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章
公孫丑問曰, 「夫子加齊之卿相, 得行道焉, 雖由此覇王不異矣, 如此則動心否乎?」 孟子曰, 「否。我四十。不動心。」
曰, 「若是則夫子過孟賁遠矣。」 曰, 「是不難, 告子先我不動心。」 曰, 「不動心有道乎?」 曰, 「有。北宮黝之養勇也, 不膚撓不目逃, 思以一毫挫於人, 若撻之於市朝, 不受於褐寬博, 亦不受於萬乘之君, 視刺萬乘之君, 若刺褐夫, 無嚴諸侯, 惡聲至必反之。孟施舍之所養勇也, 曰, 『視不勝猶勝也, 量敵而後進, 慮勝而後會, 是畏三軍者也, 舍豈能爲必勝哉! 能無懼而已矣。』孟施舍似曾子, 北宮黝似子夏, 夫二子之勇未知其孰賢, 然而孟施舍守約也。昔者曾子謂子襄曰, 『子好勇乎。吾嘗聞大勇於夫子矣, 自反而不縮, 雖褐寬博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吾往矣。』 孟施舍之守氣。又不如曾子之守約也。」
曰, 「敢問, 夫子之不動心與告子之不動心, 可得聞與?」 「告子曰, 『不得於言勿求於心, 不得於心勿求於氣。』 不得於心勿求於氣可, 不得於言勿求於心不可。夫志氣之帥也, 氣體之充也, 夫志至焉, 氣次焉。」 故曰, 「持其志, 無暴其氣。」 「旣曰, 「『志至焉, 氣次焉。』 又曰, 『持其志, 無暴其氣者。』 何也?」 曰, 「志壹則動氣, 氣壹則動志也, 今夫蹶者趍者, 是氣也而反動其心。」 「敢問, 夫子惡乎長?」 曰,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敢問, 何謂浩然之氣?」 曰, 「難言也。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餒也。是集義所生者。非義襲而取之也, 行有不慊於心則餒矣。我故曰, 『告子 未嘗知義。』 以其外之也。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無若宋人然。宋人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 芒芒然歸, 謂其人曰, 『今日 病矣。予助苗長矣。』 其子趨而往視之, 苗則槁矣。天下之不助苗長者 寡矣, 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 而又害之。」 「何謂知言?」 曰, 「詖辭知其所蔽, 淫辭知其所陷, 邪辭知其所離, 遁辭知其所窮, 生於其心, 害於其政, 發於其政, 害於其事, 聖人復起, 必從吾言矣。」 「宰我子貢, 善爲說辭, 冉牛閔子顔淵, 善言德行, 孔子兼之曰, 『我於辭命則不能也。』 然則夫子旣聖矣乎。」 曰, 「惡。是何言也? 昔者子貢問於孔子曰, 『夫子聖矣乎。』 孔子曰, 『聖則吾不能, 我學不厭而敎不倦也。』 子貢曰, 『學不厭智也, 敎不倦仁也, 仁且智, 夫子旣聖矣。』 夫聖孔子不居, 是何言也?」 「昔者竊聞之, 子夏子游子張, 皆有聖人之一體, 冉牛閔子顔淵 則具體而微, 敢問所安。」
曰, 「姑舍是。」 曰, 「伯夷伊尹何如?」 曰, 「不同道。非其君不事, 非其民不使, 治則進亂則退, 伯夷也。何事非君, 何使非民? 治亦進亂亦進, 伊尹也。 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也, 皆古聖人也。 吾未能有行焉, 乃所願則學孔子也。」 「伯夷伊尹於孔子, 若是班乎?」 曰, 「否。自有生民以來, 未有孔子也。」 曰, 「然則有同與?」 曰, 「有, 得百里之地而君之, 皆能以朝諸侯有天下, 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 皆不爲也, 是則同。」 曰, 「敢問其所以異。」 曰, 「宰我子貢有若, 智足以知聖人, 汙不至阿其所好。宰我曰, 『以予觀於夫子, 賢於堯舜遠矣。』 子貢曰, 『見其禮而知其政, 聞其樂而知其德, 由百世之後, 等百世之王, 莫之能違也, 自生民以來, 未有夫子也。』 有若曰, 『豈惟民哉? 麒麟之於走獸, 鳳凰之於飛鳥, 泰山之於丘垤, 河海之於行潦, 類也, 聖人之於民, 亦類也, 出於其類, 拔乎其萃, 自生民以來, 未有盛於孔子也。』」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께 제나라에서 경대부와 재상의 지위를 얻어 도를 행하실 수 있다면, 이로 말미암아 제나라 왕을 패자(覇者)가 되게 하시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인데, 이렇다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아니다.. 나는 나이가 사십이다.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
공손추가 말했다. “이와 같다면 선생님께서는 맹분보다 훨씬 뛰어나십니다”
맹자가 말했다. “ 이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며, 고자(告子)도 나보다 먼저 마음에 동요가 없었다."
공손추가 물었다. “부동심에 도가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있다. 북궁유가 용맹을 기름에 있어서, 살이 떨리지 않고 눈길을 피하지 아니하며, 생각함에 있어 한 터럭만큼이라도 남에게 꺾인다면, 마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청과 저자거리에서 매를 맞는 모욕으로 여기고, 거친 옷을 걸친 천박한 자에게도 모욕을 당하지 않으며, 또 만승의 왕에게도 모욕을 당하지 않고, 만승의 왕을 죽이기를 마치 비천한 자를 죽이듯 하며, 제후를 두려워함이 없고 험담하는 소리가 들리면 반드시 보복하였다.
맹시사가 용맹을 기름에 있어서 ‘이기지 못할 자를 보더라도 이기는 것 같이 하여야 하는데, 적을 헤아린 뒤에 진격하며 이길 것을 염려한 후에야 마주치면, 이것은 삼군을 두려워하는 것인데, 내가 어떻게 꼭 이길 수가 있겠는가! 다만 두려워하지 않을 뿐이다.' 고 말했다. 맹시사는 증자와 비슷하고 북궁유는 자하와 비슷하니, 두 사람 중에서 용맹이 누가 나은 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맹시사는 요점을 지켰다.
옛날 증자가 제자인 자양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용맹을 좋아하는가, 내 일찍이 큰 용맹에 대해 선생님(孔子)으로 부터 들었는데, 「스스로 돌이켜서 바로잡지 않는다면, 비록 남루하고 비천한 자일지라도 내가 어찌 그를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스스로 돌이켜서 바로잡는다면, 비록 천만명의 사람이라도 내가 찾아가겠다.」 고 하셨다.' 맹시사의 지킴은 기운이다. 또 증자가 요점을 지킨 것만 같지 못하다."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의 부동심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고자가 ‘말에서 얻지 못하면 마음에서 구하지 말며, 마음에서 얻지 못하면 기운에서 구하지 말라’ 하였다. 마음에서 얻지 못하면 기운에서 구하지 말라 한 것은 옳지만, 말에서 얻지 못하면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 한 것은 옳지 않다. 무릇 뜻은 기운의 장수요, 기운은 몸에 채워지는 것이니 뜻이 이르게 되면 기운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뜻을 굳게 지니되 그 기운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 고 한 것이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이 이르게 되면 기운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다.'라 하시고, 또 ‘그 뜻을 굳게 지니되 그 기운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 고 하신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뜻이 일관되면 기운이 일고, 기운이 일관되면 뜻이 움직이게 되는데, 이제 넘어지는 자, 뛰는 자에게는 이 기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이다.”
“감히 묻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무엇에 뛰어나십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나는 말을 알며,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
“감히 묻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합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말하기 어렵다. 그 기(氣)라 하는 것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여, 곧음으로 기르고 해로움이 없으면 천지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기라 하는 것이 의와 더불어 도에 짝하는데 이것이 없으면 호연지기가 메마르게 된다. 이것은 의가 모여서 생겨나는 것이다. 의는 갑자기 엄습해서 취해지는 것이 아니며 행동함에 있어서 마음에 차지 않은 바가 있다면 호연지기가 메마르게 되는 것이다. 내가 '고자는 의를 알았던 적이 없었다.'고 한 것은 의를 외적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반드시 일삼아 하더라도 미리 기약하지 말며, 마음으로 잊지 말고, 조장하지도 말아야 하며 송나라 사람 같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송나라 사람중에 싹이 잘 자라나지 않음을 민망히 여겨 그 싹을 뽑아 들어 올린 자가 있었는데, 넋나간듯 집에 돌아가 사람들에게 '오늘은 피곤하다. 내가 싹이 잘 자라도록 도왔다.'고 하자 그 아들이 달려가 보았더니 싹이 말라 버렸다. 천하에 싹이 자라도록 조장하지 않는 자는 드문데, 유익함이 없다고 여겨 버리는 자는 작물에 김을 매지 않는 자이지만, 싹이 잘 자라도록 조장하는 자는 유익함이 없을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한 것이다."
