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苑卷第九. 正諫
易曰:「王臣蹇蹇,匪躬之故.」人臣之所以蹇蹇爲難,而諫其君者非爲身也,將欲以匡君之過,矯君之失也.君有過失者,危亡之萌也;見君之過失而不諫,是輕君之危亡也.夫輕君之危亡者,忠臣不忍爲也.三諫而不用則去,不去則身亡;身亡者,仁人之所不爲也.是故諫有五:一曰正諫,二曰降諫,三曰忠諫,四曰戇諫,五曰諷諫.孔子曰:「吾其從諷諫乎.」夫不諫則危君,固諫則危身;與其危君寧危身;危身而終不用,則諫亦無功矣.智者度君權時,調其緩急而處其宜,上不敢危君,下不以危身,故在國而國不危,在身而身不殆;昔陳靈公不聽泄冶之諫而殺之,曹羈三諫曹君不聽而去,春秋序義雖俱賢而曹羈合禮.
*역易*에 말하기를
"왕신王臣이 충성을 다하여 애쓰면서도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다네“라 하였다. 신하로서 충성을 다 하느라 어려운 중에도 임금에게 충간을 하는 것은 자기 일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장차 그 인군의 과실을 바로잡고, 인군의 실책을 올바르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군에게 과오와 실책이 있다는 것은, 위망의 싹이 트는 것이므로, 인군의 과실을 보고도 이를 간언하지 않는 것은, 인주의 위망을 경홀히 하는 것이다. 무릇 인군의 위망을을 경홀히 하는 것은, 충신으로서는 차마 못할 일이다. 세 번을 간하였는데도 들어 주지 않으면 떠난다. 떠나지 않으면 자신의 몸을 망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망실는 짓은, 어진 사람으로서는 하지 못 한다. 그러므로 간언諫言을 하는데에는 다섯 가지의 유형이 있다. 첫째는 정간正諫이요 , 둘째는 항간降諫이요 , 셋째는 충간忠諫이요, 넷째는 당간戇諫이요, 다섯째는 풍간諷諫이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나같으면 풍간諷諫을 따르리라!"하였다. 무릇, 간하지 않으면 인군이 위험하고, 간언을 하면 자신이 위태롭다. 이럴 경우에는 임금을 위험하게 하느니 보다 차라리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편이 낫다.그러나, 자신을 위험하게 하면서까지 간언을 하였는데도 끝내 들어주지 않는다면, 간언을 하였으나 효과가 없는 것이니. 지혜로운 자는 인군의 권위와 시의時宜를 잘 헤아려, 그 완급緩急을 조절하며 그 마땅한데서 대처 한다. 위로 인군이 위험하지 않게 하고, 아래로 자신도 위험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라는 나라대로 위험한 일이 없고, 자기의 몸도 위태롭지 않게 된다. 옛날 진陳 영공靈公은 설야洩冶가 간언을 하자 이를 듣지 않고 그를 죽였다. 그러나, 조기曹羈는 세 번이나 인주에게 간언을 하였으나, 들어 주지 않으므로, 그 곁을 떠났다. *춘추春秋*에는 '그 의義로 보아 두 가지 사례 모두 어진 사람이라 했으나, 둘 중에 그래도 조기가 예禮에 맞는 처사다' 고 하였다
齊景公遊於海上而樂之,六月不歸,令左右曰:「敢有先言歸者致死不赦.」顔 趨進諫曰:「君樂治海上而六月不歸,彼 有治國者,君且安得樂此海也!」景公援戟將斫之,顔 趨進,撫衣待之曰:「君奚不斫也?昔者桀殺關龍逢,紂殺王子比干,君之賢非此二主也,臣之材,亦非此二子也,君奚不斫?以臣參此二人者,不亦可乎?」景公說,遂歸,中道聞國人謀不內矣.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해상海上에 노닐며 즐기느라, 여섯 달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으며 좌우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먼저 돌아 가자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내 이를 용서치 않으리라!" 하였다 안촉추顔斶趨가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바닷가의 즐거움에 빠져서 여섯 달 동안이나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저 궁궐 내에 만일 나라를 다스리겠다고 나서는 이가 있어서 주군의 자리를 빼앗는다면, 주군께서는 장차 어찌 이 바닷가에서 다시 즐겨볼 기회가 있겠습니까?" 항였더니 경공이 창을 들고서 그를 쳐 죽이려고 나섰다. 안촉추는 다시 나아가, 옷깃을 여미고 말하기를."주군께서는 어찌하여 저를 베지 않으십니까? 옛날 걸왕桀王은 관룡봉關龍逢을 죽였고, 주왕紂王은 왕자 비간比干을 죽였습니다. 임금의 어짊은 이 두 폭군만도 못하고, 저의 재주 또한, 역시 이들 두 충신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저를 죽이지 않으십니까? 저로 하여금 그 두 사람의 이름과 함께 오를 수 있게 해 주시면, 이 또한 멋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경공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드디어 귀로에 올랐다. 그러다가 중도에서 과연 나라 안에서 경공이 들어오지 못하게 음모를 꾸민다는 소식을 듣었다
楚莊王立爲君,三年不聽朝,乃令於國曰:「寡人惡爲人臣而遽諫其君者,今寡人有國家,立社稷,有諫則死無赦.」蘇從曰:「處君之高爵,食君之厚祿,愛其死而不諫其君,則非忠臣也.」乃入諫.莊王立鼓鐘之間,左伏楊姬,右擁越姬,左 ,右朝服,曰:「吾鼓鐘之不暇,何諫之聽!」蘇從曰:「臣聞之,好道者多資,好樂者多迷,好道者多糧,好樂者多亡;荊國亡無日矣,死臣敢以告王.」王曰善.左執蘇從手,右抽陰刃,刎鐘鼓之懸,明日授蘇從爲相.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인군으로서, 삼년 동안 조회를 열지 않으며, 오히려 나라에 하명기를."과인은 남의 신하된 자가 그 주군에게 간언을 하는 것을 싫어 한다.지금 나는 나라를 지니고 있으며, 사직을 모시고 있다 . 누구든지 간언하는 자가 있으면 용서치 않고 죽일 것이다!" 하였다. 소종蘇從이 나가서 말하기를. "주군의의 은덕으로 높은 작위에 처해 있으며, 주군으로 인하여 후한 녹祿을 먹으며, 죽는 것이 아까워 간언을 하지 않는 것은, 충신이아니다"하고 들어가서 간언을 하였다. 장왕은 고종鼓鐘등 많은 악기를 갖추어 놓고 , 왼쪽에는 양희楊姬를 끼고, 오른 쪽에는 월희越姬를 껴안았으며, 왼쪽에는 짧은 옷을, 오른 쪽에는 조회 때 입는 조복 을 던저 놓고 앉아서 말하기를, "나는 음악을 듣느라 한유하지 않다. 어찌 그대의 간언을 들을 틈이이 있겠는가?"하였다. 소종은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도를 좋아하면 지혜가 많아지고 , 음악을 좋아하면 미혹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도를 좋아하면 양식이 많아지고,음악을 좋아하면 쇠망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이 형荊나라가 망할 날은 날이 따로 없습니다. 죽음을 맞을지라도 신은 감히 주군께 고합니다“ 하였다. 장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기를. "훌륭하오!" 하고는 왼손으로는 소종의 손을 잡고, 오른 손으로는 감추었던 칼을 꺼내어, 악기를 매달아 놓은 줄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이튿날 소종을 재상으로 삼았다..
晉平公好樂,多其賦斂,下治城郭,曰:「敢有諫者死.」國人憂之,有咎犯者,見門大夫曰:「臣聞主君好樂,故以樂見.」門大夫入言曰:「晉人咎犯也,欲以樂見.」平公曰:「內之.」止坐殿上,則出鐘磬 瑟.坐有頃.平公曰:「客子爲樂?」咎犯對曰:「臣不能爲樂,臣善隱.」平公召隱士十二人.咎犯曰:「隱臣竊顧昧死御.」平公諾.咎犯申其左臂而 五指,平公問於隱官曰:「占之爲何?」隱官皆曰:「不知.」平公曰:「歸之.」咎犯則申其一指曰:「是一也,便遊 盡而峻城闕.二也,柱梁衣繡,士民無褐.三也,侏儒有餘酒,而死士渴.四也,民有饑色,而馬有栗秩.五也,近臣不敢諫,遠臣不敢達.」平公曰善.乃屛鐘鼓,除 瑟,遂與咎犯參治國.
진晉나라 평공平公은 음악을 좋아하였다. 많은 부렴으로 많이 거두어 들이고서도 성곽을 수리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 "감히 간언을 하는 자가 있으면 죽이리라“허였다 국인이 모두 근심 중에 있는데 구범咎犯이 나서서, 대궐 문지기 대부를 보고 말하기를. "신이 듣자하니 주군께서 음악을 좋아하신다기에 신이 음악을 가지고 주군을 뵙고자 합니다”하였다. 문지기 들어가서 인군에게 알리기를,. "우리 진나라 사람으로 구범이라는 자가, 음악에 관한 일로 주군을을 뵙겠다고 합니다"하니 평공이 “ 들게 하라”하였다. 구범은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니, 갖가지 악기들을 꺼냈다. 잠시후, 평공이 묻기를 "그대는 악기를 연주할 줄 아시오?" 하고 물었다 구범이 말하기를 ."신은 음악을 연주하지 못합니다만. 비유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하였다 평공이 비유법으로 말 잘하는 관리 열두 사람을을 불러 들였다. 이에 구범이 묻기를. "은신隱臣들을 제가 가만히 살펴 보다가 말이 사리에 맞지 않으면 죽음을 감수할 수 있습니까?"하고 묻자 평공이 이를 허락하여. "좋소!" 하였다 구범이 왼쪽 팔을 뻗고 다섯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 보였다. 평공이 그 은관들에게 말하기를 "무슨 뜻인지 이를 점쳐 보시오!"하였다 은관들이 모두 말하기를.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평공이 할 일 없이 말하기를. "제자리로 돌아들 가거라!" 하였다. 구범은 그 손가락을 한 개씩 펴 보이며 말하기를. "이 첫번째 손가락은, 놀이 때문에 산에 나무가 없이 벌거숭이가 되었는데 대궐을 높이 짓는 것을 뜻합니다“하였다. 두 번째 손가락을 펴보아며 ”이 손가락은, 대궐의 기둥과 대들보는 비단으로 감싸 화려하게 꾸몄는데, 사인이나 백성들은 입을 옷이 없다는 뜻입니다“하고. ”세 번째 이 손가락은, 광대 난쟁이들은 남아 도는 술이 지천인데, 굶주리는 사인들은 갈증을 가실 한 방울의 술도 없다는 뜻입니다. 네 번째의 이 손가락은, 백성들은 기한에 허덕이는데 주군께서 타는 말에게 먹이는 곡식은 많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의 이 손가락은, 곁에 있는 신하는 감히 간언을 못하고, 멀리 있는 신하는 가까이 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였다. 이에 평공이 말하기를. "옳거니!" 하고 종고鐘鼓를 막아 버리고, 피리와 거문고를 치우고, 마침내 구범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전념하었다.
