 血氣의 용맹은 小勇이고, 義理의 용맹은 大勇이다. 군자가 취하여야 할 용맹은 血氣之勇이 아니라 대용인 義理之勇, 浩然之氣여야 한다.

 

무릇 뜻(志)은 기운의 장수요(夫志 氣之帥), 기운은 뜻의 다음(氣 志之次也.)이다. 즉 뜻이 기운을 이끌고 나가서 기운을 조정할 수 있어야지, 뜻은 없고 기운만 앞서면 중용을 잃고 온갖 폐단만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氣血의 강을 누르고 덕과 의리의 용맹으로써 공부를 해나가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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