공손추가 물었다. “무엇을 말을 안다고 합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치우친 말에서 그것이 무엇인가에 가려지고 있음을 알고, 방탕한 말에서 그것이 무언가에 빠져 있음을 알며, 간사한 말에서 그것이 이치와 괴리됨을 알고, 피하는 말에 그것이 논리에 궁한 바를 아니, 이 말의 병통이 마음에서 생겨나 그 정사에 해를 끼치고, 그것이 정사에 펼쳐져 일에 해를 끼치니, 성인이 다시 나오신다 해도 반드시 내 말에 따르실 것이다.”
“재아와 자공은 말을 잘 하였고, 염백우 민자건 안연은 덕행에 대하여 말을 잘 하였는데, 공자는 둘을 모두 겸하시고도 말씀하시기를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이시겠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아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옛날 자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성인이십니다.’ 이에 공자가 ‘성인은 내가 될 수는 없으나, 나는 배우는 것에 실증내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자 자공이 말했다. ‘배우는 것에 실증내지 않는 것은 지혜(智)이며 가르치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은 어짊(仁)인데, 어질고 또 지혜로우시니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이십니다.’ 성인인 공자께서도 자처하지 않으셨는데 이 무슨 말인가?"
“지난 날 사사로운 경로로 들은 바, 자하 자유 자장은 다 성인의 부분을 지녔고, 염백우 민자건 안연은 몸체를 갖추었으나 미약하다고 하였는데, 감히 묻건대 선생님께서는 어느 쪽입니까?"
맹자가 말했다. “잠시 이 문제는 놔두어라.”
“백이와 이윤은 어떻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도가 같지 않다. 자신이 생각하는 인군이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자신의 백성이 아니면 시키지 않으며,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물러나는 자는 백이이며, 누구를 섬긴들 인군이 아니며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닌가? 하며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어지러워도 나아간 자는 이윤이다. 벼슬을 할 수 있으면 하고, 그칠 수 있으면 그치고, 오래 할 수 있으면 오래 하고, 빨리 떠날 수 있으면 빨리 떠난 자는 공자이시니 모두 옛 성인들이다. 내가 행동이 능하지 못하지만 바라는 바는 공자를 배우고 싶구나."
“백이와 이윤이 공자와 이와 같이 대등합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아니다. 백성이 나온 이래 공자만한 사람은 없었다.”
공손추가 물었다. “그렇다면 세분의 공통점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있다. 백리의 땅을 얻어 인군노릇을 하면서도, 모두 능히 제후들로부터 조회받고 천하를 소유할 수 있으며, 한가지라도 의롭지 않은 일을 행하며 한명이라도 죄없는 이를 죽여서, 천하를 얻는 일은 모두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라면 같다."
공손추가 말했다. "그 다른 바를 알고 싶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재아와 자공, 유약은 지혜가 성인을 알기에 족했으며, 지혜가 뒤떨어진다 해도 그들이 좋아하는 바에 아부하는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재아는 '내가 선생님을 보건대 요순보다 훨씬 훌륭하시다.' 고 하였으며, 자공은 '그 예를 보고 그 정사를 알고, 그 음악을 듣고 그 덕을 아는 것인데, 백세 뒤로부터 백세의 왕들을 견주어도 거스를 수 없을 것인 바, 백성이 생긴 이래 선생님만한 자는 아직 없었다." 고 하였고, 유약은 '어찌 백성뿐이겠는가? 달리는 짐승중 기린이고, 날아 다니는 새중의 봉황이며, 언덕과 동산에 있어서는 태산이고, 흐르는 물에 있어서는 하해(河海)와 같은 부류이니, 사람에 있어서는 성인과 같은 부류이심이라. 그 무리에서 빼어나시며, 그 모임에서 높이 솟아났으니 백성이 생긴 이래로 공자보다 성대한 자가 없었다.' 고 하였다."
公孫丑問曰, 「夫子加齊之卿相, 得行道焉, 雖由此覇王不異矣, 如此則動心否乎?」 孟子曰, 「否。我四十。不動心。」
○此 承上章 又設問孟子若得位而行道, 則雖由此而成覇王之業, 亦不足怪, 任大責重 如此, 亦有所恐懼疑惑而動其心乎? 四十 彊仕, 君子道明德立之時. 孔子四十而不惑 亦不動心之謂.
○이는 앞 문장을 이어서 (공손추가) 또 가정하여 묻기를 “맹자가 만약 지위를 얻어서 왕도정치를 행하시면 비록 이로 말미암아 패왕의 업적을 이루더라도 (또한) 족히 괴이하지 않으니 책임이 크고 직책이 무거움이 이와 같으면 또한 두렵고 두려워하여 의혹하는 바가 있어서 그 마음에 동요가 있으시겠습니까” 하니라. 사십은(『예기』곡례에) ‘彊仕(강사)’라 했으니, 군자가 도가 밝아지고 덕이 서는 때이라. 공자가 (『논어』위정편 제4장) 사십이 불혹(不惑)이라 한 것도 또한 마음이 동요되지 않음을 이름이니라.
曰, 「若是則夫子過孟賁遠矣。」 曰, 「是不難, 告子先我不動心。」
공손추가 말했다. “이와 같다면 선생님께서는 맹분보다 훨씬 뛰어나십니다”
맹자가 말했다. “ 이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며, 고자(告子)도 나보다 먼저 마음에 동요가 없었다."
賁 : 클 분/빛날 비/땅이름 육(륙). 크다. 거대하다. 달리다. 날래다. 아름답다. 큰 북. [비]꾸미다. 장식하다. 섞이다. 노하다. 성내다. 끓다.
끓어오르다. 패배하다. 결내다.(결기를 내다.)
[해설]
맹분은 쇠의 생뿔을 맨손으로 잡아 뽑은 秦나라 출신의 무사다. 공손추가 맹자의 不動心은 이러한 맹분의 용맹보다도 훨씬 더 강한 용맹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자는 맹자의 性善說이나 순자의 性惡說과는 대비되는 性勿善勿惡(성품은 선함도 악함도 없다)을 주장한 학자로서 맹자의 제자이기도 하다.
이에 고자는 성품을 물에 비유하여 환경에 따라 또는 개인의 기질에 따라 성품이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며 변화한다고 하였다. 물이 본래는 아래로 흐르는 성질이 있지만, 물길을 막으면 물은 위로 올라 흐르기도 하고 옆으로 새어 흐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맹자가 道를 잘 모르는 고자도 스승인 자신보다도 먼저 不動心을 하였으니 不動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孟賁 勇士. 告子名 不害. 孟賁 血氣之勇 丑蓋借之, 以贊孟子不動心之難. 孟子言告子未爲知道, 乃能先我不動心, 則此未足爲難也.
○程子曰, 心有主 則能不動矣.
○맹분은 용맹한 사나이라. 고자의 이름은 불해라. 맹분은 혈기가 왕성하고 사나운 용맹을 말함이니, 공손추가 (대개) 이를 빌려 (써) 맹자의 부동심이 어려움을 칭찬함이라. 맹자가 ‘고자가 道를 알지 못하는데도 (이에) 능히 나보다 먼저 부동심을 했으니 곧 이는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님’을 말씀함이라.
○정자 가로대 “마음에 주장함(줏대)이 있으면 능히 동요되지 않느니라.”하니라.
曰, 「不動心有道乎?」 曰, 「有。北宮黝之養勇也, 不膚撓不目逃, 思以一毫挫於人, 若撻之於市朝, 不受於褐寬博, 亦不受於萬乘之君, 視刺萬乘之君, 若刺褐夫, 無嚴諸侯, 惡聲至必反之。孟施舍之所養勇也, 曰, 『視不勝猶勝也, 量敵而後進, 慮勝而後會, 是畏三軍者也, 舍豈能爲必勝哉! 能無懼而已矣。』」
공손추가 물었다. “부동심에 도가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있다. 북궁유가 용맹을 기름에 있어서, 살이 떨리지 않고 눈길을 피하지 아니하며, 생각함에 있어 한 터럭만큼이라도 남에게 꺾인다면, 마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청과 저자거리에서 매를 맞는 모욕으로 여기고, 거친 옷을 걸친 천박한 자에게도 모욕을 당하지 않으며, 또 만승의 왕에게도 모욕을 당하지 않고, 만승의 왕을 죽이기를 마치 비천한 자를 죽이듯 하며, 제후를 두려워함이 없고 험담하는 소리가 들리면 반드시 보복하였다. 맹시사가 용맹을 기름에 있어서 ‘이기지 못할 자를 보더라도 이기는 것 같이 하여야 하는데, 적을 헤아린 뒤에 진격하며 이길 것을 염려한 후에야 마주치면, 이것은 삼군을 두려워하는 것인데, 내가 어떻게 꼭 이길 수가 있겠는가! 다만 두려워하지 않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
黝 : 검푸를 유. 검푸르다. 검다. 검은 흙, 검은 기둥.