孟嘗君將西入秦,賓客諫之百通,則不聽也,曰:「以人事諫我,我盡知之;若以鬼道諫我,我則殺之.」謁者入曰:「有客以鬼道聞.」曰:「請客入.」客曰:「臣之來也,過於淄水上,見一土 人,方與木梗人語,木梗謂土 人曰:『子先,土也,持子以爲 人,遇天大雨,水 至,子必沮壞.』應曰:『我沮乃反吾眞耳,今子,東園之桃也,刻子以爲梗,遇天大雨,水 至,必浮子,泛泛乎不知所止.』今秦,四塞之國也,有虎狼之心,恐其有木梗之患.」於是孟嘗君逡巡而退,而無以應,卒不敢西嚮秦.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 장차 서쪽의 진秦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여러 빈객들이 한 백 명 씩이나 간하였으나, 듣지 않고 말하기를, "사람의 일로 나에게 간한다면,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다. 또 만약 귀신의 일이라면 내가곧,그를죽이리라."하였다, 그때 알자謁者가 들어 와서 고하하기를. "어떤 손님이 귀신의 일로 아뢸 일이 있다고 합니다" 하니 맹상군이 "들라 해라" 하였다. 그 사람이 들어와서 말하기를, "제가 여기에 오는 길에, 치수淄水를 지나오게 되었는데.거기서 흙이재료인 흙인형이, 마악 나무가 재료인 목인형과 논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인형이 흙인형에게 말하기를,. ‘너는 전에는, 흙이었다. 그 흙을 가져다가 인형을 만든 것이니, 큰 비를 만나 물이 흘러 들면, 너는 물에 젖어 무너어질 것이다’ 고 하자, 흙인형이 응답하기를. ‘. 나는 흙으로 되었으니 무너지면 곧,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그 뿐이지만. 지금 너는, 동원東園의 복숭아 나무였다. 조각하는 사람이 너를 만든 것인데. 큰 비를 만나서, 물이 넘쳐 밀려 들면, 반드시 그대는 물에 뜰 것며, 둥둥 떠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다닐 것이다’ 하고 했습니다 지금 진秦나라는, 사방이 막혀 있고, 범이나 시랑 같은 마음이라, 나무 인형과 같은 처지가 될지 두렵습니다" 고 아뢰자. 맹상군은 잠시 주춤거리더니 물러서서, 더 이상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감히 서쪽 진나라를 향해 가지 못하였다
吳王欲伐荊,告其左右曰:「敢有諫者,死!」舍人有少孺子者,欲諫不敢,則懷丸操彈,遊於後園,露沾其衣,如是者三旦,吳王曰:「子來何苦沾衣如此?」對曰:「園中有樹,其上有蟬,蟬高居悲鳴飮露,不知螳螂在其後也!螳螂委身曲附,欲取蟬而不顧知黃雀在其傍也!黃雀延頸欲啄螳螂而不知彈丸在其下也!此三者皆務欲得其前利而不顧其後之有患也.」吳王曰:「善哉!」乃罷其兵.
오왕吳王이 형荊나라를 정벌하려고, 좌우 신하들에게 알려 말하기를,. "감히 이를 반대하는 것으로 간언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다 사인舍人 중에 나이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그도 간하고 싶었지만 감히 간하지 못하고, 동그란 돌 알맹이를 가지고 튕겨 내는 연습을 하며, 후원(後園)에서 노니느라니, 이슬에 옷을 적시기를, 사흘이나 이어갔다. 오왕이 아이에게 말하기를,. "너는 웬 일로 옷을 적시며 이같이 사서 고생하느냐?"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이 후원에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는 매미가 있습니다. 그 매미는 높이 붙어서 슬피 웁니다 이슬을 먹는다는데. 당랑螳螂[범아재비]이 자기 뒤에 있는 줄을 모릅니다 당랑은 몸을 움츠리고 찰삭 붙어서 매미를 노리느라 그 곁에 자기를 노리는 꾀꼬리가 있는데도 돌아볼 겨를이 앖습니다. 꾀꼬리는 목을 뻬내어 당랑을 쪼으려고만 하느라 그 아래에서 돌 알이 튕겨 올 줄을 알지 못합니다. 이 셋은 모두 눈앞에 있는 이익을 얻기에 급급하였지, 그 뒤에 있는 환난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하고 말하자, 오왕이 말하기를 “훌륭하다 !”하고 기병起兵을 그만 두었다 .
楚莊王欲伐陽夏,師久而不罷,群臣欲諫而莫敢,莊王獵於雲夢,椒擧進諫曰:「王所以多得獸者,馬也;而王國亡,王之馬豈可得哉?」莊王曰:「善,不穀知 强之可以長諸侯也,知得地之可以爲富也;而忘吾民之不用也.」明日飮諸大夫酒,以椒擧爲上客,罷陽夏之師.
초楚 장왕莊王이 양하陽夏를 정벙하려고, 군사를 일으켜 머뭇거린 지가 오래인데도, 그만 두지 못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간언하고자 하였으나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었는데. 장왕이 마침 운몽雲夢으로 사냥을 나갔을 때 초거椒擧가 나서서 간하기를. "왕께서 짐승을 많이 잡는 까닭은, 말입니다. 왕국이 망한면, 말을 어디에서 구하시겠습니까?" 하고 묻자 , 장왕 말하기를, "옳습니다! 나는 강한 나라를 굴복시키면 제후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압니다. 땅을 많이 차지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면서도. 우리 백성을 옳게 쓰지 못하고 있음을 잊고 있었구료!" 하고 이튿날 대부들을 위하여 술자리를 베풀면서 , 그 자리에서 초거를 상객上客으로 삼고, 양하에 대한 군사를 그만두게 하엿다
秦始皇帝太后不謹,幸郎嫪毐,封以爲長信侯,爲生兩子,毐專國事,浸益驕奢,與侍中左右貴臣俱博飮,酒醉爭言而 ,瞋目大叱曰:「吾乃皇帝之假父也, 人子何敢乃與我亢!」所與 者走行白皇帝,皇帝大怒,毐懼誅,因作亂,戰咸陽宮毐敗,始皇乃取毐四肢車裂之,取其兩弟囊撲殺之,取皇太后遷之于萯陽宮,下令曰:「敢以太后事諫者,戮而殺之!」從蒺藜其脊肉,幹四肢而積之闕下,諫而死者二十七人矣. 齊客茅焦乃往上謁曰:「齊客茅焦願上諫皇帝.」皇帝使使者出問客,得無以太后事諫也,茅焦曰然,使者還白曰:「果以太后事諫.」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어머니 태후太后는 몸가짐을 삼가지 못하였다. 낭郞 벼슬하는 노애嫪毐를 사랑하여, 그에게 장신후長信侯를 봉해 주었다 두 사람은 두아들 형제를 두었다. 노애는 국사를 전횡하면서부터 교만과 사치에 젖어 들었다. 시중侍中과 조정의 여러 고관들과 함께 도박과 술판을 벌였다. 술이 취하여 언쟁을 하고 싸우되, 눈을 부라리고 크게 꾸짖기를,. "나는 황제皇帝의 가부假父이다. 하찮은 자들이 어찌 감히 나와 맞서려는 것이냐!" 하였다. 그와 다투었던 자들이 황제에게 달려가서 사실대로 고하자, 왕제는 크게 노하였다. 노애는 주살될 것이 두려워서, 인하여 먼저 난동을 일으켜. 전투는 함양궁咸陽宮에서 관군과 맞닥드려, 결국 노애가 패하였다, 시황은 노애를 잡아다가 사지四肢를 찢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하고, 배 다른 두 아우를 자루에 넣어서 때려 죽였다. 어머니인 황태후皇太后는 부양궁萯陽宮으로 옮기게 하고,말하기를 "감히 태후의 일로 나에게 간하는 자는 모두 죽여 없애리라! 찔래 가시로 그의 척육脊肉을 도려 내며, 그 사지를 잘라서 대궐 아래에 쌓으리라!" 하였다.그런데도 간언을 하다가 죽은 사람이 스물 일곱사람이나 되었다. 제齊나라에서 온 모초茅焦란 사람이 황제를 알현하기를 청하였다. 사자가 황제에게 "제나라에서 온 모초茅焦라는 자가 황제께 간언하고자 합니다“고 아뢰자 황제는 사자를 시켜 모초에게 묻기를, 태후의 일로 간언하는 것이 아니라면 허락하노라 하니. 모초는 그리 하겠습니다 하였으나, 사자는 이를 알아 차리고 들어가서 황제에게 전하기를. "과연 태후의 일로 간언하려는 것입니다" 하였다
皇帝曰走往告之,若不見闕下積死人邪?使者問茅焦,茅焦曰:「臣聞之天有二十八宿,今死者已有二十七人矣,臣所以來者,欲滿其數耳,臣非畏死人也.」走入白之,茅焦邑子,同食者盡負其衣物行亡,使者入白之,皇帝大怒曰:「是子故來犯吾禁,趣炊 湯煮之,是安得積闕下乎!」趣召之入,皇帝按劍而坐,口正沫出,使者召之入,茅焦不肯疾行,足趣相過耳,使者趣之,茅焦曰:「臣至前則死矣,君獨不能忍吾須臾乎?」使者極哀之,茅焦至前再拜謁起,稱曰:「臣聞之,夫有生者不諱死,有國者不諱亡;諱死者不可以得生,諱亡者不可以得存.死生存亡,聖主所欲急聞也,不審陛下欲聞之不?」
황제가 말하기를 "얼른 가서 전하여라! ‘네가 대궐 아래에 쌓인 시체들을 보지 못하였는가?’" 사자가 다시 모초에게 황제의 말을 전하자, 모초가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하늘에는 이십 팔수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미 죽은 자가 이십칠인이라 하니 모자라는 하나를 채워 이십팔수로 하자고 온 것입니다. 저는 죽은 자들을 보고 두려워 할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사자는 어서 들어가서 제 말을 들은대로 전하시오. 또,나와 한동네 사람으로, 함께 밥을 먹고 살던 사람들이 모두 옷가지를 싸 짊어지고 이 나라를 떠나고 있습니다!" 라고 말이오 .사자가 다시 들어가 이 말을 전하자, 황제는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이 놈이 고의로 내가 정해 놓은 금법을 어기려 드는구나. 어서 솥을 걸고 불을 지펴라 이 놈을 삶아 죽이리라! 이런 놈이 어찌 저 대궐 아래에 쌓일 시체 축에나 들겠느냐? 어서 불러 들여라!" 하였다. 황제는 칼을 만지면서, 입에 거품을 물었다. 사자가 모초를 안으로 불러 들이자, 모초는 천천히 걸으면서, 양발을 서로 스치게만 할 뿐이었다. 이를 본 사자가 재촉을 하자, 모초가 말하기를 . "내가 황제 앞에 가까이 가면 곧, 죽을 것이오. 그대는 어찌 참아 잠깐의 여유 줄 수 없다는 것인가?" 하니,사자는 매우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모초가 황제 앞으로 나아가 두 번 절하고 나서,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무릇 산 자는 죽음을 꺼려하지 말 것이며, 나라를 가진 자는 망할 것을 꺼려하지 말 것라 하였습니다. 죽음을 두려워 하면 삶을 얻을 수가 없고, 망할 것을 두려워 하면 나라를 보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 사,생,존,망에 관해서는 , 성군이 다투어 들어 보려고 애쓰던 문제인데, 폐하께서는 들어 보고자 하시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皇帝曰:「何謂也?」茅焦對曰:「陛下有狂悖之行,陛下不自知邪!」皇帝曰:「何等也?願聞之.」茅焦對曰:「陛下車裂假父,有嫉妒之心;囊撲兩弟,有不慈之名;遷母萯陽宮,有不孝之行;從蒺藜於諫士,有桀紂之治. 今天下聞之,盡瓦解無嚮秦者,臣竊恐秦亡爲陛下危之,所言已畢,乞行就質.」乃解衣伏質. 皇帝下殿,左手接之,右手麾左右曰:「赦之,先生就衣,今願受事.」乃立焦爲仲父,爵之上卿;皇帝立駕,千乘萬騎,空左方自行迎太后萯陽宮,歸於咸陽;太后大喜,乃大置酒待茅焦,及飮,太后曰:「抗枉令直,使敗更成,安秦之社稷;使妾母子復得相會者,盡茅君之力也.」
