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四書/中庸

中庸. 第十八章

by 柳川 2020. 2. 29.

第十八章

 

子曰, 「無憂者其惟文王乎 !  以王季爲父, 以武王爲子, 父作之, 子述之。武王纘大王王季文王之緖, 壹戎衣而有天下, 身不失天下之顯名, 尊爲天子, 富有四海之內, 宗廟饗之, 子孫保之。武王末 受命, 周公成文武之德, 追王大王王季, 上祀先公以天子之禮, 斯禮也達乎諸侯大夫及士庶人, 父爲大夫子爲士, 葬以大夫祭以士,  父爲士子爲大夫, 葬以士祭以大夫, 期之喪達乎大夫, 三年之喪達乎天子, 父母之喪無貴賤一也。」

 

 

공자가 말씀하셨다.

“근심이 없는 사람은 오직 문왕뿐이구나!  왕계를 아버지로 삼고 무왕을 아들로 두었으니 아버지는 주나라를 일으키고 아들은 나라를 계승하였다. 무왕이 태왕, 왕계와 문왕의 기업을 이어, 한번 군복을 입고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여 천하를 소유하게 되었으며, 몸은 천하에 드러난 이름을 잃지 않았고, 존귀함으로는 천자가 되었으며, 부유함으로는 천하를 소유하고 종묘에서 흠향하였고 자손을 보전하였다. 무왕이 말년에 천명을 받게 되자, 주공이 문왕 무왕의 덕을 이루어 태왕과 왕계를 왕으로 추존하고, 위로 선공을 천자의 예로써 제사지냈는데, 이 예가 제후와 대부및 선비와 서인에게까지 통하여, 아비가 대부이며 자식이 선비이면 장례는 대부의 예로써 치르고, 제사는 선비의 예로써 지내며, 아비가 선비이며 자식이 대부이면 장례는 선비의 예로써 치르고, 제사는 대부의 예로써 지내며, 일년(期)상은 대부까지 통하고, 삼년상은 천자에까지 통하니 부모상은 귀천이 없이 한가지였다."

 

 

 

[해설]

 

공자가 대덕을 실현한 이로 문왕을 들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참으로 근심이 없는 이는 문왕이다. 왜냐하면 왕계(季歷)라는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으며 무왕(發)이라는 훌륭한 자식을 두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왕계는 주나라를 일으켰고 아들인 무왕이 잘 다져 후세에 전하였으니 그 가운데한 문왕(西伯昌)은 근심이 없다는 말이다.

 

 

○且 言文王之事. 書言, 王季其勤王家, 盖其所作, 亦積功累仁之事也.

 

○이는 문왕의 일을 말함이다. 『서경』에 말하기를 “왕계가 그 왕가를 근면하게 했다” 하니 대개 그 일으킨 바가 또 계속 공을 쌓고 인을 누적한 일이라.

 

 

[해설]

 

문왕의 아버지 왕계가 그 왕가를 일으킨 것은 어느 하루 아침에 이룬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공을 쌓고 어진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경』주서 무성편(周書 武成篇)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다.

 

王若曰 "嗚呼! 群后. 惟先王建邦啓土, 公劉克篤前烈, 至于大王, 肇基王迹, 王季其勤王家, 我文考文王 克成厥勳, 誕膺天命, 以撫方夏, 大邦畏其力, 小邦懷其德惟九年, 大統未集, 予小子其承厥志.

 

왕이 말씀하시길 “아, 여러 제후여 선왕(后稷)이 나라를 세워 토지를 열어 놓으셨는데, 공유가 앞 사람의 공렬을 돈독히 하고 태왕에 이르러 처음으로 왕자의 자취를 터 닦았으며, 왕계가 왕가에 근로하셨거늘 우리 문고(文考)이신 문왕께서 능히 공을 이룩하시어 크게 천명에 응하여 사방의 중하를 어루만지시니, 큰 나라는 그 힘을 두려워하고 작은 나라는 그 덕을 그리워한 지가 9년이었는데, 대통을 이루지 못하고 별세하셨으므로 나 소자가 그 뜻을 이었노라.")

 

 

 

武王纘大王王季文王之緖, 壹戎衣而有天下, 身不失天下之顯名, 尊爲天子, 富有四海之內, 宗廟饗之, 子孫保之。

 

 

무왕이 태왕과 왕계와 문왕의 기업을 이어, 한번 군복을 입고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여 천하를 소유하게 되었으나, 몸은 천하에 드러난 이름을 잃지 않았고, 존귀함으로는 천자가 되었으며, 부유함으로는 천하를 소유하고 종묘에서 흠향하였고 자손을 보전하였다.