撓 : 휠 뇨/돌 효/부드럽게 할 호. 휘다. 구부러짐. 어지럽게 하다. 휘저어 뒤섞임. 비뚤다. 바르지 아니함. 약하다 약하게 함. 꺾이다.
패함. 돌다. 휘돌림. 부드럽게 하다. 액체에 타다.
褐寬博 : 거친 베로 헐렁하게 지은 추레한 옷. 또는 그런 옷을 입은 가난하고 천한 사람.
[해설]
공손추가 不動心을 용맹에 비유하며 맹분의 예를 들자, 맹자는 고자를 예로 들어 不動心을 얘기하였다. 이에 다시 공손추가 부동심에도 道가 있느냐고 묻자 맹자가 북궁유와 맹시사의 용맹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북궁유는 기어이 죽여서 그 죽는 소리가 나고 꼭 이기는 것을 용맹으로 아는 사람이다. 맹시사는 꼭 이기는 것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먹은 바 곧 줏대가 더욱 중요함을 따지는 사람이다.
○北宮 姓, 黝 名. 膚撓 肌膚被刺而撓屈也. 目逃 目被刺而轉睛逃避也. 挫 猶辱也. 褐 毛布, 寬博 寬大之衣, 賤者之服也. 不受者 不受其挫也. 刺 殺也. 嚴 畏憚也, 言無可畏憚之諸侯也. 黝 蓋刺客之流而必勝爲主而不動心者也.
○孟 姓. 施 發語聲. 舍 名也. 會 合戰也. 舍 自言其戰 雖不勝亦無所懼, 若量敵慮勝而後進戰 則是無勇 而畏三軍矣. 舍 蓋力戰之士 以無懼 爲主 而不動心者也.
○북궁은 성이요, 유(黝)는 이름이라. 부요(膚撓)는 살이 찔림을 당하여 흔들리고 움츠러듬이오, 목도(目逃)는 눈이 찔림을 당하여 눈동자가 굴러서 도피함이라. 좌(挫)는 치욕과 같은 뜻이라. 갈(褐)은 모포요, 관박(寬博)은 헐렁하고 큰 옷이니 비천한 자의 옷이라. 불수자(不受者)는 그 치욕을 받지 않음이라. 자(刺)는 죽임이라. 엄(嚴)은 두려워하고 꺼림이니 (북궁유에게) 가히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제후가 없음을 말함이라. 유(黝)는 대개 자객의 부류이니 반드시 이김을 주장으로 삼아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자이라.
○맹(孟)은 성이오, 시(施)는 말을 발하는 소리요, 사(舍)는 이름이라. 회(會)는 모여 싸우는 것이라. 맹시사가 스스로 말하기를 ‘그 싸움이 비록 이기지 못하더라도 (또한) 두려하는 바가 없으니 만약에 적을 헤아리고 이길 것을 염려한 뒤에 나아가 싸우면 이는 용맹이 없는 것으로 삼군(적의 대군)을 두려워함이라.’하니라. 맹시사는 대개 힘써 싸우는 사나이니 두려움이 없음으로써 주장을 삼아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자라.
『孟施舍似曾子, 北宮黝似子夏, 夫二子之勇未知其孰賢, 然而孟施舍守約也。
맹시사는 증자와 비슷하고 북궁유는 자하와 비슷하니, 두 사람 중에서 용맹이 누가 나은 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맹시사는 요점을 지켰다.
[해설]
맹자가 맹시사를 증자에 북궁유를 자하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증자는 ‘고기 어(魚)’자와 ‘노나라 로(魯)’자를 분별하지 못할 만큼(魚魯不辨)’ 어린 나이에 공자의 제자가 되어 날마다 자기 몸을 세 번씩 살펴(吾日 三省吾身『논어』 學而편) 공자의 가르침을 잘 받들어 수약(守約)한 인물이다. 이에『대학』을 지어 공자의 도를 후대에 전하였다.
자하는 『논어』 學而편의 “事父母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인군을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다 바치며 붕우를 사귐에 말에 믿음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나(자하)는 반드시 그를 일러 배웠다 하겠노라)”에서 보듯이 배운 바대로 매우 충직하게 실천하는 인물이다.
○黝 務敵人, 舍專守己, 子夏篤信聖人, 曾子 反求諸己. 故 二子之與曾子子夏 雖非等倫, 然 論其氣象 則各有所似. 賢 猶勝也 約要也. 言論二子之勇 則未知誰勝 論其所守 則舍比於黝 爲得其要也.
○북궁유(黝)는 사람을 대적하는데 힘쓰고, 맹시사(舍)는 오로지 몸을 지켰으며, 자하는 성인을 돈독히 믿고, 증자는 자기 몸에서 돌이켜 구하니라. 이에두 사람(맹시사와 북궁유)이 증자와 자하와 더불어 비록 동등한 무리가 아니나 그 기상으로 논하자면 각기 비슷한 바가 있느니라. 현(賢)은 더 낫다는 뜻이며 약(約)은 요약함이라. 두 사람의 용맹을 논하자면 누가 더 나은 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지키는 바로써 논하자면 맹시사가 북궁유에 비하여 그 요약함을 얻었다 할 것이니라.
昔者曾子謂子襄曰, 『子好勇乎。吾嘗聞大勇於夫子矣, 自反而不縮, 雖褐寬博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吾往矣。』 孟施舍之守氣。又不如曾子之守約也。」
옛날 증자가 제자인 자양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용맹을 좋아하는가, 내 일찍이 큰 용맹에 대해 선생님(孔子)으로 부터 들었는데, 「스스로 돌이켜서 바로잡지 않는다면, 비록 남루하고 비천한 자일지라도 내가 어찌 그를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스스로 돌이켜서 바로잡는다면, 비록 천만명의 사람이라도 내가 찾아가겠다.」 고 하셨다.' 맹시사의 지킴은 기운이다. 또 증자가 요점을 지킨 것만 같지 못하다."
縮 : 오그라들 축. 다스리다. 바르게 하다. 바르다. 惴 : 두려워할 췌
[해설]
증자가 선생인 공자에게서 들은 ‘진정한 용맹이 무엇인가’를 제자 자양에게 해주고 있는 말을 맹자가 다시 인용하였다. 스스로 돌이켜(反求諸身 : 『중용』)행동과 마음이 곧지(縮) 아니하면 천한 사람조차 나를 하찮게 여길 것이며, 스스로 반성해 곧으면 천만 사람이 있는 곳이라도 떳떳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용맹이란 북궁유나 맹시사 같이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곧으냐 곧지 않느냐’ 또는 ‘스스로 反求諸身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此 言曾子之勇也. 子襄 曾子弟子也 夫子 孔子也. 縮 直也 檀弓曰, 古者冠縮縫 今也衡縫, 又曰棺束縮二衡三. 惴 恐懼之也 往 往而敵之也.
○言孟施舍 雖似曾子, 然 其所守 乃一身之氣. 又不如曾子之反身循理, 所守尤得其要也. 孟子之不動心 其原蓋出於此, 下文 詳之.
○이는 증자의 용맹을 말함이라. 자양은 증자 제자라. 부자(夫子)는 공자를 말함이라. 축(縮)은 곧음(강직함)이니 (『예기』) 단궁에 가로대 ‘옛적에 갓을 곧게(縮) 꿰매더니 오늘에는 옆으로 꿰맸다’ 하며 또 가로대 ‘관 묶는 것을 곧게(縮) 둘, 횡(衡)으로 셋을 묶었다’ 하니라. 췌(惴)는 두려워함이라. 왕(往)은 가서 대적함이라.
○맹시사가 비록 증자와 비슷하나 그가 지키는 바는 자기 한몸의 기개나 기상의 기운이며 (이)또한 증자의 反身循理하여 지키는 바의 더욱 그 요약함만 같지는 못함을 말함이라. 맹자가 말하는 不動心은 그 근원이 (대개) 증자의 수약(守約)으로부터 나왔으니 아랫글에 자세히 나타내니라.