이에 황제가 묻기를,.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냐? 모초가 대답하기를 . "폐하께서는 광패한 짓을 행하고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십니다“고 하니, 황제가 말하기를, ”무엇인지 들어 들어보자“하였다 모초가 말하기를 ”폐하께서 가부를 거열 하셨는데 이는 질투심을 보여 준 것이며, 두아우를 자루에 담아 때려 죽였으니 이는 자애롭지 못하다는 이름을 남긴것이며
어머니를 부양궁으로 옮겨 가두었으니, 불효한 행동을 드러내어 보인 것입니다. 또한 간언하는 선비들을 찔레나무 가시로 고문한 것은, 걸桀이나 주紂와 같은 폭군의 기질이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지금 천하가 이런 소문을 듣고, 모두 기와가 무너지듯 무너져 진나라로 향해 오는 자가 없어졌습니다. 제가 두렵게 생각하기는 진나라가 망하여 폐하가 위험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고자 하던 말을 모두 마쳤습니다. 애걸하오니, 어서 저를 사형에 처해 주십시오" 하고 웃옷을 벗고 목을 칠 때 쓰는 나무 토막위에 엎드리니, 황제가 아래로 내려와서, 왼손으로는 모초의 손을 잡고,오른 손으로는 좌우를 보고 내저으며 말하기를. "용서해 주어라! 선생은 어서 옷을 입으시오. 이제 선생이 시키는 일을 듣고 싶습니다" 하고는 즉시 모초를 중부仲父로 삼고, 상경上卿의 벼슬을 내리고 또, 천승千乘과 만기萬騎를 더해 주었다 .이번에는 자기 수레를 내오게 하여 왼쪽 자리를 비워 두고 친히 부양궁萯陽宮에 달려가서 태후太后를 영접하여,수레의 빈 자리에 모시고 함양궁咸陽宮으로 돌아왔다. 태후는 크게 기뻐하여, 크게 잔치를 베풀어 모초를 대접하였다. 술이 오르자, 태후가 고마워서 말하기를, "굽은 것을 항거하여 곧게 하였으며, 실패를 고쳐 성공으로 이끌어,진나라의 사직을 편안히 하였도다! 모자母子가 다시 상봉하게 해 주신 것은, 모두 모초 당신의 힘이었소이다!" 하였다
楚莊王築層臺,延石千重,延壤百里,士有三月之糧者,大臣諫者七十二人皆死矣;有諸御己者,違楚百里而耕,謂其耦 曰:「吾將入見於王.」其耦曰:「以身乎?吾聞之,說人主者,皆閒暇之人也,然且至而死矣;今子特草茅之人耳.」諸御己曰:「若與子同耕則比力也,至於說人主不與子比智矣.」委其耕而入見莊王.
초楚)나라장왕莊王이 층대層臺를 짓는 데, 드는 돌이 천중千重이나 되고, 그 차지하는 땅이 백 리나 되었다, 사인士人들이, 그 비용이 초나라 석달 치 식량과 비등하다고 하여 . 간언을 올린 대신이 일흔 두 사람인데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제어기諸御己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초나라 국경으로부터 백 리 밖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함께 농사를 짓는 친구에게 말하기를 "내가 장차 왕을 만나 보리라!"하였다 친구가 말하기를, "자네 같은 신분으로 어떻게 만나겠나? 내가 듣자하니, 인군을 설득한다고 나선 사람들은 모두가 한가한 사람들이야. 공연히 나섰다 죽었지. 지금 너는 풀 속에 파묻혀 사는 농사꾼이 아닌가!" 이 말에 제어기가 말하기를, "만일 너하고 농사를 짓는 일이라면 이는 힘을 비교해서 누가 나은지를 따지겠지만. 인군을을 설득하는 일이라면 너의 지혜로는 비교할 수가 없지!" 하고 농사는 친구에게 맡기고 장왕을 만나러 갔다.
莊王謂之曰:「諸御己來,汝將諫邪?」諸御己曰:「君有義之用,有法之行. 且己聞之,土負水者平,木負繩者正,君受諫者聖;君築層臺,延石千重,延壤百里;民之釁咎血成於通塗,然且未敢諫也,己何敢諫乎?顧臣愚,竊聞昔者虞不用宮之奇而晉幷之,陳不用子家羈而楚幷之,曹不用僖負羈而宋幷之,萊不用子猛而齊幷之,吳不用子胥而越幷之,秦人不用蹇叔之言而秦國危,桀殺關龍逢而湯得之,紂殺王子比干而武王得之,宣王殺杜伯而周室卑;此三天子,六諸侯,皆不能尊賢用辯士之言,故身死而國亡.」遂趨而出,楚王遽而追之曰:「己子反矣,吾將用子之諫;先日說寡人者,其說也不足以動寡人之心,又危加諸寡人,故皆至而死;今子之說,足以動寡人之心,又不危加諸寡人,故吾將用子之諫.」明日令曰:「有能入諫者,吾將與爲兄弟.」遂解層臺而罷民,楚人歌之曰:「薪乎萊乎?無諸御己訖無子乎?萊乎薪乎?無諸御己訖無入乎!」
장왕이 그를 보고 묻기를."제어기라는 자가 왔느냐? 너도 장차 간언을 하려느냐?" 하고 물었다 제어기가 대답하기를 "인군은 의를 활용함이 있었어야 하고 법데로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듣건대, 땅이 물을 담으면 그 물이 평평해 지고, 나무가 먹줄을 받으면 면 곧게 되고, 임금이 간언을 들으면 성군聖君이 된다고 합니니다.. 인군께서 층대를 짓는 데 드는, 돌이 천중이나 되고, 그 땅이 백 리나 된다고 합니다. 백성은 고달파 흘리는 피가 개울을 이루는데도, 감히 간언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간언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저의 어리석음을 한 번 돌아보아 주십시오. 제가듣기로는 옛적에 우虞나라는 궁지기宮之奇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진晉나라에 망하였고, 진陳나라는 자가기子家羈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초나라에게 병탄되었으며,조曹나라는 희부기僖負羈의 의견을 무시하여, 송宋나라가 이를 차지하여 병탄하였으며, 내萊나라는 자맹子猛의 말을 듣지 않아서 제齊나라에게 병탄 당했습니다. 또 오吳나라는 오자서伍子胥의 의견을 무시하였다가 월越나라에게 합병당하아였고, 진秦나라는 건숙蹇叔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나라가 위험에 빠졌습니다. 걸왕桀王이 관용봉關龍逢을 죽이자 탕왕湯王이 이를 차지하였고, 주왕紂王이 왕자 비간比干을 죽이자 무왕武王이 이를 취게 되었으며, 선왕宣王이 두백杜伯을 죽이자 주실周室이 하천下賤해지고 허약해 졌습니다. 이 세 천자天子와, 여섯 제후諸侯는,모두가 어진 이를 존중하거나 충간을 올리는 사인을 임용하지 못하는 삼들이기였에 자신도 죽고 나라도 망쳤던 것입니다 " 하고는 밖으로 뛰쳐 나갔다. 장왕楚王이 급히 뒤따라 가며 말하기를."그대는 돌아 오시오. 내가 장차 그대의 간언을 듣겠노라.이제껏 과인은 간언 다운 간언을 듣지를 못하였구료,과인을 설득 한다는 말들이 과인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부족하였으며. 유익한 말이기는 커녕 오히려 과인을 해끼치자는 의도를 숨기고 나에게 위험한 길로 인도 하려 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자초한 것이라 할 것이오 지금 그대의 말은, 과인의 마음을 감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또한 나를 위험으로 인도하려는 뜻도 없으니 내가 장차 그대의 간언을 듣고자 하는 것이오"하였다.이튿날 초왕이 명령하여 말하기를. "간하는 자가 들어 오면 능히 들을지어다 “내가 그를 장차 형제로 삼으리라" 그리고는 드디어 층대의 건축을 그만두게 하고 백성들을 풀어 주었다. 초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나무를 하고 있는가? 풀을 베고 있는가? 제어기가 없으니 이제까지 초나라에는 그럴 만한 인물 하나 없었나? 풀을 베고 있나? 나무를 하고 있나? 제어기가 없으니 이제까지 초나라에는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
齊桓公謂鮑叔曰:「寡人欲鑄大鐘,昭寡人之名焉,寡人之行,豈避堯舜哉?」鮑叔曰:「敢問君之行?」桓公曰:「昔者吾圍譚三年,得而不自與者,仁也;吾北伐孤竹,剗令支而反者,武也;吾爲葵丘之會,以偃天下之兵者,文也;諸侯抱美玉而朝者九國,寡人不受者,義也.然則文武仁義,寡人盡有之矣,寡人之行豈避堯舜哉!」鮑叔曰:「君直言,臣直對;昔者公子糾在上位而不讓,非仁也;背太公之言而侵魯境,非義也;壇場之上, 於一劍,非武也;姪 不離懷 ,非文也.凡爲不善遍於物不自知者,無天禍必有人害,天處甚高,其聽甚下;除君過言,天且聞之.」桓公曰:「寡人有過乎?幸記之,是社稷之福也,子不幸敎,幾有大罪以辱社稷.」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포숙鮑叔에게 묻기를,. "과인은 큰 종을 하나 주조鑄造하여 과인의 이름을 밝게 들어내고 싶소은데 과인의 이런 행실이이, 어찌 요순堯舜을 피해 가는 것이겠는가?" 하였다.포숙이 말하기를. "감히 묻습니다만 두군의 행적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니. 환공이 대답하기를. "전에 나내가 담譚땅을 삼년이나 포위한 끝에, 이를 취득하였으나, 나의 소유로 하지 않았으니, 이는 인仁이요. 북쪽으로 고죽국孤竹國을 칠 때에, 영지令支를 정복하고 돌아 왔으니, 이는 무武요. 과인은 규구葵丘에서 제후를 모아 회맹을 하여, 천하의 병력을 내게 모두 엎드리게 하였으니, 이는 문文이며, 제후로서 미옥美玉을 가지고 내게 조견朝회하러 찾아온 나라가 아홉이나 되었지만, 과인은 이를 받지 않았으니, 이는 의義요. 문무인의文武仁義를, 과인은 모두 지니고 있는 것이외다. 어찌 과인의 행적이 요순堯舜에 미치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소?" 하였다 포숙이 말하기를. "두군께서는 사실대로 말씀하시니, 저도 곧 사실대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날 공자 규糾는 윗자리에 오르려 했을 때 이를 양보하지 않았으니, 이는 인仁이 아닙니다. 또한 태공太公의 말을 저버리고, 노魯나라 땅을 침범하였으니, 이는 의義가 아닙니다. 회의 석상에서, 칼 하나에 굴복하셨으니, 이는 무武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자들 틈에서 그 품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문文이 아닙니다. 무릇 만물에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르고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이는, 비록 하늘의 재앙이 없다고 할지라도 사람이 해치려 할 것입니다. 하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있으나, 그 듣는 것은 지극히 낮은 곳에 이릅니다. 그러니 주군의 잘못된 말을 버린다면, 하늘이 들을 것입니다" 하니 환공이 말하기를, "과인에게 그러한 허물이 있었구려! 다행히 옛일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주시니, 이는 바로 이 나라 사직의 복입니다. 선생께서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면, 하마터면 큰 죄를 지어 사직을 욕되게 할 뻔 하였구료!"하였다