 

[해설]

 

태왕은 무왕의 증조할아버지로 고공단보(古公亶父)를 말하고, 왕계는 할아버지인 계력(季歷)이며, 문왕은 아버지이다. 무왕이 조상들의 기업(基業)을 이어 주나라를 세움을 말하고 있다. 아버지 문왕이 은나라 말기 서백창으로 변방을 다스릴 때 주(紂)임금의 폭정으로 나라가 도탄에 빠졌다. 문왕의 인품이 널리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문왕을 따르자 폭군 주는 서백창을 유리옥에 가두기까지 하였다. 나중에 풀려나 강태공을 만나 시기를 엿보다가 돌아가시고 무왕이 그 대업을 완성하게 된다.

즉 무왕은 조상들이 닦아놓은 터에 힘입어 전쟁을 일으켜 폭군 주를 치고 周나라를 세웠지만 한 개인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한 것이었고, 왕위에 올라서는 결코 그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으셨기에 사후에 종묘에 모셔지고 자손을 잘 보존하였다는 내용이다.

 

 

○此言 武王之事. 纘 繼也. 大王 王季之父也. 書云大王 肇基王迹, 詩云, 至于大王, 實始翦商(魯頌/閟宮). 緖 業也. 戎衣 甲冑之屬. 壹戎衣 武成文言 壹著戎衣以伐紂也.

 

○이는 무왕의 일을 말함이라. 찬은 이음이라. 태왕은 왕계의 아버지니라. 『서경』에 이르기를 “태왕이 비로소 왕업의 자취의 터를 닦아놓았다” 하고 『시경』에 이르길 “태왕에 이르러 실제 처음으로 상나라를 쳤다”고 하니라. 서는 왕업이라. 융의는 갑옷과 투구의 등속이라. ‘일융의’는 『서경』 「무성」의 글에 “한번 융의를 입고 주왕을 정벌함”을 말함이라.

 

 

[해설]

 

『서경』의 인용문은 앞서 인용한 「무성」편의 내용이며, 무왕이 紂를 쳐서 상나라를 멸하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壹戎衣天下大定, 乃反商政, 政由舊, 釋箕子囚, 封比干墓,......而萬姓悅服.

(한번 군복을 입으매 천하가 크게 안정되었거늘 이에 상나라의 정사를 되돌려서 정사는 옛날을 따르고, 기자를 가둔 것을 풀어주고 비간의 묘를 봉분하고......만백성들이 기뻐하여 복종하였다)”는 내용이 있다.『시경』의 인용문은 「魯頌 閟宮」편중  다음 내용이다.

 

 

魯頌/閟宮

 

后稷之孫、實維大王;                  후직의 자손이, 참으로 태왕이로다.

居岐之陽、實始翦商。                  기의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아 실로 상나라를 치기 시작하였도다.

至于文武、纘大王之緖。               문왕, 무왕에 이르러 태왕의 업을 이었도다.

致天之屆、于牧之野。                  하늘이 목야에서 궁극에 이르렀도다.

 

 

 

武王末 受命, 周公成文武之德, 追王大王王季, 上祀先公以天子之禮, 斯禮也達乎諸侯大夫及士庶人, 父爲大夫子爲士, 葬以大夫祭以士,  父爲士子爲大夫, 葬以士祭以大夫, 期之喪達乎大夫, 三年之喪達乎天子, 父母之喪無貴賤一也。

 

 

무왕이 말년에 천명을 받게 되자, 주공이 문왕 무왕의 덕을 이루어 태왕과 왕계를 왕으로 추존하고, 위로 선공을 천자의 예로써 제사지냈는데, 이 예가 제후와 대부및 선비와 서인에게까지 통하여, 아비가 대부이며 자식이 선비이면 장례는 대부의 예로써 치르고, 제사는 선비의 예로써 지내며, 아비가 선비이며 자식이 대부이면 장례는 선비의 예로써 치르고, 제사는 대부의 예로써 지내며, 일년(期)상은 대부까지 통하고, 삼년상은 천자에까지 통하니 부모상은 귀천이 없이 한가지였다.

 

 

[해설]

 

무왕이 늙어서 운명하신 뒤 아들인 어린 성왕이 왕위에 오르자 삼촌인 주공이 섭정을 하였다. 주공은 이때 음악과 모든 예를 만들었다. 이후 제사의 예는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공이 아버지 문왕과 형인 무왕의 덕을 기리고 할아버지인 왕계와 증조할아버지인 태왕(고공단보)을 왕으로 추존하시고 위 조상들의 제사는 무왕이 천자이기에 천자의 예로써 제사를 지냈다. 이러한 예를 바탕으로 제후와 대부, 선비, 서인들의 장사지내는 예법과 제사지내는 예법이 확립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부모의 상은 천자나 대부, 서인 등 계급과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삼년상을 지냈다. 왜냐하면 모두가 부모의 은덕을 타고난 것은 천지의 떳떳한 일이오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此 言周公之事. 末 猶老也. 追王 蓋推文武之意, 以及乎王迹之所起也. 先公 組紺以上至后稷也. 上祀先公以天子之禮, 又推大王王季之意, 以及於無窮也. 制爲禮法, 以及天下, 使藏用死者之爵, 祭用生者之祿. 喪服自期以下, 諸侯絶, 大夫降, 而父母之喪, 上下同之, 推己以及人也.