曰, 「敢問, 夫子之不動心與告子之不動心, 可得聞與?」 「告子曰, 『不得於言勿求於心, 不得於心勿求於氣。』 不得於心勿求於氣可, 不得於言勿求於心不可。夫志氣之帥也, 氣體之充也, 夫志至焉, 氣次焉。故曰, 『持其志, 無暴其氣。』」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의 부동심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고자가 ‘말에서 얻지 못하면 마음에서 구하지 말며, 마음에서 얻지 못하면 기운에서 구하지 말라’ 하였다. 마음에서 얻지 못하면 기운에서 구하지 말라 한 것은 옳지만, 말에서 얻지 못하면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 한 것은 옳지 않다. 무릇 뜻은 기운의 장수요, 기운은 몸에 채워지는 것이니 뜻이 이르게 되면 기운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뜻을 굳게 지니되 그 기운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 고 한 것이다."
[해설]
맹자가 고자의 말을 예로 들어 마음(心志)과 바깥으로 드러난 말(言)과 행동으로 표출되는 氣(기운)와의 상호 관계를 말하고 있다. 아울러 맹자는 고자가 말한 ‘不得於言, 勿求於心’이라는 말이 뜻하는 ‘不動心’이 결국에는 북궁유와 맹시사의 용맹과 같이 맹목적임을 지적하고 있다.
말(言)은 心中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마음(心)과 상관없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발설되는 경우도 많다. 말(言)과 마음(心)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뜻이 바로 서지 않아 말이 잘못되었거나, 뜻은 바로 섰으나 실수로 말이 잘못 나온 경우가 있는데, 이때 이 말을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있어, 맹자와 고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맹자와 고자의 ‘不動心’이 서로 다르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자가 말한 ‘不得於言, 勿求於心’은 이미 잘못된 말(자신의 말이든 남의 말이든)에 대해 이를 수습하느라 마음의 동요를 가져오느니, 차라리 마음의 동요를 막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마음으로 이를 해결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주어 담을 생각말고 생각을 떨쳐버리란 뜻이다. 맹자는 이를 고자의 ‘不動心’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맹자는 마음과 뜻(心志)을 바로 세우면(縮) 잘못된 말이라도 얼마든지 수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맹자가 인용한 증자의 ‘守約’이나 ‘日日三省’ 또는 ‘反求諸身’이 그것이다. 이에 맹자는 단정적으로 고자의 ‘不得於言, 勿求於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대신에 맹자는 고자의 ‘不得於心 勿求於氣’에 대해서는 받아 들이되 이를 통해 志와 氣와 관련하여 독창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맹자는 心志가 氣를 통솔하고 조정한다고(志氣之帥也) 보는 입장이다. 즉 ‘心志’가 本이라면 ‘氣’는 末에 해당한다. 또는 ‘心志’가 體라면 氣는 用이다.
이에 맹자는 뜻(志)이 바로 서지 않았거나 또는 마음먹은(心) 바대로 일이 되지 않았다고 하여, 이를 자신의 기운에 의하여 해결하거나 수습할 수는 없다고 본다. 자신의 기운에 못이겨 주먹을 발끈 쥐고 윽박지르는 등 무모하게 氣槪 또는 氣象이 발동하는 경우를 말한다. 心志가 기운을 통솔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꾸로 기운이 心志를 바로 잡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에 맹자는 고자가 말한 ‘不得於心 勿求於氣’는 옳다고 하였다. 반면에 그렇다고 心志로 기운을 함부로 막 휘두르지(暴)는 말라고 하였다.
○此一節 公孫丑之問, 孟子誦告子之言, 又斷以己意而告之也. 告子謂於言有所不達 則當舍置其言, 而不必反求其理於心, 於心有所不安 則當力制其心 而不必更求其助於氣, 此所以固守其心 而不動之速也.
○孟子 旣誦其言而斷之曰, 彼謂不得於心 而勿求諸氣者, 急於本而緩其末, 猶之可也, 謂不得於言 而不求諸心 則旣失於外, 而遂遺其內, 其不可也 必矣. 然 凡曰 可者亦僅可而有所未盡之辭耳. 若論其極, 則志固心之所之, 而爲氣之將帥. 然 氣亦人之所以充滿於身 而爲志之卒徒者也. 故 志固爲至極, 而氣卽次之, 人固當敬守其志, 然 亦不可不致養其氣, 蓋其內外本末 交相培養. 此則孟子之心 所以未嘗必其不動, 而自然不動之大略也.
○이 한 마디는 공손추의 물음에 맹자가 고자의 말씀을 외우시고 또 자기의 뜻으로써 판단하여 깨우쳐주심이라. 고자가 이르되 ‘말에 이르지 못한 바가 있거든 (곧) 마땅히 그 말을 내버려 두고 반드시 돌아가 그 이치를 마음에 서 구하지 말 것이며 마음에 편안하지 못한 바가 있거든 (곧) 마땅히 그 마음을 힘껏 제어하고는 반드시 (다시) 기운에다 그 도움을 구하지 아니한다’ 하니, (이로써) 진실로 그 마음을 지켜서 빨리 동요하지 않음이라.
○맹자가 이미 그 말을 외우시고 판단하시어 가로대 저(고자) 이르기를 ‘마음에 얻지 못하거든 저 기운에 구하지 말라’ 함은 근본에 급하고 그 끄트머리에 누그럽게 함이니 (이는) 오히려 옳거니와, ‘말에 얻지 못하거든 저 마음에 구하지 아니함’은 곧 이미 밖에서 잃고 드디어 그 안까지 버림이니 이는 반드시 옳지 않음이라. 그러나 무릇 가로대 옳다한 것은 또한 어느 정도(겨우) 옳다는 것이지 다하지 않은 바가 있는 말이라. 만약에 그 지극함으로 논하자면 뜻은 (진실로) 마음의 가는 바요 기운의 장수가 됨이라. 그러나 기운 또한 사람의 (써) 몸에 충만하여 뜻의 부하가 됨이라. 이에 뜻은 진실로 지극함이 되고 기운은 곧 그 다음으로 나아가니, 사람이 진실로 마땅히 그 뜻을 공경하고 지켜야 하나 또한 가히 그 기운도 길러 이르도록 하여야 하니 (이는) (대개) 그 내외본말이 서로 사귀어 북돋아 기름이니라. 이는 곧 맹자의 마음에 (써한 바) 일찍부터 꼭 움직여온 바이나 또한 자연히 (마음의) 동요가 없는 큰 요체이라.
「旣曰, 「『志至焉, 氣次焉。』 又曰, 『持其志, 無暴其氣者。』 何也?」 曰, 「志壹則動氣, 氣壹則動志也, 今夫蹶者趍者, 是氣也而反動其心。」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이 이르게 되면 기운은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다.'라 하시고, 또 ‘그 뜻을 굳게 지니되 그 기운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 고 하신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뜻이 일관되면 기운이 일고, 기운이 일관되면 뜻이 움직이게 되는데, 이제 넘어지는 자, 뛰는 자에게는 이 기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이다.”
蹶 : 넘어질 궐/움직일 궤. 넘어지다. 엎어지다. 전복됨. 기울어지다. 탕진함. 지다. 패함. 각기병. 둘러빼다. 탈취함. 달리다. 일어나다. 놀라 다. 빠르다. 밟다. 넘어뜨리다.
趍 : 달아날 추/재촉할 촉/느릴 치, 달아나다. 달리다. 뒤쫒다. 종종걸음치다. 빨리 걷다. 빠르다. 붙쫒다. 추창(趨蹌)하다. 取하다.
躓 : 넘어질 지(질)/못 지. 넘어지다. 부딛치다. 실패하다. 밟다. 멈추다. 못, 발바닥의 굳은 살. 변지(腁胝).
○公孫丑見孟子言志至而氣次. 故問如此則專持其志 可矣, 又言無暴其氣 何也?. 壹 專一也. 蹶 顚躓也. 趍 走也.
○孟子言 志之所向, 專一則氣固從之, 然 氣之所在, 專一則志亦反爲之動, 如人 顚躓趍走, 則氣專在是, 而反動其心焉, 所以旣持其志, 而又必無暴其氣也.
○程子曰 志動氣者什九, 氣動志者什一.
○공손추가 맹자가 뜻이 지극하고 기운은 그 다음이라고 한 말씀을 보니 이에 (공손추가) 묻기를 “이와 같은즉 그 뜻을 오로지 가짐이 옳거늘 (또) 그 기운에 포악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심은 어째서입니까?” 하니라. 일(壹)은 오로지 하나라. 궐(蹶)은 엎어지고 미끄러짐이라. 추(趍)는 달림이라.
○맹자가 말씀하기를 “뜻의 향하는 바가 전일한즉 기운이 그 뜻을 진실로 따르나 그러나 기운의 있는 바가 전일한즉 뜻이 또한 도리어 (기운을) (위하여) 동요하니, 마치 사람이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뛰고 달리면 기운이 오로지 이에 있어서 도리어 그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과 같으니라. (이에) (써한 바) 이미 그 뜻을 세우고서는 (또한) (반드시) 그 기운에 대해 포악하게 하지 말라” 하니라.