楚昭王欲之荊臺游,司馬子 進諫曰:「荊臺之游,左洞庭之波,右彭 之水;南望獵山,下臨方淮.其樂使人遺老而忘死,人君游者盡以亡其國,願大王勿往游焉.」王曰:「荊臺乃吾地也,有地而游之,子何爲絶我游乎?」怒而擊之.於是令尹子西,駕安車四馬,徑於殿下曰:「今日荊臺之游,不可不觀也.」王登車而 其背曰:「荊臺之游,與子共樂之矣.」步馬十里,引 而止曰:「臣不敢下車,願得有道,大王肯聽之乎?」
초楚나라 소왕昭王이 형대荊臺로 유람을 가려고 하자,사마자기司馬子綦가 나아가 간하하여 말하기를, "형대荊臺의 경괸은, 왼쪽에는 동정호(洞庭湖)의 파도가 있고, 오른쪽에는 팽려호彭蠡湖의 물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엽산獵山이 바라 보이고, 아래로는 방회方淮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즐거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늙음과 죽음을 잊게 할 만한 곳입니다. 임금으로서 그곳에 놀이를 갔던 분들은 모두 나라를 망가뜨렸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더 소왕이 말하기를,"형대는 나의 땅이다. 내 땅에 내가 가겠다고 하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나의 유행을 막으려 하는가?" 하고 노하여 사마자기를 쳐 버렸다. 이때 영윤인 자서子西가, 네 필의 좋은 말이 끄는 좋은 수레를 몰고, 급히 대궐로부터 달려 와서 말하기를, "오늘 형대의 놀이에, 싣도 참가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하니 왕은 수레에 올라 그의 등을 두드리며 . "형대의 놀이에, 그대와 함께 그 즐거움을 나눕시다!" 하였다.그렇게 십리 쯤 오자, 자서는 고삐를 당겨 수레를 멈추고 말하기를, "신은 더는 감히 수레를 몰 수가 없습니다. 어떤 도(道)를 하나 얻고 싶은 데, 대왕께서 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王曰:「第言之.」令尹子西曰:「臣聞之,爲人臣而忠其君者,爵祿不足以賞也;爲人臣而諛其君者,刑罰不足以誅也.若司馬子 者忠君也,若臣者諛臣也;願大王殺臣之軀,罰臣之家,而祿司馬子 .」王曰:「若我能止,聽公子,獨能禁我游耳,後世游之,無有極時,奈何?」令尹子西曰:「欲禁後世易耳,願大王山陵崩阤,爲陵於荊臺;未嘗有持鐘鼓管絃之樂而游於父之墓上者也.」於是王還車,卒不游荊臺,令罷先置.孔子從魯聞之曰:「美哉!令尹子西,諫之於十里之前,而權之於百世之後者也.」
소왕이 말하기를. "차례대로 말해 보시오!" 하니 자서가 말하기를. "신이 들으니, 신하된 자로서 그 임금에게 충성을 다한 자에게는, 작록(爵祿)만으로는 그 상이 충분하지 못하며, 또한 신하로서 그 인군에게 아첨하는 자에게는, 형벌刑罰)만으로는 그 값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지금 보면 사마자기(司馬子綦) 같은 인물은 임금에게 충성을 다한 자이요, 신과 같은 사람은 인군에게 아첨하는 신하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저의 몸을 죽여 주시고, 저의 집안에도 형벌을 내려 주십시오. 사마자기에게는 작록을 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다.소왕이 묻기를. "만일 내가 능히 여기서 놀이를 그쳐, 그대의 말을 듣는다고 합시다. 그러나 이는 오직 나 혼자만의 놀이를 그만 두는 것뿐이오. 나의 후대에 나처럼 놀이에 올 자가, 때도 없이 끝없이 있을 텐데, 그것은 어찌하겠소?"하였다 자서가 말하기를. "후세대에 이런 유행을 금지시키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원컨대 산릉山陵이 무너지고 났을 때, 대왕께서는 그때 형대에 능을 쌓으십시오. 조상의 무덤 곁에 악기를 가지고 와서 놀이를 하거나, 즐거워 하는 자는 일직이 없었습니다!" 소왕은 수레를 돌렸다, 마침내 형대의 놀이를 그만 두고, 미리 갖추었던 시설 물을 모두 철수하게 하였다 .. 공자孔子가 노魯나라에서 이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훌륭하도다! 영윤 자서子西여! 십리도 채 가기 전에, 이를 말렸으니 그 권능은 백 세 후에 드리우리라!"하였다.
荊文王得如黃之狗,箘簬之矰,以畋於雲夢,三月不反;得舟(一作丹)之姬,淫期年不聽朝. 保申諫曰:「先王卜以臣爲保吉,今王得如黃之狗,箘簬之矰,畋於雲澤,三月不反;及得舟之姬,淫期年不聽朝,王之罪當笞.」匍伏將笞王,王曰:「不穀免於襁褓,託於諸侯矣,願請變更而無笞.」保申曰:「臣承先王之命不敢廢,王不受笞,是廢先王之命也;臣寧得罪於王,無負於先王.」王曰:「敬諾.」乃席王,王伏,保申束細箭五十, 而加之王背,如此者再,謂王起矣.王曰:「有笞之名一也.」遂致之.
형荊[楚]의 문왕文王이 이름난 사냥개인 여황如黃과, 유명한 화살인 균로箘簬를 얻어가지고, 운몽雲夢으로 사냥을 가서, 석 달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또, 주지희舟之姬라는 여자를 어게 됨에 이를러, 음일에 빠져 일년동안이나, 조정의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보신保申이 간하여 말하기를,. "선왕께서 점을 치셔서 신으로 하여금 대왕을 보위保衛하게 함이 길하다는 점괘를 얻었었습니다. 지금 왕께서는 여황이라는 사냥개와, 균로箘簬라는 유명한 화살을 얻어, 운몽雲夢에 사냥을 가서, 석 달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는 중에, 급기야 주지희舟之姬라는 여자를 얻게 됨에 미치어, 그만 음일에 빠져 일년동안이나,조회를 하지 않으니, 왕의 죄는 바로 태형笞刑에 합당합니다" 하고는 포복匍伏하여 왕에게 태형을 가하려고 하였더니. 왕이 말하기를 "과인[不穀]이 겨우 강보襁褓를 면한 나이에, 이미 제후에 올랐습니다. 원컨대 다른 방법으로 하시고 태형만은 피해 주십시오!" 하였다 보신이 말하기를 "저는 선왕으로부터 받은 명을 감히 억일 수 없습니다. 주군께서 만일 태형을 거부하신다면, 이는 선왕의 명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신은 차라리 대왕께 죄를 짓는 한이 있더라도, 선왕을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 "공경히 승락하리다" 하고는. 왕이 임석하여 업드렸다. 보신은 가는 대나무 화살 오심개를 묶어서, 꿇어 앉아 왕의 등 위에 얹어 놓았다. 이렇게 두 번을 반복한 다음, 왕을 일어나게 하였는데. 왕이 말하기를 " 태형을 받았다는 명분은 맞은 것이나 같습니다"하였다. 마침내 태형을 지극히 하고 나서
保申曰:「臣聞之,君子恥之,小人痛之;恥之不變,痛之何益?」保申趨出,欲自流,乃請罪於王,王曰:「此不穀之過,保將何罪?」王乃變行從保申,殺如黃之狗,折箘簬之矰,逐舟之姬,務治乎荊;兼國三十,令荊國廣大至於此者,保申敢極言之功也.蕭何王陵聞之曰:「聖主能奉先世之業,而以成功名者,其惟荊文王乎!故天下譽之至今,明主忠臣孝子以爲法.」
보신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군자에게는 부끄러움을 알게 하고, 소인에게는 아픔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부끄러운 줄 알면서 고치지 못하고, 아픈 것만 알고 바로 잡지 못한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말하고, 급히 밖으로 나가, 유형을 자청하며 왕에게 죄로 다스려 줄 것을 청원 하였더니,왕이 말하기를, "이는 모두 과인의 잘못입니다. 그대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왕은 보신의 말을 따라서 행동을 고치고, 여황이란 사냥개를 죽여 버리고, 균로라는 화살도 꺾어 버렸다. 그리고 주지희도 멀리 쫓아내고, 나라 다스리기에 힘썼다. 이리하여 겸병한 나라가 삼십이나 될만큼, 국토를 넖이게 한 것은, 보신이 감히 극언極言으로 간언한 공이었다. 소하蕭何와 왕릉王陵이 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하기를,."어진 임금으로서 능히 선세先世의 업을 이어,공명功名을 이룬 자는, 오직 형나라 문왕 뿐이다. 그러므로, 세상사람들이 지금껏 그를 추앙하며,어진 임금과 충성스러운 신하와 효성스러운 아들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그를 모범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晉平公使叔向聘於吳,吳人拭舟以逆之,左五百人,右五百人;有繡衣而豹裘者,有錦衣而狐裘者,叔向歸以告平公,平公曰:「吳其亡乎!奚以敬舟?奚以敬民?」叔向對曰:「君爲馳底之臺,上何以發千兵?下何以陳鐘鼓?」諸侯聞君者,亦曰『奚以敬臺,奚以敬民?』所敬各異也.」於是平公乃罷臺.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숙향叔向을 오吳에 사절로 보냈다 오나라에서는 배를 청결히 청소하고, 숙향을 맞이하는데,그 왼 쪽과 오른 쪽에 각각 5백인 씩의 사람들을 도열시켜 환영하였다. 환영하는 사람들 중에는 어떤 이는 비단 옷에 표범 가죽의 갓옷을 입었고, 또 어떤 이들은 비단옷에 여우가죽의 갓옷을 입고 있었다. 숙향은 돌아와 평공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하였더니 , 평공이 말하기를, "오나라는 망할 것이다! 배를 공경할 것인가! 백성을 공경할 것인가?"하였다 숙향이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치저馳底의 누대樓臺를 지으면서, 위로 어찌 천병千兵을 징발할 수가 있으며, 아래로 종고鐘鼓를 베풀 수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제후가 소문을 듣는다면, 말하기를, ‘누대를 공경할 것인가! 백성을 공경할 것인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이는 모두가 각각 무엇을 중히 여기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고 말하니, 진晉 평공平公이 그만, 누대짓는 일을 그만두었다.