 

○이는 주공의 일을 말함이라. 末은 늙음과 같으니라. 왕으로 추존한다는 것은 대개 문왕과 무왕의 뜻을 미루어서 써 왕의 자취의 일어난 바에까지 미침이라. 선대의 공은 조감으로써 위로 후직에까지 이름이라. 위로는 선공을 제사지내는데 천자의 예로써 하시고 또 태왕과 왕계의 뜻을 미루어서 써 무궁한데까지 미침이라. 예법을 만들어서 써 천하에 미쳐 장사지내는데는 죽은 자의 벼슬을 써서하고 제사는 산 자의 녹(등급, 벼슬자리)을 써서 하느니라. 상복은 기년복으로부터 써 제후는 끊고, 대부는 내려가며 그러나 부모의 상은 위와 아래가 똑같으니 자기 몸을 미루어서 써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침이라.

 

 

[참고]

 

옛날에는 상복의 재질과 봉제 방법에 따라 다섯 가지 服을 입었고 입는 기간에 따라서는 아홉 가지 복으로 나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삼년상은 부모상으로 신분귀천을 막론하고 자식이 나서 어렸을 때 부모 품 안에서 3년 동안 있었으니 최소한 그 기간은 돌아가신 부모를 받든다는 뜻으로 복중에는 가장 오래 입는 상복이다. 조선시대 때 예송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기년(朞年)의 달 수 계산을 살펴보면, 햇수로 3년을 달로 치면 만 24개월인데 반으로 줄여 12개월로 하니 1년이 된다. 즉 춘하추동 4계절인 것이다. 한 계절이 3개월이기 때문에 초수 원근에 따라 한 계절(3개월)씩 줄여 복을 입는다. 대공은 기년복(1년 즉 12개월)에서 석 달을 줄인 9개월이고, 시복(緦服)은 3개월이니 유복지친(有服之親 : 복을 입는 가까운 친척)이라고 했을 때 최소한 한 계절인 석 달은 입어주어야 한다. 간략하게 복제(服制)를 살펴보자.

 

① 참최복(斬衰服) : 아버지상이나 손자가 아버지를 대신한 할아버지 승중상(承重喪)에 입는다. 가슴을 베는 듯한 슬픔이란 뜻으로(三年喪如斬), 거친 삼베를 잘라 깃을 여미지도 않고 만드는데 앞가슴에 최(衰)를 달고 뒷등에 부판(負板)을 달아서 입으며, 대나무로 만든 상장(喪杖)을 짚고 3년 동안 근신하는 것이다. 남편상이나 시아버지상도 마찬가지다.

② 재최복(齋衰服, 齊衰服) : 어머니상, 할머니 승중상, 시어머니상에 입는다. 참최복과 달리 고운 베로 깃을 여미며 앞가슴에 최를 달고 뒷등에 부판을 단 후 오동나무로 네모나게 만든 상장을 짚고 3년간 근신한다.

③ 장기(杖朞) : 아버지 생존시 어머니상이나 아내상을 당했을 때 재최복을 입고 상장을 짚고 1년간 근신한다.

④ 부장기(不杖朞) : 백숙부(伯叔父) ∙ 형제(兄弟) ∙ 차자(次子) ∙ 장손(長孫)의 상을 당했을 때 재최복을 입고 상장없이 일년간 근신한다. 큰며느리 ∙ 조카 ∙ 친정부모 ∙ 조부모도 같다.

⑤ 대공복(大功服) : 종형제(從兄弟) ∙ 지차며느리 ∙ 시조부모 ∙ 친정백숙부 ∙ 질부(姪婦) ∙ 고모(姑母) ∙ 출가한 자매(姉妹)의 상에는 곱게 다듬어 만든 상복을 입고 상장없이 9개월간 근신한다.

⑥ 소공복(小功服) : 종조부모(從祖父母) ∙ 대고모(大姑母) ∙ 종손(從孫) ∙ 당고모(堂姑母) ∙ 당숙모(堂叔母)의 상일 때는 상장없이 5개월간 근신한다. 상복은 대공과 같다.

⑦ 시마복(緦麻服) : 증조부모(曾祖父母) ∙ 재종조부모(再從祖父母) ∙ 장인(丈人) ∙ 장모(丈母)의 상에 3개월간 입는다. 종수(從嫂) ∙ 종손부(從孫婦) ∙ 재종숙모(再從叔母) ∙ 재종손(再從孫) ∙ 외손(外孫) ∙ 시종조부모(媤從祖父母) ∙ 시사촌(媤四寸) ∙ 시당숙모(媤堂叔母)도 이에 속한다. 상복은 소공과 같다.

'四書 > 中庸' 카테고리의 다른 글

中庸. 第二十章  (0) 2020.02.29
中庸. 第十九章  (0) 2020.02.29
中庸. 第十七章  (0) 2020.02.29
中庸. 第十六章  (0) 2020.02.29
中庸. 第十五章  (0) 2020.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