○정자 가로대 “뜻이 氣를 움직이는 것은 십에 아홉이오, 氣가 뜻을 움직이는 것은 십에 하나니라.”하니라.
「敢問, 夫子惡乎長?」 曰,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감히 묻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무엇에 뛰어나십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나는 말을 알며,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
○公孫丑復問孟子之不動心, 所以異於告子如此者, 有何所長而能然? 而孟子又詳告之以其故也. 知言者 盡心知性, 於凡天下之言, 無不有以究極其理, 而識其是非得失之所以然也.
○浩然 盛大流行之貌. 氣則所謂體之充者. 本自浩然失養故餒. 惟孟子爲善養之 以復其初也.
○蓋惟知言 則有以明夫道義 而於天下之事 無所疑, 養氣 則有以配夫道義 而於天下之事 無所懼, 此其所以當大任而不動心也. 告子之學 與此 正相反, 其不動心 殆亦冥然無覺, 悍然不顧而已爾.
○공손추가 다시 묻기를 맹,자의 부동심이 (써한 바) 고자와 다름이 이와 같다는 것은 무엇에 뛰어나서 (능히) 그러합니까? 하니, 맹자 또한 그 원인으로써 자세히 가르쳐주심이라. 말을 안다(知言)는 것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아는 것이니, 무릇 천하의 말에 (써) 그 이치를 지극한데까지 연구하여 그 시비와 득실이 생기는 까닭을 알지 않음이 없느니라.
○호연(浩然)은 성대히 흘러가는 모양이라. 기(氣)는 (곧) (이른바) 몸을 채우는 것이라. 본래는 스스로 (타고났으나) 浩然을 길러냄을 잃었기 때문에 메마르는 것이라. 오직 맹자만이 (浩然을) 잘 길러 (써) 그 처음을 회복하시니라.
○대개 ‘知言’이면 무릇 道義를 밝혀서 천하의 일에 의심할 바가 없음이오, 기운을 기르면(養氣) (써) 무릇 道義와 짝이 맞아 천하의 일에 두려운 바가 없음이니 이는 (그) (써한 바) 큰 임무를 감당할 만하고 마음이 동요되지 아니함이라. (그러나) 고자의 학문은 이와 더불어 정히 반대가 되니 그 不動心이 자못 (또한) 어두어져 깨닫지 못하고 사납기만 하고 돌아봄이 없을 뿐이니라.
「敢問, 何謂浩然之氣?」 曰, 「難言也。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餒也。
“감히 묻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합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말하기 어렵다. 그 기(氣)라 하는 것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여, 곧음으로 기르고 해로움이 없으면 천지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기라 하는 것이 의와 더불어 도에 짝하는데 이것이 없으면 호연지기가 메마르게 된다.
○孟子 先言知言, 而丑 先問養氣者承上文, 方論志氣而言也. 難言者 蓋其心所獨得而無形聲之驗, 有未易以言語 形容者. 故 程子曰, 觀此一言, 則孟子之實有是氣 可知矣.
○至大 初無限量, 至剛 不可屈撓,. 蓋天地之正氣, 而人得以生者, 其體段 本如是也. 惟其自反而縮, 則得其所養 而又無所作爲以害之, 則其本體 不虧而充塞無間矣. (體段 : 論語 爲政 9. 注 參照)
○程子曰, 天人一也. 更不分別 浩然之氣 乃吾氣也. 養而無害 則塞于天地, 一爲私意所蔽 則欿然而餒 知其小也.
欿 : 시름할 감(함). 시름하다. 서운하다. 만족하지 않음. 구멍, 함정. 험하다.
○맹자가 먼저 ‘知言’을 말씀하셨는데 공손추가 먼저 ‘養氣’를 물은 것은 앞 문장에 이어 (바야흐로) 志와 氣를 논하여 말함이라. 말하기 어렵다고 한 것은 대개 그 마음이 홀로 얻은 바이어서 형태나 소리 등의 증험이 없으니 언어로써 쉽게 표현하지 못함이라. 이에 정자 가로대 “이 한 말(難言)을 보면 (곧) 맹자에게 실지로 이 기운(호연지기)이 있음을 가히 알 만하다.”하니라.
○지대(至大)는 애당초 한량이 없음이오, 지강(至剛)은 가히 굽히고 흔들리지 아니함이라. 대개 (호연지기는) 천지의 바른 기운이오, 사람이 (날때부터) (얻어) (써) 생겨난 것이니 그 특성이 본래 이와 같음이라. 오직 그 스스로 돌이켜서 곧으면 (곧) 그 기르는 바를 얻음이오 또 인위적으로 (써) (호연지기를) 해롭게 함이 없으면 그 본체가 이지러지지 않고 꽉 차서 틈이 없으리라.
○정자 가로대 “하늘과 사람은 하나이기에 (다시) 나누어 떨어트리지 않으니 호연지지는 이에 나의 기운이라. (호연지기를) 길러서 해롭게 함이 없으면 천지에 꽉 찰 것이오, 하나라도 사사로운 뜻이 가리는 바(폐단)가 있다면 흠결이 생겨 (호연지기가) 말라 붙으니 그 작은 것도 앎이라.
○配者 合而有助之意. 義者 人心之裁制, 道者 天理之自然. 餒 飢乏而氣不充體也.
○言人能養成此氣, 則其氣合乎道義而爲之助, 使其行之勇決, 無所疑憚. 若無此氣, 則其一時所爲 雖未必不出於道義, 然 其體有所不充, 則亦不免於疑懼, 而不足以有爲矣.
○배(配)는 합하여 도움이 있는 뜻이라. 義는 사람 마음을 마름하고 지음이요 道는 하늘의 자연한 이치라. 뇌(餒)는 굶주리고 결핍하여 기운이 몸에 차지 못함이라. (乏 : 가난할 핍)
○(이는) 사람이 능히 이 기운을 길러 완성하면 그 기운이 道義와 합해져서 道義를 위해 도와서 (사람으로) 하여금 그 (도의를) 행함이 용감하고 결단하여 의심되고 꺼리는 바가 없음이라. (그런데) 만약 이 호연지기가 없으면 (그) 한 때에 하는 바가 비록 반드시 도의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을지라도 그 전체가 꽉 차지 못하면 (또한) 의심과 두려움을 면치 못하여 족히 써 할 바를 두지 못함을 말함이라.
是集義所生者。非義襲而取之也, 行有不慊於心則餒矣。我故曰, 『告子 未嘗知義。』 以其外之也。
이것은 의가 모여서 생겨나는 것이다. 의는 갑자기 엄습해서 취해지는 것이 아니며 행동함에 있어서 마음에 차지 않은 바가 있다면 호연지기가 메마르게 되는 것이다. 내가 '고자는 의를 알았던 적이 없었다.'고 한 것은 의를 외적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慊 : 족할 겸/족할 협/의심할 혐. 흡족하다. 마음이 쾌함. 찐덥지 않다. 마음에 차지 아니함. 좋다. 훌륭하다. 성의. 정성. 한하다. 원망함.
가난하다. 빈곤함. [협]족하다. 만족함. [혐] 의심하다. 싫어함.
○集義 猶言積善, 蓋欲事事 皆合於義也. 襲 掩取也, 如齊侯襲莒之襲.
○言氣雖可以配乎道義, 而其養之之始, 乃由事皆合義, 自反常直. 是以無所愧怍, 而此氣 自然發生於中, 非由只行一事偶合於義, 便可掩襲於外而得之也.
○慊 快也, 足也. 言所行 一有不合於義而自反不直, 則不足於心而其體有所不充矣. 然則義豈在外哉! 告子 不知此理, 乃曰仁內義外, 而不復以義爲事, 則必不能集義, 以生浩然之氣矣. 上文 不得於言勿求於心 則外義之意, 詳見告子上篇.
○집의(集義)는 善을 쌓는다는 말과 같음이니 대개 일마다 다 義에 합하고자 함이라. 습(襲)은 숨겨 취함이니 제나라 후가 거(莒)나라를 엄습했다는 습과 같음이라. (莒 :감자 거, 나라이름 거)
○(이는) ‘氣가 비록 (가히 써) 道義에 배합하여 그 氣를 기르는 처음에는 (이에) 일이 다 義에 합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돌이켜 항상 곧음이라. 이로써 괴작하는(愧怍 : 부끄럽고 부끄러워 함) 바가 없어 이 기운이 자연히 마음속에서 발생하나니, 다만 한 가지 일을 행함이 우연히 義에 합함으로 말미암아 는다고 해서 문득 가히 밖으로부터 엄습해서 (호연지기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함이라.