趙簡子擧兵而攻齊,令軍中有敢諫者罪至死,被甲之士,名曰公盧,望見簡子大笑;簡子曰:「子何笑?」對曰:「臣有夙笑.」簡子曰:「有以解之則可,無以解之則死.」對曰:「當桑之時,臣鄰家夫與妻俱之田,見桑中女,因往追之,不能得,還反,其妻怒而去之,臣笑其曠也.」簡子曰:「今吾伐國失國,是吾曠也.」於是罷師而歸.
조간자趙簡子가 군사를 동원하여 제齊나라를 공격하려 나가갈 때, 군중에 누구든지 감히 간언하는 자가 있으면 그 죄로 죽음에 이르리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런데 갑옷을 입은 병사 중에, 공로(公盧)라는 자가 , 멀리 간자를 보고 크게 웃웃었다. 간자가 기이히 여겨 묻기를. "그대는 어찌 웃는가?" 공로가 말하기를, "신은 원래 잘 웃는 버릇이 있습니다" 하였다 간자가 말하기를 "그 까닭을 밝히면 용서하겠지만, 대지 못하면 너를 죽이리라" 하였다. 이에 공로가 대답하기를, . "당시 뽕을 딸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저의 이웃 집 사내가 그 아내와 함께 밭에 나가 뽕을 따다가 뽕밭에 있는 여자를 보고, 자기 아내 모르게 그 여자를 쫓아 갔습니다. 쫓아갔으나 여자를 놓치고, 돌아왔습니다. 그 아내가 이 일을 알고 노하여 집을 나갔습니다. 저는 그 문득 그 사내가 분별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웃은 것입니다" 하였다. 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기를.. "지금 내가 남을 치다가 나라를 잃는다면, 그것이 곧 그 분별 없는 사내이와 같겠구나!" 하고 군대를 돌려 귀환헀다.
景公爲臺,臺成,又欲爲鐘,晏子諫曰:「君不勝欲爲臺,今復欲爲鐘,是重斂於民,民之哀矣;夫斂民之哀而以爲樂,不祥.」景公乃止.
경공景公이 누대를 지었는데, 누대를 완성하고 나자, 또 이번에는 종鐘을 주조하겠다고 하였다. 안자晏子가 간하여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누대를 만들 욕심을 이기지 못하시더니,이제는 종을 주조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백성에게 부렴을 무겁게 하여 백성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대체, 부렴으로 백성이 슬퍼하는 것을 가지고 나의 즐거음을 삼겠다는 것이니, 상서롭지 못한 일입니다" 라고 말하자 경공은 하던 일을 중지하였다.
景公有馬,其 人殺之,公怒,援戈將自擊之,晏子曰:「此不知其罪而死,臣請爲君數之,令知其罪而殺之.」公曰:「諾.」晏子擧戈而臨之曰:「汝爲吾君養馬而殺之,而罪當死;汝使吾君以馬之故殺 人,而罪又當死;汝使吾君以馬故殺人,聞於四 諸侯,汝罪又當死.」公曰:「夫子釋之!夫子釋之!勿傷吾仁也.」
제齊나라 경공景公은 자기의 말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을 관리하는 마부의 실수로 말이 죽었다 공이 창을 잡고 장차 친히 그를 찌르려고 하였다. 안자晏子가 말하기를." 이렇게 하면 그사람은 그 죄를 알지 못한 채 죽는 것입니다 신이 요청하건대 주군께서 혜아리십시오 그에게 자기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한 후에 죽이십시오“ 하고 말했다. 경공이 말하기를 "좋소!" 하였다 안자는 창을 들고 그에게 다가가서 말하기를, "너는 우리 인군을 위해 말을 기르면서 그 말을 죽게 하였으니, 그 죄는 마땅히 죽어 마땅하다. 우리 인군으로 하여금 말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하였으니, 그 죄 또한 죽어 마땅하다. 너는 우리 인군으로 하여금 말 때문에 사람을 죽인 일로, 사방 제후에게 알려지게 하였으니, 죄 또한 죽어 마땅하다" 하였다. 경공이 말하기를, "선생! 그를 풀어 주시오! 선생! 그를 풀어 주시오. 나의 인덕仁德에 손상이 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오!" 하였다.
景公好弋 ,使燭雛主鳥而亡之,景公怒而欲殺之,晏子曰:「燭雛有罪,請數之以其罪,乃殺之.」景公曰:「可.」於是乃召燭雛數之景公前曰:「汝爲吾君主鳥而亡之,是一罪也;使吾君以鳥之故殺人,是二罪也;使諸侯聞之以吾君重鳥而輕士,是三罪也.數燭雛罪已畢,請殺之.」景公曰:「止,勿殺而謝之.」
제齊나라 경공景公은 주살로 새 잡는 것을 좋아 하였다. 잡은 새를 촉추燭雛로 하여금 맡아 기르게 하였는데, 어쩌다가 죽이게 되었다. 경공이 성이 나서 촉추를 죽이려고 하니, 안자가 말하기를, "촉추는 죄가 있습니다. 청컨대 우선 그의 죄를 일일이 들어 책망한 후에에, 그를 죽이십시오!"하였다 경공이 말하기 "그리 하지요!"하였다. 안자는 촉추를 경공 앞에 불러 놓고 말하기를 “너는 우리 인군을 위하여 새를 기르는 일을 맡아 보면서, 그 새를 죽였으니,이것이 첫 번째의 죄다. 또 우리 인군으로 하여금 새를 연유 하여 사람을 죽이게 하였으니, 이것이 두 번째의 죄이다. 제후들로 하여금 우리 인군이 새를 중히 여기고 사인을 경시한다는 것을 알게 하였으니,이것이 세 번째의 죄이다. 촉추의 죄대한 문초가 끝났으니, 청컨대 그를 죽이십시오!"하니, 경공은 말하기를, "멈추시오! 죽이지 말고 그를 풀어 주시오!"하였다
景公正晝被髮乘六馬,御婦人出正閨,刖跪擊其馬而反之,曰:「爾非吾君也.」公 而不朝,晏子睹裔敖而問曰:「君何故不朝?」對曰:「昔者君正晝被髮乘六馬,御婦人出正閨,刖跪擊其馬而反之曰:『爾非吾君也.』公 而反,不果出,是以不朝.」晏子入見,公曰:「昔者寡人有罪,被髮乘六馬以出正閨,刖跪擊其馬而反之,曰:『爾非吾君也.』寡人以天子大夫之賜,得率百姓以守宗廟,今見戮於 以辱社稷,吾猶可以齊於諸侯乎?」晏子對曰:「君無惡焉.臣聞之,下無直辭,上無隱君;民多諱言,君有驕行.古者明君在上,下有直辭;君上好善,民無諱言.今君有失行,而刖跪有直辭,是君之福也,故臣來慶,請賞之,以明君之好善;禮之,以明君之受諫!」公笑曰:「可乎?」晏子曰:「可.」於是令 倍資無正,時朝無事.
경공景公이 낮에 머리를 풀어 흩뜨리며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스레를 타고, 부인을 동반하여 정규正閨를 나가고 있을 때 월형을 당한 죄인이 꿇어 앉아 있다가, 그 말을 때리면서 분한 듯 말하기를. "너는 나의 인군이 아니다!"하였다. 공은 그 말에 부끄러워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 안자晏子가 예오裔敖라는 사람을 만나서 이를 물어 보았다. "인군은 무슨 연고로 조회에 노오지 않는 것입니까?" 예오가 대답하기를. "지난 번 낮에 머리를 풀어뜨리고 여섯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부인을 동반하고 정규正閨를 나서는데, 월형 받은 사람이 인주의 말을 때리면서 말하기를, ‘너는 우리 인군이 아니다!’라 했다고 합니다. 공이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돌아와서, 감히 외출을 하지 않고 조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하였다, 안자가 전내애 들어가 뵈니, 경공이 말하기를 "지난 번 내가 죄를 지었소이다. 머리를 풀어 늘러뜨리고 육마를 몰고 정규에서 나오고 있는데, 월형을 받은 자가 말을 때리면서, 말하기를, ‘너는 우리 임금이 아니다’라고 하더이다. 과인은 천자天子의 대부大夫로서 사명賜命을 받아, 백성들을 거느리고 종묘를 지키는 자리에 있는 터에 월형刖刑 당한 자로부터 사직이 욕을 당하였으니, 내가 이 제나라를 다른 제후들에게 어떻게 보여야 하겠오이까?" 하였다. 안자가 말하기를, "주군께서는 잘못이 없습니다. 신이 들으니, 아래로 직언을 해주는 자가 없고, 위로 인군을 감싸주는 자가 없으면, 백성들은 말하기를 꺼려 하고, 인군은 교만해진다고 합니다. 옛적에 명철한 인주가 위에 있으면, 아래에는 직언을 하는 신하가 있었고, 인군이 위에서 선善을 좋아하면, 백성은 거리낌 없이 말을 하였습니다. 지금 주군께서 잘못된 행동을 하였을 때, 월형 당한 자가 직언을 하였다면, 이는 곧 주군의 복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와서 축하를 드리는 것이니, 청컨대 그에게 상을 내려서, 주군께서 선을 좋아한다는 것을 널리 밝히시기를 바랍니다. 그를 예우하여, 주군께서 능히 간언을 받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밝혀 보이는 것입니다" 경공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그래도 되겠습니까?"하고 물엇다.안자가 말하기를, "됩니다!"하였다 이 때에 그 월형 당한 꿇어 앉은 사람에게 록祿을 갑절을 더해 주고 세금의 면제도를 명하였다 당시의 조정이 무사 하였다.