○겸(慊)은 흔쾌함이며 족함이라. ‘행하는 바가 하나라도 의리에 합하지 못함이 있어 스스로 돌이켜 곧지 못하면 마음에 족하지 못하고 그 전체가 차지 못하는 바가 있음’을 말함이라. 그런즉 의가 어찌 밖에 있으리오. 고자가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 이에 가로대 仁은 안에 있고 義는 바깥이라 하여, 다시는 義로써 일을 삼지 아니하니 그런즉 필히 (능히) 義를 모아서 (써) 호연지기를 생겨나게 하지 못하느니라. 윗글에 나오는 말에 얻지 못하거든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는(不得於言이어든 勿求於心) 것은 곧 義를 바깥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니 (이 내용은) 고자 상편에 자세히 나타나니라.
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無若宋人然。宋人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 芒芒然歸, 謂其人曰, 『今日 病矣。予助苗長矣。』 其子趨而往視之, 苗則槁矣。天下之不助苗長者 寡矣, 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 而又害之。
반드시 일삼아 하더라도 미리 기약하지 말며, 마음으로 잊지 말고, 조장하지도 말아야 하며 송나라 사람 같이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 송나라 사람중에 싹이 잘 자라나지 않음을 민망히 여겨 그 싹을 뽑아 들어 올린 자가 있었는데, 넋나간듯 집에 돌아가 사람들에게 '오늘은 피곤하다. 내가 싹이 잘 자라도록 도왔다.'고 하자 그 아들이 달려가 보았더니 싹이 말라 버렸다. 천하에 싹이 자라도록 조장하지 않는 자는 드문데, 유익함이 없다고 여겨 버리는 자는 작물에 김을 매지 않는 자이지만, 싹이 잘 자라도록 조장하는 자는 유익함이 없을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한 것이다.
正 : 豫期하다. 揠 : 뽑을 알.
[해설]
가만히 두어도 될 일을 어리석은 행동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해악만 불러일으킨다는 뜻의 유명한 故事이다. 성질이 매우 급한 송나라 사람이 빨리 자라게 한답시고 작물의 싹을 모두 잡아 뽑아 올렸다. 그 자식이 연유를 물어보니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왔다(助苗長)는 것이다. 이에 자식이 논에 나가 보았더니 싹이 말라 죽어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를 앞 문장과도 연결해 보면 천하의 많은 사람들이 마치 호연지기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이라도 키워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맹자가 이는 ‘助苗長’의 어리석음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다. 자기가 쌓은 공은 생각지 않고 조급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나무라고 있는 셈이다. 호연지기는 어느날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道義가 쌓여서 키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必有事焉而勿正, 趙氏 程子 以七字爲句, 近世 或幷下文心字讀之者 亦通. 必有事焉, 有所事也, 如有事於顓臾之有事. 正 預期也, 春秋傳曰 戰不正勝 是也. 如作正心義亦同, 此與大學之所謂正心者, 語意自不同也.
○必有事焉而勿正’은 조씨와 정자가 일곱 자로써 한 구절을 삼고 근세(주자때)에 와서 혹 아래글의 ‘心’을 (붙여) 함께 읽는 것(必有事焉而勿正心)도 또한 통하니라. ‘必有事焉’은 일하는 바를 둠이니 ‘有事於顓臾(전유라는 곳에 전쟁이 있다, 사건이 있다)’에서의 ‘有事’와 같음이라. 정(正)은 미리 기약함이니 『춘추전』에 일러 ‘전쟁에는 이김을 예기치 못한다’ 함이 이것이라. ‘正心’이라고 지은 것도 뜻이 또한 같으나 이는 『대학』에 나오는 이른바 ‘正心’과는 (더불어) 말뜻이 (스스로) 같지 않음이라.
(顓臾 : 여기서는 땅이름. 論語 季氏 1. 參照)
○此 言養氣者 必以集義爲事, 而勿預期其效, 其或未充則但當勿忘其所有事, 而不可作爲, 以助其長, 乃集義養氣之節度也.
○閔 憂也. 揠 拔也. 芒芒 無知之貌. 其人 家人也. 病 疲倦也. 舍之而不耘者 忘其所有事, 揠而助之長者, 正之不得, 而妄有作爲者也.
○然 不耘則失養而已. 揠則反以害之, 無是二者 則氣得其養而無所害矣. 如告子 不能集義, 而欲彊制其心, 則必不能免於正助之病, 其於所謂浩然者, 蓋不惟不善養, 而又害之矣.
○이는 ‘養氣’라는 것은 반드시 義를 모음으로써 일을 삼되 효력을 예기치 말며, (호연지기가) 혹 차지 못하더라도 (곧) (다만) 마땅히 그 일을 둔 바를 잊지 말며 가히 억지로 (써) 싹이 자라도록 돕지 말야야 함‘을 말함이니 이는 義를 쌓아 호연지기를 키우는 절도이니라.
○민(閔)은 근심이라. 알(揠)은 빼냄이라. 망망(芒芒)은 무지한 모양이라. ‘其人’은 집사람이라. 병(病)은 피로하고 권태로움이라. 버리고 김매지 않는다는 것은 (그) 마땅히 일해야 하는 바를 잊어버림이오(호연지기를 버리는 사람이오), (싹을) 뽑아서 자라도록 돕는다는 것은 바름을 얻지 못해 망령되이 억지로 함이 있음이라.
○그러나 김을 매지 않은즉 키움을 잃을 뿐이오, 뽑은 즉 오히려 해가 되니, 이 둘이 없으면 氣가 키워짐을 얻고 또한 해로운 바도 없음이라. 고자같은 이는 능히 義를 쌓지 아니하고는 강제로 그 마음을 제재하고자 하면 반드시 (능히) 미리 기약하고 억지로 助長해서 생기는 병을 면치 못하리니 (그) 이른바 호연지기를 잘 기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또한 호연지기를 해침이니라.
「何謂知言?」 曰, 「詖辭知其所蔽, 淫辭知其所陷, 邪辭知其所離, 遁辭知其所窮, 生於其心, 害於其政, 發於其政, 害於其事, 聖人復起, 必從吾言矣。」
공손추가 물었다. “무엇을 말을 안다고 합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치우친 말에서 그것이 무엇인가에 가려지고 있음을 알고, 방탕한 말에서 그것이 무언가에 빠져 있음을 알며, 간사한 말에서 그것이 이치와 괴리됨을 알고, 피하는 말에 그것이 논리에 궁한 바를 아니, 이 말의 병통이 마음에서 생겨나 그 정사에 해를 끼치고, 그것이 정사에 펼쳐져 일에 해를 끼치니, 성인이 다시 나오신다 해도 반드시 내 말에 따르실 것이다.”
詖 : 치우칠 피. 치우치다. 偏頗함. 기울다. 판단하여 설명하다. 분석함. 교활하다. 아첨하다. 비뚤어지다. 그 말. 멋대로 죄를 씌우다. 비탈.
[해설]
인간사회에는 무수히 많은 말이 오고 간다. 말로써 모든 일(政事)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 말 속에는 온갖 뜻과 의도와 속셈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이에 맹자는 그 말속에 들어 있는 나쁜 뜻을 분명히 아는 것을 ‘知言’이라고 하였다. 맹자는 정사를 해치는 나쁜 말에는 ‘편벽된 말(詖辭)’ ‘음탕한 말(淫辭’) ‘간사한 말(邪辭)’ ‘회피하는 말(遁辭)’ 등이 있다고 보았다.
이에 편벽된 말(詖辭)이 나오는데는 막히고 가려진 바가 있기 때문이며, 음탕한 말(淫辭)은 잘못 빠져든 바가 있기 때문이며, 간사한 말(邪辭)은 그 마음이 이반했기 때문이며, 회피하는 말(遁辭)은 횡설수설하여 궁색한 바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맹자는 정사를 펼치는 자가 이러한 말을 잘 구분한다면 천하에 더 할 일이 없다고 보고 있다.
공자 또한 『주역』 계사하전에서 ‘知言’과 관련하여
“將叛者其辭慙, 中心疑者其辭枝, 吉人之辭寡, 躁人之辭多, 誣善之人, 其辭游, 失其守者其辭屈.(장차 배반할 자는 그 말이 부끄럽고, 속마음에서 의심하는 자는 그 말이 가지가 돋고, 길한 사람의 말은 적고, 조급한 사람의 말은 많고, 착한 것을 속이는 사람은 그 말이 놀고, 그 지킴을 잃은 자는 그 말이 비굴하니라)” 하였다.
○此公孫丑復問而孟子答之也. 詖偏陂也. 淫放蕩也, 邪 邪僻也, 遁 逃避也, 四者 相因, 言之病也. 蔽 遮隔也, 陷 沈溺也, 離 叛去也, 窮 困屈也, 四者 亦相因 則心之失也.