景公飮酒,移於晏子家,前驅報閭曰:「君至」.晏子被玄端立於門曰:「諸侯得微有故乎?國家得微有故乎?君何爲非時而夜辱?」公曰:「酒醴之味,金石之聲,願與夫子樂之.」晏子對曰:「夫布薦席,陳簠簋者有人,臣不敢與焉.」公曰:「移於司馬穰 之家.」前驅報閭曰:「君至」.司馬穰 介胄操戟立於門曰:「諸侯得微有兵乎?大臣得微有叛者乎?君何爲非時而夜辱?」公曰:「酒醴之味,金石之聲,願與夫子樂之.」對曰:「夫布薦蓆,陳簠簋者有人,臣不敢與焉.」公曰:「移於梁丘據之家.」前驅報閭曰:「君至」.梁丘據左操瑟,右挈竽,行歌而至,公曰:「樂哉!今夕吾飮酒也,微彼二子者何以治吾國!微此一臣者何以樂吾身!賢聖之君皆有益友,無偸樂之臣.」景公弗能及,故兩用之,僅得不亡.
경공景公이 술을 마시다가, 안자晏子의 집으로 옮겨서 이어가려고 하였다. 시종을 기켜 안자의 집에 달려가서 알리게 하여 말하기를, "주군이 이리로 오십니다!"하였다 안자가 현단玄端[검은 겉옷]을 입고 문 앞에 서서 말하기를, "다른 제후의 나라에 아무 일 없습니까? 이 나라에도 아무런 일이 없습니까? 주군께서는 무슨 일로 때도 아닌 밤에 이렇게 욕된 일을 벌리십니까?“하니, 경공이 말하기를. "술향기와, 음악 소리가 어울리지요, 그대와 함께 즐기고 싶구료!" 안자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무릇 좋은 자리를 깔고 앉아 음식과 기물을 진설하고 시종이 옆에 있어도, 신은 감히 참여하지 못합니다" 하였다. 경공이 말하기를, "사마양저司馬穰苴의 집으로 가자"하고 앞서 달려가서 그쪽에 알리게 히기를, "주군께서 오십니다!"하였다 사마양저는 갑옷을 입고 창을 잡고 문앞에 서서 말하기를 "제후들 중에 군사에 관한 일 없습니까 대신 중에 반역에 관한 일 없습니까? 주군께서 어찌 때도 아닌 밤에 욕되게 하십니까?”하고 말하자 경공이 말하기를. "술 향기와, 음악 소리는 어울리지요, 그대와 함께 즐기고 싶구료!"하였다 사마양저가 말하기를, "무릇 좋은 자리를 깔아 놓고, 음식과 기물을 진설해 놓고 시종이 옆에 있더라도, 신은 감히 참여하지 못합니다"하였다 경공이 말하기를 "양구거梁丘據의 집으로 가자 “하였다. 시종이 앞서 가서 양구거의 집에 알리기를, "주군께서 오십니다!"하였다. 양구거는 왼손으로는 거문고를 잡고, 오른 손으로는 우竽라는 악기를 켜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나오는 것이었다. 경공이 말하기를. "즐겁도다! 오늘 저녁 나의 술맛이여!“하였다 , 저 두 사람이 없었다면 나라는 어떻게 다스릴 수 있었으며, 또 이런 신하가 없었다면 내 몸이 무엇을 낙으로 삼을 수 있으리오?" 어질고 훌륭한 인주에게는 모두가 도움이 되는 벗만 있을 뿐, 즐거움에만 빠지게 하는 신하는 없었다. 경공은 그런 어진 인군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나마 두 가지는 모두 다 겸용할 수 있는 아량이 있었기에, 겨우 망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吳以伍子胥孫武之謀,西破强楚,北威齊晉,南伐越,越王句踐迎擊之,敗吳於姑蘇,傷闔廬指,軍卻,闔廬謂太子夫差曰:「爾忘句踐殺而父乎?」夫差對曰:「不敢.」是夕闔廬死,夫差旣立爲王,以伯嚭爲太宰,習戰射,三年伐越,敗於夫湫,越王句踐乃以兵五千人(一作入)棲於會稽山上,使大夫種厚幣遣吳太宰 以請和,委國爲臣妾,吳王將許之,伍子胥諫曰:「越王爲人能辛苦,今王不滅,後必悔之.」吳王不聽,用太宰 計與越平.其後五年,吳王聞齊景公死,而大臣爭寵,新君弱,乃興師北伐齊,子胥諫曰:「不可.句踐食不重味,弔死問疾,且能用人,此人不死,必爲吳患;今越,腹心之疾,齊猶疥癬耳,而王不先越,乃務伐齊,不亦謬乎?」吳王不聽,伐齊,大敗齊師於艾陵,遂與鄒魯之君會以歸,益疏子胥之言.
오吳나라는 오자서伍子胥와 손무孫武의 계책을 써서, 서로는 강력한 초나라를 격파하고, 북으로는 제와 진을 위협하고, 남으로는 월나라를 정벌하였으나.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나라의 군사를 맞아 , 오나라를 고소姑蘇에서 패퇴시켰는데,. 오나라 인주 합려의 발가락이 상해된 뒤에야, 군사를 철수하였다. 패배한 합려가 태자인 부차에게 말하기를,. "너는 구천이 너의 아비를 죽인 것을 잊겠느냐?"하고 묻자, 이에 부차가 대답하기를."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하였다. 이날 저녁에 합려는 죽었다. 부차가 왕위에 오르자, 백비伯嚭를 태재太宰로 삼고, 훈련을 거듭하여. 삼년 만에 월을 정벌하여, 부추夫湫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월왕 구천은 겨우 잔병 오천 명만을 이끌고, 회계산會稽山으로 숨어 들어갔다. 쫓겨간 월왕은 대부 종후種厚를 시켜서 예물을 오나라 태재인 백비에게 보내고 화해를 청하면서, 나라를 다 맡기고 신첩의 나라가 되겠노라고 화해를 요청하였다 오왕이 이를 허락하려고 하자, 오자서가 나서서 간하기를. "월왕은 그 사람됨이 신고를 견뎌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파멸하지 않으면, 뒷날 틀림없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하였으나 오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테제인 백비의 계책을 따라서 월과 강화하였다. 그로부터 오년 뒤, 부차는 제나라 경공景公이 죽은 뒤에 대신들이 정권을가지고 싸우며, 새로 즉위한 인주가 나약하다는 말을 듣고, 이에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정벌하겠다고 별렀다. 그러자 역시 오자서가 나아가 말하기를, " 옳지 않습니다. 월왕 구천은 음식도 간소하게 먹으며, 조문과 문병을 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는 장차 그 백성들을 잘 활용하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죽지 않는 한, 반드시 오나라의 근심입니다. 지금 월나라는, 뱃속의 병이라면,, 제나라는 피부병[疥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왕께서는 뱃속의 병인 월을 먼저 치지 않고, 피부병에 불과한 제에 대한 정벌을 힘쓰시니,, 이 어찌 또한 잘못 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제나라 정벌에 나섰다. 애릉艾陵에서 제나라 군사를 패멸하고 마침내 추鄒와 노魯의 인주를 불러 회맹을 한 후에 개선하였다. 오자서의 말은 오왕의 귀에 더욱 소원해졌다.
其後四年,吳將復北伐齊,越王句踐用子胥之謀,乃率其衆以助吳,而重寶以獻遺太宰嚭 ,太宰嚭 旣數受越賂,其愛信越殊甚,日夜爲言於吳王,王信用 之計,伍子胥諫曰:「夫越,腹心之疾,今信其游辭僞詐而貪齊,譬猶石田,無所用之,盤庚曰:『古人有顚越不恭』.是商所以興也,願王釋齊而先越,不然,將悔之無及也.」吳王不聽,使子胥於齊,子胥謂其子曰:「吾諫王,王不我用,吾今見吳之滅矣,女與吳俱亡無爲也.」乃屬其子於齊鮑氏而歸報吳王.
그로부터 사년이 지난 뒤에,오나라는 다시 북쪽으로 제나라 정벌에 나섰는데, 월왕 구천은 자공子貢의 모책책을 적용하였다. 월나라 군사를를 통솔하고 오나라를 도우면서, 귀중한 보물을 다시 태재인 백비에게 헌납하였다. 태재 백비는 이미 자주 월나라의 뇌물을 받은 터라, 월나라를 아끼고 신임하는 것이 유달리 심했다. 낮이나 밤이나 월나라를 위해 오왕 부차를 달래고, 오왕 역시 백비의 계책을 믿었다. 오자서가나서서 간하여 말하기를 "무릇 월나라는, 뱃속의 병입니다. 지금 진실로 떠도는 말인즉, 거짓과 사기의 달콤한 말에 속아 제나라를 탐내고 있으나, 이는 비유하면 돌밭과 같은 것으로,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반경盤庚이 말하기를 ‘옛사람에 도리에 벗어나 윗사람의 명을 따르지 않는 자가 있었었다고 하는데, 이는 상商나라가 흥하게 된 까닭입니다.
원컨대 왕께서는 제나라 공격을 멈추시고 대신 월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케 하기를 먼저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장차 후회해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하였으나 오왕 부차는 이 말을 듣지 않고, 자서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하였다. 오자서는 자기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주군에게 간하였으나, 주군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 오나라가 장차 멸망할 것이다 너와 오나라가 함께 망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하고, 그 아들과 함께 제나라에 가서 아들을 포씨鮑氏에게 맡기고 돌아와서 오왕에게 보고하였다.