○人之有言皆出於心, 其心明乎正理而無蔽然後, 其言平正通達而無病, 苟爲不然 則必有是四者之病矣.
○卽其言之病, 而知其心之失, 又知其害於政事之決然, 而不可易者 如此, 非心通於道 而無疑於天下之理, 其孰能之.
○이는 공손추가 다시 묻고 맹자가 대답하심이라. 피(詖)는 편벽되고 언덕짐이오, 음(淫)은 방탕함이오, 사(邪)는 간사스럽고 궁벽함이오, 둔(遁)은 도피함이니, 네 가지(詖, 淫, 邪, 遁)가 서로 원인이 되어 말의 병이 됨이라. 폐(蔽)는 가리고 막힘이오, 함(陷)은 잠기고 빠짐이오, 리(離)는 배반해서 감이오, 궁(窮)은 곤하고 굴함이니 네 가지(蔽, 陷, 離, 窮)가 또한 서로 원인이 되어 (곧) 마음을 잃어버림이라.
○사람이 말을 둠에 다 마음에서 나오니 그 마음이 바른 이치에 밝고 가리워짐이 없은 연후에 그 말이 평평하고 바르고 통하고 달해서 병이 없을 것이오, 진실로 그러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이 네 가지의 병이 있으리라.
○그 말의 병에 나아가서 그 마음을 잃어버림을 알고 또 정사를 해침이 결정적이어서 가히 바꿀 수 없음을 앎이 이와 같으니 마음이 도에 통해 천하의 이치를 의심하지 않는 이가 아니면 그 누가 이에 능하리오.
○彼告子者不得於言, 而不肯求之於心, 至爲義外之說, 則自不免於四者之病. 其何以知天下之言而無所疑哉.
○程子曰 心通乎道然後, 能辨是非, 如持權衡以較輕重, 孟子所謂知言 是也. 又曰 孟子知言 正如人在堂上, 方能辨堂下人曲直, 若猶未免雜於堂下衆人之中, 則不能辨決矣.
○저 고자는 ‘말에 얻지 못하거든 즐기어 마음에서 구하지 아니한다’ 하여 義를 바깥에 두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는 곧) 스스로 네 가지 병을 면하지 못하리라. (이를 두고) 어찌 (써) 천하의 말을 알아서 의심하는 바가 없다 할 수 있으리오.
○정자 가로대 “마음이 도에 통한 연후에야 능히 시비를 분별함이 저울과 저울대를 가지고 (써) 경중을 비교함과 같으니 맹자 이르신 바 ‘知言’이라고 이른 바가 이것이라.” 하고 또 가로대 “맹자의 ‘知言’은 정히 사람이 당 위에 있어야 바야흐로 능히 당 아래 사람의 曲直을 분별함과 같으니 만약 오히려 (자신이) 당 아래 뭇사람 가운데 섞여 있음을 면치 못하면 곧 능히 분별하고 결단하지 못하리라.” 하니라.
「宰我子貢, 善爲說辭, 冉牛閔子顔淵, 善言德行, 孔子兼之曰, 『我於辭命則不能也。』 然則夫子旣聖矣乎。」
“재아와 자공은 말을 잘 하였고, 염백우 민자건 안연은 덕행에 대하여 말을 잘 하였는데, 공자는 둘을 모두 겸하시고도 말씀하시기를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이시겠습니다!”
○此一節 林氏 以爲皆公孫丑之問, 是也. 說辭 言語也, 德行 得於心而見於行事者也. 三子 善言德行者 身有之故, 言之親切而有味也.
○公孫丑言數子各有所長而孔子兼之, 然 猶自謂不能於辭命, 今孟子 乃自謂我能知言, 又善養氣, 則是兼言語德行而有之, 然則豈不旣聖矣乎? 此夫子 指孟子也.
○程子曰 孔子 自謂不能於辭命者, 欲使學者務本而已.
○이 한 마디는 임씨(임지기)가 (써) (다) 공손추의 물음이라 하니 옳도다. 설사(說辭)는 언어(言은 말의 통칭이고 語는 남의 말에 대답하는 말)요. 덕행은 마음에 얻어 일을 행하는데 나타나는 것이라. 삼자가 덕행을 잘 말하는 것은 몸에 둔(자신이 직접 실천하는) 고로 (그) 말이 친절하고 맛이 있느니라.
○공손추가 말하기를 “몇 사람들이(재아, 자공, 염우, 민자, 안연 등) 각각 장점이 있고 공자는 (이 모두를) 겸하셨으나 오히려 스스로 사명(辭命)에는 능치 못하다 (말씀)하시거늘 이제 맹자가 (이에) 스스로 일러 ‘내 능히 말을 안다’ 하시고 또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 (말)하셨으니 즉 (이) 언어와 덕행을 겸하여 두신다 하셨으니 그런즉 어찌 이미 성인이 아니시랴” 하니라. 여기서 夫子는 맹자를 가르침이라.
○정자 가로대 “공자 스스로 이르시기를 사명에 능하지 못하다고 하심은 배우는 자로 하여금 근본에 힘쓰게 하고자 하실 따름이니라.” 하니라.
曰, 「惡。是何言也? 昔者子貢問於孔子曰, 『夫子聖矣乎。』 孔子曰, 『聖則吾不能, 我學不厭而敎不倦也。』 子貢曰, 『學不厭智也, 敎不倦仁也, 仁且智, 夫子旣聖矣。』 夫聖孔子不居, 是何言也?」
맹자가 말했다. “아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옛날 자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성인이십니다.’ 이에 공자가 ‘성인은 내가 될 수는 없으나, 나는 배우는 것에 실증내지 않고 가르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자 자공이 말했다. ‘배우는 것에 실증내지 않는 것은 지혜(智)이며 가르치는 것에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은 어짊(仁)인데, 어질고 또 지혜로우시니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이십니다.’ 성인인 공자께서도 자처하지 않으셨는데 이 무슨 말인가?"
○惡 驚歎辭也. 昔者以下 孟子 不敢當丑之言, 而引孔子子貢問答之辭, 以告之也. 此夫子 指孔子也. 學不厭者 智之所以自明, 敎不倦者 仁之所以及物, 再言是何言也, 以深拒之.
○오(惡)는 경탄하는 말이라. ‘昔者’ 이하는 맹자가 감히 공손추의 말을 감당치 못하고, 공자와 자공이 문답한 말을 이끌어서 (써) 깨우쳐 주심이라. 여기 夫子는 공자를 가리킴이라. 배움을 싫어하지 않는 것은 智가 (써) 스스로 밝음이오 가르침을 게을리 아니함은 仁의 (써한 바) 물건에 미치는 것이니, (맹자가) 두 번이나 ‘이 무슨 말인고’를 말하여 (써) 깊이 거절함이라.
「昔者竊聞之, 子夏子游子張, 皆有聖人之一體, 冉牛閔子顔淵 則具體而微, 敢問所安。」
“지난 날 사사로운 경로로 들은 바, 자하 자유 자장은 다 성인의 부분을 지녔고, 염백우 민자건 안연은 몸체를 갖추었으나 미약하다고 하였는데, 감히 묻건대 선생님께서는 어느 쪽입니까?"
○此一節 林氏 亦以爲皆公孫丑之問 是也. 一體 猶一肢也. 具體而微, 謂有其全體, 但未廣耳. 安 處也. 公孫丑復問孟子 旣不敢比孔子, 則於此數子, 欲何所處也.
○이 한마디는 임씨가 또한 (써하되) 다 공손추의 물음이라 하니 옳도다. 일체는 일지(四肢의 4분의 1)와 같으니라. 몸뚱이를 갖추고도 미약함은 이르되 그 전체를 두었으되 다만 넓지 못함이라. 안(安)은 (자)처해 있음이라. 공손추가 다시 묻기를 맹자가 이미 감히 공자께 비교하지 못하시면 (이) (다른) 여러 사람들중에 누구를 자처하고자 하시는지를 묻는 것이라.
曰, 「姑舍是。」 曰, 「伯夷伊尹何如?」 曰, 「不同道。非其君不事, 非其民不使, 治則進亂則退, 伯夷也。何事非君, 何使非民? 治亦進亂亦進, 伊尹也。 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也, 皆古聖人也。 吾未能有行焉, 乃所願則學孔子也。」
맹자가 말했다. “잠시 이 문제는 놔두어라.”
“백이와 이윤은 어떻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도가 같지 않다. 자신이 생각하는 인군이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자신의 백성이 아니면 시키지 않으며,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물러나는 자는 백이이며, 누구를 섬긴들 인군이 아니며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닌가? 하며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어지러워도 나아간 자는 이윤이다. 벼슬을 할 수 있으면 하고, 그칠 수 있으면 그치고, 오래 할 수 있으면 오래 하고, 빨리 떠날 수 있으면 빨리 떠난 자는 공자이시니 모두 옛 성인들이다. 내가 행동이 능하지 못하지만 바라는 바는 공자를 배우고 싶구나."
○孟子言 且置是者 不欲以數子所至者 自處也.
○伯夷 孤竹君之長子, 兄弟遜國, 避紂隱居, 聞文王之德而歸之, 及武王伐紂, 去而餓死. 伊尹有莘之處士, 湯聘而用之, 使之就桀, 桀不能用, 復歸於湯, 如是者五乃相湯而伐桀也. 三聖人事 詳見此篇之末及萬章下篇.
○맹자가 또한 이를 놔두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여러 사람이 이른 바로써 자처하고자 함이 아님이라.
○백이는 고죽군의 장자이니 형제가 나라를 사양하고 (은나라) 주왕를 피하여 숨어 살다가 문왕의 덕을 듣고 (문왕께) 돌아가더니 (주나라) 무왕이 주왕를 치는데 이르러서는 떠나가서 굶어 죽으니라. 이윤은 유신이라는 지역에 (은둔하고 있던) 처사인데 탕왕이 불러서 쓰사 (이윤으로) 하여금 (하나라) 걸왕에게 나아가게 한대 걸왕이 능히 (이윤을) 쓰지 않거늘 다시 탕왕에게 돌아가니 이와 같이 다섯 번을 함에 이에 탕왕을 도와서 걸왕을 정벌함이라. 세 성인(백이 이윤 공자)의 일은 이 책의 끝 만장 하편에 자세히 나타나니라.
「伯夷伊尹於孔子, 若是班乎?」 曰, 「否。自有生民以來, 未有孔子也。」 曰, 「然則有同與?」 曰, 「有, 得百里之地而君之, 皆能以朝諸侯有天下, 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 皆不爲也, 是則同。」
"백이와 이윤이 공자와 이와 같이 대등합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아니다. 백성이 나온 이래 공자만한 사람은 없었다.”
공손추가 물었다. “그렇다면 세분의 공통점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있다. 백리의 땅을 얻어 인군노릇을 하면서도, 모두 능히 제후들로부터 조회받고 천하를 소유할 수 있으며, 한가지라도 의롭지 않은 일을 행하며 한명이라도 죄없는 이를 죽여서, 천하를 얻는 일은 모두 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라면 같다."
班 : 같다. 대등함.
○班 齊等之貌. 公孫丑問而孟子答之以不同也.
○有 言有同也. 以百里而王天下 德之盛也, 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 有所不爲, 心之正也. 聖人之所以爲聖人 其根本節目之大者 惟在於此, 於此不同 則亦不足爲聖人矣.
○반(班)은 가지런하고 동등한 모양이라. 공손추가 물음에 맹자가 같지 않다고 대답하심이라.
○유(有)는 같은 점이 있음을 말함이라. 백리로써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은 덕의 성함이오, 한가지라도 의롭지 않음을 행하며 한명이라도 죄없는 이를 죽여서 천하를 얻는 일을 하지 않는 바를 둔다는 것은 마음이 올바름이라. 성인이 (써한 바) 성인이 것은 그 근본과 절목의 큼이 오직 이에 있으니, 이와 같지 않으면 또한 족히 성인이 되지 못하니라.
曰, 「敢問其所以異。」 曰, 「宰我子貢有若, 智足以知聖人, 汙不至阿其所好。」
공손추가 말했다. "그 다른 바를 알고 싶습니다."
맹자가 말한다. "재아와 자공, 유약은 지혜가 성인을 알기에 족했으며, 지혜가 뒤떨어진다 해도 그들이 좋아하는 바에 아부하는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汙(汚) : 땅팔 와. 땅을 파다. 뒤떨어지다.
○汙 下也. 三子 智足以知夫子之道, 假使汙下, 必不阿私所好, 而空譽之 明其言之可信也.
○와(汙)는 아래라. 삼자(재아 자공 유약)의 지혜가 족히 (써) 선생님(공자)의 도를 아나니 가령 맨 밑에 있어도 반드시 좋아하는 바에 사사로이 아첨해서 헛되게 영예롭게 하지는 아니하니 그 말이 가히 믿을만함을 밝힘이라.
[참고]
有若(기원전 509년~?)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13살 적으나 모습이 공자와 비슷하다(有若似孔子)하여 공자 사후 문인들이 그를 스승으로 삼자고 했으나 증자가 반대했다.
宰我曰, 『以予觀於夫子, 賢於堯舜遠矣。』
재아는 '내가 선생님을 보건대 요순보다 훨씬 훌륭하시다.” 하였으며,
○程子曰 語聖則不異, 事功則有異, 夫子 賢於堯舜, 語事功也. 蓋堯舜 治天下, 夫子 又推其道, 以垂敎萬世, 堯舜之道 非得孔子, 則後世 亦何所據哉.
○정자 가로대 “성인으로 말한즉 다르지 아니하고 일과 공으로 (말한즉) 다름이 있나니 (공자) 선생님께서 요순보다 훌륭하다함은 일과 공을 말함이라. 대개 요순은 천하를 다스리시고 선생님께서는 또한 (그) 道를 미루어 (써) 만세에 가르침을 드리우셨으니 요순의 도가 공자를 얻지 아니했으면 후세에 (또한) 무엇을 근거로 삼았겠는가? ” 하니라.
子貢曰, 『見其禮而知其政, 聞其樂而知其德, 由百世之後, 等百世之王, 莫之能違也, 自生民以來, 未有夫子也。』
자공은 “그 예를 보고 그 정사를 알고, 그 음악을 듣고 그 덕을 아는 것인데, 백세 뒤로부터 백세의 왕들을 견주어도 거스를 수 없을 것인 바, 백성이 생긴 이래 선생님만한 자는 아직 없었다." 고 하였고,
○言大凡見人之禮 則可以知其政. 聞人之樂 則可以知其德, 是以 我從百世之後, 差等百世之王, 無有能遁其情者, 而見其皆莫若夫子之盛也.
‘
○대체로 사람의 禮를 보면 (가히 써) 그 정사를 알 것이오, 사람의 음악을 들으면 (가히 써) 그 덕을 아나니, 이로써 내가 백세 뒤를 좇아 백세의 왕을 차등해 보건데 능히 그 실정을 피할 수 있는 자가 없나니(실정대로 나타나건대) 그 모두 공자 선생님같이 盛한 이가 없음을 보게 됨’을 말함이라.
有若曰, 『豈惟民哉? 麒麟之於走獸, 鳳凰之於飛鳥, 泰山之於丘垤, 河海之於行潦, 類也, 聖人之於民, 亦類也, 出於其類, 拔乎其萃, 自生民以來, 未有盛於孔子也。』
유약은 '어찌 백성뿐이겠는가? 달리는 짐승중 기린이고, 날아 다니는 새중의 봉황이며, 언덕과 동산에 있어서는 태산이고, 흐르는 물에 있어서는 하해(河海)와 같은 부류이니, 사람에 있어서는 성인과 같은 부류이심이라. 그 무리에서 빼어나시며, 그 모임에서 높이 솟아났으니 백성이 생긴 이래로 공자보다 성대한 자가 없었다.' 고 하였다."
垤 : 개밋둑 질. 개밋 둑. 작은 언덕. 潦 : 큰 비 료. 큰 비. 장마. 길 바닥에 괸 물. 웅덩이. 적시다. 담금. 물 이름.
萃 : 모일 췌(취). 모으다. 많은 것이 모인 것. 여위다. 지침. 이르다. 다다름. 그치다. 옷 스치는 소리. 곁들이다. 버금.
○麒麟 毛蟲之長, 鳳凰 羽蟲之長. 垤 蟻封也. 行潦 道上無源之水也. 出 高出也 拔 特起也. 萃 聚也. 言自古聖人固皆異於衆人, 然未有如孔子之尤盛者也.
○程子曰 孟子此章 擴前聖所未發, 學者 所宜潛心而玩索也.
○기린은 털달린 짐승의 어른이오, 봉황은 깃달린 짐승의 어른이라. 질(垤)은 개미둑이라. 행료(行潦)는 길위에 근원없는 물이라. 출(出)은 높이 남이오, 발(拔)은 특별히 일어남이라. 취(萃)는 모임이라. (이는) ‘예로부터 성인이 진실로 (다) 일반 사람과 는 다르나 공자와 같이 더욱 성대한 이가 있지 않음’을 말함이라.
○정자 가로대 “맹자의 이 장은 이전의 성인들이 미처 발표하지 못한 바를 넓히심이니, 배우는 자가 마땅히 마음을 잠기고 지긋이 찾아야 할 바이니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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