太宰嚭 旣與子胥有隙,因讒曰:「子胥爲人,剛暴少恩,其怨望猜賊爲禍也,深恨前日王欲伐齊,子胥以爲不可,王卒伐之,而有大功,子胥計謀不用,乃反怨望;今王又復伐齊,子胥專愎强諫,沮毁用事, 幸吳之敗,以自勝其計謀耳.今王自行,悉國中武力以伐齊,而子胥諫不用,因輟佯病不行,王不可不備,此起禍不難,且臣使人微伺之,其使齊也,乃屬其子於鮑氏.夫人臣內不得意,外交諸侯,自以先王謀臣,今不用,常怏怏,願王早圖之.」吳王曰:「微子之言,吾亦疑之.」乃使使賜子胥屬鏤之劍,曰:「子以此死.」
태재 백비는 이미 여러 가지 일로 해서 오자서와 틈이 나 있었다 인하여 백비가 오왕에게 참언을 하기를 "오자서의 사람됨은, 강포하여 은정을 모르는 자입니다. 그가 원망하거나 적의를 품는 것은 바로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날 왕께서 제나라를 치고자 하였을 때, 오자서는 옳지 않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왕께서 마침내 제를 정벌하고, 큰 성공을 거두고 돌아 오시자, 오자서는 자신의 계책이 쓰이지 않았다하여 도리어 인주를 원망합니다. 지금 왕께서 다시 제나라를 치려고 하자, 오자서는 강퍅强愎하게 이를 간하여, 이 일을 그르치려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 오나라가 패하여, 자신의 계책이 나았음을 보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급 왕께서 스스로 나서서, 나라 안의 모든 무력을 모아 제나라를 치려고 함에 있어 오자서는 자신의 간언이 받아 들여지지 않자, 이로 인하여 거짓으로 병을 핑계대고 나오지도 않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대비하지 않면 안 됩니다. 이런데서 화禍는 일어나기가 매우 쉽습니다. 또한 제가 사람을 시켜 살펴 보게 하였더니, 그가 제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에, 자기 아들을 데리고 가서 포씨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무릇 남의 신하된 자가 안에서 그 뜻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밖으로 다른 제후와 서로 교섭하며, 또한 선왕때 부터의 모신謀臣인데도, 지금 자신의 의견이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늘 앙심을 품는다고 한면, 원컨대 왕께서는 조속히 처치해야 할 줄 압니다" 왕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없었더라도, 나 역시 의심해 온 터이요! 이에 사람을 시켜 오자서에게 촉루(屬鏤)의 검을 내리면서, 말하기를 "그대는 이 칼로 자결하시오!"하였다
子胥曰:「嗟乎!讒臣宰 爲亂,王顧反誅我,我令若父 ,又若立時,諸子弟爭立,我以死爭之於先王,幾不得立,若旣立,欲分吳國與我,我顧不敢當,然若之何聽讒臣殺長者!」乃告舍人曰:「必樹吾墓上以梓,令可以爲器,而抉吾眼著之吳東門,以觀越寇之滅吳也.」乃自刺殺,吳王聞之大怒,乃取子胥屍,盛以 夷革,浮之江中,吳人憐之,乃爲立祠於江上,因名曰胥山.後十餘年,越襲吳,吳王還與戰不勝,使大夫行成於越不許,吳王將死曰:「吾以不用子胥之言至於此;令死者無知則已,死者有知,吾何面目以見子胥也?」遂蒙絮覆面而自刎.
칼을 받은 오자서가 탄식하기를, "오호라! 참신讒臣인 태재 백비伯嚭가 난을 일켰구나, 왕은 도리어 나를 죽이는구나. 나는 너의 아비를 패자로 만들어 주었고, 또한 네가 태자에 책립될 때에, 여러 공자들이 서로 태자 책립을 다투었다,나는 죽음으로 선왕인 합려에게 너를 추천하였다. 그때 거의 태자에 책립되지 못할 뻔 하지 않았던가? 네가 태자에 책립되자, 오나라를 나누어 내게 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감히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였지만, 그러던 네가 어찌 간신배의 말만 듣고 오나라를 이토록 키워 준 나를 죽이는가?"하고, 자기 집 하인에게 말하기를, "꼭, 내 묘소에 가래나무梓를 심어다오. 그래서 그 나무가 자라면 오왕의 관을 만들리라. 그리고, 내 눈동자를 도려내어 오나라의 동쪽 문에 달아 다오. 월나라 군대가 밀려들어와서 이 오나라를 멸하는 것을 지켜 보리라!"하고, 곧, 스스로 칼로 몸울 찔려 죽었다. 오왕 부차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오자서의 시체를 거두어 치이鴟夷의 가죽 자루에 넣어서, 강물에 띄워 버렸다. 오나라 사람들이 이를 가련히 여겨, 강가에 사당을 짓고, 인하여 이름을 서산胥山이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다시 십년, 월나라가 오나라를 습격해 왔다. "오왕 부차는 여전히 맞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대부로 하여금 월나라에 강화講和를 제의하게 하였지만, 월나라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오왕은 장차 죽음에 이르게 되자 말하기를. "내가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죽은 자가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뿐이지만, 죽은 자도 아는 것이 있다면, 내가 무슨 면목으로 오자서를 볼 수가 있으리?"하고 마침내 얼굴에 솜을 뒤집어 쓴 채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齊景公有臣曰諸御鞅,諫簡公曰:「田常與宰予,此二人者甚相憎也,臣恐其相攻;相攻雖叛而危之,不可.願君去一人.」簡公曰:「非細人之所敢議也.」居無幾何,田常果攻宰予於庭,賊簡公於朝,簡公 焉太息,曰:「余不用 之言以至此患也.故忠臣之言,不可不察也.」
제나라 간공簡公의 신하 중에 제어앙諸御鞅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가 간공簡公에게 말하기를,. "전상田常과 재여宰予 이 두 사람은 서로 증오하여 사이가 극히 나쁩니다. 신은 그들이 서로 싸울까 걱정이 됩니다. 서로 싸운다면 비록 서로 배반되는 것일지라도 나라가 위험해 질테니. 그리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원컨대 한 사람을 제거하십시오!"하고 말하자, 간공이 말하기를
하찮은 자가 감히 의론할 일이 아니다"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상이 과연 조정에서 재여를 공격하고 조회에서 간공에게 드리대어 헐뜯으니, 간공이 한숨을 크게 쉬면서, 말하기를, "내가 제어앙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그러므로 충신의 말은,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고 하였다,
魯襄公朝荊,至淮,聞荊康王卒,公欲還,叔仲昭伯曰:「君之來也,爲其威也;今其王死,其威未去,何爲還?」大夫皆欲還,子服景伯曰:「子之來也,爲國家之利也,故不憚勤勞,不遠道塗,而聽於荊也,畏其威也!夫義人者,固將慶其喜而弔其憂,況畏而聘焉者乎!聞畏而往,聞喪而還,其誰曰非侮也. ?姓是嗣王,太子又長矣,執政未易,事君任政,求說其侮,以定嗣君,而示後人,其 滋大,以戰小國,其誰能止之?若從君而致患,不若違君以避難,且君子計而後行,二三子其計乎?有御楚之術,有守國之備,則可;若未有也,不如行!」乃遂行.
노魯나라 양공襄公이 형荊나라로 조알朝謁을 가는 도중,회淮 땅에 이르렀을 때, 형나라 강왕康)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양공은 되돌아 가려고 하자, 숙중소백叔仲昭伯이 말하기를, "주군께서 형나라에 가려고 한 것은, 그 나라의 위세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그 나라의 왕은 죽었지만, 그 위세가 없어 진 것은 아닙니다. 어찌 되돌아 가려고 하십니까?"히고 만류하였지만, 대부들은 모두 되돌아 가고 싶어하였다.. 자복경백子服景伯이 나와서 말하기를. "그대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피곤함을 기탄하지 않고 , 그 먼길을 멀다 아니하고 가서, 형나라의 의견을 들으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형나라의 위세가 두렵기도 한 것이였겠지요만, 대체 의로운 사람은, 진실로 남의 경사를 기뻐하고 남의 슬픔을 위로하는 법압니다. 하물며 두려운 상대가 초빙해 준 처지임에야 더구나 모른체 하겠습니까? 두려워서 찾아가는 길에, 저 나라에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발길을 돌린다면, 그 누가 모멸당했다는 심정이 아니겠습니까? 미성羋姓은 사왕의 성씨요, 태자도 장성 하였습니다, 그쪽의 집정하는 신료들도 바뀌지 않았으며 사왕을 섬기며 정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저들에게는 이 모욕이 사왕이 정해진 뒤에 뒷 사람에게 알려진다면 우리에 대한 원한이 속 깊이 젖어 들 것입니다. 작은 나라에 대한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능히 이를 막아 내겠습니까? 지금 인군의 말을 들어 주고 나중에 환난을 만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임금의 뜻을 위반하더라도 뒤에 올 재난을 피하는 것이 낫습니다. 또 군자는 계획을 세운 후에 행동에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여러 대부들께서는 어떠한 계획이나 대비책이 있습니까? 초나라를 방어할 책략과, 나라를 지켜낼 대비가 있다면, 돌아가도 좋습니다. 만일 아직 그러한 대책이 없다면, 돌아가는 것이 문상을 가는 것만 못합니다"하고 말하자 이에 마침내 이어 곧장 가기로 하였다.
孝景皇帝時,吳王濞反,梁孝王中郎枚乘字叔聞之,爲書諫王,其辭曰:「君王之外臣乘,竊聞得全者全昌,失全者全亡.舜無立錐之地,以有天下;禹無十戶之聚,以王諸侯.湯武之地,方不過百里;上不絶三光之明,下不傷百姓之心者,有王術也!故父子之道,天性也,忠臣不敢避誅以直諫,故事無廢棄而功流於萬世也,臣誠願披腹心而效愚忠,恐大王不能用之;臣誠願大王少加意念惻 之心於臣乘之言.夫以一縷之任,係千鈞之重,上懸之無極之高,下垂不測之淵,雖甚愚之人,且猶知哀其將絶也.
한漢나라 효경황제孝景皇帝 때,제후 오왕吳王인 비濞가 반란을 일으켰다. 양梁나라 효왕孝王의 중랑中郞인 매승枚乘은 자字를 숙叔이라 하였는데, 글을 지어 오왕에게 소를 올렸는데. 그 글에 말하기를. "군왕의 외신外臣인 이 매승은, 조용히 듣건대 ‘전체를 얻는 자는 전체를 창성昌盛하게 하고, 전체를 잃는 자는 전체를 실망시킨다’고 합니다. 옛날 순舜인군은 송곳을 세울 만한 땅도 없는데도, 천하를 갖게 되었고, 우禹인군은 열가구의 취락도 없이 제후의 왕이 되었으며,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의 땅은, 사방 백리를 지나지 않았으나, 위로는 삼광三光[해,달,별]의 밝음을 끊지 않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왕의 법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부자父子간의 도道는, 천성天性 인 것이며. 충신은 감히 죽음을 피하지 아니하고 직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왕업이 폐기됨이 없이 그 공이 만세에 유전되는 것입니다. 신하는 진실로 뱃속의 마음을 모두 꺼내어 우충愚忠을 바치고 싶지만, 대왕께서 능히 용심하지 못할까 염려 됩니다. 신이 진실로 바라옵건대 대왕께서 신 승이 올린 말씀에 ,조금이나마 의념하시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더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체, 가느다란 실 한 올에, 천 균鈞이나 되는 큰 무게를 매어, 위로는 저 끝없이 높은 곳에 매달아 놓고, 아래로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은 못에 들리워 놓는다면, 비록 심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또한 오히려 장차 끊어질 것을 슬퍼할 줄을 압니다"
馬方駭而重驚之,係方絶而重鎭之;係絶於天,不可復結;墜入深淵,難以復出;其出不出,間不容髮!誠能用臣乘言,一擧必脫;必若所欲爲,危如重卵,難於上天;變所欲爲,易於反掌,安於太山.今欲極天命之壽,弊無窮之樂,保萬乘之勢,不出反掌之易,以居太山之安;乃欲乘重卵之危,走上天之難,此愚臣之所大惑也!人性有畏其影而惡其跡者, 背而走無益也,不知就陰而止,影滅跡絶.欲人勿聞,莫若勿言;欲人勿知,莫若勿爲.欲湯之冷,令一人炊之,百人揚之,無益也;不如絶薪止火而已.不絶之於彼,而救之於此,譬猶抱薪救火也.養由基,楚之善射者也,去楊葉百步,百發百中,楊葉之小,而加百中焉,可謂善射矣,所止乃百步之中耳,比於臣未知操弓持矢也 .
"놀란 말을 거듭 놀라게 하는 것과 같고, 실이 곧 끊어지려 하는데 거듭 더 무거운 것을 매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 맨 위에서 끊어지면, 다시 잇기가 어렵고, 깊은 못에 빠지면, 다시 건져내기가지 어려운 것은, 꺼내든 못꺼내든 머리카락이, 용인되지 않는 작은 차이입니다. 진실로 저의 말씀을 들으시면, 단 번에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나, 기어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신다면, 위태로움은 계란을 거듭 쌓아올리눈 것과 같고,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지만. 하고 싶은 바를 고치기만 하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울 것이요, 태산보다도 안전할 것입니다. 지금 천명天命의 수壽를 다하려 하시고, 무궁한 즐거움을 닳도록 누리려 하시며, 만승萬乘의 형세를 보전하는 것이 손바닥 뒤집는 쉬운데서 벗어나지 않으며 태산의 안전한 곳에 거하면서도 도리어 달걀을 쌓아오리리는 것과 같은 위험을 타고서 하늘을 오르려는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시니, 이것이 우매한 신이 크게 당혹히 여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성품이 자기 그림자가 자기를 따라 다니는 것을 두려워 하고 몹시 싫어하였습니다.뒤로 걸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는데 그늘속에 들어가면 그림자가 사라지고 따라다니는 자취가 그친다는 것을 알지 목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말 않는 것만 못하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려면, 영위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뜨거운 물을 차게 하려고 하면서, 사람을 시켜 그 솥에 불을 때게 하고, 백 사람에게 물을 젓게 하는 것은 부질 없는 짓입니다.섶을 치우고 불을 끄는 것만 못합니다 불을 끄지 않고, 물이 차가워 지기를 구하는 것은, 비유하면 마른 섶을 짊어지고 불을 끄려 달려드는 것과 같습니다. 양유기養由基는, 초楚나라 활쏘기의 명인이었습니다. 버드나무 잎을 백보 이쪽에서 쏘아도, 백발백중했습니다. 버들잎은 작은데, 백발백중은 가히 명인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은 거리가 백보일 때의 일인 것입니다. 화살을 가지고 활을 다를 줄을 모르는 신과 견주어 보십시오
福生有基,禍生有胎;納其基,絶其胎;禍何從來哉?泰山之溜穿石,引繩久之,乃以 木;水非石之鑽,繩非木之鋸也,而漸靡使之然.夫銖銖而稱之,至石必差;寸寸而度之,至丈必過;石稱丈量,徑而寡失.夫十圍之木,始生於■,可引而絶,可擢而拔,據其未生,先其未形;磨 砥礪,不見其損,有時而盡;種樹畜長,不見其益,有時而大;積德修行,不知其善,有時而用;行惡爲非,棄義背理,不知其惡,有時而亡.臣誠願大王孰計而身行之,此百王不易之道也.」吳王不聽,卒死丹徒.
"복은 그 생기는 바탕이 있고, 화도 그 근원이 있습니다.그 바탕인 근본을 받아 들이고, 그 화의 근원을 끊으면, 화가 어디로부터 오겠습니까? 태산泰山의 물방울은 돌을 뚫으며, 끈 줄을 끌고 당기기를 오래 하년, 나무가 잘립니다 물은 금강석이 아니요, 그 끈줄은 톱날이 아닙니다. 점차적으로 천천히 갈리는 현상이 쌓여서 그리 되는 것입니다. 무릇 아주 적은 양을 저울에 달아 이를 한 섬 정도 모아보면, 바로 한 섬을 달아 본 것과 차이가 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촌 한 촌씩 재어서 한 길을 이루어 놓고 보면, 반드시 본래의 한 길과 차이가 나게 될 것입니다. 한 섬의 저울질과 한 길의 측량씩으로 하여야, 그 차이가 적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무릇 둘레가 열 길이나 되는 큰 나무는, 처음에는 약한 싹이었기에. 당기면 끊기고, 뽑으면 뽑힙니다. 아직 자라지 않았기에, 그 형태를 아직 갖추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숫돌에 연마하면, 그 닳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언제가는 다 닳아서 없어질 것입니다. 나무를 심으면 자라지만, 그 더해지는것을 볼 수는 없으나, 어느 땐가 큰 나무가 될 것입니다. 덕을 쌓는 수행도 그 선한 덕이 어떠한지 지금은 모르지만, 어느 때인가는 활용 될 것입니다. 악을행히면 비난을 당하고 의를 버리면 도리에 위배 되는데도 그 악행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어느 때인가 망하게 됩니다. 신이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려 몸소 시행하는 것은, 이것은 백 사람의 왕이라도 바꿀 수 없는 도리입니다" 하였으나, 오왕은 듣지 않았고. 마침내 단도丹徒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吳王欲從民飮酒,伍子胥諫曰:「不可.昔白龍下淸冷之淵,化爲魚,漁者豫且射中其目,白龍上訴天帝,天帝曰:『當是之時,若安置而形?』白龍對曰:『我下淸冷之淵化爲魚.』天帝曰:『魚固人之所射也;若是,豫且何罪?』夫白龍,天帝貴畜也;豫且,宋國賤臣也.白龍不化,豫且不射;今棄萬乘之位而從布衣之士飮酒,臣恐其有豫且之患矣.」王乃止.
오왕吳王이 백성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싶어하기에. 오자서가 만류하여 말하기를,"아니 됩니다. 옛날 백룡白龍이 맑고 차가운 못으로 내려와서, 물고기로 변하였습니다. 예차豫且라는 어부가 그 백룡의 눈을 쏘아 맞혔습니다. 백룡이 상제에게 하소연하니, 상제가 책하여 말하기를,‘그 당시에 너의 형상은 무엇이 되어 있었느냐?’하고 물었다. 백룡이 대답하기를,. “제가 맑고 찬 못으로 내려가서 물고기가 되어 있었지요’하니, 천제가 말하기를,”물고기는 사람들이 쏘아 잡고 싶어하는 물건이다. 만일 그렇다면, 예차에게 무슨 죄가 있겠느냐?“ 하였답니다, 대체, 백룡은, 천제가 기르는 축물畜物이요, 예차는 송宋나라의 천한 백성인데, 백룡이 물고기로 변싱하지 않았다면, 예차 또한 그를 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만승의 지위를 버리고 베옷 입은 천민을 따라 술을 나누고자 하신다니, 신은 예차와 같은 놈이 나타날까 두렵습니다"하고 아뢰자 오왕은 그 일을 그만 두었다.
孔子曰:「良藥苦於口,利於病;忠言逆於耳,利於行.故武王 而昌,紂 而亡,君無 之臣,父無 之子,兄無 之弟,夫無 之婦,士無 之友;其亡可立而待.故曰君失之,臣得之;父失之,子得之;兄失之,弟得之;夫失之,婦得之;士失之,友得之.故無亡國破家,悖父亂子,放兄棄弟,狂夫淫婦,絶交敗友.」
공자가 말하기를,"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의 치료에는 이롭고,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덕행에는 이롭다. 그러므로 무왕武王에게는 직언하는 신하들이 있었기에 나라가 창성하였고, 주왕紂王에게는 말을 못하는 자들만 있었기에 나라를 잃은 것이다. 인군에게 직언하는 사인士人이 없거나, 아버지에게 직언하는 아들이 없으며, 형에게 직언하는 아우가 없으며, 남편에게 직언하는 아내가 없으며, 사인에게 직언하는 친구가 없으면, 그 망함을 선 채로 기다리는 것과 같다.그러므로, 말하기를,“임금이 잘못하면, 신하가 바로 잡아주고, 아비가 잘못하면, 아들이 바로 잡아주며, 형이 잘못하면, 아우가 바로 잡아 주고, 남편이 잘못하면, 아내가 바로 잡아 주며, 사인이 잘못하면, 친구가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나라를 망치고 집을 망치고, 패덕한 아비와 잘못된 아들, 방탕한 형과 어리석은 아우, 미친 남편에 못된 아내, 사귐을 끊는 사인의 못된 친구가 생기지 않는다" 고하는 것이다
晏子復於景公曰:「朝居嚴乎?」公曰:「朝居嚴,則曷害於國家哉?」晏子對曰:「朝居嚴,則下無言,下無言,則上無聞矣.下無言則謂之 ,上無聞則謂之聾;聾 則非害治國家如何也?具合菽粟之微以滿倉 ,合疏縷之緯以成 幕,太山之高,非一石也,累卑然後高也.夫治天下者,非用一士之言也,固有受而不用,惡有距而不入者哉?」
안자晏子가 다시 경공景公에게 말하기를, "조회에 임하실 때 엄숙하게 하십니까?"하고 묻자, 경공이 말하기를, "조회에서 엄숙히 하면, 어찌 나라에 해가 되는 것입니까?"하였다. 안자가 말하기를, "조회에서 엄숙히 하면, 아래에서 말을 하지 못합니다., 아래에서 말을 하지 않으면, 위에서는 백성들의 사정을듣지 못합니다. 아랫 사람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암喑’이라 하고, 위에서 듣지 못하는 것을 ‘농聾’이라 합니다. 이렇게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되고 나면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콩이나 좁쌀의 그 작은 알맹이가 모여서 창고를 채우고, 가늘고 성긴 실이 합쳐져서 휘장의 큰 천이 되는 것입니다. 태산이 높은 것은, 돌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낮은 것이 많이 쌓여서야 높은 것을 떠받치게 되는 것입니다. 무릇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한 사람의 사인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들어 보고 맞지 않는 것이면 쓰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어찌 언로를 막아서 도대체 들어 오지 못하게 할 일이 있겠습니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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